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르문학 ㅡ 사실 '장르'라고 따로 구분짓는 건 싫지만 ㅡ 이 좋다. 특히 메이드 인 재팬 상품들을. 워낙 그 나라가 발달했기에 그런 것도 있고,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나는 그쪽 취향이다. 그렇다고 서양의 것들은 안 읽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심농(매그레 시리즈)이나 대실 해밋(『몰타의 매』), 에코(『장미의 이름』) 등은 또 침을 흘리며 좋아한다. 마찬가지로 '순'문학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나 오웰의 『동물농장』 그리고 인문도서 또한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도 살면서 읽어 온 책들은 대부분 일본산이었고 그때문인지는 몰라도 대학에서 일문학을 전공하기까지 했다(한국문학에 알러지가 있는 건 왜일까?). 일본에서는 해마다 엄청난 양의 책들이 출간되지만 그 중 추리, 미스터리로 묶일 수 있는 작품들이 인기가 있다 ㅡ 일본에 있을 때 서점이나 지하철 역 가판에 가보면 으레 상위권 60% 이상이(그냥 내 눈짐작으로) 추리 ·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게다가 관련상 또한 무지하게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장르'문학이라고 일컫는 작품들이 인기가 있다면 다른 것들은 어떨까. 한마디로 '문학판이 크다'는 것일 테지. 일단 에도가와 란포가 설립한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을 비롯 본격 미스터리 대상(정확하지 않은 내 기억력에 의하면 요걸로 교고쿠 나쓰히코가 디자인한 트로피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번역 미스터리 대상, 일본 미스터리 문학 대상,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상, 일본 미스터리 문학 대상 신인상, 메피스트 상, 마쓰모토 세이초 상, 애거서 크리스티 상(하하하;), 소설 추리 신인상…… 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을 위시로 랭킹을 선정하는 것도 있다. 한국은 어떨까. 일단 내가 알고 있는 건 한국 추리 문학상이나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밖에 없다.
나는 일본이 부럽다. 콕 집어 말한다면 일본의 문학판이 부럽다. 근데 돌이켜보면 추리 · 미스터리의 판도도 많이 변해왔다. 사회성 혹은 사회상의 변화 때문일까. 치안이 위태로웠던 시절의 범죄소설은 대중에게 크게 어필했다. 잘은 모르지만 2차대전 직전까지 추리소설의 발전은 엄청났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후는? 탐정 혼자 설치고 다니기엔 버거워졌다. 탐정과 범인과 트릭 외에 '뭔가'가 더 필요했다. 그게 시대상의 변화에 따른 사회성이 아닐는지. 일단 기계가 발달했다. 인간이 추리할 수 있는 제반이 그쪽으로 많이 옮아간 게 사실이다. 이래서는 재미가 없다 ㅡ 이런 맥락에서 최근 잇달아 국내에 번역되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물은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면서도 반갑고, 또한 이런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작가의 역량에는 무한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추리 · 미스터리 소설은 일단 '철저하게' 재미가 있어야 한다. 뭐, 그럼 다른 장르는 재미가 없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다시 말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문화의 추이를 살피면서 익숙하지 않은 무엇 혹은 익숙하더라도 새로운 접근방식의 내러티브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인간의 본성이 어떻고 자기성찰이 어떻고 유려하고 해박한 지식이 어떻고 해도, 어쨌든 재미가 우선이다. 근데 이 재미란 게 대체 뭘까? 또 문학성이란 건 뭐고? …… 이런 논의가 계속되는 한 '추리소설'은 절대 '추리문학'이라고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국 사회 · 한국 문학판의 꼰대 기질이 싫어지는군. 음(내가 지금 왜 이런 글을 적고 있는 거지?). 개인적으로 트릭을 중요시한 작품보다는 범죄자의 성격이나 그 범죄(자)에의 동기부여, 끈적끈적한 몰입도가 매력적인 작품들을 (상대적으로)좋아하는 편이다.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그것을 끌어나가는 이야기 자체가 나에겐 중요한 요소로 다가온다고 할 수 있다. 나 혼자만의 언어로 '재미'란 단어를 머릿속으로 정의할 땐 웃기고, 슬프고, 짜증나고, 무섭고, 불편한 기타 등등의 모든 감정을 수반한다. '넓은 의미로서의 재미'다 ㅡ 그래서 '순수소설 vs 통속소설'이란 구분법도 때려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한다. 아아, 추리 · 미스터리물은 외로워라.
그건 그렇고…… 짤막한 글을 쓰면서 당최 이 글의 의미는 무얼까,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