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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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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근래 내가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 있다. “기독교계에는 한완상과 이어령이라는 두 지성이 있다. 한완상은 기독교가 키운 인물이고, 이어령은 재수 좋게 주은 인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 뜨거울 정도로 설익은 말이다. 도무지 생각이라곤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말이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냥 창피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 자아비판을 해본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일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와 동생에게 책을 사주셨다. “몽실언니”라는 제목의 상아색 표지의 책을 사주셨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가지고 다녔던 책인데, 몇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참 열심히 읽었었다. 당시 몽실언니라는 드라마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것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책이 정말 재미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동생 둘을 데리고 이리저리 식모살이 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왜 그렇게도 멋있어 보이고 빛이 나 보이던지. 지금은 깨끗한 표지로 새롭게 책이 나왔지만 역시 몽실 언니는 그 촌스러운 책 표지가 어울리는 것 같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아는 사람은 아마 기억하지 않을까? 



 

   권정생 선생님을 처음 접한 것은 몽실 언니보다는 민들레 교회 이야기라는 주보를 통해서이다.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께서는 늦은 나이에 목회를 하시면서도 민들레 교회 이야기를 꾸준히 구독하셨고 그 덕에 나는 그분의 구수한 이야기를 꾸준히 읽을 수 있었다. 한티재 이야기도 제목을 몰라서 그랬는데 읽어보니 그곳을 통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촌스러운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마치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동화와 옛날 이야기는 어린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민들레 교회 이야기와의 인연이 끝이 났고 한동안 최완택,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최완택 목사님께서 계시는 기도원에 수련회를 가게 되었고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등 어린 시절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그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책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그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거웠다. 

  내가 자란 마을은 꽤 촌구석이다.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촌이다. 아내가 초등학교 동창인지라 처가를 갈 때마다 어린 시절 자랐던 그곳을 지나노라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촌스럽긴 매한가지다. 현대자동차, 삼성 반도체 등 기업들이 내려오면서 많이 발전되었지만 내가 살던 동네는 발전과 발전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다행히(?) 촌스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치기, 구슬치기, 쥐불놀이, 정월 대보름 밥서리, 딱지치기, 호디기(버들피리를 우리 동네에선 이렇게 불렀다.),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등 게임기가 없어도 하루종일 재미있게 놀았다. 먹을 것도 많았다. 칡뿌리, 대추, 호두, 밤, 감, 삘기(삐리라고도 한다.), 머루, 다래, 으름, 아가배(아마도 야생 배의 한 종류가 아닐까?) 지금도 그것들을 어떻게 잘도 찾아냈는지 모르겠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착각할지 몰라 밝히지만 나는 78년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지 맞아. 그래. 그것도 있었어. 참 재미있었는데. 그건 참 맛있었는데.”몇 번씩이나 추억에 젖어서 맞장구쳐본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도대체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책에서 권정생 선생님께서 제기하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서 자기만을 챙기다 보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살다보니까 더불어 살아야할 그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머리로 사는 천재가 아니라 몸으로 사는 바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간은 모두 바보로 돌아가야 한다. 이 땅의 천재들은 머리로 살아가지만 바보는 몸으로 산다. 부처님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고, 진정 이 땅 위의 위대한 인간은 바보로 돌아갔다. 머리로 산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았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도, 모로카이섬의 다미안도, 마저 테레사도 그랬다.(P.116) 

  그렇다 세상에 참 똑똑한 사람이 넘쳐나면서부터 우리의 삶이 편리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편리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했는가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경제적인 면은 윤택하게 만들었을지언정 삶의 가치라는 부분에서는 참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아무 것도 없어도 즐거웠고, 맛있는 쿠키나 음료수가 없어도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자연이 주는 것들을 채집해서 먹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연이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놀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되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낭만과 공존에 대한 생각들이 사라져 버렸다. 조금이라도 손해보기 싫어하는 똑똑하고 잘난 천재들이 세상을 꽉꽉 채우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물론 나조차도 천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바보 예수님이 오늘날 이 땅에 오셨다면 십자가 대신 똥지게를 지셨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마음 깊이 여운으로 남는다. 

ps.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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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4-03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정생선생님을 다시 봐야 하는데, 님의 리뷰 덕분에 바보 같은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고 갑니다. 주변을 살피면 정말 묵묵히 바보처럼 사는 분들도 있으니, 그래도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끼지요.

saint236 2010-04-03 23:18   좋아요 0 | URL
이번 기회에 몽실언니 다시 한번 읽을까 합니다.
 
<레인보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레인보우
김인희 지음 / 아이디어하우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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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지개라... 

  어떤 사람은 무지개에서 희망을 본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을 보고, 어떤 사람은 빛의 파장에 의한 산란을 본다. 다 맞다. 어느 것 하나 배제할 수 없이 모두 받아 들이는 것이 무지개의 매력이 아닐가? 삼색으로 보이든, 오색으로 보이든, 아니면 일곱색으로 보이든 몇 가지 색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빨, 주, 노, 초, 파, 남, 보"라는 일곱 색 중에 어느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모두 모여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아치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삶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빛나는 무지개가 아닐까? 분노, 원망, 희망 기쁨 등 모든 것이 모여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빛나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은 그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이다.

  무지개라는 제목에, 종교서적이라는 말에, 에세이라는 말에 부답없이 책을 펴 든다. 그러나 한자 한자 읽어가면서 마음에 깊은 깨달음과 여운이 남는다. 때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 중에 마음 속 깊이 여운을 남긴 두 부분을 인용해 보려고 한다. 


<작년 이맘때>
2008년 6월 2일 밤에 쓴 글을 꺼내 읽는다.
<백성 노릇>
3. 15
4. 19
5. 16
12. 12
5. 18
6. 10
이 나라 백성 노릇 하기가 고비고비 힘겨웠음은 아무 말 없이 숫자만 보여줘도 안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도 있는 분노와 슬픔이 이 세대 사람들 가슴 속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지금이 어느 때라고 또다시 닭장차를 봐야 한단 말인가! 군홧발에 밟히는 어린 여학생의 머리를 보다니, 기막힌 마음에 벌떡 일어나 읹는다. 아니, 지금이 어느 때인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임기 5년의 직임이다.(사마천의 충고는 “지도자는 절대 백성과 다투지 말아야 한다. 누가 이기냐 하면 백성이 이기더라.” 2500년 역사를 기록한 사람의 말이다.)그러나 죽을 때까지 하는 이 나라 백성 노릇, 그리고 죽은 후 영원토록 해야 하는 ‘무슨 노릇’이 있음을 일깨울 수만 있다면!(……현 대통령에게도, 전 대통령에게도 나는 ‘사마천’을 말하고 싶었었구나. 전 대통령에게는 사마천의 궁형과, 그가 가진 백성과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을 떠올릴 수는 없었는가? 하고 묻고 싶었던 거야. 목숨을 주신 분 앞에 누구나 다 서야 하는 때가 올 터이기에 나는 한없이 두려움으로 말하고 싶었던 거야.)
나는 지금도 말하고 싶다. “敬天愛民경천애민” 지도자의 덕목이다.(p.53)

  정말 이 나라 백성들은 백성 노릇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 백성 노릇이 오늘날 우리를 있게 만들지 않았는가? 요즘들어 세상을 삐딱하게 본다. 우리나라가 챙피해질 때가 있다. "피씨방 알바는 내 재떨이를 갈아줬다. 국가는 나에게 무엇을 해줬는가?"라는 모 개그만의 말처럼 실망만 안겨주는 이 나라가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백성을 이겨보려는 대통령들이 답답하다. 더 답답한 것은 백성들의 백성 노릇을 노예나 부하 직원 정도로 국한시키는 위정자드의 좁은 소견이다. 이래저래 국민 노릇하기 힘들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내 동생들 중에는 특별히 음식 솜씨가 좋은 동생이 있다. 무엇이든 그 애가 만들면 맛이 각별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음식 만들기를 즐거워한다. 맛있게 먹는 모습, 맛있다는 말 한 마디면 만사 오케이. 제 몸 힘든 것도 눈 녹듯 사라지는 특이체질이다. 드디어 동생이 꿈에도 소원이던 자그마하고 예쁜 밥집을 하나 차렸다.
오늘 오후에 잠깐 들렀다가 ‘볼’것을 보고 왔다. 마주앉아 있던 동샌이 벌떡 일너나 거의 달려나간다. 그야말로 맨발로, 현관에서 신 신을 새도 없이. 손님을 너무 적극적으로 맞이하나? 돌아보니 창 밖에 파지를 줍는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엉거주춤 서 계신다.
이제 막 문 연 식당에 모아놓은 신문도, 박스도 있을 리 없다. 할머니가 원하시는 것은 이 집에 없다. 이 집에 있는 것은, 따뜻한 밥상과 ‘꿈에도 소원이 배고픈 사람을 먹이는’ 주인의 마음뿐이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사도행전 3:6)이다.
돈이 없다고 머뭇거리는 할머니를 강권해서 밥상 앞에 앉힌 동생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하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소원을 이루었나이다.” 볼 것을 봤으니, 할렐루야. 음식 솜씨 빵점인 목사 언니는 동생이 싸주는 나물 반찬들, 보물단지처럼 껴안고 퇴장이다. 아, 배부른 주말이다.(p.112) 

  온통 답답한 것뿐인 세상을 살맛나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일까? 내게 있는 것들을 나누는 모습일 것이다. 이제 막 개시한 식당에 공자 손님이 오기라도 하면 재수없다고 하는데 이 분의 동생은 발벗고 뛰어나가서 모셔오니 신기할 따름이다. 내게 있는 것을 나누는 마음, 신앙을 실천하는 즐거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볼 것을 보고 왔다는 저자의 말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나도 오랫만에 볼 것을 봤으니 그저 기분이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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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두레아이들 그림책 1
프레데릭 백 그림, 장 지오노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 두레아이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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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임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아마도 공유지이거나 그 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땅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 땅이 누구 것인지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노인은 그렇게 백 개의 도토리를정성껏 심었다."

"그 곳에서 노인은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고 잇따라 아내마저 잃었다. 그 뒤로 노인은 이 고적한 곳에서 물러나 개와 양을 기르며 한가롭게 사는 것을 기븜으로 삼았다. 노인은 나무가 없어서 이 곳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달리 중요한 일도 없었기 때문에 이 곳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고 노인은 덧붙였다."

"나는 마을로 내려오다가, 아득히 먼 옛날부터 말라 있던 도랑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멋진 변화는 처음 보았다."

"더구나 베르공 마을에는 결코 희망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을 한 흔적이 있었다. 희망이 돌아온 것이다. 무너진 집과 담장이 헐리고 다섯 채의 집이 새로 들어서 있었다. 지금은 그 작은 마을에 스물여덟 명이 살고, 그 중에는 젊은 부부도 네 상이 있었다. 이제 막 벽을 칠한 새 집들이 채소밭에 둘어 싸여 있었고, 양배추와 장미나무, 피와 금어초, 샐러리와 아네모네 등 채소와 꽃이 가지런히 자라고 있었다. 이제는 살기 좋은 곳이 된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영혼으로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일생을 바친 고결한 실천이 없었다면, 이러한 결과를 낳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신과 다름없는 일을 훌륭히 해낸 사람, 배운 것 없는 그 늙은 농부에 대한 크나큰 존경심에 사로잡힌다."

사유 재산에 대한 보장이 철저한 나라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땅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 나무를 심는 미련한 짓이 가능할까? 자기가 거두지 못함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씨를 뿌리는 사람은 바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러한 바보들이 세상을 바꾸어 왔다는 것이다.

예전에 무척이나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다. 그림체 또한 예전 애니메이션의 그림체이다. 익히 읽었던 책이면서도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바로 그림에 있다. 수없이 많은 정열을 쏟아가면 수만장에 이르는 그림을 그려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 바크의 정열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책을 읽는 내내 예전만큼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내 마음에 때가 많이 끼었나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책은 나에게 재미를 넘어선 경건함을 가져다 준다. "희생"이라는 고결한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상기 시켜준다.

모든 것이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판단되는 이 시대에 바보같지만, 미련하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가르쳐 준다. 그저 이 시대의 바보 한 사람으로 살다갔으면 소원이 없겠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엇을 하다 왔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바보로 살다 왔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했으면 좋겠다. 4월의 도서로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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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1 0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명의2>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명의 2 : 심장에 남는 사람 명의 2
EBS 명의 제작팀 엮음 / 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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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넓고 아픈 사람은 많다.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무사히 지내는 까닭에 감사한 줄 모르고 살지만 어느날 덜컥 아프기라도 한다면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 세간에 이름을 날리는 의사를 만난다면 환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이렇게 환자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소위 명의라고 한다. 그러나 실력이 뛰어나다고 다 명의라고 하지는 않는다. 명의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환자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착한 사람이어야죠. 그러려면 환자한테 거짓말하지 말아야 할 거구요. 또 환자한테 항상 따뜻하게 대해야죠. 환자들이 내가 선생님 부인이라면 어떻게 하겠냐, 그렇게 수술하겠냐, 하고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제 가족이라고 생각 안 하면 어떻게 최선의 방법을 찾겠습니까. 당연히 그 환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찾을 수밖에 없고, 마음을 다해야죠.” (‘1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중에서) 

  환자를 내 가족처럼 생각할 수 있는 마음. 거짓말 하지 않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서 어떻게든 생명의 끈을 이어주려는 마음이 명의를 탄생시키는 비결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의사의 초심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귀중한 책이다.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부제가 너무 잘 어울리는 책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감동적인 소재이지만 표현이 부족하달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표현의 부적절이 아닐까? 이미 영상으로 만들어졌던 다큐멘터리를 글로 옮겨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영상이 주는 감동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아마 다큐멘터리로 봤다면 의사의 눈빛과 몸짓, 말투 하나하나에서 그 마음을 짐작하고 느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결국 명의가 가지고 있던 묵직함을 잃어버리고 그저 그런 에세이만 남게 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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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지> 가제본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삼한지 세트 - 전10권
김정산 지음 / 서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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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바쁜 일이 있어서 그랬지만 근 10일을 이 책에 몰두해서 살았다. 많이 읽는 날에는 두 권에서 두 권반 정도, 조금 읽는 낡에는 반권 정도. 그러다 보니 평균 하루에 한권은 읽은 셈이지만 실상 그 열흘 중에도 놀고 먹은 날이 있거나, 잠으로 충당한 날이 있으니 정작 책을 읽은 것은 일주일 정도일까? 매일 인문 철학과 사회과학 서적들만 읽다가 간만에 문학책을 읽으니 책장이 쭉쭉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나? 게다가 책이 한번 잡으면 놓기 힘들정도로 재미가 있기에 책장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고, 이렇게 넘어간 책장을 헤아리는 재미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니 이 책이 가진 매력이 가히 마력적이지 않겠는가?  

  책을 받아서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이 저자의 서문이다. 중국에 삼국지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중국의 역사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중국의 영웅 호걸을 우러르게 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는 저자의 말이 오버 센스로 들리긴 하지만, 분명 우리 나라에도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이끌어간 영웅 호걸들이 있는데 그들에 대하여 딱하리만치 무지하다는 그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중국의 동북공정 이야기만 나오면 발끈하지만 정작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조차 없고, 국사마저 선택으로 가르치는, 그것도 암기할 사항들만 잔뜩 늘어놓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하는 현 세태에 한가롭게 한국의 영웅을 언급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그 시간에 이건희, 정주영, 김우중의 성공담을 읽고 돈벌 궁리를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게다. 그럼에도 이 미친 짓을 선뜻 선택한 이유는(문학 분야 서평단들도 피했던 10권의 압박을 선뜻 택했으니 미친 짓이 아니겟는가?) 그냥 재미있어서이다. 원체 이런 것들을 재미있어하는 편이다보니, 게다가 서평써주고 한질을 받는 것이 어디겠는가라는 단순계산에서 시작을 했는데, 예기치 않게 지난 열흘이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얼마전 MBC에서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했었다. 고공의 시청율을 기록하면서 국민 드라마로 자리잡았지만 글쎄다 과연 선덕여왕을 사극으로 분류해야 할까? 곳곳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제작자의 입맛에 따라 왜곡하고, 시청자들의 의견에 따라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는 드라마를 과연 사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단 선덕여왕 뿐이랴? 주몽이 그렇고, 이순신이 그렇고, 태왕사신기가 그렇지 않은가? 그저 사극에서 이름만 빌려온 그런 드라마를 열심히 봐왔던 사람이라면, 특히 선덕여왕을 참 열심히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은 가히 충격적일 것이다. 드라마 선덕 여왕이 얼마나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했는지 이 책을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덕만은 천명의 아우가 아니라 언니라는 점, 그리고 덕만이 여왕에 등극했을 때의 나이가 50대라는 것, 덕만을 향한 로맨스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담이 사실은 왕의 아들이 아니라 노래자이의 아들이라는 것이 간단한 예이다. 

  각설하고 중국의 삼국지에 비견되는 역사 소설을 쓰는 것이 저자의 소망이라고 했는데 일단 그 소망은 이룬 것 같다. 게다가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쓰려고 철저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70% 정도의 사실에 30% 정도의 저자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완성된 작품이다. 그러니 왠만한 역사 교과서보다 삼국의 정세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삼한을 셋으로 나누어 정족지세를 유지했던 고루려, 백제, 신라의 형세와 이들이 어떤 인물을 만나서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꿈을 꾸었는지, 그리고 왜 유독 변방의 구석 땅 신라에서 삼한 통일을 이루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삼국의 역사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을 읽어 보는 것도 꽤 유익할 것이다. 

  이 책은 삼국사기를 그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삼국유사와 여러 역사책에 나오는 야사까지 포함시켜 역사적인 내용에 흥미롭고 신비한 분위기를 덧 입혀 연출한 책이다. 어릴 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어가면서 이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내용이고, 저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내용인지 알아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참고로 드라마 선덕여왕과 왜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한 것도 참 많지만 역사책을 참고하였다고 해도 그 진위여부가 논란이 되어 위서로 분류되는 화랑세기를 기본으로 했기 때문이다.  

  10권이라는 긴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삼국의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가장 강대했던 고구려도 아니고, 넓은 곡창지대를 가긴 백제도 아니고 변방의 작은 나라요, 동네 북이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 의자왕이 3천 궁녀를 거느리고 음행을 일삼아서라고 무식한 소리를 하지 말자. 연개소문의 폭정때문이라고 그저 배운대로 말하지 말자. 당나라 때문에 신라가 통일해서 한반도가 작아졌다는 무식한 소릴랑 그저 속으로만 하자. 왜 신라일까? 저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삼국이 서로 존망을 걸고 각축하던 시기에 묘하게도 하늘은 삼국이 골고루 불세출의 영웅 한 사람씩을 점지해주었다. 바로 성충과 연개소문, 그리고 김유신이다.
  그러나 백제 성충은 의자왕의 방탕함으로 그 뜻을 펴지 못했고, 연개소문은 비록 천하를 호련했으나 수명이 짧아 일찍 죽었다. 천명과 소임을 끝까지 마친 이는 오로지 김유신 한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제아무리 뜻이 높아도 우뚝하면 꺾이기 쉽고, 당대의 형편과 시류를 벗어난 독선적인 기개는 설혹 뒷사람을 유혹할 수는 있을지언정 스스로는 대개 비참한 말로를 걷게 마련이다. 누가 당대에 실패한 영웅을 진정한 영웅이라 하겠는가. 형편 가운데 뜻을 세우고 시류 속에서 기개를 펼친 김유신과 같은 이가 진실로 참다운 영웅호걸이 아니랴.(10권 173페이지) 

  같은 시기 삼국에 모두 걸출한 영웅이 났지만 뜻한 바를 이루고 이루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일할 자리를 만들어준 국가에 있다고. 성충과 연개소문은 세상을 경영할만한 뜻과 재주를 가졌지만 결국 그들이 몸담고 있는 국가가 그들이 일할 기반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반면 변방의 소국 신라는 김유신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마음껏 일하도록 있는 힘껏 뒤를 밀어 주었다. 그렇다면 결국 영웅은 그 사회의 포용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오늘날 우리 주변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지 않는 이유가 과연 여기 있지 않은가? 서로를 깎아 내리고, 흠 잡고, 끌어 내리고 짓밟기에 몰두하고 있는 이 곳에서 내편 아니면 적이라 생각하는 편협한 시대 속에서 영웅은 과연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아직 더 난세의 풍파를 겪어야 하는 것일까? 탁월한 재능과 그 재능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파트너와 시대를 만난 김유신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하루이다. 

사족 

1. 삼한지를 읽는 내내 황산벌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 

2. 오타. 9권 154p 각주 22 3번째 문단 5번째 줄 "외삼촌이 부여풍 => 외삼촌인 부여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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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2010-02-1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서평에 감사드립니다.
전체를 보는 눈이 보기에 선하고 뻥뚫려서 좋습니다.
좋은 서평 남겨 주셔서 저에겐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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