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순종한 선지자, 호세아
E.K. 베일리 지음, 문지혁 옮김 / 가치창조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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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 중에 리플레이스먼트(Replacement)라는 영화가 있다. 매트릭스의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이 영화가 정식으로 개봉되지 못했다. 매트릭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나온 영화임에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수작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순전히 미식축구를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미식축구를 다루는 영화가 그리 큰 인기를 끌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런 의혹을 짙게 만든다.) 우연히 비디오 가게 아저씨의 추천을 통해서 접하게 된 영화인데 그 후로 난 이 영화를 수십번은 본 것 같다. 2000년에 만들어진 영화라 10년이 훌쩍 지난 영화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새로운 힘을 얻곤 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슈거볼(미식축구의 대학 올스타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에서 쿼터백(축구의 센터포드격이랄까?)으로 출전했지만 철저하게 실패하고 그 이후 미식축구를 떠난 쉐인 팔코라는 남자가 한물간 맥킨지 감독의 설득으로 다시 미식축구로 복귀하게 된다. 그것도 프로선수들이 파업을 했기에 시즌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팀 전체를 대체한 선수들을 데리고 말이다. 그 중에는 실력은 있지만 특출나지 못해서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간 사람도 있고, 경찰로 전향했다가 부상을 입고 다시 돌아온 사람도 있다. 황당하게 스모 선수 출신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팀웍을 맞춰가며 승리하게 되고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그렇지만 단지 그뿐이다. 포스트 시즌에서 이들이 경기에 뛸 기회는 없었다. 선수들이 복귀하기 전에 임시로 고용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도전은 무의미한 도전이 아니었다. 모든 영화가 끝난 후 잔잔하게 흐르는 맥킨지 감독의 독백이 그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센티넬즈 대체선수들이 스타디움을 떠날 때 축하퍼레이드나 운동화나 음료수, 시리얼 광고 계약은 없었고 남은 건 빈 라커룸과 집에 갈 버스뿐이었지만, 그들이 몰랐던 건 그들의 인생이 영원히 바뀌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역사를 창조한 것이었다. 짧았긴 했어도 그 위대함은 영원히 남는다. 모든 운동선수들이 만회할 기회(Second Chance)를 꿈꾸는데 그들은 그 기회를 살린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집? 돈? 자동차? 애인?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잡으려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온다. 철저하게 실패하고 넘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때이다. 그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은 이 모든 잘못을 만회할 기회이다. 그렇지만 만회할 기회를 원하면 원할수록 세상이 그렇게 말캉말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은 결코 실패한 자들에게 만회할 기회(Second Chance)를 주지 않는다. 단지 루저라는 딱지를 주고 상처에 문댈 소금을 줄 뿐이다.

 

  호세아는 Second Chance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단 한가지다. “내가 너희에게 Second Chance를 주겠다.”는 것이다. 호세아와 결혼했던 고멜이라는 여인이 선지자의 아내라는 현실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최선을 다했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던 세상이 그녀에게 준 것은 쓰리디 쓰린 아픔뿐이다. 결국 그녀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대개 이런 경우는 “그 녀석은 원래 그래.”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가장 손쉬운 일이지만 호세아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만회할 기회를 준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는 그 기회를 잘 살렸을 것이다.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나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이다. 예수가 세상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셨다는 의미이다. 이게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베일리는 얇디 얇은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준다.

 

  부끄럽지만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한때 깊은 방황을 했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지만 토할만큼 힘들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헛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만 싶었고, 수면제를 여기저기 사모았다가 한 입에 털어넣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에 어머니가 생각이 났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병원을 찾아갔다. 중화제를 맞고 다시 살아났지만 몸에 무리가 갔는지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 물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그 후로 10년이 흘렀고 당시의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나와 동일한 어려움 속에서 만회할 기회를 포기하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나도 만회할 기회를 살린 것이다. 고멜처럼 방황하던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리고 인생에서 만회할 기회를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호세아를 읽으면서, 그리고 호세아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지 모른다. 그 상처를 안고 교회를 찾아오지만 건강하지 못한 교회는 그들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상처를 들쑤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회할 기회를 마치 자신들만의 전유물이든 독점한다. 그래서 상처를 입고 만회할 기회를 찾아 교회로 왔던 이들이 다시 발길을 돌린다. 그렇게 발길을 돌린 사람들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기회는 요원할 뿐이다. 그들 중 일부는 다른 곳에서 만회할 기회를 찾지만 또 다른 일부는 만회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스스로 인생을 포기한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것도,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것도 세상과 똑같이 만회할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독선적인 모습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시대 우리가 호세아를 깊이 읽어야할 이유와 필요가 여기에 있다. 혹 지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서 만회할 기회를 간절히 찾고 있다면 호세아를 읽기를 권한다. 혹 호세아를 그대로 읽는 것이 너무 어렵다면 베일리의 이 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얇지만 감동은 깊고, 여운은 큰 책이다.

 

  여담이지만 키아누 리브스도 이 영화를 통하여 만회할 기회를 찾았단다. 그가 이 영화를 찍을 당시에 묘하게도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많은 영화를 찍었다. 사람들은 다수의 작품에 참여하는 그를 깎아내리기에 열심이었지만 당시 그와 애인 사이에 생긴 아이가 유산되었고 머지않아 그녀도 세상을 떠났다. 그 아픔을 잊기 위하여 그는 많은 작품에 참여했고, 이 영화의 곳곳에서 보이는 슬픈 눈빛은 만회할 기회를 간절히 찾고 있던 그의 본심이 그대로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아마 그도 이 영화를 찍으면서 만회할 기회를 발견하지 않았겠는가? 만약 그가 기독교인이라면 호세아가 남다르게 다가오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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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5-31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가도 좋아합니다만 누가를 더 좋아합니다. 복음서 중에서는 마가복음을 더 좋아해요.

saint236 2012-05-31 23:29   좋아요 0 | URL
마가복음이라..가장 처음에 씌여진 복음서죠. 마가 또한 만회할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죠...
 
지금 행복합니다 - 감사와 순종의 사람 구두닦이 전도자 김정하 이야기
김정하.최미희 지음 / 청우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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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행복합니다.

 

  저자는 정말 행복할까? 왜 행복하다는 것일까?

 

  한달전 힐링 캠프를 통하여 알게 된 김정하 목사의 책이다. 연예계의 대표적인 신앙인으로 꼽는 차인표씨가 나와서 "나는 쓰레기입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왜 저러나 싶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이 내 마음에 큰 감동이 되었다. 자기는 가진 것이 많아서 남을 도울 수 있지만 내가 멘토로 삼고 있는 김정하라는 목사님은 가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남을 돕는다 했다. 궁금해서 김정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예전에 루게릭이라는 희귀병에 걸렸어도 남을 도우면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던 한 목사님에 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그분이었다. 검색 도중 이분의 책이 한 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급히 이 책을 구매하였다. 예비군 훈련에 들어가서 읽던 중에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책은 꽤 재미가 없다. 일반적인 신앙 서적인지라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그다지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전문적인 저자가 아닌지라 글솜씨도 그다지 좋지 않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형편없다고 하겠다. 일류 설교자들의 설교집이 아닌지라 읽어가는 것이 수원하지도 않고, 김정학 목사님의 부인  최미희 사모님이 거의 대부분 쓴 글인지라 신학적인, 그리고 신앙적인 깊이에서도 많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이 책이 내 마음에 큰 울림이 된 것은 책의 내용이 아니라 이 책을 쓴 두 사람의 삶의 내용 때문이다.

 

  김정하 목사님은 아주 어렵게 살았다. 결혼하고 어느정도 살림이 펴진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IMF로 가진 모든 것을 잃었다. 고향으로 낙향해서도 그다지 나아진 것은 없다. 오히려 더 가난해졌다. 교회에서 심방을 오는데 대접할 것이 없어서 길 가에서 호박을 하나 가져다가 죽을 쑤어 대접했다는 글은 가정 형편이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후 버스 카페를 운영하고 교회의 관리집사가 되어 살림살이가 아주 약간은 나아졌지만 목회의 길을 가기 위해서 이것들을 다 포기했을 때 얼마나 그 마음이 어려웠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내가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그렇게도 힘든 길을 왜 가는지, 차라리 농사를 짓는 것이 낫지 않았겠는가 고민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목회를 하면서 살림 살이가 나아질리 없다. 가족들 모두 생활고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패션을 통해서 아이들을 후원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서 구두닦이를 시작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한국에 이런 목회자도 있구나 싶어서 눈물이 났다. 아들에게 용돈으로 고이 간직해 두었던 헌 옷을 줄 정도로 가난했지만 그래도 베풀 수 있음에 감사했단다. 그런데 왜 꼭 중한 병은 어려운 사람들에게만 쉽게 생기는지.. 이름도 생소한 루게릭이라는 병에 걸렸다. 스티븐 호킹이 걸렸던 바로 그 병이다. 차라리 뇌종양이길 바랐다는 사모님의 말에 진한 아픔이 배어 있다. 이 정도면 대개 삶의 무게에 견디지 못해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지만, 아니 원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놀랍게도 두 사람은 행복하단다. 지금 행복하단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말, 병이 일한다는 말을 통해서 지금 행복하다는 말이 가식이 아님을 깨닫게 되자 숙연해진다. 차인표가 자기 멘토라고 당당하게 밝힐 만하다.

 

  교회에서 청년들을 가르치면서 항상 하는 말이 지금 돕지 않는다면 평생 돕지 못한다는 말이다. 크리스천은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성공하면, 안정된 직장을 찾으면 돕겠다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그 말은 대부분 공수표가 된다. 많이라는 말이 참 애매한 말이기 때문이다. 진정 돕고 싶다면 많이 가지든 적게 가지든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베풂은 물질의 풍요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풍요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쫓기듯이 등떠밀려서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말을 하고, 그 말마저도 지키지 않는 사회 지도층의 부도덕함과 뻔뻔함과 비교하여 김정하 목사님의 삶이 얼마나 가치있고 행복한 삶인지 알게 된다.

 

  지금 행복합니다. 이런 나도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여 주시니 행복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김정하 목사님과 최미희 사모님의 삶이 이 시대의 롤 모델이 되기를, 그리고 그런 분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지금 돕지 않는다면 평생 도울 수 없다는 두 분이 삶으로 보여준 평범하지만 중요한 교훈을 본받고 싶다. 내가 지금 돕고 있는 아이에게 편지 한통 보내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따뜻한, 그리고 희망을 주는 편지 한통을 보내야겠다.

 

  나도 지금 행보해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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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의 고백
E.K. 베일리 지음, 문지혁 옮김 / 가치창조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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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일보 파업이 120일째 접어들고 있다. 아니다 하루가 지났으니 121일인가? 그런데도 도무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측과 노조는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조용기 목사 일가와 노조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어제 조용기 목사는 "아시다시피 국민일보에서 나는 아무 위치에도 있지 않다. 평안하고 덕스럽게 잘 마무리되기를 바란다."고 발언했다는데 누가 그 말을 믿을 것인가? 지금 국민일보 파업의 주역들이 조용기 목사의 부인, 큰 아들, 둘 째 아들, 사돈인데 덕스럽게 마무리 되기 바란다는 말 한마디로 때우는 것은 책임회피요, 사태를 방관하고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사측의 편을 드는 편파적인 행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모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다닌 관계로 어릴 때부터 국민일보를 보면서 자랐다. 기독교계에 교단 신문이 아니라 3대 일간지에 끼지는 못하지만 일간지가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런데 머리가 커지면서 사태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조용기 목사의 측근에 의해 저질러지는 방만한 경영, 부정부패, 거기에다 기독교 신문임을 자부하면서 성도들의 헌금을 쏟아부었던 국민일보에서 스포츠 투데이라는 아주 선정적인(여타 스포츠 신문보다 더 선정적인 것으로 기억한다.) 신문을 창간하고 국민일보도보다 더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황당을 넘어 배신이었다. 그후로 난 국민일보를 "궁민일보"로 본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아주 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국민일보의 예를 들기는 했지만 지금 기독교가 욕을 참 많이 먹는다. 욕을 많이 먹는 이유가 무엇일까? 너무 올곧기 때문에 사회와 타협하지 못해서? No!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세상과 너무 타협을 잘하기 때문이다. 타협을 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공, 출세, 돈 때문이다. 교회가 성장에 목을 매는 이유가 무엇인가? 복음이 전파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아니다. 사이즈가 커져야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대형 교회의 목사님들의 설교는 대부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공을 보증한다. 하나같이 예수 잘 믿으면 성공한다는 말이 설교의 핵심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신앙을 더 오염시킨다. 진실은 이것이다.

 

  "예수 잘 믿으면 성공한다. 그렇지만 예수를 잘 믿어도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예수 잘 믿으면 잘 산다는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예수 잘 믿으면 잘 산다는 설교가 곳곳에서 선포되고, 이 설교에 혹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든다. 그렇게 대형화된 교회들이 얻게 된 힘을 가지고 사회를 섬기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높아지고 권력을 얻기 위해 열을 올린다. 장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열을 올리고, 권력의 열매를 공유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그렇지만 그렇게 열심히 높아지려고 나무를 기어오르는 그 순간 교회는 예수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예수를 보고 싶어서 나무에 오른 삭개오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로부터 가장 멀어진 사람이 되었다. 예수께서 삭개오를 보시고 무엇이라 하시는가? 다른 말 하지 않으신다.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한 마디만 하신다. 예수를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높이 올라갔지만 정작 예수는 삭개오에게 내려오라 한다. 성공하면, 부자되면, 출세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오늘날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에게 정작 예수는 내려오라 한 마디만 하신다.

 

  그런데 아직도 내려오라는 말을 무시하고 높이 올라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예수의 내려오라는 말에 순종하지 못하니 국민일보 파업도 120일을 넘어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외국을 침략하는 것이고, 예수의 이름으로 국민의 대다수를 종북좌파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독재자를 위해 기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대기업의 해도해도 너무하는 골목상권 접수 행위를 축복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가 삭개오처럼 내려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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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5-31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한국에서 개봉했었다네요. 그런데 당시 영화에 빠져 살았던 제가 몰랐던 정도니 거의 존재감이 없었나 봅니다.
 
목수, 레바이 - 십자가를 만든 어느 목수의 고백
E.K. 베일리 지음, 선경애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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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8년이 지났다. 예기치 못한 고난 주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20대 시절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른다. 당시 사무실에 계시던 분들과 함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러 갔다. 함께 일하시는 두 분 모두 기독교인이었고 어머니 연배였는데 "고난주간인데 영화 보러가시죠?"라는 말에 당황하시다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말에 두 말 않고 따라 나셔셨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잔인한 영화라고, 이런 걸보고 우는 걸 보니 기독교인들은 변태가 맞다는 상식 이하의 말을 하기도 했지만 내겐 꽤 큰 충격이었다. 예수의 고난을 성경에 충실하게 재현했기 때문이다. 물론 멜 깁슨이 가톨릭 신자라서 그런지 가톨릭 분위기가 풍기긴 했지만 그다지 큰 무리는 없다.

 

  영화 속에서 나를 가장 아프게했던 장면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인지, 누구를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예수는 피투성이가 되어 무거운 십자가를 아주 소중하게 붙잡고 있었다. 마치 놓치기라도 하면 큰 일이라도 날듯이 자기 키보다 훨씬 큰 무거운 십자가를 휘청거리면서도 소중하게, 아주 소중하게 붙잡고 있었다. 왜? 도대체 왜?

 

  "난, 오늘도 십자가를 만들었다."

 

  아주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출근하듯이 습관적으로 십자가를 만드는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십자가가 어떤 의미인지, 어디에 사용되는지 뻔히 알면서도 레바이는 습관적으로 십자가를 만든다. 십자가를 만드는 자신과 십자가에 달리는 사람들은 별개라는, 자기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겨운 평범한 인생이라는 자기 방어의 변명과 함께 말이다. 그렇지만 자기 방어의 변명 너머에는, 그의 마음 한 켠 깊은 곳에서는 도저히 해소할 수 없는 자기 혐오가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버티며 힘겹게 살아가는 레바이의 인생, 물질의 여유와 더불어 굳건해지는 자기 방어의 변명, 마음 깊은 곳에서 함께 커져만 가는 자기 혐오! 레바이가 만든 십자가에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래서 약하디 약한 레바이의 삶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자기가 지고 가는 십자가에 담겨진 이렇게 약하디 약한 레바이의 번민을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돌팔매를 당하면서도 예수는 그렇게도 소중하게 십자가를 그러쥐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보다도 십자가를 그러쥐는 예수의 손이 나를 한없이 아프게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레바이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고, 레바이의 번민이 나의 번민이며, 레바이의 인생이 나의 인생인 까닭이다.

 

  "난, 오늘도 십자가를 만들었다." - 레바이

 

  "난, 오늘도 나의 욕망에 충실했다. 그리함으로 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 saint236

 

  부자되기를 갈망하는 시대에, 물질 만능 주의 시대에, 맘모니즘에 교회가 포로로 잡힌 시대에, 성공이 곧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된 설교들이 수도없이 선포되는 시대에 난 오늘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다. 그러나 예수는 한마디 불평도 없이 나를 위하여 오늘도 소중하게 십자가를 그러쥐고 골고다를 오른다. 그 뒷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내일은 십자가를 만들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지만 나도 알고 그도 안다. 내일도 난 또 십자가를 만들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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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2-04-20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드로도 예수를 하룻밤 사이에 세번이나 부정했던걸요...흠.

saint236 2012-04-20 20:44   좋아요 0 | URL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약한 존재하고 할지라도 약한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핑계로 삼으면 안되는데 자꾸 핑계로 삼게 됩니다.
 
세상과 충돌하라 규장 A. W. 토저 마이티 시리즈 3
A. W. 토저 지음, 이용복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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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 기독교인들이 꼭 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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