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기록 조선 지식인 시리즈
고전연구회 사암, 한정주, 엄윤숙 지음 / 포럼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글쓰기에 관한 책은 꼭 한 번씩은

읽게 되는 것 같다.

책 제목이 관심을 끌만도 하다. 도대체 옛 선비들은 글을 어떻게 썼을까?

책을 펼쳐보니 우리가 알만한 조선시대 문장가들 또는 선비들의 이름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정약용, 박지원, 김정희 등. 생소한 이름들도 있다.


어쨌거나 이 책은 장정부터 아담하니 예쁜 느낌이 들어, 아마도 논술세대인

중고등 학생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지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일반인들은

보지 말아야할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고전 문헌에 나타난 글쓰기에 관한 옛 선현들의 글을 체취해서

엮은 것이니만큼 옛 조상들의 글쓰기에 관한 사색의 면면을 볼 수가 있어 나름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이라도 읽으면

정말 글을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손에 든 책이지만, 역시 이건 우물가에서

숭늉 달라는 꼴밖엔 되지 않는 것 같아 민망해졌다.

역시 이 책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말은 좋은 글을 쓸려면 좋은 글을 읽으라는 말인데

이 진리 같은 말을 어찌 피해갈 수 있단 말인가?

글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잔재주가 아니라지 않은가?(최한기 편) 어쨌거나

읽다보면 얼음 깬 물 한 바가지 끼얹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리의 선현들은 문장 하나에 자신의 혼을 담고, 인격을 담고, 모든 것을 걸었구나

싶어 일견 마음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특히 최한기의 [기측제의]중 ‘독서와 저술’이란 글을 보자. 그는 그 글에서 말하기를,

자신이 글을 고전을 읽는 최고의 목적은 마음을 닦는 것에 있으며, 글을 쓰는 것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함에 있다고 기술했다.(84p)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난 뭐 때문에

글을 읽고 쓰는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최한기와 같은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그냥 마음의 교양을 쌓고, 그래도 내가 제일 만만하게 할 수 있는 일이 글을 쓰는 일

같고, 어쩌다 어줍잖은 글에 칭찬이라도 들을라치면 그 우쭐함이 좋아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다 누가 글 써서 대박 났다더라 하면, 나는 결코 그 경지에도 이를

수 없으면서 ‘그래. 이런 사람도 나와야 작가지망생들도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지

않겠어?’하며 글쓰기와 돈벌이를 연결시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 글쓰기에도 속물 근성을 버리지 못하면서, 누가 속물 근성 들어내면 작가의 근성

내지는 양심 우논해 가면서 그 속물들을 향해 가차 없이 필봉을 휘두르는 것이 작가다운

것인 양 하는 모습이란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

고백컨대, 나는 한 번도 내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글을 쓸 사람인지에 관해서는

구체적 생각해 본적이 없다. 대신 그런 생각은 해 봤다. ‘실력 있는 사람이 되야 좋은

일도하지 않겠는가?’란 생각.


읽다보니 내심 심술도 났다. 글은 옛 선현들이 문장을 두고 기가 막힌 말을 쏟아

내리만큼 잘 써야 하는 것인가? 글자 획에도 서늘한 기운이 넘쳐흘러 보인다. 어찌보면

엄숙주의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당대 유명한 문장가들의 문장에 대한 잠언을 모아놓고 보니, 과연 그 시대엔

이런 사람만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오늘 이 시대에 B급 작가들이 있는 것처럼

그 시대에도 B급 문장가들이 없겠는가? 문장은 꼭 그렇게 잘 써야만 하는 것일까? 괜히

심술을 부려본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옛 선현들은 고전을 통해

자신을 닦았으며, 세상의 진리와 이치를 깨우치는데 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 날, 활자 문화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게다가 알지도 못하는 비속어는

얼마나 많은 것인지? 그것도 모자라 도저히 내 조그만 머리론 따라갈 수도 없는

이모티콘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지? 이런 것을 볼 때 과연 이 책에 언급된 문장가들이

21세기를 산다면 뭐라고 하실지 궁금해진다. 비속어나 이모티콘의 범람은 나 개인적으론

부정적으로 마는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어를 사랑하시는 어른들은 비판할지 모르겠지만,

비속어나 이모티콘은 그 세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뭔가가 있어, 그것을 쫓다보면 자못

흥미로워진다. 그러나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현 교육을 비판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싶다.


책은 많이 읽으라고 해 놓고, 정작 입시에 치어 책 읽을 시간이 없고, 여전히 주관식과

단답형을 혼돈 하고 있으며, 논술도 족집게로 집어내면 된다고 믿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으로 돈을 벌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공부는

중요한데, 왜 공부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이 늘 빈궁한 세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럴 때 이런 책 가끔 읽어주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개기는 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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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1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은 꼭 그렇게 잘 써야만 하는 것일까? 오늘 어느분의 평론을 봤는데 너무 빈틈 없는 문장이 오히려 글의 빛을 감하는 경우가 있다는, 즉 문장보다 주제의식으로
글이 더욱 빛나는 게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예를 들어 수필이, 여백의 문학
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라는...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일까요. 완벽한 문장, 좋은 문장
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다시 고민이 됩니다. 좋은 책인 것 같은데... 보관함에 담아
갑니다.

파란여우 2007-05-19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한 문장은 없다고 봅니다.
모든 언어는 다른 언어에 의해서 전복될 운명을 타고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좋은 문장은 분명 있지요. 언어의 조합이 역행하지 않으면서 원래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도를 아는 문장. 또는 작가의 활자에 대한 겸허함을 바탕에 깔고 있는 문장이 좋은 문장 중 하나가 아닐까요. 글쓰기는 어쨌든 수련입니다.^^

프레이야 2007-05-19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여우님, 방가워요^^ 스텔라님 없이 스텔라님 서재에서 놀아요.
완벽한 문장이란 없다는 생각에 동감합니다.
좋은 문장은 문장간의 결속력으로 따져야할 것 같아요. 낱말과 문장과 사유의 결속력이 글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하지만 그것이
作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줄 때면 거부감이 일어요.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하듯, 작이
아니라 깎고 깎아서 빚어내는 것이면 좋을텐데, 그게 참 쉽지 않으니
정말 님의 말씀대로 '수련'입니다. 토요일 밤이에요. 편안한 시간 보내시길...^^

2007-05-20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5-21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과 여우님, 저 없는 사이에 두 분이 데이트도 하구...왕삐짐이옵니다.
그래도 오랫만에 댓글 남겨 주시니 영광임다.^^
글쓰기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ㅠ.ㅠ

2007-05-22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 <각설탕>이다.

이 영화를 볼까 말까 생각 중이었다. 평론가의 별점은 별 두 개 반이다. 그래도 말이 나온다니 개인적으로 말띤데 한번 봐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 봤다.

또 개인적으로, 임수정이란 영화배우의 촉촉한 느낌 좋다. 몰입을 잘하는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별 두 개 반이 괜히 두 개 반이겠는가? 디테일이 부족하다. 디테일만 좋았다면 나름 멋진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다소의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고, 어디선가 부분적으론 본 듯한  스토리 라인을 차용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임수정과 '청둥'이라고 하는 말을 위한 영화 같다. 조연들의 역할도 나름 좋아 보였 충분히 살리지를 못했다. 조연으로 나온 유오성 정도가 그나마 좋았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 영화 울릴 때 재대로 울린다.  인간과 동물과의 교감을  주제로한 영화는 대체로 실패하는 법은 없는 것 같다.

천둥이 엄마가 천둥이를 낳는 씬은 어떻게 찍었을까? 엔딩에서 천둥이가 죽어가는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 그리고 다른 경주마들과의 경주 씬에서 어떻게 막상막하의 말들의 완급을 조절해 나갔을까?

유오성의 마지막 대사가 여운을 준다. "......말이나 기수나 어차피 뛰어야할 운명이라면 뛰다가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했던가?

그게 가장 멋진 죽음이 아닐까? 아파서 여러 사람 애 먹이고, 결국 죽을 똥까지 싸고 죽는 거 보다 차라리 그렇게 자기 할 일 하다가 죽는 것이 훨씬 보기 좋은 거 아닌가? 그래서 이순신의 죽음이, 기형도의 죽음이, 멋있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수술을 받게된 천둥이가 수술을 거부하고 달리는 것을 선택하는 건 과장되긴 했지만 스토리가 주는 아우라를 위해서 그런 설정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유모라는 평론가는 다 죽어가는 말에게 달리도록 하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한마디 남긴다. 뭐 그렇게 보자면 할 말이 없겠지만, 그것은 이미 김시은(임수정)이 충분히 그 역할을 감당해 준 것 같아 별 불만은 없다.

앞서도 밝혔지만 그렇게 인간과 동물과의 교감을 주제로 한 영화가 실패는 하지 않는다고 보는 건 내가 개를 키우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집 강적 다롱이 때문에 나의 자유가 속박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엄마한테 정선 사는 언니한테 보내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일언지하에 거절 하신다. 언니네도 힘들다고. (언니네도 개 한마리 키우고 있다.) 이 영화 보고나니 괜히 다롱이한테 그런 마음을 품었던 내가 미안해졌다. 영화의 힘은 대단하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영화를 보며 훌쩍거리니까 다롱이가 무슨 일인가 하여 내 앞에서 킁킁거리고 난리다. 이그, 강적 다롱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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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7-05-14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장에서 이 영화 보면서 엉엉 울었답니다. 안볼걸..하는 후회 하면서요. 동물 키우는 사람들은 아마 더 가슴 아프지 않았을까요... 엉엉..

stella.K 2007-05-1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오랜만이어요. 꼬마요정님! 잘 지내죠? 맞아요. 엉엉~

마노아 2007-05-1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띠예요. 각설탙은 보지 못했지만, 슬플 것 같아요.

stella.K 2007-05-1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정말요?
좀 우울해서 울고 싶은데 울 일 없을 대 딱입니다. 흐흐

마노아 2007-05-1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설탈이래요. 각설탈.ㅋㅋㅋ ^^;;;

2007-05-21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5-21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벌써 읽었슴서...^^
 

  • [Why?] 고(古)서점은 그 시대 정신의 ‘사랑방’
  • 박대헌 칼럼

    박인환의 1945년 종로 책방‘마리서사’ 문화예술인 천국이었다는데…

    한 15년쯤 됐을까. 내가 운영하는 고서점 ‘호산방’ 손님 중에 젊은 화가 황모씨가 있었다. 하루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 한 권을 들고 와 자랑했다. 1955년 10월 산호장에서 발행된 박인환의 ‘선시집(選詩集)’이었다.

    원래 그 책은 1955년 10월에 출판되어 서점에 배포되기 직전에 인쇄소에서 화재로 인해 모두 불탔다. 그래서 이듬해인 1956년 1월 다시 제작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박인환 연구자나 몇몇 수집가 정도이다. 박인환의 ‘선시집’은 1956년 1월에 초판본이 출판되었으며, 표지는 호부장으로 되어 있다. 호부장은 제본에서 옆을 매는 방식의 하나로, 속장을 철사로 매고 표지를 싼 다음, 표지째 함께 마무리 재단을 하는 제본 방식이다.

    그런데 황씨의 것은 하드커버의 고급 양장이었다. 판권지의 발행 일자를 확인해 보니 ‘1955년 10월’이었다. 바로 화재 직전에 출판된 오리지널 판본이었다. 물론 나도 그 판본은 처음 보았다. 흥미롭게도 그 책은 저자가 시인 장호강에게 증정한 친필 사인이 있었고, 그 옆엔 박인환의 캐리커처를 만화가 코주부 김용환이 직접 그렸다. 또한 면지와 속표지 그리고 뒷표지 면지 등에는 김광주, 이진섭, 송지영, 박거영, 차태진, 김광식, 조영암 등의 친필 메모가 적혀 있었다. 여기에는 ‘1956년 1월 16일’에 썼다는 기록도 있다. 또 같은 날짜의 신문 서평이 스크랩되어 붙어 있기도 하다. 이로써 미루어 본다면 1월 16일 출판기념회가 있었고 이 자리에서 지인들이 이 책에다 축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박인환은 화재 직전에 이 책을 인쇄소로부터 직접 전해 받은 듯하다. 그리고 출판기념회 때 이 오리지널 판본을 장호강에게 기증한 것으로 보인다. 화재를 피한 오리지널 판본이 몇 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현재로서는 유일본이 아닌가 싶다. 책에는 당시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여러 문인들의 친필 메시지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때 이미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 “寅煥이 인환이가
      冊가게에서 처음 만난 그 寅煥이가
      十年을 하로같이
      詩속에서 詩를 찾으며 읊으며
      용하게도 오늘까지 뻗혀왔다는 게
      진정 반갑구나.”


    • 소설가이자 당시 언론인이었던 송지영의 축하 메시지다. 이 메모에 등장하는 책 가게란 박인환이 종로에서 경영하던 고서점 ‘마리서사(茉?書肆)’를 말한다. 박인환은 1945년 해방이 되자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다니다 말고 그해 말 종로에 고서점 ‘마리서사’를 차렸다.

      마리서사란 이름은 프랑스의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의 이름에서 연유하였다 한다. 마리 로랑생은 19세기 프랑스 모더니즘 선구자인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이었고, 당시 몽마르트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싱싱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화가였다. 아폴리네르는 마리를 만나 많은 예술적 자극을 받아 시를 썼으며, 마리에게 바치는 시 ‘마리’를 남기기도 했다.

      박인환이 아폴리네르와 마리를 통해 프랑스 문학과 그 예술적 삶을 지향하려고 했음은 박인환 부인의 회고나 김수영의 글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마리서사는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모태 역할을 하면서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송지영과 박인환은 이때부터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박인환은 마리서사를 생활의 방편으로써 운영하였다기보다 일종의 문학수업의 한 과정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곳에 진열된 책들 대부분은 그가 소장하고 있던 책들이었다.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마리 로랑생, 장 콕토와 같은 외국 현대 시인들의 시집과 일본의 시잡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마리서사에는 시인이나 소설가, 화가들이 모여들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박인환이 마리서사를 운영하던 2년여 동안을 “박인환이 제일 기분 내던 때”였다고 김수영은 회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인환 ‘선시집’ 오리지널 판본은 인간 박인환의 정취가 물씬 베어나는 책이다. 따라서 이런 내력을 갖고 있는 책이라면 누구든 욕심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날 나는 안복(眼福)을 누린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나는 이처럼 귀한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남의 귀한 장서를 내놓으라고 말한 적은 거의 없다. 내가 욕심나는 책이라면 남도 귀하게 여기기는 마찬가질 텐데 어떻게 그것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 다음에 책을 처분할 의사가 있으면 내게 제일 먼저 알려 주시오” 하는 정도다.

      그리고 2~3년 후, 화가 황씨로부터 고서 일부를 정리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고서를 수집하다 보니 그림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때 300~400권의 문학서적을 구할 수 있었는데, 물론 여기에는 앞서 말한 박인환 ‘선시집’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이 책 한 권 때문에 300~400권의 책을 샀던 셈이다.

      고서점은 고서를 사고파는 곳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고서를 사고파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고서점은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고 학문탐구의 젖줄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러한 고서점이 지금은 시류에 밀려 쇠퇴일로에 있다. 서울 시내 중심가에는 물론,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가에도 변변한 고서점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박대헌 씨
    • 박대헌은

      고서점 ‘호산방’ 주인, 영월책박물관 관장. 저서로 “서양인이 본 조선”과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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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훈 소설 ‘남한산성’ 남성을 사로잡다
  • “이처럼 부지런히 사전 찾아가며 책 읽은적 없어”
    … ‘남한산성’ 독자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김훈씨의 소설 ‘남한산성’이 출간 2주 만에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3위에 오른 것은 한국 문학에 내린 또 하나의 ‘벼락 같은 축복’이다. 실용서뿐만 아니라 일본 소설의 융단 폭격 아래 놓였던 한국 소설이 모처럼 남성 독자층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인문학상 수상작가이자 30대 작가 그룹을 대표하는 김연수씨는 6일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실용과 명분의 싸움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가를 보여주는 소설이란 점에서, 역사 소설이라기보다 당대의 발언을 하는 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30~40대 남성 독자들이 그 진정성에 동감하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진지하게 쓰면 잘 안 팔린다는 통념을 우리 젊은 작가들이 갖고 있지만, 김훈 선배의 소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한 김씨는 ‘남한산성’ 성공이 젊은 작가들에게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반겼다.

    • ▲병자호란의 치욕을 재구성한 소설‘남한산성’으로 요즘 30~40대 남성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작가 김훈씨. 사진작가 이강빈씨 제공.
    • 문학평론가 박철화씨는 ‘칼의 노래’ 연장선상에서 ‘남한산성’을 분석했다. “극적인 장면 몇 개가 ‘칼의 노래’의 경우처럼 전체 서사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재료가 덜 다채롭다는 아쉬움을 느꼈다”고 지적한 박씨는 “하지만 워낙 김훈의 문장과 생을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이 역시 압도적”이라고 평했다.

      인터넷 서점 YES 24에는 잇달아 김훈 마니아를 자처하는 독자들의 서평이 뜨고 있다. “김훈, 과거에는 이태준이 문장의 으뜸이라 했다지? 오늘날은 김훈이 아닐까?”(아틀리에) “책장을 넘기면서 이처럼 부지런히 사전을 찾아가며 읽어본 적이 없다. 모처럼 단어장이 만들어졌다.”(훗)

      출판 시장에서 열띤 반응의 주체가 ‘남성’이란 것에 대해 작가 김훈 씨는 “나는 남성주의자가 아냐, 그걸 주의라고 할 수 있나”라면서도 “오랫동안 독서 문화에서 완전히 소외됐던 중년남성들을 책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 소설에서 흔히 생각하는 ‘국가의식’보다 ‘개인들의 구체적 필연성’을 더 강하게 그렸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성안에 갇힌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현실에 대한 태도가 극단적으로 달랐던 여러 사람들의 입장에 각자 정당성과 필연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소설 속의 민족반역자, 그놈에게도 필연성을 그려주려고 했다.”

    • 당시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에 대해 김씨는 “둘 다 옳기 때문에 둘 다 옳지 않을 수 있다는 모순 속에서 현실이 전개된 것이고, 양대 담론의 축이 부딪쳐 무화(無化)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주화파는 화친하자고 좋은 말을 썼지만, 사실 투항하자는 것이었고, 주전파는 그 고귀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현실을 망각했기 때문에 둘 다 딜레마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허무주의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허무주의라기보다는 삶의 구체성의 편에 선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개인인 임금이 거대한 치욕을 받아들여 국가를 구했다”고 당시를 평가한 김씨는 “이 소설에 정치적 외연(外延)을 설치해서 읽는다면, 그것은 문학을 손상하는 위태로운 책 읽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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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의 반역
  • 영·미 문학작품 327종 조사… 믿을만한 책 8%에 불과
  •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 시중에 나와 있는 영·미문학 번역서 가운데 번역의 품질을 믿을 수 있는 작품은 10권 가운데 한 권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위원장 서강목 한신대 영문과 교수)이 광복 이후 2005년까지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영미 문학작품 320여 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추천할 만한 작품은 25종으로 전체 조사 대상의 8%에 불과했다.

    이는 사업단이 ‘천로역정’ ‘정글북’ ‘동물농장’ 등 영미문학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 35편의 영어 원작을 우리말로 옮긴 327종의 번역서를 검토한 결과다. 이같은 사실은 사업단이 4월30일 발간한 ‘영미 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2’(창비)에 수록돼 있다.

    사업단은 이에 앞서 2005년에도 광복 이후 2003년 7월까지 번역 출간된 572종을 대상으로 같은 작업을 진행해 “추천할 만한 번역서가 62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두 번의 조사 결과를 합산하면, 광복 후 최근까지 번역돼 시중에 나온 890여종의 문학 번역작품 가운데 번역 수준을 믿을 수 있는 작품은 87종이다.

    사업단은 ‘추천할 만한 번역서’ 가운데 특히 신뢰도가 매우 높은 ‘최고 등급’ 작품 11종을 함께 발표했다. 선정된 작품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번역한 8종(문예출판사, 삼지사, 덕문출판사, 삼성출판사, 일신서적, 민음사, 소담출판사, 라인북)과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번역한 2종(삼성출판사, 비룡소),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민음사) 1종 등이다. 2005년 발표한 1차 조사에서는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문학과지성사) 등 6편 이 최고 등급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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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lla.K 2007-05-0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그래도 전문가들이 뽑은 거니까 번역에 대해 잘 모르는 저 같은 일반인에겐 나름 좋은 정보가 되지 않을까요?
    번역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님께서 아찔하다고 하시니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고마워요.^^

    마노아 2007-05-0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좀전에 민음사 동물농장을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출판사를 바꿔야 하나 잠시 고민을...;;;;
    민음사 책이 시리즈여서 꽂았을 때 '뽀대'가 난다는 것에 흔들립니다..;;;;

    antitheme 2007-05-0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뽀대에 한표.

    stella.K 2007-05-0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