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잡지 씨네21의 기획서로서, 장원재, 이윤택, 한창호, 듀나, 홍성남, 박준용, 진중권, 최영주, 김지미, 김희진, 이종도, 김철리, 임옥희 등이 한 챕터씩 맡아서 필진으로 참여했다.
1600년대의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 4세기가 넘어 스크린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번안되었는가를 살펴본 상당히 유의미한 저서라는 생각이 든다. 셰익스피어 자신이 전승된 얘기나 민간에 떠도는 얘기들을 그 시대의 이야기 그릇에 맞게, 관객의 입맛을 돋울 수 있게끔 훌륭하게 각색했듯이, 그의 희곡들이 동시대의 이야기 그릇인 영화 속에서 어떻게 해체되고 해석되었는가를 보여준다.    

1. 맥베스가 변주된 영화들 ; 이윤택
-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1957>과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스.1971>

*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은 한 인물의 흥망성쇠기처럼 구성되어 있다.
햄릿은 복수극일 수 있고, 맥베스는 권력 암투의 비화극일 수 있다.

* 셰익스피어 극은 관객들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마음 졸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견된 사건을 인물들이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 셰익스피어의 극적 공간은 바로 유령, 마녀, 도깨비들이 눈뜨는 불가사의한 공간이며, 이 공간은 인간의 의식 속에 잠복해 있던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세계일 것이다.

* 구로사와의 셰익스피어 영화는 대체로 원본 구성을 따르면서 완전히 다른 미장센으로 작품을 둔갑시켜버린다.
오프닝에서 텅 빈 황야의 한 귀퉁이에 ‘ 거미성터’임을 암시하는 목판이 세워져 있는 장면. 여기서 모래바람에 맞고 서 있는 인간 문명의 흔적. 이로써 구로사와는 셰익스피어 연극이 지니는 허무와 싹쓸이의 미학을 프롤로그처럼 제시한다. 드라마로 진입하기 이전 셰익스피어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성, 그 주제를 구로사와식의 미장센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와시추(맥베스)가 미래를 예언하는 유령을 만나고... 이후 유령의 예언이 진행되고... 와시추와 미키(벵코우)는 안개 속을 헤맨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헤매는 인간의 모습이 지루할 정도로 상징적인 모습으로 반복된다.
..... 이윽고 성문이 열리고 영화는 일본 전국시대의 건축미와 의상, 일본인들의 몸짓과 화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셰익스피어 극이 일본 시대극으로 완전히 뒤바뀌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구로사와의 <거미집의 성>에서 중요한 살해 장면은 직접 드러나지 않은 채 생략된다. 이는 영화를 외연적인 볼거리로 끌어가지 않고, 인간 내면에 도사린 욕망과 불안을 응축과 긴장으로 표현하려는 구로사와의 심미적 표현양식의 결과물인 것이다.
...... 거미숲이 성으로 옮겨지지 않는 한 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유령의 말에 숲을 응시하던 와시추의 눈에 숲이 실제로 움직이고....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날아오는 화살대를 부러뜨리며 전진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허무한 행보를 깨닫게 된다..... 덧없는 욕망에 희생된 한 인간의 모습이 페이드아웃되면서 영화의 첫 장면인 거미의 성터를 기념하는 목패 장면으로 돌아간다.

* 오손 웰슨의 <맥베스>는 ‘응고된 화산의 불덩어리’ 같은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주관적 해석의 영화로 기록.
영상 전체가 인공적인 공상과학적 분위기를 창출..... 맥베스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술주정뱅이로, 던컨 살해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저절러지는 것으로 묘사. 맥베스 부인은 프랑켄슈타인 신부의 머리 스타일에 금속성 목소리로 연기를 했고,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까지 나와서 영화 전편을 그녀의 광기로 이끌어나갔다.

*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스>.
현실과 초자연, 리얼한 카메라워크와 환상적 장면 처리가 겹치면서 셰익스피어 영화 중 가장 풍부한 영상미를 창조했다는 평....그러나 배우의 연기는 지극힌 정통적인 해석에 의존하여 진행된다.... 폴란스키가 셰익스피어 특유의 연극적 언어미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느낌... 배우들의 대사는 평이했고, 독백은 보이스 오버로 처리되면서 영화는 상당히 완만하게 진행... 영화적 공간은 탁월하게 형상화시켜 놓고도 정작 배우의 연기는 함량 미달이어서 몰개성적 지루함을 주고 만다.... 연극이건 영화건 셰익스피어 극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성패가 달려 있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인물의 성격을 구축하느냐에 따라 영화적 완성도가 결정된다...

* 원작보다 짧은 구로사와의 영화는 그 깊고 넓은 정신성에 의해 더욱 큰 스케일과 영상미로 기억된다. 하지만 원작보다 긴 폴란스키의 영화는 미장센의 세련미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정신성과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깊이가 소홀히 취급되면서 영화적 감동과 미학이 뒤쳐지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2. 로미오와 줄리엣 (한창호)
프랑코 제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1968>과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줄리엣. 1996>
    
* 제피렐리는 이탈리아의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의 조감독 출신으로 그의 복사판 같은 감독이다. 비스콘티처럼 연극 연출가이자 오페라 연출가이며 탁월한 영화감독이었다.

* <로미오와 줄리엣> 관련 영화들 중에서 제피렐리의 영화가 가장 대중성을 확보... 베로나의 두 집안 즉 몬테큐와 캐플릿 집안 사이의 반목과 사랑....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 줄리엣>에서는 ‘베로나 비치’로 불리는 가상의 도시에서 대로를 사이에 두고 몬테규 가의 빌딩과 캐플릿 가의 빌딩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이는 현재 정치의 알레고리로 해석...

*줄리엣은 능동적인 인물로 제시되고, 로미오는 부드럽고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속의 관습적인 남녀 역할이 제피렐리의 드라마에선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줄리엣>은 시종일관 남성이 시선의 주체이고, 여성은 시선의 객체이다. 관객들은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로미오가 바라보는 대로 바라본다. 클레어 데인즈가 연기하는 줄리엣은 시선의 객체로 충실할 분이다. 성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뒤에 만들어진 루어만의 영화가 오히려 더욱 관습적인 것이다..... 루어만의 로미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남성 영웅으로 제시돼 있다.

* 루어만의 영화가 관객의 관심을 끈 것은, 고전을 현대의 뮤직비디오처럼 현란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록 음악을 배경으로 청춘스타들을 등장시켜 흥미로운 시대극을 만들었다는 점... 빠른 편집, 원색의 컬러 등은 찰나적인 이미지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흑인 동성애자, 비트 있는 음악, 복장도착자, 펑크족, 라틴아메리카풍 패션, 스포츠카 등 90년대 젊은이들의 독점적 문화 코드들이 영화에 역동적으로 제시돼 있다.

3. 햄릿(듀나)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 1948> 과 캐네스 브래너의 <햄릿.1996>

* 올리비에는 햄릿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있다. 그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유부단함이라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마느 남자의 이야기이다.... 올리비에가 그리는 엘시노어 성은 구체적인 공간이 아니라 햄릿에게 고뇌의 동기를 제공해주는 추상적인 무대이다.... 원작에서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타당성이 있다.. 그 타당성을 모두 삭제함으로써 올리비에의 햄릿은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소소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은 채 열심히 고뇌만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원작에선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스포트라이트를 햄릿에게 모아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올리비에의 햄릿은 너무 고상하다....

* 브래너의 <햄릿>은 올리비에가 필사적으로 감추려 했던 정보들이 폭로된다. 덴마크는 노르웨이와 전쟁 진전까지 갔고 안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날 뻔했으며 햄릿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미쳤고 성격도 일관성이 없다.... 이것이 브래너가 찾고 싶어 했던 <햄릿>의 원모습이기도 하다. <햄릿>은 결코 고뇌하는 우유부단한 젊은이만의 이야기인 적이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로맨스, 정치극, 궁중 음모극이며 활극이며 복수극이다. 그런가 하면 존재론적인 성찰일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코미디이기도 하다. ....

*  브래너는 시대 배경을 중세에서 19세기 말로 바꿨다...  브래너가 19세기로 시대를 옮기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여성 캐릭터들의 묘사에 있다...... 올리비에의 영화에서 오필리아가 남성 로맨티스트들이 머릿속에 만들어낼 법한 여성의 이상적인 이미지였다면, 브래너는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성윤리와 정면충돌하는 피와 살로 구성된 생생한 여성들로 그려낸다...

4. 오셀로(홍성남)
오손 웰스의 <오셀로.1952>

*셰익스피어의 자취는 앙상하게 남아 있는 반면 웰스의 손길이 많이 묻어나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 일종의 폭력을 행사하고 말았다는 식의 견해가 있었으나....그러나 웰스는 일찍이 셰익스피어에 경도돼 있었다.... 웰스의 필모그래피에는 <맥베스>, <오셀로>, <심야의 종소리>, <베니스의 상인> 이렇게 네 편의 셰익스피어 영화가 등재돼 있다.  

* 덫에 걸린 오셀로의 몰락과정을 그린 영화.... 그들 모두를 얽어맬 그물을 만들 테다, 라는 이아고의 대사.... 걸어가는 이아고의 위로 불길하게 매달린 쇠우리... 벽에 난 좁은 구멍 안에 감금된 듯 보이는 오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감옥을 연상케하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처소- 함정, 감금, 폐쇄에 대한 미장센.

* 파괴적인 사악함의 화신인 이아고가 음모의 그물을 짜면(웰스는 이아고의 이런 행동의 근저에 성적인 무력감이 있다고 해석) 원래는 고결한 존재였던 오셀로가 그것에 걸려들어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자신마저 파멸을 맞게 된다....

* 이 영화의 도입부 장면. 어둠 속에서 점차 드러나는 오셀로의 얼굴이 그가 사람들이 메고 가는 관 속에 누워 있는 모습이고... 다음에 장중하고도 비장한 장례식 행렬을 실루엣으로 처리... 이런 오프닝은 이미 죽은 자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주는 식이 된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대로>의 도입부와 유사하다)

5. 리어왕(박준용)
그레고리 코진체프의 <리어왕. 1969)

*부모와 자식의 사랑을 주제로 두 이야기가 진행.  리어왕과 세 딸의 이야기와 글로스터 백작과 두 아들의 이야기.
늙은 리어왕이 권력과 재산을 세 딸들에게 넘겨주기 세 딸을 불러서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물어보자, 위의 두 딸들은 달콤한 감언이설로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막내딸 코델리아는 말보다 진실한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할말이 없다’고 한자. 분노한 리어왕은 코델리아와 의절하고 그녀를 추방한다.
이와 함께 진행되는 글로스터와 두 아들의 이야기는, 서자인 동생 에드먼드가 적자인 형 에드거의 상속권을 빼앗기 위해 모함을 하고, 거기 넘아간 아버지가 죄없는 에드거를 죽이려 하자, 에드거는 살기 위해 달아나서 미친 사람 행세를 한다....

* 코진체프 감독은 이 영화를 무능한 지도자 때문에 온 나라가 고생한다, 라는 테마로 이끌어간다.... 왕은 국가다, 라는 해석을 강조하기 위해 쫓겨난 리어왕이 황야를 헤매면서 분노의 절규를 외치다가... 눈보라 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의 한 오두막에 도착한 리어왕은 그곳에 모인 밑바닥 인생들을 보면서, 자신이 백성을 이 꼴로 만들었다면서, 자신의 실수를 깨닫기 시작한다..... 부서지고 황폐해진 나라에서 백성들과 함께 몰락한 리어의 죽음에 영웅적인 의미는 없다...

* 코진체프의 <리어왕>의 대본은 파스테르나크, 음악은 쇼스타코비치가 담당했다.

*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은 <리어왕>을 일본 전국시대로 옮긴 컬러 작품.

* 조슬린 무어하우스의 <1천 에이커>는 <리오왕>의 시대를 현대로 완전하게 바꾼 작품. 제인 스마일러의 퓰리처 수상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

6. 템페스트 (진중권)
피터 그리너웨이의 <프로스페로의 서재. 1991>

* 밀라노 영주 프로스페로는 마술을 좋아하여, 정치는 동생 안토니오에게 맡겨두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한다... 연구에만 몰두하는 동안 야심을 품은 동생 안토니오는 나폴리의 왕 알론조와 계략을 꾸며 자신이 밀라노 공국의 영주가 된다... 쫓겨난 프로스페로는 세 살도 안 된 딸 미랜더와 함께 한 척의 배에 실려 먼 바다로 추방된다... 배가 표류하다가 어느 황량한 섬에 당도하나, 그 섬은 마녀 시코렉스가 다스리던 곳이었는데, 이미 마녀는 죽은 상태고, 마녀의 흉측한 아들 캘리번과 마녀의 명을 거역한 죄로 나무에 갇힌 요정 에어리얼만 살고 있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으로 캘리번을 제압하고 에어리얼을 구해낸다... 그리고 이 둘을 시중으로 부리며 마법의 옷과 지팡이와 책으로 그 황량한 섬에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한다....

* 템페스트의 매력은 마법의 힘으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데에 있다.

* 액자 속의 액자 속의 액자. 이것이 템페스트에 구현된 바로크적 가상현실의 세계다. 바로크의 시대감정을 특징짓는 말 중의 하나가 바니타스,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이 세계 자체가 실은 허망한 꿈, 한 편의 연극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오늘날의 컴퓨터 영상.... 프로그래머가 명령어로 쓴 텍스트를 우리는 모니터 위에서 세계로 체험한다. 이 또한 마법이 아닌가... 이렇게 버추얼 리얼리티를 넘어 ‘리얼 버추얼리티를 이야기하는 오늘날의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 네오바로크라 할 수 있다...

* 영화 속의 프로스페로는 글자를 써서 가상의 영상을 만들어낸다. 신이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셨듯이. 프로그래머는 0과 1의 명령어로 영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너웨이는 이 영화를 디지털 가공을 거쳐 제작했다. 때문에 여기서 영화적 영상과 컴퓨터 영상은 하나로 어우러진다...

* 그리너웨이는 프로스페로의 서제를 스물네 권의 책으로 장식한다. 물의 책, 거울의 책, 건축의 책, 죽은 자의 명부, 색깔의 책, 기하의 책, 지리부도, 해부의 책, 작은 별 입문, 보편우주론의 책, 광물의 책, 식물의 책, 사랑의 책,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동물의 책, 유토피아의 책, 여행자의 책, 폐허에 대한 사랑, 세미라미스와 파르시파에의 자서전, 미노타우로스의 92개의 발상, 운동의 책, 신화의 책, 놀이의 책, 35편의 희곡의 책, 마지막으로 거기서 따로 떼어낸 <템페스트>라는 이름의 책..... 원작에는 마법의 책이 한 권 나오지만, 그리너웨이는 이 스물네 권 모두를 마법의 책으로 설정한다... 이 스물네 권의 책으로 그는 동굴 안에 환상의 공간을 창조하고, 그것으로 캘리번과 에어리얼, 그리고 수많은 요정들을 부리며 살 수 있었다...

* 일설에 따르면 <템페스트>의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셰익스피어의 동시대 사람이었던 존 디를 모델로 한 것이라 한다... 그는 당대의 뛰어난 수학자이자 점성술가이며...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진기한 정보로 그의 서재는 가득 차 있었으나.... 그의 서재가 마술의 산실이라는 민중들의 믿음 때문에 불태워졌다. .... 당시에는 과학적 마인드를 가진 이들 중 종종 마법사라는 오해를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과학이 마술이요, 마술이 곧 과학이었던 마니에리스모-바로크의 상상력이 빚어낸 꿈의 세계다..

* 그리너웨이의 말 ; 이 영화는 1611년을 배경으로 하지요. 그 시대는 연금술과 카발라와 같은 중세적 지식 근대의 경험주의와 뒤섞여 있던 시대였습니다...

* 그리너웨이의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21세기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중세적- 르네상스적 판타지, 한마디로 네오마니에리스모- 네오바로크의 상상력이다.

7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최영주)
줄리 테이머의 <타이터스. 1999>

* 셰익스피어의 최초의 비극작품이라는 설.... 타이터스는 고트족과의 전쟁에서 스물두 명의 아들을 읽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고트족의 여왕 타모라 일행을 생포해서 포로로 데려온다. 와중에 여왕 장자의 사지를 잘라 불태워 전쟁터에서 죽은 로마군의 원혼을 달랜다..... 그리고는 황제 자리를 거절하고 서거한 황제의 장자인 새터나이너스를 황제로 추대한다... 황제로 등극한 새터나이너스는 동생인 배시에이너스의 약혼자이며 타이터스의 딸인 라비니아를 새 황후로 맞겠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배시에이너스와 라비니아가 도망을 치자, 타이터스는 황제의 명을 거역한 이들을 잡으려다가 여동생 라비니아를 편드는 아들을 죽이게 된다.... 결국 황제는 고트족의 영왕 타모라와 결혼을 하고, 타모라는 내심 자신의 장자를 죽인 타이터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악랄한 복수가 시작되고... 모든 걸 잃어버린 타이터스가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복수를 한다...

*테이머는 이 영화를 로마 시대와 현대의 시점을 교묘히 결합하여, 과거와 현재의 다리를 놓는 데 성공한다..... 로마는 인물들의 갈등과 사건의 배경일 뿐만 아니라 플롯의 전개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이다... 영화의 서두에서는 로마 문화의 영광의 상징인 콜로세움과 타이터스 집안의 지하무덤이 펼쳐진다. 타모라와 새터나이너스의 결혼 파티는 로마 사회의 부패의 상징인 지하 온천탕에서 행해진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면 지하 온천탕은 술과 마약, 그리고 섹스 파티가 어우러지는 도덕적 혼란의 장소로 표상된다. .... 테이머의 창조적 해석이 빛을 발하는 것은 장면을 통해 과거와 현재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전쟁과 폭력, 복수로 얼룩진 인류의 문명사를 축약한 것에 있다.

8. 베니스의 상인 (김지미)
마이클 레드퍼드의 <베니스의 상인. 2004>

* 샤일록은 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든 캐릭터이자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전형적 인물이다... 셰익스피어는 그를 유대인으로 설정해놓고, 다른 인물들로 하여금 그의 민족성과 종교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마음껏 표출하도록 했다. .... 인종차별이라는 미묘한 문제 때문인지 나치 시대 이후에 이 작품은 거의 영화화되지 않았다....

* 마이클 레드퍼드는 이 작품의 서두에다가 1596년, 이라는 자막을 첨부하여 시간적 배경을 구체화함으로써 등장인물들의 민족적 감정과 종교적 대립을 역사화하는 구실을 갖는다. .... 감독에 의해 덧붙여진 6분 정도의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 반유대주의가 특정한 시대에 한정된, 역사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었고, 외국인에게 부동산 소유가 금지되었던 당시 베니스의 법 때문에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유대인들의 거주지는 게토에 한정되었고, 낮에 그곳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활동할 때에는 일종의 낙인과도 같은 빨간 모자를 착용해야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 레드퍼드 감독은 샤일록을 절대적인 악인으로 창조해냈다고 보기가 어렵다. 샤일록의 독백에는 소외된 자의 박탈감이 진솔하게 드러나며, 작품 전반을 통해 종교적 신념의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사회적 분위기와 기독교인의 유대인에 대한 일방적인 적대감 등이 암시되기 때문이다..... 샤일록에게서 복수심과 악의에 찬 유대인이라는, 왜곡된 민족적 특질을 벗겨내는 대신 차별받는 소수자라는 가려졌던 이면을 보여준다.  

* 감독은 연인들의 사랑이나 말장난 같은 희극적 요소들을 최대한 절제하고, 전체적으로 어둡고 장중한 세팅을 통해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내면을 탐색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모든 장면을 르네상스 시대의 화첩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정리한 것을 엎어왔다.

그런데 이 책 사볼까 했더니 알라딘에선 품절이란다.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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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11-2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꽤 볼만해요. 우리나라에 셰익스피어 관련 책이 많이 없는 것에 비하면, 소중한 책이죠! 가격이 비싸긴 한데, 책 잘 만들었고, 저는 당시 이벤트로 베니스의 상인이랑 햄릿 CD까지 함께 받았더랬네요.

stella.K 2008-11-28 19:06   좋아요 0 | URL
오, 정말요? 좋으셨겠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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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작가를...아니 작가의 작품을 알긴했지만 나는 작가를 쉽게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작가와 독자도 궁합이 있는 것일까? 여타의 독자들이 신경숙이란 작가에게 매료 당하고 있었을 때, 나는 작가의 작품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어쩌면 콧대 높은 독자이거나 맹꽁이 같은 독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작품에 변화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이것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좋은 기회에 이 작품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 작가는 엄마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엄마를 생각하면 여러가지 마음이 든다. 우선 고마움, 미안함, 측은함 등등.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에게 고마우면 고맙다, 미안하면 미안하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쉽게 말하지 못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는데 목구멍에서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마음 한쪽에 멍울져 남아있다. 난 왜 이리도 엄마에게 이 말을 못하는 못난 딸이 되었을까?

나의 엄마는 속정은 깊으시지만 그것을 웬만해서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당신의 감정 또한 웬만해서 잘 드러내지 않으시는(아니 어쩌면 못하시는) 분이셨기에 그 성격 그대로 자식들이 물려 받았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가끔 말하곤 한다. 우리가 '오사박 하지 못하다'고. 즉 정 깊고 살갑지 못하다는 뜻이리라. 그럼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당신을 닮은 걸 어쩌라구.'하지만 그것이 엄마 당신에겐 얼마나 큰 외로움일지, 아쉬움일지를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잘 알지 못했다.      

오히려 사랑한다는 말, 미안한다는 말은 그가 나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유지됐을 때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늘 너무 가까이 오래 있으면 그 표현이 얼마나 어색한지 한국 사람이면 다 안다. 그러니 얼마나 모순이랴. 정작 고마워 해야할 사람에게 그리 말하지 못하는 것은.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또한 아내를 잃어버린 큰 아들과 남편, 딸과 화자의 싯점에서 그의 부재를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렇게 작가는 어쩌면 나처럼 엄마의 눈을 보고, 손을 감싸 안고, 고맙다, 미안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이기에 차라리 이 방법으로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 소설을 잃고 눈물을 흘리지 않겠으며,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설속의 엄마는 결코 세련되거나, 학식이 많거나,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아무리 이런 것으로 결정되는 사회라고 해도 우리의 기억속의 어머니는 작가가 말하는 어머니와 그 맥을 같이한다. 

상황은 조금씩 달라도 옛날 우리네 엄마들은 거진 대부분은 이러고 사셨다. 어쩌면 그것이 여성의 삶이고, 일생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처럼 쉽지 않은 삶을 살아 가면서 가정이란 끈을 놓지 않았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엄마들은 그리고 딸들은 너무 쉽게, 엄마 같이 살지 말라고 또 엄마 같이 살지 않을꺼라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누구 누구의 아내, 누구 누구의 엄마로 남는 것을 안타까와 하고, 거부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일뿐 그것을 선택했다고 잘 사는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부르짖고 외치는 동안 여성성이 뭉게지고 말았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성이란 무엇일까?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듯이 '생명 탄생과 그 돌봄' 즉 모성애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빼고 얘기해 봤더니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사막처럼 변해버린 세상이다.   

소설에 보면 엄마인 화자가 너희들이 한창 자라느라 먹을 것을 밝힐 때 오히려 두려움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회상하기를 죽어가는 개 조자도 아내의 손에서 토실토실 잘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어머니를 가리켜 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희망으로 알았다고 회상한다. 이것이 바로 여성성 모성애인 것이다. 자기는 없고 남을 위해 바쳐진 삶.

그런데 우린 지난 세기 동안 페미니즘이란 미명하에 여성의 삶은 너무나 많이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착취 당했다고 하고, 상처 받았다고 하고, 도전적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생명 탄생과 돌봄'이란 여성성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왠지 여자가 결혼을 해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을 '전락'이라고 지나치게 폄하하고 경도 되어진 시각에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도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도 학교에 가야하는 우리를 위해 새벽이면 일어나 도시락을 싸야했고 그것을 지겨워 했다. 그것도 우리가 아무 반찬이나 안 먹으니까 특별히 신경을 더 써야했다. 그러니 세상에 어떤 사람이 지겨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 것을. 그 의무에서 벗어난지 한참 지난 후에도 엄마는 그때를 돌이킬 때면 진저리를 낸다. 그래도 엄마는 그 의무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리고 무엇이던지 잘 먹고 건강한 우리들을 내심 뿌듯해 하셨다.

그래도 엄마가 나은 자식 넷중 내가 가장 엄마의 애간장을 녹였던 문제 많은 자식이기에 엄마는 한동안 자식을 온전히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사셨다. 그때도 난 엄마를 조용히 다독이지 못했다. "엄마, 그건 엄마 책임이 아니야. 내 운명이 그런 거야."라고. 어쩌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엄마의 일말의 남은 자존심을 쓰러버리는 것이 되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내가 꿋꿋이 당신 앞에 살아주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언제부턴가 나보다 더 자유하고 당당해 보였다. 엄마는 지금도 "너희들이 시집 장가를 갔으면 내가 이 고생을 안해도 되는데" 하면서 당신이 손수 장을 봐다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곤 하신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우리만 편하게 먹고 살기 위한 것만이겠는가?

오래 전 어느 해 봄, 교회에서 태안으로 야유회를 간적이 있었다. 그때 가족도 함께 와도 된다고 하길래 나는 엄마에게 같이 갈 건지를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평소 낮선 사람들 틈에 끼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의외로 순순히 따라나서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그곳에서 나는 특산물을 싼 값에 사기 위해 그 길을 나선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그냥 구경하고 놀기위해 온 것이었지만, 엄마는 오로지 어디에 뭐가 있고 이걸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나중에 서울에 도착하니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 짐이 한보따리였다. 엄마가 현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나는 사지 말라고 창피하다고 옆구리를 찌르곤 했었다. 그래도 엄마는 나의 이런 반응엔 아랑곳하지 않고 얼마나 뿌듯해 하던지. 그 사온 것 가지고 두고두고 맛있게 먹었으면서도 말이다. 엄마는 그때 그랬다. 이것이 어디 나 혼자 먹자고 이러는 거냐고. 

그래. 모성애란 그런 것일 것이다. 나 혼자만 먹을 수도 있는데 가족과 함께 더불어 먹고 함께 잘 사는 것.  누군가는 그랬다. 돌볼 대상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정신병에 걸리는 법이 없다고. 정신병은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서 생겨나는 거라고.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견 맞는 얘기 같다. 

난 안다. 엄마가 그리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게 사시는 그렇게 아직 돌볼 대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대상이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비로소 정말 늙어버리릴 거라는 것을.

얼마 전, 나는 우연히 물어 본적이 있다. 엄마는 언제까지 월경을 했냐고. "마흔 여덞까지 했지, 아마." 한다. 엄마가 그쯤했다면 나도 대충 그맘 때까지 할 것이다. 그때까지 얼마가 남았을까 헤아려 본다. 엄마는 월경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됐을 때 너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웬지 나는 그때가 됐을 때 좋아만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난 아직도 돌볼 대상이 없기 때문에. 엄마의 삶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 그 삶에 이를 수 있겠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은 이렇게 오래도록 엄마에게 기생에서 연명하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 엄마는 누구에게 의탁했으면 좋을까 가끔 막막해지곤 한다. 그나마 엄마가 신앙을 가지고 저리 꿋꿋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엄마가 믿는 그분께 감사치 않을 수가 없다. 나이를 먹으니 엄마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눈물 지을 때가 많아졌다.

"주님, 저의 엄마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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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흙 2008-11-2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또 울었어요. 이글 읽고서. '사랑한다는 말, 미안한다는 말은 그가 나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유지됐을 때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습니다...

stella.K 2008-11-21 18:32   좋아요 0 | URL
에고, 이제보니 파란흙님 울보셨군요.^^
 
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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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결코 활자중독자는 아니다. 그래도 책은 항상 도톰한 두께에(너무 두꺼우면 기가 죽어버린다) 책장마다 웬만치 글자가 박혀야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런 책이 다 좋은 책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책장마다 활자가 드문드문 박힌 책은 왠지 선듯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책이 꼭 나쁜 책이거나 별볼 일 없는 책이라고 할 수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것은 분명 나의 책에 대한 편견일텐데, 오히려 반대로 활자만 많고 내용은 별거인 책 보다 활자는 드문드문 있는데 생각을 많이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면 후자가 더 좋은 책일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책은 후자에 서 있다.

하지만 나 같이 아직도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이 책을 손에 넣기란 또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러느니만큼 이 책은 누가 읽어보라고 선물해 준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그 책을 선물해준 분께 고마움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눈이 편하다. 활자는 얼마 안되고 책장마다 우리나라에 왠 민물고기가 그렇게 많은지 민물고기가 종류별로 그려져 있다. 왜 그런지는 알 수는 없다. 아무튼 그래서도 읽기가 편했다.      

처음엔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할 수도 있겠다. 도대체 장르를 어떻게 정해야할지 모르겠다. 수필도 아닌 것이, 시도 아닌 것이 그냥 낙서집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낙서는 아닌 듯 싶다. 아니 우린 그동안 낙서를 폄하해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 또 어쩌면 이런 문인들의 낙서는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범인들의 낙서는 별것 아닌 양 도외시 하는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이외수의 낙서는 재밌다. 아, 그런데 리뷰의 제목은 저렇게 달았으면서 낙서라고 하는 건 또 뭐냐? 읽다보면 견언집의 격식을 갖춘 것도 아니다. 그냥 읽다보면 웃음이 나온다. 어찌나 뼈있는 말을 해대시는지. 그래서 읽다보면 곱씹게 된다. 그러니 이외수식 아폴리즘이 생겨나는 것이다.

대단한 내공 같기도 하고, 저 '정도는 나도 생각했던 바 아냐?' 싶기도 하다. 바로 이런 생각을 갖게끔 하는 것이 또한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만큼 나는 이 정도의 생각도 못하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런 생각을 가능케 해준 것이다. 그러니 그는 매번 책장에서 '생각 좀 하고 살라'고 꼬집어 대는 것 같다. 그것도 능청스럽게 눙치면서 말이다.

외모가 좀 독특해서 그렇지 욕심없이 선량하게 살 그에게도 유명세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지 종종 악풀러의 악풀 세례도 받는 가 보다. 그것에 대한 반론도 통쾌하다. 최근 자살한 일급 모여배우가 죽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녀의 자살만큼은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게 평소 책 좀 읽고 살지. 죽은 사람만 안 됐지 뭐...할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책을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앉아서 조금 조금씩 읽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집이 최근에 신문을 끊은 탓도 있긴 하지만, 화장실에서 읽으면 이 책을 읽는 쾌감이 배가가 되는 느낌이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길지 않은 문장에 녹여낼 수 있단 말인가? 시원하다!(확실히 언어를 배설물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저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갖는 인식(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는)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고가 자유롭다. 또한 말이 자유롭다.

일반적으로 저자의 나이 정도면 컴퓨터상에서 떠도는 언어들, 이를테면 캐안습이니 즐이니, 조낸이니 하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유롭게 이런 언어들을 쓴다.

이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켜내야할 작가가 국적 불명의 은어나 사용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같은 연배의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사고가 자유롭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통할 수 있는 것 같아 더 좋아 보인다. 그것을 반영하듯 요즘 그가 하는 말들이 인터넷상에서 상종가를 친다고 한다.

우리가 은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말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각 나라마다 시대마다 은어는 있으며 그렇다고 역사적으로 그때문에 그 나라의 언어의 권위가 실추되었다는 자료는 읽어 본 적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신경증적인 영어 교육 열풍 때문에 우리말이 실종위기를 맞을지도 모르는 그것을 더 경계해 할 것이다. 일제시대 때야 나라의 주권을 잃어버려 모국어가 말살당했지만, 지금은 누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가 언어 식민지화를 자처하고 있다. 우리가 핏대를 세워야 할 것은 이런 것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이외수, 그가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는지 그의 언어의 세계로 빠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한마디로  이외수 만세!!!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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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흙 2008-11-07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이외수라는 작가가 지나치게 폄하된다는 생각을 할 때 있어요. 물론 그의 소설을 다시 읽어보지 않아 젊은 날의 나와 지금의 내가 그를 어떻게 달리 받아들일지는 저 자신도 잘 모르지만, 그는 적어도 치열하게 글밥을 30년 먹고 살아온 작가이니까요.

stella.K 2008-11-08 11:18   좋아요 0 | URL
저도 소설은 안 읽어봐서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파란흙님이 무슨 말을 하시는지 알 것 같아요. 독특하죠. 우리가 문학을 보는 안목이 넓어져야 그의 작품도 인정될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어젠 잘 들어가셨죠? 댓글 다신 시간을 보니 바로 쉬지도 않고 컴 앞에 앉으셨나 봅니다.^^

진달래 2008-11-1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 적에 이외수 작가의 책 한권으로 이미 많은 편견을 갖고 있는데,
그래도 그의 멋(!)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
그의 글씨, 낙서, 그림 모두 좋아요... *^^*

stella.K 2008-11-14 11:37   좋아요 0 | URL
이 책 참 좋죠?^^
 
오셀로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지난 봄, 나는 어느 극단에서 하는 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햄릿>를 본적이 있었다. 그것은 어려운 부분은 거둬내고 오직 햄릿에 촛점을 맞춰서 새롭게 해석한 것으로, 나름 재밌고 볼만한 연극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연극이 원전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해석과 새로운 버전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한다고 해도 희곡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서는 연극 자체는 불가능 할 것이다.

그동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극으로든 영화로든 몇번을 마주하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셰익스피어는 지난 몇 세기를 거치면서 잠들 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 보게된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럴테니 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번쯤은 묵념이라도 하고 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햄릿도 그렇지만 오셀로 역시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극임을 심감케 한다. 인간이 원래 객관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에도 또 다른 사람이 개입하게되면 많은 오해를 낳게 만들 수 있다. 오셀로 역시 그렇지 않은가? 오직 이아고의 꾐에 빠져 사랑하는 데스데모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그는 역시 갈대 같이 약한 자 일 수 밖에 없다. 아니 어찌보면 그는 한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보는 눈을 좀 달리해서 셰익스피어의 여자들을 보자. 데스데모나는 고귀한 집안에 태어나 끊임없는 모성으로 오셀로를 사랑하는 요조숙녀다. 어찌보면 셰익스피어 할배는 모성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햄릿의 오필리아는 또 어떠한가? 오필리아와 데스데모나는 같은 꼴이다. 햄릿을, 오셀로를 너무 사랑하다 미치거나 목이 졸려 죽는다.

오늘 날 이런 인물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의 작품에서 보는 건 그가 여자를 어떻게 그렸느냐가 아닐 것이다. 셰익스피어 할배는 남자를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고, 인간이 갖는 보편적 심리 즉 질투와 파멸, 죽음 등에 촛점을 맞추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러한 것들로부터 자유할 수 없음을 얘기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날은 21세기고 데스데모나나 오필리아는 그닥 매력이 없는 존재들처럼 느껴진다. 그럼 점에서 셰익스피어는 마초라고 해야하려나? 물론 그 시대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여자가 박제된 시대다. 오죽했으면 여자는 연극 배우로 쓸 수다 없어 남자에게 여자 역할을 맡겼던 시대가 아닌가? 그러니 여자가 작품에선 그다지 빛을 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 주자. 그런 점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한번 이 이야기를 완전히 뒤짚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아직 본적은 없지만 햄릿이 아닌 오셀로가 아닌 오필리아나 데스데모나의 싯점에서 재해석한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접고라도 우리가 셰익스피어 그 이름 앞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시 같은 수사의 현란함과 인간의 마음을 꿰뚫는 통찰을 여지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서사가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오늘 날에도 끊임없이 만들어 지는 것처럼 그의 작품도 세대를 거듭해 번역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이 가장 최근에 번역된 책으로 알고 있다. 솔직히 나는 일반 독자고 고로 셰익스피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의 번역이 더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간간히 작품을 읽어 본 짧은 독서 이력이긴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누가 번역을 했던지 간에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을 번역한 번역자들의 수고와 노고 대해 헛투로 보아서는 안될 것 같다.

묵직한 계절 이 가을에 (다소 어렵긴 하지만)셰익스피어가 풀어내는 수사의 현란함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연극 한편 감상하면 금상첨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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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2008-10-26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의 리뷰를 보며..제인 오스틴을 떠올립니다.
오스틴을 여자 세익스피어라고 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여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작품...그 당시에 파격적이었다는게 이해가 되더라구요.
네...묵직한 이 가을에 세익스피어 속에 빠져보고 싶네요.


stella.K 2008-10-27 10:5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제인 오스틴! 언제고 한번 독파해야겠슴다. 고맙습니다.^^
 
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흔히 결혼한 여자들 거의 대부분은 결혼은 여자에겐 하나도 좋은 것이 아니며 남자들에게만 좋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말에(어느만큼은) 동의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결혼은 남자들에게도 힘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결혼이 남자들에게도 어려운 것은,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요 그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 날과 같이 경제가 불안하고 직장에 오래 살아남기란 게 쉽지 않은 세상에서 남자가 가정을 책임져 나가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렇지 않더라도 책에서처럼 그럴 염려는 아직 없는 부르조아 인텔리 부부라고 해도 아내와의 소득격차 때문에도 남자들은 은근히 열등감을 갖는다고 한다. 게다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을 몰라 좌충우돌하고 왕따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니 결혼은 남자에게도 결코 좋은 것이라고마는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결혼을 한다.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면서 왜 결혼을 하냐고 물으면 결혼은 또 그 나름의 신비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결혼에 대해 함부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금물일 것 같다.

결혼을 주제로한 작품은 많다. 이 작품도 그런 작품중의 하나다. 내가 읽으면서 조금 의아해했던 건 결혼 안하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라 중 하나인 프랑스의 작가가 결혼의 풍경에 대해서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솔직하고 시종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며 썼다. 어찌보면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 것 같은 이 작품은 페이소스마저 느끼게 해 주는데 비록 결혼에 대해서는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솔직함 때문에 이 작품이 사랑스럽게도 느껴진다.

사실 결혼하면 누구만 좋고 누구는 나쁘고가 어디 있겠는가? 행복하면 다 같이 행복하고, 힘이 들면 다 같이 힘든 것이 결혼일 것이다. 그렇게 이분법적 사고는 결혼생활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남자의 시각에서 서글픈 결혼생활을 읊조리는 것이라 조금은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관점에선 남자들의 결혼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들을 수 있어 나름 읽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재치가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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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8-10-2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명절이 힘들어진 것 외에는 다 좋아진것 같은데요.... 결혼이란 누굴 만나 사느냐에 좌우되지 결혼 그 자체가 좋다 나쁘다 따질 것은 아니라고 봐요.^^

stella.K 2008-10-22 11:14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어요. 야클님!
정말 그렇겠죠? 결혼 자체가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는 거겠죠?
근데 야클님도 명절 땐 힘 드시구나.ㅎ

메르헨 2008-10-24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제목이 그래서 프랑스작가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결혼...좋아요.
영원한 내편이 있다는거.
내가 보는 세상만 있는게 아니더군요.^^
아이가 생기고나선 더욱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고 넓어진 느낌이랄까요?
그러면서도 때로 힘들긴 하죠.^^
스무살을 넘기면서 아버지의 어깨가 참 무거웠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남편(내편)을 보면 든든하면서도 측은하죠.
스텔라님의 쓰신 리뷰를 보면 꼭 그 책이 보고 싶더라구요.ㅋ 지름신 강림~

stella.K 2008-10-25 11:42   좋아요 0 | URL
ㅎㅎ 별로 잘 쓰는 리뷰도 아닌데 예쁘게 봐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세요.^^

진달래 2008-11-0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하면서 여자나 남자나 다 변화가 있는데, 그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결혼 성공에 대한 관건이 아닐까요... 전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데 좋단 넘이 없어서... ㅋㅋ 너무 속보이는 남자의 엄살이 전 귀여웠어요. 이 작품에서... ^^;;

stella.K 2008-11-04 13: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엄살.ㅎㅎ
저도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