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잠 밀리언셀러 클럽 145
가노 료이치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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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하고 소박하달까. 말미에서 드러난 반전의 주인공은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가리켜 묘사한다. 혼자서는 나쁜 짓을 할 용기가 없어서 누군가를 끌어들이고 싶고, 나쁜 짓을 하기 전에 미리 누군가의 허가를 받아 두고 싶은 그런 사람이라고. 나쁜 짓을 하는 자신을 막아 줬으면 하고 자기도 모르게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깨끗한 거리에 주저하다가 어느 한곳에 버려진 자그마한 쓰레기를 보곤 제 손에 들린 것도 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면 다음 사람도 같은 곳에 오물을 버리고, 또 다른 누군가도 자꾸만 거기에다가 쓰레기를 투척하게 된다는 이야기일는지. 『창백한 잠』은 사진집을 준비 중인 카메라맨 다쓰미 쇼이치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폐허 같은 마을의, 역시 폐허가 되어버린 호텔을 중심으로 허허로운 사진을 찍던 그에게 어떤 여성이 나타난다. 아니, 가만가만 누운, 죽은 상태의 여자 하나가 다쓰미의 앵글에 들어온다. 그가 서 있던 마을의 공항 건설 계획을 반대하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던 저널리스트 아이자와 다에코. 그리고 다쓰미의 신고로 경찰과 함께 달려온 지역 신문기자 안비루 고로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불타기 전의 호텔, 그 앞에서 찍은 의문의 사진과 사진에 찍힌 의문의 남녀 넷, 사라진 자와 쫓기는 자 그리고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 작은 어촌의 새벽녘 푸른 실루엣, 그 창백한 무늬를 배경으로 일주일 남짓 동안 벌어지는 사건들……. 책을 덮은 후엔 다소 허탈한 감도 든 것이 사실이다. 이는 부인할 수 없고, 소설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취향,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독자라면 그러구러 소소한 흥미를 가지고 충분히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드보일드한 맛이라거나 피 튀기는 액션, 꼬리를 무는 복잡한 추리의 과정 등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부족하나, 어지럽게 스케일만 크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으로 이름을 외우는 것조차 버거운 쪽보다는 낫다.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풍경과 비교적 작은 무대는 이야기에의 몰입을 배가되게 하고, 카메라맨 다쓰미의 추리 과정은 맥 빠지게 쉬이 느껴지다가도 어느새 진실을 향해 다가서 있다. 거듭 생각해도 다이내믹한 맛은 덜하지만 차분한 느낌의 소설이다. 잠들어 있던 진실이 깨어났다가 일순 모든 것을 껴안은 채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물론 이래서야 참 속 편한 결말이라고 여길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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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사이언스 클래식 25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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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만 할 수 있었던 물질을 발견했다, 난제를 풀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종종 눈에 쏙 들어오는 과학적 성과들에만 귀를 기울이곤 한다. 그리고 리사 랜들은 책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는 과학자들이 수행하고 있는 구체적인 연구와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학적 의문이 무엇인지를 소개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말하자면 과학의 본질을 해명하고자 하는 것에 주안점이 있다는 뜻인데, 온전히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리송한 부분이 남아있기는 하다. 과학적 식견이 딱히 없어도 읽을 만한 책인 것만은 확실하나 어딘지 모르게 내 독서와 이해력이 다소 부족한 모양이다. 쿼크, 렙톤, 핵력, 전자기력 등등 입자 물리학과 표준 모형에서 쓰이는 용어들 또한 아직 쉽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대폭발 이론. 대폭발 이론은 우주가 137.5억 년의 생애 동안 처음의 작은 크기에서 지금 1000억 광년의 크기로 성장해 왔는지를 말해주는 이론이다. 여기서 과학자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처음에 무엇이 폭발을 일으켰고, 그 폭발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하는 것, 그리고 폭발한 것의 크기가 정확이 얼마였는지 하는 것. 하지만 그녀에 의하면 대폭발 이론은 우주가 시작된 최초의 순간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지만, 우주의 역사가 그 후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는 잘 알려주는 매우 성공적인 이론이다. 그런데 아마도, 대체 우주에 '물질'이란 것이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 더 흥미로울 것만 같다) 어쨌든 빅뱅이나 힉스, 암흑 물질, LHC 등이 책 속에서 어지러이 돌아다니는 마당에 어느 하나에만 국한된 이미지를 그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럴 수도 없다). 그녀는 말한다. 과학자들이 무언가를 '안다'라고 하는 것은 일정 범위의 거리나 에너지 영역에서 잘 검증된 예측을 내놓는 생각이나 이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뿐이라고. 나는 과학자들이 합리적인 추리 과정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환자의 병을 추측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답을 내놓는 의사들 또한 매한가지). 그들은 언제나 생각하고, 추리한다. 비과학자들보다 정밀한 관측 하에서. 물론 훗날 그들의 가설과 추측이 일거에 뒤집어질 수도 있을 터이지만, 그것은 일순의 과정에 불과하다. 새로운 이론과 발견이 나타나면 기존의 것들은 수정되고 폐기되겠으나 정, 반, 합의 복잡다단한 과정 속에서 과학은 발전하고 한층 더 진보된 지식을 낳는다. 광활한 우주에는 분명 지구와 지구인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무자비한 공간의 낭비가 아닌가, 하는 말이 떠오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연구실과 실험실 안팎에서 그 빈 공간에(이 시점에서 빈 공간이라 여기는 바로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내고자 할 것이고, 그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지도록 할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순수하게 호기심에 의해 유도된 연구야말로 과학 그 자체를 진보시킴과 동시에 우리가 사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획기적인 기술적 발전을 이끌어낸다는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왠지 과학이 흥밋거리라곤 찾기 힘든 학문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지고 있는 이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단기의 과학적 성과에만 집착하는 인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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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작가 - 43인의 나를 만나다
장정일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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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말대로 나는 아직 신문이라고 하면 4절지에 인쇄된 종이 신문을 떠올린다. 윤전기 속을 지나 현관 앞으로 배달되는 바로 그 여러 장의 종이 뭉치. 그리고 거기에서 변형된 인터넷 미디어를 이야기하며 김어준을 인터뷰한다. 김어준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고민 일반에 대한 대략의 공통분모를 알게 되었다 한다. 하나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또 하나는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이 겪는 고통만 각별하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서 말한다. 자신은 본능주의자이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생겨 먹은 대로 사는 것이 장땡이란 간단한 주의. 나도 그와 판박이라면 판박이라 할 수 있겠으나 자존감 면에서만큼은 다소 떨어지는 것만 같다. 내 나름의 개똥철학은커녕 삶에 대한 미련 또한 별반 크지 않으니 말이다. 장정일은 자신이 만났던 저자 전체가 자신의 편견이자 그의 존재 증명(알리바이)이라 털어놓는데,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장정일 본인이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룬 사람들이거나 그가 바라보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다시 한 번 인용하겠다. 책 후반쯤 등장하는 김용규(이 부분을 읽기 전까진 그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에 따르면 고대로부터 철학에 주어진 주요 업무는, 인간의 삶과 세계의 다양성 속에서 또한 영속하는 시간 속에서 부단히 명멸하는 환영들을 관통하며 불변하는 '그 어떤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나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한다. 그 철학을 하는 철학자들은 철학이 보여 주는 것을 실제로 그 자신들이 보여주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자면 행동하는 철학자, 즉 철학자들은 행동해야 한다는 것. 그런 측면에서 이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써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 또한 행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장정일이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부러워할 만한 인상을 품고 있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 그들처럼 살아가고 싶다, 왜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들처럼 행동하지 못했을까, 하는 또 하나의 고민이 생기고 만다. 『장정일, 작가』의 부제는 '43인의 나를 만나다'이다. 그가 만난,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오롯이 나 자신이란 의미에서 그럴 터다. '나'와 '너'가 다름이 아니며, 그러므로 여기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과 같은 의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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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논 아이가 행복한 어른이 된다 - 놀지 못해 불행한 아이, 불안한 부모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 행복한 성장 1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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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면,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컷 논 아이가 행복한 어른이 된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혹은 신념처럼 믿고 있는 것은,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는 것. 그런데 때때로 강제성을 띠듯 늘 불안감을 짊어지고 사는 아이들을 보게 되고, 흔히 그런 아이들은 편안하고 무사한 장래라는 미명 아래 부모들의 대리만족 속에서 지내기도 한다. 여기에 개입하는 가장 큰 명제는 현재의 즐거움인가 미래의 즐거움인가 하는 갈림길이 좌우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러한 사고방식의 차이가 아이들로 하여금 행복과 불행을 인식하게 만든다. ‘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동학대와 다름없다.’ 책의 소제목 중 하나다. 놀이를 빼앗은 사회가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놀이가 아이들의 기본 권리의 상징이기 때문이고 동시에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최초로 획득하는 자유 권리라는 점이다. 책에서 접한 우스꽝스러운 단어가 두 가지 있다. 바로 사이보그형 아이, 백과사전형 아이라는 말이다. 섬뜩하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게 지적인 수준에서 어른을 모방하려고만 하고 그 나이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사회성 부족을 꼬집는 설명인 것만 같다. 조금 더 심각한 자세에서 보자면 장애라고까지 할 수 있을 듯하다. 흔히 부모들이 저지르는 그릇된 주입 중의 하나는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사례로 들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일 터다. 비겁하게도 특히 육체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말이다. 공부를 못하면, 공부를 하지 않으면 훗날 어른이 되어 ‘저 사람처럼’ 살게 된다는 훈계. 백번 양보해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치자(물론 이 사회를 돌아보자면 분명히 귀한 대접과 천한 대접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공부와 관련지어 그것을 하지 않으면 장래에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아이들을 현혹시킬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다른 부모를 교훈 삼아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이 조금은 더 넓은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책에서 인용하는 어느 덴마크인의 말은 다음과 같다.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직업의 귀천이 있었어요. 빈부 격차도 있었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것이 사라지고 덴마크 전체가 평등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 말이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렇게 말한 이는 직업의 귀천과 빈부 격차가 사라진다고 느낄 만큼 그 사회가 개선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 아니던가.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야 할 것은 그저 어른 흉내를 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회에서 행복한 어른이 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각성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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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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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들이 노년층에 비해 월등히 많았고 지속적인 성장세가 보이던 때.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 지금의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그러한 믿음이 청년들의 가난과 무직을 미덕으로까지 보이게 했던 시절은 이미 흘러갔다. 특정된 직업 없이 파트타임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 쪽의 수입이 대기업에 입사한 사회 초년생의 연봉보다 더 낫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일본에서의 일 년간의 생활에서 (순수하게 경제적인 개념으로만 보자면) 느낀 것은, 이렇게 파트타임만 평생 할 수 있다면 먹고사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는 것이었다(당시 나는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한 달 총수입은 최소 20만 엔이 넘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면 정규직으로 확실히 취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은 거의 없을 거라 한다(한국도 매한가지). 니트, 프리터 등의 단어로 표현되기도 하는 오늘날 청년의 이미지는 누가 만들었는가? 얼마 전 일본 방송의 일부를 잠시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우리 아버지 세대와 청년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약하다,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왜 지금의 청년들은 도전하지 않는가, 이것이 어느 중장년의 말이었고, 이에 답하는 청년의 말은 대략 다음과 같은 식이었다. 지금의 사회는 누가 만들었는가, 바로 기성세대인 당신들이다, 당신들이 만든 세계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전을 하라느니 말라느니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 되었지만 하여튼 그런 뉘앙스를 풍겼던 청년의 답변이 기억난다. 『무업 사회』는 일전에 읽었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과 자연스레 겹쳐진다. 후자의 행복은 포기된 행복이며 전자의 무업은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무업이라 해도 좋을 것만 같다('어느 기업에서건 경력자만 채용하고 있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 가서 경력을 쌓으라는 건가'처럼 꾸짖음과 같은 농담이 떠오른다). 부모에의 의존에서 정신적 압박을 받고, 오랜 무직 기간에 의지가 꺾이고, 수도 없이 받은 불합격 통지에 스스로를 구석으로 내몰고, 이력서의 공백이 마치 범죄자의 그것처럼 여겨진다. 고된 노동보다 일할 수 없는 괴로움이 더 크다는 청년들(「취직 안 하니?」 「전 문과(전공)인데요.」 이런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 나 또한 그들 중의 하나다). 이러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사회생활 속에서 노동하지 않으면 해당 사회에 참여할 기회가 박탈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고, 더불어 인간관계 또한 협소해져 사회 안쪽으로 진입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무업 사회는 사회의 인식과 안전망의 미비 속에서 탄생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추상적 시스템과 메커니즘이 여간해서는 쉬 전환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고통이라니. 그들이 느껴야 할 노동의 기쁨과 보람은 어디쯤에 있는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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