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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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끝도 없지만 스타크래프트의 밸런스 감각을 생각게 하는 만듦새다. 어떤 세계라도, 그러니까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의 세계라도 지금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이런 세계라면 오늘날의 그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호소인가. 먼저 지구상의 어지간한 나라라면 국민이 국가 원수를 뽑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그만두게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는다. 왜. 왕을 선별하는 국민 자체가 절대적으로 불완전하고 상대적으로 우매한 존재이므로. 열두 개의 나라가 있는 저쪽 세계는 이렇다. 왕을 국민 대신 자비의 생물인 기린(麒麟)이라는 존재가 하늘의 명을 받아 고른다. 기린은 왕이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감시와 진언을 하며 왕이 죽으면 다른 왕을 찾는다. 하지만 일단 왕이 옥좌에 앉으면 무조건 복종하게 된다. 동시에 왕의 정치가 잘못되면 기린은 병을 앓게 되는데 이를 실도(失道)라 한다. 왕이 도를 잃은 탓에 걸리는 병이다. 그대로 두면 기린은 죽고 왕도 죽는다. 애초 왕을 만든 것은 기린이므로. 물론 고칠 방법은 있다. 왕이 마음을 가다듬거나 기린을 놓아주는 것. 왕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 기린의 병은 낫는다.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왕을 찾아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남게 되지만.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는 요코라는 여학생으로부터 시작된다ㅡ 그녀에게 열두 개의 나라 중 경국(景國)의 기린이며 게이키(景麒)라는 호를 쓰는 금발의 남자가 찾아오고, 스포일러라고 할 것까지야 없겠으나 요코는 훗날 경국의 왕이 되기에 이른다. 소설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짐작이 되질 않지만 앞서 말한 묘하고 깨지기 쉬운 균형, 즉 왕이 교만해지면 그를 옥좌에 앉힌 기린(≒국민)이 죽고 기린이 죽으면 왕 또한 죽게 되니 그가 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처신에 있어 소홀해선 안 된다는 것, 그것을 지키며 통치에 힘쓴다면 몇십 몇백 년이고 한 나라의 왕 노릇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그럼 이 십이국의 세계는 순결무구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건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내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거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매한가지라는 것과 이곳보다 저곳은 아름다운 이상향이라는 것 사이에서 말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어떻겠나. 오히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오노 후유미가 과거의 언젠가 「열두 개 나라 전체를 그릴 생각이 없으므로 '십이국기 시리즈'라 부르는 것은 거짓말밖에는 안 된다.」라고 했다는 점, 바로 그거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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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 - 수상하지만 솔깃한 어둠 속 인생 상담
한동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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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듯 부적 아닌 부적 같은 표지로 독자를 1차로 현혹하고 책장을 넘기면 흥미로운 내용이 2차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 말 그대로 '답사기'라서 점과 점집에 관한 해박한 지식보다는 점집에 가기까지의 과정을 비롯해 그 문턱 안으로 들어서서 나올 때까지의 과정을 담는다. 꽤 걸쭉하고 나름대로 과학적으로다가. 신점, 사주, 성명, 관상, 손금으로 파티션을 나누어 방문하고 각 점집마다의 스타일과 방법론, 저자가 받은 느낌 등을 적었다. 나로 말하자면 꼿꼿한 9급 공무원 같은 심성을 지니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파락호에 속한다고도 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위인이고, 그렇게 때문에야말로 점집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으면서도 대체 그것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이었다. 연지 곤지 일색의 볼때기로 기억되는 무릎팍도사 때문인지 일종의 선입관도 있었으나 우연찮게 그 선입관이 사실과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테면 대뜸 반말로 작업을 시작한다든지 곤란한 질문에 요리조리 대처하는 방식이라든지 하는 일련의 메커니즘은 그야말로 '피점술자를 들었다 놓았다' 하기에 충분하다. ①「A와 B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요?」 「어느 쪽이 동쪽에 있어?」 「(머리를 굴려) 둘 다 동쪽에 있는데요.」 「아니. 어느 쪽이 더 동쪽이냐고.」 ②「그동안 엉뚱한 놈들 좋은 일만 실컷 했네. 타고난 팔자가 그래. 그런데 괜찮아, 올해부터 좋아져.」 ③「이 사주는 아웃사이더가 되어야 메인이 돼요. 처음에는 메인이 될 수가 없어요.」 ④「해외로 진출하는 것도 괜찮아. 원체가 고독을 즐기는 성격이니까.」 이것들은 죄다 저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스스로가 피실험자가 되거나 자신의 지인을 실험 대상으로 하여 얻어낸 결과물이다.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멘트도 있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을 터. 뭐, 미신이라거나 과학으로 풀 수 없는 비밀이라거나, 어느 쪽이건 간에 신기방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거를 맞힌들 얻는 게 무엇이겠는가. 모름지기 점집이란 미래를 제시함으로써 손님의 귀를 즐겁게,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이러이러한 방법을 쓰면 어둠을 밝음으로 교체할 수 있다, 쯤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근미래에 그대로 완성형이 된다면 신통하다며 혀를 내두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점집으로 가는 발길을 끊을 것이다. 아니면 다른 점집의 탐방 계획을 세울 수도 있을 테고. 그러므로 점이란 것을 엎어 치나 메치나 내 인생의 솔깃한 상담쯤으로 여기는 게 가장 좋을 듯싶다. 애초 점이란 게 그런 거다. 딱 떨어지는 논리로 중무장했다면 그건 처음부터 수학이나 과학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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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 기획 사무소 니노미야 시리즈
구로카와 히로유키 지음, 민경욱 옮김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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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하세 세이슈스러운 고품격 느와르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겉표지부터 쌈마이적 미학을 풀풀 날리고 있다. 물론 이렇게 표현할 것까지 있나 싶기도 하나, 서로 사맛디 아니하게 뵈는 콤비의 본새로 보건대 작가 본인이 처음부터 우당탕탕 쥐어 패고 쥐어 터지는 모험 활극의 줄거리를 계획했다고밖에 조리가 서질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와 같은 초지일관적 스토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별것 없다. 세간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은가. 미드 형사물은 사건을 해결하다 말고 시즌 2로 고고, 의학물 역시 환자를 치료하다 시즌 2로 달려간다는 것을. 한국 드라마는 어떠할까. 사건 해결에 노심초사하다가는 연애에 눈을 뜨거나 의술을 펼치기에 앞서 제 개인적 연애 소양을 키울 심산으로 아리따운 여성에게 입맞춤 지도편달을 부탁하는 마당에 뭘. 최근 드라마로 제작된 <미생>의 원작자 윤태호 씨 말하기를 「공중파에서 찾아오셨던 분들은 앉자마자 하는 이야기가 '러브라인 안 나오면 안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고 토로하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어정쩡하게 남의 연애사 일거수일투족을 뒤쫓다 심각한 주화입마에 빠지기보다는 다소 진지함에는 취약하다 할지언정 하나부터 열까지 일관된 퍼포먼스를 보고 싶다, 이쯤의 생각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또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는 기본적으로 시리즈를 이어나가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강력히 느껴지는 바 마니아적 부흥을 기대할 수도 있을 듯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일본산 소설을 읽을 때 가장 머리 싸매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이름이나 지명 등이다. 나는 일문학을 전공하기 먼저 이런저런 외설스러운 컨텐츠에 발을 담근 전력이 있었으므로 i'm coming이나 いく에서 비롯된 각종 외국어를 기억하고 익히는 것에는 그다지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일전에 가수 비의 노래를 듣고는 괜히 혼자 뜨끔했었지). 하지만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는 여기에 더쳐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야쿠자가 등장하고 있는 까닭인데 개개의 어깨들은 각자의 조직에 몸담고 있을 테고 그 조직의 본거지 또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등장인물의 이름, 그들의 본거지, 야쿠자라면 그들이 속한 조직(이름), 조직의 본거지, 인물들의 이동경로 등을 모두 파악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물론 소설 첫머리에 인물 관계도란 것을 그려 넣어 친절한 장인정신을 발휘하고는 있으나 막상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 것이다. 저분이 백 법학박사인지 이분이 박 법학박사인지는 나도 잊어버리고 당신의 머릿속에서도 휘발되고 만다. 작가도 이 점을 우려한 것인지 소설 중반에 주인공으로 하여금 레스토랑 냅킨에다가 조직 상관도를 그리게 한다. 하여 초반에는 독자 제위의 암기력 향상에 도움을 줄 것이나 어느 정도 잘 따라가기만 하면 알아서 정리해주시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주인공은 일단 둘이다. 니노미야 케이스케라는 짐짓 회의론자스러운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건설 컨설턴트ㅡ 실은 건설현장과 야쿠자를 중개한다. 나머지 하나는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구와바라 야스히코. 당연히 이쪽은 야쿠자ㅡ 18K에다가 테만 20만 엔이 넘는 안경을 쓰고 다니다 니노미야에게 맡겼는데 그만 잃어버리고 만다. 이 둘은 담뱃갑 흡연 경고문구 정도로는 설명이 되질 않는 질 나쁜 콤비가 되어 협력한다. 니노미야 사무실의 리셉셔니스트로 보이는 유키라는 여성도 있다. 바수밀다적 농밀함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좀처럼 등장의 기회가 없어 아쉬운 인물이다(다음 편에서 기대해 보자). 소설의 원제인 '역병신(疫病神)'만 보더라도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의 니노미야와 구와바라는 서로에게 자질구레한 사건을 가지고 온다. 그들에게는 각각 상대방이 역신인 거다. 시건방 떨다가 헤비한 주먹에 국부 마취되어 백기 투항하고 마는 야쿠자를 본 일이 있는가. 이쯤 되면 그저 동네 양아치라고 치부할 법도 하지만 어쨌거나 구와바라는 틀림없는 야쿠자다. 희한하게도 그의 아버지는 교육자였고 거꾸로 니노미야의 부친은 전직 야쿠자였다. 이 어찌 부전자전이란 사회 통념의 메커니즘을 단박에 깨뜨리고 '난 아버지처럼은 안 될 거야!' 하며 떼를 쓰는 우리네 삶의 통렬한 단면이 아닐쏜가. 이 둘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은 폐기물 처리장 유치사업부터인데, 그로부터 붉은 모란과 검은 도마뱀 문신을 한 덩치에게 두들겨 맞고 바다에 뛰어들며 업체 사장을 납치하는데다가 사료창고에서 로프에 매달리기까지, 당연히 대부분 폭력을 당하는 것은 니노미야. 종반에 가서는 둘의 상황이 역전되어 감금된 구와바라를 니노미야가 구출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인생사 기브 앤 테이크라는 절절한 교훈이 아니던가. 물론 언제까지 조폭 이야기가 유효할 것인가 하는 염려스런 탄식을 모르는 바 아니나 재미있는 것 앞에 장사 없다. 실로 조직폭력배라는 것이 우리가 곁에 두고 꺼내보고 싶을 때마다 소환해낼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이상과 현실이라는 간극이라는 점에서 수긍해야만 할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과 대척점을 차지한 주제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승복하게 마련인 법이니까(게다가 이렇게나 재미있는데!). 지금까지 미주알고주알 쓰긴 했지만 단 한마디로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를 설명해보자면, 즉 폐기물 처리장 유치사업을 둘러싼 보니 앤 클라이드스러운 어드벤처 서스펜스 액션 코믹 하드코어 범죄 미스터리 활극 버디 무비를 표방하고 있다고 결론짓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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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주세요!

14기 신간 평가단 도서 중 좋았던 5권의 책은 아래와 같다.



<투명사회>

<힘내라 브론토사우르스>

<피파 마피아>

<대한민국 치킨전>

<문학의 아토포스>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피파 마피아>인데

다른 세 권은 이미 가지고 있던 책이었기 때문에

온전한 의미의 신간 평가단 도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까닭이다....

....라고는 해도 나머지도 괜찮은 책들이었다.

<피파 마피아>는 흥미로움과 시의성 모두를 잡았기에

위의 다섯 권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내용이 꽤 탄탄해서 신문을 읽는 건지 소설을 읽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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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4-10-28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파 마피아는 사실 드리면서도 반신반의하면서 드렸는데 많은 분들이 흥미로워해주셔서 정말 기뻤어요!! 그런데 나머지 책들을 가지고 있는 책들이었다니 +_+ 신간평가단과 아잇, 님의 싱크로율이 엄청났네요!

좋은 활동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계절 보내세요~

그레코로만 2014-10-28 16:18   좋아요 0 | URL
담당자 님이야말로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흙ㅠ
 
[문학의 아토포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문학의 아토포스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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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제대로 읽었다면 오웰의 문학과 정치적 태도에 대해 언급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문학과 예술을 정치와 한데 모아 버무리든 갈라놓든 상관없이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는 장소성은 중요하다. 물론 책에서는 아토포스를 끄집어내고 있으나, 비장소성을 이야기하려면 일단 그 비장소성이 가능한 공론장의 성격이 중요하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온갖 고유명사가 난립하는 글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입말의 중요성과 파급력을 찾게 된다. 개개의 명사를 좋아하는 전문가나 평론가들이라면 모르나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했다면 친절함이 없는 글(문학, 예술)은 헛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보자면, 내가 보기엔 당분간은 정치적 사건을 일상적인 공간으로 데려오기는 힘들다. 반대도 마찬가지(앞서 언급한 '당분간'은 '잠시'를 뜻하는 짧은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유인즉슨 바로 장소성 때문이다. 이 도전은 광장을 광장 그대로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실패에 다가설 것이고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누락되고 말 것이다. 물론 예술은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러나 언제나 예술은 정치에 도전하는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며 정치는 그것을 쉬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에 제대로 된 장(場)이 개입되지 않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둘의 연애는 잘 이루어질 리 없는 거다. 실험 혹은 침입이 허락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는 이 논의가 더욱 더 활발해지기를 소원한다. 문학적이라고 한 번도 규정되지 않았던 공간에 틈입해 그곳을 문학적 공간으로 바꾸는 일. 하지만 그것은 진실로 가능한가? 정치는 없고 정치적인 것들만 가능한 장소에서 그와 어깨동무를 하는 일이? 그것이 가능하다손치더라도 입맞춤은 할 수 없을 터다. 정치에게 문학은 불온한 것이기 때문이며 이미 불순물에 대한 예비를 마친 까닭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휘발성을 띠게 된다. 내가 줄기차게 이야기하려는 장소성. 당연히 논의 자체에서 주의를 돌리고 싶지는 않다. 이 이야기는 지금이 아니라 훗날을 도모하려는 것이므로. 문학이 정치에 파고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경계선을 넘을 수 있는가'와 같은 말이다.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지만 결코 그러지 않아서도 안 된다. 여기서는 어떤 정당성도 찾아볼 수 없다. 책은 문학과 정치의 허망한 관계를 입증하지 않고서 까발리고 깨부수려는 시도를 한다. 사회가 보수 일변일 때에도 그렇지 않을 때에도 어려운 과제다. 전자라면 설명이 필요 없을 테고 후자라면 대중의 피로와 연계된다. 어쨌거나 조금만 편하게 접근하고 쉽게 풀어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럼에도 책은 꽤 공들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굳이 독자된 입장에서 랑시에르를 풀 필요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으나 문학과 정치의 연애 혹은 공공의 미(美)라는 것을 심화시킬만한 증거로 삼을 수는 있겠다.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얘기해보고 싶다면.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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