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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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정말 예상치 못했다. 아니, 자퇴라는데··· 이거 너무 간단한 거 아닌가? 이게 무슨 쿠팡 주문 취소도 아니고···. (첫 문장)


14명의 작가가 자신의 교육 철학을 담아 만들어낸 '교육 소설 앤솔러지'.


어쩐지 읽으면서 어느 순간 사교육 문제가 아닌 다른 주제가 보이는데 싶더라니,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작가 10인이 손을 잡고 <한겨레>에 연재한 소설과 그 취지에 공감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탠 앤솔러지였다.


아이들은 시 한 편이 주는 울림을 느끼기도 전에 정해진 정답과 요령을 외워야 하고,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 대학이 원하는 것이 정말 '답을 잘 외우는' 인재일까. '진돗개는 진돗개답게, 푸들은 푸들답게 살아야 하는데, 진돗개도 푸들도 리트리버도 모두 셰퍼드로 만드느라'(p.118, <대치골 허생전>) 아이들 각자의 개성과 꿈을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다 할 수 있다"라고 미루는 현상이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정권 따라 바뀌는 교육 정책에 비해 사교육 열풍의 바탕이 되는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정부는 이거 못 잡아. 안 잡아. 대한민국이 자주 그래. 지킬 수 없는 규정을 발표하고 다 같이 뭉개지. 그런 풍토를 이해하고 위선자가 되어야 하는 순간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된다. 규정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 나중에는 아예 게임에 끼질 못하게 돼."


p.36, <킬러 문항 킬러 킬러>



개인적으로 이기호 작가의 단편들을 좋아하는데 여기 수록된 <학교를 사랑합니다: 자퇴 전날>에서도 그 특유의 위트로 무거운 것을 가볍게, 하지만 아프게 때리는 맛이 있어서 좋았다. 아이에게 입시 전략 목적으로 자퇴를 권하는 부모와 그에 공감하여 빠르게 자퇴 처리를 해주는 학교. 아이의 의사는 그 사이에서 허공에 맴돈다. 확실하게 처음부터 단편집의 방향을 잡아주는 느낌이라 앤솔러지의 문을 이 단편이 열어서 좋았다.



가장 기분이 이상했던 작품은 이서수 작가의 <구슬에 비치는>. 12살 아이들을 '의대 준비반'에 넣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는 수연에게 공감하고 응원도 하면서 넘겼더니 이 바탕에는 남들과 다른 자본이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잘 산다'라고 자부하는 부모가 의대에 목을 매면서 사교육을 보내는데 진짜는 다르구나. 그런 생각도 났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애들은 애매한 부자고 진짜는 <펜트하우스>라는 거. 어찌 되었든, 그저 교사-학부모의 입장차나 대립의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갑자기 자본과 입시, 교육 문제로 갑자기 확대되는 구조가 굉장히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지만, 시험에는 왕도가 있습니다. 입시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암기에 매진하지 않고, 순수한 공부를 위한 이해에 매진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p.117, <대치골 허생전>


나는 아이도 없고, 이미 입시를 치른 지 한참 되어 사교육과 관련된 주제에 쉬이 공감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펼치자마자 독자를 바로 교실 책상 위에 앉혀놓는다.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시험지 넘기는 소리와 주변에서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해졌으므로.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 전체적인 그림은 분명 긍정적이지 않지만, 이 판에는 절대적인 가해자가 없다. 아이를 중심으로 국가, 사회, 부모들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육에 박차를 가한다. 그들 역시 서로에게 물리고 물면서 전복되고. 아이는 입시만이 삶의 목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입력을 받아 휘둘린다. 이 단편들은 그 점을 날카롭게 잡아낸다. 기사나 칼럼이 아니라 소설이기에 작위스럽지 않게 보여 수 있었던 말들. 사회의 특정한 부분을 케이크 칼로 잘라내어 접시에 내어주는데 이렇게 그려진 학생들의 세계가 너무나 뒤틀리고 이상해서, 그런데 그게 진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서 생각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뒤엉켰다.


아이들에게 있어, 킬러는 과연 누구일까.



+ 무서운 건 서윤빈 작가의 <소나기>. 이건 진짜...그냥 너무 무서움....선배들이 왜 윤이를 언급하기를 꺼려했을까...근데 나라도 그랬을 듯. 교육 관련 단편집에서 이렇게 무서운 작품을 만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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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공익 - 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나
류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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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익'이라는 개념은 사회적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위험하지 않다고 보아 그 추구 행위를 허용하는 사익'이다. / p.6


公益. 사회 전체를 위한 공공의 이익. 모두를 위한 이익은 私益과는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모두를 위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있을까. 헌법에서 기본권을 배우다보면 상당히 앞부분에서 기본권의 충돌에 대해 배운다. 누군가의 기본권 행사가 누군가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 늦은 밤 카페에서 즐기는 나의 고요는 카페에서 근무하는 종업원의 시간을 바탕으로 피어오른다.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의 이익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노동자를 위해 자본가의 이익을 일정 부분 제한하기도 하고, 조금 더 일상으로 파고들어 흡연자의 흡연권과 비흡연자의 혐연권이 충돌하면 혐연권을 위해 흡연권을 제한하기도 한다. 모두가 자기의 권리와 이익만을 주장할 수는 없다. 아무리 공익같아 보일지라도 결국 특정 집단의 사익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한국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노동자의 자유가 아니고 자본가의 자유다. 노동자의 자유 확장은 자본가의 자유 축소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자가 자유를 추구하면 자유민주주의 부정 세력이나 친북 좌파가 된다. 의심하지 않으면 이런 거짓말을 믿게 된다. / p.161

해당 책은 < 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나 >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시작한다.


입주민으로부터 모욕적인 갑질을 당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경비 노동자, 청소 노동자의 노동쟁의가 학업에 방해된다며 고소한 대학생 등 많은 사익 충돌과 투쟁, 그리고 국가의 방관을 꼬집어 말하고 있다. 국가는 방관자이자 공범이다. 어떤 사안들은 방관이 가해자에게 힘이 되어 준다. 그야말로 폭력적 방관이다. 


저자는 오랜 시간 '공익' 변호사로 불려왔지만 실은 어떤 이들의 '사익'을 위해 투쟁해왔음을 고백한다. 그런 고백을 하였다 하여 저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약자의 사익을 보장한다는 것이 다른 약자의 사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며, 많은 사익은 대화와 배려를 통해 같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상대적 약자다. 잠재적인 권리침해 피해자다. 그래서 나 또한 언제 쟁의행위를 할지, 집회 시위를 하게 될지 모른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를 위해 참고 힘을 모아야 한다. '불편함의 품앗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연대 의식이다. / p.146


수 많은 공익적 투쟁을 '불온한' 사익으로만 바라보며 이기적이라 몰아가는 특정 언론과 흰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가득한 혐오의 시대에 공익이란 것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익이라는 무수히 많은 나무가 모여 공익이라는 숲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이 말을 과연 이 사회는 기억하고 있을까.




+ 해당 저서는 법적 지식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즐겁게 읽힐 것 같다. 투쟁의 내막과 판결의 결과만 나온 것이 아니라 지리할 수도 있는 소송의 과정과 법리적 설명이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법적 테두리 안팎의 이야기가 자세하여 '공권력의 본질은 폭력이다'라는 말이 무섭게 설득된다. 정말 많은 과정을 몸으로 함께 해 온 변호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들.


++ 맨 뒤 책날개에 '함께 읽으면 좋은 한겨레출판의 책'이 소개되어 있는데 <아주 오래된 유죄>와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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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 - 시장주의와 반공주의를 넘어, 비판적 중국 연구의 새로운 시각
이반 프란체스키니.니콜라스 루베르 지음, 하남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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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세계의 일부인가? 서구의 많은 정치 담론과 미디어, 대중의 인식에 따르면 그 대답은 '아니오'로 보인다. (첫 문장)


현 중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어떨까. 나는 중국과 관련된 학과를 나왔는데, 확실히 그때와 지금의 세계적 정서가 다름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중국에 대한 인식은 매 순간 바닥을 치고 있고, 쏟아지는 중국의 거대한 자본에 수많은 업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빠르게 부상하는 중국의 위치는 자유주의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국은 정말 그렇게 무시무시한 곳일까. 중국인들은 타 국가 사람들과는 본질적으로 아예 다르고 중국 체제는 그렇게나 세계를 역행하면서 사람들을 억압하는 곳일까. 중국은 확실히 특수한 국가이지만 기존의 연구들은 그걸 너무 부풀리고 확대해석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중을 넘어 혐중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21세기 황화론(黃禍論)이 불 붙듯 붙는 현 시점에서 특히 왜곡 없이 중국을 연구해야 오래된 진영론을 벗어나 더 나은 '공동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중국은 어떻게 타자화되고 외부화되고 있을까. 위가 현재 영향력 있는 세 가지 경쟁 프레임이다. 어떤 입장이든 이러한 관점들은 중국을 외부화되고, 분리된 '타자'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을 분리할 수 없는 세계의 일부로 재개념화해야 중국의 발전이 세계인들에게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과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중국의 동역할을 이해하려면 일정 수준의 특수주의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사화되고 맥락화되지 않은 분석은 피상적이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p.36)


그렇기에 제안하는 것이 방법론적 접근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이다. 한 지역을 보편화해서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상호 참조하여 상대화함으로서 세계를 다원적으로 인식하는 것. 흔히 '중국적'이라고 보이는 문제들이 실제로는 복잡한 역학 관계와 상호 연계의 결과이므로, 세계 속의 중국과 중국 속의 세계를 모두 조명하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당 저서는 이러한 방향 전환을 위해 다각도로 중국을 바라보고자 한다. 중국 노동 체제, 감시 기술로 보는 중국의 사회적 신용 시스템,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과 신장 위구르 지역의 대량 억류 사태의 연관성과 유사성, 기존 서구의 모델을 모방하고 참조한 중국의 새로운 제도 등 중국의 특수함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그들도 세계화의 영향을 받고 압박을 받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시사하는 바는 단 한가지 사실로 오늘날 중국에서 노동권과 노사 관계와 관련된 문제들이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와 깊이 얽혀 있다는 것이다. (p.67)


예를 들면 중국의 사회적 덤핑,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정말 중국만의 특징인가. 중국이 노동계약법을 발표했을 때 글로벌 자본들은 그 법이 노동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외국 기업들의 중국 신규 투자나 기업 활동 지속을 재고하게 될 것'(57)이라는 압박을 주었다. 노동계에 있어 '바닥으로의 경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중국만이 정말 맞는걸까. 오명을 중국에게만 씌우고 자신은 고고한 척 발을 빼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이 사태에 과연 책임이 없을까.



물론 중국은 폐쇄적인 국가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확실히 다른 특수성이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의 감시와 압박은 인권을 강하게 탄압하고 있는 면이 있다. 그러나 중국을 세계와 똑 떼어내어 살아갈 수 없다.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이 세계의 다원적 모습을 이해할 수 없는 시기에 근시안적인 관점은 혐중 감정만을 부추기며 무기력함을 학습시킬 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적이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근거 없는 공포감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서 더욱 더 폭 넓은 시각으로 중국을 연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이 연구 저서는 그를 위한 첫 걸음이자 방향 제시가 될 것이다.



+ 중국을 둘러싼 논의가 '본질주의'적 프레임과 '그쪽이야말로주의'적 프레임 사이에서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나는 중국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에 대해 깊은 소양은 없지만 저런 시각이 과연 도움이 될까. 배제와 무관심으로 밖에 읽히지 않아 저 관점을 고수하는 측의 주장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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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미술관 -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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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랫동안 딸들에게 자기의 신체에 수치심과 죄의식을 가지도록 가르쳐왔다. 아들들에게는 별 말이 없었던 것 같다. 동시대 미술 작품 속에서 남성들은 거리낌 없이 성기를 드러내며 어깨를 쫙 펴고 있기 때문이다. 비너스 상은 수줍고 다비드 상은 당당하다.


모든 예술은 오롯이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회화 안에는 시대적 관점, 사회상, 철학, 인문학 등 많은 것들이 녹아있다. 그러나 작품은 시대를 넘나드는데 보는 사람은 여전히 그때의 관점을 떼어다 현재에 붙인다. 여성 철학자의 시선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왔던 해석을 전복시킨다. 다시 보고, 크게 보고, 함께 보는 이야기는 흔할 수 있는 미술과 관련된 철학 에세이의 틀을 기존의 것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만든다.



더 억울한 것은 이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한다는 점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우리는 대체로 메두사를 끔찍한 마녀, 쓰러뜨려야 할 괴물로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똑같이 변신이라는 형벌을 받았어도 아라크네는 거미로 변하는 데서 끝나는데, 메두사는 남성 영웅 서사의 사악한 조연으로 재차 끌려 나와 소비된다. 죄 없는 여인을 결국 영웅의 앞길을 가로막는 마녀로 만들어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이다. 아테나의 저주를 받은 뒤 메두사는 아무도 오지 못하는 곳으로 은둔하지만, 세상은 기어코 그녀를 끌어내어 참수시키는 데 성공한다.



현대 여혐 프레이밍의 집약을 보는 듯한 메두사의 이야기.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이게 남자 잘못인데도) 성별 불문 커다란 비난의 표적이 되고, 피해자는 숨어들어가지만 세상은 다시 끌어내서 참수한 뒤 그 비참한 마지막까지 공표해야 만족한다. 남성이 저지른 범죄 피해자가 '정의로운' 영웅(남성)에 의해 처벌되고 세상에 어떠한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서 마치 현재의 '참교육' 감성을 보는 듯한 역겨움.



그리스인들은 두 가지 시간 개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기계적으로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그리고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시간인 카이로스. 크로노스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객관적인 시간 개념이고, 카이로스는 각자의 생에서 의미가 깊은 주관적인 시간 개념이다.



가장 내게 큰 위로가 되었던 부분은 그리스인의 시간 관념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었다. 


카이로스는 흔히 앞머리는 풍성하고 뒷머리는 달걀마냥 매끈한 '아갓쒸는 모르시겠죠'스럽게 앞뒤 헤어스타일이 다른 형태로 그려지는데 지나가버린 기회는 다시 잡기 힘들다는 뜻이다. 보통은 그러므로 기회가 왔을 때 머리채를 잡아야한다, 그러기 위해 준비를 잘 해두어야 한다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글을 많이 보아왔는데, 저자는 저 머리채가 '정말 카이로스의 머리채인지, 아니면 잡으면 다치는 귀신 머리채인지'(104) 알 수 없으니 매 순간 나에게 솔직하고 작더라도 최선을 다하자는 이야기에서 그친다. 나는 오히려 이런 이야기가 좋다. 내가 흘려보낸 모든 기회가 카이로스의 뒷통수로만 보여 계속 마음에서 붙잡고 놓아주지를 못했는데, 혹시 알겠는가. 카이로스가 아니라 잡으면 안되는 머리였을지도 모르니까. 후회로 점철되었던 나의 선택이 그 순간의 내 솔직함과 삶의 서사가 반영된, 최선을 생각했던 결정이었다면 그것은 나의 기회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동사다. 어딘가에 가만히 놓여 있는 명사가 아니라, 걷고 달리고 고꾸라져 넘어지고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서서 발을 내딛는. 그렇다면 이렇게나 무수한 동사로 이루어진 삶을 사는데 어째서 근육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일까. 딸들에게 울퉁불퉁한 근육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너희는 가만히 명사로 살아가라는 얘기다.


뻔하다면 뻔한 말들이고, 그렇게까지 특별한 다정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웠으나 이 큐레이터의 설명은 미술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끔하고 청자에게 건네는 다정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미술은 흔히 시대를 반영한다고 한다. 해석하는 사람 역시 그 시대적 관점만을 설명해준다. 현재의 관점으로는 너무나 낡고 반박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라도 '그때의 것이니까'라는 말은 무적의 방패처럼 더 뻗어나가려는 생각을 차단한다. 그러나 이 '철학자 언니의 미술관'은 조금 다른 시선을 알려준다. 여성에게 씌워진 불합리한 프레임과 차별적인 서사, 그렇게 답답하지만 조금씩 나아져가는 그림들을 같이 보여준다. '마녀'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차차 '탐구하는 여성'으로 몇년에 걸쳐 변해간 그림 속의 키르케처럼. 언니이자 엄마의 마음으로 미래를 살아갈 딸들의 발걸음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구성한 이 미술관은 그래서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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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과 함께 서쪽으로
린다 러틀리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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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로 윌슨 니켈은 2025년에 세상을 떠났다. (첫 문장)


1930년대, 미국을 강타한 모래 폭풍으로 가족을 잃은 우디 앞에 두 마리 기린이 나타난다. 두 마리 기린을 태운 트럭이 캘리포니아로 향한다는 말을 들은 우디는 무작정 트럭을 쫓아 나선다. 거짓말을 섞은 임기응변으로 트럭 운전사 자리를 따낸 우디와 기린 이송의 책임자 라일리 존스 영감, 기린 트럭을 따라오는 붉은 머리의 사진 기자 오거스타 이렇게 세 명과 기린 '걸', '보이' 두 마리의 여정 속에서 몸과 마음이 둘 다 가난했던 우디는 많은 것을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동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해본 적이 있는지?  길들여진 동물의 시선은 인간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려고 한다. (···) 하지만 기린의 시선은 달랐다. 두려움도, 그 어떤 의도도 없어 보였다. (p.42)


이 셋이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다.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돈벌이 목적으로 기린을 훔쳐가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건넨 돈에 현혹되는 우디 자신, 그리고 고향을 떠날 때 마음에 묻어둔 비밀, 이기적인 행동을 하도록 종용하는 내면과 끊임없이 싸우는 이야기는 '기린과 함께 하는 여유롭고 행복한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우디라는 캐릭터에 정이 잘 안가서 혼났다. 아무리 고아이며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지만 애가 너무 야생 동물 같다(절도 전과가 쌓여간다. 이 정도면 상습범이다). 도덕이나 사회적 약속에 대한 고민보다 첫 눈에 반한 오거스타에 대한 고민이 더 깊고 자기의 의무보다 오거스타의 부탁을 더 무겁게 계산하는 거 같아서... 우디가 오거스타에게 어쩔 줄 모를 때마다 뒤에서 라일리 존스 영감이 되어 나도 같이 머리를 뜯게 됨. 결론적으로 오거스타가 괜찮은 사람이어서 다행이지 만약 길거리에서 무수히 만나왔던 악인들과 비슷한 사람이었으면 진짜 어쩔 뻔 했냐 이 철없는 것아 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꾹꾹 눌러가며 봤다.


가난한 영혼이 비참한 삶 속에서 처음으로 약간의 은총을 받았을 때, 그것도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사람에게서 그런 은총을 받았을 때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인정하기마저 어렵고, 신뢰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p.316)



우디는 기린의 무구한 눈망울과 사람들의 이해와 용서, 포용 속에서 서서히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연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회피했던 감정을 직면하며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옳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 단정할 수 없고 무수히 많은 길을 걷다가 몇 번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해서 삶이 전부 망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우디가 기린과 함께 향한 길은 물리적인 길이자 비밀로 묻어놓았던 그날 멈춰버린 우디가 성장할 준비를 할 수 있게끔 하는 여정이다.


해당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아마존 최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고 한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밀려오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도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기린의 눈망울 같은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 읽고 진짜 기린 멸종돼..?ㅠㅠ하고 찾아봄 기린 멸종위기종이어써....


한 사람이 자란 곳은 영원한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이 다 잊혀도 기억되는 곳. 그곳이 나에게 좋았든 안 좋았든 상관없이, 심지어 나를 거의 죽일 뻔했더라도. (p.341)

어떤 것들은 너무 나 혼자만의 것이어서 내 안에만 간직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p.502)

나는 마음으로는 가고 싶었지만 몸이 지쳐 동물원에 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때는 내 마음도 지쳐 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시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가장 잔인한 속임수를 쓴다. 심지어 몸이 가장 소중하게 지닌 기억조차, 너무 오래 틀어 긁힌 레코드판처럼 소리도 거의 내지 않게 되고, 분노조차 덜해진다. (p.503)

즐거움에 몸을 흔드는 기린, 곡선을 그리며 여행하는 새, 하늘 높이 솟은 울창한 숲이 없는 세상은 먼지 폭풍 아니면 바퀴벌레, 그리고 우리 같은 인간들에게나 어울리는 추하고 황량하며 영혼 없는 장소일 뿐이다.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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