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센스 부정선거 도감
프로파간다 편집부 엮음 / 프로파간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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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거란 뭐냐.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를 치른다는 뜻풀이는 물론이거니와, 주로 독재자들의 집권 연장에 맞닿아 있다는 특징이 있다. 때로는 사전 선거운동, 금권 선거, 투표함 바꿔치기, 개표 부정, 관건 선거, 유령 투표, 흑색선전, 막걸리 선거, 릴레이 투표, 등등 수많은 신조어와 파생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십당오락(十當五落)이라는 말도 있는데, 10억을 쓰면 당선되고 5억을 쓰면 낙선한다는 뜻이다. 본래 하루에 4시간 자면서 공부하면 대학에 붙고 5시간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의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신조어에서 파생된 말). 이런 방식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부정한 선거 행태는 소위 양심선언 없이는 겉으로 드러나기 힘든 법이다. 더욱이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로 보건대 과거부터 이어져왔던 폐단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란 요원하게만 보인다.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해 바르지 못한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결심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꽤 많이 있었던 까닭이다. 물론 그 반대급부도 있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에 따르면, 1992년 당시 얼마 전까지 법무부 장관이던 김기춘과 부산시장, 부산시교육감, 부산지검장, 부산기무부대장, 부산경찰청장 등이 모인 '초원복집 사건' 이후, 김기춘은 그 후로 12년간 국회의원을 지냈고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으며, 당시 부산경찰청장은 이후 국정원 차장을, 당시 부산지검장은 이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기도 했다(이런 판국이니 1956년 도의원 선거 환표 사건을 폭로한 박재표 순경과 같은 사람들조차 없었다면!). 책에는 부정선거와 그 유형, 번뜩이는 기법(!), 부정선거를 폭로하거나 그에 가담한 인물들에 대한 너저분한 역사가 실려 있다. 등록 방해(후보자가 제출한 등록 서류를 꼬투리 잡아 출마를 막는다), 환표(換票, 상대 후보 표를 자기편 표로 바꾼다), 피아노표(기표된 투표용지 다른 칸에 인주를 묻혀 무효표로 만든다), 유령투표(어린이, 사망자, 행불자 등 가공의 인물을 유권자로 만들어 대리 투표한다), 그리고 닭죽 사건(야당 참관인에게 수면제를 탄 닭죽을 먹여 잠들게 한 사건)이나 대선 자금 불법 모금(특히 '차떼기 사건'이 유명하다), 후보자 사퇴 매수(후보자에게 금품을 제공해 사퇴를 유도한다)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 부정선거의 유형을 담았다. 물론 지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더불어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 미등록 선거사무소 운영과 같은 최근의 일들도 있다. 부정선거의 기법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고 또 오늘날에도 버젓이 존재하는데, 시대상과 여건에 따라 그 변천을 보자면 가히 혀를 내두를 만하다. 훗날 내용을 보완해 보다 더 자세한 사건의 내막과 후속처리까지 담긴 책을 펴낸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다. (말미에 '부정선거 고사 문제지'가 있으니 본문을 잘 숙지한 다음 도전해보시라)







이미지 출처: 출판사 홈페이지 http://graphicmag.co.kr/wordpress/?p=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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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문학의 매혹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4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홍인수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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름이면 항상 떠오르고, 또 찾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공포라 정의될 수 있는 영화와 소설. (영화 《더티 댄싱 하바나 나이트》도 여름만 되면 자연스레 생각나긴 하나 좋은 음악을 제외하면 다소 진부한 설정일 따름) 그중에서도 특히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에 매료되게끔 하는 《이벤트 호라이즌》을 자연스레 찾게 된다(반대로 겨울이면 《나 홀로 집에》를 틀어놓고 소파와 한 몸이 된다). 나는 나를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는 매체라면 기꺼이 주머니를 비울 의향이 있는데, 《이벤트 호라이즌》은 충분히 그럴 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흔히 이 영화는 코스믹 호러로 분류되기도 해 다소 마니아를 위한 작품이 아닌가 하고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코스믹 호러라는 말은 똑 부러지게 정의되지도 않는다. 대개 '우주적인 공포'랄까, 미지의 강력한 존재 앞에서 희생양이 된다는 식의 공포로 회자될 뿐. 이 『공포 문학의 매혹』을 쓴 러브크래프트 자신의 작품들이 바로 그러하다(이 책에서 러브크래프트 자신이 '코스믹 호러'라는 말을 쓰고는 있으나 그의 작품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단어다). 하지만 사실 말이 코스믹 호러이지 그것은 공포의 근원과 패턴을 잘게 잘라 나눈 결과 중의 하나밖에는 되질 않는다. 러브크래프트가 책을 시작하며 적은 첫 문장을 보자.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나는 이 말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미지의 것(실체는 있으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야말로 우리에게 공포심을 주게 되는 거라고. 이 세계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앞에 나타난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또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시선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면 그 앞에서 공포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나. 물론 『공포 문학의 매혹』은 읽으면 읽을수록 어렵고 지루할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장담한다. 그도 그럴 것이 러브크래프트의 이 책은, 시종일관 작가와 작품을 나열하면서 그에 대한 설명만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호러 문학 전반을 순식간에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엄지손가락을 제꺽 들어줄 수 있겠다. 머리와 꼬리 없이 알맹이만 쏙 빼서 독자의 입에 넣어준다는 느낌이다. 때문에 이와는 약간 다르긴 하나 킹의 『죽음의 무도』 또한 곁에 두고 읽어봄 직하다. 거기에서 킹 역시 러브크래프트를 언급하는데(그러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외부의 악'이라는 개념을 잘 파악해 훌륭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고 칭찬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 번역된 러브크래프트 전집엔 다종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으나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이번에도 '외부의 악', '보이지 않는 존재', '미지의 것' 등이고. 뭐, 이야기가 엇나가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름 = 공포]라는 등식은 언제고 성립한다고 본다(물론 겨울을 배경으로 한 공포 영화나 문학도 있겠으나 공포 문화는 여름이 아니면 별무소용이다. 심지어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제목 자체에 '여름'을 넣어가면서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따지고 보면 《엑소시스트》도 코스믹 호러라 볼 수는 없지만(그렇다고 스릴러도 아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것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토 준지의 만화나 스티븐 킹의 소설들에서도 살인마나 괴물 등이 아닌 '전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등장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역시 마찬가지!). 보라, 잔혹한 살해 현장이나 핏물이 난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또는 소설을 두고 우리는 '공포'라는 말을 잘 붙이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대개 '스릴러'로 불리기 때문이다(더군다나 스릴러물은 훨씬 많은 범주의 다양성을 확보한다). 그러므로 역시 공포란, 미지에 대한 반응이 당위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실생활에서 직접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사례는 당연히 '보험 가입'이 아닐까? 내가 어떤 병에 걸릴지,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공포를 느낀 뒤 자연스레 다가오는 안도와 평온 속에서 이전의 공포와는 상반된 쾌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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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샹떼 - 세계 영화사의 걸작 25편, 두 개의 시선, 또 하나의 미래
강신주.이상용 지음 / 민음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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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씨네샹떼』와 같은 책은 가혹하다. 『씨네샹떼』엔 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택시 드라이버>도 없고 이 세계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버디>도 없으며, 이 세계에서 가장 머저리 같은 <위대한 레보스키>도 없다. 히치콕의 <싸이코>보다는 <이창>이 실려 있었으면 했고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보다는 <라임라이트>를 얘기했으면 싶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내가 줄기차게 인간에 대해 곱씹는 것은, 누가 됐든지 간에 무엇을 만들 때보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가지고 노는 걸 더 좋아한다는 습성이다. 때문에 동시에 드는 생각, 나는 이렇게 봤는데 이자들은 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지(1. 생각의 차이 혹은 전문가 집단의 전문가답지 않음), 정말 감독이 작정하고 의도한 게 맞기나 하는 건가(2. 헛다리 짚기), 고작 시계 하나와 쥐 한 마리를 가지고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 같은데(3. 꿈보다 해몽), 그럼에도 이 부분은 기발했어(4. 이제야 좀 낫네), 등등.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이런 습성에서 기인한 저마다의 다종다양한 해석은 재미있는 것이며, 그 흥미가 충족되려면 고교 수능 모의고사 언어영역에서 이러쿵저러쿵 미주알고주알 주저리주저리 씨불이는 답안지의 천편일률적 보기 항목과는 반드시 달라야만 할 거다. (특히 이 책에서는 강신주가 조금이나마 어깨의 힘을 뺀 듯한 느낌인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비일상을 걷어내는 효과를 얻는 동시에 편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 비일상을 걷어낸 만큼 안정적 일상이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강신주와 이상용은 <싸이코>에서 일반 귀신론을 맛보려 하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보수의 '지켜라'와 진보의 '변해라'를 읽고자 하며 <동경 이야기>에서는 비극적 무화(無化, 그러나 이건 때로 적극적인 무엇일 수도 있다)를 본다. 그런가하면 책에서 유일하게 간택된 한국영화 김기영의 <하녀> 또한 눈에 띈다. 어딘지 모르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만(卍)」이 떠오르는데, 다니자키의 소설에서건 김기영의 영화에서건 얽히고설킨 남녀의 섹스어필, 더러움과 추잡함(이것이 모든 인간의 진실 아니던가!)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나는 책에 실린 영화들 중 <하녀>에 관한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다. 다만 나는 섹스와 가족의 해체를 연결시키고 싶지는 않으며 섹스라는 행위가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논리 위에서 어떤 양태로 움직이는지가 흥미로울 뿐이다. 물론 이상용의 '이름 없는 하녀' 분석은 꽤나 유효한데, 김기덕의 <나쁜 남자>의 시작에서 한기가 선화에게 강제로 키스하는 것 역시 빌어먹을 계급(의식)을 동등의 것으로 뒤집어버리는 쾌감을 준다(그러고 보니 이 영화도 『씨네샹떼』에는 없군). 이름 없는 하녀가 동식을 추락시키듯 한기 또한 선화를 끌어내리는 거다. 1. 하녀 따위가 집주인 부부를 농락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2. 깡패 따위가 여대생과 벤치에 나란히 앉을 수가 있는가? 어느 쪽이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는 것은 남녀라는 차이만 있을 뿐 명백히 계급 아래쪽에 있는 자다. 그리고 양쪽 모두 하녀의 지위가 상승되거나 깡패의 지위가 상승되지 않는다. 고매한 척만 할 줄 아는 집주인 부부는 '이름 없는 하녀'와 같이 되고 '나 이래봬도 여대생이에요' 티를 내는 여자는 순식간에 매춘부가 된다. 심지어 <나쁜 남자>의 여대생은 서점에서 몰래 책을 찢어가며 주운 지갑을 가지고 화장실로 도망한다. '이래도 깡패와 여대생이라는 상징이 같은 고깃덩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를 말하려는 것이 역력하다. 너무도 역력하다) 비단 영화뿐 아니라 소설이건 뭐건 이야기의 매력과 힘은 무궁무진하다. 보통 나는 재미를 얻기 위해 그것들을 취하는데, 개중엔 이런저런 반성과 성찰을 위해 서점과 극장에 가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어떤 경우든 다 좋다. 작가와 감독이 의도했다고 여겨지는 바를 고스란히 인지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심지어 나는 다 보고(읽고) 난 뒤 당최 줄거리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 라고 만족하기만 해도 좋다고 본다. 예술은 만족감을 주건 당혹감을 주건 응당 쾌감과 재미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겠냐는 것. 예술을 난도질하며 갖가지 방법으로 풀이하는 것과 더불어 그걸 곁눈질하는 것 또한 재미있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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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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긋지긋하다. 돈 안 쓰기, 고집대로 안 되면 패악 부리기. 내 할아버지와 똑같아서 더더욱 그랬다. 다만 위안이 되는 건 이번엔 현실이 아닌 소설이라는 것 정도. 오베와 내 할아버지는 생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경우 온갖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면서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했)다.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노인. 하나 소설 속에선 오베를 구출하기 위해 이웃들이 등장한다. 말 안 듣는 아이 둘과 아이들의 엄마, 뭐든 손만 댔다 하면 일을 망쳐버리는 남자. 그럼에도 오베라는 남자를 그악스럽게만 볼 수 없었던 건, 그는 결국엔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젠장, 끝까지 말이다. 그게 그리도 간단한 일인가? 사람 하나가 자신과 연결된 세상 하나를 통째로 가져가는 것이? 『오베라는 남자』는 읽으면 읽을수록 요나스 요나손의 작품과도 얼추 비슷한 감상을 주기도 하는데 희한하게도 두 사람 다 스웨덴 출신이다. 그리고 양쪽 모두 유쾌하다. 배크만의 오베 쪽이 조금이라도 더 현실 감각에 가깝고 요나손의 알란보다는 더욱 확고한 신념(꼬장꼬장한 융통성 없는 성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유쾌하고 건강한 웃음을 주는 건 매한가지. 오베에게 그를 성가시게 하는 자들은 죄다 쓸모없는 놈팡이들이고,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은 죄다 얼간이로 치부될 뿐이다. 그리고 오베는 한시라도 빨리 죽은 아내의 곁으로 가고 싶어 한다. 자살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하지만 엉망진창 이웃들로 인해 그마저도 쉽지 않다. 태어난 것도 타의로 시작된 것인데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59세 남자 오베.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내 할아버지는 제외하고)? 그리고 정말 그의 지금까지의 인생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그의 삶에 생긴 균열은 단지 새 이웃이 오고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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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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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포장지 홍보 문구에 쓰인 알파벳 수 따위를 세어보는 사람이 쓴 책을 말이다. 자, 일단 포테이토칩이다. 가격이 비싼 칩은 '더 많이' 혹은 '더 적게'와 같은 비교급 접미사, 그리고 '절대 튀기지 않은' 또는 '우리는 천연 감자의 맛을 씻어버리지 않는다'처럼 부정적 표시가 많이 들어가 있단다. 가만 보니 어느 쪽이건 타사의 제품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상품을 비교 우위에 두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그런데 심지어 이자는 회귀분석법이란 것을 활용하면서(이게 뭔지는 나도 헛갈린다) 포테이토칩 봉지에 부정적인 단어가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약 10g 당 1.5원씩 가격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도 밝혔다. 실제로 광고업자들이 제품 가격을 올리기 위해 홍보 문구에 부정적 단어를 사용한다고는 볼 수 없으니 참으로 신기한 결과일 따름이다. 여기서 '비교'와 '부정'의 언급은 소비자를 현혹한다. 본 모델은 기존의 제품에 비해 ○○○기능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 휴대전화는 현재 최고급 사양인 타사 제품보다 □□면에서 더 뛰어납니다……. 이런 식이다(이 책의 띠지에 적힌 '7만 명이 수강한 스탠퍼드대 대표 교양 강의!'라는 카피는 물론이거니와 '△△△상 수상작'이나 '△△상 수상 작가'라는 문구는 어떨까?). 그러므로 비싼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물건을 구입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는 '내가 이걸 사서 쓰면 다른 사람들과 구분이 되겠지' 내지는 '이런 건 비싸서 아무나 못 살 거야, 이제껏 시중에 나온 머저리 같은 기계들보다는 훨씬 나아' 거기에 더해 '어쩜! 이건 최고 품질의 천연재료만 사용했네?' 하면서 자연스럽게 계산대에 그 물건을 들고 간다. 소위 '상류계급의 구별 짓기'랄까. 물론 『음식의 언어』가 비단 제품의 포장지 문구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음식의 세계지도처럼ㅡ 음식의 이름에서부터 그것의 어원을 따지는가하면 특정 음식의 유래(어릴 적 케첩이 중국어인지 영어인지 친구들과 내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책에서 확인하시라), 맛집 리뷰에 따라 음식을 선택하는 사람들, 음식의 대중화 과정, 새로운 음식의 탄생, 상품명의 소리(발음: 전설모음과 후설모음)에 따라 소비자가 느끼는 감정…… 그야말로 시시콜콜한 것에서부터 누구나가 궁금해 하지만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은 것에 이르기까지 대모험 혹은 파헤치기(까발리기!)를 감행한다. 대체 메뉴에 쓰인 단어가 길어질수록 음식 값이 비싸진다거나 맛집 리뷰에서 섹스 관련 단어가 많이 언급될수록 고급 레스토랑일 수 있다는 걸 누가 연구하겠느냐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ㅡ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기꺼이 권할 만한 '맛있는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물론 함께 마주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싶지는 않지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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