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단편선 2 - Classic Letter Book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권희정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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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 단편선1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들이지만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들은 꽤나 생소한 이야기들이다. 16개의 글 중에 내가 알고 있는 글이라고 해봐야 가장 처음에 기록되어 있는 "두 형제와 황금"뿐이다. 어느 것은 생소하기도 하고 어느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기도 하고, 어느 것은 너무 철학적이라 읽으면서도 그 깊은 속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일단 읽고나면 무엇인가 깊은 깨달음이 남는다. 명확하게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여운의 끝자락을 잡아가다보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인새의 깊은 지혜에 도달하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톨스토이라는 대문호가 가지는 힘이 아닐까? 

  처음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꽤 오래전이다. 학생 때 아르바이트 하던 서전에 갔더니 1권이 나와 있었다. 톨스토이 단편선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바로 사다가 집에서 읽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내 마음과 눈을 잡아 끈 것은 책이 정말 예쁘게 편집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간 중간에 들어간 삽화도 신경을 많이 썼고 책의 크기라든가, 종이질이라던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그 후로 수십권은 샀던 것 같다. 친구들에게, 군대 있을 때에는 제대하는 아이들에게 꾸준하게 선물로 건네주던 책 가운데 이 책이 끼어 있었다. 어느날 2권이 나왔다는 말에 주문을 했지만 처음 몇 장을 읽다가 포기를 했다. 내용이 너무 생소하고 어려워서 오랫동안 책꽂이에 방치해 두다가 몇 년만에 읽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읽기 시작하여 업무를 하는 중간 중간 읽었는데 벌써 마지막 장을 넘기고 이렇게 서평을 쓰게 된다. 

  톨스토이의 연보를 넘겨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 형제와 황금"을 제외하고는 모든 글들이 1884년 이후에 씌여졌다는 것이다. 1884년운 막내아들 알료쉬아가 죽은 해이다. "기도"라는 단편은 아마도 톨스토이 본인의 경험을 근거로 씌여진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과 아픔이, 그리고 신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1884년 이후로 발생한 굵직굵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그의 문학 세계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한다.  

  개개인이 마주치는 일상들, 그 안에서 희노애락을 느끼고 오욕칠정에 파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톨스토이는 우리에게 신의 자비하심에 대하여, 인생의 깊은 의미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노동의 신성함과 약자에 대한 배려에 대하여 진지하지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던진다. 아직은 그의 깊은 통찰력을 따라갈 수는 없는 나의 얄팍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ps. 55p 밑에서 3번째 줄 우리의 아내=>우리아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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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9-1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단편은 정말 예전에 읽고,
그 이후 한번도 접해보지 못 했네요....
어제두 톨스토이 평전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하다가...
결국 당분간 못 읽을듯 하여 빼버렸어요.

깊은 통찰력을 따라갈 수는 없는 나의 얄팍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 저도 공감합니다.

saint236 2010-09-16 09:50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인디북에서 나온 톨스토이 단편선이 제일 맘에 듭니다. 책이 정말 예쁘게 나왔어요. 물론 간혹 불성실한 번역이 눈에 띄긴하지만요.

G.Ego 2010-09-17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

saint236 2010-09-17 09:53   좋아요 0 | URL
님의 댓글 왠지 반가운데요.

saint236 2010-09-18 11:48   좋아요 0 | URL
ㅋㅋㅋ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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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황석영의 이름값이 아깝다는 생각,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생각, 내가 왜 이 책을 샀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베스트셀러라는 말에 혹해서, 황석영이라는 이름에 혹해서 책을 샀고 일찌감치 실망했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마지막까지 독하게 읽었다. 그렇지만 책을 던지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도대체 소설책에 몰입과 감동이 없다면 어쩌란 말이냐? 

  작가는 우리나라에 성장 소설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개밥바라기를 내 놓았다. 자기의 삶이 그대로 묻어난 자전적인 소설이고, 소설가로서의 자기 인생에 한 획을 긋는 책이라 자신하는데 글쎄다. 난 왜 이 책에서 그만한 점을 찾지 못한 것일까?  

  개밥바라기는 금성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잘나갈 때는 금성, 샛별이지만 찌그러져 있을 때에는 개밥바라기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밥을 다 먹고 개밥을 줄 때쯤에 밝게 빛나는 별이라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가장 늦게 지는 별,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를 지칭하는 스타가 찌그러지면 개밥바라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말인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들의 삶이 개밥바라기라는 말일까? 좌충우돌 찌그러지고, 사랑의 달콤함과 이별의 아픔을 겪어보고, 산속에 들어가 자기 속으로 침잠해 보기도 하고,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벽에 부딪혀 약을 먹기도 하며, 월남으로 파병을 가기도 한다. 어찌보면 개밥바라기처럼 찌그러져 있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삶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방황을 딛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 성장 소설의 기본 플롯이요, 목적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개밥바라기라는 이름을 성장 소설이라는 이 책에 붙이는 것은 조금은 엉뚱한 일이 아닐까?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대위처럼 30대가 아니라 이제 막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진입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너무나 불친절하다. 각 사람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이어받아 소설을 진행하는 것이 이 책의 진행방식인데, 그 방식이 너무 산만하다. 그리고 내용도 소설인지, 아니면 사상서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오락가락 하기도 한다. 만약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내용의 1/3은 그냥 버려야 하지 않을까? 

  결정적으로 몰입이 되지 않는다. 소설 속의 사람들이 하는 고민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고민이 너무나 다르다. 그 나이에는 그런거야라는 말로 치부헤 버리기에 고민의 형태가 너무 다르다. 그런데 이런 고민에 대한 경청이나, 대답이나 고민이 없다. 그냥 나는 이랬어라는 형태로 끝나는데 그래서 어쩌란 말이지? 할아버지 세대에는 보릿고개가 있어서 밥이 없어 정말 먹고 살기 힘들었어라는 말에 고리타분함을 느끼지 않으면 라면을 먹지 왜 굶어요라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대답을 하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난 후 전혀 공감도 이해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린 것일까? 아마 황석영이라는 이름값 때문이 아닐까? 어찌되었든 이 책은 나에게 황석영이라는 이름값을 폭락시킨 책으로 이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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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단향 2011-06-0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였군요~ 너무 요란해서 읽어봤는데 진짜 별로였는데 다들 평점 만땅 이길래.. 내가 이상한걸까 생각했었는데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님의 글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글을 남기고 갑니다. ^^ 추천이요~ 꾸~욱!! ^^

saint236 2011-06-07 17:32   좋아요 0 | URL
작가의 이름값에 속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사실 별 두개도 조금 아깝기는 합니다. 한개 반 정도?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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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요,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문장이다.  

  마흔살 늦깎이로 팽팽한 젊은이들과 경쟁하면서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중국으로 날라간 한비야의 삶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어가 좋아서 중국어를 배우기 위하여 1년이라는 시간을 중국에서 살면서 겪었던 경험을 계절의 흐름을 따라 기록한 이 책은 그녀의 다른 책이 그러하듯이 읽기가 참 쉽다. 그러나 그 읽기 쉬운 글 가운데 인생의 묵직한 가르침이 담겨 있어서 왠만한 자기 계발서나 영성을 위한 책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던져 준다.   

  한 중국인 가이드와의 만남이라는 에피소드를 통하여 한비야는 우리에게 오늘을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 가운데 일부는 과거의 영광의 시절을 생각하면서 아 옛날이여를 되뇌인다. 어떤 이들은 한발짝 앞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잘 될거야를 외친다.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 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며,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다만 과거와 미래에만 내 인생의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보니 현재라는 하나님이 주신 아주 귀한 선물을 잊고 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더글라스 대프트가 코카콜라의 CEO에 취임하면서 했던 말도 같은 맥락이리라.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tha's why we call it - the Present!(어제는 역사이며, 내일은 신비이고, 오늘은 선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present라고 부른다.)"

  우리 인생은 앞으로 다가올 신비를 위하여 현재라는 시간을 쌓는 것이고, 그렇게 쌓인 현재라는 시간이 역사가 되는 법인데 우리는 현재라는 선물에는 너무 무관심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가? 째깍째깍하는 소리와 함께 과거로 변해버리는 현재인지라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현재를 소홀히 여기는 만큼 우리 인생 또한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현재라는 선물의 가치는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3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현재라는 선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왔을까? 옛날에는 좋았는데, 걱정이 없었는데, 공부 잘 했는데라는 과거에 대한 향수로 인생의 절반을 채우고 다 잘 될거야라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내 인생의 나머지 절반을 채우지는 않았은가? 절로 반성이 된다. 이제부터는 현재라는 아주 작지만 정말 소중한 선물을 꼭 움켜 잡아야겠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버리는 1분1초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지도밖으로 행군하라를 통하여 접하게 된 한비야를 그건 사랑이었네를 거쳐 중국 견문록까지 만나게 되었다. 그간 얻었던 인생의 지혜가 참 많다. 이제 내 책꽂이에는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세트가 꽂혀 있다. 이걸 통하여 또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안고 다음달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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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세트 - 전10권 - 개정증보판
시내암 지음,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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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에서 50% 특가로 판매한다는 찌라시(!)를 보자마자 냉큼 주문해 버렸다. 이문열씨가 지금에 와서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정치적인 성향을 보이던 간에 그가 평역한 수호지와 삼국지는 재미가 있다. 냉큼 구매한 후 읽기 시작해서 보름만에 다 읽었다. 그동안 여러가지 바쁜 일들도 있었고, 삼국지만큼 흥미진진하지도 않고, 스케일이 장대한 것도 아니며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헷갈려서인지 삼국지보다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꽤 아기자기한 맛도 있어서 다음 권에 손이 저절로 가기에 한권 한권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호지를 어떻게 평가할까?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홍루몽을 중국 4대 기서라고 한다. 네 권을 모두 다 읽어봤는데, 나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홍루몽의 순서로 재미있다고 평가를 한다. 서유기야 워낙 잘아는 "미스터 손"이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의 책이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홍루몽은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와 애정관계를 중심으로 소설을 풀어 나가고 있다.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기록된 소설인 삼국지와 수호지가 그나마 비슷한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둘 사이에도 차이는 있다. 삼국지가 제갈공명을 신비롭게 묘사하고는 있지만 더 현실적인 측면에 치중하고 있다면, 수호지는 요술과 법술이 전투에 공공연히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인다. 같은 야사를 모아 놓은 부분들도 삼국지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수호지는 확실하게 티가 난다. 비유하자면 삼국지는 삼국사기와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면 수호지는 삼국유사와 비슷한 부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까? 삼국지와 수호지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삼국지가 역사의 전면에 나서서 이름을 떨치고 스러져간 메이저리거같은 스타들이라면 수호지의 등장인물들은 메이저리거가 되기를 동경하면서 트리플A에서 뛰고 있는 마이너리거라고 할 수 있다.  

  송강, 이규, 노준의, 무송, 노지심 등등 양산박의 108두령은 모두 사회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밝은 곳을 갈망하며,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지만 부패한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와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뇌물수수, 억지수사, 특권층 봐주기, 공무원 비리 등은 그 시대의 스타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한 그들을 시대의 낙오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현역으로 남아 있기 위해 애를 쓰듯이, 양산박에 모인 108두령들은 녹림에 몸을 담고 도적질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조정의 부름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오매불망 조정의 부름을 기다리던 어느날, 드디어 조정의 부름을 받아 화려하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과거에는 도적이었지만 이제는 관군이 되어, 과거에는 사회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간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시스템에 포섭된 자들이 되어 조정을 위하여 일하기 시작한다. 비록 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그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고? 과거에는 아무리 화려한 승리를 얻어도 반군이요, 어둠의 세력이지만 이제는 떳떳하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시간 마이너리그 몸담으면서 훈련을 하며 올라온 선수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반짝 조커로 기용될 뿐이다. 실제로 송조정의 스타플레이어들은 따로 있었다. 동서남북 원정대를 꾸리고 반란군을 토벌하면서 그렇게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결국 그들의 마지막은 토사구팽이 아닌가? 많은 두령들이 4차례에 걸친 원정 끝에 죽어 버리고, 그나마 남았던 두령들도 벼슬을 마다않고 야인이 되는 길을 택한다. 차마 그 길을 택하지 못한 송강을 비롯한 몇명의 두령들은 오래지 않아 송조정의 무능하지만 스타플레이어인 고구, 채태사 일당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 송강은 불같은 성격의 이규를 불러 자기가 마신 독주를 마시게 하고 같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 뒤를 이은 수호지 후편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없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조잡하다. 그나마 괜찮은 것을 골라 내용을 소개한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감안해서 읽는다면 다른 판본들은 도대체 얼마나 조잡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이미 죽었던 이들이 멀쩡이 살아 있는 것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어이 없을 정도로 이야기를 억지로 끌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다시 모인 108두령의 생존자들이 이준이 있던 곳으로 모이고, 섬라국의 대신들이 되어 잘먹고 잘산게 된다는 내용이다. 

  왜 그렇게도 108두령이 송조정의 부름을 기다렸는가? 자기 죽을 자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원정대를 자청해서 동서남북으로 내달렸는가? 송강은 왜 자신의 오른팔 이규를 속여 독주를 마시게 했을까? 왜 후대의 사람들은 무리해서 수호지의 후기를 달아 섬라국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냈고, 108두령의 생존자들을 그곳의 대신들로 만들어 버렸을까? 

  어떻게 해서든 다시는 사회 시스템에서 튕겨나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현실에서의 그들의 바램이 결국은 실패와 좌절로 끝나버렸기 때문에 이들의 염원을 섬라국이라는 새로운 이상향을 설정하여 들어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홍길동의 율도국이 그러하고, 임꺽정의 구월산 산채가 그러하며, 장길산의 운주사가 그러하듯이 언젠가는 깨어져버릴, 아니 현실에서는 존재자체가 불가능한 디스토피아일뿐이다. 그렇기 대문에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아이너리거인 수호지 108 두령의 삶이 더 서글픈 것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의 힘이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묘사가 강하고, 더 직설적인 면이 있어서 그렇지 오늘 우리 현실의 모습을 너무 정확하게 담고 있다. 곳곳에서 고구와 고아내, 채태사가 존재하며 그들 때문에 사회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가는 108 두령들이 있고, 그나마 튕겨나가지도 못해서 짓눌리는 민초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택동이 수호지를 정치서적으로 평가한 것이 아니겠는가? 

  무더운 여름 수호지와 보낸 시간들이 즐거웠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수호지를 기록하신 그분이 지금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 작가의 사상과 현실을 반영한다는 말이 꼭 들어 맞는 말은 아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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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2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호지를 가지고 있는데, 아직도 못 읽었습니다.
세인트 님의 글을 읽으니..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합니다.
네.. 수백년을 살아온 고전은 대단하다는 말씀, 동감합니다. ^^

saint236 2010-08-21 12:41   좋아요 0 | URL
조만간 시간을 내서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요. 매년 한번씩 앞으로 10년 읽으면 10번은 읽겠지요? 고전은 그 정도는 읽어야 맛이 느껴지더라고요.

양철나무꾼 2010-08-2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국지는 이문열 걸로 10번은 읽은 것 같은데,
이 수호지는 이문열 거여서 한번도 안 읽었어요.

근데,첫 문장에 혹해...장바구니로 쏘옥~입니다.

그가 지금에 와서 어떤 글을 쓰고,어떤 정치적인 성향을 보이던 간에 그가 평역한 삼국지는 재미가 있었거든여~^^

saint236 2010-08-26 14:29   좋아요 0 | URL
수호지도 재미있기는 합니다. 단 개인적으로는 삼국지만큼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병아리 눈꼽만큼 삼국지가 더 재미있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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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차가운 수돗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모습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알았던 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와서 한마디 외쳐봅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인터넷에서 본 글이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에서 봤던 것일까? 난 이 글을 보면서 울었다. 중 3 때 아버지께서 간암 판정을 받으셨다. 원자력 병원으로, 서울 대학 병원으로, 좋다는 병원은 다 다니셨다. 시골에서 목회를 하시던 아버지이신지라 술도 드시지 않으셨고 담배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누구보다 오래 살줄 알았지만 스트레스와 과로는 술과 담배보다 더한 독이 되어 아버지를 쓰러뜨렸다. 목회를 하시면서 집과 모든 땅을 다 큰 사촌형에게 넘겨주고 온지라 가진 것도 하나도 없었다. 정말 주변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1년 동안 견딜 수 있었다. 자주 교회를 비워야 하는 상황 때문에 교회의 눈치를 봐야했던 아버지. 고등학생인 나의 학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 혼자 그 모든 수발을 감당하셨다. 1년 간의 노력과 치료와 기도도 헛되이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고1, 중2, 초6의 세 남매를 위해 어머니는 슬퍼하실 겨를도 없었다. 정말 숨쉴 틈 없이 달려오셨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단기지만 장교로 입대했고, 여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으며, 막내는 대학 졸업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긴장이 풀리신 어머니는 우울증과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시고 결국에는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봐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는 어머니를 막내 동생과 억지로 병원에 모시고 가 입원을 시키고 돌아오는 날 운전을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무 것도 드시지도 않고, 본인이 자신들의 말에 대꾸하면 자식들이 잘못된다는 환청이 들린다면서 그렇게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한마디 대꾸 하시지 않으시고, 곁눈질로만 바라보시던 어머니!

  그때서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라고 왜 하고 싶은 일이 없었겠는가? 39에 혼자되어 재가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친척들에게 애비 없는 자식이라도 무시당하고 설움 당할까봐 왕래도 끊으시고, 오직 우리가 장성하기만을 바라셨던 어머니!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회복하시고 사회생활하신지 몇 년이 안 되어 여동생이 아들을 낳았다고 직장 다녀야 하니 애 좀 봐달라고 했을 때, 이모와 나의 반대를 물리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가셨다. 그리고 애를 보시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그러한 어머니를 보면서 미안하면서도 할 말을 다하던 여동생. 아마 여동생은 그렇게 밖에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없었나보다. 결국 그 스트레스가 다시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하게 만들었다. 동생에게 화를 내면서 어머니를 입원시키던 날 아마 여동생은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께서 내게 추천하신 책이 이 책이다. 어머니께서 보시면서 한참을 울었다고 너도 꼭 보라고 본인이 보시던 책을 주셨는데 그동안 서재 한 켠으로 치워 두었다가 이번에 보게 되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너, 그, 당신”이라는 낯선 인칭 대명사를 사용한다. 그 낯선 대명사가 싫어 뒤로 진도가 안 나가던 책이 어느 순간 나를 사로 잡았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박소녀

  너무나 평범한 이름이다. 마치 아무개라는 말처럼 이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글을 쓰는 큰 딸도, 많은 관심을 받았던 큰 아들도, 소설 속에서 존재감이 없는 둘째 아들도, 그리고 남편도. 어렴풋이나마 엄마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막내 딸뿐이었다. 그나마도 그 속을 전부 알지는 못했다.

  비단 소설 속의 주인공들뿐이랴. 나도, 여동생도, 막내 동생도 모른다. 당연하게 생각한다. 어머니를 “홍근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50대의 여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머니였던 것처럼 생각한다. 내 어머니뿐이랴.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다. 엄마는 아파도 안 아프다고, 배가 고파도 괜찮다고, 속상해도 혼자 눈물을 삼키며 자식들 앞에서는 웃기만 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내가 내 아이들에게 아빠이고, 내 아내가 아이들에게 엄마이지만 이름이 있고, 자기 생각이 있고, 자기 생활과 인생이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그래야 한다는 것을 너무 쉽게 잊고 산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는지도 모른다. 무심한 이 사람의 마음 때문에. 

  "엄마에 대하여 너만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니?"라는 물음에 전단지에 적혀있던 것을 빼고 아무 것도 대답하지 못했던 막내 딸처럼 나도 아무 것도 모른다. 그저 생일, 나이, 생년 월일, 학력 등 이력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알뿐이지 어머니의 라이프 스토리에 대하여 깊이 아는 것은 없다. 어떻게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꿈은 무엇이었는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였는지,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것이다. 아니 그렇다. 너, 그, 당신이라는 말이 눈에 거슬린 이유가 말이다. 그 말이 나의 무심함을 계속 찔러댔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정말로 그러면 안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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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7-2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저도 엄청 울었어요. 결혼하고나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알았죠.
님의 가족이야기와 함께라 더 많이 아프고 슬프네요. 하지만 역시 어머니는 강해요. 아들에게 책을 권하시는 어머니 참 멋지시네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랄게요.^^

saint236 2010-07-22 22: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요즘 어머니께선 이런 저런 일로 바쁘십니다. 자신의 앞길을 준비하시느라고.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 기븐 마음이 드네요.

마노아 2010-07-22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면 안 울기란 참 힘들지요. 정말 펑펑 울었던 것 같아요. 시집도 안 갔는데, 시집 가서 애까지 낳았더라면 더 꺼이꺼이 울었을 것 같아요.
어머님이 많이 건강해지셨나봐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saint236 2010-07-23 00:43   좋아요 0 | URL
우행시 이후로 이만큼 울어본 책이 없었던 것 같네요

프리즘 2010-07-25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엄마한테 짜증만 냈는데...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계속 미루고 있었던 책입니다. 내일까지 부산에서 신경숙님의 사인회가 있다니 한번 구입해서 읽어봐야겠네요.

saint236 2010-07-25 12:50   좋아요 0 | URL
사인회하시면서 신경숙님 사인까지 받아 넣으면 소장하기도 좋겠죠? 좋은 책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세요.

leeza 2010-07-26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 책 이제 읽어보려고 하는 참이었는데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읽고 나니깐 왠지 더 책이 읽고 싶어지네요~

saint236 2010-07-26 10:28   좋아요 0 | URL
리자님 오랫만입니다.

기억의집 2010-07-2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도 힘드셨겠지만 세인트님도 많이 힘드셨겠어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많이 회복되셨는지 모르겠네요. 아이 키우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요. 저는 애 둘을 다 제 손으로 키웠지만 많이 힘들어서 다른 분들에게 나이 드신 분들에게 애 맡기라는 말 절대 하지 않거든요. 젊은 저도 힘든데 나이 드신 분들은 육체적으로 더 힘드실 것 같아서.

저도 친정엄마 생일 챙겨드린지 얼마 되지 않아요. 우리 땐 다 그런걸요.

saint236 2010-07-26 22:39   좋아요 0 | URL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요. 한달에 한번씩 꾸준하게 병원에는 가서 진찰받고 약받아 오고 있답니다. 의사도 좋은 사람이어서 단순히 약만 사용하려고 하지 않고 권위주의적이지도 않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답니다. 어머니께선 요즘 다시 자신의 일을 찾아가고 계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