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처음 만났던 2000년이 생각이 난다.

 

  당시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시중에 나오는 영화라면 왠만한 것은 다 섭렵했었다. 그래서일가 마블에 대해서 무지했던 나이지만 엑스맨은 기꺼이 보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시리즈 물이라는 것이 상당히 어색했던 시대였던지라(시리즈 물이라는 것들이 대개 007처럼 한편으로 시나리오가 끝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나리오가 이어지는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 거의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엑스맨을 보고 난 다음 외쳤던 감상평은 "이게 뭐야?"였다. 물론 재미있게 봤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는 실망을 했고, 두번다시 이런 영화를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 다짐이 무색하게 엑스맨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보게 되었고, 엑스맨 3을 끝으로 등장하게 되는 엑스맨 영화들을 보면서 "이건 또 뭐야?"라는 실망을 표현했다. 그러에도 내가 끝까지 모든 엑스맨 시리즈를 섭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휴잭맨 때문이다.

 

  다른 엑스맨에 비하여 폼 안나는 무기! 생각해보라. 자비에르의 염동력, 자비에르를 뛰어넘는 진의힘, 금속을 다루는 매그니토, 변신의 귀재 미스틱, 눈에서 광선이 나가는 사이클롭스, 기후를 조종하는 스톰, 빠르게 움직이는 퀵실버 등등 많은 캐릭터들이 있지만 주인공 격인 울버린의 능력이라는 것이 고작 발톱을 세우는 정도라니! 다른 캐릭터들은 폼나게 싸울 때 울버린은 발바닥에 땀 나게 뛰어다녀야 한다. 그나마 그가 가진 능력 중에 가장 탐나는 것은 치유력 정도? 그가 주인공 역할을 할 때 왜 쟤가 주인공이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늙지 않는 울버린을 보면서 이래서 주인공이구나 생각했는데, 로건에서는 그런 울버린도 폭싹 늙었다. 과연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다른 캐릭터를 보면서 휴잭맨이 맞는지 눈을 몇번씩 씻고서 찬찬히 뜯어 보길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영화와는 달리 휴잭맨은 울버린이 아닌 로건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영화의 제목도 엑스맨, 혹은 울버린이 아닌 로건이다. 도대체 왜? 영화를 보면서 로건이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탄탄하던 그의 육체도, 영원히 빠지지 않을 것 같던 그의 발톱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 어쩔 수 없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절룩거리는 그의 다리는 그가 지금가지 살아온 세월의 질곡을 보여주는 것 같고, 치매에 걸린 자비에르는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 왔다. 영원히 약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슈퍼 히어로들도 일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돼! 이건 꿈이야."를 외치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울버린이라는 암호명이 아닌 로건이라는 개인의 이름으로 휴잭맨을 지칭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서 영화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었다. 히어로물, 혹은 통쾌한 액션을 꿈꾸다가,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면서 차세대 엑스맨을 특히 X-23을 향한 특별한 애정을 보면서 마블 영화가 이렇게 눈물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본성대로 사는 거야. 이젠 이 계곡에서 더 이상 총성은 울리지 않을거야."라는 영화의 대사를 읊조리는 X-23을 보면서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것까지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 대선 특이점이 50대의 이반이라고 했다. 민주화를 겪었던 세대들이 박근혜에게 표를 몰아 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뭔가라는 생각을 했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세월 앞에서 진보도 보수로 변한다는 현실을 보면서 청년들이 많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박근혜 탄핵을 앞두고 어르신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실전을 방불케하는 시위를 하셨다. 왜 그럴까? 아픔가지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삶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발톱이 빠지고, 치유력을 잃어버린 절룩거리는 울버린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우리의 생각 때문이 아닐까? 최대한 초라하지 않게 보이려는 그 현실 도피가 그러한 비극과 답답함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아다만티움 총알을 한개 구해서 매일 죽음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짐승이 아님을 떠올렸던 울버린, 아니 로건의 지혜가 필요한 것은 2039년 멕시코 국경이 아닌 2017년 대한민국이 아닐까?

 

  어쨌든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가는 휴잭맨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서 더 아쉽고, 눈물나는 로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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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회의를 준비하다가 급한테 스테이플러 알이 떨어졌다. 회의를 마치고 스테이플러 알을 가는데 문득 광식이가 생각이 났다. 영화가 참 무서운 게, 쉽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벌써 오래 전에 본 것인데 스테이플러 알을 갈 때마다 광식이가 생각이 난다.

 

"고만한 상자에 스테이플러 알이 5,000개나 들어있는 거 알아요? 5,000. 근데 집에서 아무리 호치키스를 많이 쓴다 해도 일년에 알 100개 쓸까말까 할테고, 그럼 이번에 5,000개 들이 알을 새로 샀으니까 다음에 새걸 사는 건 50년 후의 일이라는 거에요. 어쩌면 죽을 때까지 다시 호치키스 알을 사는 일이 없을지 모른다는 거죠. 근데 지금 이렇게 오빠한테 반을 줬으니까 난 25년쯤 뒤 할머니가 돼서 한 번은 더 호치키스 알을 살 일이 생기겠죠. 그때 오빠 생각날 수도 있겠다."

 

생각보다 스테이플러 알을 많이 사용하는 나는 25년이 아니라 훨씬 짧은 시간 안에, 훨씬 더 자주 광식이를 생각할거 같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와 싱글즈와는 다른 모습의 김주혁도 생각이 날 것이다.

 

그냥 심사가 복잡한 아침에 쓸데없는 소리 끄적여 본다.

 

사족: 한국에서는 호치키스로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스테이플러이다. 호치키스는 제조회사에서 기관총을 만든 호치키스의 이름을 자사 제품에 붙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기관총과 스테이플러가 비슷한 느낌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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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4-0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무실에서 스테이플러 사용할 때마다 광식이 생각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너무 신기함. 그러면서 저는 반박하죠. ‘나는 이 많은 알을 몇 년내에 쓰는 게 가능하다!‘ 하고요. 이요원의 말은 틀렸어! 하고 말입니다. 후훗.

saint236 2017-04-07 14:50   좋아요 0 | URL
전 1년이 안걸려요...영화 중에서 광식이가 열심히 스테이플러 알을 방바닥에 쏘아대는 장면은 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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