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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얘기해도 - 5.18민주화운동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마영신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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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얘기해도 못 알아먹는 사람들이 있으니, 얘기하고 또 얘기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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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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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우리말로 하면 풋토마토튀김인데 미국 남부 지역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지금도 즐겨 먹는 지는 잘 모르겠다). 잘 익은 토마토는 튀기면 흐물흐물해지기 때문에 풋토마토를 튀기기 시작한 게 전해져 내려왔다나. 여튼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민음사, 2011, 김후자 역)는 1987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고, 평단에서 좋은 평도 받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명한 소설이다. 원제는 "Fried Green Tomatoes at Whistle Stop Cafe"로 미국 앨라배마 주의 작은 마을 휘슬스톱의 한 카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설은 1929년 휘슬스톱 우체국에서 발행하는 작은 소식지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체국 바로 옆에 이지 스레드굿과 루스 제이미슨이 카페를 개업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바로 다음 장엔 1985년 앨라배마 주 버밍햄의 한 요양원으로 배경이 옮겨진다. 중년여성 에벌린 카우치는 남편을 따라 시어머니를 만나러 매주 요양원을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니니 스레드굿이라는 생기 넘치는 노부인을 만난다. 노부인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에벌린에게 말을 걸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바로 오래 전 스레드굿 가족과 휘슬스톱 카페를 둘러싸고 벌어진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이제 소설은 현재의 에벌린과 니니가 만나는 이야기와 1900년대 초 휘슬스톱 이야기가 교차되어 전개된다.

잃었던 여성의 자리 되찾아주는 이야기

이 소설의 특이점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는 소설이란 점을 꼽을 수 있을까. 일단 주요 등장인물, 에벌린과 니니, 리지와 루스만 봐도 다 여성이고 500쪽이 넘는 분량만큼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멀쩡한 남자는 별로 없다. 그러나 여성이 주요 인물로 나와서가 아니라 이야기의 주체로 등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저는 그저······ 딱 그 중간에 끼어 있는 기분이에요. 저에겐 여성 해방 운동이 너무 늦게 왔어요······. 결혼을 꼭 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더라고요. 부인께서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네요. 제가 뭘 알았겠어요? 이젠 뭔가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인생이 그냥 제 곁을 스치고 지나가 버린 것만 같아요.”

에벌린은 어린 시절부터 눈치 보며 살아왔다. 사회와 교회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좇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왔는데, 지금은 콤플렉스와 열등감 덩어리로 무기력한 중년이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소원하고, 스트레스-군것질-다이어트의 순환고리는 강박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에벌린이 니니를 만나 스레드굿 가(家)의 이야기를 들으며 변해간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지 스레드굿의 이야기에 매혹되어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긍정하고,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에벌린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남자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남자들이 그토록 중이 여기는 이런저런 특혜를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절대로. 단지 남자가 가진 힘만을 갖고 싶었다. (···) 그리하여 나이 마흔여덟 살에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 사는 에벌린 카우치 부인은 믿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에벌린이 그렇게 매혹되었던 이지 스레드굿은 누구일까? 휘슬스톱의 이지는 스레드굿 가의 막내이자 천방지축 꼬마다. 이지는 보통 여자아이들과는 달리 유별났다. 치마나 드레스는 불편해서 입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과 달리 외모 꾸미기는 뒷전이고 밤새워 낚시하거나 모험하는 걸 즐겼다. 형제나 부모가 뭐라 하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로 놀러 온 루스 제이미슨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여자인 두 사람이 그냥 이어 질리는 만무하다. 후에 루스가 결혼하고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자 이지는 루스를 구출해내고, 우여곡절 끝에 같이 카페를 꾸리며 살아간다.

이야기가 이러하니 페미니즘 소설이나 퀴어 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민음사의 작품 소개에 따르면 페미니즘 단체인 <페미니스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소설이라고도 하고, 영화는 LGBT 작품들을 뽑아 시상하는 단체(GLAAD)에서 수여하는 상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지와 루스 사이에 성적인 코드는 거의 드러나진 않는다. 그저 둘 사이의 애정이 암시되어 있을 뿐이다. 소설을 발표할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한 걸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방식이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은근해서 더 그윽하게 느껴진다.



차별과 혐오를 이겨내는 연대의 이야기

그래서일까. 차별과 혐오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대목과 설정이 여럿 나온다. 에벌린은 마트에 장보러 가서는 이름 모를 청소년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당하는가 하면, 이지와 루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루스의 아들은 어릴 적 사고로 외팔이로 자라나는데 이지는 오히려 차별의 시선을 정면돌파 하도록 키운다.

흑인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도 이야기의 주요한 가지다. 어린 시절 스레드굿 가의 집에서 일했던 십시 부인, 온젤, 빅조지 부부는 이지, 루스와 함께 카페에서 노동하며 살아간다. 온젤과 빅조지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의 이야기는 흑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차별이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준다. KKK단이 찾아와 흑인에게 음식을 팔지 말 것을 경고해도 이지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런 이지를 보면 허클베리 핀들이 모여 살았을 법한 마을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작은 음식 하나로 주고받는 따뜻한 마음

휘슬스톱 카페가 미국 대공황기가 시작된 1929년에 개업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휘슬스톱 카페는 오는 이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지와 루스는 부랑자들이 찾아오면 비굴함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며 원없이 먹이고 재웠다. 기차를 몰래 얻어 타고 떠도는 부랑자들 중에는 카페에 들러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존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지만 소설이 풍겨내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음식'은 대공황기에나 현재에나 중요한 매개물이다. 휘슬스톱 카페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에벌린과 니니도 음식을 나누며 마음을 나눈다. 둘은 만날 때마다 무언가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처음엔 초코바나 칩을 나누던 것이 에벌린이 니니를 위해 장만한 음식으로 바뀌어간다. 음식이 변해가면서 에벌린의 내면도 변해간다. 작은 과자 하나, 저렴한 풋토마토튀김 하나에도 온 마음이 담긴다. 그 음식 나누면 마음도 나눌 수 있다.

이야기의 힘

패니 플레그의 소설은 처음이고, 우리에게 알려진 책도 이게 전부지만 천부적인 이야기꾼이 아닐까 싶다. 양념처럼 소소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백미다. 예컨대 이런 이야기들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자그만 호수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오리 떼가 날아와 앉아 있는데 갑자기 희한한 일이 일어났지 뭐에요.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호수가 바위처럼 꽁꽁 얼어버린 거에요. 3초쯤 걸렸을까. 그리곤 오리들이 얼음을 매단 채 날아가버렸어요. 지금 그 호수는 조지아 주 어딘가에 있을걸요." 듣기만 해도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가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충만하다. 에벌린의 마음을 치유하고 일으켜 세운 건, 휘슬스톱 마을 사람들을 연대의 끈으로 이어준 건 바로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우러나오는 힘이다.

분량은 만만치 않다. 구성은 액자식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을 통째로 옮겨놓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세세해서 처음엔 읽어내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조금만 참고 1/3 정도 읽으면 에벌린과 니니, 이지와 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속도가 붙는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재치 넘치는 이야기들은 마치 도움닫기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니 짙은 여운이 밀려왔다. 이런 마을이 또 있을까. 이런 이야기가 또 있을까. 고도로 현대화 된 사회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풍경일 거란 생각을 하면 안타깝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기억 속에선 영원히 존재할 풍경일 게다. 그 이야기를 향한 마음이 이런 소설을 창작하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고, 때론 누군가의 삶을 바꾸어 놓기도 했을 것이다.

떠나는 마당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그러니 여러 말은 하지 않으렵니다. 우리는 둘 다 바로 이 휘슬스톱에서 나고 자랐으며 무수히 많은 멋진 시간들을 보내며 수많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습니다. 이곳이 이제 예전 같지 않네요. 넓은 고속도로가 여기저기로 뚫리면서부터 버밍햄은 어디서 끝나며 휘슬스톱은 어디서 시작되는지조차 알 수 없어졌지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카페가 문을 닫은 뒤로 이 마을의 심장이 박동을 멈춰 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처럼 작은 공간 하나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니 참 이상한 일이지요.


"저는 그저······ 딱 그 중간에 끼어 있는 기분이에요. 저에겐 여성 해방 운동이 너무 늦게 왔어요······. 결혼을 꼭 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더라고요. 부인께서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네요. 제가 뭘 알았겠어요? 이젠 뭔가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인생이 그냥 제 곁을 스치고 지나가 버린 것만 같아요."

에벌린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남자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남자들이 그토록 중이 여기는 이런저런 특혜를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절대로. 단지 남자가 가진 힘만을 갖고 싶었다. (···) 그리하여 나이 마흔여덟 살에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 사는 에벌린 카우치 부인은 믿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떠나는 마당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그러니 여러 말은 하지 않으렵니다. 우리는 둘 다 바로 이 휘슬스톱에서 나고 자랐으며 무수히 많은 멋진 시간들을 보내며 수많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습니다. 이곳이 이제 예전 같지 않네요. 넓은 고속도로가 여기저기로 뚫리면서부터 버밍햄은 어디서 끝나며 휘슬스톱은 어디서 시작되는지조차 알 수 없어졌지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카페가 문을 닫은 뒤로 이 마을의 심장이 박동을 멈춰 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처럼 작은 공간 하나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니 참 이상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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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창비세계문학 40
마리오 베네데티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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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취준에 성공해서 직장생활에 열심히 적응하며 지내던 신입사원 시절, 아침마다 타야했던 지하철은 지옥 같았다. 매일 똑같은 시각에 맞춰 일어나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나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였다. 환승역은 절정이었다. 폭이 수십미터나 되는 통로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일정한 속도의 걸음을 강요당해야만 했다. 오가며 만나는 직장인들의 얼굴은 다들 굳은 표정이거나 졸린 표정이었고, 그것도 아니면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있거나 작은 스마트폰에 머리를 빼꼼 기울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답답하고 삭막한 곳에 살고 있는 것인가. 믿기 싫었다.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그럭저럭 적응해갔다. 출퇴근길엔 사람들이 가장 적게 다니는 시간대를 찾아보기도 하고, 가장 덜 붐비는 경로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직장생활은 차츰 익숙해졌다. 출퇴근길도 더 이상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다. 이제 곁을 스치는 그 누구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나도 그들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나보다. 불편하게 느꼈던 삭막함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쳇바퀴 속에 갇혀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마리오 베네데띠의 《휴전》(2015, 창비)의 주인공 마르띤 산또메는 이 쳇바퀴 같은 일상을 탈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년의 회사원이다. "이제 퇴직까지 6개월 28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 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휴전》의 첫 대목은 산또메의 일기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일기 속에서 산또메는 담담하고 재치있는 어조로 참을 수 없는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적어간다.

담백한 문장들 사이사이로 산또메의 삶이 그려진다. 삶에 드리운 크나큰 불행의 그림자도 정체를 드러낸다. 산또메는 21년 전 상처한 후 5년의 결혼생활 가운데 얻은 3명의 자녀와 아등바등 살아왔다. 다른 사랑은 꿈꿔볼 새도 없었다. 아이들과 잘 지내보려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다. 그 오랜 시간 산또메는 신과 불화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내색하진 않지만 자신을 거대한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신과는 화해할 마음이 없어보인다. 《휴전》은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휴전 같은 시간을 그려내는 소설이다.

직장인으로 몇 년 살아보니 출퇴근길 말고도 익숙해지는 일이 있다. 월급날과 휴일을 기다리는 일, 월요일이 지옥같이 느껴지는 일이다. 하루하루 고단할 때마다 주말을 기약하며 버티곤 한다. 그래도 종종 생기는 특별한 일들은 퍽퍽한 일상에 내리는 단비 같은 일이다. 도전해보고 싶은 일을 만난다든가, 예상치 못했던 반가운 만남이라든가,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는 모임이라든가. 이런 일들이 있어 일상이 그런대로 흘러간다. 지난한 삶이 있기에 이런 일들을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불행과 행복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어떤 삶도 풀 수 없는 아이러니일게다. 모두가 산또메처럼 그 문제 앞에 용기 있게 신과 대결할 수도 없을게다. 그럼에도 붙잡을 만한 사실이 있다면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일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닐까.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형벌이라던 철학자도 있었지만 삶이 없었다면 그런 말도 없었다. 오늘 남아있는 시간은 불행에게나 행복에게나 동등하게 열려 있는 가능성이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일기장 속 빈 페이지도 마찬가지이고, 그 여백을 채우는 건 우리의 손이고 삶이다.

이제 퇴직까지 6개월 28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 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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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
김금숙 지음, 정철훈 원작 / 서해문집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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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가을 아무르강변을 찾았다. 김알렉산드라가 처형된 곳이라는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씁쓸했다. 공산주의자란 이유로 우리에겐 잊혀진 이름이지만 언젠가 완전히 복권될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그 날까지의 교두보 같은 책이랄까. 참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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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시집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외 47명 지음, 김정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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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시집》이 나왔다. '시선집'도 아니고 '시집'이라니. 이 자신감은 무엇인가. 그럴만도 한 것이, 48명의 시인들, 320편의 시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 많은 시들을 직접 선정하고 번역까지 한 김정환 시인의 말마따나 '이만한 분량인 것이', '이러한 구성까지 갖춘' '독일시집'은 없었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김정환 시인은 40여년 간 읽고 고르며 다듬어온 기록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시인과 함께 반평생을 넘어,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넘어 함께 호흡해 온 숨결이 담긴 시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시집'인만큼 다양한 시인들의 이름을 만나볼 수 있다. 괴테, 횔덜린, 하이네, 니체, 릴케, 보르헤르트 등 익숙한 이름들부터 거의 들어보기 힘들었던 울란트, 주칼마글리오, 티트게, 오필트 등등까지. 단행본으로 엮어 나올만큼 유명한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 소네트》도 있고, 횔덜린의 <휘페리온>, <빵과 포도주>, 괴테의 민중시들과 니체의 잠언 같은 시들이 담겨 있다. 한 권의 거대한 시집이면서 각각 시인들의 소(小)시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구성이다.


다양한 시인들의 이름만큼이나 다채로운 시들이 담겨 있다. 연대로는 중세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두터운 전통의 독일 개신교 서정시부터 근대 표현주의, 상징주의 시들까지 한 가지 결로 설명할 수 없는 시들의 집합이다. 자연물을 통해 신을 느끼고, 신과 교감하고 노래하는 시부터 인간을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했던 니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우른다.


다종다양한 시들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건, 운명을 향해 도전하는 인간의 숨결이다. 종교적 색채가 묻어난 시이든 그렇지 않은 시이든, 어느 시에나 세상과 고투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서 오라 그렇다면, 오 정적, 그림자 세계의! / 만족이다 나, 비록 나의 현악이 / 나를 그 아래로 이끌지 않더라도. 한 번 / 살았다 내가, 신들처럼, 그리고 그만하면 되었다."(<운명 여신들에게>, 횔덜린), "끌어당겨라 이제 우주를 네게로! 그렇지 않으면 너 질질 끌려갈 것!" (<고유한 말>, 호프만슈탈), "장미는 '왜'가 없다, 꽃 피는 거다, 꽃 피니까, / 유의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묻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지." (<2행 시편 II>, 실레시우스)




분명 친절한 책은 아니다. 김정환 시인의 번역은 다른 번역자들의 번역과는 다른 구석이 있기에 익숙치 않다. 다른 시선집들에는 흔하게 들어가 있는 시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라든가 작품에 대한 친절한 해설은 전혀 없다. 시가 실린 순서도 역자의 말에서 밝히듯 '누구는 모아놓았고 누구는 흩어놓아'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독일시집》이지만 김정환 시인의 시집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꺼운 책을 손에 들어야 한다면 어떤 이유를 댈 수 있을까? 역자의 자신감처럼 세상 어디에도 없는 구성과 기획이라서? 릴케의 연작시라든가, 괴테의 민중시들이라든가, 트라클의 표현주의 시들, 게오르게의 상징주의 시들 등등 이 책 하나면 독일 시 좀 읽었다고 말할 수 있어서? 글쎄, '언제나 넘쳐나는 것은 짝퉁'인 시대에서 그 짝퉁을 분별하는 가늠자가 되어준다고 할 수 있지는 않을까? 여전히 시는 오늘도 세계를 탐험한다. 언어는 변하지만 세상을 경험하고 극복해가는 인간의 노력은 여전하다. 쓰여진지 수백년이 지난 시들이 여전히 울림이 되는 이유겠다. 그 시들이 박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감히 권해본다.



어떤 오래된 책에서

부딪혔다 내가 어떤 말과,

그리고 그것이 나를 제대로 갈겼고

타고 있다 나의 나날 내내

(<그 말> 부분, 슈타들러)

어떤 오래된 책에서
부딪혔다 내가 어떤 말과,
그리고 그것이 나를 제대로 갈겼고
타고 있다 나의 나날 내내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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