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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스포츠 만화를 무척 좋아한다. 오랫동안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끝에 간만에 스포츠 영화를 발견했다. 그것도 야구만화다. 얼마전에 "사랑을 위하여"라는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야구 영화를 본 뒤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젠장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에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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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면서 약간 의아했다. 영화의 끝이 영 시원치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반부에는 메이저리거를 향해 열정을 불태우던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야구를 그만두고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접시닦이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도 이상했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부분도 영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고, 마치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밀어내기를 해야하는데 떨어지는 물 한방울에 끊어치기를 한 기분이랄까? 영화의 엔딩은 비극적이든지, 희극적이든지 어쨌든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내게 만드는 것이 정석인데, 이 영화는 그저 "씁쓸하구만."이라는 말 한마디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슈거라는 그의 별명이 전혀 어울리지 않게 씁쓸하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미국으로 향하는 산토스에게 친구가 말한다. "나도 야구 경기에서 150 킬로이상을 던졌었다." 그러자 산토스가 묻는다. "그런데 왜 여기서 이렇고 있냐?" 친구는 씁쓸한 표정으로 맥주만 마실 뿐이다. 이제 산토스도 그 행동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이 결국은 백일몽이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비싼 대가를 주고 깨달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산토스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넜다. 고학력자들이 광부로, 그리고 간호사로 독일로 건너갔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그들을 우리나라 산업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들로 추켜 올렸다. 그리고 그들이 본국에 보내는 돈으로 산업화를 일구어 내었다. 그 과정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꿈이 깨어져 버렸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토스처럼, 산토스의 친구처럼 자기 인생을 씁쓸하게 바라보면서 살아가게 되었을까? 얼마나 고향 땅을 밟고 싶었을까?

  우리는 얼마나 그들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얼마나 고마워하는가?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고 있는가? 그들이 어디에 가서든지 "I'm Korean"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부심을 심어주었는가? 자부심은 커녕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돈벌 궁리를 하고 사기치지 않았던가? 왠지 영화의 씁쓸한 뒷부분이 떠올라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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