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요리를 주제로한 작품들은 참으로 흥미롭다. 물론 몇 작품 보지는 못했지만 <바베트의 만찬>이나 <초콜릿>같은 작품은 인간의 식욕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통해 음식이 가진 은혜를 베풀며, 나아가 종교적인 이유에서 금욕하는 인간들을 점잖게 또는 경쾌하게 조롱한다. 물론 이 두 작품들은 금욕 자체를 꼬집는 것이 아니다. 금욕 그 뒤에 감춰진 인간의 위선과 권위 의식을 까발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음식 하나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보여줬던 드라마 <대장금>같은 경우는 이영애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다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드라마 자체만으로도 숨 죽이고 볼만한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음식을 소재로한 영화나 문학작품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음식을 소재로 한 독특한 작품이 나왔다. 바로 조경란의 <혀>이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은 요리를 통해 인간의 위선이나 권력을 까발렸다면, 조경란은 독특하게 식욕과 성욕 나아가서는 애욕에 관해 지적이고도 음울하지만 훌륭한 성찬을 차려주었다. 

조경란의 작품을 처음 대해 본 나로선 이 작품이 적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작품은 결코 빨리 읽히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 이미지도 상당히 강렬하다. 독특하게도 이 책의 부록으로 그녀가 이 작품을 쓰면서 참고했을 참고 문헌이 나오는데, 작품속에서 그것들을 정말로 적절히 잘 녹여내, 읽으면서 지적인 만족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사실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인간이 갖는 식욕과 성욕이 서로 얼마만한 연관이 있을까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어느 한 모임에서 우연찮게 식욕과 성욕에 관한 열띤 토론(?)을 하게 되었다. 즉 인간의 욕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이라 할 수 있는 식욕과 성욕 중 어느 것이 더 우위이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래 생각할 것 없이 당연히 식욕일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은 하루 이틀 섹스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배가 고프면 못 사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게다가 성욕은 일부러 금욕하고도 나름 만족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신부나 수녀들 또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어도 다른 등등의 이유에서. 하지만 금방 그 자리에 있었던 이를 뒤엎는 반론이 나왔다.

영장류의 동물 실험이 있었단다. 뇌에 전류를 흐르게 하고 한쪽에선 버튼을 누르면 여러 가지 성적 상상이 가능하게 했고, 한쪽엔 실제로 풍성한 먹을거리를 쌓아 놨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실험에서 그 동물(침팬치나 오랑우탄쯤 됐겠지?)은 코 앞의 먹을 것을 놔두고 성적 상상을 할 수 있는 그 버튼만을 굶어 죽을 때까지 하고 있더란다(물론 그러다 진짜 죽었는지 아사 직전에 그 실험을 멈췄는지 그후의 일은 알길이 없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일말의 의심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생명체가 갖는 성욕이란 것도 무시 못하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흥미로운 건, 수컷들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암컷들이 그들의 성욕을 잘 달래주면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기야 인간의 모든 역사 배후에 이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말은 결코 근거없는 말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갖는 욕구는 그 하나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식욕. 즉 인간의 절대 미각를 좌우하게 되는 '혀'는 정말 잘 다스려야 하는 인체기관임에 틀림없다. 보라.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그들은 혀로 신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서 맛을 보았으며 수 많은 애증 낳게 했다. 사실 인간의 역사는 애증의 역사라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는가?  

이 작품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시종 낮고 음울하다는 것일게다. 적어도 요리에 관한 작품이라면 좀 밝고 경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 봤더니 내가 본 요리를 소재로한 일련의 작품들 역시 그리 밝지마는 않았던 것 같다. 그중 이 작품이 조금 더 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왜 이렇게 쓸 수 밖에 없었는지는 마지막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마지막 반전이 참 놀랍고 그로테스크 하다. 갑자기 예전에 보았던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생각이 났다.

아직 읽어 보지 않았다면 한번쯤 읽어 보라고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그럼 내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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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해서

사실 난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반까지만 해도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었다. 그때까지 내가 기억하는 드라마라곤 최수종과 이미연인지 최수지가 앳된 모습으로 나왔던 <사랑이 꽃 피는 나무>나 요즘엔 TV에서 영영 사라진건지 정준이 중학교 때 토토리 머리하고 나왔던 <나>란 청소년 드라마 정도라고나 할까? 그때만 하더라도 드라마란 하릴없는 한량들이나 또는 가정주부들이 보는 전유물쯤으로 여겼더랬다.

그런 내가 20대 말을 맞아 급격히 드라마를 보는 횟수가 늘었다. 그것은 모처에서 교육용(?)연극대본을 썼어야 했는데 마땅한 텍스트가 없으니 드라마만 줄창 보는 수 밖에. (사실 드라마 보단 영화를 더 많이 본 것 같긴하다.) 그때부터 나름 우리나라 드라마도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로써 드라마를 보는 것이니 더 이상 드라마를 하릴없는 한량들이나 가정주부만 보는 거라고 단정 짓기도 어려워졌다.

최근에 내가 보는 드라마와 욕하면서 봤던 드라마에 관하여

물론 그렇다고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보는 건 아니다. 나름 꽤 볼만한 몇 개를 찜해 놓고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 내가 드라마를 보는 패턴이다. 요즘 내가 보는 드라마라면 <이산>,<왕과나(이건 재방송으로 주로 본다)>, <로비스트>, <옥션 하우스> 정도다. <인순이는 예쁘다>를 김민준 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뭐 때문인지 점점 끌리지 않아 안 본다.

최근 욕하면서 봤던 드러마가 있다. 김수현의 <내 남자의 여자>. 이 여자가 쓴 드라마는 이제 보지 말아야지 하고 몇 년째 보지 않고 있다가 완전히 낚였다. 드라마가 등장인물 간의 감정의 극대화와 언어의 유희라면 김수현의 드라마는 그 도를 지나쳐 거부감이 느껴졌던 것. 그런데 내가 <내 남자의 여자>를 욕을 하면서 보다니. 하긴 김수현씨도 욕하면서 김희애분을 썼다고 하지 않는가?  과연 언어의 마술사답다. 내가 그 드라마에 낚인 건 순전히 그 대사 때문이었다. 눈을 감고 들어도 대사가 연극적이다. 기존의 TV 드라마는 물 흐르듯 일상적인데 반해 김수현의 대사는 입에서 톡톡  터지는 것이 가히 무슨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아는 후배가 그랬다. "김수현표 드라마는 빤한대도 보게 만들어요."  그때 난 묘한 열패감 같은 게 느껴졌다. 아직도 김수현에게 '드라마의 여왕', '언어의 마술사'란 수식어를 줘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김수현 신화가 깨지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TV드라마의 문학화, 문학의 드라마화에 관하여

KBS의 <TV 문학관>이라는 드라마가 오래 전서부터 있어 왔었다. 요즘도 가끔 하는 것 같은데 최근에 심윤경의<달의 제단>과  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란 드라마를 본 기억이 난다. 둘 다 문학성도 뛰어나고 드라마의 완성도도 뛰어났던 것 같다. 이렇게 문학작품을 형상화한 드라마는 TV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에 반해 문학작품처럼 만드는 드라마도 있다. 나는 주로 그런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중 결코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작가로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나는 참 좋아한다. 그녀의 응축된 대사들을 듣고 있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뿐이겠는가? 그녀의 최근작중 하나인 <굿바이 솔로>에서 나문희를 말 못하는 노인으로 만들어 놓으면서 많은 말을 하게 만들었다. 굉장한 내공인 것 같다.

사극에 관하여

우리나라 사극은 참 재밌다. 하지만 매번 내가 사극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옛날에 과연 궁중생활이란 정말로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정말 상황전개는 고사하고, 과연 저렇게 언제까지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저렇게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있다면 보기는 좋다만 화장실에선 어떻게 할까? 세손의 어머니가 흉한 꿈을 꾸다가 상궁을 찾으니 상궁이 곧장 뛰어 들어 온다.(이산에서) 그야말로 야심한 시각에. 그렇다면 상궁은 잠도 안 잔단 말인가? 더 의문스러운 건, 상궁이나 나인이나 늘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아래로 떨군채 걸어 다닌다. 저러다가 허리가 굽을테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동방예의지국이겠구나 싶은 건 그들이 쓰는 언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고어체의 언어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따라 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얼마나 점잖고 울림이 있는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대도 격식이 있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좀 배웠으면 한다. 싸우면 너무 비열하고 야비하게 싸우지 않는가? 정숙해야할 국회에서 멱살잡이 하는 꼬락서니를 한 두번 보는가?

드라마의 문제점에관하여

한때 드라마 편성을 가지고 시비가 붙었던 책이 있었다. 골든 타임엔 무조건 드라마다. 우리나라는 드라마 제작편수가 너무 많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앗다. 요즘 드라마 봐라. 해외에 내놔도 손색이 없고 예전엔 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드라마를 팔았다면 이젠 아예 팔릴 드라마를 만들지 않은가? <태왕사신기>가 일본에 얼마에 팔렸는지 아는가?

그런데 문제점이 없는 게 아니다. 그중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 있다. 몇 년 전부터 드라마에 흡연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 그것을 부추기고 조장한다고 하여 아예 삭제했다. 그러다 담배만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다 마는 장면 정도로 수위를 조절했다. 근데 웃기는 건 그렇게 흡연 장면을 없애고나니 술 퍼 마시는 장면으로 대치가 되었다. 배우들이 흥청망청 대는 꼬락서니하군. 꼭 없어도 되는 장면에서 조차 꼭 그런 장면을 넣는다.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니 술이다.

그래도 여우술을 먹는 사람이 있다. 지난주 <로비스트>에서 장진영이 황태자랑 술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어찌나 예쁘게 마시던지, 술이라곤 백세주 한 잔 밖에 못 마시는 나도 갑자기 저 여자처럼 마셔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드라마의 희망에 관하여

그래도 드라마는 희망이다. 그래서 예쁘게 멋있게 못 만들어 안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일회성이긴 하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드라마는 비록 그 드라마가 끝나면 재투성이의 비루한 현실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어도 좋다. 그나마 드라마에서 위로 받지 못하면 어디서 위로 받겠는가?

근데 이런 드라마는 만들지 말아줬으면 한다. 부자집 도령이 가난한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는 거. 그것을 해피엔딩으로 가져가는 거. 너무 웃긴다. 물론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끼리만 동류의식을 갖는구나 하는 것도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전자가 후자 보다 더 식상하다. 드라마가 아무리 환상이어도 진실은 담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사랑 때문에 질질거리는 드라마 또는 치정을 다룬 드라마도 좀 만들지 말기를! 그런 의미에서 <옥션 하우스>나 <하얀거탑>은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올해 나의 완소 드라마


이 드라마가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게 좀 거시기 하긴 하지만 너무 잘 만들었다. 그리고 나를 울게 만들었다.


또한 <쩐의 전쟁>이다.

누구는 그랬다고 한다. 영화는 감독의 것이라면 드라마는 배우의 것이라고.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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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7-12-1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때문에 질질거리는 드라마... 난 좋던데 으흐흐 그런 드라마가 뭐가 있었떠라?
제목은 잘 기억이 안나네요. 그런 드라마에서 여성은 사랑없이는 못 살것 같은..
그런 존재로 표현되기도 하죠.

그거이~~ 마음이 안 드시는건가요? ^^

stella.K 2007-12-14 10:23   좋아요 0 | URL
ㅎㅎ 글쎄, 그것도 어떻게 표현하고 연출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긴해. 근데 아침드라마 보면 좀 그렇지 않나? 근데 저기엔 안 썼지만, 왜 인간사슬 만드는 거 있잖아. 알고 봤더니 자기집 사돈의 팔촌이고, 겹사돈이고, 알고 봤더니 자기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애인이 연적이고 뭐 그런 게 더 짜증 나는 것 같다.ㅜ.ㅜ

마노아 2007-12-16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의 논문을 보는 것 같았어요. TV드라마의 문학화, 노희경... 아, 아찔해요^^

stella.K 2007-12-17 10:36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너무 잘난 척 했죠? 어제 <스페이스 공감> 이승환 공연 보셨겠어요. 저도 봤어요. 마노아님 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이승환은 꽤 좋아한답니다. 개구장이 같으면서도 카리스마 넘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참 좋아하는 아티스트 같더라구요. 마노아님이 좋아할만 하죠? 저도 보면서 마노아님 생각 많이 했어요. 흐흐

털짱 2007-12-20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리뷰를 작성하시는 동지를 만나니, 새삼 반갑습니다.^-^
 

드라마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해서

사실 난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반까지만 해도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었다. 그때까지 내가 기억하는 드라마라곤 최수종과 이미연인지 최수지가 앳된 모습으로 나왔던 <사랑이 꽃 피는 나무>나 요즘엔 TV에서 영영 사라진건지 정준이 중학교 때 토토리 머리하고 나왔던 <나>란 청소년 드라마 정도라고나 할까? 그때만 하더라도 드라마란 하릴없는 한량들이나 또는 가정주부들이 보는 전유물쯤으로 여겼더랬다.

그런 내가 20대 말을 맞아 급격히 드라마를 보는 횟수가 늘었다. 그것은 모처에서 교육용(?)연극대본을 썼어야 했는데 마땅한 텍스트가 없으니 드라마만 줄창 보는 수 밖에. (사실 드라마 보단 영화를 더 많이 본 것 같긴하다.) 그때부터 나름 우리나라 드라마도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로써 드라마를 보는 것이니 더 이상 드라마를 하릴없는 한량들이나 가정주부만 보는 거라고 단정 짓기도 어려워졌다.

최근에 내가 보는 드라마와 욕하면서 봤던 드라마에 관하여

물론 그렇다고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보는 건 아니다. 나름 꽤 볼만한 몇 개를 찜해 놓고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 내가 드라마를 보는 패턴이다. 요즘 내가 보는 드라마라면 <이산>,<왕과나(이건 재방송으로 주로 본다)>, <로비스트>, <옥션 하우스> 정도다. <인순이는 예쁘다>를 김민준 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뭐 때문인지 점점 끌리지 않아 안 본다.

최근 욕하면서 봤던 드러마가 있다. 김수현의 <내 남자의 여자>. 이 여자가 쓴 드라마는 이제 보지 말아야지 하고 몇 년째 보지 않고 있다가 완전히 낚였다. 드라마가 등장인물 간의 감정의 극대화와 언어의 유희라면 김수현의 드라마는 그 도를 지나쳐 거부감이 느껴졌던 것. 그런데 내가 <내 남자의 여자>를 욕을 하면서 보다니. 하긴 김수현씨도 욕하면서 김희애분을 썼다고 하지 않는가?  과연 언어의 마술사답다. 내가 그 드라마에 낚인 건 순전히 그 대사 때문이었다. 눈을 감고 들어도 대사가 연극적이다. 기존의 TV 드라마는 물 흐르듯 일상적인데 반해 김수현의 대사는 입에서 톡톡  터지는 것이 가히 무슨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아는 후배가 그랬다. "김수현표 드라마는 빤한대도 보게 만들어요."  그때 난 묘한 열패감 같은 게 느껴졌다. 아직도 김수현에게 '드라마의 여왕', '언어의 마술사'란 수식어를 줘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김수현 신화가 깨지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TV드라마의 문학화, 문학의 드라마화에 관하여

KBS의 <TV 문학관>이라는 드라마가 오래 전서부터 있어 왔었다. 요즘도 가끔 하는 것 같은데 최근에 심윤경의<달의 제단>과  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란 드라마를 본 기억이 난다. 둘 다 문학성도 뛰어나고 드라마의 완성도도 뛰어났던 것 같다. 이렇게 문학작품을 형상화한 드라마는 TV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에 반해 문학작품처럼 만드는 드라마도 있다. 나는 주로 그런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중 결코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작가로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나는 참 좋아한다. 그녀의 응축된 대사들을 듣고 있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뿐이겠는가? 그녀의 최근작중 하나인 <굿바이 솔로>에서 나문희를 말 못하는 노인으로 만들어 놓으면서 많은 말을 하게 만들었다. 굉장한 내공인 것 같다.

사극에 관하여

우리나라 사극은 참 재밌다. 하지만 매번 내가 사극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옛날에 과연 궁중생활이란 정말로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정말 상황전개는 고사하고, 과연 저렇게 언제까지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저렇게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있다면 보기는 좋다만 화장실에선 어떻게 할까? 세손의 어머니가 흉한 꿈을 꾸다가 상궁을 찾으니 상궁이 곧장 뛰어 들어 온다.(이산에서) 그야말로 야심한 시각에. 그렇다면 상궁은 잠도 안 잔단 말인가? 더 의문스러운 건, 상궁이나 나인이나 늘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아래로 떨군채 걸어 다닌다. 저러다가 허리가 굽을테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동방예의지국이겠구나 싶은 건 그들이 쓰는 언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고어체의 언어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따라 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얼마나 점잖고 울림이 있는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대도 격식이 있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좀 배웠으면 한다. 싸우면 너무 비열하고 야비하게 싸우지 않는가? 정숙해야할 국회에서 멱살잡이 하는 꼬락서니를 한 두번 보는가?

드라마의 문제점에관하여

한때 드라마 편성을 가지고 시비가 붙었던 책이 있었다. 골든 타임엔 무조건 드라마다. 우리나라는 드라마 제작편수가 너무 많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앗다. 요즘 드라마 봐라. 해외에 내놔도 손색이 없고 예전엔 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드라마를 팔았다면 이젠 아예 팔릴 드라마를 만들지 않은가? <태왕사신기>가 일본에 얼마에 팔렸는지 아는가?

그런데 문제점이 없는 게 아니다. 그중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 있다. 몇 년 전부터 드라마에 흡연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 그것을 부추기고 조장한다고 하여 아예 삭제했다. 그러다 담배만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다 마는 장면 정도로 수위를 조절했다. 근데 웃기는 건 그렇게 흡연 장면을 없애고나니 술 퍼 마시는 장면으로 대치가 되었다. 배우들이 흥청망청 대는 꼬락서니하군. 꼭 없어도 되는 장면에서 조차 꼭 그런 장면을 넣는다.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니 술이다.

그래도 여우술을 먹는 사람이 있다. 지난주 <로비스트>에서 장진영이 황태자랑 술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어찌나 예쁘게 마시던지, 술이라곤 백세주 한 잔 밖에 못 마시는 나도 갑자기 저 여자처럼 마셔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드라마의 희망에 관하여

그래도 드라마는 희망이다. 그래서 예쁘게 멋있게 못 만들어 안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일회성이긴 하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드라마는 비록 그 드라마가 끝나면 재투성이의 비루한 현실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어도 좋다. 그나마 드라마에서 위로 받지 못하면 어디서 위로 받겠는가?

근데 이런 드라마는 만들지 말아줬으면 한다. 부자집 도령이 가난한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는 거. 그것을 해피엔딩으로 가져가는 거. 너무 웃긴다. 물론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끼리만 동류의식을 갖는구나 하는 것도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전자가 후자 보다 더 식상하다. 드라마가 아무리 환상이어도 진실은 담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사랑 때문에 질질거리는 드라마 또는 치정을 다룬 드라마도 좀 만들지 말기를! 그런 의미에서 <옥션 하우스>나 <하얀거탑>은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올해 나의 완소 드라마


이 드라마가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게 좀 거시기 하긴 하지만 너무 잘 만들었다. 그리고 나를 울게 만들었다.


또한 <쩐의 전쟁>이다.

누구는 그랬다고 한다. 영화는 감독의 것이라면 드라마는 배우의 것이라고.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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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태그 제시어가 '올해의 책'이라고 하니 다소 애매한 느낌이 든다. 그냥 '올해에 출판됐으면서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된 책이 뭐라고 생각 하느냐?'를 쓰는 것인지 아니면 각 개인이 올해읽은 책중 가장 좋은 책을 쓰라는 것인지 모호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냥 내가 올해 읽은 책 중에 좋은 것으로 한정해서 정리를 해 볼까 한다. 누구처럼 책을 아주 많이 빨리 읽는 편은 아니니 얼마 되진 않을 것 같다.

한때는 알라딘 회원이었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탈퇴하고, 지금은 문학동네 영업 일을 하신다는 정민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기행문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나로선 저자가 직접 친필로 읽어 달라고 수줍게 쓴 글씨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보내줬는데 안 읽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물론 아는 사람이 이런 책을 냈다니 좀 특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차치하고라도 이 책은 무난하게 읽힐 여행서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난 이 책 때문에 산타아고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가 볼 엄두가 나지않는다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그래서 내맘대로 좋은 책이 되어버렸는지도...

지금은 하루키의 책은 단 한권도 읽지 않게되었지만, 나도 한때는 하루키가 좋아서 나름 꽤 읽었다. 난 특히 그의 단편을 좋아했었다. 일본 작가지만 일본 작가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 좋아했더랬다. 개인적으로 일본 문학을 그닥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모처럼 하루키의 향수를 느껴보고 싶었고, 그 느낌은 적중했다. 좋았다.

사실 사람은 '비참한 현실'이란 말에 외면하길 좋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외면하는 이유는 뭘까? 제일 첫번째 이유는 혐오감이고, 그 다음으론 이렇게 만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일 것이며, 나는 그 불특정 다수에 포함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것과, 이렇게 한들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하는 자기 합리화 내지는 현실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심리 등이 복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한 결코 옳은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을 그런 것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저자가 굉장히 쉽게 썼다는 점이 오히려 패부를 찌른다고나 할까?

이 책은 개인적으로, 알라딘에서 나에게 두번째로 '이주의 마이리뷰'의 영예를 안겨줬던 책이다. 김지운 감독의 진솔하고도 걸출한 입담이 흥미를 더한다. 뒤에 부록으로 이 시대 최고의 인터뷰 전문 작가인 지승호님과의 인터뷰가 책의 가치를 더한다. 지승호님 아니면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을 책을 나는 그분의 친필 사인과 함께 선물로 받아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상금으로 지승호님께 개평을 떼어 드렸다. 좋아 하셨다.

   

이 책에 대한 약간의 논란이 없지 않은 것 같고  저자의 문체를 꽤나 힘들어 하지만 사람도 있긴 하지만, 나에겐 존경하고 싶은 작가 중의 한 분이다. 물론 그의 문학 사상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문학하는 태도는 본 받고 싶다. 한없이 진지하고, 가라 앉아 있으며, 뼈를 가는 듯한 느낌으로 글을 쓰는 작가다. 

 

오래 전에 사 놓고 못 읽고 있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루쉰! 그에 대해 말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냥 조용히 책을 펼쳐 읽으면 그의 뜨거움이 전이가 되어 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처음 이 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간증을 빌미삼아 자기자랑하는 그렇고 그런 간증서는 아닐까? 하는. 하지만 올해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건 큰 기쁨이었고 자유함이었다. 그런데 나는 정작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이 갖는 욕망 때문에 스스로를 옭죄고 자유하지 못했는가? 나 자신은 얼마나 모순된 존재인가를 가르쳐 준 소중한 책이다. 그런데<더 내려놓음>이란 책이 최근에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얼른 사 봐야지 하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봐서 난 아직도 내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길 주저하는가 보다.

살면 살수록 사는 것이 힘들고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또 앞으로 살면 살수록 더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그럴 때마나 이 책과 같이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책을 가까이 하라. 원래 삶은 좌절의 편에 서기 보다 희망의 편에 서길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오래 전에 이 책을 선물 받고 게을러서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 관계로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속죄하는 맘으로 읽었다고 하면 너무 과장 됐으려나? 그런데 이 책 정말 재밌고 따뜻하다. 얼마나 좋았으면 이 책 읽고, 나도 내 어렸을 때 살았던 집과 동네에 대해서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쓰게되면 전혀 다른 방향에서 쓰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기록이란 중요하다. 요즘 같이 건물 부수기도 새로 세우기도 쉬울까? 나의 생가와 어렸을 때 집이 지금까지도 보존됐었을리 만무하다. 그러니 기억을 더듬어 기록이라도 해 두는 수 밖에. 언젠간 쓰고 말거야!!

소설을 좋아하고, 소설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정말 재밌고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다. 특히 묘사나 문체가 가히 일품이어서 애정이 간다. 나중에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신윤복을 그렇게 그려놓다니! 같은 여자지만 그의 카리스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저자의 다른 책은 어떨까?

 

어느 친절한 나의 서재 지인이 이 책을 보내주시는 바람에 정말 아주 오랜만에 박완서 선생의 책을 다시 읽는 호사를 누렸다. 그의 입담은 중년의 때나 노년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 노련해지고 깊어졌다고나 할까? 읽는 내내 즐거웠고 따뜻했다.

 

 

그밖에 레몽 장의 <카페 여주인>을 추가로 언급한다. 이 책은 현재 알라딘에서는 검색은 되지만 이미지는 없다. 이 책은 이국적이고, 에로틱하며, 짖궂고, 프랑스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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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2-1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3권만 있어요. 로쟈님의 리스트에도 3권이었거든요, 스텔라님^^

stella.K 2007-12-10 16:47   좋아요 0 | URL
그래도 혜경님이 책은 저 보다 많이 읽으시잖아요. 혜경님도 알려 주셔요. 올해에 좋은 책이 뭔지.^^

진달래 2007-12-1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우 3권 공유... 하지만 맘은 같아요. ^^;;
나머지 책들은 올해의 책으로 꼽아주시니 모두 장바구니로~!
근데 모두 언제 읽을지... 깜깜합니다.

아, <카페 여주인>, 넘 느낌 좋네요.
저도 좋아할 거 같은 느낌이... ^^

stella.K 2007-12-10 16:48   좋아요 0 | URL
참고만 하는 거죠 뭐. <카페 여주인> 진달래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한번 읽어 보세요.^^

조선인 2007-12-10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권이네요. 히히.

stella.K 2007-12-11 10:21   좋아요 0 | URL
오, 많은 건데요? 아무래도 조선인님과 제가 취향이 비슷한가 봅니다.^^

니르바나 2007-12-11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다양하게도 읽으셨네요. 스텔라님
추천 들어갑니다.^^

stella.K 2007-12-11 10:22   좋아요 0 | URL
에고, 많이 읽기는요...ㅜ.ㅜ 추천 고맙습니다.^^

마노아 2007-12-1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6권 겹쳐요. 이지누의 집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

stella.K 2007-12-11 10:22   좋아요 0 | URL
오, 6권이나요? 마노아님 많이 읽으셧네요. 축하드립니다.^^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서평단 알림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가 좀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다. 코미디언이란다. 코미디언이 뭐가 특이하단 말인가? 단지 특이하다면 코미디언이 기행문을 썼다는 것이겠지. 웬만해서 없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까? 더구나 저자는 독일 사람이다. 내가 시야가 좁긴 좁은가 보다. 기껏 외국의 코미디물이래 봤자 미국 아니면 영국이 고작일텐데, 왜 독일에도 코미디언이 있다는 걸 생각 못했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하면 웬지 근엄하고 써렁할 것만 같은 고정관념 같은 것이 있어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분명 그 나라도 사람이 사는 나라고 희노애락의 엄연히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독일인들은 어떻게 웃길까? 궁금해 진다.

사람 저마다 웃음의 코드가 다른 것 같긴하다. 어떤 사람은 웃음에 인색하며, 어떤 사람은 별로 웃기지도 않는데 배꼽잡고 웃는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을 웃게 만드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직업병인지는 몰라도 책 갈피 갈피마다 웃길려고 나름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난 웬만해서 잘 웃지 않으며 한번 웃기 시작하면 어깨가 들썩일 정도도 웃는 극단이 있어, 저자가 자기 직업의 성향을 들어냈다고 해서 배꼽이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웃겨야 먹고 사는 사람으로선 사람들이 많이 웃어주면 고마운 일이겠지.

그런데 이 책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김이 빠지는 느낌이다. 왠지 자꾸 논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면 내가 이 책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걸까? 그래도 모름지기 야고보가 걸었다는 산티아고가 아닌가? 산티아고는 파울로 코엘료에 의해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난 그닥 코엘료의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 과연 그가  자신의 책에서 산티아고를 어떻게 그렸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오히려 작년 여름, 어떤 지인으로부터 직접 쓴 산티아고 기행을 접했을 때야 비로소 그곳을 알았다. 그리고 그 책은 참 재밌게 읽었다. 단지 그 지인의 책엔 산티아고가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 걸었던 길이라는 것을 몰랐고, 이 책을 들었을 때야 그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지인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으니 그것까지는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알았어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거나.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또한 순수한 의미에서 기독교 신자는 아니다. 그는 본인을 말하기를 불교적 기독교  신자라고 했던가? 암튼 그런 신앙인이 없으라는 법은 없겠지만, 좋게 말하면 너무 자유주의적이다. 그래서 일까? 야고보가 걸었다는 산티아고를 별로 순례의 마음으로 걸었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고전적인 의미로) 그 길을 걸어야 한다고 했을 땐 뭔가의 영적 목마름이 있을 것이다. 저자도 그런 의지가 없지는 않아 보이지만 오히려 그 길을 걸어 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신은 누구이고, 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 품어 볼만한 질문이긴 하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었을 법한 여행은 이 책에선 그다지 찾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 하루 여행하면서 보고 느끼고 만나고 했던 것을 스케치한 것으로 일관한다.

그것도 나름 중요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기록은 중요한 거니까. 하지만 산티아고가 갖는 아우라를 이 책은 그다지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엿다. 오히려 그런 영적인 순례 어쩌고 하는 것을 빼고 읽는다면 그냥 편하게 읽는 여행서쯤이 되지 않을까? 물론 그 길을 걸어야 했던 저자로선 괴로웠겠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5분의 1쯤 남겨 놓고 덮어버린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의 기대를 좀 많이 비껴 나갔던 책이라 완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지루하기도 했고...또 하나 유감인 건 이 책을 분류할 때 '기독교 에세이'이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산티아고를 막연히 야고보가 걸었다는 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이 책을 기독교 에세이에 분류해 놓는 건 좀 무책임한 분류 같아 보인다. 이 책엔 신앙적 동기가 거의 드러나 보이지도 않고,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여행한 것을 스케치한 정도인데, 어느 믿음 좋은 기독교 신자가 다른 이유라면 모를까 나와 비슷한 기대를 가지고 펼쳐 읽기 시작했다면 실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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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7-12-0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리뷰 제목만 보고 갑니다.
지금 읽고 있는데 너무 진도가 안 나가요. ㅠ.ㅠ
스텔라님 리뷰 제목과 제 진도 사이에
무슨 연관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

stella.K 2007-12-06 15:0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로 평점이 좋던데 그걸 이해할 수가 없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