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장차 수립할 공화국은 정치면에서 반드시 신민주주의적이어야 하며 경제적 면에서도 반드시 신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

 

대은행, 대공업, 대상업은 이 공화국의 국가적 소유가 돼야 한다. “본국인 및 외국인의 기업체로서 독점적 성격을 띠었거나 규모가 너무 커서 개인의 힘으로 운영할 수 없는 것, 예컨대 은행, 철도, 항로 등은 국가에서 관리운영하고 사유자본제도로 하여금 국민의 생계를 좌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곧 자본을 절제하는 요지다.” 이 역시 국공합작에 의한 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의 선언에서 선포한 장엄한 성명이며 이것이 곧 신민주주의공화국의 경제구성의 정확한 방침이다. 무산계급 영도하의 신민주주의공화국의 국영경제는 사회주의 성격을 띠며 전반 국민경제에서의 영도적 역량이 된다. 그러나 이 공화국은 자본주의적인 기타의 사유재산을 몰수하지는 않으며 국민의 생계를 좌우하지 못하는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금지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국의 경제가 아직도 매우 낙후되었기 때문이다.

 

이 공화국은 어떤 적절한 방법을 취하여 지주의 토지를 몰수한 후 그것을 땅이 없거나 땅이 적은 농민에게 분여함으로써 토지는 경작하는 자에게라는 손중산 선생의 구호를 실시하여 농촌에 있어서의 봉건적 관계를 일소하고 토지를 농민들의 사유재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농촌에 부농경제가 존재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토지 소유권의 평균의 방침이다. 아 방침의 정확한 구호는 다름 아닌 토지는 경작하는 자에게라는 것이다. 이 단계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아직 사회주의적 농업을 창설하지 않지만 토지는 경작하는 자에게라는 것이 실시된 기초 위에서 발전된 각종 합작경제에는 역시 사회주의적 요소가 내포된다.

 

중국의 경제는 반드시 자본의 절제토지소유권의 평균의 길을 걸어야 한다. 결코 소수인이 사유로해서는 안 되며 결코 소수의 자본가, 소수의 지주가 국민의 생계를 좌우하도록 해서는 안 되고, 결코 구미식의 자본주의 사회를 세워서는 안 되며, 또한 낡은 반봉건적 사회를 존속시켜서도 절대 안 된다. 누구든지 감히 이 방향을 위반하는 자는 틀림없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며 제가 저를 망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혁명의 중국, 항일의 중국에 수립되어야 하며 또 필연적으로 수립하게 될 내부 경제관계다.

이러한 경제가 바로 신민주주의적 경제인 것이다.

그리고 신민주주의적 정치는 바로 이러한 신민주주의적 경제의 집중적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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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의회는 매우 급박한 상황이기는 하나 열정과 신뢰로 가득 찬 가운데 이번 회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항해서 조국을 구하려는 운동이 곳곳에서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에서 모두 커다란 성공을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 간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은 무자비한 전쟁을 획책하여 남베트남의 동포들에게 수많은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간 그들은 미친 듯이 전쟁을 북베트남에까지 확대했습니다. 글들은 1954년의 제네바 협정과 국제법을 무시하고 수백 대의 비행기와 수십 척의 군함을 보내 북베트남을 계속해서 폭격했습니다. 스스로 해적임을 드러낸 채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은 뻔뻔스럽게도 우리나라를 잠식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력으로써 우리 3천만 동포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굴욕적인 패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베트남 인민들은 영웅적인 민족입니다. 지난 10여 년 간 남부의 1,400만 동포들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그들은 빈손으로 일어서서 적에 대항하여 적으로부터 무기를 빼앗아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으며, 줄기찬 공격을 퍼부어 미국 침략자와 반역자들에게 더 큰 패배를 안겨 주고 있으며 그들은 점점 깊은 수렁 속으로 빠뜨리고 있습니다. 패배가 커질수록 그들은 더욱더 미친 듯이 가장 잔인한 수단들, 예를들면 네이팜 폭탄과 독가스 등의 무기들을 동원하여 남부와 동포들을 대량학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광란적으로 북베트남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남베트남에서 수렁속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둑이 거기 서라, 도둑놈아!”하고 소리치는 것이 습관적인 속임수이듯이, 침략자인 미제국주의자들은 철면피하게도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침략했다고 비방해 왔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명백히 제네바 협정의 파과자들입니다. 뻔뻔스럽게도 자신들은 평화회복제네바 협정의 수호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미군을 보냈다고 선언하면서 학살과 파괴를 자행했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명백히 우리나라를 황폐화시키고 우리 인민들을 살해했으며 위선적이게도 자신들은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나라 인민들에게 국가 발전과 생활개선을 위해 10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떠벌리고 있습니다.

 

미 대통령 존슨은 우리 인민을 정복하기 위해 폭력에 호소하겠다고 큰소리치며 위협했습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우리 인민은 절대로 정복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테일러 계획은 좌절되었습니다. 맥나마라 계획 역시 붕괴되었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현재 북베트남에서 수행하려고 애쓰고 있는 확산계획도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수만 명이 넘는 장교와 사병들을 파견하고 더 많은 자신들의 위성국 군대들을 이 범죄적 전쟁에 끌어들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대와 인민은 그들과 싸워 격퇴시키고자 하는 결의에 차 있습니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성명은 그러한 영웅적인 의지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베트남 조국 전선의 호소는 분명히 강철같은 결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지만 전쟁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우리 조국의 자유, 독립, 영토보전을 수호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인민은 자신들의 전투적 우대, 용감성, 창조적 지혜와 세계 인민들의 동정과 지원으로써 반드시 이 위대한 항전을 완전한 승리로 이끌겠다는 확고한 신념에 차 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사회주의 나라들, 특히 소련과 중국, 그리고 가장 잔인한 인류의 적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대한 우리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모든 대륙의 인민들의 우호적인 유대와 헌신적인 도움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며 또 그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미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들에 대항해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인민들에 대해 우리 인민은 부단히 그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성심성의껏 그들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 베트남으로 와서 우리와 동참하려는 의지를 표명한 수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을 뜨겁게 환영합니다. 미국인들은 그들 정부의 선전에 속아 왔습니다. 미 정부는 인민들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강탈하여 전쟁의 구렁텅이에 쏟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수천 명의 미국 젊은이들 그들의 아들과 형제들이 미국으로부터 수천 마일 떨어진 베트남의 전쟁터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거나 처참한 부상을 당해 왔습니다. 지금 미국의 수많은 대중조직과 개인들이 그들의 정부에 대해, 이 불의한 전쟁을 즉각 중단할 것과 남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불구대천의 원수 미제국주의자들을 물리치려는 결의에 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진보적인 미국인들에 대한 우리의 우정을 표합니다.

 

베트남 민주공화국 정부는 다시한번 우리의 확고한 입장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베트남의 독립, 주권, 통일, 그리고 영토 보전을 단호하게 지킬 것입니다. 베트남은 하나이며 베트남 민족도 하나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우리 민족의 이 신성한 권리를 침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제네바 협정을 존중하고 남베트남에서 철수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베트남 전쟁 문제를 해결하고 1954년의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며 인도차이나와 동남아시아 제국의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해결책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미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우리 인민과 정부의 답변입니다.

 

우리 인민들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진영과 제국주의, 식민주의, 신식민주의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 전 세계 인민들의 최전방 지역이라는 크나큰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자신들만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보편적인 자유와 독립,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싸워 왔고 스스로를 희생해 왔습니다. 미제 침략자들과의 전선에서 우리 인민들의 임무는 막중한 것이지만, 또 대단히 영광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미국과 싸워서 나라를 구하는 것이 모든 베트남 애국자들의 가장 신선한 임무입니다. 남베트남 인민의 진정하고 유일한 대표인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지도 아래 남베트남의 영웅적인 인민과 투사들은 더욱 큰 승리를 거두어서 남부를 해방시키고 북부를 수호하기 위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북부의 무장세력과 인민들은 북부를 수호하고 남부를 전심전력으로 지원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는 한편 사회주의 건설에 경쟁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나는 국민의화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성명과 베트남 조국 전선의 호소를 열렬하게 지지할 것을 제의합니다. 남베트남의 영웅적인 우리 동포와 투사들을 열렬히 환영합시다!

 

지금 생산경쟁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새로운 업적을 기록하려고 적에 대항해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북베트남의 우리 무장세력과 인민들에게 뜨거운 축하를 보냅시다!

 

전 인민의 노력배가경쟁운동을 발전시키고, 모든 어려움들을 단호하게 극복하며, 사회주의 북베트남의 건설과 수호, 그리고 남베트남 동포들의 애국적인 투쟁을 전심전력으로 지원하기 위해, 나는 우리 동포와 투사들에게 혁명적 영웅성, 경계심, 투쟁정신을 끊임없이 강화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우리 모두 한 사람처럼 일치단결해서 미제 침략자들을 물리칠 결의를 합시다!

 

우리 조국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우리 인민의 행복을 위해, 전국의 모든 동포와 투사들이여, 용감하게 전진합시다!

 

1965415

호치민의 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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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을 두 개의 역사적 단계로 구분해보면, 제1단계는 신민주주의 혁명이다. 이것은 중국혁명의 새로운 역사적 특성이다. 이 새로운 특성이 중국 내부의 정치적 관계 및 경제적 관계에 있어서는 또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는가? 아래에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설명하기로 하자. 1919년 5·4운동 이전(5·4운동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및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 후에 일어났다)에 있어서 중국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정치지도자는 중국의 소자산계급 및 자산계급(지식계층)이었다. 당시 중국 무산계급은 아직 각성한, 독립적인 계급적 역량으로서 정치무대에 진출하지 못하고 소자산계급 및 자산계급의 추종자로서 혁명에 참가하였다. 예를 들면 신해혁명 때의 무산계급이 바로 이러한 계층에 속하는 것이다.


5·4운동 이후에 있어서 중국의 민족자산계급이 계속 혁명에 참가하기는 하였지만, 중구 자산계급 민주주의혁명의 정치지도자는 중국 자산계급인 것이 아니라 중국 무산계급이었다. 이때 중국 무산계급은 벌써 그자신의 성장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각성한 독립적인 정치역량으로 신속히 전환되었다. 제국주의를 타도하자는 구호와 전반 중국 자산계급 민주주의혁명의 철저한 강령은 중국 공산당이 제기한 것이며 토지혁명은 중국 공산당이 단독으로 수행한 것이다.


중국의 민족자산계급은 식민지, 반식민지적 국가의 자산계급이며 제국주의의 억압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비록 제국주의시대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일정한 시기 및 일정한 정도에서는 의연히 외래 제국주의 및 자국의 관료군벌정부를 반대하는(후자는 예를 들면 신해혁명시기 및 북벌전쟁시기에 있어서) 혁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산계급, 소자산계급과 연합하여 자기들이 반대하려는 적을 반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중국의 자산계급이 제정 러시아의 자산계급과 다른 점이다. 제정 러시아는 벌써 군사봉건적 제국주의로서 남을 침략하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자산계급에게는 아무런 혁명성도 없었다. 제정러시아에 있어서 무산계급의 임무는 자산계급과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중국은 식민지, 반식민지로서 남에게 침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민족자산계급은 일정한 시기와 일정한 정도에서 혁명성도 가지고 있다. 중국에 있어서 무산계급의 임무는 민족자산계급의 이러한 혁명성을 경시하지 말고 그들과 더불어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관료군벌정부를 반대하는 통일전선을 결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식민지, 반식민지의 자산계급이고 경제적 및 정치적으로 매우 연약하기 때문에 다른 한 가지 성질, 즉 혁명의 적에 대한 타협성도 가지고 있다. 중국의 민족자산계급은 혁명할 때에도 제국주의와 완전히 결렬하려 하지 않았으며 또한 농촌에서의 소작료 착취와도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를 철저히 전복하려 하지도 않거니와 철저히 진복시킬 수도 없으며, 봉건세력에 대하여서는 더구나 철저히 전복시키려 하지도 않거니와 철저히 전복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민족자산계급으로서는 중국 자산계급 민주주의혁명의 두 개의 기본문제, 즉 두 개의 큰 기본임무를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당을 대표자로 하는 중국 대자산계급을 본다면 그들은 1927년부터 1937년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줄곧 제국주의의 품안에 안겨 있었으며, 봉건세력과 동맹을 맺고 혁명적 인민을 반대해왔다. 중국의 민족자산계급도 1927년 및 그후의 한 시기 동안은 반혁명을 따르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항일전쟁 과정에서 왕정위를 대표자로 하는 대자산계급의 일부는 또 적에게 투항하여 대자산계급의 새로운 배반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점도 중국 자산계급이 역사상의 구미 각국의 자산계급, 특히 프랑스의 자산계급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구미 각국에 있어서, 특히 프랑스에 있어서는 그들이 혁명적 시대에 처해 있을 당시에 자산계급에게는 비교적 철저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자산계급에게는 이 정도의 철저성 조차 없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혁명에 참가할 가능성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의 적에 대한 타협성이 있는, 이것이 바로 중국 자산계급의 양면성이다. 이러한 양면성은 역사상의 구미 자산계급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있었다. 큰 적이 앞에 닥치면 그들은 노동자, 농민과 연합하여 적을 반대하고 노동자, 농민이 각성하면 그들은 또 적과 연합하여 노동자, 농민이 각성하면 그들은 또 적과 연합하여 노동자, 농민을 반대한다. 이 점은 세계 각국 자산계급들의 일반적인 법칙이다. 다만 중국 자산계급에게 있어서는 이 특성이 더욱 돋보일 따름이다.


중국에서는 인민을 영도하여 제국주의와 봉건세력을 타도할 수 있는 자가 인민의 신임을 얻게 된다는 것이 아주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민들의 철저한 원수가 제국주의와 봉건세력, 특히 제국주의이기 때문이다. 오늘에 있어서는 인민을 영도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민주정치를 실시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인민의 구성원이다. 역사가 실증하는 바와 같이 중국 자산계급은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책임은 무산계급의 어깨에 지워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중국 무산계급, 농민, 지식인 및 기타의 소자산계급은 여하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본적 세력이다. 이미 각성한 자도 있고 지금 각성중에 있는 자도 있는 이 계급들은 필연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구성 및 정권 구성의 기본적 부분이 될 것이며 무산 계급은 영도적 역량이 될 것이다. 지금 창건하려는 중화민주공화국은 오직 무산계급 영도하에서의 반제, 반봉건적인 모든 사람들의 연합독재의 민주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즉 신민주주의공화국이며 또한 진정한 혁명적인 3대 정책을 실시하는 신삼민주의공화국이다.


이러한 신민주주의공화국은 한편으론 구민주주의공화국과 같은 낡은 형태의, 구미식의, 자산계급 독재의 자본주의공화국과는 다르다. 그러한 공화국은 이미 때가 지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그것은 소련식의, 무산계급의 사회주의공화국과도 다르다. 이러한 사회주의공화국은 이미 소련에서 강대해지고 있고 또 각 자본주의국가들에서도 수립될 것이며 장차 틀림없이 공업이 발달한 모든 국가들의 국가 구성 및 정권 구성에 있어서의 지배적인 형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화국은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있어서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들의 혁명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들의 혁명이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있어서 취할 국가형태는 오직 세 번째 형태, 즉 신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형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형태이고 따라서 과도기 적인 형태기는 하지만 또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는 필요한 형태다.


그러므로 전 세계의 여러 가지 국가체제를 그 정권의 계급적 성격에 의하여 구분한다면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즉 자산계급 독재 공화국, 무산계급 독재 공화국, 몇 개 혁명적 계급의 연합독재 공화국이다.


첫째 형태는 구민주주의 국가에 해당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폭발된 오늘에 있어서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민주주의 냄새조차 없어지고 자산계급의 피비린내 나는 국가적 독재로 이미 전환되었거나 전환되어가고 있다. 지주계급 및 자산계급이 연합하여 독재하는 일부 국가들도 이 부류에 넣을 수 있다.


둘째 형태는 현재 소련에서만이 실현되어 있고, 그 외에는 현재 자본주의 제 국가에서 준비하고 있다. 장차 그것은 일정한 기간 동안은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형태가 될 것이다.


셋째 형태는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의 혁명이 취하는 과도적인 국가형태다. 각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의 혁명은 필연적으로 약간의 각각 다른 특성들을 가지게 될 것이지만 그것은 대동소이한 성격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 혁명이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의 혁명이라면 그 국가 구성 및 정권 구성은 기본상 필연적으로 같게 될 것이다. 즉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몇 개의 계급들이 연합하여 공동으로 독재하는 신민주주의국가가 될 것이다. 오늘의 중국에 있어서 이러한 신민주주의적 국가형태는 다름 아닌 항일통일전선의 형태다. 그것은 항일하는 것이고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며 또한 몇 개의 혁명적 계급이 연합하는 것이고 통일전선적인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항전을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공산당이 영도하는 항일민주 근거지를 제외한 기타의 대부분 지역들에서는 아직도 기본적으로 국가의 민주주의화에 관한 사업이 착수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 제국주의는 바로 가장 근본적인 이 약점을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침입하고 있다. 만일 과거의 방침을 변경하지 않는다면 민족의 운명은 매우 위험하게 됐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국체(國體)’ 문제다. 이 국체문제는 청조 말년부터 수십 년 동안이나 논쟁해왔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확실하게 해명되지 못하고 있다. 사실인즉 그것은 단 한 가지 문제, 즉 국가에 있어서 사회 각 계급들이 차지하는 지위를 말하는 것이다. 자산계급은 언제나 이러한 계급적 지위를 은폐하고 ‘국민’이라는 명사를 사용하여 실지로는 자기들 한 계급의 독재를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은폐는 혁명적 인민들에게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니 그들에게 확실하게 밝혀주어야 한다. ‘국민’이라는 명사는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반혁명분자, 민족반역자들은 국민 속에 들지 않는다. 반혁명분자, 민족반역자에 대한 모든 혁명적 계급들의 독재가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다.


“근세 각국의 소위 민권제도는 왕왕 자산계급에게는 독점되어 평민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당의 민권주의는 일반평민이 공유로 하는 것이고 소수인이 사유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1924년 국공합작에 의한 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의 선언에서 선포한 장엄한 성명이다. 지난 16년 동안 국민당 자신이 이 성명을 위반하였으므로 오날과 같이 국난이 심각한 상황으로 조성되었다. 이것은 국민당이 저지른 극히 큰 오류 때문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항일이라는 세례를 받아서 이 오류를 시정하기 바란다.


이밖에 또 ‘정체(政體)’ 문제라는 것이 잇는데, 그것은 정권 구성의 형태문제를 말하는 것이며 일정한 사회적 계급이 어떠한 형태를 취하여 적을 반대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정권기관을 조직하느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적당한 형태의 정권기관이 없이는 국가를 대표할 수 없다. 현재 중국에 있어서는 전국인민대표대회성(省)인민대표대회, 향(鄕)인민대표대회에 이르기까지의 체계를 취할 수 있으며, 각급 대표대회를 통하여 정부를 선거할 수 있다. 그러나 성별, 신앙, 재산, 지식정도 등의 차별이 없는, 진정으로 일반적으로 평등적인 선거제를 실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 내에서의 각 혁명적 계급들의 지위에 적응할 수 있고, 인민의 의사를 표시하고, 혁명투쟁을 지휘하는 데 적응할 수 있으며 신민주주의정신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제도가 곧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다. 오직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를 실시하는 정부라야만 모두 혁명적 인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발휘시킬 수 있으며 혁명의 원수들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할 수 있다. “소수인이 사유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정신은 정부와 군대의 구성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민일 진정한 민주주의 제도가 없다면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인데 이런 것을 가리켜 정체와 국체가 서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국체는 각 혁명적 계급들의 연합독재이고 정체는 민주주의 중앙집권제이다. 이것이 신민주주의의 정치며 신민주주의공화국이며 항일통일전선공화국이며 3대 정책을 실시하는 신삼민주의공화국이며 명실이 부합되는 중화민국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중화민국이란 명칭은 있으나 아직 중화민국다운 내용이 없다. 그러므로 그 명칭에 부합되게 내용을 충실히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과업이다.


이것이 혁명의 중국, 항일의 중국이 수립해야 할 일이며 또 결정적으로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될 내부적 정치관계다. 이것이 ‘건국’ 사업에서의 유일하게 정확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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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의 역사적 특성은 혁명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절차로 구분되는 데 있다. 지금에 있어서 그 첫걸음은 벌써 일반적인 민주주의라는 것이 아니라 중국적인, 특수한 새 형태의 민주주의인 신민주주의다. 그렇다면 그 역사적 특성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것은 100년 전부터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후에 와서 생긴 것인가? 중국과 세계의 역사적 발전을 연구해본다면 이 역사적 특성은 결코 아편전쟁 때부터 있은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와서, 즉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 및 러시아 10월혁명 후에 와서야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제 그 형성과정을 연구해보기로 한다.


중국 현 사회의 성격이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 성격인 이상 그것이 중국혁명을 두 절차로 구분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규정짓고 있다는 것은 아주 명백한 일이다. 첫걸음은 이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형태를 독립적인 민주주의 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걸음은 혁명을 더 발전시켜 사회주의 사회를 창립하는 것이다. 목하 중국의 혁명은 그 첫걸음을 걷고 있는 중이다.


이 첫걸음의 준비단계는 벌써 1840년의 아편전쟁 때부터, 즉 중국사회가 봉건사회로부터 반식민지, 반봉건적 사회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태평천국운동, 중국-프랑스전쟁, 청일전쟁, 무술변법, 신해혁명, 5·4운동, 북벌전쟁, 토지혁명전쟁을 거쳐 오늘의 항일전쟁에 이르기까지 거의 100년이나 걸린 이 많은 개별적 단계들은 어떤 점에서 말한다면 모두가 이 첫걸음을 실천했던 것이며, 중국인민들이 각각의 이들 시기에서 봉건세력을 반대하고 독립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한 것이며 첫걸음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투쟁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해혁명은 보다 더 완전한 의미에서 이 혁명을 개시한 것이다. 이 혁명은 그 사회적 성격으로 본다면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이다. 지금 이 혁명은 아직 완수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계속 더 많은 힘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이 혁명의 적이 아직도 매우 강대하기 때문이다. 손중산 선생이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못하였으니 동지들은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을 두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은 1914년에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이 폭발되고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에 의해 지구의 1/6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창건된 후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그 이전까지 중국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낡은 세계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일부분이었다. 그 이후부터 중국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은 새로운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으며 혁명의 진영으로 말하면 세계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의 일부분이 되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과 맨 처음으로 승리한 사회주의 10월 혁명이 전반 세계의 역사적 방향을 개변시켰으며 전반 세계의 역사적 시대를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 전선이 이미 지구의 한 모퉁이에서 (이 한 모퉁이는 전 세계의 1/6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붕괴되었고 그 나머지 모퉁이에서도 그 부패성이 충분히 발로되고 있는 시대에 있어서, 아직 남아 있는 이러한 자본주의 부분들도 식민지, 반식민지에 더한층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된 시대에 있어서, 사회주의 국가가 이미 창건되었고 또 그가 모든 식민지, 반식민지의 해방운동을 원조하여 투쟁할 것을 선포한 시대에 있어서, 자본주의 국가의 무산계급이 나날이 사회제국주의적 사회민주당의 영향으로부터 해방되어 나오고 있는 동시에 그들이 식민지, 반식민지의 해방운동을 찬조할 것을 선포하고 있는 시대에 있어서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어떠한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에서든지 만일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즉 국제 자산계급을 반대하며 국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더는 낡은 세계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범주에 속하며 더는 낡은 자산계급 및 자본주의적 세계혁명의 일부분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혁명의 일부분 즉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혁명의 일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혁명적인 식민지, 반식민지는 이미 세계 자본주의 반혁명전선의 동맹군으로 간주할 수 없으며, 그것은 벌써 세계 사회주의 혁명 전선의 동맹군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식민지, 반식민지 혁명의 제1단계, 즉 첫걸음은 그 사회적 성격으로 볼 때는 기본상 여전히 자산계급 민주주의적인 것이며 그 객관적 요구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한 길을 닦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혁명은 이미 낡은, 자산계급에 의하여 영도되는, 자본주의 사회 및 자산계급 독재 국가를 건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이 아니라, 새로운 무산계급에 의하여 영도되는 혁명으로써, 제1단계에 있어서는 신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고 각 혁명적 계급들간의 연합독재의 국가를 창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혁명은 또한 사회주의의 발전을 위하여 더욱 광활한 길을 닦아주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은 그 진행과정에 있어서 적정 및 동맹군의 변화로 인하여 또 약간의 단계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그 기본적 성격은 변화되지 않는다.


이러한 혁명은 제국주의를 철저히 타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국주의는 이것을 용서하지 않고 반대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그것을 용서하며 사회주의 국가와 사회주의적 국제 무산계급은 그것을 원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혁명은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 혁명의 일부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중국혁명은 세계혁명의 일부분이다”라는 이 정확한 명제는 1924~1927년의 중국 제1차 대혁명 시기에 이미 제기된 것이다. 이 명제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제기한 것으로서 당시 반제 반봉건적 투쟁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의 찬동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이론의 의의가 아직 전개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문제를 애매모호하게 인식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세계혁명’은 이미 낡은 세계혁명(낡은 자산계급 세계혁명은 이미 끝났다)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혁명이며 사회주의적 세계혁명이다. 마찬가지로 이 ‘일부분’이라는 것은 이미 낡은 자산계급혁명의 일부분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의 일부분이다. 이것은 극히 큰 변화이며 세계적으로나 중국에서나 유사 이래 유례없는 큰 변화이다.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제기한 이 정확한 명제는 스탈린의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스탈린은 일찍이 1918년 10월 혁명 1주년을 기념하여 쓴 자신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0월 혁명의 위대한 세계적 의의는 주로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 첫째, 민족문제의 범위를 확장하여 이것을 유럽에서의 민족적 압박과의 투쟁이라는 부분적 문제로부터 피압박 민족과 식민지 및 반식민지를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일반적 문제로 전환시켰다. 둘째, 서방과 동방의 피압박 민족을 제국주의와 승리적 투쟁의 공동궤도로 끌어들여 그들의 해방을 위한 광범한 가능성과 현실적인 길을 열어놓음으로써 그들의 해방위업을 대단히 쉽게 해주었다. 셋째,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주의적 서방과 예속된 동방 간에 다리를 놓았고, 서방의 무산자들로부터 러시아 혁명을 거쳐 동방의 피압박 민족들에 이르는 세계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새로운 혁명전선을 결성케 하였다.”


이 논문을 발표한 후에 스탈린은 또 식민지, 반식민지 혁명이 낡은 범주를 벗어나서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의 일부분이 된 것에 관한 이론을 여러 차례 거듭 전개하였다. 그중에서도 해석이 가장 분명하고 명확한 것은 스탈린이 1925년 6월 30일에 발표한, 이 논문은 장중실이 번역한 《민족문제에 관한 스탈린의 논술》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 제목은 <다시 한번 민족문제에 대하여>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쎄미치는 스탈린이 1912년 말에 쓴 소책자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 가운데서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그 책에는 “대두하는 자본주의의 조건하에서의 민족적 투쟁은 자산계급들 상호간의 투쟁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는 이문구로써 현 역사적 조건하에서의 민족운동의 사회적 의의를 규정한 자기의 공식이 옳다는 것을 암시하려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의 이 소책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민족문제가 아직 전 세계적 의의를 가진 문제로 생각되지 않던, 또 자결권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기본 요구가 무산계급혁명의 일부분으로가 아니라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일부분으로 평가되던 대인 제국주의 전쟁 전에 쓴 것이다. 따라서 그 이후 국제정세가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것. 또 한편으로는 전쟁과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에서의 10월 혁명이 민족문제를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일부분으로부터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의 일부분으로 전환됐다는 것을 보지 않았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1916년 10월 레닌은 <자결에 관한 토론의 총결>이라는 자기 논문에서 말하기를, “자결권이라는 민족문제의 기본사항은 이제는 일반적 민주주의 운동의 일부분이 되어 있지 않고 그것은 이미 일반적인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의 구성부분으로 변했다”고 하였다. 나는 레닌이나 또 러시아 공산주의의 기타 대표자들이 민족문제에 관한 그 후의 저서들에 대하여서는 더 이상 새삼스레 말하려 하지 않겠다. 모든 것이 그렇다면 러시아에서의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 시기에 쓴 스탈린의 소착재에서 주지하다시피 앞에서 소개한 것을 쎄미치가 인용했다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역사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새 시대, 즉 무산계급혁명의 시대로 들어온 지금에 있어서 어떠한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인용이 가질 수 있는 의의라는 것은 다만 쎄미치가 공간과 시간을 떠나서 산 역사적 환경과는 관련없이 인용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함으로써 그는 변증법의 초보적인 요구도 지키기 않고 있는 것이며, 또한 역사적 환경에서의 옳았던 것이 다른 역사적 환경에 있어서는 옳지 못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치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두 가지 종류의 세계혁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 종류는 자산계급 및 자본주의 범주에 속하는 세계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혁명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그것은 벌써 1914년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이 폭발되었을 때, 특히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때 종결되었다. 그 후부터는 둘째 종류의 세계혁명, 즉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혁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혁명은 자본주의 국가의 무산계급을 그 주력군으로 하며, 식민지, 반식민지의 피압박 민족을 그 동맹군으로 한다. 피압박 민족 내부에 있어서 혁명에 참가하는 그 계급, 정당 또는 개인들이 어떠한 계급, 정당 또는 개인이거나를 막론하고, 또 그들이 이 점을 의식하고 있거나 못하고 있거나를 막론하고, 오직 그들이 제국주의를 반대하기만 한다면 그들의 혁명은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혁명의 일부분이 되며 그들은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혁명의 동맹군이 된다.


오늘에 와서 중국혁명은 그 의의가 한층 더 커졌다. 오늘날은 자본주의 경제적 위기 및 정치적 위기로 말미암아 세계가 나날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는 때이며,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이행하게 될 소련이 전 세계 무산계급 및 피압박 민족을 영도하고 원조하여 제국주의 전쟁에 반항하며, 자본주의적 반동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때이며, 자본주의 국가들의 무산계급이 자본주의를 타도하여 사회주의를 실현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는 때이며, 중국의 무산계급, 농민계급, 지식인 및 기타의 소자산계급들이 중국 공산당의 영도하에 이미 위대한 독립적인 정치적 역량이 형성되고 있는 때이다. 오늘날 이러한 시기에 처해있는 우리로서는 중국혁명의 세계적 의의가 더한층 커졌다고 평가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당연히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국혁명은 세계혁명의 위대한 일부분인 것이다.


중국혁명의 이 첫단계(그것은 또 많은 작은 단계로 구분된다)는 그 사회적 성격으로 말한다면 아직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새 형태의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이지만 이미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혁명의 일부분이 되었고, 현재에 와서는 더욱 이러한 세계혁명의 위대한 일부분이 되었으며, 이러한 세계혁명의 위대한 동맹군이 되었다. 이 혁명의 첫걸음, 즉 제1단계는 결코 중국 자산계급 독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것이 아니고 또 그럴 수도 없으며, 중국 무산계급을 그 영도자로 하는 중국의 각 혁명적 계급들의 연합독재의 신민주주의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이것으로 제1단계에 대한 설명을 마치려고 하며, 이를 다시 제2단계로 발전시켜 중국에다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시키고자 한다. 이것이 목하 진행되고 있는 중국혁명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며, 20년 이래(1919년 5·4운동으로부터 계산해서)의 새로운 혁명과정이며, 목하 중국혁명의 생동하고도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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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화민족의 새로운 문화를 건설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문화란 도데체 어떠한 문화를 말하는 것인가? 일정한 문화(관념형태로서의 문화)는 일정한 사회의 정치와 경제의 반영이며 그것은 또 일정한 사회의 정치와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며 크나큰 작용을 한다. 그리고 경제는 이러한 문화의 토대이며 정치는 경제의 집중적인 표현이 된다. 이것은 문화와 정치, 경제와의 관계 및 정치와 경제와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견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정한 형태의 정치와 경제가 먼저 그 일정한 형태의 문화를 결정하며 그런 다음에야 일정한 형태의 문화가 다시 일정한 형태의 정치와 경제에 영향을 주며 작용을 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이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하였으며, 또 종래의 철학가들은 여러 가지로 세계를 설명하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혁시키는 데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의식과 존재와의 관계문제를 정확히 해명한 과학적 규정이며, 또 그 후 레닌에 의하여 심오하게 전개된 능동적이며 혁명적인 반영론의 기본적 견해이기도 하다. 중국의 문화문제를 토론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이 기본적인 견해를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문제는 아주 명확해진다. 우리가 제거하려는, 중화민족의 그 낡은 문화에 들어 있는 반동적 요소들은 중화민족의 낡은 정치, 낡은 경제와 분리될 수 없으며 우리가 건설하려는 중화민족의 이 새 문화도 역시 중화민족의 새 정치, 새 경제와 분리될 수 없다. 중화민족의 낡은 정치와 낡은 경제는 중화민족의 낡은 문화의 토대이며 중화민족의 새 정치와 새 경제는 중화민족의 새 문화의 토대이다. 그렇다면 중화민족의 낡은 정치와 낡은 경제란 무엇인가? 그리고 중화민족의 낡은 문화란 또 무엇인가? 주나라, 진나라 때부터 중국은 봉건사회였고, 그 정치는 봉건적 정치였으며 그 경제는 봉건적 경제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와 경제의 반영으로서 지배적 지위에 있던 문화는 봉건적 문화였다.

 

외래 자본주의가 중국을 침략하여 중국사회 내부에서 자본주의적 요소가 점차 생장하게 되면서부터 중국은 식민지, 반봉건적 사회로 점차 전환하게 되었다. 오늘의 중국은 일본 점령구에 있어서는 식민지사회이고 국민당 통치지구하에 있어서는 아직 기본적으로 반식민지 사회이며, 일본 점령구거나 국민당 통치기구거나 할 것 없이 그것은 다 봉건적, 반봉건적 제도가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다. 이것이 목하 중국사회의 성격이며 중국의 실정이다. 지배라는 측면에서 말한다면 이러한 사회의 정치는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 정치이고, 경제는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 경제며 이러한 정치 및 경제의 반영으로서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문화는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 문화다.

 

이러한 지배적인 정치, 경제 및 문화 형태가 바로 우리 혁명의 대상이다. 우리가 제거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낡은 정치와 낡은 경제이며, 또 이러한 낡은 정치, 낡은 경제에 복무하고 있는 낡은 문화다. 그리고 우리가 건설하려는 것은 이와 정반대되는 것으로서 그것은 중화민족의 새 정치, 새 경제, 새 문화다. 그러면 중화민족의 새 정치, 새 경제란 무엇이며 중화민족의 새 문화란 또 무엇인가?

 

중국혁명의 역사적 행적은 반드시 두 개의 행보로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 번째 행보는 민주주의 혁명이며, 그 다음 행보는 사회주의 혁명이다. 그것은 성격이 다른 두 개의 혁명과정이다. 그리고 지금에 있어서 민주주의라는 것은 이미 낡은 범주에 속하는 민주주의, 구민주주의가 아니라 새 범주에 속하는 민주주의, 신민주주의다. 이로부터 중화민족의 새 정치라는 것은 신민주주의적 정치며 중화민족의 새 경제라는 것은 신민주주의적 경제며 중화민족의 새 문화라는 것은 신민주주의적 문화라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

 

이것이 목하 중국혁명의 역사적 특성이다. 중국에서 혁명에 종사하는 모든 정당, 모든 사람들이 이 역사적 특성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이 혁명을 지도할 수 없고 이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그는 인민들에게 버림을 받아 한족 구석으로 가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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