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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ISIS에 빠지는가?

넷플릭스(Netflix)에서 내 흥미를 아주 자극한 드라마가 있다. 그 드라마는 스웨덴에서 제작한 8부작짜리로 2014년과 2015년 당시 돈바스 전쟁 관련한 뉴스를 잠식시키고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ISIS를 주제로 했다. 바로 ‘칼리프의 나라(Kalifat)‘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연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시리아 리카에 위치한 ISIS에 합류했다 그들의 잔인성과 비도덕성에 기겁하여 탈출을 하려는 부부, 스워덴에서 살다 자신이 차별받는다 생각하여 ISIS에 심취한 10대 소녀들, 스웨덴에서 테러행위를 준비하는 ISIS 그리고 그걸 막으려는 스웨덴 경찰당국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연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 만든 드라마이기에 2015년 스웨덴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나라 스웨덴의 이미지는 부유함, 복지국가, 아름다운 자연환경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사는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ISIS에 가담하려는 애들이 있으니 어떤이들은 놀라움 내지는 충격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왜 ISIS가 되는 걸까? 드라마 보는 내내 이들이 ISIS가 되는 동기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생각해보게 됐던것 같다. 그들이 ISIS가 되는 이유에는 기본적으로 무슬림이라는 종교적 의식과 거기서 발생하는 ˝세계가 우리 종교를 차별한다는 의식˝이 존재한다. 그런 의식 속에는 전쟁과 파괴로 얼룩진 중동의 역사가 있고, 그 중동분쟁의 원인인 미국과 이스라엘이 있다.

1970년대 중동전쟁으로 빗어진 오일쇼크, 1991년 걸프전쟁과 2001년 9.11테러 그리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라는 역사적 흐름에는 무슬림들이 그들을 싫어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또한 그런 일련의 사건에서 빚어진 전세계적인 이슬람 차별도 그들이 ISIS가 되는 이유였다. 실제로 2000년대 미국이 중동분쟁에 기름을 부으면서 이슬람에 대한 차별이 심해졌는데,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억압받고 차별받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는 동기부여로 작용했다.(실제로 ISIS들도 그런 주장을 하기도 하고)

2014년에 등장한 ISIS의 특징은 아마도 전 세겨적으로 자원자들을 모으는데 성공했다는 점일 것이다. 심지어 이슬람 신자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ISIS에 가담하는 한국인도 나왔을 정도니 말이다. 즉 ISIS는 불행한 가족사가 있거나 종교적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의식을 가진 이들에게 접근하여 자신들 편으로 끌어 들였다. 그렇게 끌어들아 사람들을 모아 소위 지하드라는 이름하에 자신들의 율법과 교리를 강요하고, 그들에게 폭탄테러와 같은 자폭행위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알라의 이름으로 합리화 된다.

드라마에는 종교가 한 개인에게 강요하는 잔인성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것이 다 알라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종교라는 맹신적 믿음이 어떻게 악의적으로 이용되는지, 믿음을 가진 신자에게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드라마에서 아주 상세하게 나온다.

드라마 칼리프의 나라는 ISIS가 일반사람을 현혹시키는 방법과 ISIS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이 벌이는 과정을 아주 긴장감 있게 그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칼리프의 나라라는 제목과는 달리 ISIS 치하 일반사람들의 삶이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ISIS 치하의 삶을 아주 긴장감 있게 잘 소화했다는 점은 이 드라마의 장점일 것이다. 중동문제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이 드라마를 적극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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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Netflix)에 있는 쿠바 리브레 스토리(Cuba Libre Story)’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평소에 쿠바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필자로썬 참으로 반가운 다큐멘터리였고, 바쁜 와중에도 이 다큐멘터리를 챙겨봤다. 다큐멘터리는 쿠바 역사의 시작부터 오바마 정부 시기까지의 쿠바 역사를 다뤘고, 8부작으로 구성됐다. 8부작 안에는 수백 년간의 스페인 식민지 지배와 수십 년간의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온 쿠바의 역동적인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식민지 지배에 맞서 자유와 독립 행복을 찾아나서는 쿠바의 역사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매우 가까이 있는 쿠바는 수백 년간의 스페인 식민지 지배와 50~60년간의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다. 1492년 인도와 향신료를 찾기 위해 쿠바를 방문한 콜럼버스는 그 지역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이게 바로 수백 년간 이어질 스페인 지배의 시작이었다.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1898년에 일어난 미서전쟁(American Spanish War)은 사실상 미국과 스페인 이 두 제국주의 국가 간에 일어난 식민지 쟁탈전이었고, 전쟁의 승자가 된 미국은 쿠바에게 독립을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이 부여한 독립은 또 다른 식민지배의 시작이었다. 미국의 기업들은 쿠바를 경제적으로 잠식해 나갔고, 쿠바를 사실상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배는 냉전시기에도 계속됐다. 그러던 1959년 이런 미국의 지배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게 바로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주도한 쿠바 혁명이었다. 이들은 1956년부터 1959년까지 대략 3년간 쿠바의 정글속에서 게릴라전을 벌여왔고, 1959년 수도 아바나에 입성함으로써 혁명을 성공시켰다.

  

쿠바 혁명이 성공한 이후, 정권을 잡게 된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에 있는 미국 기업과 마피아들의 생산수단을 국유화 하여, 쿠바 인민들을 위한 여러 조치를 실행했다. 당연히 미국 정부는 카스트로 정권의 이런 조치에 경제제재를 걸었고, 쿠바와의 수교를 끊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쿠바는 수십 년간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게 되었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다큐멘터리는 쿠바의 총체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쿠바 망명자와 같은 우익 성향의 인물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지만, 쿠바 혁명에 참가했던 혁명 세대들까지 인터뷰했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어떤 면에선 우익적인 시각을 강조하기도 한다. 예를들면 쿠바의 카스트로가 우상화를 했다던 지 혹은 독재와 사치를 부렸다는 얘기를 강조하는데, 솔직히 사치나 호화스러운 생활 문제라면 쿠바 위에 있는 나라 미국 정치인들이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들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런 시각은 필자에게 약간의 불편함을 줬다.

 

이런 약간의 오류 내지는 우익적 관점을 배제하면 이 다큐멘터리는 정말 잘만든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물론 위에서 상술한 문제가 있지만, 쿠바의 무상의료나 그외의 사회주의적 성과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는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의 보루로서 서 있다는 사실도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쿠바 혁명에 참가하거나 쿠바를 지켜왔던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쿠바 사회주의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 다큐멘터리를 대체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1959년 쿠바 혁명 성공은 미국에게 있어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혁명 이전의 바티스타 정권은 말 그대로 이승만이나 응오딘지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마르코스, 수하르토처럼 미국에게 충성을 다하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미국에게 있어 쿠바는 자신들을 가장 잘 따르는 구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주도한 혁명이 성공하면서 모든게 바꼈다. 더 이상 쿠바는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복종하지 않았고, 사회주의적인 변화를 통해 이에 저항했다. 그러자 미국은 혁명정권이 된 쿠바를 전복시키고자 여러가지 교활한 수법을 사용한다.

 

1961년 미국의 존F케네디 정권은 1500명으로 구성된 쿠바 망명자들을 상륙시켜 침공을 가했다. 이게 바로 피그스만 침공이었다. 피그스만 침공은 실패로 끝났다. 피그스만 침공 이후 미국은 쿠바 정권을 군사적으로 전복시키기 위해 대규모 군사작전을 바탕으로 한 쿠바 상륙훈련을 전개했다. 즉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은 군사적으로 준비했던 것이다. 결국 쿠바에게 있어 선택지는 하나였다. 당시 미국과 체제 경쟁중이던 소련과의 관계를 넓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으로 부터 대규모 군사원조와 경제원조를 받았고, 1962년에는 미국 영토 코앞에 핵미사일을 배치했다.

 

사실 소련과 쿠바가 미국 앞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것은 미국이 소련 국경 근처인 터키에 핵미사일을 배치하여 수도 모스크바까지 날릴 수 있는 거리를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련도 쿠바에 핵미사일을 설치했던 것이다. 결국 이렇게 빚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소련이 미국에게 굴복하게 됨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사실 카스트로는 소련과 미국이 자기들끼리 협의한 것에 매우 분노했지만, 소련의 흐루쇼프가 그를 달래는데 각고한 노력을 했다. 그는 카스트로를 소련에 초대하여 전국적으로 돌아다니게 했고, 소련에서 최고 훈장이기도 한 레닌 훈장을 수여함과 동시에 영웅으로서 아주 극진한 대접을 해줬다. 뿐만 아니라 쿠바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도 늘려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의 한 보루로서 설 수 있게 도왔다.

 

이렇게 해서 쿠바는 미국의 탄압과 억압속에서도 사회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쿠바도 1991년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붕괴되면서 경제난이 왔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의 사회주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버텨냈다. 또한 쿠바는 국제주의 원리에 따라 의사들을 보내 여러나라와 협력하고 그들을 지원했다. 대표적으로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지원이 그러했다. 1970년대 쿠바는 앙골라 내전에 개입하여 혁명세력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자신들의 의무를 다했다. 쿠바 리브레 스토리를 통해 이런 역사를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쿠바 혁명 참전용사의 한 인터뷰가 생각이 난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과거에도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서 싸웠습니다. 나는 그것이 정의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나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설 것이고, 제국주의 압제에 맞설 것입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인 발언이다. 이 발언에서 쿠바 인민들 대다수가 가난한 인민들과 약자의 편에 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자유와 독립 그리고 행복을 찾아나서는 쿠바의 역동적인 역사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쿠바 혁명을 성공시켜 그런 사회주의적 가치를 지켜온 피델 카스트로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필자는 그렇게 살다가 2016년에 생을 마감한 그를 매우 존경한다. 대체로 반공주의적인 정서가 강한 한국에는 쿠바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대다수 한국인이 생각하는 쿠바의 이미지란 낙후 내지는 가난일 것이다. 그러나 쿠바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지배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국가들이 이뤄내지 못한 가치와 인권을 이룩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 국가들과 사회주의 쿠바의 차이다. 쿠바의 역동적인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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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
아담 맥케이 감독, 크리스찬 베일 외 출연 / 인조인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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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를 조종한 최고 권력자

지난번 거의없다 유튜버가 만든 4.15 투표 독려 영상을 봤다. 거의없다의 영상에는 아주 흥미로운 영화 한편이 소개되었고, 그는 그 영화를 감상하기를 적극 추천했다. 그 영화가 바로 아들 부시 시절 부통령(Vice President)를 지낸 ‘딕 체니(Dick Cheney)‘의 인생을 블랙코미디로 접근한 영화 바이스(Vice)다.

영화의 주인공 딕 체니는 아들 부시가 대통령 사실상 모든 권력을 독점했던 인물로 소위 네오콘 세력을 이끈 인물이었다. 딕 체니와 아들 부시의 관계는 한국의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와 비슷하다. 아들 부시는 딕 체니에게 의존했던 인물이다. 2001년 오사마 빈라덴이 9.11테러를 주도했을때, 그 충격과 혼란속에서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획했다. 그래도 중동과 이슬람 테러리즘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가 미국인들에게 사라지지 않자, 그들은 희생양을 찾기시작했다. 희생양이 된 나라가 바로 이라크다.

이들 또한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터무니 없는 정보조작과 정치선동을 통하여 2003년 이라크를 침략했다. 이라크 전쟁 개전 초기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하고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후세인을 체포하는 과정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침략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포장됐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서 얻은 것은 없었다. 개전 초기의 전황과는 달리 이라크 전쟁은 역으로 극단적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이들이 게릴라전으로 나서면서 미국은 이라크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졌다. 또한 이라크 침공 명분으로 들었던 신무기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 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한 딕 체니는 자신이 CEO로 있던 석유회사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미국은 최소 60만 명의 이라크 민간인을 학살했다. 9.11 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알 수 없는 증오를 가졌던 미군은 포로 수용소에서 이라크군 포로에게 기행적인 고문과 폭행을 저지른은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이러한 고문행위는 제네바 협약에 따라 금지된 행위였지만, 민주주의와 테러리즘 박멸이라는 명분아래 일방적으로 허용됐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고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딕 체니가 보인 모습은 반성없는 철면피였다. 그는 명분없는 전쟁을 일으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피로 기업 이윤을 창출했음에도 반성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이 명분없는 전쟁이라는 진실이 탄로났음에도 여전히 구차한 변명으로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영화 바이스는 명분없는 전쟁을 일으킨 인물이자 미국 최고 권력자 자리에 있는 딕 체니의 인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과거 그가 CEO회장이었던 도널드 럼즈펠트 밑에서 비서로 있을때,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이 있었다. 그 침공은 럼즈펠트와 공화당 각료에 의해 결정됐다. 그는 닉슨 정부가 베트남 전을 확전하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럼즈펠트에게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고 사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데, 럼즈펠트는 이에 낄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영화에 나온 딕 체니가 얘기하듯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부와 권력일 뿐이었다. 그들은 그저 자본과 권력을 독점하려 했던 관료들이었고,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할 뿐이다. 결국 그런 그들의 행동과 욕심이 이라크 전쟁이라는 제국주의적 전쟁범죄를 양산해 냈고, 중동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반성하지 않았고, 하지 않고 있다.

주인공 딕 체니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거라고 하며 적반하장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들이 자신을 지도자로 뽑았고, 난 국민의 부름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을 한다. 그렇기에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다가선다. 영화의 주인공 딕 체니가 보여주듯이 국민들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무엇인지 우리는 너무나도 잘안다. 어리석은 선택은 결과가 무엇인지 말이다!

오랜만에 정말 의미심장한 영화 한편을 봤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보길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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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모아 - [할인행사]
테리 조지 감독, 에이미 메디건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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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고 이 리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개봉하던 1998년 베트남 전쟁 관련한 한 영화가 개봉했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초 남베트남에서 미군사고문단을 지냈던 존 폴 밴(John Paul Vann)’이라는 인물의 일생을 영화화 한 것으로 종군기자 닐 시핸(Neil Sheehan)’이 쓴 밝게 빛나는 거짓말(A Bright Shinning Lie)’라는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바로 크레모아(A Bright Shinning Lie 1998)’. 왜 국내에선 영화 이름이 크레모아로 번역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레티비에 있길래 한번 감상했다.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인 존 폴 밴(John Paul Vann)’의 장례식부터 시작한다. 장례식에서 존 폴 밴에 대해 설명하는 나레이션이 나오더니 냉전 초기 전 세계적으로 있었던 사건(마릴린 먼로나 인공위성 발사,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유리 가가린의 모스크바 방문, 무하마드 알리 등)들이 영상속에서 흘러나오며, 미군 장교들과 건배를 나누는 주인공의 모습부터 시작한다. 거기서 외치는 밴의 대사는 여러분 서베를린으로, 내년에는 모스크바로라는 대사를 외친다. 이 대사에서 밴은 미국의 가치를 믿는 미국주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베트남에 군사고문단으로 배치된 밴은 남베트남군과 함께 여러 군사작전을 전개해 나간다. 그는 부패한 남베트남군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전략전술을 구사하도록 진심으로 돕고 싶어 하지만, 워낙 부정부패가 심각한 남베트남군은 밴의 충고와 조언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나 1963년 밴이 비행기를 탄 채로 작전을 지휘했던 압박 전투에서 남베트남군의 무능한 모습은 여실히 드러난다. 최신식 전투헬기와 수송헬기 15대와 APC 장갑 차량 10대 그리고 수천 명의 병사를 동원한 남베트남측 동원된 전투에서 무기나 화력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200~300명의 베트콩에게 아주 처참하게 패배하는데, 여기서 문제의식을 느낀 밴은 농민들이 왜 베트콩을 지원하는지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다.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밴은 남베트남군의 무능과 부패를 본국에 폭로하고자 했지만, 남베트남에서 비밀스런 작전을 전개하던 밴의 군 사령관은 그를 다시 본국으로 보낸다. 그것과는 별개로 밴은 미국에 아내와 여러 명의 자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베트남 여학생과 사랑에 빠져 바람을 일삼는다. 귀국한 이후 그의 바람행위에 와이프는 질타하고 경고하지만, 그의 바람기는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있었고, 결국 남베트남 길거리에서 만난 어떤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져 임신시키고 결혼식까지 올리게 되며 미국에 있는 가족과 해어지기까지 한다. 그의 과거는 참으로 처참했다. 밴의 어머니는 매춘부였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살아왔다. 결국 이런 배경이 그의 바람행위에 영향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본국으로 귀국한 밴은 미군 지휘부 인사들에게 자신이 찾게 된 미국과 남베트남군의 문제점을 직시한다. 그가 보기에 호치민과 보 응우옌 잡 같은 인물들은 농민들에게 정당한 토지를 분배하기로 약속한 인물들이었고, 남베트남 농민들에게 있어 베트콩은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세력이었던 것이다. 그는 베트콩이 농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정강정책을 내세우고 있고, 반면 이점에서 아무런 도움이 없는 미국이나 남베트남측은 지지를 얻지 못한 다는 점을 아주 명확하게 파악했다. 또한 그는 미국이 생각하는 데로 베트남 전쟁이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를 자신이 아는 기자에게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베트남에 대한 사실적인 분석과는 달리 미국입장을 대변하는 결론을 지었다. 그는 이들의 지지를 베트콩이 아닌 미국과 그의 동맹 측으로 바꿔 전세를 역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1960년대 중반 그는 베트남에서 민간 선무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인물이 되는데, 여기서 자신의 베트남 비젼을 마을에 실현시키고자 했다. 거기서 그는 낡은 마을과 학교에 있는 나이든 여교사와 초등학생 아이들을 위해, 낡은 건물을 고쳐주고 사탕과 물자를 공급해준다. 하지만 이런 밴의 행동은 그 지역을 담당하던 남베트남군 지휘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부패한 남베트남군 장교는 그 지역을 베트콩 출몰지역으로 규정한 뒤 마을을 네이팜 폭탄으로 폭격해버린다. 결국 그 폭격으로 마을은 파괴되고, 애꿎은 민간인들이 죽게되며 밴이 지원했던 초등학교의 학생들 또한 폭격으로 죽게 된다.

 

이후 밴은 베트남에서 전투를 치르게 되는데, 한 늙은 베트콩 여성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알고보니 그 여성은 과거 밴이 지원했던 학교의 교사였다. 이걸 목격한 밴의 동료는 우리가 애꿎은 민간인들을 베트콩으로 만들고 있어. 저 여자는 그 일만 아니었으면 베트콩이 되지 않았을 거야라고 하며, 베트남을 떠난다. 1968년 구정공세가 시작되는 당시에도 베트남에 남에 군생활을 계속한 밴은 군에서 높은 직종을 맞게 되고, 본국에서 반전시위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전투에 임한다. 결국 존 폴 밴은 1972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되고, 콘툼 성 전투에서 사망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존 폴 밴의 행동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베트남 전쟁의 본질을 상당히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동맹군인 남베트남이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오히려 이에 맞서는 베트콩은 일본과 프랑스에 싸웠던 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영화 초반에 야 그 국(Gook, 동양인 비하 단어다.)들이 프랑스을 무찔렀어라고 한다. 그는 압박 전투에서 남베트남군이 소수의 베트콩에게 참패하는 것을 지켜봤고, 베트남 전쟁 승리 대안으로 농민지지 획득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도와줬던 한 여교사가 남베트남군이 저지른 학살행위를 보고 베트콩이 된 것을 봤다. 하지만 그는 절대적으로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 숭리를 추구했다.

 

그렇다면 왜 밴이라는 인물은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알면서도 미국편에 서서 싸웠던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존 폴 밴이 가지고 있던 미국주의라는 사상에 있다고 본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 전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었다. 그는 미국이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구심점으로서 필요하다면 미국이 개입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작중 초반에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남베트남측의 보도가 나오는데, 그는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시켰다는 보도를 듣고 아주 열광한다. 글 초반에 언급한 바와 같이 그는 농담으로 내년에는 모스크바에서라는 구호를 건배구호로 사용했다. 이는 마치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을 보내는 조진웅이 탱크밀고 평양까지 가야지라는 구호를 연상시키기 까지 한다. 즉 밴의 이데올로기에는 기본적으로 반공주의를 바탕으로한 미국주의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밴이라는 인물의 치명적인 한계와 실책이 아주 명확히 보였다. 심지어 그는 대니얼 엘즈버그가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것을 들었음에도 자신과 친한 기자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공감하지 않는다. 반공주의라는 사상이 결국은 최악의 실수인 베트남 전쟁이라는 수렁에서 그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이게 바로 반공과 미국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의 한계다. 영화 크레모아는 존 폴 밴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이 저지른 베트남 전쟁의 실책을 꽤나 잘 파악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주의를 향한 존 폴 밴의 투지에 감명 받아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존 폴 밴은 미국입장에서 보면 애국자이기 때문이다. 영화 크레모아는 미국주의자의 치부를 파악하기 매우 좋은 영화였던 것 같다. 결국 그러한 잘못된 믿음과 신념이 베트남 전쟁이라는 냉전 최악의 대학살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깨달아야 하는 교훈은 반공주의와 미국 우월주의의 한계와 치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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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Pictures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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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패트리어트(The Patriot)’를 봤다. 이 영화는 프렌치 인디언 전쟁 당시 늪 속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으며 프랑스군에게 공포를 심어주었던 식민지 미국의 지주이자 퇴역 군인인 벤저민 마틴이 미국 독립전쟁에서 영국의 횡포와 탄압에 맞서 싸워가며 애국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영화 초반의 벤저민은 전형적인 개인주의로써 영국과의 전쟁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독립전쟁 과정에서 자식을 잃게 되면서 독립군에 합류하게 되고, 더 나아가 미국 독립군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다. 이러한 벤저민의 변화를 통해 영화는 소위 미국적 가치가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한 덕목인지를 선전한다.

 

영화에 나오는 영국군들은 그저 다 찌질이들일 뿐이다. 죄없는 민가에 가서 민간인들을 집단 암매장하고, 독립군들을 마구잡이로 쏴죽인다. 즉 영화는 미국이라는 정의로운 존재가 마치 악의 무리에 맞서 하나님 앞에서 보장된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묘사한다. 참으로 웃긴 것은 멜 깁슨이 주연을 맡았던 실존 인물인 벤저민 마틴은 흑인 노예들을 마구잡이로 부리는 인물이었고, 그 외의 독립군 세력들도 흑인들을 노예로 부렸으며 그들에게는 어떠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는 마치 미국의 정의로운 존재들은 흑인들을 생각했던 것처럼 아주 교묘하게 역사를 왜곡한다.

  

이처럼 영화의 구도는 참으로 단순하다. 영국군들은 찌질이들이고, 독립군과 노예를 부리던 워싱턴류의 지배계급들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믿는 인간이다. 전형적인 애국주의적 선전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하고 애국주의적인 구도를 어느 정도 희석하는 장치가 있는데, 그게 바로 화려한 전투장면과 그에 걸맞은 배경음악이다. 영화감독은 애국주의를 시청자에게 홍보하기 위해서 영국군에 맞서 싸우는 독립군들의 전투를 매우 화려하고 강한 연출로 소화해낸다. 영화는 애국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전투장면을 화려하게 만드는 쪽을 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가장 비판받아야 할 점은 흑인에 대한 역사 왜곡일 것이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흑인들은 식민지 미국의 노예로 살았고, 소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들을 소유했으며 그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절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이 편치 않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식 애국주의 영화 패트리어트는 전형적인 역사 왜곡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며 미국은 위대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영화에서 나오는 미국 독립전쟁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은 1776년 소위 자유와 평등을 외친 건국 아버지들의 정신 따위가 아닌, 무수히 많은 원주민과 흑인들에게 지배자 영국보다 못한 대우를 했던 추악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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