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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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는 맞거나 틀린 것, 좋고 나쁜 것, 기쁘고 슬픈 것이 없을 거라고 나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생물의 생존방식을 경쟁이라는 단어로 요약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경쟁이나 공생도 자연을 설명하기엔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조화, 연결, 순환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자연의 모든 건 조화롭게 연결되어 순환한다. / p.97


흔히 자연 속에서 인간은 삶의 지혜를 얻는다고 한다. 마음이 심란할 때 자연을 찾고 산을 향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광활한 자연을 눈 앞에 둘 때 인간의 고민은 얼마나 하찮아지는가. 이때 거대한 풍경이나 키가 큰 나무들 사이에 둘러싸여 자연에 압도당하는 느낌보다도 내가 밟고 있는 풀 하나하나를 인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식물학자인 저자는 쉽게 사람들의 시선을 가져가는 거대한 유채꽃밭 만큼이나 그 밑에 밟힌 냉이와 꽃다지 하나하나에도 마음을 쓴다. 어린 시절에 운동장 구석에 쪼그려 앉아 개미들이 갖고 가는 풀 한조각을 구경하듯, 신기한 꽃 한 송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듯 눈을 반짝이며 풀 한포기에 집중한다. 반짝거리는 빛이 스며든 아이같은 시선이 인상적이면서도 그리운 감정이라 문득문득 기억 저편의 풍경들이 떠올랐다. 에세이를 읽는 재미란 이런 거지, 낯선 타인의 삶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



보이는 것 외에도 보이지 않는 미세한 것들과 식물 내부의 과정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다. 오감 전체를 사용하여 오롯이 하나에 집중하고, 그 이면의 진실을 탐구하는 것. 비 냄새에서 토양 속 박테리아와 곰팡이를 떠올리고 식물 자체에 집중한 시선은 그 식물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그렇게 연결되고 공존하는 자연과 떨어지는 꽃잎을 아쉬워하지 않고 재회를 확신하며 기다리는 순환과 인내를 배운다. 하나의 존재를 그렇게 바라보는 일에서, 편견에 앞서 이해하려 노력하던 순간들 속에서 사람은 성장한다.  



그런 사랑도 있는 것이다. 식물을 들여다보듯 조용히 시간을 쏟아 바라보고 관찰하는 일, 그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천천히 마음을 사랑으로 물들여가는 일. 그제서야 이것이 사랑이었음을 확신하고 모습을 그려내는 식물학자 특유의 사려깊은 다정이 비에 젖은 풀냄새를 데리고 곁에 머물었다.



+ 그러고보니 나는 살구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살구맛 그 어떤 것도. 살구 무슨 맛이지?


++ 나무는 천천히 자라는 것처럼 천천히 죽는다고, 나무는 절대 쉽게 죽지 않는다는 말이 책을 덮어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불과 얼마전까지 화마가 휩쓸고 간 산들의 나무가 생각났고 계엄이라는 크나큰 충격을 딛고 다시 서야하는 한국이 떠올랐기 때문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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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국정 노트 - DJ 친필 메모로 읽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박찬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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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사태 이후 그 어느때보다 대통령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대통령이란 무엇일까, 어떤 자가 올라야 하는가, 진보인가 보수인가. 윤석열은 파면되었고 한국은 위기 상황에 직면해있으며 우리는 이제 그 이후를 그려야 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본 이 몇 개월간 대통령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김대중에게로 다시 초점을 맞춘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5년간 거의 매일 국정 노트를 썼다. 각종 업무와 한국의 발전을 위한 열망으로 써내려간 노트는 무려 27권이나 되고, 그 친필 메모는 22년 만에 처음 공개되었다.


가장 신기했던 점은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한국은 일본 문화에 잠식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한 점이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문화가 한국보다 앞서나갔던 그 시절, 문화를 개방하면 상대적으로 한국이 취약하리라는 많은 이들의 우려와는 반대로 한국은 나름의 방향으로 흡수하고 더욱 부강하게 발전하리란 자신감은 그대로 들어맞았고 현재 K 문화는 세계가 주목하는 위치까지 올라와있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음에도 스크린 쿼터제를 철폐하지 않았던 선구안도 놀랍다. 일본 문화와는 달리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 영화 시장을 지배하는 일방적인 관계로 끝날 것으로 보고 지켜낸 스크린 쿼터가 요즘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세계 진출을 이끌어냈다. 같은 문화라도 음악이나 드라마와 영화를 달리 구별하여 진보적으로 개방할 때는 개방하고, 국익을 위해 닫을 때는 닫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진보·보수의 진영논리를 떠나 실용적으로 국가를 위해 고민했던 결과이며 그 고민이 그의 메모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 책에서 그가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위해 분투한 흔적과 국민을 향한 철학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와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 그 위치에서도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하고 스스로가 아닌 국민을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하던 모습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오래 남아 종이를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그의 고민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솔직히 책 표지를 보고 읽기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소탈한 일화나 치밀하게 계산한 미래가 들어맞아간 것을 보며 놀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그 뒤로 발전은 커녕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후퇴하고 말았으니 다시 가야할 먼 길에 어째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몇 십년 전에 쓰여진 고민들과 방안들은 낡지 않고 여전히 빛을 머금고 있다. 시간을 넘어 위기 상황을 달리고 있는 현재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줄 지침서이면서, 뒤처진 한국이 다시 앞으로 한 번 더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어느 때보다도 이런 지도자가 필요한 시기이기에 정치인들의 책장에 한 권씩 놓아주고 싶었다.



+



감탄밖에 안나오는 첫 장. 진짜 쉽지 않다... 




++ 김종필이 제시한 박정희 기념관의 건립을 허락했다는 게 놀랍다. 대화도 한 번 안해본 인간이 나를 죽이려고까지 했는데 그게 되나. 김대중 대통령이 건넨 화해의 제스처를 과연 박정희와 아직도 망령처럼 살아있는 그 추종자들이 잡을지 궁금하다. 그런 의미 생각도 안할 거고, 화해하자고 해도 안 할거 같긴 함. 노트 쓴 사람은 너무 대인배인데 읽는 나는 너무 소인배처럼 옹졸하다.



+++ 이 때도 언론이란....ㅎ....



++++ 진짜 솔직히 읽기 전에 김대중 대통령하면 햇볕 정책이나 노벨 평화상 같은 업적보다 마이클 잭슨 친구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DJ 친구 마이클이요... 여전히 놀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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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체인지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8
최정화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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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환상 속 기괴한 욕망이 뿌리를 내린 세상의 이야기. 만족을 모르는 뿌리의 끝은 탐욕스럽게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돈으로 젊음을 살 수 있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리에서는 노인이 사라지고, 노인 혐오가 더 커지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말 그대로 노오력하여 돈을 모으면 젊어질 수 있는데 왜 그러지 않은 채 쭈글쭈글하게 늙는 것을 택했냐는 것, 젊음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은 젊음을 사지 않은 노인들에게 젊어질 것을 강요한다. 무언의 압박에 못 이긴 노인들은 결국 젊음을 나눠줄 '셀러'를 찾게 된다. 이 젊음의 값은 과연 얼마일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값은 돈이라는 화폐 가치로 충분히 치를 수 있게 될까. 


다시 젊어지고 싶은 꿈은 비단 지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전부터 젊어지기 위해 젊은 여자의 피로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 피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많은 걸 보면 젊은 사람의 젊음을 어떻게든 빼앗고 싶은 욕망은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 방법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없다. 요컨대 '젊음'을 연속성이 있는 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뚝 떼어서 사고 팔 수 있는 재화처럼 여기는 것.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인간에게 쥐어질 때, 사회는 어떤식으로 일그러지는가. 돈 많은 노인들의 젊음과 영생을 위해 돈 없는 청년들은 시간을 팔고 소모품이 되어 그 밑에서 조용히 죽어간다. 젊음을 판 '셀러'가 죽으면 대체할 호르몬을 못 찾은 '바이어'도 죽는다는 설정은 미래에 기생해 살아가면서 돈을 지불했으니 괜찮다는 이 시대의 부유한 자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 기괴한 구조는 무서운 설득력이 있다. 과학이 더욱 발전한 신자유주의의 종착역이 바로 이런 곳일테니.


'젊어진다'는 설정 자체만으로는 영화 서브스턴스와 큰 차이는 없지만 서브스턴스가 남성들의 시선에서 끊임없이 상품화되는 여성들을 보여줌으로서 차별적인 사회와 기이한 산업 구조를 집어내는데 있다면, 『호르몬 체인지』는 더욱 보편적인 개인과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고, 비춰지는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현재와 더욱 닿아있다. '젊음'이라는 재화를 둔 계층들의 각자의 사정이 낯설지 않아 잔잔하게 소름이 올라오는 기괴함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젊음은 정말로 나의 욕망인가.



+ 얼마전에 15세 미만 아이들로 아이돌을 만들겠다며 화장을 하고 짧은 옷을 입혀 상품화했다. 여성 아이돌이라는 포장지로 성상품화되는 아이들의 연령대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어른들의 비틀린 욕망은 미성숙한 아이들에게로 자꾸자꾸 내려간다. 소설 말미의 '셀러'를 보며 나는 이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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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로이드 인류 - 기적과 죽음의 연대기
백승만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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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테로이드라는 기적의 물질은 지금 버젓이 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의 연구자들도 껄끄러워하는 물질이 어떻게 약이 될 수 있었을까? 뭔가 사연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 p.14



스테로이드는 일반인에게도 그다지 낯선 용어가 아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시즌 한정 애국자, 시한부 스포츠덕이 되는 나도 그때쯤 되면 누가 약을 먹었나, 상대방 잘하는 거 보니까 약을 먹었네, 사람 몸이 왜 저래 진짜 스테로이드 먹었나 하면서 촉각을 세운다. 정확한 개념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저거를 먹으면 근육이 펌핑되고 스포츠 경기에 도움이 되는 도핑약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마침 너무 재밌게 읽었던  『대마약시대』의 저자가 스테로이드에 대해 쓴 신간이 나왔기에 읽어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마약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음)



『스테로이드 인류』는 그 스테로이드의 역사와 함께 약물을 다방면으로 뜯어보는 책이다. 


스테로이드에 대한 관심은 회춘의 욕망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회춘은 수은을 먹은 진시황 때부터 '핫한 이슈'였다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젊어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듯, 다시 젊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여기 1800년대 후반에 개의 고환을 이용해 '젊음의 비약'을 만들고자 한 과학자가 있었다. 제조법은 그야말로 사이비 주술 저리 가라고 할 정도이다. (1) 개의 고환에서 피를 뽑는다. (2) 개의 정액을 채취한 뒤 앞서 채취한 피와 섞는다. (3) 개의 고환을 잘라 으깬 후 아까 만든 혼합액과 섞는다. 그럼 젊음의 포션 완성! 진짜 미쳤다. 어디서 계시를 받아왔나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조합법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약을 스스로에게 투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회춘했다고 주장하는데 근거는 기분이다. 이전에 비해 팔팔해진 느낌이 들었다는 것. 솔직히 저 조제약을 투여받은 입장에서는 반드시 회춘해야 한다. 자기 최면이라도 걸어야 할 것이다. 하여튼 이런 말도 안 되는 실험 덕에 개들의 고환이 남아나질 않았다. 개들이 다리 사이에 젊어지는 열쇠를 달고 다닌다는데 어떤 사람이 눈이 돌지 않았을까. 고환을 과학자들이 지지고 볶는 과정에서 테스토스테론을 발견하고, 약물로서의 기능들을 찾아낸다. 진짜 '이렇게까지 한다고'의 연구들 뿐이라 생전 처음 보는 의학 용어가 나와도 읽는 내 속도를 멈출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피임 이야기조차 못하게 한 '콤스톡법'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여자가 낳는데 왜 여자에게 선택권은 물론이요, 발언권조차 안 주는 거지. 이 악법 아래에서 산아제한 운동의 지도자인 마거릿 생어와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한 캐서린 매코믹, 그리고 최초로 체외 수정을 성공한 과학자 핑커스가 뭉쳐 피임이라는 영역에 도전한 이야기가 마치 드라마 같았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합한 인재들이 퍼즐처럼 짜 맞춰져 이루어낸 업적이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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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에 대한 이야기, 심지어 그 연대기를 따라가는 일은 비전공자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그 길을 어렵지 않게 이끈다. 이 책을 통해 스테로이드라는 약이 무엇이며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어째서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지속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의 열정이 인상 깊게 남는다. 소위 '미친 짓'이든 고귀한 의도가 있는 행동이든 그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기에 후대에 그 발자국을 따라 현대의 과학이 걸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스테로이드'라는 주제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는 매력이 있지만 무엇보다 글이 재치있다.


제대로 사용하면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약이지만, 방심하는 순간 건강을 갉아먹는 독으로 돌변하는 위험한 물질이니 전문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사용하길 바란다. 그게 어렵다면 스테로이드 의약품이 위험한 약이라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기억했으면 싶다. 그것이 한때나마 신의 물질이었던, 속절없이 타락했다가 보란 듯이 부활한 이 경이로운 약을 길들이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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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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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다'는 행위는 개인의 경험이나 기호, 나아가 사회·문화적 취향과 연결되며 제도적인 기반에 지배된다. 100년 전 디저트를 다룬 이 책은 누가 더 많이 먹는지를 겨루거나 맛집 찾기에 몰두하는 데서 벗어나 먹는다는 행위의 온전한 의미를 더듬어보려는 작업의 하나다. / p.6

디저트는 유행에 민감한 분야이다. 탕후루, 두바이 초콜릿, 스웨디시 젤리처럼 아예 낯선 음식이 유행일 때도 있지만 약과와 개성주악처럼 '아는 맛'이 다시 열풍처럼 휩쓸 때도 있다. 그 배경에는 SNS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옛날에는 디저트 유행이 없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먹거리에 진심인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독특하고 맛있고 예쁘면 더더욱 금상첨화인 간식 거리를 늘상 찾아왔다. 식민지 시대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 고종이 와플이나 까눌레 같은 갖가지 베이커리에 커피를 즐겼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고 그 시절에 조선인이 개업한 최초의 다방인 '카카듀'가 생겼으며, 이상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과일로 멜론을 꼽았으니.



이 책은 이미 일상적으로 즐기게 된 커피부터 시작하여 만주와 멜론, 군고구마, 호떡과 초콜릿 등 여덟 가지의 디저트를 소개하고 있다. 이 작은 간식 거리들의 시간을 타고 올라가 식민지 시대에 멈추는 순간, 읽는 사람은 그 때의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의 눈으로 아주 세심하고 촘촘하게 식민지 시절의 조선 그 한복판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억압받아 어둡고 날카로운 분위기가 아닌 새로운 물건들이 들어오고 낯선 먹거리에 깜짝 놀라면서도 나름의 방법대로 받아들여보려 하는 적극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그 때의 광장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심지어 그 시절의 소설이나 신문 기사를 동시에 첨부하여 신뢰성과 동시에 생생함을 불어넣어준다. 아니 이상이나 방정환처럼 역사책에서나 보던 인물들이 즐기던 디저트를 상상하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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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 거리는 신분과 계층, 나이를 불문하고 동시대 사람들을 한 데 묶어주는 일상적이면서도 독특한 요소이다. 심지어 시대를 넘어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 줄을 서기도 하고, 날이 추워지면 군고구마 장수를 기다리는 그 익숙한 광경에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결국 디저트란 특정 문화권에서 공유할 수 있는 어떠한 공감대와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특수한 물건이기도 하다. 이 작은 간식에서 출발한 시도가 참신하고 그를 탐구하면서 동시에 시대상과 묶어 다루는 시선이 섬세하여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톡톡 튀는 역사서가 나왔다. 각각의 이야기가 식민지 조선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일상 드라마와도 같았다.




+ 역시 한겨레는 진짜 소문난 역사책 맛집이다.


++ 이거 읽으면서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었다. 뭔가 카카오 99퍼 다크 초콜릿이나 외국 초콜릿보다는 그..어릴 때 길들여진 익숙한 가나초콜릿(이른바 초코 유사 제품)이 더 잘 어울리는 기분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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