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7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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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지구대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물론 그쪽은 이미 임관이 완료된 순경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라 『교장』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후 방영된 중앙소방학교의 이야기는 어떨까. 직업 자체는 다르지만 공무원을 '양성'한다는 점에서라면 이쪽과 접점이 있을 듯싶다. 군대에서와 마찬가지로 폐쇄된 공간에서의 규율과 반복되는 훈련. 무엇이든지 지시를 받아 행동해야 하는 그들은 빡빡한 일정에도 힘겨워한다. 소방학교에서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제복과 장비를 착용한 채 응급환자 처치와 이송, 모의 화재현장 실습 등을 경험한다면 경찰학교에서는 불심검문, 몽타주, 이륜면허 강습, 체포술 등을 훈련한다. 어느 쪽이나 위험이 따르는 것은 똑같다. 그렇게 일견 단순할지도 모르는 훈련을 소화하다 보면 어느 새 동작 하나하나가 몸에 배어 생각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게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머릿속에 각인된다. 하지만 그들의 임무는 모두가 꺼리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점차 공무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는 지금이지만 교장(敎場)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찰이 되기 위해 모였다. 경찰을 동경해서든 불신해서든. 『교장』은 그들을 밀착 취재한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추리소설의 방법론을 따라 각각의 단편처럼 모인 글들이 초임과 98기 단기과정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려져 있다. 그중 가자마라는 교관이 모든 이야기에 개입됨으로써 구심점 및 귀결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실례합니다.」 「명함이 있으시면 보여주시겠습니까?」 이름의 한자를 교묘히 틀리게 만든 가짜 명함. 「다치신 모양인데, 어쩌다가?」 손가락의 붕대. 「폭행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다칠 것 같으면 종종 가해자의 손가락을 물기도 합니다.」 「조금 다치셨다고요. 그런 것치고는 붕대를 꽤 두껍게 감았는데요.」 그리고 새 신발. 「그런데 보통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굳이 새 신을 신을까요?」 「그 신발 좀 벗어주시겠습니까? 한 쪽씩 차례로.」 「당신은 아까부터 발밑에서 눈을 못 떼더군요.」 각성제일까. 「깔창 밑에 약봉지를 숨기는 경우가 꽤 많거든요.」 당황하는 행인, 우물쭈물하다 신발을 벗기로 결심. 「그럼 벗을 테니 어깨 좀 빌려주세요.」 단호한 경찰.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흉기를 숨기고 있지 않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단, 우산은 씌워드리겠습니다.」 소설에서 묘사된 불심검문 실습 장면이다. 설사 범인이거나 용의자가 아니더라도 심히 당하는 입장에서라면 불쾌할 수 있다. 더군다나 행인이 그득한 거리 한복판에서는. 그럴 땐 길옆으로 빠져나와 사정을 설명하고 당신이 용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킨 뒤 '협조'를 바란다는 말로 불심검문을 실시한다. 물론 듣기에는 편하다. 어지간히 훈련된 경찰이 아니라면 불심검문을 하는 쪽도 거리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경찰학교, 그 교장에서는 기계처럼 딱딱 맞물려 사소한 감정의 틈입을 막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의 경찰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라면 경찰도 감정노동자라 말할 수 있을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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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 - 20세기를 뒤흔든 모델 살인사건과 언론의 히스테리
해럴드 셰터 지음, 이화란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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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장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람 하나를 두고 어떻게 단정 지을 것인가. 이 두 가지는 인간이 가지는 인식을 고착화시키기에 적절한 관점이다. 과거에는 비난했을 어떤 행동이 오늘날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어 사회적 통념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그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어느 쪽이건 그 사람들이 모인 여론과 더불어 언론의 역할 또한 작용하게 된다. 이 언론이란 것 역시 순기능과 역기능, 그러니까 그 촉매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느냐에 따라 특정 사안의 양상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 『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은 바로 그 언론의 '히스테리'를 주제로 삼고 있다. 희대의 살인 사건.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여론 역시)이 달려들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살인 사건을 다룬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시간과 장소라는 것이 간섭한다. 1930년대의 미국. 대공황과 침체라는 안개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든) 살인 사건'이란 명제는 필시 자극적이긴 하지만 흥미로운 사건이었음에 분명하다. 일종의 3S처럼 말이다. 기묘한 것은 해당 살인 사건이 어느 곳에서 발생했고 또 어떤 사람이 엮여있는가 하는 것에 따라 '화제성'의 여부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부활절. 시간적으로도 얼마나 기가 막힌 타이밍인가. 또 시신의 주인. 바로 아리따운 모델이며 나체로 발견되었다. 그런가하면 그녀는 누드모델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 이러한 '조건들'이 맞아떨어졌다는 점이 당시 사람들과 언론이 들개처럼 달려들 여지를 준 것은 아닐까. '활력소'라고 하기엔 미안한 말이지만 어쩌면 그 시대의 인간들은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너도나도 그 사건에 대해 떠들어대고 언론은 사실이건 아니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내뱉음으로써 구독자들을 자극적인 시선으로 내몰고 부추긴다. 그리고(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그들은 사람 하나를 피해자로 만들 수도 있고 피의자로 만들 수도 있으며 우리는 피의자나 피해자가 아닌 그저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그 무엇인가를 갈구하도록 길들여진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의 상상력이라더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분명 논픽션이지만 하나의 소설처럼 읽힌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은 여기저기에 군침을 흘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보탠다. 끊임없는 소모적 반복이다. 왜 그런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삶 자체가 자극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흥미 없는 삶. 똑같은 모습을 가진 어제와 오늘. 나는 미치광이 혹은 사이코패스와 같은 단어들 역시 태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뭔가 하나의 상황이나 성격을 규정짓고 싶어 하며 그 현상을 어떤 단어로 부를지 고민한다. 혹은 특정 사건 앞에 피의자나 피해자의 이름을 붙여 그 사건을 명명하기도 한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말할 것도 없을 테고. 그러므로 사회규범으로 통용되던 것에서 약간의 일탈이 일어나게 되면 반드시 언론과 구독자(여론)의 합작품이 탄생한다. 선정적 헤드라인. 자극적인 형용사와 부사의 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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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교 이야기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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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 미스터리다. 반목과 화합이 이다지도 어려운 것이 비단 종교에 한해서만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의 자손. 야곱. 이스라엘. 바빌론의 유대인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로 귀환하고 반란과 전쟁 등을 거치며 지내왔다. 유대인 속담에 ‘망각은 포로 상태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언제나 공동체를 앞에 두고 자신의 뿌리를 알 것. 유대인은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은 미래 역시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유대교나 기독교, 이슬람교는 본래 하나였지 않은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출발하여 유일신을 믿는 종교. 물론 그들이 신을 부르는 명칭은 각각 다르지만 모두 같은 존재다. 더군다나 이 세 종교는 구약을 경전으로 삼는다. 그리고 사후세계와 부활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상이한데 곱씹을수록 희한한 대목이다. 기독교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신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예수를 하느님이 보낸 예언자로 보고 있다. 물론 이슬람교는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고 기적을 행했다고 하는 것을 믿기는 한다. 더욱 미스터리한 것은 코란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십자가에 죽은 것처럼 보였다고만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기 전 천국으로 갔고 대신 유다가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믿는다. 더욱이 이슬람교는 예수가 선지자이지만 ‘참’ 선지자는 바로 무함마드라고 여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구원에 대한 견해나 원죄 사상, 십계명 등에서도 다르다. 특히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유대교의 선교활동이다. 그들은 선교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부모가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를 믿으면 유대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방인에게 선교활동도 하지 않는단다. 또 이슬람교는 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는 일종의 증언사를 소리 내어 외우면 다른 절차 없이 곧바로 이슬람교 입교자가 된다고 한다. 기독교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물론 유대인은 로마제국이나 이슬람교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 최초의 이유는 희한하게도 바로 ‘돈’이었다. 돈이 돈을 낳는 이자의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유대교는 이를 구약성경의 구절에서 빌린다. “이방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는 받을 수 있되 너의 형제에게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 다른 종교가 청빈을 덕목으로 삼는 것에 비해 유대교가 대부업을 인정한 이유다. 물론 그들이 언제나 이런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되어 생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확연히 다른 종교와 그 차이가 두드러지게 만든다. 또 시간이 흘러 나치와 대학살을 겪기도 하고. 어쨌든 이들은 모두 뿌리가 같은 종교인 셈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일전에 석가탄신일과 크리스마스에 서로를 방문하는 종교인들을 본 적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반목과 독점은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우월하고 적합하다는 식의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쟁만 있을 뿐이다. 왜 그들은 과거를 과거로 끝내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 만들며 또 미래로 끌고 가려 하는 것인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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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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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보기 힘든 뭔가를 가지고서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가까이 두고 사용하는 물건이 된다. 오늘날에는 'made in'이나  'manufactured in' 'OEM' 따위의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이해할 수 있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줄기차게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던 아버지세대의 차별적 언어습관은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지만. 『메이드 인 공장』은 신문 연재 당시부터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글이라서 (어쩌면 당연하게도)책으로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이 책도 책을 제작하는 '공장'에서 만들었겠지. 나무를 잘라 종이로 가공하고 거기에다가 잉크로 인쇄를 한 뒤 책등에 본드를 발라 겉표지를 붙여서는……. 맙소사, 더군다나 간장 공장 공장장을 찾아간 건 기막힌 기획이었다(철창살 만드는 곳을 탐방하지 않은 건 왜일까?). 그나저나 브래지어 공장을 다녀온 뒤 토막으로 붙인 팬티에 대한 이야기에서 지금도 하얀색 팬티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나는 군 시절 피복류를 담당하던 서무계 보급병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군인들에게 보급되는 하얀색 팬티가 있었다. 심지어 간부도 군용으로 만들어진 하얀색 삼각팬티를 구입했으니까. 그게 10년쯤 전인데 지금도 오줌 자국이 남을 우려가 있는 새하얀 팬티가 만들어지고 있다니. 놀랄 노 자다ㅡ 게다가 당시에는 쫀쫀한 박서가 아니라 트렁크라고 불렀던 펑퍼짐한 것과 삼각 형태의 두 가지 종류밖에는 없었다. 공장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당연히 우리가 몰랐던 이런저런 저간의 사정들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지구본 공장. 소련이 해체됐을 때, 남수단이 독립했을 때 등등 그들은 지구본 데이터를 수시로 바꿔야만 했고 앞으로도 그 일은 반복될 것이다. 콘돔 공장은? 관계자는 동양인들이 선호하는 콘돔 사이즈를 언급하는데 그렇게나 세밀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 달착지근한 향. 딸기, 살구, 포도, 오렌지. 불량품을 확인하는 검수조사에서는 도자기 굽는 도공과 마찬가지로 처리한다. 물론 그들처럼 집어던져 깨뜨리지는 않지만(그럴 수도 없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 그러니까 실질적인 형태를 가진 어떤 물질(물체)을 제조하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로운 과정을 지니고 있다. 일견 상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도 않다. 엄청나게 복잡다단한 메커니즘과 더불어 입체적 히스토리가 숨어있다. 우리가 모르는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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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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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공화국. 「속담 따라 살기」라는 글에서 에코가 만들어낸 유토피아다. 행복 공화국 사람들은 제목처럼 속담에 따라 행동하며 살았는데 의외로 무척 불행하게 살았다. '배가 익으면 스스로 떨어진다'고 했기에 농업에 위기가 왔다. '일을 급히 서두르면 망친다'는 속담에 따라 모든 차량이 금지되었다. 또 '뜨거운 물에 덴 사람은 찬물도 두려워하므로' 위생 개념이 희박해지기에 이르렀고 '흘러 지나간 물은 이미 소용없다'는 이유로 재활용 시스템이 금지되었다……. 에코는 이를테면 지난 수십 년간 진정한 적이 없던 모국 이탈리아를 불행하다고 적었다. 뉴욕에서 만난 파키스탄 택시 기사와의 대화에서 출발한 그는 키케로와 바그너, 초서, 보카치오까지 이야기를 몰고 간다. 『적을 만들다』의 부제는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인데 사실 책을 펼치면 온갖 '잡학다식'에 넣을 만한 이야깃거리들이 즐비하다. 그러니까 이 학회에서 발표하고 저 잡지에 실은 글들을 모아 한데 묶은 거다. 그렇다고 여든 넘어 노년에 접어든 이 남자를 무시할쏘냐. 처음부터 목차 순서대로 뚝딱 읽긴 했지만, 책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토를 달기보다는 차라리 문단마다 주석을 하나씩 달아두는 게 나을 것이다. 물론 브라이언 윌슨 말마따나 나는 이런 순간을 원한 게 아니지만(「I just wasn't made for these times」). 즉 『가재걸음』이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읽었을 때처럼 이 대륙 저 대륙으로 뻗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가 「절대와 상대」에서 언급한 것처럼ㅡ 물은 언제나 섭씨 100도에 끓는다는 사실을 두고, 섭씨라는 걸 먼저 만들고 난 뒤 100이라는 상징성이 큰 숫자에 물이 끓는 것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정해 놓았다고 생각해도 좋을는지 모른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섭씨 30도 정도가 되면 덥다고 옷을 벗고 섭씨 10도 안팎이 되면 춥다며 옷을 껴입는 거라고 말이다. 물이 끓는 온도가 섭씨 100도가 아니었다면 영하 10도가 되어도 우리가 추위 따위를 전혀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요컨대 이것은 비단 『적을 만들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어느 책을 읽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비틀어보다가 또 저렇게 꼬아보는 것. 왜 그런가? 그 스스로도 그런 방식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에코의 글은 우리 나름대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럴 여지가 충분하다. '눈 뜨면 코를 베이니'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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