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웃나라 17 : 동남아시아 - 시즌 2 지역.주제편 먼나라 이웃나라 17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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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동남아시아편 감상평

어린시절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킨 책이 있다면, 만화작가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뺄 수가 없다. 초등학교ㆍ중학교 시절 먼나라 이웃나라에 대한 의문점 하나가 있었다. 왜 이 책은 주로 서구유럽 위주의 나라만 다뤘던걸까? 나는 이 점이 항상 의문이었다.

그러나 미국편 이후 중국편과 발칸반도 편, 동남아시아, 터키, 오세아니아, 러시아 편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늦게서야 작가가 다양한 국가를 다룬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학원 생활이 바쁘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가 읽고 싶었다. 그래서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 동남아시아편과 러시아편을 대출했다.

초등학교 시절이나 중학교 시절에는 몰랐지만, 이원복씨는 상당히 보수우파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대학생 시절 우연히 이원복이 조선일보에 게재한 만화를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기분은 ˝이원복 실망이다.˝였다. 그가 우리나라의 친일청산 문제나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태도가 뉴라이트랑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은 뒤로하고 이번에 동남아시아편을 읽었다. 작가는 미얀마ㆍ태국ㆍ라오스ㆍ베트남ㆍ캄보디아ㆍ말레이시아ㆍ인도네시아ㆍ필리핀ㆍ싱가폴ㆍ브루나이ㆍ동티모르 순으로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한다. 이원복 특성상 서문에서 밝히는 소위 대한민국 국뽕적 감상은 여전히 나이브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제법 잘 읽혔다. 내가 잘 모르던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만화를 통해 간략하게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법 재미도 있다.

하지만 만화의 구성과 내용에도 적잖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원복 작가는 너무 지나치게 서구식 민주주의를 절대선으로서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원복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빈곤은 엄밀히 따지자면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지배다. 이원복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을 수탈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각국의 빈곤을 식민지 지배 이후에는 단순히 공산독재나 군부독재 그리고 왕정체제에 돌리기 바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달러 제국주의가 그 나라의 경제와 사회구조를 어떤식으로 잠식해 나가는지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만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한 이원복 작가의 맹신적 오류는 특히나 필리핀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이원복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가 얼마나 악독하고 잔혹했는지 말 그대로 외면한다. 1901년 미국이 아기날도 정부를 짓밟고, 식민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리핀인들을 짐승죽이듯이 학살한 역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화 과정에서 대략 100만 명의 필리핀인이 학살당한 것은 완전히 거세당해 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필리핀에 다시 미군이 들어오자, 필리핀 민중이 미군을 다시 환영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은 실소를 금할수가 없다. 맥아더 정부가 친일한 반역자들을 기반으로 필리핀에 친미정부를 세우고, 후크발라합을 포함한 공산주의 게릴라 세력을 잔혹하게 소탕한 역사는 당연히 거세당해있다.

인도네시아 부분도 비슷하다.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 수카르노에 대해, 독재로 인기를 잃었다고 이원복은 주장한다. 그러나 수카르노가 나쁜놈으로 묘사된건 미국의 CIA가 1955년 반둥회의를 통해 이른바 제3세계 진영의 축으로서, 반미주의 노선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수카르노가 친미 독재자 수하르토보다 정당의 다양성을 인정했지만, 이런 사실에 대해 이원복은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1965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수하르토가 독재정치를 펼치고, 반대파를 억압하고 학살한 부분에 대해 이원복은 마지못해 언급하지만, 그 정부가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은 정부라는 건 언급조차 안한다. 결국 독재를 해서 물러났지만, 그 독재정부를 미국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원조 및 지원했는지는 언급을 안한 것이다.

이원복 교수의 정치ㆍ경제 논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정리해볼 수 있다.

1. 사회주의 체제는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다.
2.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항상 대안이다.
3. 그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빈부의 문제 및 정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4. 서구의 민주주의가 최선이다.
5. 서구식 자유선거를 안하면 다 독재로 규정될 수 있다.

이러한 틀에 맞춰보려고 하니, 당연히 만화에서도 오류가 생긴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원복 교수의 장점도 있다.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에 대해서 만큼우 비판적으로 보고, 이들의 억압과 착취 그리고 인권유린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미국 주류사회가 흑역사로 인식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다. 최근들어 인터넷 상에서 미국의 꼭두각시 국가 남베트남을 찬양하는 넷 인플루언서들이 창궐하고 있다. 그에 반해 이원복은 베트남을 다루는 편에서 베트남 전쟁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원복 작가는 베트남 전쟁의 근본적 선상은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에 있음을 얘기하며,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를 통해,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호치민에게 정당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제네바 협정에서 약속한 총선을 파기한 미국의 행동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또한 남베트남의 친미 독재자 응오딘지엠이 오직 반공주의만을 외치며, 토지개혁을 망친 반면, 호치민이 북베트남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이런 이원복 작가의 시각에 대해, 나무위키는 이상한 논리로 비난하지만, 이원복은 그저 서방의 주류적 시각에서 얘기한 것 밖에 없다. 그 외에도 미얀마나 말레이시아, 싱가폴, 브루나이, 동티모르 등은 내가 많이 모르는 역사를 배우는 느낌이었다. 이원복 작가 특유의 전달력은 정말 강력하다. 이원복만이 가지는 먼나라 이웃나라의 큰 장점이랄까.

오랜만에 이원복 작가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었다. 비록 오류는 많지만, 세계사 지식을 쌓는데 이 책 보다 읽히기 쉬운 책은 없다고 본다. 비록 이원복이 반공주의자여도, 이런 점에선 대단하다고 본다. 조만간 먼나라 이웃나라 러시아편도 읽을 것이다. 다음에는 러시아편에 대한 리뷰를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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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26월 유럽의회에서 아일랜드계 유럽의회 국회의원인 믹 월레스(Mick wallace)가 한 연설 중 일부를 번역한 것입니다. 동영상은 https://www.facebook.com/watch/?v=370148711672664 에서 볼 수 있다.)

 

여성의 권리가 인권의 근본입니다.

 

근데 왜 우리는 미국이 인권을 침해하는데 미국에 맞서는 것에 대해 항상 침묵하는거죠?

일각에서는 감히 어떻게 우리가 미국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있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말할 권리와 자격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합니까?

 

자 한번 그 진실을 보도록 하죠.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되는데 28,800억 원(202211월 달러 환율 기준)이나 돈이 듭니다.

전 세계 죄수 인구의 25%가 미국에 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의 군사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1,1528,000억원의 군비를 매년 지출합니다.

 

미국은 275년 전 건국된 이후부터 대략 250년 동안 전쟁을 치러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너무나도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건강보험은 하나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의 학생들에게 2,4449,700억원의 빚을 탕감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밥 한끼조차 제대로 못먹는 1,700만명의 어린이들을 위한 정부의 복지 프로그램 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딴 것들이 당신들이 말하는 건강하게 작동하고 운영되는 민주주의입니까?

 

당신들(유럽의회)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도대체 뭔가요?

 

심지어 대선 당시 진보적인 후보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 후보로 공천받는 것조차 허락되지도 않았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발음조차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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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4-03-2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언급했듯 미국은 공화당(레이건, 부시 부자, 도날드 트럼프) 정권이건 민주당(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정권이건 자국민들에게 보편적인 건강보험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고, 학생들에게 어마어마한 빚더미를 덜어주지 않았고, 식사조차 못하는 가난한 어린이들에 대한 복지를 외면하고 오로지 군수마피아들과 독점재벌가들의 배만 불려줬죠. (이게 ‘세계 1위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민낯입니다. 이 사실을 국짐과 윤석렬-김거니-한똥훈 검찰파쑈독재세력, 친일숭미에 찌든 뉴라이트 사학자들, 기레기들만 모르죠.)
 
붉은 혈맹. 평양, 하노이 그리고 베트남전쟁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총서 모노그래프시리즈 11
도미엔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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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폭격>의 저자로 유명한 김태우 교수가 집필한 신간 한권이 있다. 책의 이름은 <냉전의 마녀들>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 사회에서 반파시즘 연대운동을 벌였던 국제여맹의 활동을 재조명했다. 1951516일부터 527일까지 북한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조사를 벌였던 국제여맹의 조직원은 총 18개국으로부터 온 21명의 외국인 여성으로 구성되었었다. 이들 중에는 놀랍게도 베트남 출신의 여성도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 국제여맹이라는 조직은 반파시즘 반식민주의 차원에서 쿠바, 아르헨티나, 튀니지, 알제리, 중국, 베트남과 같은 소위 제3세계로 불릴 수 있는 국가의 인물들과도 교류를 했던 것이다.

 

<냉전의 마녀들>에선 자세히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비슷한 시기 전개되었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프랑스-베트민 전쟁) 당시 호치민(Ho Chi Minh) 정부는 미국과 전쟁을 치르던 중국 북한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4.27 시대에서 출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1>을 보면, 1960년대 당시 북한이 쿠바와 베트남 그리고 이집트 등과 같은 반제민족해방투쟁에서 연대와 지원을 한 것으로 나온다. , 북한과 베트남의 반제국주의 연대 차원에서의 관계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 두 권의 책이 제법 자극제를 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2022년 올해, 아주 흥미로운 책 한권이 출간된 것을 확인하게 됐다. 그 책이 바로 베트남 연구자인 도미엔(Do Mien)씨의 저서 <붉은혈맹: 평양, 하노이 그리고 베트남 전쟁>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논문을 책으로 간추린 것으로,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과 북베트남의 동맹관계를 재조명한 책이다.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며, 올해 들어 정말 흥미롭게 읽은 책이 됐다. 사실 한국 사회는 이승만 시대부터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극단적 반공주의(Anti-Communism)이 아직도 남아있는 사회다. 따라서 북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모종의 잘못된 행위로 간주되는 이상한 분위기가 일반인들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그것도 베트남 전쟁 시기 북한과 북베트남의 공동연대의식을 조명했다는 점은 한국 사회에서 건드리기 다소 힘든 점을 용기 있게 조명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도미엔씨는 북한과 베트남의 연대의식의 시작점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양국이 경험했던 식민주의 제국주의적 비슷한 경험의 공통성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은 호치민이 독립을 선포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프랑스의 침공을 받아 8년간 전쟁을 치렀다. 북한 또한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이후 불과 2년 만에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과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놀랍게도 양국의 전쟁에는 미국이 개입되어 있었으며, 미국은 이 두 전쟁을 반공주의의 논리로 접근했다. 당시 미국 사회에는 중국의 공산화와 소련의 핵개발에서 비롯된 매카시즘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있었고, 그러한 반공주의는 반제국주의·반식민주의적 성격을 가진 전쟁을 오로지 반공주의적 논리로 접근하게 만든 것이다.

 

, 이러한 상황에서 양국에 형성된 반제국주의·반식민주의적 의식이 1954년 제네바 협정 이후 베트남의 남북분단 상황과 미국의 남베트남 군사고문단 파견 그리고 베트남 침략에서 보다 구체적인 양국의 반미의식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2019년 북미정상회담이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개최되자, 당시 북한과 북베트남의 관계를 얘기하는 국내 기사들이 제법 나왔었다. 특히나 베트남 전쟁 당시 전사한 조선인민군 공군조종사의 묘가 베트남 박장 성에 있다는 사실도 기사화됐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당시 이들의 연대의식이 기원이 과연 어디인지 얘기하는 기사는 없었다. 그러한 점을 이 책이 충분히 채워줬다고 나는 생각한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의 명장인 보 응우옌 잡(Vo Nguyen Giap)의 자서전인 <디엔비엔푸(Dien Bien Phu)>를 몇 년 전에 읽은 적이 있다. 길찾기 출판사에서 번역한 잡 장군의 책에는 디엔비엔푸 전투 10주년을 맞아 그가 쓴 디엔비엔푸 대첩과 동춘 승리의 궁극적 의의라는 글도 같이 실려 있는데, 그 글에서 잡 장군은 제국주의자들이 당황하고 낙담한 반면, 우리의 승리에 대한 소식은 전 세계의 진보적인 인민들을 크게 고무시켰다.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은 디엔비엔푸에서 거둔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는 억압받던 인민들의 자랑거리였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알고 있던 국가 해방을 위한 세계적인 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썼다.

 

잡 장군이 1964년 글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이 내용이 정말 사실이었다는 것을 1950년대 북한의 김일성 위원장의 연설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래는 김일성 위원장의 연설 문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사실은 전 세계 피압박 인민들에게 민주진영의 적극적인 지지 밑에 자기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전 민족이 단결하여 일떠서 싸우면 어떠한 제국주의도 물리칠 수 있다는 신심을 굳게 하여 주었습니다. 실례로 지금 이란, 애급, 윁남, 말라이를 비롯한 여러 나라 인민들이 조선 인민의 투쟁에 고무 되여 민족해방투쟁의 불길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전을 요구하며 그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정전이 된다고만 생각하고 장기전에 대처할 준비를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출처: 붉은혈맹 p.59

 

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북한과 베트남은 중국과 더불어 소위 반제국주의 연대를 구축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이 또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전쟁 시기 북한을 돕기 위해 참전한 중공군 중에는 중국 군사학교에 간부 및 군인으로 파견된 베트남인들도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책에 따르면 19506월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북베트남인 3,000명가량이 중국에서 군사훈련 및 정치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무슨 얘기인지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정세를 볼 필요가 있다. 1949년 중국이 마오쩌둥의 주도로 통일이 되면서, 아시아에서의 냉전진영은 극적으로 소련에게 유리해졌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베트남은 호치민의 지도하에 1946년부터 프랑스의 침략에 맞서 싸웠고, 침략자 프랑스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그러던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중국 공산당은 프랑스에 맞서고 있던 호치민 정부를 지원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베트민 병력이 중국에서 군사 및 정치훈련을 받았고, 더 나아가 일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입장은 김일성은 침략자이기에 나쁜 놈이다라는 이미지가 유난히 부각되며 사회적으로 강조된다. 그러나 책에 나온 사실을 포함한 여러 가지 사실들은 그러한 하나의 사실관계만으로는 한국전쟁을 파악할 수 없음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겠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한참이던 19504월부터 9월까지 중국은 베트민에게 다량의 군수품과 일반물품을 원조했다. 그것은 14,000자루의 소총과 조종사, 1,700자루의 기관총과 무반동총, 150문의 박격포, 60문의 포, 300개의 바주카포뿐만 아니라 탄약, 약품, 통신 재료, , 음식 2,800톤을 포함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원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전쟁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양국에 대한 중국의 지원은 당시 미국의 대아시아 반공정책과 연관이 있다. 아래의 인용문을 보도록 하자.

 

중국의 베트남과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은 당시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갈등에 대한 마오쩌둥의 신념에 바탕을 두었다.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프랑스에 대규모 원조를 제공한 미국의 움직임을 한반도-대만-인도차이나 세 방향에서 중국을 포위-침공하는 전략을 실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그는 3국의 상황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며, 만약 미국이 한반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면 중국과 아시아의 혁명이 거대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거시적으로, 마오는 중국의 한국전쟁 및 항불전쟁 참여가 세계와 아시아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및 반제국주의 혁명 수행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붉은혈맹 p.45~46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제네바 협정에 따라 베트남이 남북분단이 되자, 미국은 제네바 협정에서 약속한 총선을 거부했다. 미국이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내세운 응오딘지엠은 과거 항불 투쟁하던 이들에 대해 탄압과 구금 그리고 학살을 자행했다. 이것이 결국 1960년 베트콩 창설에 큰 이유를 제공했다. 응오딘지엠이 전직 베트민 투사들에 대해 탄압과 학살을 자행하던 1957년 호치민은 대략 5일간 북한을 방문하여 대미행장에 힘쓰기 위해 북한·북베트남 연대를 강화하자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호치민은 북한과 북베트남의 분단문제에서 미국의 책임을 언급하고 다음과 같이 양국의 단결을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미 제국은 조선 및 베트남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군사기지를 늘리며 긴장상태를 일으키고 있고 사회주의 진영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미 제국의 전쟁도발 음모에 당면했기에, 선두에 선 소련과 중국, 그리고 사회주의 형제 국가들은 인류의 평화문제와 사회주의 업적에 책임을 인식하여 단결심을 강화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바탕으로 서로 협력을 증진해야 합니다.”

 

출처: 붉은혈맹 p.65~66

 

이러한 호치민의 연설에서 알 수 있듯이, 항불전쟁과 한국전쟁 시기 식민지 경험과 반식민지 투쟁에서 형성된 양국의 연대의식은 양국의 남북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반미주의적 연대의식으로 보다 구체화됐다. 즉 이러한 과정에서 북베트남과 북한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에 맞선 연대의식을 강화해나갔고, 이것은 1960년대 미국이 침략으로 일어난 베트남 전쟁 속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양국의 문화 및 정치도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소개되기도 했으며, 1964년에는 로버트 맥나마라를 암살하려다 체포당해 총살당한 베트남의 독립운동가 응우옌반쪼이(Nguyen Van Troi)가 북한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놀랍게도 북한은 응우옌반쪼이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으며, 응우옌반쪼이의 이름으로 생산력 강화를 주장하며 공장의 생산력 증진 및 북베트남의 지원을 강화하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의 공군 조종사 파견은 한국 언론에 보도되었을 정도로 제법 유명하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이 북베트남에게 얼마나 많은 무상지원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도미엔씨의 논문은 이러한 점을 아주 잘 집고 있다. 북베트남에 대한 북한의 무상지원은 1965년부터 시작되어 1973년까지 지속됐다. 이러한 지원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으며, 초기 지원은 북한이 요구한 것 보다 1.5배나 많기까지 했다. 북한의 지원은 단순히 공군 조종사 100명과 심리전단 인원뿐만 아니라 무상지원도 있었다는 사실을 같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베트남에 대한 북한의 무상지원은 1965년에 시작되었다. 해당 문서에는 1965~1973년에 이르는 동안 연도별 북한의 지원액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나와 있다. 북베트남 정부는 북한의 지원을 4년 단위로 나누어 총 2단계로 파악하고 있다. 1965년부터 1968년까지의 4년이 1단계, 1969년부터 1973년까지는 2단계이다. 1960년대 중후반 북한북베트남 관계의 진전을 잘 보여준 북한의 베트남 무상지원 1단계 양상이 <3-1>에 제시되어 있다. <3-1>에서 보듯 1965년의 지원 금액은 1,200만 루블이었다. 1965~1968년의 지원 금액은 3,000만 루블에 이르렀는데, 북베트남 정부는 이를 높은 지원 수준으로 평가했다. 북한의 북베트남 무상지원은 1970년대까지 진행되었으나, 전체 연도를 놓고 봤을 때 1965년의 1,200만 루블이 가장 고액이었고, 해당 연도가 1965~1968년 총지원액인 3,000만 루블에서 40%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1965년 지원액이 베트남 전쟁기 북한이 베트남에 지원한 최고 지원 금액이었다.”

 

출처: 붉은혈맹 p.163

 

북한과 북베트남의 연대와 양국의 협력의식은 놀랍게도 1968년 베트남의 구정 대공세(Tet Offensive)를 기점으로 다소 약화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저자의 근거는 당시 북베트남에 대한 북한의 지원액의 감소와 1969년 전투기 조종사의 철군 등과 같은 여러 근거에 입각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양국의 연대의식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며, 1975년 통일 이후 양국의 약간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에 맞서 승리한 베트남의 승리에 대해 환영해주긴 했다.

 

그러나 1975년 이후 북한의 중국에 가까운 노선을 걷고 베트남이 소련에 가까운 노선을 걸으면서, 양국의 갈등이 있었다. 특히나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을 빌미로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하자, 북한은 베트남에 대해 비판 성명을 냈다. 그러한 배경이 1990년대 북한과 베트남 관계의 냉각 기류에 영향을 주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거기다 1992년 베트남은 대한민국과 수교했고, 1994년 미국과 수교를 했다. 1986년부터 추진한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모이의 영향이었다. , 그러한 점은 당시 북한이 베트남과 거리를 두었던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양국의 관계는 2000년대 들어 다시 회복세로 진입했으며, 오늘날의 관계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번에 도미엔씨의 책을 읽으며, 내가 많이 궁금해했던 주제를 많이 공부할 수 있어서 기뻤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여러 사실을 가르쳐준 저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물론 나는 이 책 내용에 100%까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훌륭한 연구 자료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베트남인 연구자이기에 베트남측 문서를 많이 활용한 것이 눈에 들어왔으며, 한국 사람들이 정말 알기 쉽지 않은 최근 베트남 역사학계의 동향까지 알려준 것도 정말 의미가 있었다. 예를 들면 책에 나온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베트남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이미 1967년부터 소련이 북베트남에 미국의 협상 조건을 전달했고, 북베트남에 협상에 들어갈 것을 권유했음을 드러냈다. 1960년대 말 베트남 전쟁에 대한 소련의 관점은 현상 유지였기 때문이다. 즉 소련은 미국의 북베트남 폭격 중단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그다음에 남베트남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남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 및 군사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그다음에 정치 및 통일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출처: 붉은혈맹 p.216~217

 

그 외에도 헝가리 연구자의 문서와 윌슨 센터 자료, 기존 국내에 나온 연구와 북한 자료 및 베트남 자료를 고루고루 사용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들 중에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최신의 자료도 제법 많이 담고 있다. 이러한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 또한 은연중에 언급한 민족해방전쟁론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 전쟁을 호치민의 민족해방전쟁으로 보는 관점은 <전환시대의 논리> 저자인 리영희 교수에 의해 나온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 일각에서는 낡은 관점으로 치부하며, 도리어 정통성이 없던 남베트남에 대한 옹호의 흐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흐름은 서방학계 일부의 흐름일 뿐, 전반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제3세계적 흐름을 쉽게 무시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책의 저자 또한 베트남 전쟁을 통일전쟁이자 민족해방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 또한 베트남 전쟁은 기본적으로 민족해방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 자료도 입증하고 있듯이, 북한과 북베트남의 연대뿐만 아니라, 미국이 내세운 나라 남베트남의 정통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응오딘지엠 정부가 과거 독립운동을 하던 베트민 투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탄압하고 학살했던 역사에서 입증 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 전쟁은 기본적으로 호치민과 북베트남 공산당의 민족해방전쟁적 성격을 가진 것이다. 책 초반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하겠다.

 

베트남 전쟁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진영 내부의 갈등이 복잡하게, 뒤얽힌 복합전쟁이었다. 물론 베트남 전쟁은 기본적으로 통일전쟁이고 민족해방전쟁이었다.”

 

출처: 붉은혈맹 p.8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책의 내용을 통해 저자가 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한편, 베트남 전쟁의 성격과 그 의미는 전쟁의 발생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그 역사적 기원을 현대사에서 찾는다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발생한 베트남의 ‘8월 혁명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19459월 베트남민주공화국 수립과 함께 호찌민이 선언한 베트남 민족의 독립과 베트남 통일을 당시 국제사회가 승인했다면, 특히 구식민지 종주국인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 대한 지배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그 후 30년에 걸친 프랑스,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 후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프랑스와의 전쟁), 2차 인도차이나 전쟁(미국과의 전쟁)은 연속적인 반제국주의 항쟁인 것이다.”

 

출처: 붉은혈맹 p.29~30

 

이 책의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의 공군 조종사들이 얼마나 많은 전투기를 격추했고, 또 얼마나 많이 전투에 기여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빈약하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책이 아주 잘 쓴 명저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고 이 책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 점에서 다시 한 번 저자에게 깊이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은 저자 논문의 절반 부분을 책으로 낸 것이다. 저자 논문의 절반 부분이 북한과 북베트남의 관계를 조명한 것이라면, 나머지 절반 부분은 남한과 남베트남의 관계를 조명한 것이다. 이 나머지 부분이 책으로 나올 것을 저자는 머리말에서 암시하고 있다. 그 점에서 나머지 절반 부분도 많이 기대가 된다. 나는 북한과 베트남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일독을 권하고 싶다. 앞으로 더 좋은 연구 성과가 이 책을 시작으로 더 많이 등장할 것이라 기대하며 긴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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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인가 생존인가 -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는가
노암 촘스키 지음, 황의방 외 옮김 / 까치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폭력과 왜곡 그리고 프로파간다로 점철된 미국의 패권주의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었던 우고 차베스(Hugo Chavez)가 유엔연설을 하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소개한 책 한권이 있다. 차베스는 유엔연설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패권정책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책 한권을 소개했다. 바로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노엄 촘스키(Noam Chomsky)가 쓴 <패권인가 생존인가(Hegemony or Survival)>이다.

베네수엘라의 진보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21세기에 사회주의를 꿈꾸던 인물이었다. 그는 베네수엘라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전쟁기계는 자신들의 점령지역인 라틴 아메리카에서 사회주의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온갖 제재와 악행을 일삼았다.

혁명가 차베스는 제국주의의 실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신제국주의 국가가 얼마나 이분법적이고, 여론조작의 달인이며, 파괴본성을 버리지 못했는지 너무 잘 알았다. 그런 차베스가 많이 공감한 책이 바로 촘스키의 저서 <패권인가 생존인가>였다.

책은 2003년 미국이 시작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추구했던 패권정책의 추악한 이면을 들춰내며, 이들의 전략이 얼마나 많은 국가들을 빈곤과 파괴 죽음으로 내몰았는지를 얘기한다.

소련이 해체되던 시점에 발발한 1991년 걸프전쟁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다는 이유를 들어, 다국적군을 편성하여 중동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다. 이는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이 주도한 대규모 군사 작전이었다. 전쟁의 결과는 연합군 300명이 죽을 때, 이라크군 수만 명이 죽는 수준으로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걸프전쟁 이후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을 해제하지 않았다. 미국은 유엔을 동원하여 이라크에 대한 대대적인 경제제재를 가했다. 그 결과 이라크의 아이들 50만 명을 포함하여 125만 명이 아사했다. 의도적으로 죽음을 만들어 놓은 미국은 이것을 가치있는 희생이라고 미화했다. 네오콘인 매를린 울부라이트는 방송에 나와서 ˝이라크 사태는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런 제재를 통한 살인은 엄밀히 따지면 범죄다. 그러나 미국은 제대로 규탄받은 적이 없다.

미국은 타국 지도자에 대한 악마화에도 뛰어나다. 이집트의 초대 지도자 가말 압델 나세르가 제3세계 진영에 들어가자, 미국은 나세르를 히틀러에 비유했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가 제3세계 진영에 있으며 반미노선을 걷자, 마찬가지로 그를 히틀러와 같은 존재로 악마화했다. 미국의 이런 악마화는 카다피, 김정일, 차베스, 모랄레스 등의 지도자들에게도 전가됐다. 이 지도자들이 미국과 다르게 타국을 침공하지 않았지만, 미국에게 이들은 그저 악의 축으로 규정되어야할 대상이었다.

언론 보도들 또한 조작과 편향이 넘친다. 미국은 제국주의적이고 극단적 민족주의인 시오니즘을 추구하는 이스라엘을 자신들의 우방으로써 지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을 대상으로 온갖 폭력과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특히 팔레스타인에서는 지금도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제국주의에 맞서 저항할때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급진주의 운동을 테러리즘에 자주 비유했다. 물론 팔레스타인 급진주의 운동이 테러를 안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들이 한 것은 미국에 의해 여론조작되어 과장보도 되었다. 반면에 이스라엘 정규군이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폭격하고 탱크로 밀어 거기 있던 장애인이 죽자, 미국은 이를 절대적으로 침묵했으며 보도가 전혀 되지 않았다.

미국의 이러한 조작과 프로파간다는 1857년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인도 세포이 항쟁을 진압할 때 사용하던 논리와 일치한다. 인도에서 세포이 항쟁이 일어나자, 영국의 언론들은 ˝야만적이고 잔혹한 인도인들이 무고한 영국인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학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영국 지배자들은 이 항쟁을 진압한뒤, 저항에 참가한 인도인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 온갖 잔혹행위들을 저질렀다. 무수히 많은 인도인이 영국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학살당했지만, 영국 지배층은 이를 폭동진압으로 미화했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하던 여론조작은 현재 미국이 패권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미국은 무수히 많은 타국 민간인을 죽였다. 한국전쟁 당시 공중 폭격으로 북한은 초토화 되었고 대략 100만 명이 폭격으로 죽었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비슷한 인명이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됐다. 2003년 일으킨 이라크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는 파괴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2004년 노엄 촘스키가 집필한 이 책은 무수히 많은 한국인들이 외면하는 미국의 추악한 패권정책의 민낯을 밝힌 책이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부자연 스러운 번역투와 철자오류들이 다소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개정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읽어볼만한 명저인 것은 분명한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 있다. 2022년 미국은 다시한번 자신들의 패권을 위해 대규모 군사 개입을 할까? 앞으로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은 그런 위험한 도박을 자신들의 자본축적과 이윤생산을 위해 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제국주의가 종식되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보이는 위선을 이해하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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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강철비 2: 정상회담>을 보면미국과 일본이 한 팀이 되어 중국과 대립하려는 구도로 나온다영화상에서 일본의 정치계를 사실상 사로잡고 있는 모리 신죠라는 한 인물이 나온다그는 일본 내 극우 단체의 물질적 지주 역할을 하는 야마토 재단의 총수로 아베 신죠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모리 신죠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을 정의의 대동아 전쟁이라고 믿으며 원자폭탄 투하를 얘기하며전형적인 일본의 역사왜곡 인식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그는 어제 죽은 아베와 마찬가지로 미국이라는 존재를 일본의 이익에 맞게 이용하고 싶어 하는 인물로도 작중에서 비추어 진다.

(욱일기와 성조기를 같이 들고 있는 일본 자위대)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패망시킨 나라가 미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일본의 침략을 무찌르고, 1945년 8월 원자폭탄을 투하하여일본을 항복시켰다는 것이다물론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이 기여한 공로가 큰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실제로 일본 대본영이 1945년 8월에 조기 항복한 이유는 원자폭탄 때문이 아니라 소련의 대일전 참전 때문이었다소련의 진격을 워낙 신속했고일본의 저항의지를 완벽히 꺾었다대다수 일본 제국의 전쟁광들은 미국이 300대의 항공기와 수천 발의 폭탄으로 도시들을 쓸어버리느냐한 대의 비행기와 한 발의 폭탄으로 그렇게 하느냐에 대해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미국과 함께하는 일본 자위대 행사)

 

물론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 일본의 신속한 항복을 불러온 것은 사실이지만태평양 전쟁 당시 미드웨이 해전이나 과다카날 전투펠렐리우 섬 전투와 레이테만 해전 등 미국의 전쟁 공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45년 8월 일본이 조기 항복한 이후미국은 일본을 점령했다일본 본토에 미군이 주둔했으며더글라스 맥아더를 중심으로 GHQ가 창설됐다이후엔 도쿄 군사재판도 열고 일부 전범들이 처벌받기도 했으나대다수 전범들은 살아남았다. 731 부대로 유명한 이시이 시로 같은 전쟁범죄자들이 맥아더와 결탁하여 살아남았다.

(욱일기를 바탕으로 서서 웃고 있는 미군 병사)

 

미국은 1946년과 1947, 1949, 1952년에 치러진 조기 선거를 지도했다맥아더가 통치하는 미점령군은 극우 세력(자유당)과 자유주의 세력(민주당)이 연정을 통해 사회주의자와 대적하도록 만들었고, CIA로부터 상당한 자금을 지원받은 민주당과 자유당이 함께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이 민주자유당이 바로 1955년 일본의 자유민주당 즉 자민당이 된 것이다당시 민자당에는 일본의 파시스트들이 결집했다하토야마 이치로나 기시 노부스케 등이 바로 그들이며일본 극우 CIA요원 고다마 요시오를 포함하여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친미주의자들로 변모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미군 마크)   


1949년 중국의 공산화와 1950년 한국전쟁을 통해일본은 미국의 전쟁물자 보급기지 및 수리기지로 변모했다이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에도 성공하여세계적으로 막강한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다일본의 자유민주당은 친미외교노선을 추구하며냉전시기 일본을 동아시아 반공주의 라인을 형성하는데 주력했으며이러한 기조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분명 미국은 일본 제국주의를 무너뜨렸지만그 일본제국주의적 잔재를 가지고 반공국가 일본을 만든 것 역시 미국이었다따라서 미국과 일본은 한패며현재 일본의 극우들이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한국 극우들과 궤를 같이하는 것도 아마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암살 당한 아베 신죠는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가 결합된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일본 제국주의자 아베가 미일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며일본의 과거사를 부정하며 한국과 북한중국 등의 아시아 국가들을 자극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미국 제국주의가 아베 정부를 지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미제국주의는 아베 신죠와 같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극구부정하는 정권이어도 일단 친미주의만 한다면 받아들인다미국의 부시 정부와 버락 오바마 정부 그리고 조 바이든 정부까지 이들은 일본의 극우주의자들과 사이가 좋았고한일관계에 있어서 항상 일본편에 섰었다.

(주일미군 해군 마크)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얘기할 때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지적한다그러나 이런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일본군 위안부나 난징 대학살, 731일 부대와 같은 제국주의적 범죄를 부정해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고세력이 견고한 이유에는 자신들의 동아시아 패권을 위해 이들을 지원하는 미국이 있다는 사실은 쉽게 외면하고 있다또한 이 미국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반공주의 라인을 형성하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이용했다는 사실도 항상 외면받는다.

 

한국 사회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지만이제는 본질을 알아야할 때다한국의 반공주의도 일본의 반공주의 및 제국주의도 사실 따지고 보면 미제국주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이번에 아베 신죠가 일본의 한 극우주의자에게 사망하자미국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포함하여미국 및 서구 세계의 언론들은 아베의 명복을 빌어주고 있다일본 제국주의적 침략과 전쟁범죄를 미화하는 아베를 마치 민주주의자로 미화하고 있다왜 그러겠는가이것은 결국 미제국주의가 가지고 있는 반공주의 친미주의의 문제가 아니겠는가이런 점에서 아베의 죽음은 미제국주의의 추악한 민낯을 다시한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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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8-02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미국은 대통령이 공화당(리차드 닉슨, 로날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 조지 W. 부시, 도날드 트럼프 등)이건 민주당(죤 F. 케네디, 린든 B. 죤슨, 지미 카터,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이건 항상 한일갈등에서 일본 편을 들어왔죠.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미국은 항상 영국 편을 들고, 영국 중심의 유럽정책을 편다. 중동에서 미국은 항상 이스라엘 편을 들고, 친이스라엘적인 중동정책을 편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은 항상 일본 편을 들고, 동북아 패권정책에서 일본 중심적인 정책을 편다‘!

게다가 앞서 설명하신 것처럼, 악랄한 전쟁범죄를 자행하고도 하나도 반성하지 않는 사악한 국가 일본이 국제제재를 받고 매장되기는 커녕 큰소리치고 떵떵거리며 ‘아시아 유일 선진국‘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있는 것 역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 패권국가들이 일본을 지원하고 있음에 있다는 것도 알면 좋습니다.

역시 미국이나 일본놈들이나 우리 민족의 아픔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 패권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은 똑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