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워진 이름들 사이드미러
김준녕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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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주민으로, 동양인을 착취해 부를 쌓은 집안인 '한'의 가족들이 엔젤타운으로 이사를 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교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된 아주 작고 폐쇄적인 마을. 그리고 그 옆집에 가난하고, 영어가 서툴며 항상 마늘 냄새를 풍기는 '준'의 가족들이 이주해 온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부의 차이가 극명하기에 엔젤타운의 백인들은 '한'의 가족에게는 드러내지 못하는 동양인 혐오와 폭력성을 '준'의 가족들에게 더 강하게 배설한다. 그 와중에 '한'은 어느날 부터 '준'에게 빙의되어 그와 감각을 공유하게 되는데.



숨도 못 쉬고 읽었다는 추천사에 공감한다. 나 역시 이 두꺼운 책을 순식간에 읽어내려갔으니까. 


진짜 이렇게 집단 광기가 선명하게 그려진 작품은 처음 본다. 특히 다문화 혐오가 이렇게 입체적으로 쌓아올려진 글은. 450p 내내 정말로 시달리는 기분으로 읽었다.  지독히도 폭력적인 인종차별주의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같은 조선인을 착취해야했던 조선인의 상황. 조선인과 자신은 다르다고 선을 긋고, 백인들의 세계에 편입되려 아등바등 하지만 백인들의 눈에는 조금 더 말 잘 듣는 조선인일 뿐. 

아직 어린 '한'은 분명 이 구조가 이상하다는 걸 안다. '준'을 별로 괴롭히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정말로 이 미친 사이코 유사 크리스천 컨츄리에서 어린 아이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있겠는가. '한'의 수동성도, 안쓰러움이 짜증과 분노로 변하는 과정이 정말 이해가 가긴 해. 근데 그러면 안돼... 하지만 나라고 다를 것 같지도 않아...


언뜻 보면 기독교와 한국 무속신앙의 대립이지만, 원주민과 이주민의 대립이기도 하며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을 마주했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폭력성과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타인에게 지독하게 폐쇄적인 태도가 집단적으로 발현될 경우 혐오는 증오로 바뀌기 쉽고, 막을 수 없는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도. 

(저 백인 중 누구 하나 다른 이들을 한 번만이라도 곧게 바라봤다면 이런 결말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아니야...그래도 이 마을 사람들이면 그 백인도 싸잡아서 같이 불링할거 같음.)


절정을 향해 극을 치달으며 부풀어가는 백인들의 동양인 혐오를 바라보며 독자는 이 쯤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은 뭐, 다른가. 폭염에 한국인은 쉬고 베트남 노동자만 밖으로 내보내서 일 시키다가 죽었다는게 바로 이번 여름이다. 뒤에 작가와의 대담에서도 언급되듯 외국인 범죄가 일어나면 일단 맹목적으로 비난하고 본다. 어쩌면 한국은 거대한 엔젤타운이 되기 직전의 단계일지도.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작은 사회실험이자 경고성 예언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하는 세계를 여행하게 하면서 자연스레 의식도 못한채 밟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지적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은 소설이라면, 『제』는 충실하게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 왜 계속 스티븐 킹 이야기가 나오는지 알것 같다. 이 미친 초자연 코스믹 호러 대서사맛이 분명 그의 것과 닮아있음.

++ 오컬트 월드래서 일반적인 공포 호러 소설을 생각한다면 궤가 좀 다르겠지만, 이 역시 돌아버린 호러 스토리임.

+++ 주제에 엔젤타운 인것도 웃김.

++++ 아니 근데 민경이는요?! 읽으면서 너무 무서웠음. 이야기가 거의 끝나가는데 계속 클라이맥스를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감. 이야기가 거의 끝나는 시점인데도!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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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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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공간

<관통> 사회와 개인이라는 공동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관계된 것

<통> 담아냄으로서 (桶) 연결되는 (通) 아픔(痛)들 


우리는 많은 <관>으로 삶을 지탱한다. / p.10


이 책은 시인 백가경과 문학평론가 황유지가 손을 잡고 사회·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을 찾아가 시간을 넘어 개인을 그리고 우리를 관통하는 것들에 대해 풀어내는 이야기다.

그런 생각을 해 본적 없는가, 내가 딛은 발 아래 축적된 역사들에 대해. 같은 땅을 밟으며 살았던 누군가의 삶에 대해. 두 명의 저자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관내>를 여행하며 그 공간 안에서 사유하고 글을 쓴다. 인천 성냥 박물관에서 일했던 어린 여공들이 딛고 선 바닥, 미군 부대 앞 성매매 여성들의 슬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스러져간 곳 그리고 안산과 광주, 이태원 등으로. 시간은 흘러도 발 밑에 고통을 수반한 역사는 남아 숨 죽여 웅크리고 있고 저자들은 직접 그 곳으로 걸어가 조심스러운 통(通·痛)을 감각한다. 말 그대로 정말 시공을 넘는 관내 여행자.


발 밑의 시간에, 과거의 사람들에게 빚을 진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공간에 떠다니는 아픔을 잡아채 기록한 편지. 서로의 슬픔을 묻는 안부란 이토록 먹먹하고 귀한 것이다.


나의 작은 투쟁은 이런 것이다. 하나의 진실에 다가가는 공부를 일상적으로 꾸준히 하기. 진실을 가려내는 눈을 기르기. 특정 집단이 시간을 끌며 대중의 망각을 유도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끝끝내 증명하기. 계속 말하기. 계속 쓰기. 작든 크든 계속 투쟁할 수 있는 위로와 에너지를 얻으러 여기저기 다니기.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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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몰래 피우는 담배 위픽
임솔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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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하게 사회의 쳇바퀴처럼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삶에 흥미도, 여한도 없어 죽고 싶어하는 유리와 자기파괴적 행동 끝에서야 비로소 살고 싶어진 규리의 이야기.


같은 슬픔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고 애도의 방법 또한 다르다.

행복보다 슬픔의 전염성을 체감할 때가 있다. 기쁨보다는 아픔에 깊이 공감하게 될 때 주로. 어쩌면 인간들은 통(痛)의 감각으로 서로에게 더 깊이 통(通)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서로의 아픔을 기준으로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그러다보면 맞지 않는 부분에 벼려지기도 하고 오히려 깎여나가 무뎌지기도 하고. 이 소설 인물들의 잔잔한 슬픔들은 어쩌면 통각의 무뎌짐 끝에 완성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삶에 우연히 침범한 슬픔은 개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게 될까. 비극이라고 하기도 힘든, 스쳐갈 법한 우연한 인연으로 인해 발생한 슬픔은. 이를 흘려보내야 하나 마음에 고이도록 놓아두어야 할까. 



+ 사실 읽는 내내 '누가 누굴' 이런 생각도 하면서 읽었다. 인물이 인물에게, 내가 타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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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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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너무 재밌다. 솔직히 3베르 1나르 작품은 『개미』 를 지금도 가장 1순위로 꼽는데, 키땅이 무섭게 치고 올라옴. 어느 정도냐면 일단 한번 펴면 이 책을 끝내기 전까지 중간에 잠깐 하차할 승강장이 없음. 1권도 그랬고 2권은 새벽에 잠깐 폈다가 밤을 세워서 다 읽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시리즈가 있으면 1권이 매력적이고 2권은 힘이 빠지면서 엔딩이 나기 마련인데 이 책은 2권이 진짜 미쳤음.


보통 이 작가의 작품이 그래도 현재나 근미래에 발을 붙이고 있거나 혹은 아예 천국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했다면 『키메라의 땅』은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상당히 선명하게 풀어내고 있다. 실제로 키메라가 가능하냐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 만약에 정말 이런 일이 가능했을 때, 이 새로운 인류 키메라들이 선택하는 생존의 길이 얼마나 설득력 있었는지.

즉, 엄청나게 과학적이지는 않다. 철저하게 과학에 기반을 두었다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워서 큰 수고로움 없이 그냥 술술술 읽힌다는 것도 큰 장점. 과학보다는 철학에 무게를 두고 있는 책이라 접근성이 확실히 낮다.


1권은 3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지나가 황폐해진 지구에 두더지(디거,D), 돌고래(노틱,N), 박쥐(에어리얼,A)와 인간의 유전자를 섞은 혼종을 알리사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

2권은 이 혼종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유가 너무 납득이 된다. 심지어 신인류라고 만들어뒀더니 인간의 가장 좋지 않은 부분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역시..🤦


추가로 읽는 내내 주인공인 알리사에게 굉장히 정이 안가서 혼났다. 일은 일대로 벌려놓고 스스로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만들어 낸 혼종들을 진화된 사피엔스, 우리와 동등하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보다 아래로 보는 것이 여실해서. 물론 자신이 창조한 생물을 나란하게 보는게 오히려 더 어렵긴 하겠지만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자기의 이상과 다르게 행동하는 혼종들을 외면하고 회피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 무슨 무책임한 회피형 매드 사이언티스트인가 했는데 생각해보면 알리사가 적극적으로 각자의 문명이 번성하는 흐름에 개입하지 않고 놓아두었을 때, 자연이 어느 방향으로 데려다 둘 것인가를 보여주어야 하므로 그렇겠구나 싶어서 납득이 갔다. 물론 그렇다고 호감이라는 건 아님.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오만하고 앞뒤가 다름. 정말 이입할 수 없는 화자였다.



이건 단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린 SF인거 같은가? 인류가 협력과 공존이 아닌 배제와 단절의 길을 택했을 때 나란히 파멸하는 길에 들어선 일이 과연 상상 속의 일일까. 도합 600p 가량의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며 우리는 인간이 자신들만을 위해 다른 생명들을 경시하거나, 자연을 골라 취사선택하여 진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교만한 착각들을 제3자의 눈으로 마주하게 된다.

우월종의 지위에서 사피엔스들이 무엇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인류 전체의 위기를 목전에 둔 지금 읽지 않으면 대체 언제 읽겠단 말인가.



+ 키메라 관련 이야기에서 혼종들에게 공감을 할 수 있는 포인트가 '인간성'에 있다는 게 재밌음.

예를 들면 『모로 박사의 섬』에서의 혼종들에게는 전혀 공감도 안가고 그냥 끔찍했는데, 『모로 박사의 딸』(황금가지, 2025)나 『키메라의 땅』의 혼종들은 말이 일단 통하고, 그들에게서 우리와 비슷한 인간성이 보인다는 이유로 바로 마음에 품어버리게 됨. 작가의 서술 차이도 있겠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종보다는 동종의 냄새가 나는 생명들에게 마음을 더 주게 되는 건 당연한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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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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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말뚝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어떤 종류의 재난인가? 문자를 보낸 서울특별시의 입장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 p.131


도심 한복판에, 우리 집 현관에 말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범한 나무토막 그런게 아니라, 거꾸로 박혀 있는 죽은 사람들. 보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지는 이상한 말뚝. 심지어 광화문 광장 말뚝들 곁으로 사람들은 울기 위해 모인다. 말뚝들은 이미 죽었음에도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기에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책은 알 수 없는 일들의 향연이다. 그러니까 저 말뚝들과 주인공 장이 대체 어떤 연관이 있길래 이렇게 사건들이 나열되나 싶을 정도로 이상하고 동떨어진 일이 (심지어 다소 불행한!) 마구잡이로 일어나는데 너무 웃긴건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사건들이 후에는 하나의 거대한 줄기로 귀결되었겠으나 이 책은 그냥 엉뚱한 채로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게 세상 아닌가. 내게 벌어지는 하루치의 미약한 불행들이 모두가 특정한 인과관계로 인해 필연처럼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이 책에서는 말뚝들의 과거 가운데 장의 행동이 연루되어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장이 겪는 대부분의 불행은 말뚝과는 관계가 없다. 근데 그게 평범한 소시민이자, 때로는 나약해지는 직장인의 삶이지 뭐. 이 엉뚱함과 사건의 불가해함이 이상하게 납득된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 아닐까.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기억할 만한 죽음에 대해 써서 올렸다. 그들 모두에게 잊힐 수 없는 죽음이 말뚝의 모습으로 돌아온 게 분명했다. / p.247

말뚝이 되어 다시 등장한 죽은 이들에 대해서도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들은 은폐된 죽음의 대상이며, 사회적으로 죽임당한 사람들이다. 유독성 물질때문에 죽은 외국인 노동자나 제대로 휴식하지 못하고 일하다 죽은 택배 노동자... 여기까지만 말해도 우리는 수많은 비슷한 죽음들을 쉬이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 사람들은 분노하고 함께 슬퍼한다. 말뚝들을 보고 엉엉 우는 것 처럼. 누군가는 그 말뚝조차 이용하고, 없애서 은폐하려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것들을 보며 감정을 쏟고 연민하고 이름 잃은 자들을 위해 발벗고 뛰기도 하고. 이런게 사람이고 인간사 아닌가.


결국 묻어두고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슬픔은 어떻게든 돌아오게 되어 있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 울어주고 연민하는 데에서 사회적 변화의 불씨가 피어오르게 된다. 타인을 위해 흘린 눈물이란 곧 그들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 공감했다는 거니까. 거기서부터 타인을 위해 발벗고 나서거나, 적어도 같이 옆에 서줄 수 있는 연대가 시작된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위해 슬퍼하고, 죽은 자는 산 자의 미래를 돕는다. 즉 이 소설은 같은 사회에 살았거나 살고 있거나 살 예정일 모든 이들에게 유효하게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엉뚱한 상상력과 발랄한 풍자의 탈을 쓰고 날카롭게 사회의 폐부를 찌르기까지 하는.



+ 그러니까, 한겨레문학상이 또 한겨레문학상 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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