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케인 - Citizen Kan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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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두번째로 봤다.
흑백 필름이고 워낙에 오래된 영화라 지루하다고 생각해서 지
루한 감이 없지않다.
하지만 이제보니 생각보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사람들의 인터뷰로 극적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진 영화가 뭐가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나는 언듯 영화<파이란>이나 <불멸의 연인들>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20세기 영화사에서 불멸의 작품으로 꼽는 작품에 <시민케인>을 넣곤 한다.
그런데 새롭게안 사실은 이 영화는 당시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으며
아카데미에서도 각본상 외 받은 것이 없다고 한다.(난 솔직히 9개 부문쯤 될 줄 알았다)

말에 의하면 바로 그 점이 아카데미 역사상의 몇 안되는 실수중의 하나라고 전한단.
그렇게도 유명하다던 오손 웰즈가 나오는데 감독상이나 남우 주연상 정도는 줘야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오늘날 이 작품이 위대한 걸작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뭐가 있을까?
내가 볼 땐 가장 미국적 정서를 잘 담아내면서 한 인간의 흥망성쇄를 잘 표현해 줬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미디어로 갑부가 된 케인이 미디어에 의해 몰락해 가는 그것.


 

물론 영화적 기법으로 볼 때 탁월한 점도 많겠지만, 난 솔직히 그딴 건 잘 모르겠다.
단지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인상적 장면을 꼽으라면, 초반에 어린 케인이 눈 오늘 날 혼자 눈장난을 하면서 놀고 있는 장면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했다가 그것을 쭉 뽑아 실내로 들여오면서 케인의 어머니의 시선으로 처리해 준 장면이 어찌보면 몽환적이기도 하고 좋았다.(그 스틸 컷이 없어 아쉽다.) 

이야기에서의 서스펜스도 잘 녹아져 있는 것 같다.
로즈버드란 상징적 물건을 통해서 약간의 미스테리적 효과도 노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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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정원에서 -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정미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15,000원 → 10,500원(30%할인) / 마일리지 110원(1% 적립)
평점 마이리뷰(7) 구매자40자평(4) | 세일즈포인트 : 6,510

수령예상일 : 지금 주문하면 내일 받을 수 있습니다.

 




반값도서만 100권, 스테디셀러 2,000종 최대 50% 세일!

역사에서 종교적, 사회적 이유로 금기시 되어온 음식의 역사를 다룬 책. 금기의 음식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대 죄악 - 색욕, 폭식, 오만, 나태, 탐욕, 불경, 분노-에 따라 구분하고 이들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책 얼마 전까지 만해도 50% DC된 가격에 판다고 나와 있었다. 

할인기간이 3월 2일까지로 나와 있어서 그 안에 사려고 찜해둔 책이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30%으로 올라 앉았다. 그렇다면 이게 언제...? 

그나마 여전히 50% 목록에 끼어있다. 

알라딘,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지? 

30% 올라 앉아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이 책을 사?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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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19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 때면 책값이 꼭 주가지수같습니다.

Kitty 2009-02-19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알라딘이 인력이 부족한가봐요. 불만이 여기저기서 들리네요.
저도 자꾸 에러나서 좀 짜증난 상태;;;

stella.K 2009-02-1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 키티님, 오랜만이어요.
전 저 책을 애초에 30% 디씨해서 파는 것 같았으면 불만을 갖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가격을 바꾸는 건 뭐란 말입니까?
꼭 알라딘이 책을 사는 사람들을 우롱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는 거죠.
이런 거 이번이 처음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래봐야 알라딘에게나 소비자들에게나 하나도 좋을 것이 없다는 거죠.

하이드 2009-02-19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때 산 저는 50% 보고 속이 좀 쓰렸답니다;; 율리시즈도 빨리 사 두어야 하는거 아닌가 싶으네요.

stella.K 2009-02-19 18:26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이게 참 그렇더라구요.
쌀 때 책을 사면 그동안 비싸서 못 산 것을 싸게 살 수 있다고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님 아직 안 사도 되는 걸 충동구매로
사게 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다 한끗 차이일텐데 말이죠.
그래도 저 책은 정말 군침도는 책이어요^^

알라딘도서팀 2009-02-19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stella09님, 알라딘 도서팀입니다. 담당자가 그만 실수를 했네요. 지금 할인 행사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은 미처하지 못하고, 이전에 할인 행사했던 게 아직까지 할인율이 정상적으로 변경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고 할인율을 수정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다시 50% 할인으로 돌아간 상태입니다. 혼란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ㅜㅜ

stella.K 2009-02-19 18:2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괜히 흥분했나 봅니다.
앞으로 착오된 게 있다면 즉시 신고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2009-02-19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9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리대왕 - Lord Of The Flie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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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19년이나 됐다고 하니 나는 그 무렵 TV에서 보지 않았을까?
그렇게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오래 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무인도라는 고립된 섬에서 아이들을 거의 발가벗겨 놓고 찍어서 일까?
의상비는 거의 들지 않았겠다 싶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 더 드는 생각은 인간에 대한 통찰을 여지 없이 보여준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낡아지지 않는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잘 알다시피 이 영화는 199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골딩의 작품을 영화화 한 것으로
인간의 원시적인 본능을 이제 10살을 갓넘었을 소년들의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왜 꼭 그만한 소년들을 등장시켰을까?
추측컨대 자아에 눈뜰 나이이고, 어린 아이의 순수함과 성인으로 넘어가는 그 경계선상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본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은 아닐까?

 
무인도란 공간은 그들에게 있어 마법의 공간과 같은 곳이다.
거기서 인간의 문화성과 원시성이 대립을 한다.
문화성은 잘 교육되어지고, 자기 보단 남을 생각하며, 개인 보단 전체를 생각하는 것으로,
몇몇의 아이들이 집을 그리워 하고 몇시냐고 물어보고,
집에 있었으면 무슨 TV프로를 봤을거라며 읊조린다.
그리고 서로를 위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갈등을 겪으면서 두 파로 나뉜다.
하나는 원시파. 하나는 문화파라고나 해야할까?
당연 그런 환경에선 원시파에 아이들은 몰리고 문화파는 얼마 되지 않는다.
원시파는 현재 지금의 상황에 더 충실하고, 문화파는 이 섬에서 구출되어 나갔을 때의 미래를  상징한다.

불은 원시적 본능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아이들은 불 앞에서 놀고, 불 앞에서 권력 다툼을 하며, 불 앞에서 살인을 한다.
문화파는 상대적으로 약자의 세력이며 둘이 남았고 그나마 한 아이는 돌에 맞아 즉사를 하고 만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소년은 원시파를 피해 사정없이 달리다가 숲속을 뛰쳐 나와 해변가 다다르고
자기네들을 구출해 줄 어느 헌병 아저씨 앞에 고꾸라졌을 때야 비로소 이 악몽이 끝났음을 감지한다.
그들의 마법은 그 헌병이 "아니, 너희들 여기서 뭐하는 거니?"했을 때야 깨어나는 것이다.

물론 그 후에 남아있을 이야기들은 관객의 상상에 맡긴채 영화는 끝난다. 훌륭했다.
오래 전 영화를 보았을 땐 그 헌병의 마법을 깨주는 대사 하나만을 기억했는데
지금보니 영화 진행에 있어서 보여지는 에피소드들이 대단하다.
무인도라고 하는 한정된 공간에서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연출이 가능할까?

무인도라고 하는 공간이 주는 마법이 인간의 역할 놀이에 대한 상당한 통찰을 보여준다.
깨어났을 때 트라우마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그것까지는 보여주지 않지만 충분히 짐작은 가능하게 한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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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 - 우리가 아직 몰랐던 사랑의 심리
헬렌 피셔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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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봄날은 간다>란 영환가 보다. 거기서 보면 유지태가 자신을 떠나려는 이영애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화니?"라며 어떻게든 사랑하는 연인을 붙들고 싶어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생각이 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랑은 변한다. 변하지 말래도 변한다. 그래서 사랑은 맞이할 땐 가슴이 터져나가도록 뿌듯한 것인 동시에 떠날 땐 차갑고 아프며 싸늘한 것이다.  

이 책은 사랑의 시작부터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식어져 가는가를 추적하는 한 문화인류학자의 보고서이다. 또한 사랑이 어떻게 진화해 왔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 갈 것인가의 전망 또한 담겨있다.  

언젠가 나는 사랑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후배들 중엔(꼭 내가 그맘 때) 연애 같은 것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사랑에 얼마나 잘 빠지는가? 요는 따지고 보면 나나 그들은 결혼할 생각이 없는거지 사랑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사랑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작년 가을, 한 남자 후배는 "사랑도 하도 안하니까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겠더라구요."라고 해서 내심 놀란 적이 있었다. 그렇다. 육체도 어느 한 부분 사용을 안하면 퇴화 되듯이 사랑도 오래도록 안하면 그렇게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사랑 그것이 얼마나 덧없고 꿈 같은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사랑의 감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것은 신들의 장난이다.(책에서는 '신들의 정신착란'이라고 했다.) 어떻게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것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 인간은 그 사랑을 얼마나 성숙하게 잘 가꿔나갈 것이냐가 관건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 남자 후배가 그렇게 말하는 건 사실 틀린 말이고 바람직 하지도 않다. 그렇게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사랑의 감각'을 쓰지 않다가 어느 날 준비도 되어있지 않는데 갑자기 사랑을 맞이하면 어쩌려고? 또한 그렇게 사랑을 갑자기 시작했다가 떠나 보낼 땐 어떻게 떠나 보낼려고? 

혹자는 그렇게도 말한다. 사랑은 하고 싶은데 사랑할만한 대상이 없다고. 하지만 뭐든 찾지 않은 사람에게 사랑이 올리 없을 것이다. 사랑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만한 댓가를 치르고 얻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약한 존재여서 사랑할 때 이별할 것을 걱정하고, 사랑을 고백할 때 거절당할까봐 걱정한다. 하지만 아직 있지도 않은 현실에 집착하지 말아야할 것이며, 거절 당하더라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사랑은 큰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사랑이 거절 당했을 때의 사람의 심리적 반응과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스토커가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써놓고 있기도 한다.       

사실 나 역시도 사랑에 그다지 익숙한 사람은 못된다. 어느 순간 좋은 감정을 갖다가도 재빠르게 상대가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를 알면 얼른 꼬리를 내려버리곤 한다. 또한 과연 내가 이 사람에게 이토록 마음이 가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헷갈릴 때도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애써 사랑에 담담한 척 해 온 것도 사실이다. 왜 사랑 앞에 당당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이는 적지 않으면서 사랑은 여전히 아이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관심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동시에 세상에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사랑을 하지만 사랑에 미숙한 관계로 해어질 땐 애초부터 서로 몰랐던 사람 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보고 그 간극을 좁혀 볼 수는 없을까 하는 마음이 또한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사실 이책은 오래전 선물로 받고 이제야 읽은 책이다.) 

사랑도 공부해야 한다는 것에 쉽게 인정을 안 하거나,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론 쉬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왠지 사랑은 몸으로 부딪혀 알아야할 것만 같고, 그렇게 책 보며 이론적으로 바싹해지면 진짜 사랑을 맞을 땐 그 감동이 반감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 하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은 나의 앞으로의 생에 작게든 크게든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인데 그 사람이 앞으로의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을 하면 그렇게 무방비하게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것인가? 

이 책 말미에 보면 사랑이 점점 늦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지적한 부분이 있다. 그렇게 늦어지는 것은 출산과도 연결이 되는데, 사랑해서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가 자랄 때까지 어마 어마한 비용을 충당해야 할 것이 부담스러 그것을 피해 가려다 보니 늦어지는 거라고.(이쯤되면 사랑도 나라에서 관리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하지만 통제된 사회에서의 사랑이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알만한 이야기 같긴하다. 이렇게 알고보면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하고 숭고하지만도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오히려 사랑은 약은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사랑을 알지 않으면 사랑이 우리를 전복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사랑, 빠지기 전에 공부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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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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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다. 처음엔 시작부터 원작과 너무 달라 '그래, 형만한 아우없다고 원작에 버금가는 영화가 흔한게 아니지.'하며 내심 혀를 끌끌 찼다고나 할까? 더구나 시나리오 쓰는 사람에게 있어 가급적 피해가야 할 것이 '플래시백'이라는 것인데 이를테면 현재에 과거 얘기를 하는 것으로 교차방식을 의미한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이걸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으니 이쯤되면 아는게 병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편견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부터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서 봤더란 말인가? 고작 운이 좋아 이번에 처음? 또는 아주 아주 오랜만에  같이 본 걸 가지고 어느새 뻐기는 건 아닐까? 그래도 난 앞으로 될 수 있는대로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서 보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스토리텔링의 세계에선 원작과 영화는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니까. 이 작품만 해도  원작이 먼저 나오고 영화가 나왔다. 모르긴 해도 출판계에서는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상륙할 것이라는 정보를 어디선가 입수하고 판형을 달리해서 재출간한 것은 아닐까 싶다. 아무튼 난 영화를 생각할 때 원작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닐테지만)그럴 경우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편이니까.     

영화는 생각 보다 길었다. 거의 3시간 가까이 했으니까. 오히려 영화를 보고나면 원작은 벤자민 버튼의 인생을 밋밋하게 또는 총론격으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약간의 스포일러도 있긴 하지만, 원작에선 벤자민 버튼의 부모가 모든 운명을 감수하고 벤자민을 키우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영화에선 엄마가 벤자민을 낳다 죽고 아버지는 도저히 키울 자신이 없자 어느 흑인의 집에 버린다는 설정이다. 어찌보면 그 설정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런데 왜 감독은 아기를 흑인의 집에 버리는 것으로 설정했을까? 백인이며 있는 사람이 아프고 괴상한 것 견뎌낼 것 같지 않으니까 오래도록 착취 당하고 고통 당했던 흑인이 모든 운명을 감수하기가 더 그럴 듯해 보인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오마바를 의식한 걸까?ㅎ 

아무튼 영화는 적당히 몽환적이기도 하고 또 그럴 듯하게 현실감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관객을 설득하기엔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이다. 꼬마노인 역에서 대역을 썼는지 어땠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점점 젊어지는 쪽으로의 연기는 가히 탁월해 보인다. 그에 못지않게 상대역인 데이지 역의 케이트 블란쳇의 소녀에서 노인역도 볼만했다. 

영화는 영화답게 이들의 사랑에 무게를 싣는다. 영화에서 사랑을 다루지 않는다면 그 무슨 재미로 영화를 보겠는가? 그래서 영화와 소설이 다르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작은 사랑도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평범하게 지나가는데 비해 영화에서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은 그야말로 물결친다. 

영화는, 40이 넘은 나이에 벤자민과 데이지가 아기를 낳게 된다. 하지만 벤자민은 젊음의 정점에서 자신이 점점 아이로 변할 것을 생각한다. 자신과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자기는 겉으론 점점 어려지지만 속은 점점 노쇄해질 것이고, 딸은 어머니의 손을 필요로 할 것이다. 게다가 특수한 아버지의 존재를 딸이 받아 들이지 못할거라고 생각해서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 부분이 어찌나 짠하던지. 나중에 갓난 아기가 돼서 늙은 연인의 품안에서 죽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묘한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벤자민처럼 사람이 젊을 때 더 많은 지혜와 인생을 관조하는 혜안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젊을 때 한때의 방황과 실패도 훨씬 덜할텐데... 우린 누구나 젊을 때 많은 실수와 방황을 하고 늙어서 젊은 날을 그리고하고 후회한다. 그래도 다행 아닌가? 우리에게 늙을 수 있다는 게? 늙지도 않으면서 과거는 잊혀지지 않는다면 그 또한 저주받은 인생은 아닐런지.  

솔직히 난 처음에 주인공을 부러워 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나서는 이대로 천천히 늙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괜시리 이 영화의 원작자인 피츠제럴드씨에게 고마움이 느껴졌다. 이런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준 것에 대해. 또한 영화가 끝나는 것을 보면서 원작의 의도를 헤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영화가 영화다울 수 있도록 수작을 만든 감독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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