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독서 - 한 권의 책이 리더의 말과 글이 되기까지
신동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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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그 영향은 한 사람에게 그치지 않는다. 


p.22


"대통령의 부주의한 꿈이 나라를 얼마나 어렵게 만드는지,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홍보 사진에 있던 글이 심금을 울린다.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도자라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실은 취임 이후 10개월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구입하지 않았다] 는 기사의 문장을 첨부하고 부연 설명은 하지 않겠다. 김용현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 히틀러 자서전이라는 얘기에 왜 사람들이 경악했겠는가.


지도자가 읽은 책은 단순한 개인의 사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정 전반의 방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전 대통령들의 독서 목록을 보며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의 골조를 미리 엿볼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3의 물결>을 읽으며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유의 종말>을 읽으며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꾸준히 책을 추천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읽어나간 책과 그의 연설문들에서 그가 꿈꾸는 세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고, 그에 대한 공감을 국민에게서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윤석열 씨의 나라를 짐작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상식 밖인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그에게는 구체적인 국정 운영의 방향이 없었고, 한 번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존재하지도 않는 독서 이력보다 유튜브 시청 내역을 보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이럴 거면 재작년에 왜 김건희 씨가 도서전에 와서 그 난리를 치고 갔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정식 출간도 되기 전에 2쇄 중쇄를 했다. 단지 대통령이 읽은 책을 소개하고 그 책이 그의 철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 영향이 정책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줄 뿐인데 국민들은 그의 책장에 관심이 많다. 많을 수밖에 없다. 그의 이력은 개인을 넘어 나라의 현실이므로. 그의 과거가 오늘의 정책이 되어 미래를 그려내므로. 


'책 안 읽는' 대통령이 위에 선지 2년 반이 지났다. 전 정권만 해도 대통령이 추천해 주는 책을 구경하고 추천사를 읽었었는데, 2년 사이에 그 재미를 잊어버렸다. 사람들은 다시 책 읽는 대통령을 원한다. 그에게 미래를 사유할 힘과 확실한 국정 철학이 있기를 바란다. 



+ 김대중 대통령의 글을 읽으며 이런 사람이 대통령하는구나 생각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인간 싫어, 인간 때문에 다 망했네' 이러고 있는데 그는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재조립해보고 구상해본다고 했다. 대통령 그릇이 확실히 따로 있는게 틀림없는거 같다.




사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조작되었을 뿐이다. 희망은 충분하다. 지금도 가정에서, 거리에서, 회사에서 더 많은 사람이 친절을 베풀고 서로를 돕고 있다. 폭넓게 전염되고 있다. "인간의 선함을 옹호한다는 것은 조롱의 폭풍을 뚫고 나가야 함을 의미"(브레흐만)하고, "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시인이나 성인, 또는 변절자들의 특권"(에코)이었지만 이제는 모두의 것이 되었다. 우리는 우정과 친절, 협력과 연민을 용감하게 드러내야 한다. / p.59


매국은 언제나 애국이라는 가면을 쓴다. 국가의 이익, 국민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주장 뒤에 자신들의 이익을 감춘다. 따라서 민족 전체를 폄훼하고 상황을 스스로 악화시키는 것은 매국의 고유한 패턴이다. 국민을 그저 '혜택받는 대상'으로 타락시키기 위해 오래도록 사용한 수법이다. 자신들만의 대의인 매국을 위해 개인은 희생돼야 마땅하다. / p.168


<소년이 온다>에서 김진수를 기억하는 '나'도 그랬다. 그는 양심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 자각한다. 시신들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시민들과 함께 공수부대의 총구 앞에서 섰을 때, 그는 자신 안에서 깨끗한 무엇을 발견하고 놀란다. 바로 양심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한 번쯤 겪어봄 직한 느낌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거대한 혈관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생생함에 닿았을 때 우리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지금 죽어도 후회없을 것 같은  경지에 다다른다. 그것은 양심이 가져다주는, 숭고한 심장의 맥박이다. / p.192


돌아보면 한국의 진보는 도덕적인 이들과 함께할 때 훨씬 적극적이었고, 훨씬 너그러웠다. 억압과 패배, 절망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시민들도 박수를 쳤다. 한국 보수의 귀가 빨개진 까닭도 그것 때문이다. 그래서 권위주의는 한국의 진보에게 비도덕의 탈을 씌우려고 안달했던 것이다. 다시 태도가 절실하다. 도덕적 지도자의 등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 p.210


*하니포터 9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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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팀 블랙번 지음, 한시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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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활동하든 밤에 활동하든, 나방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은 나비를 능가한다. 어쩌면 여러분은 나방을 나비로 착각해 감상했을지도 모른다! / p.11


상식이 약간 뒤틀린다.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란다. 이상하다. 여름밤에 창문을 열어두면 내 방충망에 붙어서 파뤼투나잇 하던 그것들은 나방이 아니었나. 그렇게 일렁이는 궁금증과 '내가 경험해 봤는데 아닌데' 하는 묘한 오기로 책을 펼쳤다.


사오정이 "나방~~" 이러면서 입에서 나방을 쏟아내는 만화를 안다고 말하면 나 상당히 늙은이인가...? 하여튼 예의상으로라도 귀엽다고 말할 수 없는 사오정이 입에서 하고 많은 벌레들 중 나방을 쏟아내는 건 어떤 상징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나비가 아니었던 것은, 근면 성실을 의미하는 꿀벌이 아니었던 것은, 보기만 해도 징그럽고 꺼리게 되는 나방으로 설정한 이유는 사오정의 외적인 모습과 같이 나방 역시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벌레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나방을 만지고 눈을 비비면 실명된다는 괴담까지 있었을 정도로. 그렇게 잘 모르면서, 오히려 어설프게 알았기 때문에 더더욱 대중적인 편견에 갇혀 나방을 두려워했다. (물론 지금도 무섭지만...이 책 읽기 전보다는 쪼금 용감해진 것 같음;ㅅ;)



나방도 벌만큼이나 귀중할 것이다. 단지 대개 어둠 속에서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할 뿐이다. / p.13


나방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진짜 '나방'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비의 종류는 동요를 만들어서 부를 정도인데 나방의 종류를 그렇게 읊어본 적이 있나. 한국을 기준으로 여기에 서식하는 나비는 겨우 280여 종인데, 나방은 2400여 종에 달한다. 전 세계로 눈을 넓히면 나방만 14만 종이다.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나방이 셀 수 없이 많다. 자 이제 지구의 주인은 누구지?ㅠ



나방덫에 걸린 나방들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방이라는 지엽적인 주제에서 맴돌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태계란 원래 물고 물리며 순환하는 구조이므로 나방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그를 둘러싼 자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평범하지만 잊으며 살고 있던 전제를 나방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시금 끌어올린다. 작은 사각형의 나방덫에서 지구에 쌓아 올려진 시간과 여러 사건들, 놀라우리만큼 맞아떨어진 강력한 우연의 합이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가는데 여기서 이 날개를 가진 곤충은 단순한 '나방'에서 거대한 생태계의 축적물이 된다.



그러나 다양한 나방들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 벌레는 무섭지만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그들조차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간다는 이야기이므로. 사유는 짐작이 가고, 나는 너무 작은 개인이며 해결은 막막해 보인다.


생물들의 원래 서식지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겠지만, 안 될 경우 '이주'를 시키는 방법도 있다. '도움 이주'라는 개념을 책에서 배웠는데, 멸종위기종의 보존을 위해 개체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 할 법한 오만한 생각이다. 책에서 말한 대로 정말 '비극적 모순'(403)이 아닐 수 없다. 생태계를 다 파악하지도 못했으면서 다른 종의 이주 필요성만 높이고, 그로 인해 벌어진 문제를 통제할 수 없을 경우가 생겼을 때 마땅한 대안도 없다. 뻔한 말이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오히려 도시의 치명적인 빛에 이끌려 적절하지 못한 서식지에 갇혀버린 개체일 수도 있다. / p.278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밀려들어오는 죄책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오늘 나방을 잡지 않더라도, 살충제로 죽이는 대신 도시의 다른 불빛으로 놓아주더라도 나는 인간으로 살기 위해 이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것 만으로 생태계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 문명 속에서 사는 모든 것들은 이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방에 대해 알면 알수록, 생태계를 파고들어 갈수록 그 대상 자체보다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 적어도 지구를 지배하는 것이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 아래에서 그 작은 존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일을 훌륭히 해내는 책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세상 한구석을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과 완전히 격리할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웃의 행동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잘 알지만, 우리가 모두 이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 p.422



+ 나방 얼굴도 이렇게 크게 사진으로 볼 수 있고 참 편한 세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방과 눈을 마주치면 손 끝 부터 전기가 흐르는 것 같다. 우리 아직은 서먹해요.


++ <물고기는 알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추천한게 어쩐지 웃기면서도 납득이 된다. 둘이 뭔가 결이 비슷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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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솔티
황모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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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은 배에 담아 왔던 이국의 풍경이 부산의 역사 속에 녹아들었다. 뒤엉켜 함께 삭아가는 것을 구태여 분리해 원성분과 출신을 구분할 필요가 없어졌다. / p.90, <스위트 솔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힘은 뒷담화라 그랬던가. 굳이 책을 인용할 것도 없이 인간은 다른 집단을 배척하며 힘을 키우기도 하고 비난하여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편을 나눈다. 이질성이 뚜렷한 타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심지어 그런 일을 집단에서 종용하기도 하고. 이 좁은 한반도만 해도 남북으로 갈라져있고, 동서로 갈라져있다. 매우 인위적으로. 국가와 정치에게서 구석으로 내몰린 소외된 자들과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 만들어진 그들의 '타자성'에 대해 말하기 위한 여덟 편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단편집은 <오메라시로 돌아가는 사람들>에서부터 출발한다. 만화가가 되기 위해 도쿄에 도착한 '나'가 느끼는 외로움은 마치 난민과도 같다. 부유하는 듯 살아가던 그는 치매에 걸린 이웃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의 병 때문에 자식들은 할머니를 고향인 '오메라시'로 모시고자 하지만 그곳은 전쟁 당시 학살의 터였으며 할머니에게는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곳이다. '나'는 할머니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없지만 할머니의 기억 속 공포인 '오메라시'는 자신에게도 있음을 알게 된다.


역사의 비극과 생존자의 부채감은 곧 개개인의 불안과 이질성으로 축소되고 배척 끝에 고립된다. 심지어 모두가 마음속에 자신만의 '오메라시'(시대와 공동체가 떠넘긴 개인의 불안,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제외한 모든 이는 결국 타자이고, 그렇게 여길 때 '남의 일'이 될 수 있으니까. 묻지 않고 들여다보지 않는 일이 과연 진짜 배려와 다정인 걸까. 그것은 타자를 향한 무관심과 동일한 일이 아니었을까.


로봇 벨루가 벨카가 진짜 벨루가 무리에 속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나의 새로운 바다로>는 다른 이질성을 갖고 있는 자들도 공동체에 편입시킬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아예 같은 생물이 아닐 수도 있는 벨카를 벨루가들은 받아주었는데, 같은 종인 사람들은 왜 그러지 못하고 있었을까. 저런 생태계보다 인간이 나은게  뭐라고 인간은 바다를 오염시키고 벨루가를 사냥하고 있는걸까. 사실 뻔하다면 뻔한 감동이었는데 나한테는 너무 잘먹혀서 큰일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타자일 수 있다는 생각. 모두가 서로의 타자가 되어버리면 아무도 오메라시의 터널을 이야기하지 않을거란 생각. / p.34 <오메라시로 돌아가는 사람들>



<시대 지체자와 시대 공백>, <순애보 준코, 산업위안부 김순자>의 느낌은 비슷하다. 후자가 훨씬 충격적이고 더 세밀하게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느낌. 개인의 입맛대로 바뀌는 역사와 그저 많은 것들을 시대의 변화로 여기며 사유를 멈춘 채 흘러가는 일의 무서움. 목적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기란 얼마나 간단한지 선명하게 조명한다. <순애보 준코, 산업위안부 김순자>는 훨씬 충격적이다. 전범 국가와 기업이 범죄 회피를 위해 의도적으로 피해자를 손상시키고 역사적 사실을 오염시켜 왜곡하여 책임으로부터 달아난다. 국가의 침묵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피해자의 '자발성'을 내세운다는 게 너무나 끔찍한데, 그럴 수 있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에 뒤통수를 두들겨 맞은 것 같다. 


순애보 필터로 채색된 기억. 순자씨의 경험과 추억을, 살아남은 이유를, 진짜 이야기를 유괴한 거였다. / p.125 <순애보 준코, 산업위안부 김순자>


일부다처제 세상, 4~50대 남성의 nn번째 부인이 되기 위해 신부 수업을 받는 학교가 있다. 그곳에 노파의 몸으로 떨어진 수빈이 아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설정의 <브라이덜 하이스쿨>. 수빈의 입에서 전달된 이야기는 결코 그대로 전승되지 않는다. 각자의 목소리와 저마다의 바람이 덧씌워지고 그렇게 만들어져 가는 이야기는 강력하다. 이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 다른 남성의 인형을 목표로 하던 아이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고 결국 남자들이 그려낸 동화 밖으로 걸어 나가게끔 한다. 스스로의 발로. 




모두가 자타의적으로 가지고 있던 어떠한 이질성, 그를 눈감은 채 어딘가에 소속되고자 더욱 두드러지는 자들을 타자로 내몰고 배제해 왔던 일들이 떠오른다. 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외면된 사람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고 '타자'로 바로 여기고 거리를 벌리고 있었기에 많은 비극들이 일어난 게 아닐까. 있는 그대로 타인을 바라보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포용을 가장한 회피이자 무관심이 아니었을까.


대놓고 살갑고 다감하지는 않지만 아주 작아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자들에게 스피커를 쥐어주는 그런 다정. SF로부터 현실을 꿰뚫는 메시지가 주는 충격에서는 작가로서의 어떠한 책임감마저 느껴진다. 이런 게 문학의 힘이고 소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마침표로 매 단편은 끝났지만 독자에게 그것은 마침표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묻는 물음표와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뜻의 쉼표와도 같은 단편들. 황모과의 이야기는 SF가 아닌 현실이었다. 나는 이 모든 것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 추천하고 싶은 단편은 첫 번째 단편인 <오메라시로 돌아가는 사람들> 9p 부터 <여행이 다시 당신을 찾아옵니다> 276p까지. 별점 다섯 개다. 열개가 최대치라면 열개 다 줄 거야...



우리 모두가 우연으로 이 세계에 떨구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타자성으로 인해 저마다 깊은 상처를 입었다. 우리는 모든 경계에 책임이 있고 우리에게는 재생이 필요하다. 황모과는 지금 경계에 귀 기울이고 책임에 대하여 쓰는 중이다. / p.294,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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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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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좋아하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게 있으면 좋다. / p.6, 첫 문장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온다. 다들 자리를 잡아 건실하게 살아가는데 나만 땅에서 동동 뜬 느낌, 질투보다는 막막함에 눈앞이 캄캄해져 괜스레 타인의 흠을 볼 때나, 타인이 만들어낸 그늘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잘 보이려 애쓰는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 그럴 때. 그냥 한마디로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사랑하는 것, 욕망하는 것 앞에서 결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스스로가 찌질하고 옹졸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때. 나는 담담한 척 자조를 공유하면서 이런 마음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다. / p.39

세상에는 '사랑'이 넘친다. 미디어와 sns에는 사랑과 다정이 흘러넘치고, 질투와 혐오, 좌절은 사랑이라는 그늘 밑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있다. 꿈결 같은 이야기를 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다정한 이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근데, 그게 과연 현실이 맞나. 내 주위에도 그런 아름다움이 가득하고 나 역시 좋아하는 것만 마냥 좋아하면서 예쁜 것만 보면서 살 수 있을까. 


좀스러워 보일까 봐, 우습게 보이고 나의 결핍을 들킬까 봐 숨기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마주 보고 글로 옮기면서 아무래도 자신이 대인배는 아니라 고백하는 저자는 그래도 이만큼의 노력은 했으니까 소인배도 아닌 '중인배' 정도로 타협한다. 너무 부정적인 감정에 솔직하면 거기에도 취하기 마련이다. 그런 취한 기분으로 쓰는 글은 한없이 우울하고 자기 연민이 넘친다. 하지만 깊게 가라앉은 감정으로 어둡고 슬픈 글로 마음을 찌르기보다는 어떻게든 발버둥 쳐보려고 했던 모습을 인정하고 그만큼의 가치를 또 매겨주는 일. 옹졸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임에도 '그 정도면 충분하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처음이라 기분이 묘했다.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싫어하는 내면에 손을 내밀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로 아름다움이란 좋은 것의 집합이다. 누구나 가지긴 어려울 정도로 비싸고 세련된 우아한 무언가다. 배제하고 엄선해낸 결과다. 그 사실을 수긍하기까지의 고통을 기억하면서. 이제 나는 동거인과 함께 그런 아름다움을 지향점으로 둔다. 거기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래야 나아갈 수 있으니까. / p.75


작가님이 계속 쓰셨으면 좋겠다. 그의 사주가 어떻든, 주변이 어떻든 나는 작가님의 산문을 다시 한번 읽고 싶어 졌기 때문에. 


'싫음'에 색을 덧칠하여 '좋아하는 것'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것. 호오에 확실한 명암을 줌으로서 나를 둘러싼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고, 더 잘 사랑하기 위한 일. 내 사랑에 솔직하게 초점을 맞춰 집중하고 돌보는 일. 나는 이 책으로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얻어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살아가는 곳이 바뀌지 않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그칠 것이었다. / p.238


+ 솔직하게 올해 출판된 한겨레출판 에세이 내 마음 속 공동 1등이다. 다른 1등은 문보영 작가의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읽는 내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는 점에서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와는 또 다른 결로 좋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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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
이관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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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토론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걱정하시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독도를 일본에 내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시는 분도 있더군요. 그분들께 '걱정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차피 독도는 조만간 일본 땅이 될 테니 말입니다. / p.23


정치학자 이관후 저자의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매우 충격적인 말로 문을 연다. 대한민국의 소멸 위기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도 않고, 결혼과 출산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진짜 어쩌라는 수준의 말이다. 한국이 저출생인데 지금 그를 담당할 나이의 여성이면서 지금 뭐 하냐는 손가락질과 책임을 떠넘기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하기까지 하다. 뭐 낳을 사회가 되어야 말이지. 그런데 바로 독도부터 얘기하고 들어가다니. 사실 한국이 없어질 위기인데 독도의 운명이야 당연한 거 아닐까. 그럼에도 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소멸이라는 말에 무뎌졌다는 게 느껴진다.



빠르게 성장한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유례없는 속도로 빠르게 소멸하기 시작한다는 주제는 낯설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낮은 출생률 타이틀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만 봐도 이 나라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가지 않나. 한국은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소멸하고야 말아야 하는 운명인 걸까. 나는 많은 것이 소멸한 한국에서 과연 지금까지처럼 무사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정부는 국가 경영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부·여당은 국가의 미래가 아니라 집권 세력, 지지 세력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은 뒷전입니다. 결과가 나쁘면 전 정부와 야당 탓을 하면 됩니다. 야당은 정부가 외교와 경제를 망치고 있으니 반사 이익을 누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 나라가 망해도 좋은 것입니다. 아니, 망하게 방치할수록 좋습니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는 게 더 설득력이 있느냐의 문제만 남았습니다./ p.38


여야의 '심판 프레임' 그 속내를 알게 된 무서운 문단. 국민의 심판을 바란다는 말, 선거철마다 매번 듣던 말이라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하다. 상대가 무능해야 내가 밥그릇을 더 차지할 수 있는 싸움이라면 내가 나서서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 상대의 실패만을 바라는 것이 더 빠른 길이며, 내가 여러 정책을 내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비판하는 것이 더 쉬운 길인데.


공생하여 나라를 이끌어야 할 정치인들은 한국의 각종 소멸과 국민의 절망을 다른 당에 떠 넘기고, 그 책임은 국민에게 오롯이 지운다. 저출생도 국민의 탓, 아동 학대도, 사기를 당하는 도 국민의 탓, 지방으로 가지 않은 것도 모조리 국민의 탓.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은 없고 커다란 일이 터지면 부랴부랴 사건을 수습하듯 '00법'이라는 이름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며 넘어가는 일들. 저자는 이 모든 사회의 소멸에는 정치의 소멸이 선행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밥그릇 싸움에 서로가 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정책의 실패를 바라는 사이에 한국은 얼마나 많은 비상신호와 기회들을 놓쳐왔을까. 



유일한 희망은 정치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의 소멸을 말하고 있는 지금, 돌아보면 2016년의 촛불이 꿈만 같'(133)다던 저자는 지금의 형형색색 응원봉을 보면서 어떤 글을 쓸까. 한국의 소멸을 걱정하는 그처럼 이렇게나 한국을 걱정하고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응원봉의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추운 거리에 밖으로 나오고,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멀리서나마 마음을 전하면서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정치를 복원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답은 탈조다' 라면서 희망이 없는 한국을 떠나기를 부추기는 sns 어딘가에 돌아다니는 그 말들은 시위 현장에 나가보면 절대 나올 수 없다. 이 불빛의 개수가 곧 희망이고 사람들의 배려와 연대 의식이 가득했으며,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있을 정도로 평화로운 집회를 여는 시민들의 수준은 그 어느 나라보다 선진적이다. 소멸 직전의 문턱에서 한국을 다시 일으킬 힘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 2주에서 3주만 늦게 나오지. 너무 일찍 나와 아쉬운 책이었다. 한시 바삐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올해의 책을 꼽으라면 유시민 작가의 책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에 이어 2위로 올림. 




+ 『검찰 국가의 배신』(이춘재, 한겨레출판) ,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신장식, 한겨레출판) 와 묶어서 정치 에디션 내지 탄핵 에디션으로 나와도 될듯. 진짜 미친 시대였다. 5년같은 2년 반이었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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