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전트빌
씨넥서스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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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 이 영화 리뷰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학기 수업시간에 정말 재밌게 보았던 영화가 있다. 그 영화는 게리 로스 감독이 제작한 영화 플레전트 빌(pleasantville)이다. 학교 수업시간에 정말 재밌게 본 영화롸 어제 다시 텔레비젼에서 찾아서 감상했다. 영화 플레전트 빌은 흑백과 컬러 화면을 통해 1950년대 미국 사회를 고찰해본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데이빗과 제니퍼는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남매인데, 데이빗은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티비 프로그램인 ‘플레전트 빌’의 펜이고, 데이빗의 여동생 제니퍼는 학교서 담배나 피며 불량한 남학생이나 꼬시는 방탕한 생활에 찌들어 있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날 제니퍼와 데이빗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티비 채널을 보기 위해 리모컨을 가지고 싸우게 되는데, 어떤 티비 수리공 할아버지가 준 리모컨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다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플레전트 빌 프로그램으로 들어가게 된다.

(플레전트 빌 영화 표지)


데이빗과 제니퍼는 소위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플레전트 빌 속에서 배우로 출연하게 되는데, 그들이 보게 된 플레전트 빌은 희망과 행복 그리고 풍요와 번영이 넘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 세계의 문제점은 모든 것이 다 흑백이었고, 사람들은 플레전트 빌 밖의 세상을 모르고 있으며, 그 세계 도서관에 있는 책들과 교과서는 백지상태다. 또한, 성적으로도 굉장히 보수적인 사회여서 섹스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1950년대 미국 사회인 플레전트 빌로 가게 된 데이빗과 제니퍼 남매)


(풍요로운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데이빗과 제니퍼의 엄마)


그러나 플레전트 빌 세상도 데이빗과 제니퍼가 살게되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 변화의 시작은 여동생 제니퍼가 프로그램 상에서 자기를 좋아하는 어느 남자친구와 소위 ‘연인의 호수’에 가서 즐거운 성관계를 맺으면서 시작된다. 애초에 섹스라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던 제니퍼의 남친은 자신의 몸에 변화가 생긴 것에 충격받았고 그런 변화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제니퍼의 남친은 깨닫게 되는데, 흑백이었던 세상에 존재하던 장미꽃 하나가 흑백에서 붉은색을 띄게 된다.

(제니퍼의 남자친구, 그는 제니퍼와의 성관계를 통해 변화를 깨닫게 된다.)


(제니퍼의 설명에 따라 목욕탕에서 자위하는 엄마)


제니퍼와 그의 남친이 성관계를 맺은 이후 연인의 호수는 단순히 손을 잡고 애틋함을 느끼는 장소을 넘어서 남녀가 진정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몸으로 교감하는 장소로 변모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변화는 플레전트 빌 전역에 퍼지게 된다. 플레전트 빌 세상에선 남녀가 침대를 공유하지 않는데, 남녀가 같이 잠자리를 공유하는 침대가 상점에 나타나고, 사랑을 나눈 사람들 중 일부는 색깔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뀐다. 항상 맑은 날씨만 유지하던 플레전트 빌에는 난생처음으로 비가 내리는 일이 생겼고, 도서관에 있던 책들은 백지상태에서 사람의 의지에 따라 글씨가 나타나게 되며, 고양이만 구출하던 소방관들은 난생처음 화재진압이라는 것을 하게 되며 변하게 된다. 또한 남편에게 호화로운 밥상을 차려주던 여성들 중 일부는 자아를 찾게 되어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이를 거부한다. 데이빗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흑백으로 돌아오라고 부탁을 하지만, 내면의 자아를 깨달은 데이빗의 어머니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변화한 연인의 호수, 이 처럼 플레전트 빌은 컬러화 되간다)


(난생 처음 비를 맞아본 플레전트 빌 연인들)


이러한 변화를 겪게 되는 사람들은 흑백에서 컬러로 변하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않고 흑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컬러쪽 사람들에게 불리한 법안을 마련하고, 소위 전통을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컬러쪽 사람들의 가치관 및 표현을 제한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컬러쪽 사람들이 듣는 흥겹고 도전적인 노래들을 금지한다든지, 글씨가 들어가 있는 책들은 금서로 지정한다든지 뭐 그런 것들이다. 흑백쪽 사람들은 컬러쪽 사람들의 예술작품이나 존재 자체를 멸시하거나, 위협하는 모습을 보인다. 데이빗이 일하는 식당의 주인은 데이빗의 엄마랑 사랑에 빠지게 되어 성관계를 맺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누드화를 그렸는데, 그 누드화 그림은 흑백쪽 사람들에 의해 박살이 나버리고, 식당도 난장판이 돼버린다.

(컬러화 된 데이빗의 여자친구, 사랑을 통해 컬러화 되었다.)


플레전트 빌에서 살게 된 데이빗은 티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플레전트 빌을 “부랑자도 없고 풍요와 번영 행복이 넘치는 세상”이라고 하며 극찬하며 그 세상을 동경했지만, 플레전트 빌 세상의 문제점을 느끼게 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상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야할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소녀와의 사랑을 통해 데이빗 또한 컬러화 되가는 플레전트 빌에 적응하게 되고, 그러한 인간 내면의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본인 또한 컬러화 된다. 그리고 그는 컬러화 된 여친이 흑백화 된 불량배들에게 유색인종이라 놀림을 받는 것까지 목격한다.

(컬러화 되버린 엄마, 그는 결국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흑백이었던 플레전트 빌이 컬러로 도색이 되며 흑백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그러면서 영화 또한 막을 내린다. 영화 플레전트 빌이 보여주는 1950년대 미국은 소위 보수주의자들에게 있어선 이상적인 사회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재건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없었던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 속에서 1920년대를 능가하는 풍요와 호황을 누렸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호황을 누렸던 1950년대 미국 사회에는 소위 중산층들이 늘어났고, 그런 중산층들은 넓은 마당을 가진 주택에서 살며 자동차를 최소 2~3대 이상이나 보유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의 보급도 늘어 1957년에는 대략 4000만 대의 텔레비전이 미국인들에게 보급되었다. 소비재 생산도 굉장히 많이 늘어 미국의 중산층 가정들은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풍요는 당연히 미국의 중산층들에게만 해당한 얘기였다. 미국 사회에서 하층계급이었던 흑인이나 유색인종 노동자들은 빈곤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멸시나 차별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소련과 체제 경쟁을 했던 미국 사회는 사상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 시기에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소위 ‘빨갱이(Commie)’로 낙인찍혀 사회적 활동이 제한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 미국의 정치인들은 소위 전통이나 보수적인 가치를 내세우며 국가에 대한 충성과 자본주의의 우월함을 국민에게 강요하고 세뇌했다. 즉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던 게 바로 1950년대 미국 사회라 할 수 있다.


영화 플레전트 빌은 1950년대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소위 전통주의와 보수주의의 문제점을 사랑 및 내면의 깨달음이라는 것을 통해 색채화 함으로써 아주 천재적으로 묘사했다. 쉽게 말해 영화 플레전트 빌은 흑백화면을 통해 그런 문제들을 아주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영화 상에서 등장하는 남녀간의 섹스에 대한 인식은 미국의 전통주의 내지는 보수주의적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글씨가 담긴 책들을 금지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에 반대되는 책들을 불에 태우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당시 미국에 만연해있던 보수주의자들의 편협한 시각과 반공주의적 관점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 흑백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컬러화된 사람들을 유색인종 내지는 ‘컬러(Colored)’라고 표현하는 것은 1950년대의 인종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플레전트 빌에 사는 사람들 중에 흑인이나 히스패닉 그리고 동양인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았을 때, 영화 플레전트 빌은 컬러화 과정을 통해 1950년대 미국사회가 가지고 있던 성적 보수주의, 전통주의, 반공주의 그리고 인종차별을 아주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데이빗과 제니퍼, 그들은 완벽히 컬러화 된 플레전트 빌을 보게 된다.)


영화를 다시 한번 감상하며 흑백에서 컬러로 색깔을 바꾸는 장면들에서 영화감독의 천재성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런 명작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플레전트 빌은 찾아보기 힘든 명작이다. 영화 플레전트 빌을 보다보면 자본주의적 물질적 풍요로움이 과연 절대적 진리인가를 깊게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 플레전트 빌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물질적 풍요와 소비의 즐거움 그리고 전통이라는 것 보다 인간적인 내면적 성찰의 깨달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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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Parasite (기생충) (2020 골든글로브 영화상 수상작)(봉준호 감독 작품)(지역코드1)(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Universal Studios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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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리뷰는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필자는 지난 7월 영화관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감상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상당한 호평이 많았기에 필자는 내심 기대했었고, 정말 감명깊게 영화를 감상했다. 봉준호 감독의 다른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 영화는 해피엔딩 따위를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실존하는 현실 사회를 아주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다.

영화 상에선 대조적인 삶을 사는 두 집안을 보여준다. 한 집안은 넓은 마당을 소유한 대 저택에서 살지만, 다른 집안은 환풍도 되지 않는 반지하에서 산다. 이런 대조적인 삶을 보여줌으로써 영화 기생충은 현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빈부격차의 문제를 아주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 영화의 의도와는 별개로 정말 재미있는 요소라 할만한 것은 영화의 결말이 예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상에선 반지하 사는 집안이 기존에 일하던 가정부를 내쫓은 이후 자신들의 정체를 그 가정부에게 들키게 되는데, 그 부분에서 부터 영화의 결말이 어디로 갈지 예상되지 않고, 그들(반지하 집안과 가정부)의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결말이 나오게 될건지도 예측하기 힘들었다. 영화 상에서 반지하 집안의 장남이 캐나다로 유학간 친구를 대신하여 그 집안의 수능 영어 과외 선생으로 취직했을 때, 집안에 있는 한 그림을 보고 ‘침팬지 혹은 오랑우탄‘아니냐고 답변했지만, 알고보니 그 그림에 엄청난 반전이 담겨있어 보는이를 소름끼치게 했다.

필자가 영화 기생충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대저택에 사는 부유층의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반지하에서 살던 가족들이 기존의 가정부를 의도적으로 해고시키게 만든 이후 영화에선 개판 5분전이 된 부유층 집안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부유층들은 자신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았다. 영화 기생충에서 나온 부유층들이 보여준 또 다른 하나의 무능함은 부유층들 끼리 가족여행을 갔을때 여실히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행마저도 하층계급의 도움없이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떠난지 하루도 안되어 하층계급이 챙겨주는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재벌집에 붙어서 출세를 위해 거짓말까지 사용해가며 살아가는 그들을 ‘기생충‘이라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필자는 무슨 선민의식에서 인지는 몰라도 그들을 잘해주는 척 하면서 은근 깔보는 그들이야 말로 기생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위에서 상술했듯이 영화상에서 그들이 없으면 부르주아 집안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놀러가서 놀지도 못하고, 집안 청소도 못하며, 음식도 해먹지 못하고, 자식 교육도 못한다. 즉 그런맥락에서 봤을때 영화 기생충에서 나온 부르주아 집안이야 말로 실제로는 하층계급에게 기생하며 정작 자신들 끼리는 기본적인거 조차 못하는 기생충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더 얘기하자면 필자는 영화 초반에 나오는 반지하 집안을 보며, 이것은 절대로 허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과거 소방서 공익 시절 구급출동을 하면 필자는 그렇게 통풍도 안되고 습기먹어 집안에 곰팡이가 들끍어 반지하 냄새가 아주 많이 나는 가정을 여러번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의 반지하 가정은 지금도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자 문제점이다. 영화 기생충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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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11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관점도 새롭습니다ㅋㅋ 계층론 아닌 계급론으로.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분야에서 할 말 많게 만드는 영화가 잘 만든 영화인 것 같습니다.

NamGiKim 2020-02-11 10:28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창의성과 천재성이 드러나는 작품이었습니다.
 
Danger Close: The Battle of Long Tan, Now a Major Motion Picture (Paperback)
Bob Grandin / Allen & Unwin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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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보고싶었던 영화 한편을 감상했다. 그 영화는 베트남 전쟁 당시 호주군을 주연으로 한 영화로 전투에서 승리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 영화가 바로 <댄저 클로즈: 롱탄 대전투>다.

사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호주와 뉴질랜드는 베트남 전쟁 당시 전투 병력을 파병했던 국가 중 하나다. 호주 또한 미국이 만들어낸 도미노 이론을 철썩같이 믿었고, 그런 반공적 믿음은 베트남 전쟁 파병으로 이어졌다. 호주는 미국과 한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그들은 주로 남베트남의 남부에서 작전을 전개했었고, 영화에서 나오는 롱탄 대전투 또한 수도 사이공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영화에 대해 얘기하자면, 영화를 제작한 측에서 전투 재현 및 고증에 충실하고자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등장하는 인물들 거의다 실존인물이고, 항공기, 대포, 네이팜 폭탄, APC 장갑차등 등장시킬 수 있는 장비는 최대한 등장시켰다. 비록 12세 이상 관람이다 보니 잔혹한 장면은 없었지만, 위워 솔져스 그 이상으로 전투씬이 훌륭했다.

무엇보다 영화상에 있는 호주군들은 혼자서 몰려오는 적들을 죽이는 느낌이 아니라 병사 하나 하나가 서로 협력하며 공격을 차례 차례 방어하며 버티는 느낌이었다. 예를들면 탄약 확인해가며 조준사격으로 한발씩 쏜다든지, 베트콩들이 무조건 적으로만 죽지는 않는다는지 하는 것이 바로 그러했다. 이런점은 역사 고증은 무시하고 전투에 대한 과장 및 왜곡으로 얼룩진 봉오동이나 장사리하고는 질적으로 다른것이 느껴졌다.(물론 딱 한번 베트콩이 독일제 Stg 44를 사용하는게 포착되었지만, 대다수가 AK-47을 사용했으니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 고증은 좋았지만 이 영화는 매우 치명적인 결점 및 비판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호주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미화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된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침략으로 일어난 제국주의적 전쟁 범죄였다. 그리고 침략국은 패배했다. 그런 패배한 전쟁과 명분조차 없던 전쟁을 단순히 애국주의로 포장하는 것은 영화 제작자들의 의도가 참으로 좋지 않았다 할 수 있다. 영화상에서 호주군 병사들이 베트콩으로 부터 포격을 받고 난 뒤 이런 대사를 한다.

호주군1: 적은 또 언제 공격해올까요?

호주군2: 어제 그 공격은 우리 간을 보기 위한 테스트였어! 즉 우리 기지를 점령하기 위해 그랬던 것지.

호주군2: 너 디엔비엔푸 전투 들어봤어?

호주군1: 아뇨 들어본적 없어요.

호주군2: 알지 않는게 좋을거야!

디엔비엔푸 전투에 대해 알지 않는 것이 좋다고 얘기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가 베트남 전쟁의 본질적 문제는 아예 숨기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그만큼 이 영화는 반공적 시각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영화상에서 병사들은 ˝역사가 우리를 기억하겠지?˝ 따위의 소리를 한다.

1966년 호주군과 뉴질랜드군이 싸웠던 이 전투에서 호주군 18명이 전사했고, 베트콩은 200명 이상이 전사했다. 그 이유는 호주군이 전투기 대포 APC 장갑차등 동원할 수 있는 화력은 최대한 퍼부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호주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아니고, 남베트남 민중의 민심을 얻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영화를 볼 때 생각해야할 부분은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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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 스토리북 미포함
앤드류 스탠튼 감독 / 월트디즈니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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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 이 리뷰는 영화 Wall-E에 대한 스포일러를 아주 가득히 담고 있습니다.)

 

1. 들어가며

(영화 Wall-E)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8년 필자는 아주 재밌는 영화 하나를 봤다. 그 영화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만화로, 지금으로부터 800년 뒤인 미래를 다룬 영화였고, 필자는 아주 감명 깊게 보았다. 그 영화가 바로 Wall-E. 지난 목요일 필자는 학교에서 그 영화를 보게 되었고, 그 영화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은 필자가 보고 해석한 Wall-E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2. Wall-E의 스토리

(지금으로 부터 800년 뒤인 지구는 인류가 남긴 쓰레기들로 덮여 황폐해졌다.)  

  

영화 Wall-E는 지금으로부터 800년 뒤인 지구에서 인간이 남기고 떠난 버린 쓰레기들을 정리하며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살고있는 한 로봇의 일생을 다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인 22세기 인류는 지구의 대기오염과 넘처나는 쓰레기를 해결하기 만든 쓰레기 정리용 기계를 대량생산 하고 우주로 떠났다. 주인공인 Wall-E도 그 로봇들 중 하나였고,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대략 700년간 지구에 남은 쓰레기들을 정리해가며 살아갔다. 우주로 떠나기 전 인간은 지구를 완벽히 망가뜨려 놓았다고 볼 수 있는데, 정말이지 식물이라곤 하나도 안보일 정도로 지구는 황폐해져 있었다. 그런 환경속에서 주인공인 Wall-E는 애완용인 바퀴벌레 1마리랑 쓰레기를 치워가며 살고 있었다

(그런 지구에서 쓰레기를 수거하여 탑을 쌓고 있는 월-E)   

 

그러던 어느날 Wall-E가 청소를 하던 중 우주 탐사선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우주선 안에는 여자 로봇인 이브(eve)가 타고 있었다. 지구를 탐사하러 온 이브는 이곳저곳을 탐색하며 무엇인가를 찾아 나선다. E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 이브는 처음에는 대량 파괴력을 소유한 총을 쏘며 월E를 경계했지만, 자신을 짝사랑하게 된 월E에게 점차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E의 집으로 가게 된 이브는 월E가 가지고 있던 식물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브는 월E가 가지고 있던 식물을 자신의 몸속으로 넣고 깊이 잠들어 버린다.

(지구에 도착한 이브의 탐사선)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된 월-E와 이브) 

 

이브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이브를 사랑한 월E는 이브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이브를 보살피던 어느날 새로운 우주선이 도착하여 이브를 대려갔고, 이브를 걱정한 월E는 그 우주선에 탑승하여 우주로 날아갔다. 우주로 날아가게 된 월E는 대형 우주선인 액시엄(Axiom)에 탑승했고, 그 액시엄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인간들은 의자에 앉아서 길을 다니고, 과거에 인간이 하던 일들은 월E와 같은 로봇이 대신하고 있었다. 이브가 향하는 방향대로 따라가게 된 월E는 액시엄의 선장실에 들리게 되었고, 자신의 임무를 선장에게 보고하는 이브를 목격하게 된다. 사실 이브는 액시엄의 선장이 지구에 과연 생명이 사는지 확인하기 위해보낸 로봇이었고, 식물을 발견하게 된 이브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대형 우주선 액시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액시엄 선장) 

 

사실 대형 우주선인 액시엄도 지구를 청소하는 동안 인류를 우주에서 보내게 하기 위해 만든 대형 우주선이었고, 이것을 만든 미국 대통령은 지구에서 살아남은 식물이 발견되면, 지구로 돌아가도 된다고 액시엄 선장에게 얘기했었다. 식물을 가지고 온 줄 알고 있던 이브의 몸속에는 안타깝게도 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그 식물은 쓰레기장으로 버려졌는데, 그 이유는 액시엄 선실을 통제하고 있던 로봇이 일부러 식물을 쓰레기장에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월E와 이브를 통해 알게 된 선장은 선실 조종대에게 왜 버렸냐고 묻고, 선실 조종대는 극비 기밀을 선장에게 알려준다. 극비 기밀에 따르면 인류가 계획했던 지구 대청소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고, 결국 액시엄에서 살기로 미국 대통령이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렇게 프로그램이 입력된 선실 조종대 로봇은 이브가 발견한 식물을 버렸던 것이고, 이를 알아채지 못하게 선장을 속였던 것이었다.

(선실을 자기 멋대로 통제하던 액시엄 조종대)

  

이를 알게 된 선장은 식물이 발견되었으니 돌아가야 한다고 선실 조종대에게 항의했고,“자신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실 조종대는 선장을 선실 근처에 잡아 가둬버린다. E와 이브의 활약으로 선장은 선실 조종대를 속이는 데 성공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선실 조종대의 자동화 프로그램을 종료시켰으며, 액시엄은 선장의 의지에 따라 결국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 지구로 돌아온 인류는 다시 지구에서 새 삶의 시작을 얘기하며 영화는 끝이난다.

 

3. E에서 나오는 환경파괴 문제와 4차 산업혁명

(700년 만에 지구로 귀환한 액시엄)

 

위에서 상술했듯이 픽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만화영화 월E2008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오기 7년 전에 제작된 것이지만, 현재 인류가 걱정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문제점을 아주 정확히 파악했고, 환경 문제도 아주 잘 비판했다.

 

우선 환경파괴 문제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환경파괴문제는 제1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시작된 환경파괴는 20세기 중후반과 21세기 와서 더욱 극심해졌고,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으로 남았다. 대표적으로 북극해 빙하의 증발 현상과 인류가 만든 플라스틱과 같은 환경파괴의 주요 원인인 물건들은 현재도 처리되지 못한 채 태평양과 대서양을 돌고 있는 현상을 얘로 들 수 있다. 특히나 플라스틱 생산과 같은 환경 파괴의 주요원인이 되는 생산품들은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통해 지속해서 과잉생산되고 있다.

 

그 덕분에 인류는 과잉된 상품을 원하는 시간에 소비할 수 있고, 과거에 비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혜택을 누리지만, 그 대가를 지구가 대신 치르고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영화 월E에선 앞으로 100년 후의 인류가 이런식으로 지구를 망쳐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영화 월E에서 나온 미국의 모습은 그저 맑은 하늘은 존재하지도 않고, 쓰레기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높이 만큼이나 여러군데 쌓여있으며, 생명이라곤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800년이 지나서의 지구 모습은 더 처참하여 주인공인 월E 혼자 쓰레기를 치우고 있을 정도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영화에 따르면 22세기 인류가 시도했던 지구 대청소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영화 초반부에 보면 어느 미국 대통령이 지구는 이 쓰레기 청소용 로봇에게 맡기고, 초호화 우주선 액시엄으로 놀러가세요라고 선전하는 영상이 나온다. 이는 말그대로 선전이었다. 22세기 인류가 제작한 월E와 같은 쓰레기 청소용 로봇은 쓰레기들을 수거하여 정육면체로 만들어 쌓아두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극중에선 22세기의 발달된 과학 기술을 가지고도 이를 해결치 못했다. 심지어 액시엄에서 만들어지는 쓰레기도 월E와 비슷하게 생긴 로봇들이 한꺼번에 수거하여 우주 밖으로 버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생각이지만 영화의 이 장면이 시사해주는 것은 그만큼 인류가 창조해낸 환경파괴가 재앙적이다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영화 월E의 또 다른 특징이자 큰 장점은 현재 가속 중인(혹은 가속 중인지 알 수 없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문제점을 아주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E가 들어와서 보게 된 액시엄에서의 인간 생활상은 말 그대로 기계에 의한 돼지사육이나 다를게 없었다. 대형 우주선 액시엄에선 과거 인간이 했던 경찰, 보육, 교육, 운전, 출산, 식량 확보, 쓰레기 수거, 행정, 활동 등을 인간이 아닌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즉 과거에는 인간의 일자리였을지도 모르는 직종이나 활동들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고, 오히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액시엄에 사는 인간들은 의자에 않아 그저 기계가 주는 음식맛 나는 음료수를 마신다. 인간들은 그 음료수 음식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환경파괴의 주범중 하나인 빨대를 통해 음식을 흡입한다. 인간들은 그저 기계가 얘기해주는 유행 트렌드를 아무런 비판의식없이 따라하고, 기계가 말하고 추천하는 대로 소비한다. 쉽게 말해 주체적인 자아의식을 잃은 것이다.

 

액시엄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보육을 담당한 기계에게 가르침을 받는데, 참으로 소름끼치고 무서운 것은 그 기계들은 알파벳을 가르칠 때, 인간에 대해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들끼리 오락을 즐기는 것도 온라인에서 회상을 통해 하지 오프라인을 통해 하지는 않는다. 만난다고 하더라도 얼굴을 보고서 만나는 것이 아닌, 기계가 비추어 주는 회상을 통해서만 얘기할 뿐이다.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며 놓쳤을지는 모르겠지만, 액시엄 선장이 과거의 액시엄 선장들의 이력을 보는 장면에서 그들의 재임기간이 어느정도였는지가 밝혀졌다. 대부분 최소 100년 이상은 했다. 이걸 보았을 때, 비록 의자에 앉아 살더라도 과학기술에 힘입어 사람들이 오래살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오래 산다는 것이 진정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닌 기계로부터 통제받는 삶이니 말이다. 즉 선장이 나는 인간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 것은 괜히 그런게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월E에서 보여준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문제점은 감정을 가진 기계들 중에 인간을 완벽히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고 하는 장면들이다. 영화상에서 월E와 이브가 선장실 조종대로부터 유해한 로봇으로 판정되었을 때, 로봇 경찰들이 출동하는데 이 때 의자에 앉아서 갈 길 가던 한 남성을 치고 그냥 가버린다. 솔직히 필자는 이 장면에서 아 기계가 사람을 무시하고 있그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기계가 자신들이 통제하는 인간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장면들이 꽤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들자면, 액시엄의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선장을 선실 조종대가 통제하고, 구금하는 장면이었다. 이를 통해 영화 월E4차 산업 혁명이 가속화된 사회는 기계가 인간을 통제하는 사회일 수도 있다는 섬뜩한 사실을 알려줬다.

 

따라서 이런 여러 가지 맥락을 보았을 때 영화 월E4차 산업혁명의 가지고 올 결과를 비판적으로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현재 많은 부분에서 전산화와 기계화가 되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살다 보니 영화의 이런 장면들이 매우 눈에 들어왔고, 4차 산업혁명이 걱정되기 까지 했다.

 

4. 영화가 내리는 나름 신선한 결론

(영화 월E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 풀들)

 

영화 월E가 그냥 훌륭한 영화가 아닌 것은 그 영화가 보여주는 마지막 결론에 있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지구로 돌아온 인간들은 폐허가 된 땅에서 식물을 심는 장면과 그 이후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는 땅을 보여준다. 이 마지막 장면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필자가 더 의미를 둔 장면은 마지막 장면 보단 영화가 끝난 이후에 나오는 엔딩 크레딧이다.

 

E의 엔딩 크레딧에선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온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그림을 통해 아주 상세히 보여준다. 사람들은 다시 원래 상태의 몸으로 돌아가게 되고, 지구로 돌아온 인간들은 기계와 함께 자연환경을 보존해가며 살아간다. 이점이야 말로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즉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며 서로 돕고 지구와 자연을 보호해가며 살아가는 그런 삶 말이다. 그 점이야말로 영화가 진정으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월E 엔딩 크레딧에서 나온 장면. 결국 인간은 다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된다.)  

  

필자도 이 엔딩크레딧을 통해 앞으로의 사회는 그런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에는 인간과 기계가 어떻게 공존하며 지구의 자연환경을 어떻게 보호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영화 월E는 필자에게 많은 점을 알려주었고,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영화를 안보고 이 리뷰를 읽게 된 분은 이 영화를 엔딩 크레딧까지 꼭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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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 - 디지털 리마스터링
정지영 감독, 안성기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보고 싶어 했던 영화를 오늘에서야 드디어 봤다. 그 영화가 바로 1990년에 개봉한 ‘남부군’이다. 지난번 안재성 작가가 쓴 이현상 평전을 읽으며 분단의 비극이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느꼈었다. 이번에 정지영 감독이 제작한 영화 남부군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배우 안성기가 영화에서 연기한 주인공은 실제로 빨치산 투쟁을 했던 작가이자 정치인이기도 한 이태의 삶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는 1945년 8.15 해방부터 1950년 인천상륙작전까지의 내용을 사진과 자막을 통해서 개략적으로나마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개략적인 설명이 끝난 뒤 영화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전남 쪽에서 인민군측 기자로 근무하던 이태가 유격대에 합류한 뒤, 한국군에 맞서 전투를 치르며, 투쟁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실존 인물 이태가 겪은 투쟁기를 보여줌으로써 당시 빨치산들이 민중해방과 인민의 세상을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지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에선 빨치산들이 반공선전과는 달리 민중을 대하는 태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마을에 들어가 함부로 약탈하지 않는다든지, 대한민국 경찰인 남편을 둔 여자를 강간한 부대원을 총살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작중에선 한겨울에 지리산에서 빨치산 투쟁을 지휘하던 정치위원들끼리 얘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의 투쟁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알 수 있다. 투쟁을 하다 사기가 빠진 한 정치위원은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지금 이순간 우리는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있소! 볼셰비키 혁명 당시 시베리아의 빨치산은 트럭으로부터 물자를 공급받으며 투쟁했고, 일제때 만주의 항일빨치산들은 농사까지 지어가며 투쟁했다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남조선에서 지리산이 빨치산의 가장 좋은 근거지라지만 결국 반경 15km 공간에 갇혀 있을 뿐이고, 북측과의 통신은 단절되어 있습니다.” 어느 정치위원의 얘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리산에서의 혁명 투쟁은 그만큼 가혹한 조건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추위와 굶주림하고만 싸웠던 것이 아니다. 1951년에는 미군이 살포한 세균에 맞서 싸워야 했고, 휴전 회담 기간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도착한 백선엽의 토벌부대와도 맞서야 했으며, 미군이 투하하는 네이팜 폭탄에도 맞서 싸워야 했다. 훌륭하게도 영화 남부군은 이러한 것들을 일일이 다뤘다.

 

그들은 왜 지리산으로 갔을까? 암울한 현실이지만, 그 투쟁또한 고달프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인데도 왜 끝까지 악조건 속에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것일까? 그들이 인간을 사랑하고 민중을 사랑했던 휴머니스트이기 때문이기에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빨치산에 합류했던 대원 중에는 우익 청년단이나 군경에게 가족을 잃은 복수심 때문에 참전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이전에  그들은 민중의 해방과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원했기에 고달픈 투쟁속에서도 투쟁을 이어나갔던 것이라 생각한다. 일부는 전쟁 자체의 회의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빨치산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건 그런 휴머니즘적 신념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국전쟁 시기부터 1980년대 대한민국이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빨치산들의 투쟁에 대해 반공이 아닌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국민에게 강요한 매카시즘적 반공 이데올로기는 사회 깊숙이 퍼져 있었고, 반공주의에 익숙해진 국민들 관점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1990년에 개봉한 영화 남부군은 국가가 강요한 반공주의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즉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반공주의가 강요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였다. 영화 남부군에 나온 빨치산 혁명가들은 이념을 떠나 휴머니스트들로 기억되는 건 무리한 일일까? 아직도 반공주의가 살아있는 시대에서 이를 생각할 때마다 필자는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 영화에서 나온 휴머니스트들의 투쟁적인 삶을 통해 분단의 비극을 생각하게 되는 좋은 기회였고, 이런 훌륭한 영화를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제작해주신 정지영 감독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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