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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차가운 수돗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모습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알았던 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와서 한마디 외쳐봅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인터넷에서 본 글이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에서 봤던 것일까? 난 이 글을 보면서 울었다. 중 3 때 아버지께서 간암 판정을 받으셨다. 원자력 병원으로, 서울 대학 병원으로, 좋다는 병원은 다 다니셨다. 시골에서 목회를 하시던 아버지이신지라 술도 드시지 않으셨고 담배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누구보다 오래 살줄 알았지만 스트레스와 과로는 술과 담배보다 더한 독이 되어 아버지를 쓰러뜨렸다. 목회를 하시면서 집과 모든 땅을 다 큰 사촌형에게 넘겨주고 온지라 가진 것도 하나도 없었다. 정말 주변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1년 동안 견딜 수 있었다. 자주 교회를 비워야 하는 상황 때문에 교회의 눈치를 봐야했던 아버지. 고등학생인 나의 학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 혼자 그 모든 수발을 감당하셨다. 1년 간의 노력과 치료와 기도도 헛되이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고1, 중2, 초6의 세 남매를 위해 어머니는 슬퍼하실 겨를도 없었다. 정말 숨쉴 틈 없이 달려오셨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단기지만 장교로 입대했고, 여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으며, 막내는 대학 졸업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긴장이 풀리신 어머니는 우울증과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시고 결국에는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봐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는 어머니를 막내 동생과 억지로 병원에 모시고 가 입원을 시키고 돌아오는 날 운전을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무 것도 드시지도 않고, 본인이 자신들의 말에 대꾸하면 자식들이 잘못된다는 환청이 들린다면서 그렇게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한마디 대꾸 하시지 않으시고, 곁눈질로만 바라보시던 어머니!
그때서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라고 왜 하고 싶은 일이 없었겠는가? 39에 혼자되어 재가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친척들에게 애비 없는 자식이라도 무시당하고 설움 당할까봐 왕래도 끊으시고, 오직 우리가 장성하기만을 바라셨던 어머니!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회복하시고 사회생활하신지 몇 년이 안 되어 여동생이 아들을 낳았다고 직장 다녀야 하니 애 좀 봐달라고 했을 때, 이모와 나의 반대를 물리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가셨다. 그리고 애를 보시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그러한 어머니를 보면서 미안하면서도 할 말을 다하던 여동생. 아마 여동생은 그렇게 밖에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없었나보다. 결국 그 스트레스가 다시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하게 만들었다. 동생에게 화를 내면서 어머니를 입원시키던 날 아마 여동생은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께서 내게 추천하신 책이 이 책이다. 어머니께서 보시면서 한참을 울었다고 너도 꼭 보라고 본인이 보시던 책을 주셨는데 그동안 서재 한 켠으로 치워 두었다가 이번에 보게 되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너, 그, 당신”이라는 낯선 인칭 대명사를 사용한다. 그 낯선 대명사가 싫어 뒤로 진도가 안 나가던 책이 어느 순간 나를 사로 잡았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박소녀
너무나 평범한 이름이다. 마치 아무개라는 말처럼 이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글을 쓰는 큰 딸도, 많은 관심을 받았던 큰 아들도, 소설 속에서 존재감이 없는 둘째 아들도, 그리고 남편도. 어렴풋이나마 엄마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막내 딸뿐이었다. 그나마도 그 속을 전부 알지는 못했다.
비단 소설 속의 주인공들뿐이랴. 나도, 여동생도, 막내 동생도 모른다. 당연하게 생각한다. 어머니를 “홍근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50대의 여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머니였던 것처럼 생각한다. 내 어머니뿐이랴.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다. 엄마는 아파도 안 아프다고, 배가 고파도 괜찮다고, 속상해도 혼자 눈물을 삼키며 자식들 앞에서는 웃기만 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내가 내 아이들에게 아빠이고, 내 아내가 아이들에게 엄마이지만 이름이 있고, 자기 생각이 있고, 자기 생활과 인생이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그래야 한다는 것을 너무 쉽게 잊고 산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는지도 모른다. 무심한 이 사람의 마음 때문에.
"엄마에 대하여 너만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니?"라는 물음에 전단지에 적혀있던 것을 빼고 아무 것도 대답하지 못했던 막내 딸처럼 나도 아무 것도 모른다. 그저 생일, 나이, 생년 월일, 학력 등 이력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알뿐이지 어머니의 라이프 스토리에 대하여 깊이 아는 것은 없다. 어떻게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꿈은 무엇이었는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였는지,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것이다. 아니 그렇다. 너, 그, 당신이라는 말이 눈에 거슬린 이유가 말이다. 그 말이 나의 무심함을 계속 찔러댔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정말로 그러면 안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