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 랜스 암스트롱, 삶으로의 귀환
랜스 암스트롱.샐리 젠킨스 지음, 김지양 옮김 / 체온365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2년 전쯤이던가? 우연히 아는이의 블로그에서 이 사진을 보았다. 이 사진이 어찌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지,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서 당장에라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에 대한 이야기는 고환암을 이긴 세계적인 싸이클 선수가 고작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이 책을 집어들어을 때야 비로소 그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암스트롱이란 성은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 온 이름이라, 나는 이 사람이 나이가 꽤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의 현재 나이는 아직 40이 채 되지 않았고, 고환암이 그토록이나 위험한 병인 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물론 암이 사람의 신체중 어디에 발병하느냐에 때라 더 위험하고, 덜 위험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요즘엔 의학의 발달로 암도 완치률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암은 아직도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병임엔 틀림없다. 그 중 랜스 암스트롱이 걸렸다는 고환암이란 완치률이 누구는 40%라고도 하고, 누구는 50%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그냥 위로 하느라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고, 당시 랜스 암스트롱의 완치률은 고작 3%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하지만 이 책의 면면을 볼 때 그의 성격이나 인생관을 볼 수가 있는데, 그런 낮은 수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봐, 그는 굉장한 의지의 사람이고, 긍정적이며, 성격이 급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강렬하게 불태울 줄 아는 정열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암을 이긴 사람은 랜스 암스트롱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쩌면 건강한 사람 아니 적어도 아직 암에 걸려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겐 진부하게 느껴질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투병 과정이야 뻔한 스토리 아니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이 조금은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치료 과정과 재기하기 까지의 과정은 결코 녹녹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은 멋진 승리의 한 편의 드라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고환암은 완치률이 3% 밖에 안 되는 위험한 병이다. 더구나 수술과정에서 고환을 잘라내야 하기 때문에 남자에게는 가히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환을 잘라내기 전에 정자를 받아 은행에 넣어 둔다. 혹시 훗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을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지만 암이라는 끔찍한 고통에서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하기란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는 거지만, 암 자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결국은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결국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암으로 죽어 가는 것일 것이다.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죽음을 선택할까? 하지만 랜스 암스트롱은  달랐다. 그는 죽을 것 같은 고통속에서도 끝내 삶을 선택했다. 그는 자신의 병에 당당했고, 의사에게 항암제를 더 많이 사용해 줄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병을 이겼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그는 한동안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암 발병 전까지 그렇게도 잘 나가던 싸이클 선수였지만, 완치 후에 한동안 우울해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에게 많은 시련과 절망을 가져다 주었다. 여기서 그는 많은 암환자들이 완치된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후의 치료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에 새삼 놀라움을 표했다고 했다고 하는데, 공감이 간다. 또한 사람들은 의외로 냉정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완치가 되면 금방이라도 복귀가 가능할 줄 알았는데, 복귀는 의외로 쉽지 않았고, 그것도 모자라 어떤 사람에게 그가 고환이 없다는 것에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하니 그때의 그가 느껴야 하는 절망이 어떤 것인지 가히 짐작이 갔다.

그래도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그가 이룬 업적은 값진 것일 것이다. 여느 사람에게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되는 것이, 그가 갖는 기쁨만큼 커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어려운 고난 뒤에 갖는 생의 의미는 깊고도 클 것이다. 더구나 그는 한때 너무 절망스러워 선수생활을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그 절망을 이기고 값진 승리를 일구어 냈을 때 그 기쁨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책의 부제가 말하듯 '삶의로의 귀환'이 아닐까?  그는 말한다. 싸이클과 암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냐고 묻는다면 당연 암을 선택하겠노라고. 왜 그런지는 직접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긍정의 사람이다. 그가 얼마나 긍정의 사람이었는지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하므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나는 암이 죽음의 한 형태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암을 다시 정의하고 싶다. 암은 삶의 한 부분이라고 말이다. 회복기에 있던 어느 날 오후, 나는 암(cancer)이라는 단어로 6행시를 지었다.

courage-용기

attitude-태도

n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않기

curabilty-치료

enlighenment-깨달음

remembrance of my fellow patients-동료 환자들에 대한 기억 (330p)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9-18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저 사진 몇 년 전에 님이 올리셨던 것 기억이 나요.
정말 멋지단 표현밖에 안 나오는 사진이에요.
6행시 중 동료, 동료 환자들에 대한 기억.. 뭉클하네요.

stella.K 2007-09-19 10:10   좋아요 0 | URL
아, 기억하시는군요. 그렇죠? 이 사람 참 멋있는 사람이에요.^^
 

  • 음식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되는 사람과 세상
  • [검색어로 본 오늘의 문학] 10. 음식남녀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나는 스스로를 서른이 다 되도록 정신 못 차리는 년이나 사랑의 의미도 모르는 이기적인 여자라 말하는 대신 ‘같이 밥 먹어주는 여자’라고 소개한다. 왜? 같이 밥 먹어주는 일로 돈을 벌고 생활을 연명하니까.’

      새내기 여성작가 하재영(28)이 단편 ‘같이 밥 먹을래요?’로 주목 받고 있다. 올해 계간 ‘실천문학’ 봄호에 발표된 ‘같이 밥 먹을래요?’는 최근 나온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재수록돼 문단 샛별 하재영의 위상을 높였다. ‘모든 욕망은 하나로 귀결돼요. 바로 타인의 시선. 사람들은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나 전전긍긍하는 속물근성을 보편적인 욕망으로 포장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마치, 혼자 밥을 먹을 때 혼자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것처럼.’





    • ▲ 미식가들을 겨냥해‘생 트러플 버섯’요리를 내놓는 서울의 한 호텔 레스토랑. 음식을 소재로 웰빙 시대의 세태와 입맛을 그리는 현상이 2000년대 한국 문학에서 두드러진다. /조선일보 DB


    • 혼자 밥 먹는 사람의 고독을 달래는 이 소설에 대해 “왜 식사는 정치적인가 하는 문제가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난다”고 평가한 평론가 이광호(서울예대 교수)는 “혼자 밥 먹는 사람에 대한 배타와 차별을 생산하는 온갖 집단주의는 어디에나 언제나 있다”고 풀이했다.

      대만 영화 ‘음식남녀’(94년 아태영화제 작품상)가 요리를 통해 개인과 가족, 사회, 문명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듯이, 오늘의 한국문학에서 음식문화는 실존적이면서 사회적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 은희경의 소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비만에 대한 현대 사회의 집단적 냉대를 바탕에 깔고 있다. ‘빙하기 원시인은 늘 굶주렸기 때문에 어쩌다 음식을 접하면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고 한 이 소설은 묄렌도르프의 비너스와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대비시키면서 비만해소를 위해 땀 흘리는 현대문명의 아이러니를 묘파했다. 뚱뚱한 사생아인 남자 주인공이 탄수화물 섭취를 금하는 다이어트 과정을 그린 이 소설에 깊이 공감한 한 독자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탄수화물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한 내가 보기에는 남의 얘기지만 참으로 고통스러웠다…그런데 (아버지 빈소에서) 이 남자는 국밥을 폭식하고야 만다. 그 장면에서 난 ‘으아아아악~~~안돼’ 외쳐버렸다.’ 근자에 소설과 독자가 이토록 큰 공명(共鳴)을 빚은 경우가 또 있을까.

      오늘의 작가들은 맛집 안내서와는 다른 차원의 음식 산문집을 통해 ‘글맛’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급히 지져낸 장떡은 사실은 고추장떡이었다…평안도와 황해도에서는 된장을 주로 쓰는데…’라는 ‘황석영의 맛있는 세상’은 미식가들이 범람하는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맛에 대한 추억을 펼친다. 맛있는 음식에는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라고 황석영은 역설했다.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 ‘어머니의 수저’는 탐미적이고 구도적인 음식 명상집이다. ‘장아찌는 밥상의 조연이면서 없으면 서운한 일등공신이다…장아찌는 ‘마땅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금강경) 할 때의 그 말씀에 값하는 음식이다.’

      소설가 성석제의 음식기행집 ‘소풍’은 환희와 유희로 가득하다. “음식에서 깨달음을 찾고 먹는 데서 구원을 갈구하는 무리들이 걷는 길은 식도(食道)요, 그 무리는 식도(食徒)라 하겠다”고 한 성석제는 “음식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는 사람과 세상에 관해서 썼다”고 밝혔다.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9-04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음식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되는 사람과 세상
  • [검색어로 본 오늘의 문학] 10. 음식남녀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나는 스스로를 서른이 다 되도록 정신 못 차리는 년이나 사랑의 의미도 모르는 이기적인 여자라 말하는 대신 ‘같이 밥 먹어주는 여자’라고 소개한다. 왜? 같이 밥 먹어주는 일로 돈을 벌고 생활을 연명하니까.’

      새내기 여성작가 하재영(28)이 단편 ‘같이 밥 먹을래요?’로 주목 받고 있다. 올해 계간 ‘실천문학’ 봄호에 발표된 ‘같이 밥 먹을래요?’는 최근 나온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재수록돼 문단 샛별 하재영의 위상을 높였다. ‘모든 욕망은 하나로 귀결돼요. 바로 타인의 시선. 사람들은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나 전전긍긍하는 속물근성을 보편적인 욕망으로 포장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마치, 혼자 밥을 먹을 때 혼자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것처럼.’





    • ▲ 미식가들을 겨냥해‘생 트러플 버섯’요리를 내놓는 서울의 한 호텔 레스토랑. 음식을 소재로 웰빙 시대의 세태와 입맛을 그리는 현상이 2000년대 한국 문학에서 두드러진다. /조선일보 DB


    • 혼자 밥 먹는 사람의 고독을 달래는 이 소설에 대해 “왜 식사는 정치적인가 하는 문제가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난다”고 평가한 평론가 이광호(서울예대 교수)는 “혼자 밥 먹는 사람에 대한 배타와 차별을 생산하는 온갖 집단주의는 어디에나 언제나 있다”고 풀이했다.

      대만 영화 ‘음식남녀’(94년 아태영화제 작품상)가 요리를 통해 개인과 가족, 사회, 문명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듯이, 오늘의 한국문학에서 음식문화는 실존적이면서 사회적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 은희경의 소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비만에 대한 현대 사회의 집단적 냉대를 바탕에 깔고 있다. ‘빙하기 원시인은 늘 굶주렸기 때문에 어쩌다 음식을 접하면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고 한 이 소설은 묄렌도르프의 비너스와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대비시키면서 비만해소를 위해 땀 흘리는 현대문명의 아이러니를 묘파했다. 뚱뚱한 사생아인 남자 주인공이 탄수화물 섭취를 금하는 다이어트 과정을 그린 이 소설에 깊이 공감한 한 독자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탄수화물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한 내가 보기에는 남의 얘기지만 참으로 고통스러웠다…그런데 (아버지 빈소에서) 이 남자는 국밥을 폭식하고야 만다. 그 장면에서 난 ‘으아아아악~~~안돼’ 외쳐버렸다.’ 근자에 소설과 독자가 이토록 큰 공명(共鳴)을 빚은 경우가 또 있을까.

      오늘의 작가들은 맛집 안내서와는 다른 차원의 음식 산문집을 통해 ‘글맛’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급히 지져낸 장떡은 사실은 고추장떡이었다…평안도와 황해도에서는 된장을 주로 쓰는데…’라는 ‘황석영의 맛있는 세상’은 미식가들이 범람하는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맛에 대한 추억을 펼친다. 맛있는 음식에는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라고 황석영은 역설했다.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 ‘어머니의 수저’는 탐미적이고 구도적인 음식 명상집이다. ‘장아찌는 밥상의 조연이면서 없으면 서운한 일등공신이다…장아찌는 ‘마땅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금강경) 할 때의 그 말씀에 값하는 음식이다.’

      소설가 성석제의 음식기행집 ‘소풍’은 환희와 유희로 가득하다. “음식에서 깨달음을 찾고 먹는 데서 구원을 갈구하는 무리들이 걷는 길은 식도(食道)요, 그 무리는 식도(食徒)라 하겠다”고 한 성석제는 “음식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는 사람과 세상에 관해서 썼다”고 밝혔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넌 아웃이야” 경쟁사회 축소판… 비인간성 비꼬기도
  • 검색어로 읽는 오늘의 문학 9. 야구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미국 뉴요커의 감성을 대변하는 소설가 폴 오스터는 야구 때문에 글을 쓰게 됐다.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뉴욕 자이언츠의 강타자 윌리 메이스에게 사인을 받을 기회를 잡았으나 마침 몸에 지닌 필기구가 없었다. 그후 오스터는 항상 연필을 갖고 다녔고, 결국 작가가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야구 때문에 작가가 됐다. 어느날 야구장 외야석에서 시원하게 날아가는 야구공을 보면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 그는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썼다. 2000년대 한국 문학에서도 야구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스포츠 종목 중에서 야구가 시와 소설에서 직간접적 소재로 가장 많이 활용됐다.

      ‘평범한 야구팀 삼미의 가장 큰 실수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었다’는 장편 ‘삼미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은 80년대 프로야구의 최하위 야구팀을 통해 경쟁사회의 세태를 비판하고, 낙오자들을 위해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형상화했다. ‘임시직 노동자, 청년 실업자, 신용 불량자가 수백만씩 되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이 소설은 개그 같은 말 솜씨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소설가 황석영)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 ▲ 세이프냐 아웃이냐. 냉엄한 경쟁 사회의 축소판인 야구는 오늘의 세태풍자소설에서 패자를 위한 이야기 소재로 각광 받고 있다. /조선일보 DB 사진



    • ‘고백하자면 저는 1루에서 상대 선수와 나누는 대화를 사랑했습니다’는 젊은 작가 김도언의 단편 ‘전무후무한 퍼스트 베이스맨’(계간 ‘세계의 문학’ 2007 여름호)도 프로야구를 통해 경쟁사회의 비인간성을 풍자한 소설이다. 21년 동안 프로야구팀에서 활약해 온 노장 1루수 ‘나’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선수를 인류애로서 돕는 것. 그것이 야구가 가르치는 휴머니즘’이라고 믿어왔다. ‘나’는 1루에 온 상대 선수들의 가정 형편을 꿰뚫게 된다. 아버지는 식물인간 상태이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어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여동생들은 가출했다는 등등 상대방 선수의 고민을 들어주는 식이다. 마침내 ‘나’는 결단을 내린다. ‘저는 상대팀 선수 중에 기록이 시원치 않고 부진에 허덕이는 선수가 1루에 나오면, 우리팀의 수비 전략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투수의 주무기라든가, 다음에 던질 공의 구질, 특이한 버릇, 사인의 의미 같은 거 말이에요. 그리고 도루를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했어요.’

      이해경의 장편 ‘말하지 못 한 내 사랑은’에서 야구는 유희와 노동의 경계가 없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스포츠다. ‘저기 봐요, 야수들이 전부 건들거리고 있죠? 야구에 뜻이 없어 보이죠? 그런데 저러고들 있다가 투수가 와인드업이나 셋 포지션에 들어가면, 동시에 모두 허리를 싹 낮추면서 굽혀진 다리는 팽팽해지고…전 그 순간이 너무 좋아요. 최대한 릴랙스…그러다가 한순간 집중력을 최고로 끌어올려….’

      2002 월드컵과 붉은 악마 열풍에도 불구하고 한국 소설에서 축구가 야구에 밀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386세대 문학평론가 장은수는 “지금 한국 문학의 주류인 30~40대 작가들이 프로야구를 보면서 성장기와 청년기를 보낸 세대이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5년 뒤 붉은 악마 세대 작가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축구를 다룬 소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외국인 노동자’가 쏘아올린 작은 공
  • [검색어로 읽는 오늘의 문학] 8. 외국인 노동자
    “그들의 삶 통해 황금만능주의 꼬집어”
    우리 내부의 타자에 대한 관심 증폭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아내의 대화 상대인 이 외국인 친구, 사트비르 싱이라는 이름의 인도인이 집으로 찾아온다는 얘기를 미리 전해 들었음에도 막상 문을 열고 이 친구가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자 당황스러웠다.’(김연수의 단편 ‘모두에게 복된 새해’)

      동인문학상(2003년) 수상작가 김연수가 올해 초 월간 현대문학에 발표한 단편 ‘모두에게 복된 새해’는 낯선 외국인과의 대면에서 시작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부인을 둔 보통 한국 남자 ‘나’를 만난 인도인은 서툰 한국어로 횡설수설하면서 한국인들의 편견과 무지를 힐난한다. ‘저는 매일 터번을 쓰지 못하겠어요. 한국 사람들 안 좋아합니다. 공장에서 한 시간 버스 타야 합니다. 버스에서 술 취한 사람들, 알 카에다 말합니다. 버스에서 개새끼들 있습니다. 그치?’





    • ▲ 한국이주노동자 건강협회로부터 무료 진료를 받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 2000년대 한국 소설의 새 주인공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조선일보 DB사진



    • 국내 거주 외국인이 72만 명을 돌파했다고 최근 행자부가 발표했다.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외국인이 등장하는 한국소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외국인 이주 노동자문제가 한국 소설에서 새로운 테마로 불거지고 있다. 김재영의 소설집 ‘코끼리’(2005년)는 이주노동자들을 한국 사회의 새로운 소외계층으로 조명한 리얼리즘의 정신을 보여줘 주목을 받았다. 수록작 ‘코끼리’는 네팔인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13세짜리 소년 ‘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한때 돼지 축사로 사용했던 낡은 베니아판 문 다섯 개가 붙은 건물’에 살고 있는 ‘나’의 이웃들은 파키스탄 청년, 방글라데시 아줌마, 러시아 아가씨, 미얀마 아저씨 등이다. 박범신의 ‘나마스테’(2005년)를 비롯해 이혜경의 ‘물 한모금’, 김혜정의 ‘등에’, 홍양순의 ‘동거인’도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작품들이다.

      문학평론가 문흥술(서울여대 국문과교수)은 “3D 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과거 70년대 한국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에 나왔던 난장이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며 “요즘 한국소설에서 서양인은 별로 등장하지 않는 대신, 주로 아시아인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통해 황금만능주의와 정신적 가치의 상실 등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우리 내부의 타자’에 대한 관심의 증폭은 한국사에 실재했던 외국인의 삶을 재조명하는 소설도 탄생시켰다. 김경욱이 최근 펴낸 장편 ‘천년의 왕국’은 조선 인조~효종 때 귀화했던 네덜란드인 박연(朴淵·벨테브레)의 내면 풍경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했다. 특히 이 소설은 박연을 1인칭 화자로 등장시켜 서양인의 눈으로 당시 조선을 묘사하고, 이방인의 내면을 스스로 털어놓게 했다. ‘문명은 죽음에 대한 겸손을 가르친다. 개별화된 죽음 앞에서 문명 세계의 인간은 두려움과 경외를 느낀다. 그러나 야만인들에게 모든 죽음은 해 질 무렵 땅거미에 녹아드는 사물처럼 뭉뚱그려진 죽음일 뿐이다…죽음의 개별성이 거세된 주검은 신의 형상을 본뜬 피조물로서의 위엄을 잃고 피비린내 나는 승리를 증명하는 한낱 전리품으로 전락한다.’

      “우리말에 서툰 외국인의 어눌한 말투를 의도적으로 소설 문체 속에서 살리려고 했다”고 한 작가는 “박연은 오늘날로 치면 외국인 이주노동자 혹은 이중국적자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양물감 2007-08-13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가는 이야기네요. 제 직업이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거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