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그러니까 17일엔 리더스 가이드와 웅진이 함께 주최한 <경성, 사진에 박히다>의 저자의 미니 간담회에 다녀왔다.

사실 이 책은 출간 때부터(지금도 출간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의 관심을 끌었던 책이다. 그것은 내가 사진 찍히는 것은 싫어해도 나름 사진 자체에 대해선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담회면 간담회지 왜 하필 '미니'란 수식어를 앞에 붙였던 것일까? 안 그래도 저자 간담회에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인데 미니라면 얼마나 더 작은 것을 의미하는 걸까? 그것은 주최측에서 공지글을 띄울 때 약간의 짖궃은 실수는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더랬다.   

그런데 막상 참석하고 보니 '미니'란 말이 딱 어울릴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말이다 보니 그만큼 모이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 책의 저자인 이경민 선생 역시도 음지에서 활동하시는 분이라 사람이 북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신단다. 그점에 있어서는 나 역시도 같은 성향이라 분위기는 의외로 좋았다고나 할 수 있을 것이다.(거기에 한몫한 건 주최측인 웅진에서 준비해 주신 풍성한 간식도 무시 못할 것으로 작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약간은 큰 키에 호남형이었다. 하지만 그가 쓴 검은테 안경이 누가 보아도 학자란 것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아니나 다를까, 막상 시간이 주어지자 누구 못지 않게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다. 내용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사진 아카이브가 걸어 온 길, 우리나라에서의 사진의 역사와 위상등에 관해 거침이 없이 그러나 조금 조근하게 설명을 한다. 그의 말은 청산유수다. 나 같은 사람은 사진에 관심만 있지 문외한이나 다름 없는데 선생의 말을 들으니 막연했던 사진에 대해 뭔가 막이 걷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의 무지함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놀라웠던 건 우리나라에 사진사(史)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에 몇 개의 대학에 사진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의 사진사는 가르칠지언정 우리나라 사진사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가르친 바가 없으며 정교수 조차 둔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선생이 강사로 후학들을 가리치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하니, 그가 가는 길이 얼마나 외로운 길인지 미루어 짐작이 갔다.

이경민 선생은 그렇게 우리나라에 귀중한 자료가 될만한 사진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고, 고증하는 일을 한다. 그분은 정말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시는 사람 같았다. 그 증거가 사진아카이브 연구소를 개설하고 뜻있는 몇몇과 이 일을 해오다 지금은 다 자기 살 길 찾아 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일을 놓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건, 우리나라 사진의 역사는 일제시대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데, 당시 일본이 사진으로 우리나라를 얼마나 오도된 의식을 퍼뜨렸는지를 하는 것이다. 특히 기생의 사진을 앞세워 우리나리가 일본의 기생하는 나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지 또는 긴 담뱃대에서 당시의 조선 사람을 나태의 상징으로 만든 것, 또는 저고리 바깥으로 가슴을 내놓고 다녔던 것이 남아선호 사상의 이미지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개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건 정말 새롭게 안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한가지 드는 의문은, 해방이 된지가 몇년인데 이런 역사적 왜곡을 아직도 방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옛 조선 총독부 건물이 철거된지가 몇 년인데 말이다. 우린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 치우면 역사에 지은 죄를 씼을 수 있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우리나라의 학문분야의 발달을 해방 이후로 잡고 있기 때문에 일제 시대는 그야말로 암흑의 시대로 치부해 버려 역사적 고증이 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거기다 학제간의 교류는 말할 것도 없고. 이래서야 학문의 내일을 기약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그날 선생은 여러가지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렇게 단아한 선비 같으신 분이 열정을 가지고 한길을 갈수 있는지 그의 열정에 놀라고, 박식함에 놀라며 그리고 또 하나의 결정타는 시대를 초월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를테면 그도 한땐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전도가 유망한 길을 걸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길을 버리고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거기엔 선생의 낙천적인 천성도 한몫 했으리라. 그가 자신을 일컫어 말하기를, 자신은  무슨 일이든지 주어진 일은 무던히 해내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 그가 사진을 택하기 보단 사진에게 선택 당해버린 그의 운명과도 연관이 있으리라. 그는 참으로 소박하고 정이 많은 인상이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도 그 자리가 전혀 어색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정말 언젠가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

나는 개인적인 용무 때문에 그 자리를 좀 일찍 나와야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오늘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으면 어떻게할뻔했나 정말 뿌듯함이 있었다. 모쪼록 그가 하는 일에 많은 발전과 행운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또한 그 귀한 만남을 갖게해 준 리더스 가이드와 웅진 출판에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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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2-21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 관심은 가는데 어떨까 싶어 지켜보고 있는 중인데 스텔라님 글 보니까 혹하네요. ^^

stella.K 2008-12-22 10:48   좋아요 0 | URL
음, 솔직히 말하면 보기에 따라선 약간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좀 학술서적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읽으면서 내가 정말 사진을 편협하게 보고 있었구나 반성도 하게
되더라구요.^^

L.SHIN 2008-12-22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에 끌려서 들어와 읽었지만, 역시 내용도 좋습니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그리고 거기에 신념을 가지고 앞을 향하는 자는 누구든지 멋있습니다.

stella.K 2008-12-22 10:50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사실 학자라서 좀 재미없을 것 같다는 선입관도 없지 않았지만
실제로 만나 보니까 나름 좋으신 분 같더라구요. 어쩌면 엘신님도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하하.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2009-01-06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헤이안 일본 - 일본 귀족문화의 원류
모로 미야 지음, 노만수 옮김 / 일빛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얼마 전까지만해도 나는 일본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일본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서양의 싸구려 문화와 흡사하며 오타쿠 문화로 대별되는 것외엔 별 볼 일 없는 거라고일축해 버렸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오래 전, 내 친구와 어딘가를 함께 가는 버스 안에서 일본 소설을 가리켜 "백치미 같다"고 까지 표현했을까. 그것도 너무나도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몇 편을 읽고서 말이다. 그나마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주 일본적이지마는 않으며미국적인 요소들이 있어 읽어줬던 건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생각해도 참 얍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최근들어 나의 이런 일본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결정타를 맞은 건 미미 여사의 <모방범>과 김명민이 열연한 <하얀거탑>의 원작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들을 발견했고, 그러다 요즘에 쏟아져 나오는 일련의 일본 영화들을 보면서 나의 그런 콧대 높은 생각들이 완전히 꺽이는 느낌이었다. 왜 나는 일본을 그처럼 얕게 보았던 것일까.

그것은 10년 전쯤에 보았던 <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였던가? 하는 일본 영화를 본 것에서 기인하기도 했다. 그때 그 영화를 얼마나 재미없게 봤던지 그 영화를 마구마구 욕하면서 추천했던 지인을 한통속으로 몰아 넣기를 주저하지 않았더랬다. 그러니까 난 그때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그 나라의 문학이나 영화가 어떻게 발전해 갔는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기엔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 아줌마가 당당히 그 필명을 날리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제야 비로소 앞서 말했던 일련의 작품을 보면서 내가 일본에 대해 몰라도 한참 몰랐다는 후회를 할 밖에.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난 지금이라도 일본 문화에 열광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라도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 되었고 그 관심 때문에 이 책도 관심을 갖고 읽게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대체 일본의 그런 문화의 힘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걸까?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사무라이의 나라가 아닌가? 거기에 뭔가의 저력이 있을 거란 것이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나의 동인을 끌어 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책이 그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책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다. 일본의 귀족문화에 대해 이만큼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상당히 많았고, 읽으면서 나의 일본에 대한 생각은 지극히 표피적이었다는 걸 역시 또 한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20년쯤 전이었던가? 전여옥이 썼던 일본 인상기 <일본은 없다>란 책이 한때 베스트 셀러가 됐다는 것이 오히려 일본에 대한 무지의 소치를 드러내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 화끈거릴 정도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책은 그때 당시 속으론 우리나라의 민족사관을 자극한 것이며 겉으로는 애국주의를 자극한 일종의 퍼포먼스는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무렵 그 해프닝을 잠재 울 어느 일본학자가 <일본은 있다>란 책이 나와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내 말은 그만큼 일본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우린 어떤 사물이나 경향 특히 남의 것을 볼 때 너무 감상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좀 더 냉정하고 이성적일 필요가 있는데 일개 전직 기자가 쓴 책가지고 냄비처럼 열광하다니. 일본 사람이나 다른 여타의 나라 사람들이 볼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순전히 호기심이지만 그 대열에 나도 끼었음을 고백한다.)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그래.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을 알 수 있는 대중서가 얼마나 있었나? 거의 전무하지 않았던가? 그땐 문화의 시대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한 때였고, 막 일본의  대중문화 매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때였다. 일본에 대한 연구서는 <국화와 칼> 정도가 전부였던 때에 어찌보면 전여옥 신드룸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일본에 대한 책들은 심심찮게 쏟아져 나온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일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책들이 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책이 아니라 역시 일본적 이미지 자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데도 별 감흥은 없었다. 그냥 아, 이런 흐름이 있었구나를 아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것은 나의 의식 속에 뿌리 박힌 지울 수 없는 일본에 대한 묘한 느낌인데 그 특유의 여성스러움이 이 책에서 한번 더 확인되어진 느낌 때문인 것 같다.

일본의 헤이안 시대는 우리나라의 신라 시대와 연대를  같이 한다고 한다. 이때 이미 귀족문화가 형성이 되었다고 하니 무시 못할 그 무엇이 있는 건 당연한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그것을 언제부터 볼 수 있는 것일까? 일본 문화의 시조가 그렇게까지 오랜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어디까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걸까? 나름 궁금해졌다. 흔히들 한국의 르네상스라고 하는 정조시대를 말한다면 헤이안 시대 보다 늦어도 한참 늦는 건데 설마 그렇기야 하려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나라의 역사 연구는 좀 더 깊어져야하고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로 미야 아줌마가 이런 책을 낼 정도라고 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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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의 명언 ◈



1.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도 '시나리오가 좋지 않으면 결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는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 어니스트 레먼


2.시나리오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것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 가득 차 있는 저 모든 형편없는 시나리오들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 톰 릭먼


3. 영화의 핵심은 어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4-5분간의 사건들이다.
나머지는 모두 이 순간들에 임팩트와 반향을 주기 위하여 존재한다.
시나리오란 그 순간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 로버트 타우니



4. 희곡과 시나리오에서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창작과정 자체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만 시나리오에서는 그것이 스크린 위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을 빼놓고는. - 어니스트 레먼



5. 원작이 훌륭하다고 해서 영화까지 훌륭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각색과정에서 흔히 발견되는 잘못은 원작의 문학성을 그대로 고수하려는 시도이다. - 윌터 번스틴



6. 영화는 소설이 해낼 수 없는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
영화에는 내러티브를 풀어가는 놀라운 도구인 사이즈와 스코프라는 것이 있는 까닭이다.
영화와 소설은 전혀 다른 예술양식이다. 그 둘 사이에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저 대사가 사용된다는 것 정도이다.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 속의 한 신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문제는,
소설가가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어떻게 T는가 하는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 윌리엄 골드먼



7.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 윌리엄 골드먼



8. 나는 시나리오 작가이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현장에서 감독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도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언제나 협동을 필요로 한다.
내가 보기에 작가주의 이론이란 학자들이 그저 어떤 개인을 손쉽게 찬양하거나,
비난하려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그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이론일 뿐,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 로버트 타우니



9. 영화는 필연적으로 협동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 빌 위틀리프



10. 기본적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사람은 일곱이다.
이들이 제각기 최선을 다해야만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진다.
그들을 무순으로 나열해보자면 감독, 제작자, 배우들(원화면 동화맨), 촬영감독(레이아웃),
미술감독(아트디렉터), 편집자,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이다.
때로는 영화음악가가 막중한 역할을 해낼 때도 있다. - 윌리엄 골드먼



11. 모두가 자신이 맡은 바를 제대로 해낼 때면 그들 각자의 작업들이 하나로 융합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물론 작가는 작가이고, 배우는 배우이며, 감독은 감독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각자가 맡고 있는 작업들을
한데 융합시키며 일할 때라야 진정으로 함께 일한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로버트 타우니



12. 스토리는 캐릭터와 함께 시작된다. - 프랭크 대니얼



13. 작가는 결코 알 수 없는 반면 관객은 언제나 알고 있다.
작가가 제아무리 자신이 쓴 작품의 성공을 확신한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스태프들 내부의
시사실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관객은 언제나 작가에게
그가 결코 알 수 없었던 어떤 것을 갑자기 알려주는 법이다. - 어니스트 레먼



14. 영화에서 가장 큰 죄악은 관객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다. - 프랭크 대니얼



15. 우선은 다루려고 하는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내가 결코 듣도 보도 못한 어떤 것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빌 위틀리프



16. 관객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그가 고통을 받고 있다거나 짓눌려 있다거나 하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관객은 그가 자신이 처해 있는 처지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감정이입을 한다. - 윌터 번스틴



17. 제1장에서는 등장인물들과 전체의 스토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다룬다.
제2장에서는 그 상황이 진척되어 갈등의 최고조에 이르게 되는 커다란 문제를 다룬다.
제3장에서는 갈등과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가를 다룬다. - 어니스트 레먼



18. 나는 내가 원하는 상황 속으로 캐릭터들을 억지로 밀어넣으려 하지 않는다.
캐릭터들이 충분히 리얼하게 그려졌다면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원하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줄 것이다. - 빌 위틀리프



19.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주변환경 사이에는 반드시 어떤 종류의 상호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 윌터 번스틴



20. 나는 결코 등장인물과 따로 놀고 있는 플롯을 짜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써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스토리가 누구에 관한 것인지,
주인공은 누구인지를 분명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가령 악당에 관한 시나리오를 쓸 경우
내가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그 악당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여
무시무시하지만 흥미로운 인물, 설득력 있고 매혹적인 인물로 만드는 일이다. - 윌터 번스틴



21. 중요한 것은 종이 위에 어떻게 쓰여 있는가가 아니라 스크린 위에 어떻게 보여지는가이다. - 톰 릭먼



22. 스토리가 허락하는 한 타임프레임을 짧게 설정하라 - 링 라드너 주니어



23. 당신에게 허락된 시간에 비해 스토리가 너무 많아선 안 된다. - 톰 릭먼



24. 관객에게 설명하려 들지말라. 그러면 관객은 방관자로 남게 된다.
대신 관객에게 조금씩 보여줘라. 그러면 관객은 등장인물이 체험하는 것과 똑같은 형식으로
그것을 체험하게 됨으로써 참여자가 된다. - 빌 위틀리프



25.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 작가는 그의 사회적 지적 역사적 정치적 입장을 확정지어야 한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무엇을 위하여 또는 무엇에 반하여 행동하는가? - 윌터 번스틴



26. 내게 있어서의 키워드는 언제나 '갈등'이다. 이 스토리의 갈등은 무엇인가?
내가 들려주고 싶어하는 스토리를 가능하게 하는 갈등은 어떤 것인가? - 윌터 번스틴



27. 만약 캐릭터가 살아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를 쫓아다니기에도 벅찰 따름이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
혹은 스토리텔링이 마법으로 화하는 순간이 바로 그런 때이다. - 빌 위틀리프



28. 만약 오프닝에서 너무 많은 액션과 흥분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면 뒤이어 많은 설명이 필요하게 되고
캐릭터의 변화와 발전 또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그토록 멋진 오프닝으로 시작된 지 겨우 20여 분만에
영화는 주저앉아 버리게 만다. 내가 좀더 소프트한 오프닝을 선호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오프닝에서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용서해주지만
엔딩에 이르면 거의 아무것도 용서하려 들지 않는 것이 바로 관객이다.
만약 관객이 엔딩에 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이르기 전까지 아무리 잘해왔어도 소용이 없다. - 로버트 타우니



29.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목수일을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종류의 구조물을 세워놓고 그 위에서 부산을 떨어대는 것이다.
그 구조물이 유지되고 있는 한 무엇을 쓰든 상관없다.
대사야 어찌되든 관계없이 그 장면은 버틸 수 있는 것이다. - 윌리엄 골드먼



30. 드라마의 핵심은 캐릭터의 변화이다. 엔딩의 캐릭터가 오프닝의 캐릭터와 같은 인물이어서는 안 된다.
캐릭터는 변한다 - 정신적으로 어쩌면 육체적으로까지. - 로버트 타우니



31. 관객은 쉽게 동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동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에만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길 원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원하고, 무언가에 의하여 충만해지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찌됐건 그들은 어떤 종류의 매듭이 지어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 톰 릭먼



32. 주제는 오프닝에서부터 멋지고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 패디 차예프스키



33. 시나리오를 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나리오를 통하여 억지로 무언가를 증명해내려 쓰는 것이다. - 윌터 커어



34. 서브플롯 내에서 장난을 칠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도대체 여기에서 뭘 하고 있나? 이건 꼭 필요한가? 이것은 메인플롯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만약 이것을 없애버린다면 영화가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 윌터 번스틴



35. 극본을 쓸 때 가장 중요한 테크닉 중의 하나는 캐릭터들이 내뱉는 대사 속에 작가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관객이 자기가 지금 어떤 현실을 체험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대사 속에 극작가의 개인적인 의견이 억지로 담겨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 - 헨리크 입센



36. 구조적인 통일성이란 이런 것이다. 어떤 한 부분을 없애버리거나 옮길 때 전체가 어긋나거나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된다.
어떤 부분이 있건 없건 별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전체의 유기적인 부분이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37. 궁극적으로 당신이 신경써야할 것은 당신의 스토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이다. 구조야말로 당신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궁극적이고 기본적인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일단 스토리의 구조를 확장하고 나면 모든 것은 그 구조에 얽매어 있게 마련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작가가 그 구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면 결과는 멋지게 나온다. 만약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해도 결과는 영 아니올시다가 되고 만다. - 윌리엄 골드먼



38.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은 설명이 필요한 장면에서 갈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작가가 관객에게 알려줘야 될 설명이 캐릭터의 대사를 통해서 전달될 수 있다.
비록 그 대사들이 지극히 설명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관객이 설명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자신이 그 사건을 목격하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명적인 부분을 희석화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은 유머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 어니스트 레먼



39. 플롯상의 어떤 목적에 맞추어 캐릭터를 창조해내면 필시 평면적이고 스테레오타입이며 죽어있는 캐릭터가 되고 만다. - 톰 릭먼



40. 어떤 장면을 넣을 것인가 뺄 것인가. 어떤 정보를 극화시킬 것인가 그저 단순히 언급할 것인가.
어떤 장면을 실제로 보여줄 것인가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시나리오 작가이다. - 어니스트 레먼



41. 잘라낼 수만 있다면 아무리 짧은 장면이라도 무조건 잘라내라 - 윌리엄 골드먼



42. 때로는 자신이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 것이라도 써보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당신도 모르고 있던) 당신 내면의 무엇인가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도 실제로는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당신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언제나 일종의 '발견'이다. - 빌 위틀리프



43. 나는 아웃라인을 정해놓고 쓴다.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인지는 알아야 하니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구를 통해서 말해야 하나?
이 스토리는 무엇에 관한 것인가? 이 스토리의 갈등은 무엇인가? 해결은 어떻게 될 것인가? - 윌리 번스틴



44. 나는 신의 리스트를 만든다.
실제의 신은 아니다 그저 단순히 어떤 키워드로만 이루어져 있는 리스트이다. - 윌리엄 골드먼



45. 대체로 나는 어떤 작은 충동으로부터 스토리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을 계속 붙들고 늘어지면 무언가 좀더 재미있는 것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때즘 되면 최초의 작은 충동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 빌 위틀리프



46. 극적효과란 개연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가능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47. 행동과 활동의 차이 : 많은 일들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 사이에 어떤 갈등도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드라마틱한 행동이 전형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활동만 있을 뿐이다. - 프랭크 대니얼



48. 상상한 캐릭터들을 등장시킨다. 그리고는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계속 따라간다.
대사는 그런 과정에서 나온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작가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 대사를 고쳐쓰고 잘라내고 다듬는다. 그 장면에 가장 정확하게 들어 맞을 때까지 - 패디 차예프스키



49. 시나리오는 대사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배우의 입을 통해서 나온 대사는 모두 시나리오 작가가 썼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시나리오 작가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임무는 대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 윌리엄 골드먼



50. 현재 영화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떠들어대는 대사야말로 최악의 대사이다. - 톰 릭먼



51. 시나리오 작가는 자기가 쓴 대사가 어떻게 들릴지를 결코 알 수 없다.
기막힌 노릇이다. 그것이 제대로 쓰여졌는지의 여부를 알게 되는 것은 항상 너무 늦은 시간이다. - 어니스트 레먼



52. 시나리오를 쓸 때 몇 줄의 대사로 시작한 다음 방안의 풍경을 묘사할 수도 있다.
그리고는 다시 대사를 몇 줄 쓰고 의상들을 언급하고 또 대사를 써나가고...
그러나 카메라는 이 모든 것을 단 한순간에 처리해버린다. 차르르르...!
그러면 이미 시작된 거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카메라는 자비가 없다.
시나리오 작가는 쉬지 말고 뛰어야 한다. - 윌리엄 골드먼



53.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장면 안에 나오는 모든 것을 다 써넣으려고 했다.
이제 나는 특별히 어떤 것을 지목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결코 그런 식으로 쓰지 않는다. - 윌터 번스틴



54. 중요한 것은 마스터 신을 쓰는 것이다.
나는 희곡작가들이 그러는 것처럼 간단하게 무대 위의 상황을 지시할 뿐이다.
카메라르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따위는 쓸 필요가 없다. - 패디 차예프스키



55. 나는 모든 것을 본다. 머리 속에서 그 장면을 미리 그려보는 것이다.
나는 결코 대사만을 써내려가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머리 속에서
그 장면에서 벌어지는 행동들을 실연해본다. - 어니스트 레먼



56. 시나리오 작가는 매 장면마다 가능한 한 가장 늦게 들어가야 한다. - 윌리엄 골드먼



57. 대부분의 사람들은 닥친 문제를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가 너무 두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편하게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의 누리는 편안함의 이면에는 대개 공포나 분노 혹은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도사리고 있다.
드라마틱한 상황이라는 바로 이런 것들이 표면화되는 시점을 뜻한다.
그러나 너무 쉽게 표면화되면 현실성 없이 보인다. - 로버트 타우니



58. 캐릭터들을 억지로 플롯에 들어맞추려 들면 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 톰 릭먼



59. 전체를 드러내되 그 끝은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어떤 것... 그런 것이 좋은 장면을 만든다. - 빌 위틀리프



60. 나는 고쳐쓰기를 신봉한다. 고쳐쓰기는 단순히 고쳐쓰기가 아니다.
그것은 달리 생각해 보는 것이며 컨셉 자체를 달리 잡아보는 것이며,
새롭게 접근해보는 것이다. - 톰 릭먼



61. 쓴다는 것은 곧 고쳐쓴다는 뜻이다. 때로는 영화가 완성된 다음에조차 이런 소리가 나온다.
한 번만 더 손을 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윌터 번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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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사진에 박히다 - 사진으로 읽는 한국 근대 문화사
이경민 지음 / 산책자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여전히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진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보아 온 사진들은 거의 대부분이 예술적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의 단순한 잣대로만 봐 왔던 것 같다. 하긴 내가 관심있어 하는 쪽은 대부분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사진이나 정물 사진들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알고 보면 사진은 꼭 그렇게 풍광이나 정물, 사람의 다양한 표정만을 담고 있지는 않는다. 

이 책은 나의 이런 단순한 잣대를 여지없이 깨 주는데 더 없이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은 사진이란 매개를 통해 우리나라 근대사를 조명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더불어 사진이란 물건이 우리나라 역사에 출연함으로 인해서 역사를 어떻게 바꿔왔는가라는 쌍방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은 때로 정치적 권력을 목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사회 문화적 변혁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기에 더 없이 좋은 도구였음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내용은 하나 같이 제법 흥미롭다. 사진은 보도 자료로도 사용되기도 했지만, 특히 사진을 가지고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기도 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황홀한)자살을 유도하기도 했고, 그 시대나 이 시대나 여전히 포르노그라피로의 도구로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하게 쓰였던 사진이긴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사진은 아름다운 것 또는 어느 특정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만 쓰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보다 내밀하고, 심층적이며, 때론 인간의 욕망을 여지없이 까발리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사진을 보는 눈이 좀 넓어진 느낌이다. 이 책은 사진으로 보는 우리나라의 근대사뿐만 아니라 사진의 사진사(史)로서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사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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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쿠 김홍도의 비밀
백금남 지음 / 한강수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집어 들은 건 순전히 어느 한 책 때문이고 그것을 드라마로 만들어 지금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기 때문이란 걸 부인할 수가 없다. 또한 그것은 신윤복을 다루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김홍도를 알고 싶어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관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화인에 대한 삶은 이제까지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가 요즘 팩션이란 장르를 힘잆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팩션이 어느 한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것이라 읽다보면 실제로 그 사람의 삶이 어땠나 궁금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신윤복이든, 김홍도든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 정확한 사료가 없다고 하니 안타깝다.

그래도 이 책을 보면 저자가 김홍도를 작품속에서 살려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저자는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세계 3대 초상화가로 일컬어지고,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은 유럽 인상파 화가들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일본의 천재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 그가 김홍도라는 가설(334p~335p)에서 이 책을 쓸 생각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서익채라고 하는 당시 검시관을 통해 사라진 김홍도를 추적하고, 조희룡이란 제자를 통해 스승 김홍도를 추억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물론 서익채나 조희룡은 가상의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상당히 짜임새가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와 공력을 들였을지 알 것 같다.

특히 난 조희룡이가 스승을 추억하는 장면에서 김홍도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예술에 대하여 그리고 천재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김홍도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마직막 부분에서 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닥 크게 문제 삼을 건 못되지만, 그래도 그때 당시 한 여자에게 애인이 있을 거란 건 어찌보면 현대적 감각을 유지하고 싶었던 작가의 작은 바람 때문은 아니었을까 해서 실소를 하기도 했다. 뭐 없으란 법도 없겠지. 아무리 엄격한 유교 사회라 할지라도. 그리고 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약간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도 없진 않다. 그래도 관심을 갖고 읽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서든 팩션이란 문학장르를 통해서든 나 같은 벽안의 독자가 우리 예인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반가운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해서 일선 작가들의 수고와 선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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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6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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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6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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