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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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하다. 매일 지친 몸을 끌고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해보지만 여전히 아침이 되면 눈을 뜬다. 다만 눈뜨기가 약간 힘들 뿐이다. 수도 없이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가 보면 잠을 자기는 했지만 몸은 충분히 피곤에 젖어 산다. 출근과 일과의 사이 속에서 결국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하나다.주유소에서 "아저씨 만땅이요"를 외치듯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 안에 카페인을 쏟아 붓기 시작한다. 박카스에 사이다 섞은 맛이 나는 핫 식스(6시간 지속된다는 광고 카피와는 달리 채 3시간이 가지 않는다.), 체리 맛이 나는 번 인텐스, 블루베이 맛이 나는 볼트에너지, 망고 맛이 나는 솔 등등...카페인을 충전해 주는 음료들은 많기도 하다. 시간이 되면 우주벌레에서 벤티로 빨아주로, 시간이 부족하면 고카페인 음료로 쏟아 붓고, 이 마저도 부족하다 싶으면 붕붕 드링크 제조로 넘어가겠지...

 

  남의 말이 아니다. 내 말이다. 아직 붕붕 드링크의 단계로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고 카페인 음료를 마시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가급적이면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주일에 1~2개는 꼭 마시게 된다. 그래도 많이 양호해진 것이다. 불과 3달 전에만 해도 하루에 1개씩 마셨으니 말이다. 나만의 이야기라 착각하지 마시라. 우리 주변에 둘러보면 이런 사람들 정말 많다. 오죽 많으면 고 카페인 음료가 커피를 제치고 판매고 1위를 달성했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유통업체에서 커피 판매량은 축구계에서 브라질의 위상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며 고 카페인 음료가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왜 고 카페인 음료가 인기를 끌고 있는가? 이 책에 그 정답이 나와 있다. 저자는 이 시대를 부정의 시대가 아니라 긍정의 시대이며, 자본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자기 착취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말이 상당히 어려워 보이지만 그 규정의 단적인 예가 고 카페인 음료와 자기계발서 판매량의 급증이라고 보면된다. 자계서가 무엇을 말하는가? "당신은 충분히 위대하다. 부자가 될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우리의 머릿 속에 주입하면서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있지 않은가?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그래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자기 최면을 통하여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달리고 있지 않은가? 자계서가 정신을 마비시킨다면, 고 카페인 음료는 우리의 육체를 마비시킨다. 몸은 쉬고 싶지만 끊임없이 우리 내부에 있는 에너지를 끌어 당겨서 달리게 만든다. 나중에 몸이 얼마나 피곤해 지는지는 상관이 없다. 오직 이 순간만 달리면 된다.

 

  왜 이 순간에 목숨을 걸까? 왜 개인의 피로를 무시하면서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뒤처지게 될 것이라는 공포감 때문이 아닌가? 그 공포감을 이기기 위해서 잠시 쉴 틈도 없이 달린다. 그 두려움이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 한다. 잠자리에 누운 순간에도 말이다.

 

  땅을 얻으려 열심히 달리다가 쓰러진 파흠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나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파흠이 되어서 달리고 있다. 그러다 쓰러진 사람들을 낙오자라 비웃으면서,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잠시도 멈추지 않는 이 시대의 파흠들을 위하여 다시 한번 주문을을 외워본다.

 

"아저시 카페인 만땅이요!"

 

PS.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 내 앞에는 진하게 내린 커피를 머그 잔으로 세잔째 마시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은 내 책 꽂이에서 핫식스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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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4-03-20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 시절에 스트레스, 부족한 잠, 공부를 이겨내려고 하루 평균 벤티 사이즈 커피 2-3잔, 콜라 1-2병 정도를 마시던 때가 있었어요. 운동부족이 겹치니까 살이 마구 찌더라구요. 또 늘 피곤하고 무겁고, 부어있고. 그 상태가 일 시작하고 나서도 2년 정도가 더 가더라구요. 그 후에는 운동으로 이겨냈고 지금까지 꾸준한 운동으로 몸 관리를 하고 있어요. 시간을 조금 낼 수 있다면 근처의 헬스장에서 하루 5분만 운동을 해보세요. 5분이 20분, 20분이 40분...이렇게 될거에요. 저는 다시 운동을 시작할 때 엄두가 안나서 5분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때 읽은 책에 감명을 받아 추천된 방법론을 써본 거에요. 건강 꼭 챙기셨으면 합니다.

saint236 2014-03-20 13:59   좋아요 0 | URL
저도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하는데, 도통 시간이...헬스장은 한 2년 다녔는데 정말 정말...재미가 없더군요. 요즘 라켓볼이나 스쿼시를 찾고 있는데 없어서...좀더 찾다가 안되면 헬스장이라도 가야하나 생각 중입니다.
 
지식 e - 시즌 5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5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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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e 시즌 8이 나온 시점에서, 그리고 리뷰까지 작성한 시점에서 지식e 시즌 5를 꺼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밀린 숙제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고 둘째는 무엇인가 끄적거리고 싶은데 요즘은 읽은 책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읽고는 있지만 바쁜 일이 많아서 진도가 더디게 나가고 있기 때문에 리뷰를 작성할 책을 고르다가 딱 걸린 것이 이 책이다.

 

  지식e는 나올 때마다 우리의 감성을 많이 자극한다.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지식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게도 지식e는 우리에게 가슴을 열고 책을 읽을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그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책이 우리에게 주문하는대로 나아가다보면 어느샌가 우리가 다연하게 여기고 지나갔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당연하게 여겼던 부조리들이 사실은 사회 구조적인 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들이 사실은 우리 선배들이 목숨 걸로 싸워서 얻어낸 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즌 5도 10가지의 꼭지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준다. 인간에 대한 10가지의 꼭지와 인터뷰들, 인생에 대한 10가지의 꼭지와 인터뷰들은 우리에게 딱 한가지를 묻는다. "인권"이다.

 

  2009년 이 책이 나왔다. 이 책이 나올 때의 기사들을 하나씩 검색해 보면서 굵직한 것들을 몇 가지 추려보면, 쌍용자동차 파업, 미네르바 사건, 용산참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미디어 관련 법과 장자연 자살, 유명 방송인들의 하차 내지는 방송활동 위축을 들 수 있다. 요즘들어 역사가 거꾸로 간다는 말이 유행하는데 당시를 표현하자면 인권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개인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하고, 자기와 뜻이 맞지 않으면 종북으로 혹은 좌빨로 몰아서 전직 대통령마저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했다고 해서, 혹은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해서 노무현 대통령 관련 행ㅅ를 맡았다고 해서,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했다고 해서 폴리테이너라는 죄명으로 강제 하차했다. 자신의 생각을 썼고, 그 생각이 사회적을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미네르바는 검찰의 조사를 받았고 대학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하여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은 빚의 노예가 되거나 알바를 하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국가 인권위 문제도 불거졌고, 오죽하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인권단체들로부터 인권 추락상까지 받는 영예를 안았겠는가?

 

  이런 시기에 지식e 시즌 5는 인권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대한민국은 인권이 지켜지는 나라인가? 이 질문은 회색의 책표지로 포장되어 우리 눈 앞에 나타났다. 하필이면 왜 회색일까?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지식e를 보면서 그 표지의 색에서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나마 발견하게 된다.

 

  회색과 은색의 차이가 무엇인가? 궁금한 사람들은 네이버에서 회색과 은색의 차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보라. 많은 사람들이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차이를 말하는 사람도 회색은 조금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모두 포함하는 색이며, 은색은 밝은 회색 정도로 말한다. 둘의 차이는 광택의 유무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과거에는 은색이 하얀색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 하얀색이 나오게 되었고, 은색은 하얀색이라는 범주에서 밀려나 회색에 포함되었다는 류의 설명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듯 싶다. 얼마전 아이들과 색칠 공부를 하던 중에 회색으로 칠해야 할 부분을 은색으로 칠했다. 내 생각에는 칠하면서도 이상할 것 같았지만 칠해 놓고 나니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후로는 회색을 칠해야할 자리에 아무런 고민없이 은색을 칠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이 책을 바라본다. 그러자 인권에 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책의 표지가 회색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책의 표지가 회색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은색으로 보이고, 다시 어느 순간에는 회색으로 보인다. 은색화 회색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면서 이 책의 표지 색은 무엇이냐는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표지 색의 경계가 오락가락하면서 인권에 대한 질문과 생각도 오락가락하게 된다. 이것은 인권인가 차별인가, 이것은 정당한 문제 제기인가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인가? 어떤 사람에게는 정당한 문제제기 이겠고, 어떤 이에게는 차별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차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역차별일수도 있다.

 

  인권의 문제가 그렇게 복잡하다. 경계가 미묘하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를 인권이라고 하는데 인간이라는 의미 자체도 모호하고, 당연한 이라는 말의 의미도 모호하다. 과거에 인간은 서구 사회에서는 백인을, 동양 사회에서는 황인종(백인과 황인종이라는 말 자첻 지극히 차별적이고 주관적인 말이다.)을 인간으로 봤고 나머지는 동물과 다를 바가 없는 야만인이었다. 당연하다는 말은 또 어떤가? 이성애자에게 동성애는 당연히 비정상이고, 동성애자에는 자신들의 권리이며, 양성애자에게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이런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인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장할 것이며, 그 의미를 확장시켜 나갈 것인가?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회색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에도 은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은색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에도 회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권이라고 말할 때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할 때 인권이라고 말할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에 관해서 말하려고 한다면 세 번 네 번을 생각한 후에 말해야할 것이며, 말하고 난 후에도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부분을 기꺼이 고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딱 편을 가르고 이것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정치적으로 첨예한 문제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 가지만 묻자. 빨갱이에게도 인권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는 그 순간에도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답을 한다. 지식e 시즌5에는 이런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이 하는 그 생각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주장하기 전에 정말 그런지, 변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지 돌아보라고 주문한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계에서 어느 쪽을 일방적으로 치우칠 것이 아니라 오락가락해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을 재점검해봤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좌시하지 않겠다. 용납하지 않겠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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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8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8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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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e 시즌 8이 나왔다. 시즌 1부터 꾸준히 읽어 왔으니 벌써 몇년이 되었다. 항상 책의 첫머리에 내 마음에 묵직한 돌을 던져 주는 말 한마디가 있다.

 

  "가슴으로 읽는 우리시대의 智識"

 

  지식이라는 말이 놀랍게도 知識이 아니라 智識이다. 우리가 흔지 지식이라고 사용하는 단어는 知識으로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식e에서 말하는 지식은 智識으로 "생각하여 아는 작용. 또는 지혜와 견식"이라는 뜻이다. 지식e에서 가슴으로 읽는다는 말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e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다른 책을 읽듯이 냉철한 이성과 학식을 가지고 분석하면서 읽을 것이 아니라 가슴을 열고 각 사람의 사연을 나의 사연을,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 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흔해빠진 그러나 역사를 바꾼 사람들,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양심을 지키는 언론인들, 독재 정권에 자식을 잃었지만 타협하지 않는 어머니들, 복사할 돈이 없어서 자료를 필사하면서 친일 인명 카드를 만든 부자, 사랑하는 가족의 자살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 이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을 기록하고 있다. 활자라는 한계 때문에 영상이 주는 감동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대신 활자가 주는 묵직함을 간직하고 말이다. 내용 자체가 주는 묵직함에 활자가 주는 묵직함이 더하여져서 이 책에는 가슴으로 읽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개개인의 생생한 숨결이 담겨있다. 이 숨결은 8권이 되었다고 해서 결코 퇴색하지도 않았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런데 그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내 마음이 닫혀 버린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어느새 나도 智識을 知識으로 그리고 止息으로, 결국에는 指示로 나아가는 이 시대의 조류에 순응해 버린 것일까? 이 안에 담긴 사람들의 숨결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인데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그 흔한 촛불 한번 안켜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이렇게 초라해지는 내 마음을 달래보고자 키보드 자판 앞에서 있는척 끄적거리면서 무엇인가를 적고, 난 안그래라면서 자위하는 내 자신이 더 초래해 보인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느새 "of the country, by the country, for the country"로 바뀌어 버렸고,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기에 앞서서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가 국민의 절대적인 책무가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하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삶이 부서져도, 빈곤해져도, 사라져버려도 무방하다. 이미 나만 아니면 돼라는 절대가치가 국민들을 파편화시켜 버렸고, 언론들은 권력의 나팔수가 되어서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오늘의 이야기이다.

 

  2013년 대한민국을 사는 나에게 과연 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가슴은 있는가? "국가는 국민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 그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타게 에르란데르의 말을 말하고 믿고 실현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에 집중한다. 원 취재 대상은 정부와 기업이다. 그들이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라는 프로퍼블리카의 이념을 신뢰하고 응원하고 있는가? "세상에서 서기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목소리 큰 사람이야 얼마든지 많은데 작은 것을 꼼꼼히 기록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한창기의 자애로움이 나에겐 있는가? "사면 제도는 누가, 왜 사면권을 행사하는지에 따라 악법이 될 수도 있고 관용이 될 수도 있다."는 윌리엄 블랙스톤의 말을 기억하고 사면권이 악법이 아닌 관용으로 사용되도록 깨어서 감시하고 있는가?

 

  많은 질문 앞에서 그저 부끄럽다. 어느새 현실에 타협해 버린 내가 한없이 부끄럽다. 이 시대를 읽을 가슴조차 열어두지 못하고 닫아버린 것 같아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자화상을 쓰면서 느꼈을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서 더 아프다. 오늘도 아픈 마음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거울을 닦다가 문득 이런 사람이 나만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시대를 가슴을 읽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거울을 닦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을 받고 용기를 내 본다.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던 내게 이 책이 마지막으로 준 말 한마디에 위로를 얻는다.

 

  나는 이 지상에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간단한지 보여주고 싶었다. 혼자 꾸면 그건 한갓 꿈일 뿐이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출발이 된다.-훈데르트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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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0-26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권도 사둔채 못 읽어서 8권은 아직 구입을 안했는데...
아래 역사e와 같이 사야겠네요.

saint236 2013-10-26 12:01   좋아요 0 | URL
영상이 문자로 변환되어서 이렇게 감동을 주는 것도 드문 일이죠. 그덕에 지식e를 꾸준하게 읽게 되네요.
 
한비자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9
가이즈카 시게키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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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이 한비자 열품에 휩싸여 있다. 기껏해야 한길 그레이트 북스의 한비자밖에 모르던 내가 돌베개에서 한비자 교양강의가 나오면서 한비자에 관한 책들을 검색해보다 말 그대로 깜놀했다.

 

  "한비자/인간사랑, 글항하리, 베이직북스, 한길사, 북팜, 풀빛, 신원문화사, 새벽이슬, 홍신문화원" "한비자의 관계술" "한비자의 권력기술" "한비자 피도 눈물도 없는 생존전략" "노자와 한비자의 제황학 후흑학" "세상의 이치를 담은 한비자" "만화 한비자" "한비자의 인간경영" "한비자가 나라를 살린다" "성공하는 CEO" "한비자가 들려주는 상과 벌 이야기" "왜 원하는대로 살지 않는가" 대충 뽑은 것이 이 정도이다.

 

  이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깨닫는 놀라운 사실은 한비자를 주로 다루는 곳은 처세술 혹은 자기계발 분야이다. 이들은 한비자를 통하여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에 대해서 무언가 대단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처럼 책을 찍어낸다.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성공하는 CEO"처럼 제목만 봐도 자극적인 책들이 넘쳐난다. 이런 책들은 한비자를 동양의 마키아밸리라고 정의내린다. 어떤 책에서는 마키아밸리보다 한비자가 앞서니 한비자를 동양의 마키아밸리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마키아밸리를 서양의 한비자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엎어치나 메치나, 하얀 말 엉덩이나 White Horse' hip이나 매한가지다.

 

  한비자를 권력을 얻기 위한 냉혹한 지침서 혹은 마키아밸리즘의 연장선에서 읽는다면 한비자를 제대로 오해하게 된다. 요즘 대한민국의 한비자 열풍을 바라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면서 걱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키아밸리즘의 연장선에서 한비자를 읽고, 그것을 장려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한줌의 권력을 얻기 위하여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장려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한비자 교양 강의는 한비자에게서 음습한 마키아밸리즘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한비자를 일컬어 법가의 철학을 집대성한 사람이라 한다. 사마천의 사기를 통하여 한비자는 순자의 문하요, 이사와 동문수학한 사람으로 이해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의문을 표하면서 그들이 동문수학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비자는 순자의 문하라기 보다는 노자에게서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한비자 사상의 핵심은 법과 술과 세라고 하겠다. 한비자는 상앙으로부터 법철학을, 신불해로부터 법을 운용하는 술의 철학을, 신도로부터 법과 술을 유지하는 세의 철학을 배웠고 발전시켰다. 법이란 원칙을 말하며, 술이란 원칙을 운영하는 기술을 의미하고, 세란 법과 술을 유지하고 운용하는 권세와 권력을 뜻한다. 법과 술과 세라는 것이 따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집행이 되어야 국가가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한비가 한비자를 통하여 하고 싶은 말이다. 흔히 한비가 말했던 신하를 다스리는 방법,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방법같은 것들은 술에 속하는 것으로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한 단편적인 방편일뿐이다.

 

  한국에서 한비자가 열광적으로 읽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엔 두 가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첫번째는 우리 사회가 무한경쟁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홉스가 이야기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그리고 그 안에서 승리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사회 속에서 남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서 한비자만한 것이 없다. 한비자의 술이라는 부분, 특히 군주가 신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부분에 집중하게 되면 이보다 더 효과적인 처세술은 없다. 나의 마음을 숨기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면 상대방을 조종하고 이용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비자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 부류에 속한다. 아마 한비자를 열독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할 것이다.

 

  두번째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한비자에게서 찾는 것이다. 한비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져만 가는 조국 한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한 대안으로 법치를 주장한다. 한비의 법치는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법과 술과 세가 균형을 이루는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비의 법철학을 따라가다보면 도라는 종착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법과 술과 세, 즉 원칙과 운용 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권력, 이것이 어우러질 때 국가는 비로소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순리에 맞게 통치가 된다. 한비의 이야기가 너무 이상적이니 비현실적이니 하는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자. 원래 학자들의 이야기는 이상적인 것이 당연하니 말이다. 한비의 법치라는 것을 오늘 한국에 가져와보자. 법을 강조하지만 세만 있는 새누리, 법도 술도 없고 세만 있는 민주당, 법만 있는 통진당, 진보 정의당, 진보신당, 법도 술도 세도 없는 안철수(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그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에 판단을 잠시 유보한다.)! 어디에 대안이 있을까?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대안을 찾아야 하는가? 소수의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고민으로 한비자를 열독하는 것이리라.

 

  한비자가, 고전이 대중들에게 많이 읽힌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 없어서 몇자 끄적여 본다. 한비자의 내용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한비자를 읽을 것을(개인적으로는 한길사의 한비자를 선호한다.)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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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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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란 무엇인가?

 

  인류 역사상 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많은 공을 들였던 질문은 없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털어서 날고 긴다는 모든 철학자들이 한번씩은 고민하면서 족적을 남겼을 질문인데 이 질문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방대한 저서로 남겨서 오늘까지 내려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은 아마도 플라톤일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를 잇는 신학의 입장에서의 국가론, 근대적인 국가론의 이론서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홉스의 리바이어던, 경찰국가, 법치국가 등등등...국가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소리친 철학자들을 꼽자면 아무리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고 해도 모두 다 기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국가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매우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지금도 연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연구하게 될 담론이란 말이다.

 

  모든 철학자들이 국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상적인 국가의 정체를 꿈꾼다. 오늘날에는 이미 폐기된 왕정 국가도, 경찰 국가도, 귀족제도, 참주제도, 과두제도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새로운 정체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국가의 정체는 민주주의로 발전해 왔으며, 이것은 정체의 완성이라기보다는 아직도 발전할 여지를 품고 있는 미완의 작품일 뿐이다. 끊임없이 이상 국가를 꿈꾸면서 이상을 향해 나아가지만 한발 나아가면 한발 멀어지는 것이 이상국가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철학자들은 가장 이상적인 국가를 꿈꾸면서 그에 대해서 역설했으며, 이것들을 어느 하나로 딱 묶어서 말하기는 불가능하기에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각 학자들의 이상국가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보고, 오늘날에 그것을 어덯게 이해할 것이냐 살펴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적인 국가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철인국가이다. 우리가 철학시간에 한두마디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이런거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는 것이 있고, 그 본성에 맞는 역할을 감당할 때 그 사회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굴러가게 된다. 철인은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인이 되어야 하고,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군인이 되어서 나라를 보호해야 하며, 생산의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생산계층에 종사하면 된다는 것이다. 상당히 거칠게 표현했지만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이것인데 왜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는가? 철학자는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형상과 질료, 이데아와 이데아의 모방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사상은 중세를 거치면서 어거스틴과 아퀴나스, 루터를 통하여 인간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신국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다른 것은 뒤로 젖혀두고 나는 철학자에 의한 국가 통치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철학자가 다스리는 국가가 과연 이상 국가일까? 태어나면서 정치 지도자에 맞추어 진 사람이 과연 존재하는가? 철인이 다스리는 국가가 이상 국가라는 말을 조금 비틀어보면 절대 왕정, 혹은 동양의 천자와 매우 흡사하게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정한 인물(그것이 철학적인 식견이 있는 인물이어도 좋고, 천명을 받은 천자여도 좋다.)이 정치에 특화되어 있다는 말은 사실은 체제를 강화하는 기제로 이용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마치 아무런 능력이 없으면서도 혈통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듯이 말이다. 멀리갈 필요도 없다. 우리 주변에서 이와 유사한 일을 보지 않았는가? 정작 본인이 무엇인가 정치적인 능력을 보여주기 이전에 벌써부터 위대하신 영도자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로 차기 대선후로로 이름으로 올린 박근혜 대통령이 있지 않은가? 그를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등장과 동시에 대통령감이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그게 합당한 것인가? 플라톤의 입장에서 본다면 합당할 수도 있다. 그가 철학이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 철학이라는 것을 어덯게 해석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정치에 합당한 철인이라는 판단은 누가 도 내린다는 말인가?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사실상 실패가 이미 예견된 국가론이 아니겠는가? 그의 대부분의 철학이 그렇듯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을 무시하니 현실적인 감각이 필요한 국가론이란 얼마나 형용모순의 말인가? 감히 되먹지도 않게 플라톤을 비판하고 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넘어가주기를 바란다. 다만 그가 한 말 중에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철학이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국정 철학, 국정 철학하는데 그게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철학이라는 것은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인데 그 중심이 없이 당파적인 이해타산에 따랄 끌려다니던 것이 우리 나라 정치 지형의 모습이 아닌가? 한국에게 이상국가는 그저 이상으로만 존재할 것 같아서 씁쓸하다.

 

 마지막으로 고전의 힘이란 무섭다.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니 말이다. 국가를 읽어본 모든 사람들이 말하듯이 서광사에서 나왔던 플라톤의 국가에 비하면 천병희의 국가는 읽기가 쉽다. 철학적인 용어라든지, 개념 설명, 편역 같은 것이 빠져버리고 가독성을 높인 결과물이기 대문이다. 이것 대문에 천병희를 욕할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 천병희는 철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노고 때문에 국가론을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 나아가서 고전들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할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고전들을 번역해주는 천병희와 출판해 주는 출판사 숲에게 무한 감사할 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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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4-25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병희 역본을 찾아서 주문했어요. 아직 받지는 못했지만. 그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가격이 상당히 높게 책정되었더라구요. 배송비까지 하면 꽤 높잖아요 여기서는...
어떤 특정 계층이나 직업군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상당히 위험하죠.

saint236 2013-04-25 08:39   좋아요 0 | URL
가독성은 서광사판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특정 계층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은 한국에 팽배합니다. 일본을 따라 가려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몇대를 이어서 국회의원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