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여주인 프랑스 현대문학선 24
레몽 장 지음, 이재룡 옮김 / 세계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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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자는 <책 읽어주는 여자>로 유명한 작가다. 하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아직 그 작품은 읽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저자의 또 다른 책, 이<카페 여주인>이란 작품을 읽게 되어 나름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내용은 간단하다. 어떤 작은 마을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여자에게 편지 한장이 날아든다. 그것은 어느 작가로부터, 하룻밤을 같이 지내주면 10만 프랑을 주겠다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소설은 시작하고 있다.

생각해 보라. 정말 누군가가 하룻밤을 지내주는 댓가로 적지 않은 돈이 생긴다면 제의를 받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으며, 주위의 반응은 또 어떻겠는가? 이것을 작가는 아주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지고,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아주 섬세하고도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여기에 작가의 능력이 빛을 발한다.

솔직히 나는 작가의 내공에 좀 놀랐었다. 대작을 쓸만한 작가에겐 그다지 놀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한 역량이 되서 그렇게 쓰는 것인데 새삼 놀라고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저 작가가 펼쳐 준 잔칫상에 독자는 편안히 앉아서 즐겨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품. 즉 작은 이야기를 이만큼 능청스럽게 펼쳐 나가는 작가들 보면 솔직히 질투가 날 정도다.

그런데 문득 읽다가, 만약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우리나라의 어느 작가가 그려낸다면 어떻게 그려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를 비하 할 마음은 없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정서엔 돈과 섹스를 동의어로 보는 경향이 있어, 한푼어치의 에누리도 없이 과감하게 까발리려고만 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갖는 신비감이 반감이 되면서 또 똑같은 얘기하고 앉았구나, 하지 않을까? 이것을 클리셰라고 한다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는 결국 작가의 몫이다. 레몽 장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해, 주인공인 카페 여주인과 10만 프랑을 제의한 작가를 파리의 어느 박물관으로 대려다 놓는다. 그리고 사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만드는가 하면, 역사의 한 단면을 얘기하게도 만든다. 그리고 프랑스 유명작가의 말도 인용하게 만든다. 과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상당히 육감적이며 흥미롭고, 지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책을 읽는 내내 마치 프랑스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아주 괜찮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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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30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끌리네요. 님이 매혹된 소설 읽어보고 싶어 담아갑니다.

stella.K 2007-06-30 10:40   좋아요 0 | URL
네. 한번 읽어보세요. 저는 몇년 전에 사놓고 벼르고 벼르다 이제야 읽었네요. 이런 여름 날, 특히 조용한 밤에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 검색어에서 삭제… 비로소 그는 죽었다
  • 검색어로 읽는 오늘의 문학… 3. 유비쿼터스
    새로운 삶의 풍속도 냉소적 비판론 많아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모든 사물에 칩(chip)을! 가정에도 사무실에도 숲 속에도 칩을! 자동차에도 시계에도 냉장고에도 칩을! 유비쿼터스 만만세’(김중혁의 단편 ‘멍청한 유비쿼터스’ 중에서)

    오늘날 문학은 정보 통신 환경이 ‘물이나 공기처럼 시공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직면했다. 인간은 이 세상 모든 곳에 편재한 새로운 신(神)의 존재를 향해 진화 중이다. 그런데 젊은 작가 김중혁의 단편 소설 ‘멍청한 유비쿼터스’는 정보통신혁명이 숭배하는 ‘컴퓨터 속의 신’에게 냉소적이다. 완벽한 유비쿼터스를 지향하는 기업체가 스스로 보안 시스템 실험을 위해 해커들을 고용한다. 이 소설에서 해커들은 획일화된 질서를 거부하는 ‘창조적 예술가’처럼 등장한다. 그들은 ‘인간들의 믿음이란 정보를 기반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라며 정보화 사회의 이미지 조작을 비판한다. ‘가장 안전한 컴퓨터는 꺼진 컴퓨터이고, 가장 안전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 작가의 유비쿼터스 문명 비판론이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된 시대에 새로운 삶의 풍속도는 오늘의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탐구대상이다. ‘검색어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0개의 카테고리와 177개의 사이트가 나타난다/ 나는 그러나 어디에 있는가/ 나는 나를 찾아 차례로 클릭한다’는 이원의 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수록된 시집 ‘야후! 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새로운 디지털 문화가 삶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존재의 처소에 관한 질문’(평론가 이광호)이라는 호평을 받은 시집이다.

    ‘다섯 번째 직장을 그만둔 뒤부터 B는 자신의 블로그에 거의 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 책을 뒤적거리다가 불현듯 그중 한 구절을 옮겨 적는가 하면 하릴없이 동네를 한 바퀴 돌던 중에 재미 삼아 카메라폰에 담아본 뒷골목 풍경을 새로운 게시물로 올려놓는다…’(은희경의 단편 ‘지도 중독’ 중에서)

    한 블로그 중독자를 등장시킨 은희경은 소설 중반부터 종이 지도 중독자를 대립시켜 가상 현실이 아닌 현실의 생태계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재조명한다. 역시 디지털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

    홍콩영화 배우 장국영이 만우절(2003년 4월1일)에 자살한 것을 놓고 벌어진 네티즌들의 반응을 소재로 삼아 작가 김경욱은 단편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썼다. ‘장국영이 죽었단다. 어쩌면 그것은 거짓말인지도 몰랐다. 새로운 자극을 좇는 불특정한 다수의 호기심을 숙주 삼아 온갖 헛것들이 무한 증식하는 인터넷에는 실체 없는 소문들이 유령처럼 떠돌기 마련이다.’

    그러나 장국영의 자살이 사실로 밝혀진 뒤 이 소설에 등장한 장국영 마니아들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추모식에 얼굴을 가린 채 모이고 각자 다시 밀실로 돌아가서 익명으로 채팅을 나눈다. “가상 세계에서 장국영을 매개로 채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아닌, 그래서 실제 세계에서는 있으나마나 한 행동(추모식)이 되고 오로지 가상공간에서만 맥락을 지닐 수 있는 행동을 그린 소설”이라고 평론가 우찬제는 풀이했다.

    장경린 시인은 장국영의 죽음을 통해 인기인의 사망 뒤에 늘 발생하는 ‘근거없는 댓글 문화’와 ‘인기 검색어의 냄비 근성’을 풍자한 시를 썼다. ‘죽어서도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고/ 죽어서 더 영화 같은 스캔들을 이어가던 그가/ 인기 검색어에서 삭제된 오늘/ 비로소 그는 죽었다/ 컴퓨터 모니터 전자식 화장터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기호의 바다에서’(시 ‘인기 검색어에서 삭제된 오늘’ 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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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사의 내용·방법까지… 결정은 기술이 한다
  • 디지털 시대 서사(敍事)

    소설가 이인화·김탁환, 국문학자 전봉관씨가 말하는 미래
    한국, 기술 있지만 기획력 떨어져… 큰 줄거리, 독립적 에피소드 인기
    고용문제 해결에도 돌파구 될 것
  • 안면도=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 디지털 시대의 ‘서사(敍事)’가 차세대 문화 콘텐트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소설가 이인화, 김탁환씨, 국문학자 전봉관씨가 한국적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미래를 전망한 정담(鼎談)을 싣는 특집을 꾸민다. ‘검색어로 읽는 오늘의 문학’ 시리즈는 21세기 한국 문학에 나타난 디지털 문명의 일상화를 ‘유비쿼터스’란 검색어로 알아본다.


      ㅈ디지털 기술과 서사적 상상력을 결합시켜 차세대 문화 콘텐트 생산 방안을 모색하는 2007 디지털 스토리텔링 콘퍼런스가 25일 안면도 롯데오션캐슬에서 열렸다. 26일까지 ‘21세기 문화를 이끌 차세대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진행되는 이 콘퍼런스를 주최한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 이인화 회장(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사회를 맡은 김탁환 교수(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발표자로 나서는 전봉관 교수(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즐기며 친분을 쌓은 게임 마니아들이다. 2003년 학회 결성도 이들이 주도했다.

      이인화 교수와 김탁환 교수는 각각 장편소설 ‘영원한 제국’과 ‘불멸의 이순신’을 쓴 인기 소설가이고 전봉관 교수는 ‘경성기담’이라는 책에서 일제하 경성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실화를 소개해 화제가 된 이야기꾼이다. 25일 오전 세 사람이 만나 정담(鼎談)을 나눴다.






    • ▲ 25일 안면도에서 열린 디지털스토리텔링 콘퍼런스에 참석한 김탁환, 이인화, 전봉관씨.(왼쪽부터) /김태훈 기자



    • ◆새로운 서사의 틀이 필요한 시대

      ▲이인화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서사의 내용과 방법마저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아날로그 방식의 소설과 영화가 보여주는 전통적 서사와는 다른 새로운 서사의 틀이 필요하다. 일례로 모바일 전화기 화면에 4~5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시대다. 긴 장편 구조의 서사는 이런 틀에 적합하지 않다.

      ▲전봉관〓디지털 시대에 맞는 스토리는 분명히 이전의 서사와 다른 점이 있다. 영국 작가 톨킨(Tolkin)이 쓴 ‘반지의 제왕’은 처음 발표됐을 때 ‘영문학의 재앙’ 취급을 당했지만 지금은 디지털 시대 최고의 히트 작품이 됐다. ‘반지의 제왕’은 하나의 큰 줄거리 속에 독립적인 이야기들이 병렬로 연결된 서사구조라는 점이 주목된다.

      ▲김탁환〓그런 구조의 서사는 영화와 게임, 모바일 콘텐트 등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삼국지’나 ‘서유기’도 디지털 서사로 활용하는 데 적합한 소설들이다.

      ▲전〓문제는 우리나라가 디지털 기술은 발달해 있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기획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신화와 설화 같은 인문학적 콘텐트들을 확보하고, 온라인상에서 통하는 이야기의 구성 원리를 찾아내 이 둘을 결합시켜야 한다.

      ▲김〓역사적 사실들도 좋은 디지털 서사의 재료가 될 수 있다. 나는 요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디지털 자료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혜초가 여행 도중 겪은 사건들을 다양한 디지털 콘텐트로 변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대학들도 이런 추세에 발 빠르게 동참하고 있다. 2006년 12월 현재 전국 4년제 대학 및 전문대학에서 디지털 미디어, 멀티미디어, 디지털 콘텐트 등 서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구하는 학과가 930개에 이르고 있다.

      ◆스토리텔링 능력 가진 이야기꾼 찾아라

      세 교수는 “산업 현장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가진 업체들이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진 새로운 이야기꾼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삼성전자 등 일부 이동통신 업체는 모바일 폰에 탑재할 기능을 결정하기 위해 시장조사와 함께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20대 후반의 직장여성’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든다는 영업 목표를 정했다면, 가상의 20대 여성(‘페르소나’라고 칭한다)을 창조한 뒤 그녀의 일상을 소설 쓰듯 시나리오로 만들어 그녀가 모바일 폰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인화 교수는 “우리 학부 출신 석·박사 졸업생 60명 가운데 유학과 결혼을 제외하면 취업에 전원 성공했다”며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고용 문제 해결에도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 톨킨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반지의 제왕’포스터.‘ 반지의 제왕’은 독립적인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큰 스토리 안에서 연결돼 있어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적합한 서사구조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 키워드… ‘디지털 스토리텔링’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매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서사행위’를 뜻한다. 소설이나 연극, 만화와 같은 기존의 이야기예술이 디지털 미디어라는 신기술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하기’를 만들어내는 시대를 대표한다. 컴퓨터게임, 온라인게임, 하이퍼텍스트문학, 영화, TV 드라마, 뮤직 비디오, 애니메이션, 광고, 디자인, 홈쇼핑, 테마파크, 휴대폰 등등에서 활용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문화 콘텐트 개발이란 차원에서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정부 후원 아래 문화예술과 과학기술계의 공동 학술 대회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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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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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판절판


    김훈의 문학을 일컬어 “마초”적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직 그가 낸 책들을 다 읽어내진 못했지만, 그의 글들은 거의 대부분 남성을 대상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긴 하다. 그의 단편 “언니의 폐경”같은 경우는 이례적으로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소설은 순전히 두 자매가 이야기를 주도하고 이끌어 간다. 그래서일까? “언니의 폐경”을 읽었을 때 나의 느낌은 마치 차가운 쇳조각에 살을 덴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김훈이 마초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겠는가? 어차피 이 세상의 이야기 중 거의 대부분이 남자가 나오고, 남자에 의해서 씌여지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러다가 그의 문학을 일컫어 마초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내는 책마다 화제가 아닌 적이 없었고, 특히 이 책 <남한산성>은 상종가를 치며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왜 그럴까? 요즘 인기 있다는 펙션 또는 역사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몰랐던 병자호란이나 인조에 관한 얘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는 이 소설을 시작할 때,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작가 김훈이 이 소설에서 얘기하려 했던 건 무엇일까?

    알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듯, 김훈도 그런 것 같다. 그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호불호가 확실해 보인다. 그를 좋아한다면 왜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문체’를 좋아하는 것일 게다. 나는 그의 소설 <칼의 노래>로부터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의 문체는 한마디로 저기압 문체다. 읽고나면 가위에라도 눌린 듯 무겁지만, 뭔가의 깊은 울림이 있다. 이 작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마치 그때 당시를 여행하듯 명징하고, 인물이나 배경묘사가 적확하다. 모름지기 작가라면 이런 각을 세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그를 좋아한다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런데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의 작품엔 여성을 비하시키는 내지는 반페미니즘이라고 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작품이 여성이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꼭 그렇게 말해도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 보단 그를 변호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읽은 바로는)그는 여성을 다룰 마음이 아예 없어 보이는 듯 하다. 그에겐 오로지 마초 다시 말해 남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의 문학을 마초적이라고 했을 때, 작가는 과연 그 말에 동의할까? 아마도 그 말은 평론가들이 자기내들끼리 뭉뚱그려 말했던 것이 세상에 전파된 것은 아닐까, 싶다. 여성의 비하 역시 그가 의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초적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가 주로 남성을 그리긴 했지만 전형적인 마초를 표현하지는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국민이 그리도 흠모해 마지않는 이순신 장군을 형상화 한 작품 <칼의 노래>에서 보면, 그는 이순신을 영웅호걸로 그리지 않았으며, 고뇌하는 남자로 그렸다. <남한산성> 역시도 우리가 익숙히 보아 온, 파벌이나 당쟁을 그리지 않고 고뇌하는 남자들을 그렸다. 인조도, 김상헌도, 최명길 역시도...

     

     

    그렇다면 그의 작품에서 그리는 남성들은 왜 그리도 하나 같이 고뇌하고 있는 것일까? 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남성은 그다지 전형적인 마초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의 상상이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남성들은 늘 선택을 강요받으며,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그것이 가정이든 나라든) 끊임없이 고군분투하고, 밥벌이의 지겨움에 몸서리치는 건 아닐까? 작가 김훈은 이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게 되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치욕을 기억하라고 하면서까지 하면서 말이다.

    제법 비장해 보이긴 하지만, 역시 그것은 우리가 원하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마초는, 우리에겐 정복당해 온 역사만 있지, 어느 때고 정복한 역사는 없거나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반작용은 아닐까? 그래서 더더욱 마초적이 되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늘 이것을 의도적으로 반(反)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냐? 이 책 어디에선가 작가가 그렇게 표현한 것처럼, 그는 어느 쪽도 아니며 그저 글을 쓸 뿐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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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26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mira95 2007-06-24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오랜만이죠? 리뷰 좋네요. 저도 김훈 좋아하는데..<칼의 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남한산성>도 봐야죠.. 추천 누르고 갈게요^^

    stella.K 2007-06-24 20:49   좋아요 0 | URL
    아, 미라님! 반가워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이렇게 반가울 수가...!^^

    마노아 2007-06-2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한산성보다 김훈의 문학을 논하셨군요. 마지막의 마초에 관한 이야기는 신선합니다. 그런 속내가 있을 수 있단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07-06-24 20:50   좋아요 0 | URL
    김훈에 중독됐다고나 할까?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다락방 2007-06-2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굉장한 글이예요. 추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글입니다. 위에서 언급하셨던 [언니의 폐경]은 『강산무진』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단편입니다.

    stella.K 2007-06-25 09:3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고맙습니다. <언니의 폐경>은 확실히 작가의 작품중 단연 독보적인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7-06-2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칸이 오줌을 휘갈기는 장면이요! 마초적이랄까.

    stella.K 2007-06-25 09:32   좋아요 0 | URL
    그렇긴 하죠. 하지만 칸의 비중은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았죠.^^

    드팀전 2007-06-25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초 이야기는 일단 김훈의 소설도 소설이지만 그보다 그가 가끔씩 하는 인터뷰나 기타 잡글들에서 보인 가부장적인 자신감과 반여성적인 멘트들에서 파장된게 아닐까요?

    stella.K 2007-06-25 09:33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게 있었군요. 왜 나는 잘 몰랐을까요...
     

  • 거창한 문학은 그만!
  • 이기호, 오현종 등 30대 소설가 12명
    이전 세대와 다른 발랄한 문학관 밝혀
  •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 ▲소설가 이기호씨


    • “문학에 대한 생각도 저희 세대는 선생님 때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소설 쓰는 일이 굉장히 숭고한 일이라거나 숙명적인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소설집 ‘최순덕 성령 충만기’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로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소설가 이기호. 선배 소설가 박범신 교수(명지대 문창과)가 진행하는 문학 대담프로에 출연한 그는 “소설을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를 쓴 백가흠은 한 발 더 나간다. 그는 친절한 이야기꾼 같은 소설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저는 가끔 독자들에게 불쾌함을 요구합니다.”

      2000년대의 이야기를 만드는 30대 젊은 소설가들이 한 세대 선배 소설가들과는 다른 그들만의 젊은 문학관을 공개했다. 소설가 박범신과 젊은 작가들의 대담을 묶은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을 통해서다. 이 책은 요즘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소설가 12명과 박씨가 문학을 주제로 나눈 논쟁적인 대담들을 정리했다. 그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난 2005년 개설한 ‘금요일의 문학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두 소설가 외에도 김도언, 김도연, 김숨, 김종광, 김종은, 박성원, 손홍규, 심윤경, 오현종, 이신조 등이 대담에 참가했다.





    • ▲소설가 오현종씨



    • 이기호는 전 세대 작가들의 대세였던 참여문학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나가서 화염병을 던져야 한다거나 내 글이 화염병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은 없다. 내 글이 조국의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도 물론 없다.”

      그들은 자신의 문학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사양한다.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를 쓴 박성원은 문학이 갖는 치유 기능을 피력하지만 그 목소리는 크지 않다. “문학이 어떻게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데, 가장 요긴하게 사용한다 해도 가위질 같은 걸 하다가 피가 났을 때 임시로 지혈하는 정도밖에 없는데, 그런데 종이책이 그렇게 아무짝에도 소용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절대 억압하지 않는다.”

      문학의 의미를 따질 때는 목에서 힘을 빼는 그들도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지키려는 고집은 선배 소설가들과 다르지 않다. 소설가 김도언·김숨 부부는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의도적인 무관심을 가장한다”며 “서로의 소설에 대한 품평을 결벽적으로 자제한다. 안 그러면 거의 매일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장편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을 쓴 오현종은 자신이 “언어로써 독자를 유혹하는 존재”라는 말로 독자와 소통하고 싶은 욕심을 드러냈다. 반면 장편 ‘달의 제단’을 쓴 심윤경은 “유목민처럼 방랑자가 되어야 하는 운명”이라는 비장한 작가관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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