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
김미화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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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먼 전설이 되어버린 god의 거짓말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의 가사가 이렇다.

 

  미안해 난 네가 싫어졌어 우리 이만 헤어져 다른 여자가 생겼어 너보다 훨씬 좋은

  실망하지는 마 나 원래 이런 놈이니까 제발 더 이상 귀찮게 하지마

  그래 이래야 했어 이래야만 했어 거짓말을 했어 내가 내가 결국 너를 울리고 말았어

  하지만 내가 이래야만 나를 향한 너의 마음을 모두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 맘을 내 결정을 어쩔 수 없음을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날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너무나도 잘 알기에 어쩔수 없어 널 속일게 미안해 널 울릴게

  잘 가 (가지마) 행복해 (떠나지마)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 (나를 잊지마)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 (아프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떠나가 (제발 가지마)

  왜 자꾸 날 따라와 싫다고 했잖아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몇 번 말했잖아

  너 자꾸 이러면 나 이제 정말 화낼거야 제발 너도 다른 사람 찾아

  왜 자꾸 이러니 왜 자꾸 날 힘들게 하니

  네가 자꾸 이러면 내가 널 떠나 보내기가 힘들잖니

  내가 어디가 좋니 이렇게 매일 고생만 시키잖니

  그리고 너 정도면 훨씬 좋은 남자 얼마든지 사귈 수 있잖니(싫어 싫어)

  정신차려 바보야 정신차려 제발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제 네가 정말 싫어

  그러니 제발 돌아가 제발 저리가  난 네가 싫어 네가 정말 싫어

  잘 가(가지마) 행복해 (떠나지마)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나를 잊지마)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 (아프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떠나가(제발 가지마)

  잘 가 (가지마) 행복해 (떠나지마)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나를 잊지마)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 (아프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떠나가(제발 제발 가지마)

  잘 가 행복해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나를 잊으면 안돼)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 (아프잖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란다. 노래 가사 안에 담겨진 그 상황과 마음의 불일치를 어떻게 저렇게 잘 표현했을까 싶어서이다. 미치도록 아픈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이런 경험이 한번은 있을 것이다. 겉으로 꺼내는 말이 전부가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뜻을 찾아내지 못하고 그저 말하는대로 믿는 사람은 솔직하고 순진한 사람이라아 연애를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잘가라는 말, 괜찮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는 사람은 괄호 안에 담겨진 그 의미를 죽었다가 깨어나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god의 거짓말이 떠올랐다. 평생 코미디언으로 살고 싶다는 김미화씨가 당한 작금의 현실이 그녀로 하여금 코미디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법원에 집중하게 만들고, 색깔론에 휘말리게 만든다. 본인은 웃기고 싶지만 그를 둘러싼 현실이 웃기다. 그것도 유쾌한 코미디가 아니라 카카오 60을 입에 물고 있는 듯한 블랙코미디다.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제목이 내게 이런 말을 던지는 것 같다.

 

  "이게 웃겨?"

 

  나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게 웃깁니까? 코미디언이 코미디에 집중하지 못하고 법정 다툼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이 웃깁니까? 방송국에서 사회보라고 해서 사회를 봤는데 그걸 가지고 친노니,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것이 웃깁니까? 몇몇 연예인들을 콕 집어서 출연시키지 말라는 상황이 웃깁니까? 국정원 직원이 한낱 코미디언을 사찰하는 것이 웃깁니까? 대통령과 김미화의 공통점이라곤 정기적으로 벙커에 들어간다는 것밖에 없는데 왜 자꾸 둘을 엮어서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하는지? 김미화의 트위터를 보면서 기사를 양산해 내는 메이저 신문이 웃깁니까? 대통령 당선자에게 반말했다고 개그 프로그램을 폐지시켜 버리는 것이 웃깁니까? 썩소도 미소하고 볼수 있다면 기묘하게 틀어져 있는 상황이 웃기기는 하겠다.

 

  난 연예인들이 공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직장인이고, 개인의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한 자유가 있다. 그 자유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고 해서(그것이 반인륜적이어서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다면 모르겠지만)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제재를 받는다면 그 상황이 어찌 제대로 된 상황이겠는가? 웃기는 짬뽕이요, 웃기는 짜장이 아니겠는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방송 장악...너무 거대담론만 말하다보면 논점이 흐려진다. 개인의 일상 생활이 가려진다. 그렇게 가려진 이야기들이 밖으로 조금씩 표출된 것이다. 이렇게 표출된 이야기들이 너무 불편해서 애써 외면한다, 그러면서 나는 아닌척 한다. 이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묻는다. 이게 웃깁니까? 평생을 코미디에 매진했던 김미화는 드디어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것 같다. 무슨 예술가냐고?

 

  "행...위...예...술...가!"

 

  이 또한 웃기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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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3-1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예인은 준공인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공인인거죠. 서글프게 웃기네요. 코미디언이 코이디언다울 수 없고, 리더가 리더답지 않고, 법조인이 법조인답지 못한 나라의 현실이란게 참 말이죠. 사실 민형사를 떠나서 무조건 고소하는건 판사차원에서 막아주어야하는데 (벌금을 물리고 심하면 감옥에 보내야할 일이죠, 고소남발은 엄밀한 의미에서 국민의 세금과 국가자원의 낭비니까요) 그럴 의도도 능력도 의식도 없는 한국의 현실은 참 답답합니다.

saint236 2013-03-10 12:52   좋아요 0 | URL
그러면서 항상 하는 이야기가 미쿡에서는 입니다. 저처럼 미쿡 안갔다온 사람은 이걸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합니다.

transient-guest 2013-03-12 03:52   좋아요 0 | URL
자기들이 편할때만 '선진국'운운하지요. 정말 좋은 제도는 굳이 들여오지 않는거에요. 자기들이 불편하니까.
 
감동을 남기고 떠난 열두 사람 -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그 두 번째 이야기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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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화장실에서 자주 보는 문장이다. 그렇지만 화장실에서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말이다. 바람직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잘살았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나는 이 한문장의 말로 대신하고 싶다. 열심히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남겨진 자리가 아름다움으로 기억된다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먹는 것도 웰빙, 입는 것도 웰빙, 사는 것도 웰빙! 모든 것이 웰빙이다. 웰빙이라는 말이 과연 이 뜻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곳곳에서 웰빙이라는 단어가 오용되고 있다. 잘 살고 싶은 우리의 욕망이 웰빙이라는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인생은 웰빙이라는 말로만 충분하지 않다. 잘 사는 것 못지 않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 "웰다잉"이라는 말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웰다잉이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란 것이 둘이 아니며, 죽는다는 것이 어느날 날벼락처럼 떨어지는 재앙이 아니라 충분히 준비해야하는 인생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준비하는 것, 이것이 웰빙이다. 그래서 어느 복지 회관에서는 죽음준비학교를 시작했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이 모든 프로그램의 기본은 동일한다. 언젠가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노인교실팀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 일흔이 넘으신 분들이다. 매일 팔다리 허리 안아픈 곳이 없다는 말을 하시면서도 왠만해서는 빠지시는 법이 없다. 그 분들이 노인 교실에 와서 하시는 일이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냥 즐겁게 노래 부르고, 특강 듣고, 각 반별로 흩어져서 영어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이러시다가 식사하고 돌아가신다. 그런데도 참 즐거워 하시고, 봉사하는 이들에게 감사하신다. 자기들같은 늙은이들하고 시간을 보내줘서 감사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분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그저 아깝지만은 않다. 그분들의 얼굴과 인생의 스토리들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분들은 얼굴에 고집이 잔뜩 묻어있다. 인생을 그렇게 고집스레 살아오셨고, 앞으로 고집스레 사시다가 돌아가실 것이다. 아마 자손들에게 그분은 고집스러운 분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어떤 분은 힘들고 어려운 와중에서도 항상 웃으시는 분이 있다. 아마도 그분은 앞으로도 그렇게 사시고, 웃음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분들처럼 이 세상을 떠날날이 가까이 다가오게 될텐데 그 때 무엇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 한번씩이라도 더 생각하게 된다.

 

  지은이는 호스피스다. 의사로서 자기 환자가 치료받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의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고 회의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여러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바뀌어져 간다. 그들의 인생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자기가 옆에서 돕고 있다는 자각과 더불어,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얻게 되는 인생의 귀한 깨달음은 그로하여금 자기의 직업과 인생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로 그는 최선을 다해서 환자들의 마지막을 돕고 있으며 지켜보고, 보낸다. 이 과정 속에서 자기에게 큰 감동을 남기고 떠난 12명의 사람들의 마지막을 이 책에 담았다.

 

  인생의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하면 한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혹 호스피스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면 자기 가족이나 친구를 지금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사족을 달자면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남겨진 자리가 아름다운 자리로 기억되기를 원하고 꿈꾼다. 아내에게 좋은 남편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로 기억된다면 그 또한 감사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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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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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춘기를 지날 때 눈물 지으면서 봤던 책들이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아마도 아스라이 추억의 저편에서 이 제목을 꺼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덜하긴하겠지만 당시에도 성적이라는 것은 학생들, 특히 고3에게 가장 큰 짐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담임선생님이 한 말이 또 걸작이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닐지는 몰라도, 성적을 무시하고 행복을 말할 수는 없다."

  교회에 다니시던 선생님이어서 그런지 목사 아들인 나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져 주셨고, 엄하게 대하기도 하셨지만 그 분이 나에게 애정과 관심이 있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는 말을 허투루 넘기지는 않았다. 그 덕에 나는 꽤 공부 잘하는 축에 들어갔고, 입시에 실패하지 않고 지금껏 성적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오고 있다.(물론 이 말이 내 인생이 평탄하다는 뜻은 아니다. 성적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문제들로 충분히 힘들었다는 의미다.)

  당시 함께 읽었던 책 가운데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책이 있었다. 아마 위의 책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 책도 기억해 낼지도 모른다. 수험생일 때에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책에 더 깊이 공감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책에 공감하게 된다. 아마도 삶의 자리와 형편이 바뀌어서 그런 것 같다.

  대학 입시 이후 서울에 올라와서 쭉 살고 있는데 정신 없이 달려 왔던 것 같다. 무엇에 쫓기듯이 하늘 한번 쳐다볼 여유도 없이 지나왔다. 가끔 고궁으로 돌아다니면서 여유를 만끽한다고 하면서도 마음만은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살아왔다. 가정에 쫓기고, 등록금에 쫓기고, 친구에 쫓기고, 애인에 쫓기고. 졸업해서는 직장에 쫓기고. 내가 이렇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주 작은 에피소드 때문이다.

  어느날 지하철을 타러가고 있는데 시간이 급했던 나는 무빙워크에서 열심히 걸어서 지하철 플랫홈 근처에 이르렀다. 계단만 내려가면 되는데 "지금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안내 멘트를 들었다. 이것을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계단을 날듯이 뛰어 내려 간신히 세이프했다. 그런데 젠장이다. 반대쪽 방향 지하철을 탄 것이다. 급하게 타다 보니 방향도 확인안하고 무작정 지하철을 탔던 것이다. 그 덕에 결국 지각! 잠시만 멈췄더라면, 그 지하철을 놓쳤어도 상관없었는데 무엇이 그리 급했었는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이와 속도가 아니라 밀도와 방향이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고,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제대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을 삶에서 제대로 기억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빨리와 오래가 인생 최고의 목적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말이다. 빨리 갔는데 나처럼 거꾸로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하철이야 다시 돌아오면 되지만 우리 인생이 순환선도 아니고 되돌리기 쉬운 것도 아니지 않는가? 오늘도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저자는 조용하게 속삭인다.

  "그렇게 빨리 어디로 가십니까? 그게 인생의 전부입니까? 잠깐만 멈춰보시지요."

  맞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대로 가는 것이라면 우선 쫓기듯 달려가는 세상 속에서 멈추어 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모두가 달려가는데 나 혼자 멈추어 설 수 있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에서 멈추어 서는 것과 동일하게 보인다. 잠깐 멈추는 순간 뒤 쳐지고, 인생은 끝이 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멈추어서면 지금까지 못보던 것들이 보인다. 주변이 보이고, 가족이 보이고, 친구가 보인고, 인생이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그리고 내 인생의 목표가 보인다.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눈을 감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가? 멈추어 서서 인생의 방향을 한번씩 점검해 보자. 빨리가 아니라 제대로 사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하자.

 

ps. 저자가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모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일까? 내용이 몇 줄의 문장이다. 짧은 문장 덕에 여유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들에 친근감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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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0-1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류의 책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좀처럼 사서 읽는 경우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금년 6월엔가 잠깐 바쁜 일상을 '멈추고' 지인들 셋과 함께 태국으로 며칠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답니다. 그 때 마침 여러권의 책을 주문할 때 이 책도 함께 사서 여행가방 속에 챙겨 갔었는데, 인천공항에서 우리 일행중 한 명이 이 책을 들고 있더라구요. "엇, 그거 내책인데..." 했더니 그 후배가 "제꺼 맞아요. 며칠 전에 산 건데.." 하더군요. 넷 중 둘이 이 책을 들고 여행길에 오른 셈이었지요.

저는 '하늘을 날며' 이 책을 다 읽었는데, 책 제목도 너무 멋있고 해서 풍성한 '볼꺼리'들을 기대했었는데, 정작 보이는 건 '그림' 말고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고, 어금니로 꽉꽉 깨물어야 맛이 날 것 같은 '단단한 알맹이'는 별로 없어서 많이 허전하더군요.

(한달쯤 전엔가 제 딸아이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사달라고 엄마한테 조르더군요. 그래서 제가 얼른 이 책을 넘겨줬는데, 그 때 들었던 생각도 '책 제목' 하나는 정말 잘 만들었다 싶더군요.)

saint236 2012-10-17 20: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 제목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지었더라고요. 법륜스님 책도 읽었는데 그것도 비슷하더라고요.
 
방황해도 괜찮아 - 법륜 스님의 청춘 멘토링
법륜 지음, 박승순 그림 / 지식채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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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를 겨냥한 책이 인기를 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이 대부분 괜찮다는 내용들이다. "방황해도 괜찮아", "아프니까 청춘이다", "건투를 빈다", "내가 걸은만큼만 내 인생이다", "자기혁명" 등등. 괜찮다, 새롭게 도전해보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청춘콘서트라는 청년 대상 힐링캠프가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안철수, 박경철, 법륜스님이 청춘콘서트를 통해 대중 스타로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이다. 삭막한 세상 속에서 지치고 상한 청춘 남녀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이 시대 청년들의 멘토를 뽑자면 빠지지 않을 사람이 세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딴지를 하나 걸어본다. 청년들을 위로하기 위한 책들에 붙어 있는 수식어들이 오히려 청년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아프니까 청춘이다?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은 이 말을 "아파야만 청춘이다"로 오해했다. 방황해도 괜찮아도 청년의 시기를 방황의 시기로 호도할 여지가 충분하다. 오세훈식 어법으로 방황해야만 청춘이다? 건투를 빈다에서는 청년은 목숨걸고 파이팅 하러 전쟁터로 나간다는 의미로, 나머지도 용기를 가지고 혁명을 하는 필사의 각오로 도전하고 깨지고, 또 도전하는 것이 당연한 청년의 삶으로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말이다. 중요한건 그들도 아프고 싶지 않고, 방황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녹록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청년이기 때문에 더 많이 아프고, 청춘이기 때문에 더 심하게 방황한다. 그렇게 심하게 다치고 깨지고, 아파하는 녀석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야, 방황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위로의 말이라고 건넬 수 있을까? 솔직하게 난 못하겠다.

 

  올해 초의 일이다. 한 녀석이 편입 시험에 실패를 했다. 작년에 이어 두번의 실패를 겪고 난 다음에 그 녀석은 소위 말하는 멘붕 상태에 빠졌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기에 올해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 바람에 편입 재수에 실패한 것이다. 시험 결과가 나오고 난 다음에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해 하더라. 내가 가지고 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가져다가 열심히 보더라. 곁에서 보기에도 꽤나 힘들어 보이기에 불러서 커피 한잔을 사주면서 "시험 결과가 어떻게 되었니? 삼수 확정이니?"라면서 약간은 장난스럽게 물어 봤다. 내가 무얼 묻고 싶어서 불렀는지 서로가 다 알고 있는 마당에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결론은 꽤 힘들다는 말이다. 삼수를 하자니 싫고, 휴학한 학교로 돌아가자니 그것은 더 싫다고 한다. 차라리 외국으로 유학을 갈까,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해야할까 등등 온갖 고민거리들이 튀어나온다. 한참을 듣고 있는데 내가 더 눈물이 나더라. 도대체 이 땅의 청춘들의 삶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험난한 것인가? 나는 이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 것인가? 이런저런 많은 말을 했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나는 마지막까지도 이 녀석에게 "괜찮다!"라는 한 마디 말을 건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지치고 상한 청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괜찮다!"라는 한마디 말이 아니다. 그저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지치고 힘든 자기 마음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 자기의 아픈 마음을 공감해 주고 함께 눈물을 글썽여줄 사람이 필요하다. 방황해도 괜찮다는 말, 청춘은 원래 아픈 거야, 혹은 아프면서 크는 거야라는 말은 아파할만큼 아파하다가 스스로 몸을 추스르고 일어설 때 그때 해줘도 늦지 않다. 용기를 준다고 방황해도 괜찮다는 말을 성급하게 꺼내는 것은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아파할 기회와 여유마저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닐까? 지금 실패가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은,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는 사실은 이 시대의 청춘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어른들의 간섭, 꼰대들의 기우가 아닐까? 청춘들에게 멘토와 꼰대는 한끗차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법륜 스님의 책! 참 좋은 말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인생에 있어서 귀한 깨우침을 주는 평범하지만 귀중한 진리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렇지만 그 진리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꼰대의 강요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닌 내가 이 시대 청춘들의 멘토라고 불리는 법륜스님에게 꼰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아프고 지친 청춘들에게, 실패했다는 절망 속에서 힘들어 하는 청춘들에게 "점잖게 방황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강요하는 것은 꼰대 짓이다. 여러 가지 경험이 많으시겠지만 불경스럽게도 꼰대 짓을 하시는 이유는 간접 경험이 가지는 한계일 것이다. 인간의 희노애락애욕오란 공부한다고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는 그 녀석에게 차마 "괜찮다! 괜찮다!" 이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그저 함께 눈물을 글썽였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 그 녀석은 툭툭 털고 일어나 복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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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광대 - 김명곤 자전
김명곤 지음 / 유리창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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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연예인이 대세다. 잘 키운 연예인 열 중소기업 안부럽다고 장나라, 장윤정 같은 인기 연예인 한명만 잘 키우면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다.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연예인이 되고 싶어한다. 부와 인기와 권력을 한번에 거머쥘 수 있는 길이라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슈스케, 보코, 위탄, K-팝 등 오디션 프로가 넘쳐난다. 이 프로들은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예능인 스타킹과는 달리 실력을 갖춘 절박함이 묻어 있다. PD들과 심상위원들은 이들의 절박함을 잘 알고 있고, 이를 적절히 이용하여 프로그램의 인기를 높이는데 사용한다. 슈스케의 악마의 편집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도 오디션 프로가 참 불편하다. 나도 김지수와 장제인의 신데렐라, 울랄라세션의 스윙베이비를 보고 열광했던 사람이긴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꽤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연예인이 되고 싶고, 가수가 되고 싶은 그들의 목적 의식에 대한 불편한 인식 때문이다. 내가 혼자 삐딱하니 바라보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말이다.

 

  "나는 딴따라다 태어났을 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리고 그게 자랑스럽다."

 

  "장관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벗어버리고 이제 천직인 광대로 탈바꿈해야죠. 걱정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허허."

 

  위의 말을 누가 했는지 혹시 아는가? 전자는 박진영이 했고, 후자는 김명곤이 했다. 전자는 상업과 서구 음악의 최첨단을 달리는 JYP 프로덕션의 사장이요, 후자는 비상업성과 한국적 음악에 천착한 순수 예술인이라고 하겠다. 살아온 삶의 궤적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도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인데 그 둘에게는 공통된 점이 하나 있으니 딴따라 의식이다. 김명곤의 표현으로 하자면 광대의식이다.

 

  딴따라! 연예인을 비하하여 부르는 말이다. 정확한 어원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지만 대체로 나팔 소리의 의성어 "따따따"에서 유래한 말로 받아들인다. 과거에 딴따라를 하겠다면 부모님들이 발벗고 나서서 말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내 기억에 이선희 씨도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서 가발쓰고 변장하고 강변가요제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김명곤의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박진영이 1집과 2집으로 활동하던 그 시절에도 연예인 특히 가수에 대한 편견은 완전히 해소가 되지 않았다. 물론 박진영의 파격적인(!) 무대의상이 한몫 거들었지만 말이다. 가수니, 대중 예술가니, 대중 음악가니 하면서 조금은 고상하게 자신들의 자리매김을 시도하던 사람들 틈에서 발칙하게도 그는 "나는 딴따라다"라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자조적인 웃음을 섞으면서 자학하면서 스스로는 딴따라로 비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솔직하게 "나는 딴따라다 그래서 뭐 어쩌라구?"라는 당당함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 덕에 박진영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도가 많이 올라갔다.

 

  김명곤의 "나는 다시 광대다"라는 말도 박진영의 딴따라 선언과 동일하다. 한문으로 "廣大"라고 쓰고 김명곤은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지만은 광대의 원래 의미는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 광대는 순우리말로 옛날의 사당패나 풍물패와 같은 예능인들을 지칭했던 말이다. 요즘에도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들을 광대라는 말로 부르면 비하하는 의미가 강하다. 그렇지만 김명곤은 당당하게 나는 광대라고 선언한다. 박진영의 딴따라 선언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는 일을 즐거워 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순수한 열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하든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타협하지않는 광대기질! 김명곤을 표현하는 말 가운데 이만한 말이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광대의 길을 가려고 하는 확고한 광대의식, 박진영 식으로 말하면 딴따라 의식이 있기 때문에 김명곤은 아직도 꿈을 꿀 수 있는 것이요,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길과 산홍에게서 무릇 광대는 이러해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잡게 된다.

 

  논어에 이르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어버이는 어버이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했는데,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비록 창고에 곡식이 가득한들 내 어찌 먹을 수 있겠습니까?(공길)

 

  내 비록 천한 기생의 몸이지만 일본에 나라를 판 오적의 두목에게 몸을 팔지 않겠다.(산홍)(63p)

 

  요즘 광대의 영역을 침범하는 여의도의 뭇 의원들은, 스나이퍼를 자청하면서 개콘의 씹을거리로 전락해 버린 모 의원들을 깊이 새겨들을 말이다.  

 

  서편제를 통해서 화려하게 등장한 김명곤의 뒤편에는 수천 시간, 수만 시간의 어둠의 시간이 존재함을, 문화와 예술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을, 그리고 인간 김명곤에 대해서 또 다른 면을 보게 된다. 내게 판소리의 아름다움과 흥과 한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준 김명곤씨가 앞으로도 아름답고 꿈꾸는 광대로 남길 기도한다.

 

  ps. 이 글을 쓰면서 리쌍의 광대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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