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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모아 - [할인행사]
테리 조지 감독, 에이미 메디건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고 이 리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개봉하던 1998년 베트남 전쟁 관련한 한 영화가 개봉했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초 남베트남에서 미군사고문단을 지냈던 ‘존 폴 밴(John Paul Vann)’이라는 인물의 일생을 영화화 한 것으로 종군기자 ‘닐 시핸(Neil Sheehan)’이 쓴 ‘밝게 빛나는 거짓말(A Bright Shinning Lie)’라는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바로 ‘크레모아(A Bright Shinning Lie 1998)’다. 왜 국내에선 영화 이름이 크레모아로 번역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레티비에 있길래 한번 감상했다.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인 ‘존 폴 밴(John Paul Vann)’의 장례식부터 시작한다. 장례식에서 존 폴 밴에 대해 설명하는 나레이션이 나오더니 냉전 초기 전 세계적으로 있었던 사건(마릴린 먼로나 인공위성 발사,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유리 가가린의 모스크바 방문, 무하마드 알리 등)들이 영상속에서 흘러나오며, 미군 장교들과 건배를 나누는 주인공의 모습부터 시작한다. 거기서 외치는 밴의 대사는 “여러분 서베를린으로, 내년에는 모스크바로”라는 대사를 외친다. 이 대사에서 밴은 미국의 가치를 믿는 미국주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베트남에 군사고문단으로 배치된 밴은 남베트남군과 함께 여러 군사작전을 전개해 나간다. 그는 부패한 남베트남군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전략전술을 구사하도록 진심으로 돕고 싶어 하지만, 워낙 부정부패가 심각한 남베트남군은 밴의 충고와 조언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나 1963년 밴이 비행기를 탄 채로 작전을 지휘했던 압박 전투에서 남베트남군의 무능한 모습은 여실히 드러난다. 최신식 전투헬기와 수송헬기 15대와 APC 장갑 차량 10대 그리고 수천 명의 병사를 동원한 남베트남측 동원된 전투에서 무기나 화력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200~300명의 베트콩에게 아주 처참하게 패배하는데, 여기서 문제의식을 느낀 밴은 농민들이 왜 베트콩을 지원하는지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다.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밴은 남베트남군의 무능과 부패를 본국에 폭로하고자 했지만, 남베트남에서 비밀스런 작전을 전개하던 밴의 군 사령관은 그를 다시 본국으로 보낸다. 그것과는 별개로 밴은 미국에 아내와 여러 명의 자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베트남 여학생과 사랑에 빠져 바람을 일삼는다. 귀국한 이후 그의 바람행위에 와이프는 질타하고 경고하지만, 그의 바람기는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있었고, 결국 남베트남 길거리에서 만난 어떤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져 임신시키고 결혼식까지 올리게 되며 미국에 있는 가족과 해어지기까지 한다. 그의 과거는 참으로 처참했다. 밴의 어머니는 매춘부였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살아왔다. 결국 이런 배경이 그의 바람행위에 영향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본국으로 귀국한 밴은 미군 지휘부 인사들에게 자신이 찾게 된 미국과 남베트남군의 문제점을 직시한다. 그가 보기에 호치민과 보 응우옌 잡 같은 인물들은 농민들에게 정당한 토지를 분배하기로 약속한 인물들이었고, 남베트남 농민들에게 있어 베트콩은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세력이었던 것이다. 그는 베트콩이 농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정강정책을 내세우고 있고, 반면 이점에서 아무런 도움이 없는 미국이나 남베트남측은 지지를 얻지 못한 다는 점을 아주 명확하게 파악했다. 또한 그는 미국이 생각하는 데로 베트남 전쟁이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를 자신이 아는 기자에게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베트남에 대한 사실적인 분석과는 달리 미국입장을 대변하는 결론을 지었다. 그는 이들의 지지를 베트콩이 아닌 미국과 그의 동맹 측으로 바꿔 전세를 역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1960년대 중반 그는 베트남에서 민간 선무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인물이 되는데, 여기서 자신의 베트남 비젼을 마을에 실현시키고자 했다. 거기서 그는 낡은 마을과 학교에 있는 나이든 여교사와 초등학생 아이들을 위해, 낡은 건물을 고쳐주고 사탕과 물자를 공급해준다. 하지만 이런 밴의 행동은 그 지역을 담당하던 남베트남군 지휘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부패한 남베트남군 장교는 그 지역을 베트콩 출몰지역으로 규정한 뒤 마을을 네이팜 폭탄으로 폭격해버린다. 결국 그 폭격으로 마을은 파괴되고, 애꿎은 민간인들이 죽게되며 밴이 지원했던 초등학교의 학생들 또한 폭격으로 죽게 된다.
이후 밴은 베트남에서 전투를 치르게 되는데, 한 늙은 베트콩 여성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알고보니 그 여성은 과거 밴이 지원했던 학교의 교사였다. 이걸 목격한 밴의 동료는 “우리가 애꿎은 민간인들을 베트콩으로 만들고 있어. 저 여자는 그 일만 아니었으면 베트콩이 되지 않았을 거야”라고 하며, 베트남을 떠난다. 1968년 구정공세가 시작되는 당시에도 베트남에 남에 군생활을 계속한 밴은 군에서 높은 직종을 맞게 되고, 본국에서 반전시위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전투에 임한다. 결국 존 폴 밴은 1972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되고, 콘툼 성 전투에서 사망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존 폴 밴의 행동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베트남 전쟁의 본질을 상당히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동맹군인 남베트남이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오히려 이에 맞서는 베트콩은 일본과 프랑스에 싸웠던 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영화 초반에 “야 그 국(Gook, 동양인 비하 단어다.)들이 프랑스을 무찔렀어”라고 한다. 그는 압박 전투에서 남베트남군이 소수의 베트콩에게 참패하는 것을 지켜봤고, 베트남 전쟁 승리 대안으로 농민지지 획득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도와줬던 한 여교사가 남베트남군이 저지른 학살행위를 보고 베트콩이 된 것을 봤다. 하지만 그는 절대적으로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 숭리를 추구했다.
그렇다면 왜 밴이라는 인물은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알면서도 미국편에 서서 싸웠던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존 폴 밴이 가지고 있던 미국주의라는 사상에 있다고 본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 전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었다. 그는 미국이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구심점으로서 필요하다면 미국이 개입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작중 초반에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남베트남측의 보도가 나오는데, 그는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시켰다”는 보도를 듣고 아주 열광한다. 글 초반에 언급한 바와 같이 그는 농담으로 “내년에는 모스크바에서”라는 구호를 건배구호로 사용했다. 이는 마치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을 보내는 조진웅이 “탱크밀고 평양까지 가야지”라는 구호를 연상시키기 까지 한다. 즉 밴의 이데올로기에는 기본적으로 반공주의를 바탕으로한 미국주의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밴이라는 인물의 치명적인 한계와 실책이 아주 명확히 보였다. 심지어 그는 대니얼 엘즈버그가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것을 들었음에도 자신과 친한 기자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공감하지 않는다. 반공주의라는 사상이 결국은 최악의 실수인 베트남 전쟁이라는 수렁에서 그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이게 바로 반공과 미국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의 한계다. 영화 크레모아는 존 폴 밴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이 저지른 베트남 전쟁의 실책을 꽤나 잘 파악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주의를 향한 존 폴 밴의 투지에 감명 받아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존 폴 밴은 미국입장에서 보면 애국자이기 때문이다. 영화 크레모아는 미국주의자의 치부를 파악하기 매우 좋은 영화였던 것 같다. 결국 그러한 잘못된 믿음과 신념이 베트남 전쟁이라는 냉전 최악의 대학살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깨달아야 하는 교훈은 반공주의와 미국 우월주의의 한계와 치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