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반하는 글쓰기
강창래 지음 / 북바이북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쓰기의 통념을 깨부수고(“위반하고”) 새로운 길을 알려주는 책. 기존의 글쓰기 책들과는 다르게 신선한 이야기들을 해주는데, 그게 또 실용적이기까지 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촌수필 문지클래식 1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生)은 고(苦)라던 불교의 가르침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속은 상처고 "문학은 한 민족이 그곳을 통해 그들의 아픔을 재확인하는, 언제나 터져 있는 상처와도 같은 것이다."(김윤식, 김현) 문학은 현실의 산물이기에 으레 그 안에 상처가 담기는 법인데, 아픈 상처를 굳이 드러내(야하)는 건, 그것이 반성과 치유라는 희망을 품기에 가능한 일이겠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은 그러한 상처의 풍경들을 모아놓은 연작소설집이다. 20세기는 세계 어느 곳이나 격동의 전환기였다. 이 땅의 민중들은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과제를 떠안고 식민지 지배, 전쟁, 독재의 경험까지 견뎌야 했기에 모순은 짙고 상처는 깊었다. 《관촌수필》은 1941년 충청도 관촌 부락에서 태어나 자란 이문구가 1970년대 소설가가 되어 옛일을 회상하고 옛 친구들을 만나 전해 듣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그 모순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소설인 <일락서산>(해가 서산에 지다)은 화자가 오랜만에 귀향하며 시작된다. 옛 마을에 도착해 처음 발견한 건, 마을의 오랜 터줏대감, "4백여 년에 걸친 그 허구헌 풍상을 다 부대껴내고도 어느 솔보다 푸르던, 십장생의 으뜸다운 풍모로 마을을 지켜온 왕소나무"의 부재였다. 이 장면은 소설이 시작하고 3쪽이 채 넘어가기 전에 펼쳐지는데, 이후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가 암시되어 있다. 화자는 구차스런 동네로 변모해버린 마을을 눈으로 확인하며 깊은 상실감에 잠긴다. '이젠 완전히 타락한 동네구나', '실향민, 나는 어느덧 실향민이 돼버리고 말았다는 느낌을 덜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느 한 가지도 그전 그 모습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진실로 서글픈 일이었다'

화자가 저리도 깊이 그리워했던 건 할아버지, "고색창연한 이조인이었던 할아버지"였다. 말하자면 구한말의 끝자락에 태어난 마지막 양반이었던 할아버지, 상대가 상놈이라면 나이가 많더라도 철저히 하대했던 할아버지, 아흔의 나이에 숨을 거두며 족보만은 잘 간수하라는 유언을 남긴 할아버지, 시대가 변하여 제대로 된 양반 노릇도 못해 본 할아버지, 손자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며 선비처럼 글만 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였다. 화자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여 일찍 세상을 떴기에, 화자의 어린 시절 애착과 경외는 고스란히 할아버지를 향해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대목은 깊은 서정적 울림을 자아내지만 그런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유교적 영향은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 한계는 소설 곳곳에 은밀히 숨겨져 있다.

이어지는 소설들, <화무십일>(열흘 가는 붉은 꽃은 없다)에서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피난을 내려온 윤영감 일가 이야기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고, <행운유수>(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에는 유년시절 화자와 친밀하게 지내며 자랐던 부엌데기 옹점이의 가슴 아픈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녹수청산>(푸른 산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에는 거의 유일했던 친구인 대복이의 순박한 삶이 타락해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공산토월>(빈 산이 달을 토하다)은 가장 깊은 울림을 자아내는데,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남을 위해 살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석공 신씨를 통해 작가의 정신 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구원의 인간상을 그려낸다. 문학동네에서 몇 해 전에 펴낸 한국문학전집에 이문구의 중단편집이 《공산토월》이란 이름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작가의 《관촌수필》에서 4편과 그 외 《우리동네》, 《유자소전》,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에서 추려서 만든 책이다. 작품들을 추리고 추린 중단편선에 이름을 걸고 나온 걸 보면 평론가들도 가장 인정하는 작품인가 보다. 관촌수필의 여덟 편의 글 중 분량도 제일 많고 가장 비극적이지만 현재의 나가 과거와 화해해가는 과정이 묘사되어 가장 인정받지 않았나 싶다.

이어지는 후반부의 소설들, <관산추정>(고향에서 꼴 베는 사람, 고향의 옛 친구)<여요주서>(그저 그런 이야기에 관한 해설), <월곡후야>(월곡 동네의 밤중부터 아침까지)에서는 회상보다는 현재의 화자가 바라본 농촌의 풍경을 그려낸다. 화자가 직접 찾아가 보거나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듣는 농촌은 도시에서 밀려든 향락객들로 오염되어 가는 곳이고, 공권력의 횡포가 제멋대로 자행되는 곳이며 이전에는 없던 끔찍한 범죄들이 벌어지는 삭막한 곳이다.

이상향 같던 유년 시절의 평화가 산산조각 나는 건, 앞서 말했듯 근대화와 산업화, 도시화의 침탈 때문이었다. 평범하고 고요했던 마을에 전쟁과 함께 비극이 시작되고, 미군이 몰려들어 농촌민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자본의 깊숙한 침투로 땅이 오염되고, 각종 이권사업으로 관계들이 단절되고 공동체가 깨어지는 일들 앞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전쟁통에 밥 한 그릇도 나눌 줄 알았던 인심은 서로 반목하고 의심하며 살아가야 하는 냉혹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작가는 문명의 이기 앞에 갈가리 찢기는 공동체를 바라보며 철저한 무력감과 그리움에 사로잡히지만 그가 이상향처럼 그리워하던 풍경은 유교의 질서였고 극도의 가부장 사회였다. 물론 작가가 그 질서 자체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또한 부엌데기였던 옹점에게선 그 어떤 이한테서도 보지 못한(심지어 사회당원이던 아버지한테서도) 주체적인 인간상을 발견할 줄 알았을 만큼 감수성도 트여 있었다. 할아버지와의 긴밀했던 관계와 그 영향은 뿌리 깊지만 그가 이후에도 계속해서 농촌을 주목하며 민중의 목소리와 숨결을 채취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관성 있게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기울여온 것 아닌가 싶다.

이문구는 《이문구 소설어 사전》이 따로 나올 정도로 충청도 방언을 비롯한 토속어들을 거침없이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정겹고 구성진 말들은《관촌수필》의 정서적 울림을 배가시킨다. 여러 판본을 거쳐 나온 2018년 문학과지성사 출간본에는 부록으로 낱말풀이가 딸려있다. 모르는 어휘는 뒷장을 참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흐름이 끊긴다는 단점이 있다. 문맥상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어휘들이 꽤 많아서 읽으려면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귀찮을 수 있고, 그 과정이 힘겨운 탓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처럼 읽다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그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숲을 만날 수 있다. 중간중간 다소 호흡이 긴 문장들도 돋보이는데, 작가의 입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리듬이 좋고 막힘 없이 읽힌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찾는 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고,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일흔 일곱 살이 된 황석영 작가가 신작을 내놓았다. 제목은 《철도원 삼대》, 염상섭의 《삼대》를 연상시키는 제목인데 그만큼 두꺼울 예정이라고 한다. 《철도원 삼대》는 황석영 작가가 1989년 방북하여 서울 출신의 한 노인을 만나게 되며 구상한 것이 3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빛을 본 작품이다. 서울 출신의 그 노인은 영등포역 부근에 살며 철도기관수로 일했는데, 그 시기는 어린이 황석영이 영등포에 살았던 시기와 겹쳤고, 둘이 나눈 이야기가 소설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이진오는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인 원형 통로의

반대편 구석에 용변 장소를 정해두었다.


소설은 이진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진오는 공장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다. 이십오년 동안 일한 회사가 팔리면서 해고를 당했고, 복직투쟁을 위해 본사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농성을 시작했다. 굴뚝은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살아온 영등포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남는 게 시간 뿐인 이진오는 굴뚝 위에서 어린 시절 함께 놀던 동네친구,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를 번갈아 소환하며 대를 거쳐 내려 온 가족사를 회상한다. 조선에 경부선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부터 철도원으로 일한 증조할아버지부터, '일본과 자본에 이중으로 억눌려' 있던 현실과 투쟁하다 월북한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반공포로가 되어 겨우 돌아온 아버지를 거쳐 여전히 노동 투쟁 중인 이진오 본인에 이르기까지, 거칠게 표현하자면 한세기에 걸친 이 땅의 노동자들을 위한 대서사시라고 할 수 있겠다.

황석영은 이 책이 우리 근현대문학에서 빠진 부분 중 하나인 근대 산업 노동자들의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그 당시 산업노동자들을 다룬 소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만한 밀도로 다룬 건 이게 처음이 아닐까 싶다. 창비 사전서평단에 뽑혀 1/3 가량 가제본 된 분량을 읽어봤는데, 적은 분량이지만 근대 조선 산업노동자들의 투쟁기가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노동투쟁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르포처럼 딱딱한 건 아니다. "이것은 유년기의 추억이 깃든 내 고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정겹고 신비로운 이야기들과 한몸이 되어 펼쳐진다.

반백년 넘게 소외된 민중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오며, 끈질기게 역사와 시대와 화해를 시도했던 작가의 발걸음이 여기까지 다다랐다. 그만큼 멀리 가볼 수 있는 작가는 더 이상 없을 게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발걸음에 동참할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비워진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



이진오는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인 원형 통로의 반대편 구석에 용변 장소를 정해두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은 다른 곳에 - 교양선집 16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밀란 쿤데라의 두 번째 장편 소설 《생은 다른 곳에》(까치, 1988, 안정효 역)는 그가 1970년 체코 공산당에서 추방당하기 전에 쓴 두 편의 소설 중 하나다. '생은 다른 곳에'(La vie est ailleurs)란 말은 랭보가 했던 말로 전해지는데,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거쳐 1968년 5월, 혁명의 중심 파리에 도착한다. 쿤데라는 이 말을 빌려 혁명과 젊음에 대해 쓰고자 한다. 그 현현이라고 할 수 있는 시인의 삶을 통해 말이다.

시인의 탄생과 성장

시인 야로밀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시인의 아버지는 야로밀을 갖게 된 걸 한 순간의 사고로 치부해버리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린다. 거의 등장과 함께 사라진 아버지의 목소리는 소설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시인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받지 못한 사랑까지 더해 어린 야로밀에게 쏟아 부으며 함께 살아간다. 한편 어린 야로밀은 예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 시인의 어머니는 어느 날 야로밀이 그린 그림 <개머리 달린 사람>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우연히 만난 한 화가에게 그 그림을 보여주는데, 화가는 야로밀의 재능을 알아채고 그의 스승이 된다. 이제 야로밀은 화가 밑에서 예술을 배워가기 시작한다.

야로밀을 시인으로 발돋움 시킨 건, 그의 삶에 찾아온 여성들이다. 야로밀은 어린 시절 하녀 마그다에게 처음으로 성적 호기심을 갖게 되는 데, 마그다를 위해 시를 지으며 처음으로 시적 경험을 한다. 그 후 자라면서 욕정과 '남자다움'에 대해 탐구해간다. 대학생이 되어 찾아간 정치모임에서 한 여학생을 만나지만 여러 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우연히 만난 (소설에서는 못생겼다고 표현되는) 붉은 머리 점원을 만나면서 비로소 '남자다움'을 느끼며 시를 쓴다.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야로밀에게 어머니는 질투를 느끼지만, 그럴수록 야로밀은 더욱 멀어질 뿐이다.

청년 야로밀은 내면에서 솟아나는 시를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그 시가 실릴 곳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체코에 공산주의 혁명의 바람이 불고, 야로밀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인으로 거듭난다. 바야흐로 "처형자와 시인이 나란히 앉아 통치한" 시대에 그 시인이 된 것이다. 야로밀이 처음부터 그 길을 걷고자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화가와 함께 예술을 그 자체로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이 그 친구들과 순수예술과 참여예술을 두고 논쟁을 벌일 때, 야로밀은 순전히 반항하고자 하는 마음에 반기를 든다.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여하튼 이제 야로밀은 혁명의 기수가 되어 잘 나가는 시인이 된다.

그는 드디어 참된 생('참된 생'이라고 야로밀이 이해했던 것은 행진하는 군중과, 육체적인 사랑과, 혁명의 구호가 소용돌이치는 세계였다)의 영역에 이르렀고,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이 새로운 삶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그 삶의 바이올린 현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시적인 정신이 마음속에 가득하다고 느꼈으며, 붉은 머리의 아가씨가 좋아할 만한 시를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생은 다른 곳에

바라던 시인이 되어 야로밀은 행복했을까? 성공한 체제의 시인이 된 야로밀은 우연히 어린 시절 친구, '관리인의 아들'을 만난다. 친구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가정까지 꾸려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시인이 된 야로밀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친구는 야로밀의 시를 액자에 넣어 사무실에 걸어놓을 정도로 야로밀을 우러러 보고 있었다. 허나 그런 친구를 보며 야로밀은 부러움을 느낀다. '참된 생이 바로 저기에 있었구나' 느끼며 말이다.

그는 야로밀의 존재를 끊임없이 능가하는 험악한 아름다움을 가진 친구의 '참된 생'이 부러웠다. 나이가 같은 친구와 얼굴을 마주 대하고 그는 또다시 자신이 아직 참된 생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음을 깨닫고 마음이 아팠다.

시인의 파멸

그런 야로밀을 파멸로 이끈 건, 나르시시즘의 환영이었다. 혁명 정신에 도취된 야로밀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로 여자친구인 붉은 머리의 오빠를 혁명의 적으로 당국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오빠 대신 붉은 머리가 구속되어도 야로밀은 자기 잘못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순수혁명의 이상에 대한 시를 짓고, 최고의 시라고 평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걸까. 말미에 이르러 야로밀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불같은 혁명의 시기, 야로밀은 불의 죽음을 꿈꿨지만 끝에 이르러 마주한 건 차가운 물의 죽음이었다.

자유를 꿈꾸는 젊음은 언제나 시대와 불화하기 마련이고, 그 젊음은 단지 나이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혁명과 젊음의 현현인 야로밀의 삶은 그 자유를 포기했을 때, 그러니까 참된 생이 다른 곳에 있을 거란 사실을 망각했을 때 이미 끝나버린 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시인이 자유를 억압하는 혁명가 옆에 서서 그 심판에 동조하며 찬양하는 순간에 말이다.

소설의 시작에서 끝까지 야로밀의 생애가 그려지는데, 중간 중간 난데없이 시점을 달리하는 대목이 끼어 있다. 그건 때로는 야로밀의 또다른 자아이기도 하고, 레르몬토프나 랭보 같은 시인의 시점이기도 하다. 쿤데라는 서문에서 이 책의 창작에 대해 "시의 비평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시가 될 수 있는 소설"을 쓰고자 했다고 밝히는데, 그 기법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까? 그 시도가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을까 평할 재간은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젊음을 꿈꾸는 한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할 거란 사실이다.

그는 야로밀의 존재를 끊임없이 능가하는 험악한 아름다움을 가진 친구의 ‘참된 생‘이 부러웠다. 나이가 같은 친구와 얼굴을 마주 대하고 그는 또다시 자신이 아직 참된 생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음을 깨닫고 마음이 아팠다.

그는 드디어 참된 생(‘참된 생‘이라고 야로밀이 이해했던 것은 행진하는 군중과, 육체적인 사랑과, 혁명의 구호가 소용돌이치는 세계였다)의 영역에 이르렀고,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이 새로운 삶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그 삶의 바이올린 현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시적인 정신이 마음속에 가득하다고 느꼈으며, 붉은 머리의 아가씨가 좋아할 만한 시를 쓰려고 노력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두의 독서모임 하나의책 독서모임 시리즈 2
이진영 외 지음 / 하나의책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모임 순정고백담. <책은 왜 함께 읽으면 좋을까?>에 대한 답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저마다의 삶이 묻어나는 고백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