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여러 해 동안 중국의 정치혁명과 경제혁명을 위하여 투쟁해왔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화혁명을 위해서도 투쟁해왔다. 이 모든 것은 중화민족의 새 사회와 새 국가를 건설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새 사회와 새 국가에는 새 정치, 새 경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새 문화도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정치적으로 억압을 당하며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는 중국을 정치적으로 자유로우며 경제적으로 번영한 중국으로 전환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낡은 문화의 지배로 인하여 우매하고 낙후된 중국을 새 문화에 의한 지배를 통하여 문명되고 선진적인 중국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새 중국을 창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화민족의 새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문화영역에서 우리가 하려고 하는 목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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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전 이래 전국의 인민들에게는 희망찬 기상이 팽배해갔다. 그리하여 모두들 이제는 출로가 생겼다고 생각하며 걱정에 차 있던 표정을 일소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재차 갑자기 높아진 타협적 분위기와 반공에 대한 소문은 전국의 인민을 다시 의혹 속에 잠기게 하였다. 특히 문화인들과 청년학생들은 민감하여 이 점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등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문화가 출판되는 이 시점에서 중국 정치 및 중국 문화의 동향문제를 한번 이야기해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라 생각한다. 문화문제에 있어서 나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이를 한번 연구해보긴 했으나 이제 막 시작했을 따름이다.

 

다행히 연안에 있는 많은 동지들이 이미 이에 관한 상세한 논문들을 많이 썼으므로 나의 변변치 못한 이 글은 단지 개막을 알리는 북소리로 삼아주었으면 좋겠다. 전국의 선진적 문화일꾼들은 우리의 것을 모두 나쁜 것이라고만 하지 말고 1000가지 중에 1가지는 쓸모가 있는 것도 있다고 여기고, 이에 대해 함께 토론하여 정확한 결론을 얻어냄으로써 그것을 우리 민족이 요구하는 데로 적용시켰으면 한다. 과학적 태도란 실사구시를 말하는 것으로서 자기는 옳다고 하여 스스로 스승으로 자처하기 좋아하는그러한 망녕된 태도로써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재난은 지금 극도에 달하였다. 오직 과학적 태도와 책임적인 정신만이 우리 민족을 해방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는 오직 하나뿐이다. 결국 누가 그 진리를 발견하였는가 하는 것은 주관적인 과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실천에 의해서 결정된다. 오직 1100만 인민의 혁명적 실천만이 진리를 검증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중국문화를 출판함에 있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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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공공·보통 선거를 통한 주권 행사에서 비롯된 천부의 권리를 갖고 행동하는 미주 해방지구의 쿠바 국민은 호세 마르티 기념비 옆에서 그를 추모하면서 쿠바 전국국민대회를 열었다. 쿠바 전국국민대회는 우리 아메리카 민중의 의지의 표현인 강령을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1. 저 코스타리카 산호세 선언을 전면 거부한다. 그 선언은 미제국주의 주도 아래 아메리카 대륙의 주권과 존엄성, 각 국가의 민족자결권을 침해한다.

 

2. 쿠바전국국민대회는 남아메리카 모든 민중에 대해 무지막지하고 불법적인 지배를 서슴지 않는 미제국주의를 강력히 비난하는 바이다. 1세기 이상 지속된 침략으로 멕시코, 니카라과, 아이티, 산토도밍고, 쿠바의 대지는 한 번 이상씩 침탈당했고, 텍사스같이 광대하고 자원이 풍부한 땅, 파나마 운하 같은 전략 요충지가 탐욕스러운 제국주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심지어 푸에르토리코처럼 전 영토가 점령지가 되기도 했다. 남아메리카 민중은 미 해병이 우리의 아내와 딸들, 나아가 우리 대륙의 가장 고귀한 선열(그중 한 사람이 호세 마르티다)을 모욕하는 현실을 감내해왔다.

 

우월한 군사력 불평등 조약, 매판 정부의 수치스러운 협조를 통한 지배로 (볼리바르, 이달고, 후아레스, 산 마르틴, 오이긴스, 티라덴테스, 수크레, 마르티 등이 해방하려 했던) 우리 아메리카 대륙은 착취의 대륙, 미국이라는 금융·정치 제국의 뒷마당, 국제기구 표결의 거수기가 되어버렸다. 남아메리카 국가들 중 쿠바는 이 국제기구에서 우리를 무시하는 거칠고 잔인한 북미에게 부담이 되는 괴물로 항상 간주되었다. 쿠바전국국민대회는 남아메리카 정부들이 이러한 제국주의 지배를 받아들임으로써 독립의 이상을 배반하고, 민중들의 주권을 파괴하며, 남아메리카 국가들 간의 진정한 연대를 방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 대륙의 불멸의 선조들을 움직여온 바로 그 해방의 신념으로, 쿠바 국민의 이름으로 그들의 지배를 거부하는 바이며, 그리하여 남아메리카 민중의 희망과 의지를 실현하려 한다.

 

3. 쿠바전국국민대회는 먼로 독트린을 영속화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이 독트린은 호세 마르티의 예측처럼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자들의 아메리카 대륙 지배를 연장하고, 또한 오래전 호세 마르티의 비판처럼 차관, 운하, 철도 등의 독소를 손쉽게 주입하는 데 현재까지도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앞에서 줏대 없는 정부의 굴복이자 아메리카 민족에 대한 미 독점기업의 전횡에 불과한 잘못된 범미주주의(Pan-Americanism)에 반대하여 쿠바전국국민회의는 마르티와 후아레스(Benito Juarez)의 남아메리카주의의 해방을 주창한다. 나아가 전국국민대회는 미국인, 즉 박해받는 지식인, 린치 위협을 받는 흑인, 악당들의 손아귀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우호의 손길을 뻗치며 전 세계의 일부가 아닌 전 세계와 더불어 전진하려는 의지를 재천명하는 바이다.

 

4. 쿠바 전국국민대회는 만약 우리의 조국이 제국주의 군대의 공격을 받는다면 쿠바를 지원하기 위한 소련의 자발적인 행위는 개입이 아니라 공개적인 연대 행위로 간주되어야 함을 천명한다. 미국의 침공이 임박한 상황에서 쿠바에 제공되는 그러한 지원은 소련 정부의 명예를 드높이는 반면, 쿠바에 대한 비겁하고 불법적인 공격은 미국 정부의 명예를 실추시킬 것이다. 따라서 쿠바전국국민대회는 쿠바 영토가 미국의 침공을 받는다면 소련의 미사일 지원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미국과 전 세계 앞에 천명한다.

 

5. 쿠바 전국국민대회는 소련과 중국의 입장에서 대륙의 단합과 통일을 분열시키고 위협하기 위해 쿠바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상황을 이용하려는어떠한 세력도 철저히 거부한다. 첫 번째 사격에서 마지막 사격까지, 폭정을 전복하고 혁명 권력을 쟁취하려는 투쟁 속에서 쓰러져간 첫 번째 순교자로부터 마지막 순교자까지, 쿠바혁명의 첫 번째 강령에서 마지막 강령에 이르기까지, 쿠바 국민은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해왔다. 따라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영속화된 범죄행위와 모욕에 대한 쿠바의 정당한 대응인 쿠바혁명의 성공에 대해 소련 혹은 중국을 비난할 근거는 전혀 없다.

 

그 반대로 쿠바전국국민대회는 아메리카 대륙과 전 세계의 평화와 안보가 미국 정부의 정책에 크게 위협 받고 있다고 믿는다. 미국은 남아메리카 정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정책을 모방하도록 강요하면서 소련과 중국을 고립시키고,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행동으로 개입하며, 중국이 60억 인구를 사실상 대표하고 있는데도 중국을 유엔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한다. 따라서 쿠바전국국민대회는 세계 모든 민족과의 선린정책을 확인하고 특히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수립 의지를 재확인한다. 이 순간 이후 전국국민대회는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그리하여 미7함대에 의해 지탱되는 대만 괴뢰정부와의 관계를 단절하려는 의지를 밝힌다.

 

6. 쿠바 전국국민대회는 남아메리카 민중의 일반여론을 표현한다는 확고한 신념 아래 민주주의는 결코 다음의 것들과 양립할 수 없음을 확인한다. 즉 금융과두제, 흑인에 대한 차별, KKK단의 폭력행위와 양립할 수 없다. 또한 오펜하이머 같은 과학자를 쫓아내고, 폴 로비선의 위대한 음성을 오랫동안 듣지 못하게 하며, 여러 정부와 교황 비오 7세를 포함한 전 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젠버그를 사형에 처하는, 그런 박해와는 양립할 수 없다. 쿠바전국국민대회는 민주주의는 허구적인 결과를 생산하기 위해 부유한 지주와 직업정치인이 장악하는 선거만이 아니라, 민중 중심의 이 국민대회가 지금 실천하는 것처럼 국민의 결정권에 의해 지탱된다는 쿠바인의 신념을 밝힌다. 나아가 민주주의는 대중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진정 자유롭고, 가난한 자가 기아, 사회적 불평등, 문맹, 사법제도에 의해 비참하고 무능한 조재로 전락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남아메리카에 뿌리 내릴 것이다.

 

따라서 쿠바전국국민대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농촌 사람들에게 불행의 원천이 되는 낙후되고 비인간적인 대농장 체제를 비판한다. 이 체제는 대규모 토지를 보유하되 제대로 경작하지도 않고 놀린다. 기아선상의 임금, 비합법적인 특권계급이 저지르는 가혹한 노동 착취에 반대한다. 문맹, 교사·학교·의사·병원의 부재, 아메리카 국가들에 만연한 노인 복지의 빈곤을 개탄하고, 흑인과 인디언에 대한 차별을 반대한다. 여성 차별과 착취를 비판한다. 우리 국민을 헐벗게 하고 민주주의와 주권의 완전한 실현을 가로막는 군사적·정치적 과두체제를 비판한다. 국민의 이익을 무시하는 부정한 거래로 국가의 천연자원을 외국 독점기업에 양도하는 것을 개탄하고, 국민의 정서는 무시한 채 미국에만 우호적인 정부를 비판한다. 과두제 정치와 제국주의 억압자의 이익에 복무하는 언론과 여타 미디어가 국민을 구조적으로 기만하는 행위를 비판한다. 미국의 도구이자 심복, 대리인에 의한 뉴스의 독점을 개탄하고, 단결하면 모든 나라에서 다수인 노동자, 농민, 학생, 지식인이 애국적·사회적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단결하는 것을 가로막는 억압적인 법을 비판한다. 남아메리카에서 자신들의 의도와 이익에 따라 정치를 좌지우지하면서 우리의 자원을 약탈하고, 노동자 농민을 착취하며, 우리 경제의 피를 빨아먹을 뿐 아니라 낙후한 상태를 영구화하는 독점기업과 제국주의자들의 기업을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쿠바전국국민대회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제국주의 금융자본에 의한 저발전국의 착취를 거부한다.

 

따라서 쿠바전국국민대회는 토지에 대한 농민의 권리, 자신들 노동의 산물인 과일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아동의 권리, 의료 혜택과 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는 환자의 권리, 실제 쓸모가 있고 과학적인 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학생의 권리, ‘전적인 인간 존엄성을 누릴 흑인과 인디언의 권리, 시민으로서 사회적·정치적 평등에 대한 여성의 권리, 노후 보장에 대한 노인의 권리, 연구와 작품을 통해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하려는 지식인·예술가·과학자의 권리, 국가의 부와 자원을 회복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독점체의 국유화 권리, 세계 모든 국가와의 자유로운 교역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의 권리, 완전한 주권에 대한 국가의 권리, 요새를 학교로 바꾸고 노동자·농민·학생·지식인·흑인·인디언·여성·청년·노인 등, 억압 받고 착취당하는 모든 자들이 자신의 권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한 무장의 권리 등을 천명한다.

 

7. 쿠바전국국민대회는 자신들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권리를 위한 노동자·농민·학생·지식인·흑인·인디언·청년·여성·노인의 투쟁 의무, 억압 받고 착취당하는 국민의 해방 투쟁 의무, 거리나 지리적 분할과 관계없이 어디에 거주하든 억압 받고 착취당하고 식민화 되고 고통 받는 국민들과 더불어 공동의 대의를 만들어야 할 의무도 주장하는 바이다. 세계의 모든 인류는 형제다!

 

8. 쿠바전국국민대회는 단합되고 영광스러운 남아메리카가 경제를 미제국주의의 풍성한 전리품으로 만들고 있는 속박에서 해방될 것이며, 겁먹은 장관들이 독재자를 따라 천박한 목소리로 합창하는 회의석상에서도 각 지역의 진정한 목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한다고 믿으며 이를 확인한다. 따라서 전국국민대회는 남아메리카 공동의 운명을 위해 투쟁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대륙은 개별 국가의 자유로운 결정과 모든 국가의 공동의 목표에 뿌리내린 진정한 연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된 남아메리카를 향한 이 투쟁에서 공직에 앉아 강탈자 노릇이나 하고 있는 자들은 그저 굴종을 강요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여 석탄과 주석 광산에서, 일반 공장과 설탕 공장에서, 사파타와 산디노의 후손인 로토, 촐로, 가우초, 히바로 등이 자유의 무기를 드는 봉건적 압제에 짓눌리는 토지에서, 시인과 소설가, 학생, 여성, 어린이, 노인과 무력한 자들로부터,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우리 형제들의 이러한 목소리를 향해 쿠바 전국국민대회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죽 우리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쿠바는 실패하지 않는다! 쿠바는 오늘 여기서 남아메리카와 전 세계 앞에 쿠바의 역사적이고 변치 않을 혁명을 천명한다. 조국, 아니면 죽음을!

 

9. 쿠바전국국민대회는 이 선언을 아바나 선언으로 명명할 것을 결의한다.

 

쿠바, 아바나, 미주 해방지구

196092

피델 카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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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곳곳에서 반공의 가면을 쓰고 다른 나라름 침략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곳곳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중남미·아시아·아프리카뿐 아니라 유럽·오세아니아에까지 손을 벌리는 통에,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미국을 달가워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수많은 인민들도 미국을 싫어합니다. 일본도 미국을 싫어합니다. 미국이 자국을 억압하기 때문입니다. 동양에는 미국의 참략을 받지 않은 나라가 한 곳도 없습니다. 미국은 중국 영토인 타이완을 침략했습니다. 개중에는 미국의 동맹국도 있습니다. 인민들이 불만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조차 미국을 싫어합니다.

 

피압박 민족은 모두 독립을 갈망합니다.

 

만물은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큰 세력이 부패하면 새로운 작은 세력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작은 세력이 커지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변화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미제국주의의 큰 세력도 작아질 것입니다. 미국 인민들이 자국 정부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평생이 이런 변화를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우리 중에는 청조시대에 태어난 이도 있고, 1912년 중화민국 건국 이후 태어난 이도 있습니다.

 

청조는 오래 전에 무너졌습니다. 누가 청조를 무너뜨렸을까요? 그것은 손문이 이끄는 당파 인민이었습니다. 순몬의 세력은 매우 작았기 때문에 청조의 관료들은 이들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는여러 차례 봉기를 일으켰으나 그때마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청조를 전복시키고 말았습니다. 큰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큰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으로 바뀔 것입니다. 청나라를 전복시킨 이후 손문은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민의 요구, 예를 들자면 토지와 반제국주의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반혁명을 진압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반혁명 세력이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후에 그는 베이양군벌 사령관 위안스카이에게 패배를 당했습니다. 위안스카이는 손문보다 세력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법칙이 적용되었습니다. 세력이 작더라도 인민과 연대하면 강하며, 세력이 크더라도 인민과 대립하면 약하다는 법칙 말입니다. 이후로 손문의 유산계급민주혁명파는 우리 공산당과 합작하여 위안스카이의 뒤를 이은 군벌 세력을 패퇴시켰습니다.

 

장제스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중국 통치를 승인받았습니다. 22년간 집권하면서 그의 세력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해졌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세력은 보잘것없었습니다. 반혁명 세력을 진압하는 와중에 5만 당원은 1만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적들은 도처에서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법칙이 적용되었습니다. 강대한 적이 실패한 것은 인민과 동떨어졌기 때문이요, 약한 우리가 승리한 것은 인민과 연대하여 인민을 위해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지금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항일전쟁 시기 일본은 막강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국만당 군대는 오지로 밀려났으며, 공산당이 이끄는 무장 세력 또한 적 배후의 농촌에서 유격전을 치를 수 있었을 뿐입니다. 일본은 베이징·텐진·상하이·난징·우한·광저우 등의 대도시를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군국주의는 독일의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몇 년 못 가서 붕괴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퇴각하는 동안, 수십만 병력은 수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장정 25000리 끝에 남은 병력은 25000명뿐이었습니다.

 

공산당의 역사를 살펴보면 좌우 노선 할 것 없이 많은 오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오류는 천두슈의 좌경 노선과 왕밍의 우경 노선이었습니다. 그 밖에 장궈타오·가오강 등도 우경 노선의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오류를 저질렀다고 해서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통해 인민과 당을 교육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일본·미국, 장제스·천두슈·리리산·왕밍·장궈타오·가오강 등 수많은 반면교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면교사에게서 학습하느라 우리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과거에 영국은 우리와 여러 번 전쟁을 벌였습니다. 영국·미국·일본·프랑스·독일·이탈리아·제정러시아·네덜란드 모두 우리의 당덩어리에 군침을 흘렸습니다. 저들은 우리의 반면교사이고, 우리는 저들의 학생입니다.

 

일본에 맞서는 항전의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 군대는 90만 대군으로 발전했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해방전쟁을 치렀습니다. 우리의 총포는 국민당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국민당 군대는 400만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3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가 소탕한 적국의 수는 총 800만에 이릅니다. 국민당은 미제국주의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우리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약한 자가 반드시 승리하는 법입니다.

 

현재 미제국주의가 강하다 하나, 이는 진정으로 강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아주 취약합니다. 대다수의 인민과 동떨어진 탓에,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정부를 싫어합니다. 미국 인민들도 마찬가지로 정부를 싫어합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실제로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 없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겉은 호랑이처럼 보이나 종이로 만들어진 탓에,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합니다. 전체 역사, 즉 인류 계급사회의 수천 년 역사가 입증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강한 것이 약한 것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것입니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제국주의가 멸망해야만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종이호랑이가 쓰러지는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스스로 쓰러지지는 않습니다. 종이호랑이를 무너뜨리려면 비바람이 몰아쳐야 합니다. 우리가 미제국주의를 종이호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략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미국은 대수롭지 않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호랑이는 발톱과 이빨이 있습니다. 이 녀석을 쓰러뜨리려면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려야 합니다. 예컨대 이빨이 열 개 있다면 우선 한 개를 뽑아버립니다. 그러면 아홉 개가 남습니다. 다시 한 개를 뽑아버립니다. 이제 여덟 개가 남습니다. 이빨을 다 뽑아버렸으면 이번에는 발톱 차례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나아간다면 결국 승리를 거두고야 말 것입니다.

 

전략적으로는 완전히 무시합니다. 하지만 전술적으로는 중시하는 것입니다. 이들과 전쟁을 벌일 때에는 매 전투마다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현재 미국의 세력은 강대합니다. 하지만 전체 모습을 폭넓은 시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십시오. 미국과 인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국의 정책을 싫어합니다. 미국은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합니다. 이런 이유로 호랑이는 반드시 거꾸러질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얕잡아 보아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미국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은 철강을 매년 1억톤씩 생산하여 곳곳에서 공격을 일삼고 있습니다. 미국은 철강을 매년 1억 톤씩 생산하여 곳곳에서 공격을 일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과 싸울 때에는 있는 힘을 다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또한 한 번에 하나씩 물리쳐야 합니다. 여기에는 시간이 소요됩니다.

 

상황을 보건대, 라틴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은 끊임없이 미국과 충돌할 것입니다. 이는 비비람이 종이호랑이를 박살낼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미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중남미 국가에서 유럽 출신 백인과 본국의 인디오가 단결해야 합니다.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통치 계급이고, 다른 하나는 피통치 계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압받는 백인들은 토착민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의 벗들, 아시아··아프리카의 벗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하는 일도 같습니다. 우리는 인민을 위해 일하며, 제국주의가 인민을 억압하지 못하도록 노력합니다. 우리의 노력이 성공을 거둔다면 제국주의의 억압을 근본적으로 몰아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동지입니다. 제국주의의 억압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여러분과 우리는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다만 지역, 민족, 그리고 언어가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국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제국주의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납니다. 제국주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습니다. 중국 인민은 제국주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인민 또한 제국주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는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1956714, 마오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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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을 처음 본 순간 놀랄지도 모른다. 사회 개혁이냐 아니면 혁명이냐?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는 사회 개혁에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또는 사회민주주의는 사회혁명, 즉 자신이 최종 목적으로 설정한 현존하는 질서의 전복을 사회개혁에 대립시킬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사회 개혁을 위한, 또 기존의 기반 위에서 노동하는 대중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그리고 민주적 제도를 위한 일상적인 실천 투쟁은 사회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지도하며,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임금체계를 폐지한다는 최종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 사회 개혁과 사회혁명 사이에는 분리될 수 없는 연관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 개혁을 위한 투쟁은 수단이며, 사회혁명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두 계기 간의 대립은 베른슈타인의 이론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는 1896/97년에 <새로운 시대>에 발표한 논문 <사회주의의 여러 문제 Probleme des Sozialismus>에서, 그리고 특히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 Die Voraussetzungen des Sozialismus und die Aufgaben der Sozialdemokratie>라는 책에서 이러한 대립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전체 이론은 실천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의 최종 목표인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반대로 사회 개혁을 계급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만들라는 충고로 귀결될 뿐이다. “최종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나에게는 항상 무이며, 운동이 전부이다라는 베른슈타인의 말은 가장 적절하고 날카롭게 그의 견해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는 유일한 결정적 요소이다. 즉 그것은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및 부르주아 급진주의와 구별하고, 또 전체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질서를 교정하는 한가로운 수선 작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에 반대하여 이것을 지양하는 계급투쟁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유일한 결정적 요소이다. 따라서 베른슈타인이 제기하는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의 문제는 사회민주주의로서는 곧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베른슈타인 및 그의 추종자들과 벌이는 논쟁에서 [이에 대해 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입장을 결정해야만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저러한 투쟁 방식이나 전술 사용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전체 실존에 관한 것이다.

 

[베른슈타인의 이론을 피상적으로 고찰할 경우, 이러한 이야기는 과장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베를슈타인은 가는 곳마다 사회민주주의와 그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 스스로 여러 차례에 걸쳐 거듭 분명하게 자신은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를 단지 다른 형태로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되풀이하지 않는가? 또 현재 사회민주당의 실천을 거의 완전히 인정하고 있다고 확고하게 강조하지 않는가? 물론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옛날부터 이론과 정책의 발전에서 새로운 노선은 비록 내적인 핵심에 있어서 옛것과 완전히 반대될지라도, 옛것에 의지하여 만들어지고, 우선 기존의 형식에 적응하며, 기존의 언어로 말하는 법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로소 새로운 핵심은 과거의 껍데기를 뚫고 나오며, 새로운 노선은 자신의 형식과 언어를 발견한다.

 

과학적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 처음부터 마지막 결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본질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또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명백하고 철저하게 부인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면서도 금세기 인간 정신의 가장 거대한 산물인 마르크스 이론에 전쟁을 선포하려는 사람은 분명히 마르크스 이론에 무의식적으로 경의를 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바로 마르크스 이론의 추종자임을 선언하고, 마르크스 이론 안에서 이 이론을 극복하기 위한 발판을 추구하며, 이러한 투쟁이 마르크스 이론의 발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베른슈타인의 이론에 숨겨진 핵심을 밝혀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 당의 광범위한 산업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위해 긴급하게 필요한 작업이다.

 

이론적 논쟁이 결국 학자들의 일이라는 주장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가장 저열한 모욕이며 악의에 찬 비방이다. 이미라살(Ferdinand Lassalle)이 말했듯이. 학문과 노동자라는 사회의 대립적 극단이 하나로 통합될 때 비로소 두 가지는 모든 문화적 장애를 자신의 무쇠 팔로 질식시켜버릴 것이다. 현대 노동운동의 전체 힘은 이론적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노동자에게 [이 경우] 이중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운동에서 노동자와 이들의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즉 시장으로 운반되는 것은 바로 노동자 자신의 가죽이기 때문이다. 베른슈타인이 공식화한 당내의 기회주의 조류는 당에 침입한 소부르주아 요소에게 지배권을 주고 소부르주아 정신으로 당의 정책과 목표를 변형시키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일 뿐이다. 사회 개혁과 혁명의 문제, 최종 목표와 운동의 문제는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노동운동의 소부르주아적 성격이냐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이냐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기회주의와 벌리은 이론적 논쟁을 가장 생생하고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이 당내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관심사다. 이론적 인식이 단지 당에 있는 소수 학자들의 특권으로 머물러 있는 한, 당내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항상 길을 잘못 들 위험을 안고 있다. 다수의 노동자 대중 스스로 과학적 사회주의의 날카롭고 확실한 무기를 손에 넣을 때 비로소 모든 소부르주아 경향과 기회주의적 흐름은 사라지고 잊혀질 것이다. 그때 운동은 더 확실하고 굳건한 지반 위에 서게 된다.

 

다수의 대중이 그것을 실행할 것이다

 

1899418일 베를린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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