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곡자 교양강의 -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정치 전략과 언어 기술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7
심의용 지음 / 돌베개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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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이미지는 노컷 뉴스(h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cateid=1010&newsid=20110906170026517&p=nocut)에서 가져온 것이다. 

  오세훈 시장이 구국 결사의 각오로 무상 급식 법안을 표결에 붙였다. 나경원 의원은 오시장을 계백을 만들 것이냐며 한나라당 지도부들을 질타했다. 조금은 미적지근하고 때 늦은 지원 사격이었지만 한나라당의 지원 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25.7%라는 아름다운 투표율은 법안의 개표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오시장은 약속했던대로 서울 시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과 보수 일각에서는 그정도면 선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투표율은 보수30%, 진보 30%, 중도 40%로 분석하는데 25.7%면 30%의 오시장 지지층들이 투표했다는 논리이다. 일견 맞는 논리 같아 보이지만 여기엔 한나라당의 오만과 식견없음이 드러난다. 25.7%의 투표자들이 모두 오시장의 정책에 쌍수를 들어 환영한 것일까? 분명히 아닐 것이다. 개중에는 오시장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존재할 것이다. 게다가 이번 투표율이 낮은 것은 주민 투표라는 한계도 있지만 오시장에 대한 반발감과 교체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는 사실 또한 무시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에서는 애써 이러한 점들을 외면하고 있다. 

  서울 시장 보권 선거 일정이 잡히면서 가장 먼저 후보군으로 이름이 오르내린 사람이 누구인가? 보통 지금까지는 한나라당에서 누구, 민주당에서 누구, 민노당에서 누구 하는 식으로 당소속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렇게 이름이 거론되는 인사들 가운데에서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양강 구도, 그리고 그 속에서 중소 정당들의 후보자들은 무시되기가 일쑤였다. 지난 서울 시장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의 오세훈, 민주당의 한명숙이 서울 시장 후보의 전부인양 보도가 되었었고, 언론은 초반부터 이 둘의 대결구도 몰아갔으며 시민들도 둘을 저울질하기에 바빴다. 그렇지만 이번 보궐 선거의 양상은 매우 흥미롭다. 가장 먼저 박원순 변호사가 언급되었다. 동생이 희망 제작소에서 일을 하는 관계로 동생에게 박변은 어떤다고 하더냐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라 이쯤에서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였다. 동생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안철수 교수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휴가 같이 가자고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사무실에 출근했다고 한다. 뭔가 일이 생겼구나 싶었는데 마침 그날이 안철수 기자 회견 날이었다. 순간 느낌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그날 저녁 안철수 교수의 불출마 선언과 박변의 지지 선언이 방송을 탔다. 질질끌지 않고 뒤퉁수 치는 통합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통합이요, 깔끔한 통합이었으며 안철수 교수의 이름값이 박변의 후광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박변은 강력한 서울 시장 후보로 거론되었고 각 당에서는 박변의 대항마를 찾기에 전전긍긍했다. 일부 보수 언론의 꼼수로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나왔지만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한나라당의 나경원과 민주당의 박영선, 무소속 박변이 서울 시장 후보군으로 좁혀졌으며, 10월 3일 박영선과 박변이 선거를 통해 후보 통합을 한다고 한다. 

  동생에게 선거인단에 참여하라는 문자가 와서 전화를 했다. 많이 바쁘냐는 말에 많이 바쁘다고 펀드가 모표치에 거의 다 달했다고 한다. 동생이 많이 심적으로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힘내라고 했다. 박변을 돕기 위해 희망 제작소를 그만 두고 팔자에도 없는 정치판에 뛰어든 막내다. 그날 신문에서 언론의 박변까기가 나왔다. 그런데 정말로, 정말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것까지 까대면 도대체 안깔 것이 무엇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꼼수에 푹 빠져 산다. 가카를 위한 헌정 방송, 가타를 위한 딸랑이! 지상렬 닮은 김총수,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 17대 정봉주 의원, 누나 전문 기자 시사 in 주진우 기자, 목사 아들 돼지 김용민 교수! 이들의 입담과 마구 휘갈겨 대는 소설은 방송을 들으며 혼자 길을 가다가도 키득대고 쓰러지게 만든다. 정치에 관심이 없을 것 같던 20대들이 열광한다. 단순히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민감도도 많이 높아진다. 어떤 분이 리뷰로 나꼼수가 최소한 투표율 5%는 올렸을 거라고 한다. 

  지금까지 10.26 서울 시장 선거를 앞두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둘씩 열거했다. 물론 나꼼수는 서울시장 보다는 가카를 위한 헌정방송으로 시작했지만 서울 시장 선거와 동일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함께 적어본 것이다. 위의 일들을 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과거에 이러한 현상을 본 적이 있는가? 지난 대선, 총성, 지역 단체장 선거에서 이런 현상들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다. 전혀 본 적이 없다. 박영선 의원이 박변을 겨냥하여 말한대로 "무소속은 반짝 후 소멸"하였다. 문국현이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아니던가? 엄밀히 따지면 그도 무소속은 아니지만. 그런데 이번 박변의 돌풍은 반짝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 무엇을 읽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향후 대한민국의 정치 판도가 일대 지각 변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제 나꼼수와 같은 방송이 젊은이들의 귀를 사로 잡았던 적이 있던가? 최근이 젊은이들이 정치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던 적이 있는가? 없다. 젊은이들의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또한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금처럼 젊은이들을 개념없는 년놈들로 몰아간다면, 20대는 투표시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면 큰 코 다칠 것이다.

  왜 귀곡자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면서 뜬금없이 10.26 보궐 선거를 언급하느냐? 귀곡자에서 말하는 매커니즘들이 이번 선거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귀곡자를 읽으면서 끊임없이 이번 선거에 대한 분석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에 한번이라도 이런 일을 본적이 있는가 물었다. 대답은 없다라고 했다. 이게 중요하다. 무슨 말이냐? 새로운 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기미가 보인다는 말이다.  

  결국 틈새로 새어나온 징후는 '어색한 차이'입니다. 그래서 뜻밖입니다. 이 미세한 기미는 평상시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낯섦이며 어색함이지요. 평소와 다른 차이이기도 합니다. 이 미세하지만 어색한 차이가 그것을 드러낸 사람과 상황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과 상황으로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미세한 징후며 동요지만 여기에서 앞으로 전개될 수도 있는, 실현되지 않은 잠재성의 갈래가 새롭게 배치되고 결합되어 재인식되는 것입니다...귀곡자에게 중요한 점은 이러한 틈새가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흙을 뭉쳐서 그릇을 만들었을 때 그릇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조그만 금이 가고 언젠가는 깨집니다.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견고한 질서를 이룬 듯이 보이는 사회도 어느 순간 무질서로 혼란에 휩싸입니다...혼란의 틈이 벌어져 봉합의 조치를 취해 질서를 유지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조치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 혁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틈새는 의식하기가 매우 어렵고 강도고 미세하지만 원인과 조건만 형성되어 세를 이루면 현실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p196-199)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징후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감지된다. 지금까지와는 무엇인지 모를 어색한 차이, 틈새, 낯섦이 느껴진다. 이 징후를 잘 포착하여 제어하는 것, 즉 민심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그 마음을 얻는 것이 이번 선거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선거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선거에서만큼은 무의미한 이들로, 그래서 심지어 어떤 분들은 20대에게 투표권을 줘서는 안된다고 말하기까지 하지만 이들의 마음이 향후 정국을 결정하는 캐스팅 보트가 될 가능성이 살짝 엿보인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기존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높다. 안철수 돌풍과 박변 돌풍이 그 반증이 아닌가? 나꼼수가 컬투와 손석희 박경철을 누르고 팟캐스트 1위에 등극한 것이 그 반증이 아닌가? 기존 정당과 정치인들은 왜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는지 스스로를 점검해 보고 앞으로 자신들의 향보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새롭게 떠오를 무소속 야권 인사들 또한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는지 진지하게 점검해 보고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것인지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 할 것이다.  

  모두 주관적인 이념으로 현실 조건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이 어떠한지 주도면밀한 숙고를 통해서 현실 자체의 조건을 역이용하는 방식으로 '因'을 설명합니다.(p115) 

  단순히 현실을 거부하거나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처럼 무시하거나 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이 아니라 현실을 깊이 그리고 주도면밀하게 숙고하여 이러한 현상, 정치에 대한 불신이 왜 일어났는지 생각해보고, 그러한 현실 자체를 역이용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처신이 아니겠는가? 만약 박변이 기존 정치인들처럼 발목잡고, 까발리고 비난하면서 선거 후 망신창이가 된다면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상대방을 망신창이로 만드는 흑색선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이런 구태의연함을 벗어버리고 순수함과 정책으로 어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선거전략일 것이다. 물론 나경원 의원이나 한나라당, 박영선 의원이나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금가지처럼 색깔론, 혹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후광에 의존한다면 당선은 되더라도 오시장이나 이명박 대통령처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요즘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데, 특히 내가 지지하는 박변은 경청 투어까지 하고 다니는데 대인관계에 대한 귀곡자의 다음 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지혜를 가진 사람과 말할 때는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드러내야 하고, 우둔한 사람과 말할 때는 상대가 분별하기 쉽게 해야 하며, 구별을 잘하는 사람과 말할 때는 간단히 핵심을 말해야 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과 말할 때는 기죽지 말고 기세등등해야 하며, 돈 많은 사람과 말할 때는 자신의 고상함을 드러내야 하고, 가난한 사람과 말할 때는 이득에 근거해 설명해야 하며, 신분이 낮은 사람과 말할 때는 깔보는 태도가 아니라 겸손한 태도여야 하고, 용맹한 자와 말할 때에는 과감한 결단을 드러내야 하며, 과실이 있는 사람과 말할 때는 예리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유세의 기술인데 사람들은 흔히 그 반대로 행한다.(p246-247) 

  박변도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 이상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별별 사람들을 만날 것인데 각 사람을 만날 때마다 겸손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간단 명료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정치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대인 관계를 맺을 때 명심해야할 금과옥조 같은 말이다.  

  마지막으로 여러가지 흑색선전에, 구태의연한 색깔론에 이리 채이고 저리채이는 박변과 그러한 박변을 옆에서 도우면서 자기도 상처를 받는 막내 동생에게 힘내라고 응원하면서 귀곡자의 결단편 마지막 구절을 적어본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쭉 성실하게 해내길 간절히 소원하고 기도한다.

  성인이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덕을 베푸는 것이다. 하나는 은밀하게 해치는 것이다. 하나는 신뢰로 상대와 진실한 관계를 갖는 것이다. 하나는 거짓된 정보를 가지고 상대를 미혹시키는 것이다. 하나는 평범하게 평소대로 대하는 것이다. 공개적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때는 정직하고 일관되게 말하는 데에 힘써야 하고, 은밀하게 일을 처리할 때는 두 가지 말을 모호하게 말하는 데에 힘쓰되, 평범하게 평소대로 대하는 방식을 중심적인 태도로 사용하고, 나머지 네 가지는 이를 바탕으로 미묘하게 사용하면 좋다. 여기에 지나간 일을 헤아리고 앞으로 일에 증험해서 이것을 평상시의 일과 참조 비교해 이치에 적절하다 싶으면 결단을 내리다. 군주나 제후, 대신에 대한 일은 당당하고 아름다운 명성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이치에 적절하다 싶으면 결단을 내리고, 힘을 많이 쓸 필요가 없이 쉽게 이룰 수 있는 일로 이치에 적절하다 싶으면 결단을 내리고, 힘을 들이고 괴로움을 당하지마 부득이하게 해야만 할 일로 이치에 적절하다 싶으면 결단을 내리고, 환란을 없애는 일로 이치에 적절하다 싶으면 결단을 내리고, 행복을 좇는 일로 이치에 적절하다 싶으면 결단을 내린다. 그래서 정보를 파악하고 의심을 해소하는 것이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기틀이다. 이로써 혼란한 세상에 질서를 세우고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니, 매우 어려운 일이다.(p255-256) 

ps. 귀곡자 교양 강의 디자인이 참 훌륭하다. 정치 시즌을 맞이 하여 정치인들이, 그리고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어줍잖은 자기 계발서보다 훨씬 낫다. 돌베개의 다음 교양 강의 시리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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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문화사 - 교양과 문화로 읽는 여성 성기의 모든 것
옐토 드렌스 지음, 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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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방통위 소속 박경신 심사위원이 자기 블로그에 음란물을 게재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투철하신 방통위 심사위원들은 박경신 의원의 블로그에 올라온 음란물에 철퇴를 가했으며, 아주 친절하신 기자들은 음란물에 손수 모자이크까지 해주시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 덕에 사람들은 도대체 그 음란물이 무엇인가 궁금해 마지 않았고, 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많은 네티즌들은 박경신 심사위원의 블로그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문제의 작품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던 중에 자주 놀러가던 C님의 서재에서(이분이 누군지 아는 분은 다 안다. 그렇지만 잘 모르는 분들은 궁금증이 폭발해서 아마 C로 시작하는 분들의 서재를 뒤지기 시작할 것이다. 기자들의 친절이 바로 이딴 식이다.) 이 사건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고, 문제의 음란물이 무엇인지 뒤지게 되었다.(물론 아주아주 순수한 마음!!!에서 그랬음을 강조한다. ㅎㅎ) 그렇게 5분을 뒤진 끝에 그 음란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음란물은 바로바로 이것이다. 

 

  아주 아주 발칙하고 도발적인 이 음란물은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작품의 이름은 세계의 근원이다. 참 우스운 것은 박경신 심사위원 관련하여 음란물을 검색하면 돌아돌아 찾을 수 있지만 네이버 검색창에 "세계의 근원"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사진과 함께 그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단박에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중권씨의 말대로 이번 사건을 통하여서 방통위 심사위원들과 기자들의 무식이 아주 발랄하고 상큼하게 통통 튀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서평을 쓰면서 왜 뜬금없이 이 그림과 얽힌 사건을 이야기하느냐?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이 이 사건에 그대로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 심사위원들과 기자들이 비록 이 그림에 대해서 잘 몰랐다지만, 이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대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미성년자가 아닌 이상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음란물이라는 묘한 잣대로 이 그림을 평가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도 음란물이라 철퇴를 가하는 것은 이 그림의 대상 즉 여성의 성기를, 그리고 그 성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점잖지 못하다는 의식의 표현이 아닐까?  

  예전에 군대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어느날 인사 계통을 통하여 성교육이 잡혀있으니 인사과에 소속된 모든 간부들은 그 교육에 참석해야 한다는 명령이 하달된 적이 있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해서 교육 장소에 도착했다. 어쩔수 없이 참석한 교육이라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데 강사가 묘한 것을 물어본다.  

  "여러분 남자의 성기를 뭐라고 부릅니까? 자유롭게 대답해 보세요." 

  순간 침묵이 흐른다. 당시 강사는 여성이었고, 교육 대상자는 남성과 여성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강사가 다시 한번 질문을 하자 원사급의 상사들(대개 나이가 40후반에서 50초반 정도 될 것이다) 사이에서 장난스럽게 대답이 나오기 시작한다. 혹 음란한 이야기라 오해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당시 분위기를 위해서 그대로 기록해 본다. "자지요" "똘똘이요" "좆이요" 등등등... 나도 남자이지만 남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말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다음으로 이 강사가 던진 질문이 무엇일까? 그렇다.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자의 성기를 뭐라고 부릅니까?" 

  두번째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더 뻘쭘해지기 시작했다. 괜시리 옆에 앉아 있는 여군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런 젠장. 왜 이딴걸 묻는 거지?" 아까보다 두 배는 되는 정적이 흐른다음에 이번에도 원사급의 상사분들에게서 대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연륜은 무시못하나 보다. "보지요" "씹이요" "냄비요" "조개요" 등등등... 와우. 먼저 던진 질문보다 더 많은 대답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괜시리 내 얼굴이 빨개졌다. 대답이 마무리 된 다음에 강사가 던진 말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여러분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말이 이렇게 많은데요, 그 중에 정식 명칭은 무엇일까요? 남자의 성기는 자지, 여자의 성기는 보지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게 표준어입니다. 이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우리의 성의식이 비뚤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자지와 보지는 음란한 말이 아니라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표준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 단어들을 음란하다 생각하면서, 입에 올리기를 터부시하는 것일까? 어쩔수 없이 가리켜야 하는 순간에도 자지와 보지라는 표준어가 아니라 거시기, 거기 등등 애매모호한 말을 사용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게 성에 대한 문화적인 터부의 영향이 아닐까? 특히 여성의 성기에 대해서 더 민감한 것은 이에 대한 더 많은 금기와 공포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도 모순적이게 몇몇의 동성 친구들이 모이면 EDPS를 늘어놓으면서 낄낄대는 것이 남녀 상관없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이 책은 이러한 성에 대한, 특히 여성의 성기에 대해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여성에 대한 문화적인 선입견이 여성에 대해, 그리고 남성에 대해 얼마나 끔찍한 테러를 자행했는지 알게 된다. 갖가지 질병들을 히스테리라는 정의하기 애매한 명칭하에 묶어 버리고, 치료법으로 클리토리스 절제와 자궁 절제를 내세우는 외과의들의 모습은 끔찍하기만 한다. 더 끔찍한 사실은 2차 대전까지 이러한 치료법이 유행하고 꽤 설득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또한 현재 아프리카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성 할례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여성 할례가 청교도적인 금욕주의가 만연했던 18~19세기 미국에서도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여성에 대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성의 성기에 대한 테러가 우리가 알듯이 일부 몰지각한 이슬람권 또는 아프리카만의 특징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행해진 보편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성인 용품 가게에나 가야 살 수 있는 바이브레이터가 초창기에는 의료기계로 발명되었고, 보급되었다는 사실이다. 

  남성이 기록했지만, 흔히 기대하듯이 음란하거나 야릇하지 않다. 저자가 성과학자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건조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버자이어 문화사"라는 제목과 여성의 나체가 그려진 표지 디자인은 이 책을 공공의 장소에서 대 놓고 읽기 주저하게 만든다. 오죽하면 아내가 사무실에 있는 이 책 괜히 오해받지 말고 집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당당하게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봤다. 출근할 때, 가게에 갈 때, 우체국에 갈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고 다녔다. 아마 몇몇 사람들은 나를 변태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는 것은 내게 있어서 잘못된 성문화에 대한 작은 반항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원제는 "The original of the world"로 세계의 근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저자는 쿠르베라는 발칙한 아저씨의 동명의 그림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쿠르베 아저씨가 누구냐? 바로 요 사람이다. 요 아저씨 때문에 많은 점잖으신 분들의 무식이 탄로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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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8-26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한 가지 빼먹은 것이 있는데, 홍상수 감독의 "낮과 밤" 포스터에는 이 그림이 크게 클로즈업 되어 있다. 그래서 일까? 홍상수 감독의 낮과 밤이 한때 금지어로 되어 있었다. 웃기는 짜장이다.

cyrus 2011-08-26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세인트님 저에게 이 책을 소개하셨을 때 한 번 읽어보려고 했는데
제가 주로 다니는 도서관에는 소장하고 있지 않더군요, 제가 애용하는 도서관이
총 4곳인데,, 없었어요 ^^;; 그래도 세인트님의 글 덕분에 조금이나마
책의 내용을 알 수 있었어요. 마지막 문장, 공감합니다. 검색 순위에 쿠르베와
세상의 근원이 오르는거 보면서 참으로 어이가 없었어요.
평소에도 이런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

saint236 2011-08-27 11:24   좋아요 1 | URL
저도 고민하다가 대폭 할인하던 그 순간에 건졌습니다. ㅎㅎ.
이러다가 몬드리안의 작품도 창문 디자인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네요.

마녀고양이 2011-08-27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SXE(잃어버린 자유, 춘화로 읽는 성의 역사)라는 대형 양장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거 읽을 때 집에서 혼자 보느라 정말 고생했어요... 아하하. 제가
솔직하지 못 한건 틀림없지만, 역시 교육의 힘이 워낙 강력해서 아직도 쉽진 않더라구요.

이 책 흥미가 갑니다... 저도 장바구니로.

saint236 2011-08-27 11:24   좋아요 1 | URL
그렇죠 교육의 힘이란 정말로 무섭습니다.

yamoo 2011-08-28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쿠르베!

그나저나 군 시절 애피소드...많이 웃었네요^^

버자이너 문화사..이 책이 첨 나왔을 때 서평도서로 받은 적이 있어요. 다른 책 읽느라고 다른 분한테 패쓰 했는데...지금도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받았던 책이라 사지도 못하고...도서관에서 빌려보려고 합니다...

saint236 2011-08-28 13:01   좋아요 1 | URL
이런 양서를 패스하시다니...차라리 저한테 패스해주시지...
 
장자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6
푸페이룽 지음, 심의용 옮김 / 돌베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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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라딘에서 놀기 시작한지 거진 4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알라딘을 하기 전에는 오로지 오프라인 서점만 애용했는데 직장에 매이기 시작한 후부터는 인터넷 서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서점을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던지라 어디가 괜찮은지 후배에게 물었고 추천을 받은 곳이 이곳이다. 처음에는 책을 한 두권씩 사다가 어느 순간 서재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기웃거리기를 몇 번. 무료하고 답답한 일상 가운데 취미를 붙인 곳이 이곳이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취미로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끄적거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글이 샇이다 보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평단 활동도 하고, 마이 리뷰에 뽑혀서 적립금도 받고 하다보니 어느새 자유롭게 끄적거리던 글이 다른 이들의 이목을 신경쓰는 글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도 난 비교적 하고 싶은대로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 책을 통해서이다. 

  서평을 작성하기 전에 책에 대한 서평이 혹 있는가 궁금해서 찾아보던 중에 딱 한편의 서평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서평을 꼼꼼이 읽고 그 분의 서재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글을 뒤적거리다 보니 점점 서평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꽤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그 분은 이 책에 대해 혹평을 했기 때문이다. 그 분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장자 쪽에는 상당한 수준의 연구를 한 듯하고 다른 역본들의 오역한 곳을 찾아 내어 원뜻을 기록할 정도로 대단한 분이다. 그런 분이 혹평한 책에 대한 서평을 올리자니 왠지 부담이 되는거다. 그 순간 "아.. 내가 서평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 썼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서평을 쓸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조금은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억지로 용기를 짜내어 본다. 

  언젠가 친한 친구와 농담으로 비틀즈의 "Let it be"를 부르면서 장자를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내비 둬 내비둬 내비 둬 내비둬 지혜의 말씀 내비 둬"라고 멋대로 번역해서 부르면서 아마도 비틀즈가 장자를 읽었을 것이라는 시덥지 않은 농담이다. 그만큼 장자를 읽고 나면 여러가지 얽매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데 소요유는 고사하고 서평이라는 것에 얽매여 있던 내가 우스웠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에겐 정말 고마운 책이다. 

  소요유(逍遙遊)! 

  얼마나 가슴 떨리는 말인지 모르겠다. 한낱 눈 앞의 일에 내 모든 시선을 고정시키고 멀리 보지 못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요원한 경지이다. 성경에서도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당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신앙인으로 살아오면서도 결국은 내 앞에 벌어지는 것들 때문에 울고 웃고 흔들리지 않았던가? 그런 내가 책상 머리 앞에 붙여 두고 항상 쳐다보던 글이 유치환의 바위이다.  

  내 죽으면 한개 바위가 되리라. 아례 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非情의 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줄 바꾸기가 영 서툴러서 연이 사라져 버렸지만)이 시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읽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단언컨대 이 시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 시절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다. 몇 달전인가? 교회에서 만난 분 중에 관계가 틀어져서 고민하고 있던 분에게 "제가 힘들 때 보고 힘을 얻었던 글이예요."하면서 이 시를 적어서 건네 주기도 했었다. 그 만큼 이 시가 나에게 준 깊이와 위로, 그로 인한 즐거움은 내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고, 그 후 버티는 것에서 벗어나 즐겁게 그 어려움들을 기거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눈을 확 잡아 끌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 유치환의 바위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이 드러나는 경지에 이르도록 수행한 사람을 장자는 진인眞人, 지인至人, 신인神人, 천인天人이라고 불렀습니다. 대종사 편에서 몇 단락에 걸쳐 '고대의 진인'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읽어보면 매우 감동적입니다. 그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잠을 자도 꿈꾸지 않고, 깨어 있어도 근심이 없다."(其寢不夢 其覺無憂) 

  이러한 진인은 현대인의 눈에도 굉장히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까?(224p) 

  유치환이 바위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아마도 유치환은 장자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다.  

  장자는 불우한 시기에 태어나서 참 간소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요유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살았는데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참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얽어매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현대인이 느끼는 박탈감과 상실감은 아마도 이런 자유의 박탈감이 아닐까? 물질 문명의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에, 그것도 철저하게 자본주의화 된 세상 속에서 장자가 인기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인생의 즐거움, 자유로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저자는 장자의 내용을 서양의 철학과 접목하여 우리에게 설명한다. 프로이트와 호접몽을, 인간의 죽음과 영혼을 고대 그리스 철학과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장자의 내용을 돕기 위해서는 시도하는 참신한 발상이지만 때론 그 참신한 발상이 장자를 오도하게 만든다. 이 책을 혹평하신 분이 지적한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그래도 장자에 대해서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접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내가 시를 적어 드린 그 분이 여름방학 중고등학생인 자기 아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의 목록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나는 주저없이 돌베개의 교양 강의 시리즈를 추천했다.  

  ps. 돌베개 출판사 관계자님과 우연한 기회에 트윗을 하게 되었는데 다음에 나올 교양 강의 시리즈는 귀곡자라고 한다.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하시는데 언제쯤 나올지 궁금하다. 나오면 돌베개 교양 강의 시리즈라는 이름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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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1-08-07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돌베개 교양강의 시리즈 무척 좋아하는데..
다만 읽고 뭔가 따지는 걸 잘 못하는 것 뿐......이에요~~ㅋㅋ
저도 돌베개 교양강의 시리즈....이 이름만으로 그냥 주저하지 않고 구입할 예정이어요~~
뭐~읽을때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쵸?

saint236 2011-08-07 10:2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자기가 좋으면 되죠. 다음 귀곡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cyrus 2011-08-07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완역으로 된 <장자>를 읽어보려고 했는데,, 언론이나 교수신문에서 번역의 완성도를 칭찬한 책인데도 대체로 후하게 평을 준 책이 없더군요. 아무래도 동양사상 고전들은
역자들마다 서로 다른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 권에 한 번만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자가 쓴 원전이나 <교양장자강의> 같은 좀 더 내용을 심화, 보충할 수 있는
책을 같이 읽어주는게 좋은거 같아요, ^^

saint236 2011-08-07 10:28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전 원전을 아직 안 읽었다는 것입니다.^^;
 
폭력의 세기 이후 오퍼스 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 이후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희망버스, 반값 등록금, 한미 FTA반대 촛불 시위, 대추리 미군기지 이번 반대 시위... 

  그냥 머릿 속에 생각 나는 대로 이수가 되었던 사건들을 적어 보았다. 이외에도 더 많은 사건들이 있지만 그냥 최근의 사건들, 그래서 머릿 속에 바로바로 떠오르는 사건들을 적어 보았다. 이 사건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공통점이 있다. 어떤 이들은 좌빨이네, 보수 꼴통이네 편가르기를 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MB네 쥐박이네, 놈현이네 할 것이고. 각자의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서 찬반으로 팽팽하게 갈릴 것이다. 내가 이 사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들이 어떤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결정되었느냐가 아니라 이 사건들이 모두 강경진압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얼마전 있었던 희망 버스는 전 진보신당 대표 심상정 씨와 정동영 전 민주당 의원이 물대포를 맞고 현 국회의원인 이정희 의원이 최루액을 맞았다고 보도가 되었다. 대표적인 사람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강경진압을 당했다. 반값 등록금 또한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에서 반값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야심차고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는 중에 한나라당 출신의 정부 인사들은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시위들을 불법 시위로 몰아 철저하게 진압했다. 한미 FTA는 너무 유명해서 말한 필요도 없다. 오죽하면 전대협 깃발이 다시 등장했겠는가? 그 당시 전투화로 여학생을 걷어찬 그 전경과 위선은 처벌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대추리 미군 기지? 역시다.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전경을 투입하였고, 물대포를 쏘았으며, 최루액을 발사했다. 쌍용 자동차 사태에는 테이저 건이라는 신무기까지 사용하고 골프공을 날리기도 했다. 초반에는 말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정부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거나 반발을 하면 여지없이 물리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강경 진압을 하였다. 어떻게 국민의 손으로 투표를 해서 뽑은 정부가 자신들을 뽑아 준 국민들을 향하여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쟁도 불사할 태도로 강경하게 대응을 할 수가 있는가? 그것도 차후에 책임 소재를 가릴 명령권자도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말이다. 

  아렌트의 폭력의 세기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진지한 답변을 제시한다. 베버는 국가의 권력은 폭력을 행할 수 있는 권리를 독점하는 데서 나온다고 말한다. 이 말을 역으로 이해하면 국가가 폭력을 행할 권리만 가지고 있다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권력은 폭력을, 그리고 폭력은 권력을 상호간에 창출해 내는 관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렌트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폭력은 권력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며 정당성을 잃은 폭력의 행사는 권력을 파괴하는 부메랑이 된다는 것이다. 베버가 폭력과 권력의 관계에 대하여 상당히 낙관적인 입장이라면 아렌트는 비관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두 사람의 차이는 정당성을 잃은 폭력을 행사했던 나치를 경험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아렌트는 폭력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한다. 

  권력과 폭력은 대입저이다. 즉 하나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곳에서, 다른 하나는 부재한다. 폭력은 권력이 위태로운 곳에서 나타나지만, 제멋대로 내버려둔다면 그것은 권력의 소멸로 끝난다. 이것은 폭력의 대립물을 비폭력으로 사고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함의한다. 그래서 비폭력적 권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동어반복이다. 폭력은 권력을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폭력은 권력을 전혀 생사할 수 없다.(90p) 

  그런데 왜 여지없이 권력의 정당성 혹은 정책의 정당성이 흔들릴 때마다 위에서 보듯이 국가는 폭력을 사용하는 것일까? 왜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권력을 파괴하는 우를 범하는 것인가? 정치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권력의 의미가 국민의 위임이 아니라 국민의 복종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꺼이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우매한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모순이 존재한다. 이렇게 행사된 폭력은 가장 빠르고 완전한 복종을 가져오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국가가 가진 권력을 파괴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권력 위임은 국가에 대한 신뢰에 기반을 두는 것인데, 이를테면 부적절한 폭력의 행사는 신뢰와 복종을 맞바꾸는 밑지는 장사라고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아렌트의 말은 권력을 획득한 정치인들이 마음 속 깊이 새겨야할 경구이다. 

  폭력은 항상 권력을 파괴할 수 있다. 이를테면 총구로부터, 가장 빠르고 완전한 복종을 가져오는, 가장 효과적인 명령이 나올 수 있다. 총구로부터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은 권력이다.(86p) 

   아렌트의 이 말은 역사가 증명해 주는 진리이다. 나치의 몰락, 군부 독재의 몰락, 중동의 재스민 혁명과 줄줄이 뒤를 잇는 반정부 시위들이 아렌트의 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비단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5공의 몰락을 보면 딱 여기에 들어맞지 않는가? 삼청교육대, 강경 탄압, 백골단 등등 수없이 많이 행사된 폭력이 몇 년간의 완전한 복족을 이끌어 냈지만 결국은 권력의 파괴와 소멸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얼마간의 시차가 존재할 뿐이다. 

  아렌트의 문장 자체가 워낙 난삽한 까닭에, 게다가 번역까지 한 몫 거든 까닭에 책을 읽는 것이 쉽지가 않다. 오죽하면 원서를 구해서 읽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무모한 생각하기 해보았겠는가? 빵가게 재습격님의 말대로 여러번 읽어서 그 의미를 해독해 내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권력에 관한 아렌트의 사상은 너무나 탁월해서 조금씩 씹어먹는 맛이 쏠쏠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가면서 딱 한권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면 링컨에 관한 책을 가지고 가겠다고 했는데 내가 청와대에 들어갈 리가 절대 없겠지만 만약 나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이 책을 기꺼이 꼽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On Violence"라는 원제를 "폭력의 세기"로 번역한 역자의 의도가 궁금하다. 부끄럽지만 아렌트에 대해 무지하던 시절 "세기"를 century가 아니라 intensity로 오해했던 적이 있었다. "폭력에 대하여"라고 직역하기만 했었어도 이런 웃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읽다보면서 이러한 부분이 눈에 몇 부분이 띈다. 내가 별 두개를 준것도 순전히 이러한 이유이다. 책 내용은 별 4개에서 5개를 줘도 아깝지 않다.  

PS. 예전에 책을 다 읽고 나서 한마디로 이 책을 이렇게 평가했던 적이 있다. "이 책의 번역 자체가 폭력이다." 그 정도로 읽기가 난해하다. 원문도 번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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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3 - 욕망하는 영웅들의 이야기
안인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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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을 맞이하여 스스로에게 선물을 줬다. 지금까지 사고 싶었던 책들을 거금 10만원이 넘게 구입을 한 것이다. 그래도 권수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지만.(아마 펠레폰네소스 전쟁사가 3만이 넘는 거금을 들인 책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책을 받아보니 그 분량이 만만치 않다.)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었던지라 최선까지는 아니지만 열심히 읽었다. 2주만에 4권이 넘는 책을 읽었디면 열심히 읽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이렇게 열심히 읽는 중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이다. 권당 2~3일씩 8일만에 3권을 전부 읽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공을 들였건만 아무리 많이 쳐줘야 별 3개를 넘지 못한다. 별 3개가 책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감동과 재미를 주지 못했다는 것또한 사실일 것이다. 1권과 2권은 사실 가격을 조금 더 올려서라도 2권이 아니라 1권으로 내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읽어보면 알겠지만 겹치는 부분들이 꽤 많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분량 자체가 방대하다던가, 혹은 이윤기 선생처럼 주제에 맞추어 책 내용을 열거하여 주제를 가지고 읽어가는 재미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하여 이렇다할 재미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정말 재미있게 글쓰는 솜씨가 탁월하여 이윤기 선생처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지도 못한다.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신선하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소득이 없다. 냉정한 이야기이지만 돈을 주고 책을 사서 보는 입장에서 이윤기 선생의 책은 몇번이나 읽어도 물리지 않겠지만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는 딱 한번이다. 몇번을 두고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은 솔직하게 들지 않는다. 나에게 이 책은 소장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려봐도 그다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이 남는달까? 만약 저자가 북유럽 신화를 일반 대중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재미있게 읽히고 싶다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이윤기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저자는 이제 막 저자의 쉼플리가데스를 떠났다고 할까? 앞으로 저자가 어떤 글을 쓰게 될지는 관심을 가지겠지만 현재로서는 그의 책에 대한 호감도가 그렇게 높지 않다. 

  1~3권까지의 내용이 전부다 그렇겠지만 특히 더 아쉬움이 남는 것은 3권이다. 북유럽 신화라는 세트로 책을 엮었고, 3권의 주제는 북유럽 영웅들의 이야기이지만 40%는 북유럽 신화의 영웅이야기이지만(그것도 바그너의 오페라와 비교하다 보니 쓸데 없이 분량이 늘어났고, 집중도를 떨어뜨린다는 느김을 받는다.) 60%는 북유럽 신화의 영웅이 아니라 중세 시대의 영웅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가 아무리 변명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 두 부류의 이야기를 북유럽 신화라는 타이틀로 묶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차라리 1~2권을 약간 두껍게 해서 한 권으로 묶더라도 3권은 둘로 나누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만약 그렇게 구분을 짓는더라도 바그너의 오베라나 혹은 다른 오페라와 신화의 내용을 비교하고, 거기에 더하여 이 오페라들이 씌여진 시기와 상황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는 구성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후반 중세 시대 영웅과 기사들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더 첨가하여 다른 권으로 묶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북유럽 신화의 영웅들과 중세 시대 영웅들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원저자의 구성 의도가 너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참신한 이야기, 그리고 재미있을 법한 이야기를 빈약한 구성으로 끼워 맞추는 것 같아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보면 쓴 소리겠지만(어지 보면 비방으로까지 받아들일 법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공과 구성력으로 보건대 책 값이 과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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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7-0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곧 구판 1권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저도 그리스 로마 신화을 많이 읽어서
북유럽 신화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전에 <반지의 제왕>을
즐겨 읽은 독자들은 몰라도 저 같은 처음 북유럽 신화를 접하게 되는 독자들은
생소한 신화 속 인물과 내용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을거 같네요.

saint236 2011-07-03 00:19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쉽습니다. 영화로, 만화로, 곳곳에서 북유럽 신화를 욹어 먹은 것들이 많거든요.

마녀고양이 2011-07-08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역시나 이런 평을 주시네요.
다른 분들도 비슷한 말씀을 하셔서, 북유럽 신화 구매하지 못 하고 있었는데...

리뷰 감사드려요~ 다시 쿨럭~~~

saint236 2011-07-10 14:18   좋아요 0 | URL
신화는 상당히 매니악한 부분인지라 보는 눈들이 꽤 높습니다. 저도 쿨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