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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최장집 교수의 <군주론> 독해. 이 이상 설명이 필요할까.



<전진하는 진실>
<나는 고발한다...!>를 비롯해 드레퓌스 사건에 관해 저술한 격문 십여 개를 에밀 졸라 자신이 직접 엮은 선집. 졸라의 인터뷰와 해설, 화보도 들어있단다.



<아이웨이웨이 블로그>
아이웨이웨이가 2006년부터 블로그가 폐쇄당한 2009년까지 블로그에 올렸던 포스트 3천여 개 중 110여 개를 간추려 묶은 책. 그의 입에 재갈을 물려도 삶은 흘러간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이 책 역시 말이 필요 없다.



※ 4월은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책을 읽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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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동물기>

조선시대 선비들은 동물을 어떻게 관찰하고 사유했을까.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다소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는 모양이다. 과학적인 접근법이 지금보다는 덜했을 테니 그럴만도 하다. 동물학적 지식보다는 당시를 살았던 저 옛날 사람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올해의 판결>

<한겨레21> 취재팀이 2008년부터 선정한 사법부의 판결을 모았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법이라는 활자를 들이민 결과가 모든 경우에 있어서 타당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국민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종전에 없던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 판결들을 선정했다고 한다.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개정증보판이 참 많이도 나온 책. 세계를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누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을 법도 하건만 리처드 로빈스의 치밀한 논점은 그것을 말끔히 상쇄시킬만 하다.



<폴 존슨 근대의 탄생 1, 2>

19세기 초반 단 15년의 시간 동안 근대란 것이 탄생했다는 폴 존슨. 서지정보에는 '역사상 다시는 오지 않을 특별한 시대'라는 문구가 있는데, 글쎄, 대체 근대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금을 '현대'라 부를 수 있기는 한가? 어차피 세월이 흐르면 지금은 후세들에 의해 과거로 불릴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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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배려와 관용을 나누는 <예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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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뮤니케이션북스 지만지 시리즈의 보급판(문고본이라 하긴 힘들지만)이나 범우문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일신추리문고, 과거 열린책들의 Mr. Know 시리즈, 그리고 북스피어의 에스노벨(에스프레소 노벨라) 등등, 이 정도밖에 문고본 혹은 페이퍼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문고본 형식을 띤 책들은 이게 다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한국 출판시장에 나온 문고본은 희귀할 정도다. 국내 출판시장의 여러 가지 특성도 있겠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싶다. 물론 수요도 썩 많아 보이지는 않으나 공급 역시 원활치 않은 게 사실이다. 반대로, 출판사의 경영상의 이유도 있겠으나 독자의 인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의 본질은 읽는 데에 있는 것이지 소장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니 당연히 하드커버는 소장가치가 높다, 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진정 책을 아낄 마음이라면 장정에는 구애되지 않아야 하는 게 맞다. 물론 외형에서 오는 소장의 가치(장기 보관)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모든 경우에서 질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ㅡ 당연히 문고본이라 해서 다음날 바로 책 귀퉁이가 찢겨져버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값싼 종이를 사용한다거나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다는 이유로 문고본이 싫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당최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문고본이란 '태생적으로 그런 것이다.' 이를테면 가수들의 정규앨범과 미니앨범의 차이쯤 되려나. 당연히 여기에는 기획부재로 인한 무분별한 작품 선정이나 고전의 재탕은 없어야 한다. 참신한 기획과 정가제도(유통구조 개선도 함께) 그리고 독자들의 인식제고가 동반된다면 문고본의 활성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정말 그럴까?) ㅡ 덧붙여 잠재적 수요를 깨우는 기획 역시 필요하다. 심지어 문고본으로 선집이 아니라 전집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예컨대 한 작가의 저작을 출간하기로 결정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비록 졸작일지라도 모두 다 출간하는 기획 말이다(열린책들 홍지웅 대표의 말).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그 작가의 작품이 '뜨면' 다른 출판사에서 저작권 계약을 하고 출간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는 게 최대의 문제로 남는다. 전집을 내고자 하는 출판사에게 선의로 저작권을 양보하는 일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모든 경우에 해당될 수는 없다. 어쨌든, 에스노벨 시리즈 001 『위대한 탐정 소설』(북스피어, 2011)의 발행인의 말에 적힌 것처럼 ①장르 문학 작가가 썼다면 픽션도 좋고 논픽션도 좋다, ②분량은 길지만 않으면 단편도 좋고 중편도 좋다, ③어떤 책에는 논픽션 하나만 실릴 수도 있고 어떤 책에는 단편 두 개만 실릴 수도 있고…… 와 같이 자유롭게 출간하다보면 독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분명히 반응하게 되어있다. 왜? 좋은 기획이 있으면 구입하는 독자가 있으므로. 그럼 그게 꼬리를 물고 자꾸만 문고본이 생산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문고본(또는 페이퍼백)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그리고 앞서 다소 희망적으로 휘갈긴 게 사실이지만…… 한국 출판시장에서의 문고본이 성공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한다. 그럼에도 얌체같은 생각에, 누군가는 꼭 문고본을 출간해줬으면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도 ㅡ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ㅡ 좋은(재미있는) 책은 반드시 독자가 알아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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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를 읽는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나. 모교의 Y 교수(아니, L 교수였나?)는 '꼬실라이제이션'을 위한 방편이라고 했다. 원서 한 두 권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 여학생들로부터 선망(?)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나 뭐라나. 적어도 나에겐 그런 허망함 따윈 없었고 자연스레 도일(渡日)하면서 많이 읽게 된 것으로 기억된다. 당연하게도, 일본이니까 일본어로 된 책을 볼 수밖에 없었던 거다……. 파트타임 월급의 대부분은 책과 음반을 구입하는 것에 써버렸었다. 유메노 규사쿠의 『도구라 마구라』와 그의 단편집, 사와키 도고의 『천국의 문』, 마쓰오카 게이스케의 시리즈들, 무라카미 류의 단편집, 우타노 쇼고의 『시체를 사는 남자』 기타 등등. 이 서점, 저 서점, 역 안의 가판대를 가리지 않고 책이 있는 곳이라면 발을 멈췄다. 귀국할 때 EMS 보내는 것도 일이었지만. ……원서를 읽는다는 것은 어렵다. 아무리 전공이라지만 한국어가 아니면 반드시 힘든 부분이 생긴다. 번역이라도 해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더 그랬을 테지. 어쨌든 의미만 알고 가면 됐으니 '죽을 정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역시 세로쓰기는 익숙하지가 않다. 아직까지도 일본문학을 많이 읽고는 있지만 지금은 주로 번역본을 찾는다. 요컨대 귀찮은 거다. 그런데 막상 읽다 보면 이따금씩 정말 괴상한 번역들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심지어 원서에는 이러저러하게 써졌을 거란 추측이 가능할 정도로. '그런 표현이었다면 이렇게 옮겨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번역본이긴 하지만 일본산(産) 책, 특히 문학이라면 역자를 소개한 페이지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러다 보면 무슨 공학을 전공했거나 하는 다소 엉뚱한 사람들도 있다. 요즘은 일본어 한 두 마디씩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런 건가, 하다가도 그래도 이건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번역이란 건 ㅡ 누군가의 부업이 아니라 적어도 전공자가 뛰어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전문화가 필요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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