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6
나카마치 신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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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치 신이다. 또. 더군다나 지난번의 『모방 살의』에 이어 다시 한 번 서술트릭을 사용하며 여지없이 작가와 편집자가 등장해주시고 있다. 이번엔 추리소설 현상공모에 입선한 신진 작가 야규 데루히코가 잡지 편집자에게 소설 게재를 부탁, 자신의 원고를 범인을 알아맞히는 릴레이 소설이라 칭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문제편'을 집필하고 다른 작가가 '해결편'을 집필하는 방식. 이미 전작의 학습효과가 발휘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쯤 되면 야규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대강 감이 잡힌다. 실제로 벌어진 모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 작가가 미완성의 소설을 발표해 범인을 구석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의도. 『모방 살의』의 반복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과는 달리 이야기의 진행은 조금 더 입체적으로 표현되었다. 온라인 서지정보에도 등록된 바와 같이 『천계 살의』에는 가출한 지 나흘 만에 살해된 여자,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수상쩍은 단서들과 도박판에서 발생한 거액 등이 양념처럼 들러붙어 있는데(결벽증이 심한 사람이 맨손으로 초밥을 집어 먹었다는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단초도 있다), 특히나 에도가와 란포가 구분했던 범죄의 동기들 중 요즘 들어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이상심리도 (작게나마) 간여하고 있어서 반가운 점이 있었다(구태여 적자면 그가 구분한 범죄의 동기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먼저 감정(연애, 원한, 복수, 우월감, 열등감, 도피 등), 사욕(물욕, 유산 문제, 자기 보호 등), 이상심리(살인광, 변태심리, 예술로서의 살인, 각종 콤플렉스 등), 신념(사상, 정치, 미신, 종교 등에 기초한 범죄)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모방 살의』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평을 하고 싶은데, 전작이 직접적이고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천계 살의』는 그보다 복합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헛갈리고 어지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미완성의 소설과 더 미완성의 소설(!)>, 바로 이 아이디어가……. (기막힌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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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밤 : 시 밤 (겨울 에디션)
하상욱 지음 / 예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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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으로 그칠지 나름대로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지. '시 읽는 밤'을 줄여 <시밤>이다. 노골적인 노림수. 일전에 출판사에서 '시밤'을 가지고 이행시를 짓는 이벤트를 연 적이 있었는데 나 또한 <시: 시밤(발), 밤: 밤꽃 냄새…….>로 응모를 했으니 이 역시도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재미라고 한다면 그런 식으로 봐 줄 만도 하다. 이 세계에 좋은 책은 많지 않아도 나쁜 책은 없다던 말이 떠오르긴 하나(심지어 온전히 맞는 것도 아니라도 생각한다) 재미있는 책과 재미없는 책은 분명히 존재한다. 개인차는 차치한다 하더라도(혹은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독자에 따라 흥미가 동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반드시 개입하는 거다. 『시밤』은 제대로 된 시집이 아니다. (온라인 서점에 등록된 서지정보에 의하면 '시' 카테고리에 속하긴 하지만) 아니, 차라리 자유시라고 넓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제대로 된'이라는 말은 뭘 의미하는 건가? 각 시마다 제목이 있고ㅡ설령 '무제'라는 제목을 붙인다손, 몇 개의 행으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때로는 산문처럼 다소 길게 늘어진 문장으로 구성되기도 하는, 소위 종래의 시, 익히 접하고 읽어 온 시의 형태를 의미하는 건가?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제대로 된 시집이 아닐 것이며, 더욱이 전체적인 틀로 보건대 수첩에 적어놓은 문득문득 떠오른 이런저런 생각들의 집합에 불과할 거다. 더불어 나는 이런 구분에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기도 하지만 『시밤』을 시집으로 받아들이기엔 다소간의 불편함을 느낀다. 나쁜 책은 아니다. 그러나 내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큼의 내용을 양껏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다시 말하지만 독자에 따라 흥미가 동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니 『시밤』이 완전한 혹평을 받든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재미있게 표현 했다는 이야기를 듣든, 어느 쪽이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다른 독자가 어떤 감정을 느꼈건 간에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으니. 그러나, 그래서, 내 평점은 별 다섯 개 만점에 세 개다. 의견 보류이거나 판단을 잘 내리지 못하겠어서이거나(그게 그거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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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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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때로는 치밀하기도 하고 가끔은 놀라기도 하면서. 몽정을 하고, 울퉁불퉁한 어쭙잖은 근육이 생겨나고, 등고선처럼 쭈글쭈글한 주름이 만들어진다. 별일 없는 한 남자의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일기. 죽기 전 마지막 날의 글을 마친 뒤 딸에게 남긴다는 가증스런 붙임으로 자신의 변을 다한 아버지의 평생의 진술서다. 벌거벗은 또래 여자애의 옆에 누웠음에도 전혀 발기되지 않았던 갓 열아홉이 된 소년. 일생의 반려자를 만나 비로소 각종 자세를 취하며 도시 이곳저곳에서의 섹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스물여섯 청년. 온종일 활기 넘치는 아이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한 서른셋의 아버지. 그리고 친구들이 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기 시작한 늙수그레한 노인네. 말 그대로 인간 한 개(個)의 일기. 그의 기록. 몸이라는 장치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고 반응하는지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열한 인간 탈바꿈의 진열장. 머리 위에 작은 개구리를 달고 태어난 남자가 있었다.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그는 어느 날 출근길 외과로 향했고, 의사의 질문에 남자가 아닌 개구리가 말한다. 별것 아니에요, 선생님, 제 엉덩이에 작은 종기가 하나 났는데 그게 이렇게 커져버렸지 뭐예요.(p.253) 내 몸의 주인은 온전히 나라고 불리는 사람의 것인지? 더도 덜도 말고 모자람 없이, 나란 인간이 내 육체를 빌린 세입자인지 아니면 이 몸뚱이가 내 존재를 발현시키기 위해 그저 간당간당 매달려 있을 뿐인 것인지? 아무리 연마한들 내 몸은 종국엔 녹이 슬고 힘없이 늘어질 것이며 곳곳이 썩기 시작해 앙증맞은 검은 버섯들을 피워낼 터다. 역자가 정리해놓았듯 내 몸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상황들ㅡ이명, 건강염려증, 동성애, 구토, 티눈, 월경, 용종, 불안증, 성 불능, 불면증, 몽정, 자위, 비듬, 코딱지, 현기증, 악몽, 건망증, 노안, 몸을 긁는 쾌감, 똥의 모양, 코피, 설태, 전립선비대증, 수혈, 치매, 기타 등등ㅡ이 슬슬 좀먹어가는 거다. 그것들은 아마 내가 태어났던 순간부터 전원 버튼을 켠 채 시작되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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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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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먹을 줄 바꿈이로군, 하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서술트릭'이라는 말에 덮어놓고 읽기 시작했다('빌어먹을'이라는 분개심 가득 찬 토로는, 심지어 문장 하나하나마다 행이 바뀌는 부분을 접하게 되면 절로 나오리라). 줄거리는 간단한데, 시작은 자살로 결론이 난 신인 추리소설 작가의 죽음이다. 추락사한 것으로 추측되나 실은 음독한 상태로 발견된 사카이 마사오라는 남자가 있다.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유서처럼 남긴 채. 그리고 반대편에선 여성 편집자와 르포라이터가 움직인다. 그들은 각각 사카이 마사오의 수상쩍은 죽음을 쫓고, 둘의 시선이 각 장마다 번갈아가며 기술되어 진행된다(물론 나카다 아키코(편집자)와 쓰쿠미 신스케(르포라이터)가 직접적으로 교차되지는 않는다. 아니, 실은 교차될 수가 없을 거다). 나카마치 신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거니와, 신인 작가라고만 여겼었는데 그러기는커녕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더욱이 『모방 살의』에 얽힌 곡절 쪽이 더 기이했다. 이미 1973년에 초판이 나왔었다는 것, 미스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이 '환상의 명작'이라 불린다는 것, 심지어 초판 발행 이후 40년이 지난 2012년 복간되어 반년 만에 3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는 것 등등. 나카마치 신은 2009년 죽었으니, 진부하겠으나 비운의 걸작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모방 살의』는 여러 번 개작되었고(이쪽 사정도 참 기이하다) 영원히 흥미로운 접근법이 될 서술트릭의 방법을 쓰고 있는데(서술트릭은 애초부터 방향성이 다소 제한적이긴 하나 제대로 속여주기만 한다면야 불만은 없다. 다만 중요한 인물상의 미묘한 차이는 차치하고라도 직업까지 똑같다는 설정은 좀 무리가 아니었을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살육에 이르는 병』, 『도착의 론도』, 최근작 중으로는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 정도가 떠오를 만하다(후반부에는 엘러리 퀸의 도전장처럼 소위 해결편이 펼쳐지기도 한다). 물론,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40년 전의 작품이므로 애로라고 할 만한 점도 간과할 수는 없을 거다. 그만큼 사회가 변했다. 한 세대쯤은 건너뛸 것이 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어투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와는 달리 더 중요한 문제, 『모방 살의』에서 나카마치 신이 사용하고 있는 방식을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익히 접해왔다는 점이 걸린다. 더군다나 이 소설엔 현재 상투적이라고 평할 수도 있는 열차나 비행기 운행 시각 알리바이와 카메라 필름 조작 등까지도 담겨 있으니 말이다(사카이 마사오가 남긴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둘러싼, 누가 누구를 표절했는가 하는 미묘한 다툼도 간섭한다). 그런 만큼 시간상으로는 이쪽이 먼저 쓰였으나 동시에 시간상으로 우리에게 소개된 시점이 나중이라는 게 찜찜한 뒷맛으로 남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간차를 유념한 채로 읽는다면 어느 정도의 감가상각이랄까(표현이 이상하지만)ㅡ 그러니까 '아무리 효시격이라 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방식이라면 소용없다 vs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걸작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양쪽에 발을 담그고서 적절히 조절해 읽는다면 꽤 재미있는 소설이 될 수 있으리라(나카마치 신의 속칭 '살의 시리즈'의 하나인 『천계 살의』가 곧 출간된다고 하니 그 전에 이쪽을 먼저 훑어본다면 더 좋겠다). 사족 하나를 붙이자면 내가 애석하게 여기고 있는 건, 소설 속 사카이 마사오라는 작가가 죽은 뒤에야 이런저런 이유로 주목을 받게 되는 것과 같이 나카마치 신 또한 사망한 후 그의 소설이 재조명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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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9-1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멋진 얘기입니다.재조명이라..꺼리가 확실히 되는군요.^^ 아주 안타까운!!!

아잇 2015-09-13 11:17   좋아요 1 | URL
작가가 죽기 전 재출간되었으면 더 좋았겠죠..ㅠ

[그장소] 2015-09-13 18:56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얘깃거리로..확실히 액자소설 같은..진짜 혼란스럽잖아요..^^ 시기가 너무 애매해서.. 재조명이냐..아류냐..누가 더 먼저의 문제보단..이젠 서로가 서로를 기대서 같이 회자되는 시대에 있는 거죠..이럴때 시간이 여러겹이란 생각이 들어요..^^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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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의 인생행로야 예견된 것이긴 했다. 그런 식의 부적합한 생활이 가능할 리 없으니까 말이다. 연작이니만큼 더치고 더친 이야기들의 과정에서 스기무라의 터닝 포인트가 어느 시점에서 나올까 하는 것만이 중요한 과제였을 듯하다. 『누군가』와 『이름 없는 독』에 이은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운전기사의 죽음과 뺑소니, 청산가리에 의한 죽음에 이어 이번엔 다단계다. 다만 『화차』에서만큼의 집약된 표현이 다소 아쉬운데, 『솔로몬의 위증』에서 느꼈던 감정과 대동소이해 '역시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물인가'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한 소설이 될 것만 같다. 버스가 통째로 납치되고, 느닷없이 권총을 든 노인이 나타나는가하면 나중에는 경찰의 진입에 자살해버린 범인이 인질범들에게 거액의 위자료를 보낸다. 애초 스기무라 시리즈가 범죄 집단에 맞서는 공권력을 다룬 이야기이거나 혹은 치밀하게 만든 알리바이를 깨는 본격물이라든가 하는 거창한 스토리가 아닌 바에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자그마한 버스나 공원 벤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것 같은 수수한 노인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은 일견 이치에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들에 비해 아쉬운 점은 앞서 언급한 『화차』의 경우와 같은 구성이 아닌 (미안한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사족에 가깝다고 느껴질 만한 부속물들의 서술이랄까, 설명하기 다소 모호하지만 좀 늘어져 있다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여기서 대개의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아, 그간 읽어왔던 일본 장르문학의 전형이로구나, 하고 무릎을 칠는지도. 그러니 시리즈의 차기작은 이런 악평 아닌 악평에 분기탱천해 스기무라 사부로의 본격적인 새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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