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메메드 - 상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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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스스로도 단언한다. 「나는 영웅들을 믿어 본 적이 없다. 반란에 초점을 맞춘 소설들에서조차 내가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소위 영웅이라는 자들은 민중이 휘두른 효과적 도구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역자가 소설을 두고 쿠르드족과 터키 정부를 연상케 한다고는 했지만(작가도 쿠르드족 출신이다) 동시에 케말의 그것은 아시모프가 줄기차게 말해 왔던 '미래를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나 결국 소설일 뿐이라는 한숨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ㅡ 실은 이 양쪽 모두 맞는 말이지만. 어차피 민중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영웅은 끝에 가서는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 셈이 될 테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메메드처럼 직접 나서는 영웅의 모습 대신 꿋꿋한 투혼만으로도 영웅이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메메드와 같이 정부의 영향이 거의 미치지 않는 지주의 악행에 맞선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3선 개헌에 반대한 노 변호사 정구영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까? 그는 가족들이 정보부에 신문을 당하는 것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이러한 소설 속의 메메드는 반란을 도모하는 위법자이지만 독자는 이에 개의치 않는다.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를 들이밀면 거기에 반대로 '악법의 속성은 결국 악'이라고 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이것은 소설에서건 현실에서건 모두 적절한 생각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의적 메메드』와 같은 소설은 주인공과 닮은 영웅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그와 함께 변하지 않는 척박함도 함께 남겨둔다. 이것이 단순히 소설이기 때문일는지 아니면 (장소와 인물만 바뀌는) 현실이 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일는지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소설이라는 예술을 공공의 미라 본다면 귄터 그라스의 표현대로 '정치적 책임 의식이 있는 모든 사람이 케말의 호소에 응답'할 수 있도록 추궁하는 것은 결국엔 민중의 몫(책임, 의무, 권리ㅡ 어느 쪽으로 부르든 상관없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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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읽다, 터키 세계를 읽다
아른 바이락타롤루 지음, 정해영 옮김 / 가지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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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로 기억한다. 터키와 한국을 두고 '형제의 나라'라 불렀던 것을 말이다. 내가 터키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고작 그 정도였다ㅡ 물론 그들의 한국전쟁 참전에는 나토 가입과도 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터이지만. 월드컵 당시 3, 4위전을 벌였던 터키와 한국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유니폼을 바꿔 입고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양국의 국기를 함께 펼쳐들기도 했다) 관중 앞에서 세리머니를 했다. 그러나 내가 터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정보나 기억 혹은 감정은 그뿐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세계를 읽다' 시리즈가 여행지 중심의 관광에 관한, 소위 여행 정보서와 다르다는 점이 좋다. 이를테면 터키의 정보를 알려준다기보다는 터키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ㅡ 그러므로 여행 정보서가 아니라 문화 안내서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겠다. 터키의 문화나 관습, 사교, 터키 사람들의 모습, 그들과 친해지는 방법, 터키에서 살아가기 위한 주택, 교육, 교통, 예술, 건축, 스포츠, 대중매체, 일자리……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이 책이 정말 교양서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재미있는데다가, 시쳇말로 '깨알 같은' 일화도 곳곳에 담겨 있어 빨리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이슬람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동성애자의 생활에 대해 친화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포용력을 지닌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물론 지금도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종교적 복장(이를테면 히잡)을 금지하고 있다지만 또 다른 면에서 터키 사람들이 보이는 자유스러움과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모습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다채롭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책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나는 '터키 사람/사람들'에 관한 부분이 가장 좋았다. 그들은 만나면 보통 날씨 얘기는 하지 않는단다. 날씨가 늘 안정적이어서 흥미로운 대화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책에 적힌 지역별 평균 기온으로 보건대 터키의 기온은 평균 13℃ 정도인 것 같다ㅡ 그러면서 '겨울에는 항상 춥고 여름에는 항상 덥다'며 토를 달아놓았다. 남녀가 연애할 때는 어떨까. 터키에서는 남성과 여성에게 기대되는 행동 패턴이 정반대라고 하는데, 요컨대 이런 식이다. 터키 문화는 성적인 면에서 남자들을 억압하지 않는 반면 여자들에게는 정조가 중요해 신부에게는 처녀성이 요구된다. 또 많은 여성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남자와 손잡는 것조차 꺼린다고 한다(이 말을 온전히 믿어야만 할까? 정말?). 그래서 여자는 항상 달아나고 남자는 휘파람을 불며 쫓아다니는데, 타국에 정착한 한 터키 여성은 자신을 쫓아다니던 터키 남자들과는 다른 외국의 남자들을 보며 자신에게 매력이 없다는 열등감에 빠지기도 했었단다. 그런가하면 젊은 연인들은 패스트푸드점 꼭대기 층을 즐겨 찾는단다. 이는 부모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거리에서 손을 맞잡는 것에 약간의 부담을 느낀다니 충분히 이해할만한 대목이다. 아, 그리고 또 있다. 바로 목욕탕이다! 터키의 대중목욕탕에는 한국에서와 같이 때를 닦아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일행끼리 같이 오면 서로 때수건을 사용해 등을 밀어주고, 그렇지 않은 경우 목욕탕의 종업원에게 약간의 돈을 주면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계속해서 책을 읽다 보니 두 남자가 상의를 벗은 채 부둥켜안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레슬링 대회의 한 장면이었다. 터키에서 레슬링은 국민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는데 전국 각지에서 여름 내내 대회가 열린단다. 특히 7월에 열리는 크르크프나르(오일 레슬링) 대회가 가장 유명한데, 몸을 미끄럽게 만들어서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 선수들이 온몸에 오일을 바르고 시합을 치른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작년 레슬링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김현우 선수가 그레코로만형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었는데 당시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가 터키 선수였던 거다ㅡ 뭐, 우연찮게 한국이 터키를 상대로 이긴 경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희한할 법도 하건만 지난 월드컵에서는 터키가 이겼으니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비긴 셈이라 치겠다……. 하여간에 책을 읽으며 과연 터키에 관해 얼마나 알 수 있을지 내심 수상쩍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지만, 다른 여행 정보서와는 확연히 다른 내실을 갖추고 있어서 '대단히 대단하고 굉장히 굉장하게' 만족하는 바다. 이제 나도 터키어 한마디쯤은 할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Türkiye, seni sevdim(튀르키예, 세니 세브딤; 터키, 당신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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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첩 박람강기 프로젝트 4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남궁가윤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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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모토 세이초라면 덮어놓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는 마당에, 지난 『10만 분의 1의 우연』 이후 그의 작품이 출간되지 않은 것에 대해 내심 조마조마하던 차였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두 권은 나올 것이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느닷없이 '박람강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그의 에세이가 출간될 줄은 몰랐다. 내용인즉슨ㅡ 추리소설이란 무엇일까 혹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답한 텍스트라고 보면 되겠다. 내가(우리가) 최근 들어 하고 있던 생각을 그는 꽤 오래 전부터 해 왔다. 이를테면 순문학과 장르문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소위 '중간 소설'이라 불리는 요상한 존재에 대해서도 세이초는 수상쩍게 다가간다. 특히 '가장 에세이답다' 라고 느껴지는 1장이 이 책에서 탁월하다고 느꼈다. 대체 어떻게 쓰인 작품을 순문학이라 불러야 할는지, 거기에 추리적 요소가 어느 정도까지 틈입하면 순식간에 '순문학 → 추리소설'로 변용되는지에 대해 고민거리를 안긴다. 「……소설은 재미가 본질이다. 재미를 잃어버린 소설에서 독자가 떠나가는 것을 아무도 비난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문제를 언급하는 소설이라 해도, 추상적으로만 만들어서 관념적인 사상으로 요란하게 꾸몄을 뿐 모래를 씹듯 무미건조하다면, 많은 독자가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세이초가 묘사한 것과 같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사례라서, 이를테면 '평론가들이나 좋아할 법한 소설'이라는 딱지가 붙기 십상인 것이 사실이다. 세이초 자신도 말했듯 소설 자체가 재미있으면 비평가에게 경멸받는 것만 같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란 앞서 언급했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상으로 요란하게 꾸민'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뭔가 그럴듯한, 무척이나 애매모호해서 그 작품이 대단한 것처럼ㅡ 심지어 문학성이 출중하다는 둥 인간의 본질을 꿰뚫었다는 둥 하는ㅡ  기분이 느껴지는 작품의 대척점에 있는 소설들이다. 물론 이러한 각론이 모든 경우에 딱 들어맞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풍토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러니까 대사와 행동 위주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사유를 꾸미고 명확하지 않은 형용사가 남발하는 작품들이 분명 존재하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작품 또한 존재하는 법이다. 이런 것을 두고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문학성이냐 현실성이냐, 추상의 모호함이냐 구체적 흥미냐 하는 것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명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이 어째서 '검은 수첩'으로 정해졌는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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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A979507695 1 : 1 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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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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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자신을 지겨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스스로가 인생을 지겨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긴 하지만 어찌 됐든 깨끗하게 죽어 버리기로 하고 잠이 들었는데 이튿날이 되어 눈을 뜨고 또 그것이 도돌이표 시간표마냥 반복된다면 단순히 지겨워하는 것을 받아들인 채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그 바보 같은 100회 생일 기념 파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양로원을 탈출해야 한다! 아무리 개똥철학이라도 철학은 철학인가? 정치란 수렁 피해 가기 게임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지만 알란은 그 진창을 향해 이미 한쪽 발을 넣은 지 오래고 그의 뒤를 쫓는 자들은 죄다 족탈불급이 되어버린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프랑코, 트루먼, 마오쩌둥, 스탈린, 김일성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런 자를 찾아낸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므로. 일견 요른 릴의 (국내 번역이) 완결되지 못한 소설 같기도 하지만 이쪽은 스케일이 엄청나다. 뭐, 대단하거나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자면ㅡ 전라도 사투리로 '부앙부앙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꽤나 공을 들였는지 읽는 도중 파안대소를 할라치면 누가 나를 미친놈 취급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부앙부앙하게' 재미있다. 줄거리를 늘어놓기란 또 얼마나 힘든 것인지, 차라리 책을 읽으라고 권하든지 아니면 그대로 복사본을 만들어 낭송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다. 소설에 잠깐 언급되는 인쇄공ㅡ 정서적으로 몹시도 불안한 상태였던 네덜란드 로테르담 교외의 한 인쇄공이(바로 그 빌어먹게 고마운 인쇄공!) 성경의 마지막 장에 하나의 절을 덧붙인 것으로 축약될 수 있다. 다음은 원래의 마지막 두 절을 포함한 것이다.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22. 그래서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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