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책,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 2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박상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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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벨리는 정치를 윤리(도덕)와 종교로부터 분리시키는 데 성공했을까(실제로 그것이 분리 가능할까? 아니 반대로 이 둘을 접붙이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성공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이것들을 서로 격리시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슈미트 역시 그의 책(『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말한 바 있다. 「선악의 대립이 그대로 간단히 미추 또는 이해의 대립과 동일시되지 않고, 또한 곧바로 그와 같은 대립으로 환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적과 동지의 대립은 더구나 이러한 대립들과 혼동하거나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 적과 동지의 구별은…… 도덕적, 미학적, 경제적 또는 다른 모든 구별을 그것과 동시에 적용하지 않아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존립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도덕 혹은 종교적 제스처를 권장하는 것은 그러한 통념 속에 빠져있는 피통치자들로 하여금 더욱 오랫동안 머물 수 있게끔 만들려는 의도에서 기인한다(그러므로 시각만큼은 철저하게 통치자의 입장에 있다). 실은 『군주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다. 『군주론』의 해석에 이런저런 시도를 가하는 세간의 논쟁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일는지도. 풀이하고, 해석하고, 점수를 매기는― 평론가, 비평가, 일반인― 그러나 이러한 ‘거간꾼’이 없다면 이 지구상에서 비평가의 존재는 물론이거니와 물건을 사고 소비하는 사람 역시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삶은 그만큼 재미없고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애초 마키아벨리의 정치 이론을 내실 있게 소개하려는 이 책의 취지는 소위 ‘한국어판 서문’을 만들어보겠다는 최장집의 머리말에서 드러난다. 그는 세 가지 주제에 초점을 두고자 했다고 밝혔다. 하나는 국가에 관한 새로운 비전, 그리고 정치적 현실주의, 마지막으로 민주적 공화주의가 그것들이다. 상대적으로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정치적 현실주의인데, 하나의 사회는 공공선의 추구나 공적 질서의 창출과 같은 공적 문제를 위한 집합적 결정을 필요로 하게 된다(p.41)― 이것은 분명 공리주의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대의제 민주주의, 즉 국민들이 대표를 뽑아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대신하게 하는 제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간섭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선출직 대표의 역할이 불가피하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특정 엘리트를 선출해 그 엘리트(라 불리는 자)의 통치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이 메커니즘은 실은 이렇게도 변용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보다 나은 엘리트를 대표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대신 정치판에서 싸워 줄 용병을 뽑은 것이므로 언제나 감시, 감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러나 어쨌든 민주주의란 것 역시 통치 체제의 하나일 뿐이다). 여기에 붙어야만 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참여’다. 최장집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귀족들은 민중에 반해 군주와 동맹하거나 귀족주의적 공화정을 고수하기보다 민중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이 그들의 부와 명성을 확대하고 고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마키아벨리가 ‘갈등’의 유익함과 그것의 제도화를 이야기한 것과 함께, 『군주론』이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그가 마키아벨리에게서 추론한 관점 중의 하나는 바로 이 갈등을 인간 정치 행위의 본질로 이해했다는 것이며, 정치에서의 선택은 이상주의적인 최선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최소주의적 접근 내지는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p.52) 그러니까 우리는 최선(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므로)이 아니라 차악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뜬금없지만 이것을 다음의 노랫말로 풀면 이렇다: 「투표는 최선을 선택하는 게 아니고 최악을 피하는 거야.」(「Bullets」 UMC) 처음부터 『군주론』이 민중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장집이 말하는 20장의 중요성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군주는 ‘최선의 요새는 민중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며’, ‘민중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어떠한 요새도 당신을 지켜 주지 못한다’는 점을 군주에게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p.67) 이것은 ‘민중을 다루는 법’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만 같다. 그런가하면 『군주론』을 우리말로 옮긴 박상훈 대표는 또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애초 『군주론』은 메디치 가문에 헌정될 의도를 지니고 있었으나 그렇지 못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은 첨언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진정한 이유가 메디치 가문의 통치자들에게 ‘덫을 놓기’위해서였다는 식의 다소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따라붙는다고 말이다.(p.101) 이것은 그의 저작이 통치자들에게만 헌정되었다면 모르겠으나 이미 『군주론』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읽히고 있으므로 마키아벨리 자신과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엘리트(위에서 언급한)를 ‘엿 먹일 수 있는’ 기회로 탈바꿈했을는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된다. 최장집은 현실주의가 약한 한국 정치에서 우리 모두가 겉으로 좋은 것만 말하고 속으로는 거짓말하는 ‘숨은 마키아벨리’일지 모른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다른 책(『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시민권’을 주장했다. 스키너(Quentin Skinner) 역시 마키아벨리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가 통치자들에게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상기시키는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아도 『군주론』이 통치자의 시각에서 쓰였고 그들에게 읽히는 것이 최초의 목적이었다손 치더라도 여기에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 즉 민중과 참여라는 두 개의 근본적인 모탕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귀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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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에두아르도 라고 외 지음, 신미경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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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버즈북 로베르토 볼라뇨 편을 통해서부터 그에 대한 하나의 비유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이라는 말을 지겹게도 들어 왔다(당시 책값은 666원이었고 이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은 2,666원이다). 버즈북에 실린 글에서 스페인의 문학 편집자이자 비평가인 이그나시오 에체바리아는 전염병을 퍼뜨린다는 시한폭탄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볼라뇨는 항상 문학이 질병과 같다고 했는데, 농담은 볼라뇨의 작품이 문학이라는 병에 감염되지 않게 막아 주는 백신이자 면역 체계의 역할을 담당한다 (...) 볼라뇨의 작품에서 유머는 ‘꿈의 일부분이며 몇십 년 뒤 우리가 파멸을 뜻하는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게 될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을 견뎌 내고 푸닥거리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볼라뇨가 사망하기 3년 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은 항상 행복했으며 적어도 적당히 행복했다고 답한 것으로 보건대, 우리의 유명한 편집자는 볼라뇨의 다분한 신경질적 기질과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괴상한 습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젠장’과 ‘씨발’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볼라뇨 자신의 답변으로 추측하자면 솔직히 그것의 정체가 질병인 것인지 아니면 백신인 것인지 약간 헛갈리기는 하다. 심각하게 절망적이고 대부분의 것들이 파괴된 상황이긴 한데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거나, 솔직한 방식으로 소설의 이야깃거리를 얻었지만 그 결과물이란 것이 지극히 악의적이고 하나의 실종 사건으로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될 적에 더욱 그렇다(나는 빌어먹을 ‘내장 사실주의’의 의미를 당최 알 수 없으며 ― 그럴 노력을 쏟고 싶은 생각도 없다 ―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일하는 금정연 씨가 이 책에서 자신을 ‘후장 사실주의자’라고 쓴 것에 대해서도 그 속뜻을 물어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내게 볼라뇨는 그저 소설가일 뿐이다. 그리고 그를 좋아한다. 책에 빠져서 줄담배를 피우는 것도 좋고, 특정의 소재를 재차 특정의 악과 결부시키는 방식도 좋다. 그는 탐정 소설을 쓰지 않으면서 독자를 탐정으로 만든다. 그에게 들어가지 못할 바늘구멍이란 없고, 유언 집행인 흉내를 낸다. 그는 해체적 양상에서 시작해 신비스런 탐색으로 혼란을 야기한다. 그는 해독하기 어려운 십자말풀이이며 발기발기 찢어버리고 싶은 암호문 같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무죄이긴 하나 유죄가 아니라고도 말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내가 아는 사진에서만큼은 나와 비슷한 안경테를 걸치고 있다(실제로 만나 목격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의 작품들이 좋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볼라뇨에게 지독히도 감 염  되   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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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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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에게 거슬릴지도 모르는 말을 좀 하자면, 내가 보기에 이 『다산 정약용 평전』은 편협한 것이 사실이다. 진실로 다산이 흠잡을 데 없는 평가를 받아 온당하다면, 세평이나 이름난 이들이 다산을 추어주는 시각 역시 매한가지였다면, 그의 인물됨을 이런 식으로 그려서는 다소 (필시) 곤란하다. 그런 만큼 이 책을 읽은 사람으로서 보건대 이쪽 또한 책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에 곤란함을 겪고 있다. 다산이라는 인물에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자가 보는 다산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성인군자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칭찬 일색이다. 그렇다면― 내가 얻은 정보라고는 이것밖에 없으니, 저자와 책에 대한 평보다는 책 속에서 현대로 직핍해 온 ‘어질고 현명한’ 다산에 대해서만 끼적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들에게 목민관의 직책을 내려 주었던 것만으로도 그들은 은혜롭게 여겨야 할 일이건만 백성의 재물을 빼앗고 탐관오리로서 엄연히 법을 범했는데 그대로 놓아주고 죄를 묻지 않으신다니, 어리석은 신의 소견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체로 법을 적용할 때는 마땅히 임금의 최측근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경기 암행어사 복명 후의 일을 논하여 올리는 소」




실로 아이러니 한 것은, 나는 저 신유옥사로 인해 유배된 다산이 그 시기에 남긴 저술로 인해서나마 그를 알아 왔다는 점이다(그렇다고 당시의 탄압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가 줄곧 피력해 온 공정한 수사와 재판, 인재 등용의 공정성, 문벌과 신분제 그리고 지역 차별의 타파, 빈부의 불균등 해소 등 (실현성의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일표이서를 관통하는 그의 의지와 주장은 지금 보아도 정의로운 것이며 공평한 처사다. 그러므로 저자가 이러한 다산으로부터 현대의 부조리를 겹쳐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신유옥사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겨자씨만큼의 잘못을 저질러도 끝내 죽이고 말던 시파와 벽파의 싸움에서 처참하게 패한 다산이 정치적 싸움의 희생물임을 그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요즘 말로 ‘대통합’의 그날을 희구했다고 말이다.(p.348) 그러고는 요순 같은 성인 임금들도 민정을 살피기 위해서는 꼴 베는 나무꾼에게 나라 다스리는 일을 상의했고, 농부나 상인들에게 물어서 백성들의 불편함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일이 정치의 요체라며 ‘소통’이란 말의 의미를 잠시도 동을 두지 않고 덧붙인다. 이것은 이미 말한 다산의 주장과 함께 <성(性) + 행(行) = 덕(德)>이라는 사유 체계― 다시 말해 아무리 훌륭한 성품이나 덕성을 갖추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없으므로, 착한 성품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덕이 될 수 있다며 실천을 강조하는 자세를 본질로 삼은 것을 크게 칭찬할 만한 것이다. 이것은 주자학의 성리학적 사고와는 다른 것인데, 소위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문제에서도 역시 비슷한 견해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주자는 인의예지를 모두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치라 해석했지만 다산은 달랐다. 그는 측은한 마음(惻隱之心)이 행위로 나타나야 인(仁)이 되고, 수오의 마음(羞惡之心)이 행위로 나타나야 의(義)가 되고, 사양의 마음(辭讓之心)의 행위로 나타나야 예(禮)가 되고, 시비의 마음(是非之心)이 행위로 나타나야 지(智)가 된다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입말로 하면, 인의예지의 공효는 행위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었다(지금, 행동하지 않는 철학자가 얼마나 많은가!). 유배 당시의 다산이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에게 보낸 글에서 짐짓 일러 주는 태도 역시 참으로 좋다. 「재물은 자손에게 전해 준다 해도 끝내 탕진되고 만다. 다만 가난한 친척이나 가난한 친구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왜 그런가 하면 형태가 있는 것은 없어지기 쉽지만, 형태가 없는 것은 없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난사람은 난사람이라고 어찌 되었든 봉건사회를 살아가면서 앞서 언급한 의지를 드러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 틀림없으며(조선이란 시대에는 대체로 주자의 학설이 팽배했다), 위에서 따로 인용한 직언을 한 것을 두고도 단순히 임금(정조)과 뜻이 잘 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같은 이유로 시대적 한계와 더불어 다산 개인적인 한계 역시 존재할 것임에도 분명하다. 그는 이미 기득권이라 부를 수 있는 집안 태생이었고 스스로도 상당한 지위의 관료였으며 이런저런 교육 여건 또한 지금으로 보면 ‘빈익빈 부익부’의 주인공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래저래 여러 가지 의미로 이율배반적이다…….




대밭 속의 부엌살림 중에게 의지하니 (竹裏行廚仗一僧)
가엾은 그 중 수염이며 머리털 날마다 길어지네 (憐渠鬚髮日鬅鬅)
이제 와선 불가 계율 모조리 팽개친 채 (如今盡破頭陀律)
싱싱한 물고기 잡아다가 생선국 끓인다오 (管取鮮魚首自蒸)




여담이라면 여담일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다산이 유배 갔던 강진에서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막 옮겼을 때에는 거리가 꽤 먼 마을까지 다니면서 끼니를 해결했는데, 근처 백련사라는 절의 중 한 사람이 초당 곁에 움막을 지어 다산의 식사를 대접했다. 그런데 밥을 짓고 음식을 장만하는 날이 늘어가다 보니 머리도 깎지 않고 수염도 길었으며 불교의 살생 계율을 어기고 생선 요리까지 했다는 이야기다.(p.462) 그 백련사의 중이― 다산이 낙척한 생활에서 겪은 비태, 그가 가진 문제의식, 사회 비리나 구조 악을 대하는 자세와 공렴(公廉)에의 의지를 알아본 바, 그의 인물됨에 푹 빠져버린 것일는지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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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꿈꿀 권리
한동일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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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수많은 동문들이 찾아와 소위 특강이란 것을 했었다. 생각해보면 참 대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공허하기도 한 이야기들이었다. 아마도 당시는 지금보다 더 마음의 여유가 많았을 때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동일 신부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가올 수 있을까. 그의 글은 소설처럼 흥미로우며 하나의 성공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 내가 개인적으로 교우하는 사람들 중의 몇몇이 사회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 그들 중의 어떤 이는 팍팍한 현실과의 타협에서 실패했고, 또 어떤 이는 새로운 꿈을 좇아 모험을 감행한 사람이었다. 현실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것은 참 어렵다. 아니, 어렵다는 말로는 친절한 설명이 아니다. 이 세계를 살아나가면서 ‘현실’이라는 단어와 ‘이상’이라는 단어의 괴리가 좁혀진 적을 나는 잘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해 인생을 꾸려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아버지 세대와 매한가지로, 내 또래 역시 어느 하나만을 취해야만 ‘손쉬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없앤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한동일 신부일는지 모른다. 그가 쉽게 좌절하는 습관을 버리고 ‘나’의 여집합 속에 내재된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속뜻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말한다. 무수한 여집합들을 깨울 수 있도록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자신의 꿈을 믿고 생각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긍정의 힘을 믿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오늘 나는 대학 시절 후배의,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많이 지쳐 보였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까. 우리 사회가 청년들을 점점 더 힘들게 하는 것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이라는 건, 비단 한동일 신부만이 느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힘들어하고 있는 후배에게, 무력함을 느끼며 그저 우두커니 서 있기를 거부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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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일본 문화인류학자의 30년에 걸친 제주도 보고서. 제주의 지질, 동식물 분포, 신화와 역사, 의식주, 종교, 언어, 풍습 등 제주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제주, 아아, 제주!



<만국사물기원역사>
동서양의 여러 사물들에 대한 기원과 역사를 백과사전 형식으로 기술한 책.


천문, 지리, 인류, 과학, 교육, 종교, 예절, 정치, 군사, 위생, 공예, 상업, 농사, 직조물, 복식, 음식, 건축, 음악, 기계 등을 비롯해 음식, 건축, 풍속에 관한 근대의 세부사 또한 엿볼 수 있다.



<도시 인간학>
저자에 따르면 ‘도시 이해의 기호학적 접근’에서 시작된 연구로 결실을 맺은 책. 책은 방대한 근현대 도시 사상의 계보를 수립해나가는데, 건축 이론과 건축 사상을 하나의 궤적으로 잇는다.



<탐정사전>
대중문화의 역사 속에 등장한 중요한 탐정 110명. 셜록 홈즈는 물론이거니와 필립 말로, 콜롬보, 김전일, 코난, 심지어 유불란까지 아우른다. 탐정이란 단지 미스터리 장르의 중요한 등장인물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조건에 반응하는 입체적인 인물 유형이므로, 다양한 관심사와 주제를 함축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또한 흥미롭다.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히틀러 관련 서적으로 기록되었고, 독일의 저널리스트 제바스티안 하프너 사후 15년 만에 소개되는 책. 히틀러의 생애, 히틀러 현상의 배경, 히틀러 현상이 당대와 후대에 미친 영향 등을 놀랍도록 예리하게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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