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게임
마야 유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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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주도 안 남았네요.
후...빨리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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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완전 범죄
호조 기에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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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완전 범죄>가 ‘복선의 마스터피스‘라 불린다고? 아니다. 이 작품은 ‘사용자 오류‘를 일으키는 혼서(混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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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가지 다쓰오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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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의 해설을 먼저 봐야겠다. 그는 한 가지 흠을 언급하는데 이를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장애물이라 표현하고 있다. 나도 절반쯤은 동의한다. 갑작스레 점프하듯 아무런 설명 없이 지나가기에 문제점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동시에 그 설정이 없어도 작품의 내용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복선의 정교함이란, 예컨대 '3-1=1'이라는 상식적으로 나올 수 없는 의외의 해답을 도출하기 위해 다른 장소에 '-1'을 당당하게 숨기는 것에 있다." 역시 미쓰다 신조의 말이다. 이처럼 등하불명(燈下不明)의 멋진 틀을 구현해내는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가 선사하는 만족감은 가히 환상적이다.

복선의 복선, 복선을 뒤잇는 복선— '인간 ○○○○'를 넘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미스디렉션, 레드 헤링, 맥거핀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작중 주인공(대학 교수)이 연구하는 댐 건설의 '균열'이 당시 사회의 분위기와 맞물린 또 하나의 복선이자 암시였음을 깨닫게 되고. 서사·줄거리가 통째로 공중분해되면서 독자는 그대로 함락되어 버린다.

과거 미제 사건을 해결하려는 경찰처럼 이 작품에서는 대학 교수인 주인공과 학부장의 딸이자 비서이며 총무과 직원인 콤비가 그 역할을 맡아 수행한다. 어릴 적 헤어진 후 익사했다는 동생에 대한 의문을 품고 그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을 그린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는 미스터리 독자에게 익숙한 폐쇄성 짙은 마을을 무대로 삼는데, 전쟁의 상흔이며 마을의 제물(祭物)이며 연못의 전설과 같은 요소들이 개입되면서 이를 한데 버무린 트릭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그리고 그 트릭의 비밀은 하나에서 끝나지 않고 두 번 세 번 어쩌면 그 이상 연거푸 폭풍처럼 몰아닥친다— 따라서 가지 다쓰오에게 '풍속파 추리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고는 하지만 미스터리·추리 요소가 절대 빈약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동생이 살해당했다는 임종 직전의 어머니의 말 하나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탐정 소설의 재미를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 —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 반 다인의 본명 — 는 자신의 책에서(<위대한 탐정 소설>, 북스피어, 2011) 탐정 소설을 '별종'이라 선언하며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모든 세부 사항이 완벽하고 긴밀하게, 마치 한 점의 편직물처럼 직조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고 한 바 있다.

이는 독자의 작품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시사하고 강조하는 설명일 텐데, 나는 본래 수수께끼 풀이의 해결과 설명 자체만으로도 만족하는 독자인 데다가 설령 그와 같은 작업에 참여했다손 치더라도 내게 이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의 미스터리는 당최 도전하기 힘든 과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한 꺼풀씩 밝혀지는 대담한 진상은 전율 그 자체이다.

혈육의 죽음에 의문을 품음—그가 살던 곳에서의 조사 시작—마을 사람들의 꺼림칙한 반응—위험에 빠지는 주인공—외부에서의 조력자 등장—해결. 미스터리에 익숙한 독자에겐 빤하게도 보이는 수순이다. 하지만 결말 또한 그럴까? 앞서 언급한 '인간 ○○○○'가 하나의 실마리로 등장하는가 싶었으나 뒤미처 '미스터리 해결편' 격인 종장에 다다르면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될는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갖가지 장치나 수단에 정통한 독자라도 이렇게 휘몰아치는 트릭의 정체 앞에서라면 그저 멍하니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당연히 여기에 작가의 기만은 없고, "살면서 단 한 번도 살의를 느끼지 못한 사람은 없다고 봐. 오히려 때때로 살의를 품는 인간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중 대사가 범죄와 살인의 레종데트르(raison d'etre)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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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바운드 하트
클라이브 바커 지음, 강동혁 옮김 / 고블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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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다가 — 고드핸드(수도사들)를 비롯해 베헤리트(르마샹의 상자)까지 — 여기에 덧붙여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마저 떠오르게 하는(지옥을 겪고 돌아온다는 측면에서)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 이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헬레이저>의 고어함이, 비록 텍스트이지만 원작에서도 상당히 잘 표현되고 있다.

알라딘의 램프와 달리 이쪽은 지옥을 경험케 하는 르마샹의 상자 — 비탄의 배열장치 — 를 시작으로 피 칠갑의 그로테스크가 시작되는데, 이야기의 얼개는 이렇다. 복잡한 큐브를 조작해 퍼즐을 푼 주인공 프랭크 앞에 (선악의 개념이 없어 보이는)세노바이트라 불리는 수도사들이 지옥의 포털을 열듯 나타나 모종의(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고, 이에 응한 프랭크는 기대했던 쾌락의 세계가 아닌 지옥과도 같은 고통에 몸부림한 뒤 현실의 사람들을 죽여 흡수하고 신체를 되찾아 탈출하려다가 수도사들에게 들켜 결국 죽음을 맞는다는 것(사지가 찢겨 해체된다).

(당연하게도, 지니는 램프의 주인을 고통 속으로 끌고 가지 않으며 <쥬만지>는 애교 섞인 장난처럼 보일 터다)

꽤나 징그럽고 불길해 보이는 묘사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왠지 모르게 매력적으로 읽힌다. 글쎄, 어째서일까. 쾌락주의자인 프랭크를 위시로, 그를 탐탁지 않아 하는 동생 로리, 프랭크와 불륜 관계였던 로리의 아내 줄리아, 로리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커스티까지, 인간이 인간을 탐하고 쾌락을 좇으며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모습을 그 총체라고 할 법한 세노바이트를 통해 그린 '본능의 현현' 때문이 아닐는지.

더불어 여기에 최초 프랭크가 쾌락을(사도마조히즘에 기반한) 기대했으나 수도사들은 그에게 지옥과 같은 고통만을 안길 뿐이라는 발단은 물론이거니와, 소설 도입에서 프랭크가 조작하는 신비로운 아티팩트, 그가 수도사들에게 끌려가기 전 마스터베이션의 흔적으로 방바닥에 남은 정액에 다른 사람의 피가 더해져 자신의 부활(!)을 돕는다는 설정, 파우스트의 계약이 프랭크에겐 시작부터 잘못된 약속이라는 것과 같은 괴기스럽고 기이한 묘사도 한몫할 것이다.

애초 열지 말았어야 할 상자는 욕망이 고통을 불러온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또한 프랭크를 고통에 빠뜨리는 수도사들은 악의 존재가 아니다. 고통과 쾌락, 지옥과 낙원의 구분을 하지 않을 뿐. 따라서 피 칠갑의 고어가 고통 찬미의 세계관으로, 징그러운 외피가 고통의 쾌락으로 변모하는 흐름 속에서— 프랭크 또한 살아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고 죽기에는 너무 살아 있는(살지만 살지 않고 죽지만 죽지 않는 것) 무언가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어둠을 통과해 본 자만이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 어둠에서 가져온 모든 것은 외부 세계의 밝음 속에서는 무용할 뿐이다"는 장 아메리의 말마따나 프랭크는 어정쩡하게, 육체의 붕괴와 인간성의 훼손으로 말미암아 보통의 감관을 상실한 채로 떠돌고 만다.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이 비극적 이야기가 독자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바로 프랭크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 실재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완전히 다른 질서, 겪어보지 못한 것에 도달하는 것은 쾌락과 고통 어느 것에나 해당할 것이다. 여기에는 절대적인 같음도 없고 절대적인 다름도 없다. 당사자를 이끌어줄 지표 따위 없을는지도 모른다. 프랭크는 사후의 삶과 현세의 삶 모두를 경험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며, 그를 바라보는 독자의 관음적 태도는 — 썩 괜찮긴 해도 — 아무런 의미가 없다. 폭력과 고통을 우리 삶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프랭크라는 인물로 표현되듯, 그 경계 어디쯤엔가 주저앉은 채 영원토록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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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
구라치 준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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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하는데 첫 번째 단편 제목이 무려 '본격 오브 더 리빙 데드'. 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읽어보니 정말로 본격이었다. 그것도 좀비를 이용한 본격.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고 여긴 것도 잠시, 수록작들을 차례차례 거치면서 이 생각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본격 오브 더 리빙 데드', '당황한 세 명의 범인 후보', '그것을 동반 자살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리고 표제작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까지. 그야말로 "시체의, 시체에 의한, 시체를 위한" 작품집이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책(<죽음의 무도> 황금가지, 2010)에 공포 영화에는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이 있다고 썼다. 좋은 식사, 훌륭한 이탈리아 와인 한 병, 그리고 황홀한 섹스를 즐기며 지긋한 나이가 되어 침대 속에서 평화롭게 죽는 '좋은 죽음'과는 반대로 공포 영화가 '나쁜 죽음'이 주는 두려움을 이용해 최상의 결과를 획득한다고. 그렇다면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도 여기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구라치 준은 공포보다는 미스터리 요소를 듬뿍 담아 으스스한 작품들을 써냈다.

특히 이게 정말 가능한 이야기일까 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발상이 뛰어났던 '그것을 동반 자살이라고 불러야 하는가'는 책 제목처럼 '시체로 노는' 모습을 보여주고, '본격 오브 더 리빙 데드'에는 거기서 더 나아가 좀비가 등장한다. 시체를 넘어 좀비를 모델로 한 추리소설이라니, 기괴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동시에 논리적이라서 재미없을 리가 없다고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족이지만 '본격 오브 더 리빙 데드'야말로 발군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단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시쳇말 — '시쳇말'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여기서는 좀 우스울 수 있지만, 시쳇말은 그 시대의 유행어라는 뜻으로 '시체(屍體)'와 다르게 '시체(時體)'라 쓴다 — 로 '사망 플래그'의 한 전형도 살짝 차용하고 있다. 참고로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공포 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에서는 공포 영화에서의 사망 플래그, 클리셰를 7가지로 정리한다. 의심, 남자다움, 독립심, 못생김, 호기심, 무책임, 카섹스. 하나같이 영화 속에서 죽음을 맞는 인물들의 특징이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이 정도로 지적 유희가 담긴 놀이라면 시체로 논다기보다 시체로 마술을 부리는 셈'이지 않을까. 시체로 시작해서 시체로 끝나는 작품집은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수록작이자 표제작인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는, 진상이 밝혀지는 것과 함께 안락의자 탐정이 줄곧 책을 읽는 우리와 같이 있었다는 뜻밖의 즐거움도 준다. 정말이지 단숨에 읽었다. 네 편의 시체 이야기… 라 하면 뜨악할 독자가 여럿이겠지만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는 추리/미스터리 소설집이지 호러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저 기이한 모습과 상황에서의 시체들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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