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正祖)가 문화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조의 제왕학’ ‘정조의 음악정책’ 같은 학술서에서부터 ‘열하광인’ ‘이산 정조대왕’ 등의 소설, ‘노빈손, 정조대왕의 암살을 막아라’ 같은 어린이책에 이르기까지, 정조 관련 서적들은 올해 들어서만 수십 권 쏟아지고 있다.

정조의 일대기를 다룬 MBC 드라마 ‘이산’은 23%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케이블 채널 CGV는 10부작 ‘정조 암살 미스터리’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1752년에 태어나 1800년에 죽었으며 24년 동안 임금 자리에 있었던 조선 22대 임금 정조는, 그러나 그에 대한 관심이 절정으로 치솟은 바로 지금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개혁 군주’정조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화성에서 꿈꾸다’의 한 장면. /조선일보 DB

◆明 “조선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賢君”

“정조는 붕당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가리는 탕평책을 추진했다”는 현행 국사 교과서의 기술대로, 대중의 마음 속에서 정조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군주다. 잃어버린 ‘자생적 근대’와 마니아 문화의 싹을 18세기에서 찾아내려는 최근의 흐름이 ‘실패한 개혁’이라는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정조 붐을 일으켰다는 시각도 있다.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의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효형출판)은 이런 긍정적인 시각을 깔고 있는 대표적인 책이다. 저자는 정조의 시대에 대해 “사람을 다치지 않는 뛰어난 문화정책으로 정치적 안정을 가져온 우리 역사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말한다.

드라마 ‘이산’의 주요 참고 도서였다는 박광용 가톨릭대 교수의 ‘영조와 정조의 나라’(푸른역사)는 정조를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제도개혁에 이르도록 사업을 추구’했으며 ‘규장각을 통해 수많은 신하들을 직접 훈도한 군주이면서 스승이고 성인(聖人)’이었다고 묘사한다. 김문식 단국대 교수의 ‘정조의 제왕학’(태학사)은 ‘학자군주’를 말하는 군사(君師)라는 동양적 이상에 있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인물이 정조라고 평가한다.

◆暗 “국운의 쇠락을 가져온 아마추어”

이런 흐름에 맞서 정조와 그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의 ‘정치가 정조’(푸른역사)가 대표적이었다. 이 책은 정조의 탁월한 정치 감각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성왕(聖王)으로 일컬으며 모든 것을 일일이 주관하려는 정치’가 오히려 비판세력의 무기력화와 그의 사후 세도정치의 출현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출간된 김탁환의 소설 ‘열하광인’(민음사)에서 그리는 정조의 ‘본색’은 개혁군주라기보다는 왕권 강화에만 집착하는 절대군주에 가깝다. 작가는 1792년 실학파의 저술을 탄압한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소재로 정조가 개혁의 후원자에서 탄압자로 변신한 사실을 지적하며 “수구와 혁신에서의 양자택일은 이미 낡았다. 이제는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를 더 깊이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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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조 텍스트
    from 2007-11-24 12:12 
    올해는 유난히 정조가 눈에 띈다. 문화아이콘이 되어버린 정조. 조선일보에 나온 기사와 나의 서재지인들의 말을 참고하여 도서목록을 만들어 봤다.
 
 
마노아 2007-11-21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조에 대한 접근 중 가장 신선하고 또 맘에 들었던 것은 드라마 '한성별곡'이었어요.
아름답고 외롭고, 그리고 안타까운 군주였지요.

stella.K 2007-11-22 10:53   좋아요 0 | URL
저도 동감이어요. 언젠가 KBS1의 <한국사전>이란 프로에서 정조를 다루더군요. 그거 보고 한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근데 한성별곡은 못 봤네요. 전 퓨전 사극은 그다지...ㅠ.ㅠ

니르바나 2007-11-22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 페이퍼들을 보니 스텔라님이 역사속으로 푹 빠지셨군요.
표정이 뚜렷한 것이 역사속 인물들이지요.

stella.K 2007-11-23 12:31   좋아요 0 | URL
ㅎㅎ 오랜만에 오셨네요. 역사 드라마 때문이죠 뭐. 요즘 <이산>보면서 제가 정조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합니다. 흐흑!
 





소설가 김훈의 베스트셀러 소설 ‘남한산성’을 둘러싼 찬반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문학계간지 겨울호들이 일제히 올해 한국 문단의 역사소설 붐을 집중조명하는 가운데 소설 ‘남한산성’이 가장 큰 논쟁거리로 대두됐다.


병자호란의 극한상황 속에서 조선의 주전파와 주화파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세밀하게 그린 ‘남한산성’은 지난 4월 중순 출간 이후 지금까지 33만여 부 팔리면서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다.

계간 ‘창작과 비평’ 겨울호 특집 좌담에 나온 문학평론가 윤지관(한국문학번역원장)과 임홍배(서울대 독문과교수)는 ‘남한산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임홍배 교수는 “김훈의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빌려오긴 했지만 역사성을 제거한 실험세트 같다는 느낌이 컸어요”라고 지적했다. “이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로 평론가 김영찬은 지난호 ‘창작과 비평’에서 IMF 사태 이후 국민들의 박탈감을 건드린 점을 얘기했는데, 독자들이 처해있는 무력감을 불가항력적 사태로 절대화해서 울분을 자극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그런 효과는 사이비 카타르시스일 뿐이고 진정한 역사소설로는 함량미달이다 싶어요.”








▲ 문학계간지 최신호에서 논쟁거리가 된 소설‘남한산성’의 작가 김훈. /조선일보 DB 사진

윤지관 원장도 “김훈의 소설은 역사를 차용했지 역사소설은 아니거든요”라며 “독자들의 민족주의적 정서에 호소하면서도 거꾸로 역사 자체에 대한 허무의식을 부추기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뭐랄까 좀 부정직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역사학자 김기봉(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곧 나올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를 통해 ‘남한산성’이 역사소설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준다고 호평했다. “역사의 소설적 구성을 지향하는 역사소설로부터 소설의 역사적 구성을 목표로 하는 ‘소설역사’로의 이행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세계문학의 경향성”이라고 한 김 교수는 ‘남한산성’을 가리켜 ‘탈근대적 소설역사’라고 규정했다. “김훈은 민족이라는 거대담론에 의거한 거시사적 역사소설 대신에 부르크하르트가 역사연구의 변하지 않는 중심이라고 말한 ‘고뇌하며 노력하는 인간’의 삶을 미시사적(微視史的)으로 조명하는 ‘소설역사’를 썼다.”

문학평론가 소영현은 계간 ‘문학과 사회’에 게재될 서평을 통해 ‘남한산성’이 오늘의 독자들에게 던지는 ‘참혹한 진실’을 긍정했다. “분명한 것은 ‘남한산성’의 미덕은 ‘역사물’의 카테고리에서든 아니든, 뜻 없이 허공에서 부딪치는 말들 속에서 곧 과거가 될 아니 역사가 될 현재의 진실성이, 그 참혹한 진실이 오롯이 새겨진다는 데 있다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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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1-20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서간 결과물들이 당대에는 늘 신랄한 비평을 받았던 경우가 많지요.
탈근대적이란 말이 상찬이 될 것도 같아요.

stella.K 2007-11-21 10:18   좋아요 0 | URL
제가 김훈을 좋아해서일까요?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좀 씁쓸하더라구요. 이미 김훈 선생도 말했거든요. 이건 역사 소설이 아니라고. 이쯤되면 독자들(평론가들을 포함한)이 역사 소설을 너무 편협하게 보는 것인지 아니면 역사 소설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봐야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몇 년 전, 가수 조영남과 선물에 대한 얘길 한 적이 있다. 내가 그의 얘길 아직도 기억하는 건, 그토록 많은 선물을 받고도 전혀 감동받지 않는다는 그의 기이한 ‘무감동’ 상태 때문이었다. 일본 사람들 특유의 선물 공세에는 그만 기가 질리고, 수없이 많은 꽃다발을 받았지만 고마움을 느낀 적이 거의 없단다.

그런 그가 서강대 영문과 교수인 장영희에게 주려고 화투장으로 밤새 꽃다발을 만들었다고 했다.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그것도 단 한 사람을 위한 예술품을 선물로 준다는 것의 근사함 때문에 나는 그에게 집요하게 물었다. “원래 선물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싫어하신다면서요?”

조영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림을 안 주는 편이란다. 노래 선물도 안 한다. 자신이 가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은행 통장을 안 보여주는 심리와 똑같은 것이라고 말하다 그가 웃었다. 장영희에게 ‘슬픈 카페의 노래’란 책을 선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불현듯 그 책에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작품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작 책 한 권에 무감동한 그가 그토록 감동받다니!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조차 그 책을 당장 사서 읽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선물 중 하나는 스무 살 겨울에 받은 ‘5000원짜리 도서상품권’ 한 장이다. 달랑 도서상품권? 참 진부하고 성의 없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스무 살, 내 친구가 건네준 야들야들한 분홍색 한지 봉투 안에는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이 더 들어있었다.

5000원에 1000원을 더하면 당시 내가 사랑하던 황지우와 이성복이 쓴 문학과 지성사의 시집 2권(당시 3000원이었다)을 거스름돈이 생기지 않게 살 수 있었다. 또 소설가가 꿈이었던 내가 교과서 삼아 읽었던 ‘문학동네’와 ‘창비’의 단편 소설집이나 보르헤스나 마르케스 같은 남미 작가들의 책들도 딱 맞게 살 수 있는 돈이었다. 5000원 상품권에 덧보태진 1000원짜리 지폐 한 장. 그건 책을 사는 내 패턴과 좋아하는 출판사, 작가 취향까지 고려한 선물이었다. 무심함을 가장한 오래된 친구의 세심함이라고 해야 하나.

가령 선물의 여왕 노영심이 말하는 ‘선물의 기술’은 이런 거다. 안경을 유달리 잘 잃어버리는 친구에게 안경걸이를 선물하거나, 대보름날 호두와 땅콩만 선물하지 말고 예쁜 망치와 땅콩을 담아둘 작은 바구니 같은 걸 같이 선물하는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에겐 자신을 볼 수 있는 날짜를 표시한 예쁜 달력을 선물한다. 기왕이면 같이 가고 싶은 장소를 달력에 써넣을 수도 있겠다. 나 같으면 달력 위에 호암미술관 희원, 삼청동 와플 가게, 신사동 가로수 길에 있는 빈티지숍, 가을 수락산, 뻘이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서산의 단골 조개구이집을 적겠다.

물건에 관한 뛰어난 감식안을 가지고 있는 사진가 윤광준은 언젠가 내게 자신이 선물 받은 파버 캐스텔(faber castell)연필에 관한 얘길 해주었다. 잘 만들어진 연필이란 이런 것이란 생각, 연필을 쥐었을 때의 그 친근한 느낌 때문에 이 연필이 좋단다. 지금은 근사한 프랑스 식당의 주인인 연극배우 강만희는 ‘차’(자동차 말이다!)를 선물 받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달의 바다’로 소설가가 된 정한아는 내게 최근 생일 선물로 받은 작은 노트에 대한 얘길 해주었다. 그 노트엔 친구가 직접 적은 싯구와 어디에선가 가져온 소설 문장들, 그리고 자신에게 보내는 그녀의 소중한 편지가 적혀 있었다고. 스물다섯, 반짝이는 어린 나이에 큰 문학상을 받은 후 찾아온 불안감에 힘들 때, 그 선물은 자신에게 특별한 위로가 됐다고 했다.

겨울이면 수족냉증을 앓는 손녀를 위해 할머니가 직접 짠 털실 양말, 시인 강정이 가난한 후배에게 꽃다발 대신 받았다는 대파로 만든 꽃다발. 특히나 술을 좋아하는 시인이 이 기발한 꽃다발을 그 날 술자리의 찌개에 넣어 부글부글 잘 끓여 먹었노라 참회하듯 고백했을 때, 나는 그야말로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선물이 사람을 이렇게 크게 웃게 한다면, 위로할 수 있다면, 시든 대파 다섯 개로 족한 것이다.

누군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준비하다가 문득, 진짜 선물이란 ‘갈비세트’나 ‘차 세트’ ‘와인 세트’ 같은 이른바 세트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세트로 묶이는 것은 실은 선물이 아니다. 누군가 적당히 묶어놓은 걸 전달하는 전달품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행간을 꼼꼼히 읽어 주는 선물, 도서상품권 한 장에도 마음을 담는 법이 있다면 선물에도 분명 좋은 기술이 있을 것이다. ‘아부의 기술’이란 책도 나올 마당에 ‘선물의 기술’ 같은 책 한 권 나오면 좋지 않을까. 나라면 당장 한 권 사서 읽어 볼 것 같다.

백영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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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물에도 기술이 있다...?
    from 2007-11-16 12:41 
    어제 신문을 보니, 작가 백영옥이 선물의 기술에 대해 쓴 이야기를 읽었다. 그녀는 아부의 기술이란 책도 있는데, 선물의 기술이란 책이 있으면 사 보겠다고 끝을 맺었다. 선물의 기술이라... 그러고 보니 난 얼마나 선물을 했고, 잘 해 왔는가? 뜨끔한 뭔가가 슬쩍 지나가는 느낌이다. 나야 책을 좋아하니, 그래도 책 선물 받는 게 가장 만만하고 좋지 않은가? 내가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도 좋으란 법은 없을 것이다. 뭔가 그럴듯한 게 있으면 좋을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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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완서 선생의 글을 접한 때가 10대 말에서 20대 초중반이었을 것이다. 그가 내놓은 책마다 족족이 다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작가의 작품을 꽤 꾸준히 읽어냈던 몇 안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박완서 선생이다.

그때 그는 40대에서 50대의 나이었을 것이고, 그의 소설에 나온 주인공들도 꼭 선생만한 나이의 여성들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나는 그의 소설을, 산문집을 잊고 살았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한 작가에 대해서 어느만치 알겠다 싶으면 다른 작가 또는 다른 책으로 관심을 돌리는 나의 콩 뛰고 팥 뛰는 종잡을 수 없는 마음 때문이었을 게다. 그리고 이렇게 한 20년쯤의 세월이 흘러 그의 소설을 다시 접하고 보니, 그는 여전히 당신만한 나이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사람들에 대해, 삶에 얘기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중년의 여성이었겠지만, 지금은 노년이다. 그렇게 꼭 자기만한 나이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젊을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노년이 될 때까지 글을 쓰는 작가들은 꽤 있다. 그런 작가들은 더 노련해지고, 더 풍성한 글을 쓴다. 하지만 주인공을 딱 자기만하게 하고, 그 나이의 주인공의 싯점에서 쓰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내가 보기엔 그리 많이 않아 보인다. 이 책의 해설을 맡은 김병익 씨도 우리나라엔 아동문학도 있고, 청소년문학도 있지만, 유독 노년문학의 부재를 지적했다. 그것의 이유로는, 전쟁과 가난으로 작가들이 장수하지 못했거나 조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285p) 그렇다면 노년문학은 어떤 것일까? 수록작 <대범한 밥상>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너 딴 반찬도 먹지 그 군둥내 나는 짠지 국물은 다 마셔버리냐? 나중에 물키려고."

"글쎄 나도 모르게 그 군둥내가 비위가 땡기네. 이거 어떻게 만든거니?"

"만들고 말고가 어딨어? 무를 통째로 왕소금에 푹 절인거지."

"그건 아는데 짠맛 말고 군둥내가 꼭 요만큼만 나게 하는 레시피 말야."

"레시피 좋아하네. 그거 작년 것도 아니고 아마 재작년 걸 거야. 김장때가 쉬 돌아올 것 같아서 뒷마당에 묻어둔 항아리를 살피다가 밑바닥에 골마지를 푹 뒤집어쓰고 있는 무가 서너 개 남았기에 버리기도 뭐해서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손님 맞을 준비한답시고 나박나박 예쁘게 썰다가 맛을 보니까 어찌나 소탠지 몇 번 물에 울궈내고 나서 다시 물 부어놨던 거야. 가미한 건 초 몇 방울하고 실파 썬 것하고 고춧가루 솔솔 뿌린 것밖에 없어." (220-221p)

참 평범하지만 노년문학 아니 박완서 문학을 이토록 잘 표현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짠지엔 양념과 재료의 맛을 좌우하는 황금 비율의 레시피가 없다. 오로지 왕소금과 원래 무가 가지고 있는 맛의 성질이 오랜 시간을 두고 하얀 골마지를 뒤집어 써야 나온다. 하지만 쉽게 먹을 수도 없다. 쓰도록 짜서 몇 번을 물에 울궈내야 겨우 먹을 수가 있다. 나도 몇번 먹어 본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큼 그렇게 맛 있는 음식이 아니다. 그런데 이 노년의 여인은 그 군둥내 나는 국물을 맛있다고 들이킨다. 과연 그것은 그 나이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이 주는 맛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표제작 <친절한 복희씨>를 비롯한 9편 모두는 겉으로 드러난 생의 이면을 저자 특유의 문체로 재치있고 웅숭깊게 드러내고 있다. 특별한 멋도, 기교도 없다. 그냥 예전에 나의 외할머니가 어디선가 듣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옮겨 들려주는데 그것이 마냥 재미있어 또 듣고 싶어했던 것처럼, 선생의 문학은 나에겐 꼭 그런 느낌이다. 그야말로 한 작품, 한 작품 읽을 때마다 가슴속 깊이 뭔가가 켜켜히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이 책은 내가 한동안 어떠한 일로 기분이 꿀꿀해 했을 때, 위로 받으라고 어느 착한 알라디너 분이 선물해 주신 것이다. 그 분의 마음이 하도 따뜻하게 느껴져 나는 잠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리고 그분 때문에 다시 펼쳐 든 박완서 선생의 이 책은 참으로 나의 마음을 보듬어 안아 주기에 충분했다.

어떠한 꾸밈도  에누리도 없는 선생 특유의 문체는, 마치 어떠한 기교도 없이 애조띤 정서만을 목소리에 담아 노래 부르기로 유명한 가수 이미자 씨의 음성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살잔 소리, 낭탁, 우세스럽다 같은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선생만의 독특한 어휘는 김병익의 말대로, 눈치로 받아 들이게끔 넉넉한 마음을 만들어 준다. 게다가 문장부호 또는 줄바꿔 쓰기 등도 여간해서 잘 쓰지 않는 선생의 문장에선, 오히려 이것을 너무 심하다 싶으리만큼 쓰고 있는 겉멋든 젊은 세대의 글쓰기 방식에 잔잔한 하고도 도도한 도전을 주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이제 나는 선생의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던 젊은 날을 관통하여, 선생이 처음 글을 쓰고 문필을 날렸던 그 나이 언저리에 도달해 있다. 나이 먹어서 좋은 건 그다지 없어 보이는데,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젊을 때 보다 덜 방황하고 덜 실수한다는 거다. 젊을 땐 그게 그렇게 하고 싶고, 좋아 보이는 것들이 때를 지나놓고 보면 그것도 그다지 좋은 것마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 시기가 바로 지금의 내 나이인 것 같다. 그래서 웬만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모르겠는게 인생이고, 꿀꿀한 게 인생이다.

박완서 선생은 서문에서,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쓰셨다. 나는 언제쯤이면 이 꿀꿀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살게 될까? 선생의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나이쯤이 되면 진짜 사람들을 위로하며 살게 될까? 그렇다면 시시때때로 섣불리 이게 다일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고, 조금 더 살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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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7-11-13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그렇군요. ^^
지난번 산문집에서 좀 노인스런 고집이 느껴져서 당장은 조금 망설이고 있는데,
결국엔 읽을 것 같아요. ^^;;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

stella.K 2007-11-13 18:09   좋아요 0 | URL
그럼 추천도 좀 해 주시지 안쿠...>.<;;

프레이야 2007-11-1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이리 후하게도 다섯개를 주신 거 보면 분명 읽어야되는 책
맞죠? ㅎㅎ

stella.K 2007-11-14 10:38   좋아요 0 | URL
그럼요. 박완서 선생 글을 읽으면 정말 쓰고 싶어져요. 근데 나름 심혈을 기울여 리뷰 썼는데, 댓글도 추천도 그리 많지 않군요. 저는 왜 이럴까요? 흐흑!

프레이야 2007-11-15 08:5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ㅎㅎ 토닥토닥~ 심혈을 기울여 쓰는데 말이에요^^
클릭 한 번 더 하면 되는뎅..
님의 명언 "추천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stella.K 2007-11-15 10:58   좋아요 0 | URL
ㅎㅎ 님도 좋은 하루!^^
 


복서·시인 출신의 출판사 대표 추진력 탁월

파격적인 편집위원과 과감한 신인작가 발굴

전투적인 홍보와 마케팅으로 독자층 만들어

권태현·출판평론가



어느 자리에서 대책 없이 한국소설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 느닷없는 발언 하나가 분위기를 바꿔놓은 적이 있다.

“만일 ‘문학동네’가 없었다면 한국소설의 위기는 훨씬 더 빨리 찾아왔을 거야.”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저마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서 다투어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자연스러운 질문 하나가 공동의 화제가 되었다. ‘문학동네가 왜 성공할 수 있었을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한국소설을 열심히 찾아 읽던 독자들에게는 이 질문에 무관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의 독자들은 한국소설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과지성사(문지)와 창작과비평(창비)의 책을 주로 읽었다. 뒤늦게 민음사가 그 대열에 뛰어들었지만 두 산맥의 아성은 굳건했다. 문지와 창비에서 발간되는 책들을 빼놓지 않고 구입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열성 독자들도 많았다. 독자들만 두 출판사에 경도된 것이 아니었다.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들도 그 두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어서 은근히 청탁을 기다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문지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이 오자 다른 출판사와 체결했던 계약을 파기하기도 했다.





문지와 창비가 주축이 된 그 균형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갑자기 새로운 출판사가 하나 생기더니 한국소설판의 지도를 바꿔 버렸다. 그 출판사가 바로 ‘문학동네’였다. 문학동네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그렇게 큰 변화가 올 줄은 몰랐다. 기껏 잘해 봐야 문지와 창비에서 내지 못한 책들을 받아서 내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문학동네는 그 예상을 깨고 새로운 기대를 넘어섰다.

그 당시의 분위기를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문학동네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혹시 그 출판사 대표가 복서 출신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 말은 웃어넘길 농담이었지만 그렇게 말한 사람은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는 눈치 보지 않고 그렇게 탱크처럼 밀어붙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문학동네의 강태형 대표는 복서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 기질이 출판 일을 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출신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 많고, 그 열정의 발산이 출판을 통해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석에서 한 말을 빌리면, 남들이 말하는 추진력이 생긴 것은, 그가 자유실천문인협회에서 일할 때 김정환 시인에게 배운 것이라고 한다.

원인이 어떤 것이든, 강태형 대표에게는 추진력이 있다. 그렇지 않고는 기라성 같은 양대산맥이 버티고 있고, 그 주변에 문학작품을 펴내는 크고 작은 출판사들이 포진해 있는데, 그 사이에 뛰어들어 도전장을 내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추진력만으로는 신생 출판사를 그렇게 빠른 기간 안에 그렇게 크게 성공시킬 수는 없다. 출판사 영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학동네가 출범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굴지의 문학전문 출판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전체 ‘매출’ 면에서 경쟁 출판사보다 상당히 앞서 있다는 것이다.

문학동네가 한국소설 출판의 지형을 바꾼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혁신적인 편집위원의 구성이고 다른 하나는 과감한 신인발굴이다. 문학동네에서 구성한 편집위원들은 다른 출판사 편집위원들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특정 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모이지도 않았고, 나이도 젊었고, 무엇보다도 작품을 보는 시각이 무척 다양했다. 그래서 그들이 찾아내는 필자들은 이미 중요한 문학적 위치를 차지한 작가들도 있었지만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낯선 작가들도 있었다. 무겁고 진중한 내용을 다루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발랄하고 경쾌한 상상력을 뽐내는 작가들도 있었다. 특히 문학동네 계간지를 통해서 배출되는 신인들의 경우에는 파격의 정도가 아주 심했다. 실제로 문학동네를 통해서 등단한 작가들 중에는 문학동네가 없었으면 영영 문단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소설가들도 있다. 말하자면 문학동네는 이 두 가지 카드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고 나간 것이다.

그 무렵 문학동네가 다양한 작품세계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작가들의 가능성에 투자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많은 작가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기존의 다른 출판사들이 폐쇄적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작가들 눈에 상대적으로 그렇게 비쳤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작품에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있지만 기존의 큰 출판사로부터 출간을 외면당한 작가들은 더 적극적이었다. 국내 굴지의 문학상을 거의 빼놓지 않고 받은 어떤 작가는 소설이 완성되면 제일 먼저 작품을 들고 찾아올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마치 거대한 물줄기의 흐름이 바뀐 것처럼 문학동네를 중심으로 작가들이 모이고 또 모였다.

새로운 작가들이 모이고 다양한 작품들이 출간되자 폭넓은 독자군이 형성됐다.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문학동네의 성공을 부채질한 것은 전투적인 홍보와 마케팅이었다. 예전에 문학작품을 펴내는 출판사들 중에는 이른바 양반 출판을 하는 곳이 있었다. “문학작품을 어떻게 광고까지 해서 파느냐”는 편집자도 있었고, 자기네 출판사 책은 독자들이 다 알아서 찾아 읽는다고 믿는 관리자도 있었다.

하지만 문학동네는 한 권이라도 더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짜고 발로 뛰었다. 그러다 보니 광고에서든 이벤트에서든 두드러지게 표가 났다. 일선에서 영업을 하는 마케터들이 다른 출판사의 몇 배가 되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이 기울이는 노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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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1-1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이름으로 신뢰가 되는 곳들이 있죠. 기쁜 일이에요. 문학동네는 정군님 아니어도 참 기분 좋은 곳이에요^^

stella.K 2007-11-11 18:4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정군님이 아니어도...! 가끔은 이벤트를 너무 많이 벌이는 것 같아 괜찮을까 싶기도 했어요. 흐흐

가시장미 2007-11-15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문학동네 책...서평단으로 뽑혀서 서평써야 하는데. 아직도 못 쓰고있어요. 너무 찔리는군요. 아흐... 서평 하나 쓰는게.. 요즘은 왜이리 힘든지. ㅠ_ㅠ

stella.K 2007-11-16 10:38   좋아요 0 | URL
내가 써 줄까?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