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종편방송들의 반북선전에 대한 단상

어용언론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텔레비전 채널인 TV조선과 채널A를 보면 탈북자들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방송이 있다. 대표적으로 ‘모란봉 클럽‘과 ‘이제 만나러 갑시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채널들은 과거 북한에 살다가 탈북한 이들을 대상으로 북한을 논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을 대략 살펴보면, 북한에 대한 시사와 일상 그리고 정치 및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있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얘기들 99.9% 수준으로ㅈ악의적이거나, 반북주의를 자극하는 내용들이다. 예를들면 ˝한글을 김일성이 만든 것으로 북한사람들은 믿는다.˝던지, ˝김정일이 아는 사람에게 ˝너 나야 저년이야˝라고 하며 아내의 총살을 명령했다.˝든지, ˝심완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말을 잘못해서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기전 북한 경찰들에게 폭행당하며 넌 이름부터가 잘못됐어 이 새키야˝라고 욕을 먹었다던지 뭐 이런 류의 내용들이 무수히 많이 나온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들이 하는 얘기들을 보면 출처와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내용들이 가득찼다. 마치 냉전시대 당시 이른바 미국의 어용언론들이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악의적인 선전을 일삼던 것이 생각날 정도다. 실제로 그랬었다. 《수용소 군도》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반공소설로 유명한 솔제니친은 소련의 굴라그와 일상생활에 대해 악의적인 왜곡과 새빨간 거짓말을 일삼았었다. 그러나 패래스트로이카로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그 거짓말의 진상이 폭로됐다.

즉 현재 어용언론이 하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거짓말들과 위조들을 일부 탈북자들을 이용하여, 사실인냥 포장하고 있다. ‘현송월 총살설‘을 포함하여 무수히 많은 거짓말들이 폭로가 되었지만, 이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거짓말들은 꾸준히 재생산 되고 남한 시민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또한 이 어용언론 방송들은 북한에 대해선 조금이라도 긍정적이어선 안된다. 예를 들면 북한의 항일투사 국가대우를 마치 왕족의 사치나 귀족정의 권력 남용으로 묘사하려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북한의 항일영웅 대우는 중국의 인민해방군 출신 참전용사나 베트남의 베트민 혹은 베트콩 참전용사들에 대한 국가의 영웅 대접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야할 문제다. 즉 이들이 부르주아적 반공의 관점으로 볼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채널들을 보면 그냥 화가난다. 그리고 이런 새빨간 거짓말들이 주지의 사실로 받들여지는 사회가 스스로의 비판의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날조와 위조 그리고 왜곡에 맞서 북한에 대해 진실의 눈으로 보아야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이 거짓증언들을 사실로 재생산하는 채널들을 통해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반북주의는 망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01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어 지금도 우리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물론 이제는 바이러스가 어디서 시작했는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 전대미문의 질병으로 인하여 인류가 받고 있는 고통은 너무나도 크다. 20214월까지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보도가 되지 않은 두 나라가 있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전 세계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인 코로나19(COVID-19) 실시간 상황판을 보면 두 나라만 회색으로 색칠되어 있다. 그 나라가 바로 투르크메니스탄과 북한이다.

 

투르크메니스탄과 북한은 공식적인 통계에서 지금까지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보도되지 않았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 충분히 그러한 보도를 의심할 가치는 매우 높다. 왜냐하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질병이기에 아무리 힘을 쓰고 막는다 하더라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반증으로 현재 그린란드나 아이슬란드 그리고 포클랜드 제도, 뉴칼레도니아 등과 같은 나라에서도 확진자가 적게나마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 외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 전역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초기 방역을 철저하게 하거나 국경 및 항로봉쇄와 같은 조치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아주 효율적으로 방어한 나라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뉴질랜드나 대만, 베트남, 라오스 그리고 캄보디아가 그러하다. 하지만 이 나라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는 분명 보고가 되었고, 지금도 적게나마 존재한다. 사회주의 국가들 중에서 의료강국으로 전 세계에 의사들을 보내 이론적 실천을 하는 쿠바 또한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물론 엄청나게 창궐하는 미국과 가까이 있으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쿠바는 매우 모범적인 방역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이러한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았을 때, 북한에 공식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0명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믿기 힘들다. 그것은 북한을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려고 하는 나 또한 그러하다. 이것은 분명히 숫자를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그러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북한이 최소한 현재 라오스 정도의 확진자(49명이다.)가 나왔다고 본인들 스스로 보도했다면, 개인적으로 믿어주기라도 하겠지만 공식 확진자 0명은 그 수치에 문제와 의구심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적인 의구심과 문제제기와는 별개로 북한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는가?”하는 문제는 개별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의심과 보도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1차 유행부터 퍼졌기 때문이다. 국내 어용언론이나 서방언론들은 극우들에 의해 혹은 극우적 편견에 의해 재생산된 근거 없는 억측과 루머들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한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비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과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대표적인 자료로 이런 것이 있다.)

https://blog.naver.com/blueload487/222132355664

https://www.dailynk.com/20201013-3/

 

북한이 자신들의 국경을 차단한 것은 20201월부터였다. 이 시기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에서 창궐하여 전 세계를 긴장하게 만들었는데, 그러한 과정 속에서 북한은 우선적으로 122일에 중국인 관광객들은 원천적으로 입국 금지 조치 시켰는데, 당시 북한이 통보한 내용은 우한 폐렴 때문에 북한은 관련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중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무기한 중단하기로 했다.”였다. 그리고 이것은 국경 폐쇄를 겸하는 조치였다. 또한 초기 해외 입국하는 사람 거의 4주 가까이 격리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관련기사)

https://www.nocutnews.co.kr/news/5276984

https://www.news1.kr/articles/?3822722

 

따라서 북한은 2020122일부터 국경을 폐쇄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가 점차 다른 나라로 퍼지던 213일 동아일보에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그것은 탈북자 출신의 기자 주성하가 쓴 코로나 예방차원 격리된 관료, 몰래 대중목욕탕 갔다가 총살이었다. 이러한 기사가 나오자 국내에선 북한의 코로나 예방법이 총살이라는 관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나 북한에 대한 그 어떠한 거짓기사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한국시민들에게 이러한 기사는 그 임팩트가 정치성향을 가리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에도 북한 관련 코로나 루머들이 있었고, 20206월에서 7월 사이 한 탈북자 출신이 월북을 하면서 북한의 코로나 바이러스 최초 확진자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당시 북한 측에서 모두 검사해본 결과 공식적인 측면에서 다 음성이 나왔다. 2020년 봄에서 여름 사이 일부 양심 없는 탈북자 단체에서 대북전단 살포와 같은 유치찬란한 짓거리를 벌였는데, 이들이 보낸 대북삐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환자의 채액이 들어있기도 했었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보았을 때, 극우세력들이 이런 짓을 했다는 사실에서 북한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지 않았기에 일부러 창궐시키고자 이러한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 그 외에도 2020101WHO 평양사무소장이 북한 사람 3,374명을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모두 음성이 나왔다는 보도가 있긴 했다.

 

(관련기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0&sid2=268&oid=001&aid=0011916756&fbclid=IwAR2dupq-lpPPhEYr4ZTGe_bjZcgMfEx3sF9Ag3TmZXwz4eOUMcyvyy4D2Fs

 

그러는 사이 20201010일 북한에선 당창건 75주년 열병식을 평양에서 가졌는데, 이 열병식에선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국경을 봉쇄하여 원천차단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 퍼레이드는 북한군의 업그레이드된 탱크나 각종 군 장비 그리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등장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군사적인 측면에서 가지게 했지만 말이다. 이 열병식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적어도 북한이 이런 전 세계적 질병사태에서 수도에서 열병식을 가질 정도로 자신들 나름의 방역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일수도 있다. 그 이후에도 2021년 신년 행사와 114일 조선로동당 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도 거행되었다.

 

이러한 사례를 놓고 보았을 때, 북한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창궐했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큰 행사들은 기본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1114일 북한의 열병식은 2020110일의 열병식과는 조금 다른 모습도 있었다. 이것은 열병식 행사에 참가한 북한 시민들의 마스크 착용률이 생중계되는 텔레비전에서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높아진 것이었다. 그리고 2021년 이후 보도되는 북한의 거리의 모습에서도 2020년 보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시민들의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즉 이러한 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공식 확진자가 0명이라는 보도는 분명히 의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코로나가 창궐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높게 입증하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인도적 지원단체가 보낸 방역물자를 상당량 수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202091,888만 달러였던 대중국 수입량이 10월 들어 26만 달러로 98%이상이나 감소했다. 이것은 북한이 자력갱생하고자 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해 여름에 북한은 수해로 무너진 집 수천 세대를 새로 짓고, 복구 작업을 한 것인데 이것은 북한 스스로 밝혔듯이 유사시 비축해둔 물자를 털어서 진행한 복구 잡업이었다.

 

(임종금 기자의 페이스북 글)

https://www.facebook.com/rosua.kr/posts/3699109793478653

 

(참고한 기사)

https://www.news1.kr/articles/?4263144

 

만약에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과 같이 북한에서 엄청나게 확진자가 대량으로 창궐했다면, 적어도 그 구호물자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자신들 내부에서 어느 정도의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앞에서 누누이 설명한 바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그것도 그린란드나 아이슬란드, 그 외의 아프리카와 태평양 사모아를 포함한 미크로네시아 지역까지 창궐하는 전대미문의 질병속에서 공식적인 확진자 0명이라는 주장은 신뢰가 매우 떨어진다. 물론 주성하 기자가 주장한 코로나 확진자를 총살해서 없앴다는 식의 주장도 너무나 신빙성이 떨어지는 주장으로 현송월 포르노물 총살 기사처럼 아무런 근거가 없다. 아무튼 북한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잘 이겨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길 한반도는 냉전이 끝나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1948년 남한과 북한에 두 개의 국가와 두 개의 체제가 형성된 이후부터 한반도는 지금까지 대략 73년간 분단되어 있는 상태다. 1948년부터 현재까지 북한과 남한 국경선에서 크고 작은 교전부터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까지 간 적이 있었다. 1950625일에 시작된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과의 전쟁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거대 진영이 맞붙는 국지전으로 발전했었다. 물론 한국전쟁과 같은 대규모 전면전은 1953년 휴전 협정이 성사된 이래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전쟁이 일어날 뻔 했던 적은 적잖게 있었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뻔 했던 위기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에도 있었다. 20101123일 오후 234분 북한군이 대한민국 서해에 있는 섬 연평도에 170발의 포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2명과 한국군 2명이 전사했으며,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가옥과 시설이 파괴되었다. 이 사건에서 한국인들이 느낀 충격과 공포는 상당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 또한 전쟁이 날거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와 더불어 이 사건으로 인해 김정일 돼지를 죽여야 한다.” 혹은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적이라는 반북 반공의식이 생겼을 정도였다. 거기다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정부에서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몇 시간 뒤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2차 도발을 할 시에 전쟁이 선포된다.”는 발표를 했었다.

 

이러한 분위기였기에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던 로버트 게이츠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인 보복을 계획했었다.”고 폭로했었고, 그것을 미국이 중지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반도는 전쟁이 일어날 뻔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 외에도 1968년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과 울진 삼천 무장공비 사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1999년 제1차 연평해전과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2015년 서부전선 포격 사건 등 양측의 교전은 많았다. 양측의 긴장관계는 심각해져서, 2017년 여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을 겨냥하며 화염과 분노를 맛볼 것이라고 북한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의 이러한 발언들인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상대방에 대해 위협할 때 자주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양측의 긴장관계가 높아질 때, 북한 내부에서 드러나는 구호나 발언들이 있다. 바로 반미주의적인 발언이나 구호들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반미국가인 것이고, 그러한 반미주의적 구호나 행동들이 통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을 찾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한국에서 이승만식 북진통일을 원하는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들은 북한이 반미적 구호를 외치는 것과 그들이 그런 구호를 외치는 이유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것은 대한민국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용어들을 이용해가며, 친미 혹은 숭미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집단들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기에 북한이 반미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반도의 근현대사와 국가가 존속해오면서 겪어야 했던 일련의 과정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자주 내세우는 명분 중 하나는 자신들의 항일투쟁 정통성에 있다.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은 1931년 만주사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까지 항일독립운동을 해온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그가 평양에서 소련 군정사령관 치스차코프와 같이 연단에 섰을 때, 놀라움과 더불어 환영의 목소리도 들렸던 것이다. 즉 그런 김일성이 1950년에는 미국과 그 제국주의 군대까지 참전한 상황에서 북한이라는 나라를 지켰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생각하는 한국전쟁은 이른바 조국해방전쟁인 것인데, 여기에는 1945년 해방 이후 남한에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표출된 제국주의적 혹은 민족주의적 모순점들이 폭발한 점들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는 한국전쟁을 북한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점에서 해석하기도 했다. 즉 북한의 경우도 그런 맥락에서 한국전쟁을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전쟁의 경우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측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북한이 먼저 일으킨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어찌됐든 그 전쟁 자체는 브루스 커밍스가 지적한 모순점들이 분출하여 전쟁의 상태로 발전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전쟁이 전개된 3년이라는 기간 동안 북한은 미공군의 잔혹하고 야만적인 폭격을 경험했다. 이것은 사실상 일방적인 민간인 학살극에 가까웠다. 미공군이 타격하는 곳들 대다수가 군사시설이 아닌 민간시설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유럽과 태평양에서 사용된 네이팜 폭탄도 북한에 대대적으로 투하했다.

 

미국이 한국전쟁 기간에 투하한 폭탄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본토에 투하한 폭탄량에 최소 3배 이상이었다. 635,000톤이나 되는 폭탄이 북한에 투하됐다. 여기에 북한에 투하된 네이팜 폭탄 3만 톤을 추가하면 665,000톤이 된다. 민간인 사망자도 극심했다. 이런 야만적인 전략 폭격을 계획했던 커티스 르메이의 말에 따르면 대략 100만 명 이상의 북한 민간인이 폭격으로 사망했다. 또한 미국은 한국전쟁 초기 마오쩌둥이 병력을 파견했을 때, 핵폭탄 사용도 고려했었다. 물론 이것은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던 더글라스 맥아더의 독단적인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전쟁의 구도는 국제적인 시각에서 제국주의 대 사회주의적인 구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한국전쟁에 지원군을 보냈던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한반도에서 북진하는 유엔군이 만주에서 공격하고, 대만으로 피신한 장제스 군대가 미군과 연합하여 중국 영토에 상륙작전을 개시하며, 인도차이나에서 식민지 유지를 위해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제국주의 전쟁을 치르던 프랑스가 중국 남부지역을 위협할 것이라 우려했었다. 이러한 구도를 보았을 때, 당연히 북한이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 혹은 민족해방전쟁으로 볼 이유는 충분했던 것이다.

 

미군의 폭격은 극심했고, 이런 민간인 학살은 북한 사람들이 반미적인 정서를 불붙히는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이와 더불어 전쟁 초기 한국 우익 청년단이 저지른 신천 양민 학살사건과 각종 민간인 학살들도 북한사람들의 반미정서를 자극했었다. 이러한 반미정서는 전쟁이 끝난 이후 더 발전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유지되어 온 것이다. 특히나 북한이 전후 재건 이후 군의 현대화에 있어 대공 방어망을 강화했던 이유에는 미군의 야만적인 무차별 폭격도 영향이 컸다. 거기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미국은 북한을 압박하는 정책들을 펴왔으며,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68년 구정 공세로 맥이 빠져 있던 린든 존슨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선제 핵공격을 운운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후 대통령이 된 리처드 닉슨 또한 당연히 북한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0년대 북한은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GDP가 박정희 정권보다 앞섰던 북한은 1980년대부터 경제가 점차 흔들렸고, 동구권 몰락과 더불어 소련이 해체 되면서 경제적으로 위급해졌다. 거기다 홍수를 비롯한 자연재해가 겹치고, UN을 통한 미국의 경제제재가 지속되면서 결국 무수히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 전역을 강타했고, 북한에서 삶의 질이 좋은 평양마저도 고난의 행군으로 고생을 했다. 일각에서는 고난의 행군 책임을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돌리지만, 이러한 책임론은 매우 의미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 사람들의 생각과 전혀 맞아 떨어지지도 않으며 설득력도 매우 부족하다.

 

영화 강철비2에서 나온 것처럼 실제로 북한은 소련 해체 이후 미국과의 수교협정을 요구했다. 여기서 이를 완벽히 무시한 대상은 바로 미국이었다. 거기다 1994년 전쟁 위기에서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소말리아 사태 개입이나 유고 내전 개입처럼 북한과 실질적인 전쟁을 치르려 했다. 아니 베트남 전쟁이나 걸프전쟁처럼 침략전쟁을 실행하고자 했었다. 그 시기 클린턴 정부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했다. 팀스피리트 훈련엔 미군과 한국군 20만이 동원되었고, 평양에 대한 핵폭격 훈련, 원산과 흥남항에 대한 대규모 상륙훈련 등이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대북 도발은 예전부터 미국과 한국이 자주 해오던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선택한 길이 바로 핵무장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있기에 북한이 미국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 북한이 반미주의를 내세우는 것도 앞에서 설명한 역사적인 맥락과 더불어 정치적이고 국제적인 상황 속에서 알 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 이른바 대남도발로 알려진 사건들의 실질적인 원인을 판단해보면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대한 반대급부에서 행해진 일련의 사건들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을 본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나 수구세력들은 이런 빨갱이 새끼라고 하며 욕과 비난을 일삼겠지만, 그들이야 말로 이러한 역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몰역사적 시각을 가진 것이며,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하는 제국주의자들이다. 지난 해 미국과 이란의 전쟁 상태에 갔을 때, 호르무즈 해협에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한국군을 파병해야 한다.” 주장하며, 반전시위를 하던 이들을 빨갱이 혹은 종북이라 운운했던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제국주의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한반도의 긴장관계와 평화수립을 위해선 북한이 왜 이러한 결정을 했고, 왜 이러한 상황에 놓였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이해가 없으면 상호존중과 이해관계 속에서의 평화체제 건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는 통일 세대 - 미래 세대를 위한 북 바로 알기
김이경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고, 내 페친이기도 한 김이경 선생의 <우리는 통일 세대>를 읽었다. 내가 북에 대해 좀 더 북의 관점이나 반공에서 벗어난 관점에서 보고자 했던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였던 것 같다. 애초에 대학교 1학년을 시작하던 2014년은 박근혜 정권 1년차라 시대적 분위기가 극우세력들의 힘을 얻고 있던 시기였다. 그 시점부터 갑자기 뉴라이트에서 마구잡이로 집필한 이승만 미화물이 줄줄이 출간했고, ‘국제시장’, ‘태양의 후예’,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등과 같은 반공정신을 고취시키는 영화나 드라마가 대대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나는 박근혜와 뉴라이트를 싫어하면서도 북한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나마 북한을 보다 이성적인 접근을 하기 시작한 시점은 군복무 말기인 2018년이었다. 그때 읽은 신은미 선생의 책이나,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쓴 책 그리고 브루스 커밍스가 집필한 한국전쟁을 읽으면서 보다 북한을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차원에서 인식하게 되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회담이 개최되던 2019년 초 당시 나는 북미정상회담이 잘 마무리 되면 종전협정과 남북 자주 왕래가 꿈만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쉽게도 협상의 결과는 결렬이었다.

 

비록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는 결렬이었지만, 2018년 평창올림픽부터 시작된 남북화해무드는 이명박근혜 시절 대립과 적대주의로 포장되었던 한반도 정세에 평화라는 한 줌의 희망을 가지게 만든 원동력이었고, 북한을 새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였다. 이런 정세를 거치고 변화를 보면서 나 또한 북한이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싶었고, 실제로 자기검열이라는 차원에서 반북주의를 최대한 배척하고자 많이 노력해왔다. 2년 전 사회학 교수인 김귀옥 교수님의 수업도 북에 대한 그런 편견을 버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전 세계는 이 전무후무한 질병에 발목이 묶인 상태다. 해외여행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시대다. 북한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 초기인 20201월 국경을 원천 봉쇄했다. 따라서 북한을 공식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루트는 죄다 막힌 셈이다. 물론 1월부터 국경을 원천 봉쇄했기에, 북한은 현재도 2021년 새해에 평양에 모여 신년축하행사를 그것도 집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만약에 북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했다면 구호물자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받지 않았다. 그러니까 북한은 현재 내부 시스템 안에서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를 일반적인 한국인들에게 거리낌 없이 하면 이러한 주장을 믿지 않거나 주장을 한 이를 친북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북한이라는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의심하고 본다. 즉 북한이라는 존재는 무조건적으로 나빠야 하고 불행해야 한다는 도그마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기원은 한국이라는 국가가 그 이전부터 반공국가였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물론 민주화를 거치면서 예전만큼의 반공주의는 보편적으로 희석되긴 했지만, 북에대한 인식은 여전히 객관적이지 못하다. 쉽게 말해 우편향적이다. 이러한 영향에는 저자가 주장하듯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등에서 퍼뜨린 거짓뉴스의 영향이 크다. 책에 나온 저자의 주장을 인용하겠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사회이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이상적인 사회도, 절대 나쁜 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북녘을 뿌연 잿빛의 나라, 가난함과 절망이 흐르는 땅으로 알고 있을까?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주의 사회인 북이 살아가는 방식과 문화가 우리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든 차이를 극단적인 이분법, 빨갱이라는 잣대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나라에서 살아온 우리는 사회주의 삶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분단 체제에 편승해서 기득권을 누리며 살아온 수구적폐 세력은 온갖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북을 악마로 만들어왔다. 북 고위층 인사가 처형되었다는 남녘의 언론 보도 후 다시 그들의 건재가 확인되어도 오보를 낸 언론은 반성하기는커녕 정정한 적이 없다.”

 

출처: 우리는 통일 세대 p.7~8

 

저자가 주장처럼 우리가 언론을 통해 받아들이는 북한에 대한 정보는 상당히 서구편향적 혹은 반공적으로 가공되는 정보가 많다. 또한 우리는 북한이라는 대상을 인식할 때, 독재나 굶주림과 같이 미국 부르주아지들이 타국가를 침략할 때 사용하는 말만 번지르르한 구실들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북한이라고 해서 다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접근법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사악한 경제제재의 합리화 논리로 사용된다는 점을 적어도 인지해야 한다 생각한다. 특히나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말이다.

 

책의 제목 우리는 통일 세대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미래의 통일 세대와 현재 통일을 준비하는 세대들에게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한 북한을 알려주고자 책을 쓴 것 같다. 책은 북한 청소년들의 교육과정이나 성장기, 북한 인민들의 일반적인 삶, 북한의 종교활동, 북한의 의료 정책, 북한의 경제 활동 등을 다루고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의 근현대사와 더불어 북한의 문화예술 그리고 부록으로 수도 평양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처음 알기도 했다. 얘를 들면 북한의 김일성 대학 교수들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매주 한 번씩 금요노동을 자발적으로 나간다는 내용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이 점에선 쿠바 혁명 이후 체게바라가 쿠바의 고위직에 있으면서 자발적으로 노동을 했던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심지어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2005년 당시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공학부에 항생제 제작 공장 시설 건설을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저자와 한국의 기술자들이 런닝 바람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분들이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고 한다. 책을 읽은 나 또한 이 부분에서 매우 놀랐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그리고 무상주택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북한의 사회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틀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직까지 북한에는 토착 자본가가 없다. 물론 북한에도 빈부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빈부의 차이가 있지만 돈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돈을 자본의 형태로 투자하여 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한다. 즉 자본가가 없다는 것은 땅, 건물, 공장과 같은 사회의 공공재들이 개인 소유가 아니며, ‘자산소득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별 초과이익은 기업소 노동자들에게 배분된다. 또한 북한의 회사나 사회 시스템은 상명하복식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으로 온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불편함을 겪는 부분이 그런 부분이기도 하다.

 

북한은 쿠바와 더불어 무상의료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 비하면 기술이나 설비부분에서 부족함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틀은 무상의료다. 일례로 의도치않게 탈북하여 한국에 온 김련희씨의 경우 한국 생활 초기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그냥 나왔다가 길거리까지 간호사가 달려와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북에서는 무상의료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1947년부터 사회보험법을 제정하여 일단 노동자와 사무원, 임산부와 3세 미만 아동까지 무상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가던 19531월 무상의료의 범위를 개인상공업자와 개인농을 제외한 전 인민으로 확대했으며, 전후복구를 완수한 1958년에는 개인병원이 완전히 사라졌다.

 

따라서 북한은 무상의료제도를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유지했다. 여기서 얘기하는 무상의료는 진단, 검사, 치료, 수술, 입원 등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 일체를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부담을 국가가 부담한다는 뜻이다. 책 저자에 따르면 북한은 2012년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에 무상의료 체제를 다른 나라의 일반의료 수준으로 올려놓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책에서 흥미로웠던 주제를 얘기하자면 북한의 군대 관련한 얘기다. 대한민국에 사는 남성이라면 무조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한다. 최소한 면제를 받지 않으면 말이다. 우리는 군복무 2년만 해도 사회의 불만이 많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북한은 군복무를 10년씩이나 해도 내부의 불만이 생각보다 없다. 이런 궁금증은 개인적으로 항상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궁금증이 풀렸다. 책에 따르면 북한이 완벽한 징병제라고 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일단 북한에서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일단 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 전문학교 진학자는 졸업 후 모집 대상으로 검토되고 직장에 취업한 지 3년이 넘으면 모집 대상에서 제외된다. 신체검사 불합격자, 적대계층 자녀, 과학기술산업 관련자, 예술교육 종사자, 특수 영재학교 학생, 부모가 고령인 독자 등은 처음부터 제외된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당 간부의 자녀일수록 군 복무가 필수사항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부모가 군 복무를 반대하면 입대할 수 없다고 한다. 즉 이런 점에서 우리하고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인민들이 군대를 인식하는 것도 우리하고는 다르다. 북한에서는 군대가 주민들에게 선망 받는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 인민군의 뿌리가 1932년 만주에서 시작된 항일 유격대에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인민들은 자신들의 군대가 역사적으로 항일투쟁을 했고, 소련, 중국과 더불어 조국해방에 기여했다는 자긍심이 강하다. 이런 점은 현재 중국인민해방군이나 베트남의 베트민이 그 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북한에 대해 정말 다방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쉽고 재밌게 알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책의 그런 점이 좋았다. 하지만 일부 내용들은 신빙성이라는 측면에서 의심이 가는 부분들도 있다. 그런 부분들은 솔직히 학계의 교차검증과 더불어 팩트체크가 필요하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였다. 조선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이 소련군보다 앞서 해방구를 만들었다는 얘기나, 평양의 단군릉 혹은 북측 학계에서 주장하는 대동강 문명 등은 솔직히 역사학을 공부한 나로썬 믿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렇다 해서 책 자체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굳이 책의 내용에 대해 내가 얼마만큼 공감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80%는 공감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아까 전에 지적한 그런 부분은 나머지 20%에 해당한다.

 

부록에서 평양 설명하며 다룬 릉라도의 곱등어관에 대해서도 한번 얘기하자면, 책에는 곱등어란 돌고래의 일종이라고 나온다. 사실 돌고래를 얘기했을 때 떠올리는 대부분의 돌고래는 큰돌고래(혹은 병코 돌고래)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국내에 많이 서식하는 돌고래는 남방큰돌고래인데, 책에 첨부된 사진을 봐서는 남방큰돌고래보단 큰돌고래 그러니까 병코 돌고래 같기도 하다. 개인적인 추측으론 아마 북에서 얘기하는 곱등어는 병코 돌고래를 뜻하는 것 같다.(어디까지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게 나을 것이다.) 한가지 사실을 더 붙이자면 물개쇼에 등장한 물개는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바다사자(강치)가 분명하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책을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북에 있는 느낌도 살짝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남북교류가 형성되면 나 또한 공식적으로 북을 방문해보고 싶다. 그것이 평양이 됐던 개성공단이 됐든 금강산이 됐든 말이다. 아무튼 책 내용이 대체로 좋다. 저자가 한국의 극단적 반공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상당히 공감된다. 나 또한 평양에 놀러 가보고 싶다. 물론 합법적인 선에서 말이다. 여러 종류의 동물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양의 동물원과 곱등어관도 방문하고 싶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항일 유적지도 답사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에 대한 얘기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90년대 당시 북한에서 발행한 몽양 여운형 우표)

 

무릇 인생길에는 곧을 정()자도 있고 갈지()자도 있다고들 말한다그러나 나는 여태 그런 것을 모르고 살아왔으니 행운아였던가 싶다내 나이 고희에 이르러 새삼스레 지나온 나날들을 돌이켜보았다특히 나의 인생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해서 감회 깊이 추억하게 되었다민족 수난의 시기에 태어나 망국의 설움을 안고 파란만장의 풍운을 헤쳐온 나의 아버지 여운형(呂運亨)은 이 나라의 근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수많은 반일 애국 열사의 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해방 후 여러 차례 38도선을 넘어 평양에 와서 김일성(金日成주석을 만나보았다나와 동생 원구는 1946년부터 김 주석 댁에 살면서 공부하였고또 다른 동생 영구도 평양에 와서 대학을 다니다가 한국전쟁 때 죽었다난구 언니와 아저씨(이만규)는 1948년 남북조선 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때 평양에 왔고어머니와 동생 봉구는 전쟁 때 이북으로 왔다결국 우리 가족은 시기와 경로는 달라도 모두 이북에 모여 김주석의 각별한 관심을 받으며 살았다그래서 나는 나와 우리 가족을 감히 김 주석과 한 식솔로 여기는 데 버릇이 들었다.

 

그런데 1994년에 갑자기 김 주석이 별세하였다내 머리에 흰서리 내리도록 주석님 앞에서 응석을 부리며 살아온 지난날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고 내가 오늘까지 곡절도 풍파도 모르고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라온 것이 누구의 덕이었는가를 날이 갈수록 더 깊이 깨닫게 된다그리고 떠나가신 지 반세기가 되었으나 오늘도 영생의 광망(光芒속에 살고 계신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오늘의 시점에서 재조명해 보게 된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현재는 미래를 예언한다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한 생이 보다 값있고 아름답기를 바란다사람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놓고 아버지의 지나간 인생 행로를 파헤쳐 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선뜻 펜을 들었다그러나 정작 쓰자고 보니 어려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워낙 졸문인데다 수집된 자료가 너무 부족했다.

(1970년대 당시 북한의 김일성과 몽양 여운형 선생 가족분들)

 

아버지가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한창 벌이던 젊은 시절에는 내 나이가 너무 어렸고 철이 들어서는 아버지와 함께한 기간이 너무 짧았다내가 알고 있는 자료란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생활 외에 아버지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친지들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가 전부다그것도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많은 것이 유실되고 삭막해졌다아직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더듬고 되살리고 모아서 쓰다 보니 아쉬운 것도 많고 공백도 많다나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 대하여 밝히고 싶다.

 

첫째나의 아버지가 일찍이 독립운동에 발벗고 나섰던 초기부터 풍파 사나운 이국 땅에서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면서도 어떻게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구김새 없이 수행해 나갈 수 있었는가.

 

둘째일제통치의 가장 엄혹하던 시기에 숱한 선각자들과 유명인사들이 독립운동을 외면하고 포기하며 일제에게 아부굴종할 때 아버지만은 독야청청하면서 마지막까지 민족적 지조를 견지하여 나갔는데과연 그러한 힘의 원천그 강의한 신념의 뿌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셋째지난 시기에 나온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글들에서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되고 축소된 것들을 바로잡고 보충하고자 하였다.

 

자식인 내가 인생 황혼기에 아버지의 인생 행로를 더듬어 보게 되는 것은 자못 감회가 깊은 일이다나는 아버지가 길지 않은 인생 길에서 남들보다 곡절도 풍파도 괴로움도 많이 격었지만 뜻을 바로 세우고 끝까지 깨끗하게 열렬하게 산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비록 미숙하나마 이 글이 아버지 여운형의 지향과 포부의지와 염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미흡한 점에 대하여 독자들의 사려 깊은 양해를 빌면서.

 

평양에서

여연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