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부코스키 타자기 위픽
박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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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의 생을 승혜는 사랑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대로 영영 살아봐도 좋을 것 같았다. / p.57

다음 생에서 살아갈 모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생애전환 시행령'이 가능한 시기. 승혜는 맥반석이 되기를 희망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막연히 좋은 것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돌고 돌아 승혜가 갖게 된 생은 타자기였다.



이 책은 허물어지는 몸과 그에 따라 흩어지는 기억 속에서도 잊고 싶지 않은 기억과 여전히 쓰이고 싶은 마음들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복잡해지는 지점은 작품 외부의 독자나 작품 내의 제3자들은 인간의 삶을, 특히 하위 계층 노인들을 강제로 다른 물질로 전환시키는 제도가 비윤리적이라고 여기는 데에 있다. 인간이 비물질이 된다면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하는 생명 유지 비용이 줄어드니까. 생산성이 떨어지는 자를 인간의 범주에서 밀어버리는 일이니까.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늙을 권리와 생존의 의무를 빼앗겼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삶이 곧 노욕일 수 있으므로.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 그들의 곤한 삶이 어쩐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고.


인간의 삶을 잇는 것 역시 자유이나 그를 포기하는 것 역시 개인의 선택이자 자유라고 생각한다. 존엄사에도 동의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사회가 암묵적으로 벼랑 끝에 내몬 일에서 기인한 거라면 그것은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 맞나?


나의 몸이 사회적으로 가치가 떨어져 이제 쓸모가 없다 여겨질 때, 사회적 비용을 축내기만 하는 '것'으로 내몰릴 때 사회가 비인간적인 것이 되기를 강제하는 일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답답해졌다. 마치 인간의 기준과 조건이 효용과 자본에 있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이 말에 적당히 반박할 언어를 아직 고르지 못했기 때문에. 작가가 끊임없이 사회에 던지는 예리한 돌덩이에 같이 맞으면서 나는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주제가 되는 기억보다는 사람다운 삶, 노인 빈곤과 복지의 문제에 더 방점이 맞춰져 덮는 순간까지도 무겁게 읽는 자의 발목을 잡는 날카로운 단편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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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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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은 언어를 빼앗긴다. 빼앗긴 언어는 마치 그들이 자발적으로 침묵한 것 처럼 가려지고, 그러는 사이에 존재는 삭제된다. 분명히 이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전들』은 그런 퀴어들의 목소리를 위로 끌어올린다. 마커로 삭제된 과거의 문장들을 그들의 목소리로 채워넣는다. 암전된 공간에 켜진 작은 플래시가 가장 구석진 곳에 소외된 사람들의 소매 끝자락부터 천천히 비추듯이.


이 이야기는 삭제당한 과거에 현재의 언어를 덧씌우는 대화로 가득하다. 당신의 과거는 나의 현재이기도 하며, '뒤틀고, 거짓말하고, 지어내서 비활성인 것'(147)이더라도 존재를 복원하는 과정. 이 메시지는 마지막에 거울을 보고 싶다는 후안을 위해 거울 틀에 자신의 얼굴을 대어 후안의 얼굴이 되어주는 나를 보여주는 데에서 드러난다.


즉, 우리는 그 대화들의 진위를 따져볼 수 없다. 노인 후안과 청년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진상들이 실재하는지 이 책의 마지막까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뭐가 중요하겠는가, "모호한 것이 모조리 해소될 필요는 없"(275)으니. 우리가 대다수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지고 들지 않듯이, 그들의 이야기 역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침묵과 누락, 공백 속을 비집고 나온 작은 목소리의 진실성을 파헤칠 이유란 굳이 없으므로. 그들의 역사를 그저 들어주고, 말하기를 멈추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삭제된 텍스트는 서서히 다른 문장으로 채워져간다. 모두가 회복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삭제된 텍스트.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심연의 놀라움, 강렬한 흥미가 일었다. 나는 후안에게 그 삭제는 도발이었다고, 하지만 남은 단어들은 어긋난 음조로 울려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 p.68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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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하다 앤솔러지 2
김솔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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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라는 행위는 뭘까.

질문을 던짐으로서 세계를 보는 눈을 확장시키는 행위에 가깝지 않을까. 정말 관심이 없다면, 어찌되든 상관 없다면 묻는 행위조차 나오지 않는다. 타인의 답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니 물음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그 행위로 독자가 보지 못했던 시야 사각의 세계를 깨부수는 행위가 되어야 할터다.


그런 의미에서 「고도를 묻다」(김솔)는 첫번째에 위치해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고도가 무엇인지, 왜 지금 고도에 대해 서로 묻고 말해야하는지. 아니, 고도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어떻게 질문을 끊임없이 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므로. 나는 이것이 이 앤솔러지가 전하고 싶은 주제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근데 읽기에는 다소 어려움)


내 기준 이 앤솔러지에서 가장 그 기대를 충족시킨 작품은 「개와 꿀」(박지영) 이었다. 평균이란 단어의 무정함, 정상성이라는 함정. 경계성 지적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날카롭고 서늘한 시선이 비수처럼 쏟아진다. 작가는 독자에게 묻고 독자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너는 무언가 다른지. 이 이야기를 보고도 귀가 붉어지는 경험을 하지 않는지.

모든 문장에 줄을 긋고 싶다던 다른 SNS 이웃들의 말에 강하게 동감한다. 사는 내내 이런 부분을 기억하며 살고 싶은, 그런 사람이 많아질 수록 분명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만드는 문장들.


앤솔러지 특성상 모든 작품을 만족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물론 이 책도 그렇다. 하지만 한개라도 기획 의도가 명확히 전달되며 독자의 마음에 크게 와닿는 단편을 만난다면 그걸로 만족하며 덮는 타입이라 나는 이 책도 나름 만족스럽게 읽었다. 왜냐면 저 한 작품으로 인해 어떤 경계를 보는 시야각이 트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으므로.


 명칭을 붙이고 널리 알리는 것은 혼란을 혼란에 머물게 하지 않고 확실한 정체성을 부여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바꾸어 놓는다고요. / p.111


+ 개인적으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단편은 오한기 작가의 단편으로 아이 설정이 이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너무 어른스러운 단어를 구사하며 어른들의 어려운 말을 이해하는 8살. 차라리 애늙은이, 빠르게 성숙해진 아이 이런 거면 모르겠는데 또 행동은 거실을 콩콩 뛰어다니는 어린이라 언밸런스한 느낌.. 요즘 8살들 '비율'이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아나요..? 내가 너무 아이를 어리게 보는건가.. 주변에 어린이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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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 위픽
신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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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레이스에 참가했다. 앞서가는 자들의 등을 바라볼 수 있었던 건 내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주역이 아니더라도, 우승자의 영광을 누린 적 없어도, 트로피를 받지 못했다고 해도 내가 달렸다는 사실은 변합없다. / p.73

솔직히 기대 1도 없이 폈다가 덮는 순간 위픽 1등으로 올려버림.

심지어 이거 저번달 말에 다 읽었는데 오늘 또 읽느라 이제야 후기를 쓴다.


어떤 장면 하나가 좋았다기 보다 그냥 모든 장면들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면서 너무 좋았음. 내 친구를 힘들게 하는 타인을 지켜보는 모난 마음, 다른 사람을 쉽게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사람이 내게 퍼붓는 마음을 '폭력적인 포옹'이라고 표현하는 섬세함, 그러면서도 '미움과 원망은 수명이 터무니없이 짧았다'(52) 라고 하는 반짝거림.


짧은 분량임에도 상당히 성찰적이다. 작가는 그냥 상처에서 거리를 두고 직시한다거나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 보다는 계속 들여다보고 골라낸다. 불행이나 상처는 이런 열등감이나 작은 마음들에서 기인한거야, 이 정도의 고통은 살아가는 데 필요해, 이건 회복할 수 있을거야, 이런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아. 이런 식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처럼 무언가 잃은 자리에 그만큼의 또 다른 좋은 것들이 채워지는 기분의 책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모난 마음들만 안고 갈 수 있게끔.


+ 이 책 다 읽으면 남는 거 ? 인덱스가 덕지덕지 붙은 책 한 권과 이걸 끌어안고 우는 여자 한 명

++ 줄거리 설명에 '포켓몬GO를 켜고 호수 공원을 걷던 ‘신진’에게 죽은 은조의 의식이 달라붙는다' 라길래 귀신 나오는 이야기인가봐! 하고 기대했는데 아니었음. 근데 더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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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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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자 네티즌은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는 여자 롤 모델을 우상화하는 반면, 젊은 남자 네티즌은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여자들을 파괴하고 싶어 한다. / p.191

띠지부터 말도 안됨

몇 안 되는 작가가 사랑하는 캐릭터들이 전부 여기에 있는 것 같대...이런 띠지 문구 듣도보도 못했음. 기대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신촌의 '뤼미에르 빌딩'에서 거주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그 빌딩은 정말로 작은 세계의 축소판이다. 가출 청소년, 무당, 인터넷 여론 조작팀 등 약간은 평범하지 않지만 분명히 곁에서 같이 살고 있는 이들. 완전히 판타지도 아니고 완전히 현실에 발을 붙인 것도 아닌, 이상하게 땅에서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 현실의 수많은 이슈들을 한번에 꿰뚫어버린다.


어쩌면 '뤼미에르 빌딩'은 작은 사회 실험의 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내일 죽을지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인간들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완전히 빌딩의 외부인인 내가 이들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분명히 곁에 있다는 걸 알지만 마치 유령처럼 변해버린 사람들, 그림자 속에서 빛을 향해 응시하는 시선들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각적으로 탐구하는 작가 특유의 시선이 뤼미에르 빌딩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날카롭게 빛난다.



+ 사실 인터넷 여론 조작팀의 이야기를 하는 게 굉장히 장강명 작가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약간 오래된 느낌은 나는데 여전히 현실에 어느 정도 통용되는 것이...ㅎ....

+++ 개인적으로는 808호 쥐들의 지하 왕국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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