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심리학 / 꿈꾸는 20대, 史記에 길을 묻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꿈꾸는 20대,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
사마천 지음, 이수광 엮음, 이도헌 그림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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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콘 코너 중에 드라이 클리닝이라는 코너가 있다. 윤형빈의 자작곡이 흐르면서 학생들을 계도하는 내용의 노래 가사가 흐른다. 대충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학생이 담배를 피운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 얼굴 썩어 이도 누래 완전 폭삭 썩었어."
"학생이 피어싱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 아직은 때가 아니란 걸 모르고 있다니."
"학생이 술을 마시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 공부할 시간에 술 마시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
"공부할 시간에 게임만 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 학교도 안 가고 게임만 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
"하루 종일 연예인만 쫓아다니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 공부도 안 하고 연예인만 좋아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
"밤새도록 야한 것만 보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 시간 낭비란 걸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  

  개중에 공감하는 내용도 분명히 있다. 예를 들자면 담배를 다루는 내용이다. 아내가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학생들이 담배 사달라는 부탁을 해서 깜짝 놀랐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뜯어보면 “학생이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라는 말만큼 짜증나는 말은 없었던 것 같다. 무슨 일만 할라치면(물론 담배 피우고 술먹는 일은 아니었다.) 부모님들이, 선생님들이 전가의 보도로 내뽑는 것이 “학생이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였다. 고3이 되어서는 더 심해졌다. “고3이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한 내게 “학생이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라는 말만큼 공감하지 못하는 말은 없는 것 같다. 각자가 가진 생각이나 개성이나 특성을 “학생은 이래야 한다.”는 말에 담아서 일반화하기 때문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은 조언이나 충고가 되지 못하고 설교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것도 잘 안 듣는 설교 말이다. 그리고 왠지 계도라는 말을 하면 뭔가 무시무시해 보인다. “남을 깨우치어 이끌어 줌”이라는 뜻을 가진 계도(啓導)라는 말 자체가 상대방을 어리석다 무시하는 시각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책의 서평을 쓰면서 왜 뜬금없이 개콘 이야기를 하는가? 이 책이 딱 그렇기 때문이다. 

  “꿈꾸는 20대, 사기에 길을 묻다.”라는 거창한 제목은 나에게 “20대는 꿈을 꾸어야 한다. 꿈을 꾸는 사람은 사기를 읽어야 한다.”면서 계도하려는 것 같기 때문이다. 20대에 꿈을 꾸지 않으면 그 20대는 헛된 것인가? 꿈꾸지 않는 20대는 존재마저 위태로운가? 그럼 강제로 꿈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20대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꿈을 꾸는 사람이 사기를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등등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자기계발서의 한계를 다시한번 느낀다. “이대로만 하면 모두 다 성공할 것이다. 이대로만 하면 다 부자가 된다.”라는 달콤한 말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결국 그것은 사람들을 획일화하지 않는가?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가르쳐 준 것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못난이로 낙인찍지 않는가?  

  MB께서 대통령 후보이던 시절에 했던 말 중에 유명한 말이 있다.(워낙 유명한 말이 많아서 어느 것 하나 꼽기 힘들지만) 대학 등록금이 너무 많이 올라서 힘들다면서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장학금 받으면 된다.”며 명쾌한 답변을 내리셨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학생은 노력하지 않은 학생이며 계도해야할 대상이고, 그래도 안 되면 배제해야 하는 사회적인 불량품들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MB께서 학생이시던 시절보다 지금 학생들은 더 처절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온갖 것을 꾸역꾸역 집어넣으면서 알량한 정규직에 목을 매는 것이 오늘 20대의 현실이다. 그나마도 택함받은 소수에게나 돌아가는 마당에 꿈을 꾼다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대학가서 놀면 된다는 선생님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던 학생들이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는지 아는가? 대학이라는 타이틀만 있으면 좋은 직장 골라가던 시대가 아니다. 이미 꿈을 꾸기에 사회는 너무 무미건조해졌다. 우리에게 꿈따위는 꾸지말고 먹고사는 것에 집중하라 주문한다.(지난 대선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사회 속에서 이 책이 얼마나 20대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글쎄다. 

  책은 참 재미있다. 사기를 현대어로 풀어 놓았으며 고사성어의 유래도 동시에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굳이 20대를 타겟으로 그들을 계도하려는 듯 한 시도는 아니라고 본다. 사기의 듯을 연구하여 밝히는 강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설교도 아닌 전래동화 모음집처럼 변해버린 책이 간간히 원칙을 지켜라, 세상은 심리전이다, 열심히 공부하라 같은 말을 늘어 놓는다고 해서 20대들에게 어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필은 고사하고 꼬부랑 글씨에 목숨 걸고, 정규직에 목숨거는 그들에게 읽히기나 하겠는가? 그저 드라이 클리닝처럼 우리에게 메마르고 건조한 웃음을 줄뿐이다. 

  차라리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사기의 뜻을 좀 더 연구하고 밝혀서 인문학 분야의 책으로 만드는 것이 어떠했을지 싶다. 분명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렇지만 같은 사기를 다루는 책이라면 나는 이 책보다는 돌베개에서 나온 “사기 교양 강의”를 택할 것이다. 조금 딱딱하지만 그책이 더 배울만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오타 75p 사기 상식 열전 9번째 줄 (자신의 친구 경부=>자신의 친구 요리) 197p 제일 밑의 줄 (문제=>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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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 캠프 - 최고 중의 최고로 만들어주는 전설의 플레이북
존 고든 지음, 조진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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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한참 힘들어 할 때의 일이다. 내 전임자가 일을 너무 잘해 놓고 간 것이 원인이었다. 카리스마 있었던 사람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전임자의 스타일에 친숙해 있었다. 내가 전임자와 스타일이 비슷했다면 문제는 없었겠지만 전임자와 나의 스타일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전임자는 카리스마로 이끌어 가는 편이라면 나는 그 사람이 일어날 때가지 옆에서 기다려 주고 밀어 주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일을 해도 전임자와 비교가 되고 왜 그렇게 안하냐고 몰아붙이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유지해온 내 스타일을 포기할 수 없고, 그렇다고 계속 부딪히는 것도 어렵고 해서 이직을 고민했다. 더 힘들어지기 전에 빨리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마음을 거의 다 굳히고 멘토처럼 지내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모든 사정 설명을 들은 선배가 하는 이야기가 이것이다. 

  "지금 너를 보고 하는 평가에 너무 흔들리지 마라. 전임자는 몇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이미 평가를 받은 것이고 너는 이제 시작인데 자꾸 평가에 연연하냐. 지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떠나고 난 다음에 너를 어덯게 평가할까를 보고 노력해라." 

  이 말 때문에 아직 남아 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떠나고 난 다음에 무엇을 남기는가가 참 중요하다. 트레이닝 캠프는 이 사실을 재미있게 가르쳐 주는 책이다. 

  존 고든의 책, 에너지 버스 1과 에너지 버스 2는 모두 읽었다. 두 책은 어덯게 하면 성공에 이를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배제하라,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라, 불평을 금하라,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 등등 일을 했다면 어떻게 결과를 남길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 샐러리맨들이나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 혹은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실제적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들은 모두 교회에서 만나는 청년들과 함께 읽었고, 불평을 금지하자며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존 고든의 세번째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책은 바로 구매했으나 왠지 읽혀지지가 않았다. 에너지 버스 1, 2와 같은 것은 아닌가? 괜히 읽어봐야 소용이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책만 사놓고 책꽂이의 장식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 시간이 조금 남길래 부담없이 읽자라는 마음으로 책을 펴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정신없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요즘 나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들이 많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 효율적으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하여 말했던 존 고든이 그것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말을 던지고 있다. 최고가 되고 성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고가 무엇이고, 성공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어지보면 생각의 깊이가 더 깊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지금 이순간 성공을 위해 살아라. 그렇지만 진정한 성공은 나만의 성공이 아니라 무엇인가 위대한 것을 남기는 것이다. 나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도움이 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는 그의 단순한 메시지가 마음 깊이 울려 퍼진다. 무한경쟁의 시대, 일렬로 줄을 세우고 성공과 실패, 낙오를 구분하는 삭막한 시대에 진정한 성공이란 나만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와 더불어 사는 것임을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바고 같은 짓인가? 그렇지만 그 바보같은 짓이 그저 싫지만은 않다. 

  옛날 학생 때 자주 불렀던 노래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 노래의 가사를 인용하면서 서평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기독교인이라면 친숙한 내용인 오병이어의 사건을 이렇게 풀었다.) 

  맛있는 밥을 서로 먹여주면서
  더러운 발을 서로 씻어주면서
  고등어 두 마리와 찹쌀떡 다섯개로
  우린 오천명도 무지무지 배부를 수 있단다
 
  이천마리 고등어를 오천개나 되는 떡을
  이리저리 뺏어모아 저 혼자서 다 먹고도
  모자라는 사람들아

  맛있는 밥을 서로 먹여주면서
  더러운 발을 서로 씻어주면서
  고등어 두 마리와 찹쌀떡 다섯개로
  우린 오천명도 무지무지 배부를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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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그램의 희망 - 삶의 매순간은 신성하다
강인식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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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매 순간은 신성하다. 

  책 표지에 씌여있는 이 말이 나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이지선, 닉 부이치치, 조엘 등등 장애와 사고를 입은 후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고 후 힘들고 어려운 인생을 딛고 살아가는 모습, 용기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 힘을 얻는다. 이상묵 교수 또한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사고를 당한 후 어떻게 사회로 복귀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솔직하게 이야기함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아니 이상묵 교수의 존재 자체가 희망이지 않을까? 

  크리스토퍼 리브라는 미국의 배우 때문에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척추 손상. 나오는 거리가 먼 병이다. 절대로 걸릴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세상에 절대로란 없다. 게다가 척추 손상은 높은 곳에서 추락하거나 자동차 사고 같은 충격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병이라 하니 생각보다 흔한 장애일 것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 주변에 척추 손상을 통해 장애를 입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가? 그들 스스로 숨어 버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니다. 그들 스스로 숨어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을 좁은 공간 안에 가두어 버린 것이 맞을 것이다. 솔직하게 나도 척추 손상을 입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본다면 평범한 사람들을 대하듯이 스스럼 없이 다가가기는 힘들 것이니까 말이다. 

  장애를 숨겨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상묵 교수는 당당하게 자신의 장애를 밝힌다. 그리고 자신이 사회에 다시 복귀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는지, IT 기술의 도움을 어떻게 받았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한다. 자신과 같은 상태에 있는 장애인들이 사회와 소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고 그들의 권리를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를 보면서 삶의 매순간은 신성하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다. 사고를 통해서 장애를 입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서 자신은 운이 좋은 행운아라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숙연해지기도 한다. 자신을 재활용인간이라고 부르면서 두번째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가치와 유머 감각은 겉 모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철저하게 깨닫게 된다. 

  이상묵 교수는 학자답게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에 대해서, 한국이 추구해야할 과학에 대해서도 소신있게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MIT뿐만 아니라 미국의 일류대학은 아니, 전 세계의 일류대학은 지금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것에 매달리지 않는다. 대학은 짧게는 20~30년, 길게는 수백 년 뒤에 닥칠 문제를 연구한다. 눈앞의 실용성을 내다보고 당장 잘나가는 전공을 정하려 했던 나는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P.119) 

  일류를 꿈꾸고, 세계 최고를 좋아하는 한국의 많은 대학들과 정치인들이 곱씹어 볼만한 대목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당장 따먹을 수 있는 것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장려하는 것이 한국의 교육정책이다. 그러니 인문학이 쇠퇴할 수밖에 없고, 기초 학문이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문학과 기초 학문의 쇠퇴는 결국 발전을 향한 에너지를 깎아 먹는 요인일 것이고. 이상묵 교수에게 중간 진입 정책을 어필했던 박소장의 생각이 그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 씁슬하다. 

  마지막으로 그가 서울대 교수라는, MIT 출신이고 세계적인 과학자라는 포지션이 없었다면 사회복귀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상묵 교수가 행운아라는 말에는 분명 이런 의미도 포함이 될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하니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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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4-1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116p 첫줄 불고하고=> 불구하고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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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이 전격적으로 복귀를 선언했다. 삼성 그룹의 대표이사가 아니라 삼성전자의 회장으로 복귀했기에 주주총회같은 공식적인 절차를 밟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주주총회를 우회하기 위한 하나의 꼼수일 뿐이다. 복귀를 선언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도요타를 비롯하여 여러 초국적 기업의 현 상황을 바라보면서 위기 의식을 느끼셨단다. 그래서 구사의 일념으로 일선 복귀를 선언하셨나 보다. 그런데 왜 난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일까?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는 말이 왜 자기의 과거를 묻지 말라, 뭘 그런걸 꼬치꼬치 캐물으려고 하느냐라는 말로 들릴까? 아침부터 마음이 참 아프다.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의 실체란 말인가? 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할지라도 돈으로 틀어막을 수만 있다면, 국가 경제 운운하면서 협박할 정도의 재력을 가지고 있다면 초법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의 실체가 아니란 말인가? 그저 조금 근신하는 척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특사 처리되는 대한민국의 웃기는 꼬락서니들 때문에 국민들이 자조적으로 개한민국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삼성을 생각한다는 벌써 한 달 전에 읽었다. 그런데 그 동안 서평 쓰기를 미뤄왔다. 책이 어려워서도 아니다. 술술 넘어가는 내용이고 그동안 기사에 나왔던 부분들과 많은 부분들이 겹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평을 쓰기가 꺼려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이 사실이 씁쓸하고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서 법에 기대어 만민에게 평등한 법치를 기대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나 속상해서였고, 이런 나라에서 나뿐만 아니라 내 아들과 딸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이 나서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1988년 지강헌이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했던 철지난 말이 아니라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회질서라는 점이 애석하기만 하다.  

  왜 미국의 엔론은 해체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보다 더한 삼성은 면죄부를 받고 존재할 수 있을까? 그것도 법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삼성은 과정은 위법이나 결과는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리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홧김에 쓰는 서평인지라 두서가 없다. 정말 쓰기 싫은 서평이다. 그럼에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서 자판을 두드린다. 오늘부터 분명히 선언한다. 앞으로 나는 삼성 물건을 더 이상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기왕에 산 물건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앞으로 삼성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면 삼성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불편하고 고생스럽더라도 말이다. 

  문득 2005년 8월 삼성 X파일 떡값 검사 공청회에서 했던 노회찬씨의 "법은 만민에게 평등하지 않습니다. 법은 만명에게만 평등합니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날이다. 법이 만명에게만 평등한 지금이 진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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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3-2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는 엔론보다 더 쎈 기업들이 많으니 엔론이 해체된거겠지요.국내에서 삼숑,휸대,엘쥐같은 걸 해체할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정치인이 있을까요?

saint236 2010-03-24 14:21   좋아요 0 | URL
속상합니다. 정말로. 이러면서 자식들에게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치겠죠?

호기심만빵 2010-03-2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읽는 내내 씁쓸한 기분이였습니다. '우리나라 법은 평등하지 않다는것'이 무섭다고나 할까...

saint236 2010-03-26 11:12   좋아요 0 | URL
정말로 서평을 쓰고 싶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 복귀만 아니었다면 안 썼겠죠. 이러고도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라는 말이...
 
에너지 버스 2
존 고든 지음, 최정임 옮김 / 쌤앤파커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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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버스 1권을 읽은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에너지버스 2권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전작만한 후작이 없다는 생각일까? 그렇겠지 생각하고 지내다가 여동생 집에 가서 이 책을 발견했다. 돈주고 사서 보긴 아깝지만 동생이 가지고 있으니 한번 읽어볼까하는 생각에 빌려왔고 오늘 책을 폈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서 왜 진작 이 책을 보지 않았을까 후회를 했다. 그리고 알라딘에서 5권의 책을 주문했다. 나와 함께 일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주기 위해서이다. 조금은 강압적이지만 숙제로 내주고 검사할 생각이다. 앞으로 함께 일하는데에 꼭 필요한 내용이 여기에 들어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요즘들어 많이 힘들었다. 온통 불평만 나오고, 친구들과 만나서도 답답함이 해소가 되지 않았다. 한 친구가 내게 "너무 네 생각을 심어주려고 하지마. 기대감을 낮출 때도 필요한 거야."라고 할 때, 무조건 내가 옳다고 항변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창피했다.  

  교회를 옮기고 청년부를 담당한지 2년이 되어 가는데 그 동안 내 마음에서 감사와 기쁨의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여유가 사라지고 조급했다. 대신 불평과 불만, 짜증이 그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일해왔던 많은 청년들과의 관꼐가 틀어지고 수습해보려 하지만 처음 만들어진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터뜨리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면서 서로 상처주기에 급급하지 않았나싶다. 

  그렇게 하나둘씩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1권에서 나왔던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며 힘을 뺐던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난 다음의 모습이랄까? 이젠 이들을 어떻게 해야하지? 무엇을 해야하지? 고민하던 내게 이 책은 참으로 적절한 내려주는 단비와도 같은 고마운 존재다. 

  불평과 불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습관적으로 불평한다. 그것이 내 힘을 얼마나 빼앗고 에너지를 고갈시키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젠 불평을 멈추어야 할 때이다. 여기서 부터 시작이다.  

PS. 청년들에게 꼭 선물해 주고 싶은 목록에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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