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 - 철학자 김용석의 '김광석과 함께 철학하기'
김용석 지음 / 천년의상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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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노래하는 노동자. 사람. 사람들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 김광석을 위한 이야기를 김용석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일 수 있겠다. 김광석은 우리였다고. 얼마 전 그가 남긴 멜로디에 노랫말을 붙여 발표하는 기획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런 만큼 시간이 흘러도 그가 우리 곁에 놓아둔 흔적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개인적으로는 가사를 덧붙이지 않고 그저 그대로 두었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긴 했으나). 김광석이 노래하는 음악뿐 아니라 특히 노랫말에 있어서는 아무리 시간의 틈이 있다 한들 우리 삶 곳곳을 파고든다. 본문을 인용하자면 이런 식이다. 「'몇 시야?'라는 평범한 질문을 살짝 비틀어 '시간이란 뭘까?'라고 묻는 순간 모든 게 확 달라진다.」 김용석의 말대로 일순 세상이 물구나무서며, 몇 시냐는 물음에는 바로 답할 수 있지만 시간이 무엇이냐고 묻는 데에는 말문 자체가 막히고 말기 때문이다. 노랫말이라 하든 철학이라 하든 김광석이 불렀던 노래에는 그런 무한한 생명이 있다. 그러한 것들을 과연 얼마나 온전히 이해하겠느냐만, 얼마나 온몸으로 부대끼며 느끼겠느냐만,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노랫말처럼 역설과 유희를 통한 극복과 타개의 몸부림은 언제고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그래서 이따금 그가 '민중'과 '낭만'만으로만 부각되는 것이 다소 저어될 때가 있다. 한쪽에선 삶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부의 발췌만으로 의미를 협소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시 부르기'가 흡사 '마지막으로 부르기'처럼 엄중해지고 언어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하고 성기게 만나는 것은 우리가 곧잘 세상만사 즐거움이 없는 상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텐데, 그 속에서 입맛대로 이것저것을 골라 달큼하게만 맛보려 해서는 안 된다. 김광석이 이 세계의 모든 낱말을 노랫말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가 내어준 시간의 생명이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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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 조선 최고의 과학자
조선사역사연구소 지음, 김광일.송윤선 사진 / 아토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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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전에서 장영실의 이름을 딴 과학 정보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됐다. 박테리아부터 첨단 IT 기술까지 과연 장영실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국내에 장영실 과학관, 또 해외 루마니아에 한인 기업가들이 성금을 조성해 장영실 교실이란 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았다(갑작스러운 이야기일지라도, 과거 5만 원 권 지폐가 만들어지면서 장영실 정도의 얼굴이 새겨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릴 적 그 많던 위인전 속에서나 읽었던 장영실. 이제 성인이 되어 다시 읽는다. 당연히 분량도 많아지고 내용도 늘어나니 그때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처음으로 접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아산 장씨로 태어났고 동래의 관노 출신이라는 점보다 더 확실한 것은 그가 남긴 업적인데, 책에는 그 업적이 발휘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어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무엇보다 장영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세종일 것이다. 신분의 귀천으로 인해 관직과는 거리가 먼 장영실이었으나 세종이 늘 강조했던 것은 바로 득인위최(得人爲最), 바로 인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당시의 신분을 초월한 인재등용 방식은 지금 생각해도 파격적인 처사라 여겨질 수밖에 없다. 다소 극적인 비유이긴 하나 인턴이나 신입사원이 능력을 인정받아 어느 날 벼락처럼 회사의 임원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가 남긴 발명품은 백성을 위하고 실용적인 것들이었으며 세종이 남긴 한글 또한 식자층을 대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통치권자가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다룬 책이나 매체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현실에 빗대어보면 그런 차이점을 더 크게 느낄 수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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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학습혁명 - 어떻게 배울 것인가 마음챙김
엘렌 랭어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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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적으로 여학생들은 ‘참한 소녀’가 되라는 가르침을 받는데, 이는 ‘들은 대로 고분고분 따라 하라’는 말과 같다. 반면 ‘멋진 소년’이라는 말에는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지는 말라는, ‘명령한다고 그대로 행동하지 마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p.36) 랭어가 제시하는 전형적이고 너무나도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사례다. 이러한 절대적 형식이랄까, 관습이랄까, 즉 일종의 학습이란 것은 자연스레 유형화 과정을 만들어 우리 생활의 윤활성을 없애버리곤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의미한 사례. 바로 놀이가 일이 될 때다. 나는 이것을 직업과 연관시켜 보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는 오늘날 본인 스스로가 어릴 적 꿈꾸었고 현재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는 사실과도 어울린다. 반대로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경우라면 처음엔 당연히 일을 놀이처럼 여기고 진취적으로 본인의 직업을 대할 텐데, 그것이 점차 즐거움뿐 아니라 일정 성과 또한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기 시작하면 곧 놀이가 일이 되어버리는 과정 위에 놓이게 된다.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놀이가 슬슬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랭어는 이렇게 말한다. 일이란 대부분의 경우 처음부터 즐겁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따라붙는 평가가 그러한 가정을 이끄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거의 모든 활동이 일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중 상당 부분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건 아닐 테지. 나는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는 말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 나 자신이 아닌 내 외부에서 내려지는 평가가 애초엔 없던 불안감마저 만들어낼는지도 모른다. 마음챙김과 마음놓침. 다소 생경하기도 한 용어를 우리에게로 데려 온 랭어. 교육과 학습과정의 함정과 정답이라는 환상을 전혀 다른 오답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다르게 상상하는 방법을 전하며 자기인식을 촉진하게끔 만드는 마음챙김의 어머니. 이 책은 그러한 학습에 관한 거짓 통념들과 그것을 깨려는 노력으로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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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 수업 - 삶의 길목에서 다시 펼쳐든 철학자들의 인생론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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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칭찬에 순간적으로 춤을 추었다가 아무것도 아닌 비난에 한없이 절망한다. 책을 시작하는 페이지에 대문짝만한 활자로 적힌 문구다. 당연하게도 주어는 우리(나)로, 철학자 안광복이 전하는 삶의 쓰다듬음. 칸트가 됐건 니체가 됐건 플라톤이 됐건, 그들의 행적을 좇아 그대로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잠시 귀 기울일 만한 조언 정도는 될 수 있겠다. 네가 하려는 바가 마치 자연법칙처럼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게끔 행동하라. 칸트가 이렇게 말했단다. 이어 칸트를 다시 한 번 인용하는데, 거짓말을 해서 돈을 빌리는 경우이다. 설사 내가 이익을 얻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해도 괜찮은지 말이다. 내가 하려는 행동을 다른 사람들 모두가 한다고 상상해보면 정말이지 끔찍할 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얽히고설키는, 그래야만 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이용한다. 이렇게까지 자괴감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은 사실이나 오로지 산술적으로 차갑게 돌이켜보면,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없는 경우 아마도 그 사람과는 더 이상 만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이야기는 달라지는 거다. 뒤이어 이어지는 칸트의 또 다른 말. 다른 사람들을 수단일 뿐 아니라 항상 목적으로 생각하고 대하라. 현재는 짧고, 미래는 불확실하고, 과거는 확실한가? 제대로 삶을 가꾸고 싶다면 과거를 곱씹어보아야 하는가? 세상만사 한풀이하듯 가만히 앉아서 관조하기만 할 필요는 없는 건가? 내게 주어진 문제를 풀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이 끝나기 전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다. 원래는 내 몫이었던 일에 대해서 말이다. 나와 그/그녀/와의 관계.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로부터 이해받는 것. 우리가 우리 각자를 보호하고 다른 사람까지 보호하는 것. 이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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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9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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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올림픽 관전기. 일단 개막식을 볼까나. 1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에, 전혀 트집 잡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화장실에라도 가려고 하면 '죄송합니다'를 연발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좌석과 좌석 사이가 비좁아서일까? 그래서 되도록 화장실에 가지 않도록 볼일도 미리 보고 맥주도 참는다고 했다. 나 역시도 여러 해 전 스이도바시의 도쿄돔에서 자이언츠와 호크스의 경기를 볼 때 그랬다. 좌석 옆 통로마다 맥주를 파는 분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바람에 계속해서 맥주를 들이키긴 했지만 그때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서 경기 후반에 들어서는 아예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었다. 하루키는 곳곳에 화장실이 많다는 이유로 맥주 마시기 좋은 브리즈번의 경기장도 소개해주고는 있다. 그럼에도 나는 별로 구미가 당기질 않는다. 술을 한 잔만 마셔도 얼굴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벌게지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도쿄돔에서는 왜 그렇게 술을 마셨던 것일까. 아마도 담배를 피우기가 어려워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그렇게 좋아하는 야구든 뭐든, 경기장에 직접 찾아가 관전하는 경우가 없었다. 다시 개막식 부분으로. 하루키는 개막식 이벤트를 보며 '스티븐 스필버그가 디즈니랜드의 의뢰를 받아 연출한 바그너의 악극 같았다'고 평한다. 돈을 많이 들여 장대하고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시간이 너무 길고 기본적으로 지루했다고. 그만한 시간과 노력과 지혜가 이런 식으로 낭비됐구나, 하고 여겼던 거다. 그거야 뭐,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으나 일견 공감은 간다. 2시간이나 경기장에 선 채로 있어 다소 지쳐 보이는 선수들을 목격한다면 말이다. 그런가하면 일본과 미국의 야구를 보러 간 경기장 그렇게나 귀엽다면서 호들갑을 떤다. 이런. 매일이라도 가고 싶은 구장이라니. 당신은 담배를 끊었으니 별 상관없겠지만 말이지, 나 같은 사람들에겐……. 하여간 경기장에 관한 이야기는 또 있다. 바로 육상 트랙. 어수선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당연하다. 올림픽이나 선수권대회 같은 걸 슬쩍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필드에서는 이런 경기가, 트랙에서는 저런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집에서 편히 누워 보는 텔레비전 중계가 아니니 이를 깔끔하게 전달해 줄 중계나 해설 따위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올림픽 상업주의, 광고를 접하는 것만큼은 다를는지도 모른다. 현장에 있으면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광고판을 목도하게 될 테니. 특히 경쟁사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코카콜라를 보면 실소가 나온다. 코카콜라가 경기장의 소프트 음료를 도맡고 있어 시드니 거리 전체에서 펩시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거다. 코카콜라에 잠식된 올림픽이라는 건가. 그걸 비웃으려는 듯이 일부 관람객들이 몰래 펩시를 경기장으로 반입했다는데, 이에 화가 난 코카콜라가 펩시를 들고 입장하려는 사람을 저지하라며 올림픽 위원회에 항의까지 했단다. 이것과 관련해 상술이란 맥락에서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생각난다. 책에도 나오듯 택시를 탄 하루키가 라디오 토크쇼에서 들은 내용이다. 「축구에서 스물셋 이하 제한은 대체 뭡니까 (...) 왜 축구에만 그런 조건이 있는 건지.」 「제일 열 받는 건 심사위원이 있는 스포츠더라고요 (...) 판정 기준도 불명확하고, 아무도 납득하지 않잖아요.」 옳소, 옳소. 그의 말대로 축구는 U20, U17, 올림픽대표, 국가대표 등으로 나뉜다. 권투만 하더라도 어떤가. 라이트플라이, 플라이, 밴텀, 페더, 주니어페더, 라이트, 웰터, 주니어라이트, 주니어웰터, 미들, 슈퍼미들, 헤비…… 젠장, 그만합시다. 이렇게 매일같이 올림픽 경기장에 다니는 무라카미 씨. 마지막으로 그가 가방에 넣고 다니는 필수품 목록을 적어놓은 부분을 보자. 선글라스와 안경, 자외선 차단 크림, 녹음기, 생수, 랩톱, 휴대전화, 철도시각표와 공식 가이드북, 미디어패스, 필기도구 등등. 나는 여기에 가스가 가득 찬 라이터와 담배도 추가하리라. 개폐가 확실한 휴대용 재떨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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