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이벤트 종료)
과속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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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보니 이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하긴 내가 제때 요즘 잘 나가는 영화를 몇 편이나 챙겨 보겠는가? 거의 대부분 철지나 보고 뒷북치듯 야, 그 영화 어떻더라, 저떻더라 떠드는 게 내 일인인 것을... 

이 영화가 처음 걸렸을 땐 그렇고 그런 삼류 양아치 영환줄 알았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반응이 좋아 보였다. 

과속 스캔들이라...약간 촌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뭔가 궁금하게 만드는 어정쩡함이 있다.  

그래도 역시 제목에선 그다지 좋은 점수는 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 정말 제대로 잘 만들었단 생각이 든다. 기획이나 컨셉. 배우들의 연기력 나무랄 때가 없다. 

보는 내내 웃었고 즐겁게 보았다. 

사실 코믹 가족극 몇 번 보진 않았지만 그냥 그만 그만하게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허리우드 공식에 딱 맞아 떨어지게 만들었다.  정말 영화가 업그레이드 됐구나 싶어 흐뭇함이 느껴졌다.  



특히 박보영의 연기가 정말 빛나 보인다. 이렇게 연기를 잘할 줄이야! 노래도 직접 불렀을까?  

애늙은이 같은 왕현석의 연기도 과연 볼만했다. 차태연의 연기야 그냥 녹슬지 않았다는 점에서 봐줄만 하지 않았을까? 

사실 저런 가족 형태가 없으란 법은 없겠지. 

젊은 할아버지에 젊은 엄마. 그리고 이들에게 어울릴 법한 아들겸 손자. 

이번엔 부전여전인가? 어린 날 순간의 실수로 애를 갖게 했고 가졌지만 참 이들에게 낙태를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이 아니겠는가? 

작년에 시나리오를 공부했을 때 나의 사부님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영화 작품을 볼 때 이 영화가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우리가 보는 영화는 스캔들이 사랑 이야기로 둔갑시킬 수 있으며, 세태나 사회 현상을 담아 낼 수는 있지만 그것을 계몽하려고 까지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보다보면 약간의 씁쓸함도 없진 않다.  

미성년의 성행위와 그로인한 출산. 미혼모는 사회적으로 부각이 되지만 부혼부는 상대적으로 가리워져 있다는 것. 

그들이 낙태하지 않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책임져 나가려는 노력에 사회가 뒤따르지 못하는 것. 

이렇게 미성년의 아기 출산은 빨라지고 있는데 한쪽에선 아기를 낳지 않으려하는 것 때문에 출산장려책을 써야하는 이 사회의 불균형이 영화엔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자연 떠올리게 만든다. 

이제라도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뒷바침을 해 줘야 하지 않을까? 

미성년의 임신과 출산은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지 오래다. 

미국 같은데서는 고등학생도 아기를 않고 당당히 학교에 공부하고 오는 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 하지 않는 시대를 맞이한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선 학교부터 그만 둬야하고 쉬쉬하며 자기 호적에도 올리지 못하고 부모의 호적에 올린다. 물론 미성년이라 자신의 호적에 올릴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더 이상 쉬쉬한다고 문제해결이 되는 건 아니다. 

옛날에 열일곱, 열여덞에 애를 낳는다고 하면 그들의 나이는 결코 이른 나이도 아니다. 그러는 동안에 사회는 고도화 됐다고 하면서도 이런 문제는 뒷걸음만 치고 있으니 이 사회 높으신 분들은 뭐 하시나 씁쓸할 밖에. 

그래도 영화는 시종 밝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한마디로 얄밉게 잘만든 영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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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5-09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제목도 좋고..내용도 많이 와 닿네요.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밝고 코믹한 영화긴 하지만..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결말부분이 좀 아쉬웠어요.
그래도 이 영화, 현호 낳고 처음으로 웃으면서 본 영화라 기억에 많이 남을 듯 해요. ^^

stella.K 2009-05-09 20:03   좋아요 0 | URL
그랬구나. 현호 저 꼬마애 보다 더 귀엽게 자라고 있겠지?^^
 




[동아광장/서하진]소설가로 산다는 것


어느 직업에나 어려움이 없지 않겠으나 대한민국에서 소설가로 사는 일은 참으로 지난하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금전적인 부분일 터. 후배 소설가에게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하면 이렇다. 30대이고 미혼인 후배가 어느 날 결혼정보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냥 끊을까 하다 자신이 대체 몇 점짜리 신랑일까 궁금해지더란다. 키는? 체중은? 출신 학교는? 부모님은? 사는 지역은? 자가인가, 전세인가? 세세한 질문이 이어졌다.

결혼정보회사가 매긴 점수는

신체 건강하고 외모로 보자면 남에게 빠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던 후배는 178cm, 72kg, K대학, 교수, 청담동, 자가의 순으로 차례로 답을 했는데 다음 질문이 직업이었다. 잠시 망설이다 소설가라고 정직하게 답을 한 순간 저편의 상대는 아,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고는 죄송하다, 실례가 많았다 하고 전화를 끊더라는 얘기였다. “당연하지. 소설가는 그런 직업 순위 20위 밖이다”라고 다른 소설가 한 사람이 지적하자마자 평론하는 후배가 자탄을 뱉었다. “평론가는 아예 항목에도 없어요.” 좌중에 왁자한 웃음이 터졌지만 모두의 표정은 씁쓸했다.

소설가의 수입은 대체 얼마나 될까. 단편소설 한 편을 쓰면 100만 원 내외의 고료를 받고 연평균 4편쯤의 소설을 발표하니 400만 원, 2년 정도 모은 소설을 묶어 출간하고 받는 인세가 초판 3000부이면 300만 원, 그러니 연평균 550만 원가량? 월평균 45만 원이면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선정 기준인 월 43만 원을 가까스로, 그야말로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니 결혼정보회사 직원이 “실례가 많았다”고 전화를 끊은 것도 결코 무리라고 할 수 없다.

소설을 쓰면, 책을 내면 엄청난 인세를 받고 부자 대열에 끼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키스 더 걸(Kiss the girl)’로 잘 알려진 미국 스릴러 작가 제임스 패터슨은 1년간 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하고 저 유명한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매일 10억 원(!!)의 인세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수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작가, 억대의 세금을 걱정하는 작가가 없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소설가는 밥 벌어먹기 어려운 직업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최인호, 안티가 있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화제의 책을 써내는 이문열이 있고 후일담 설화 귀신,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종횡으로 오가며 베스트셀러 소설을 양산하는 황석영이 있다.

내는 책마다 수십만 부, 심지어 백만에 육박하는 판매부수를 올리는 공지영 같은 작가도 있고 결혼 상대에게 최고급 외제차를 선물했다는 모 작가의 이야기도 있다. 이뿐이랴, 인세 수익만으로 고환율 시대에 아이의 유학비용을 거뜬히 감당하는 여성 작가의 놀라운 이야기도 있다. 어느 행사장에서 황모, 김모, 후배 작가 김모와 합석한 일이 있었다. 소득이 미미한 해가 있는가 하면 책이 많이 팔려 최고 세율의 소득세를 내야 하는 때가 있으니 작가에게는 좀 다른 방식의 세금 부과 기준이 필요하지 않나, 라는 황모 선생님의 말씀에 다른 두 작가가 열렬히 호응을 보내는 거였다. 소설가의 모임에서는 처음 만나는 화제여서 귀를 쫑긋 세우는 나를 누군가가 슬쩍 잡아당겼다. “너는 거기 왜 끼어 있니”하면서.

“왜, 나도 억대 고료 작가야. 10년 단위로”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사실 등단 15년 동안 10여 권의 책을 냈고 출판사에 미안하지는 않을 정도의 판매액을 올렸으니 수익으로만 따지자면 나는 평균 이하의 작가는 아니다. 꾸준히 청탁을 받고 열심히 원고를 쓰는 작가의 경우가 이러하니 대부분 소설가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열악하다. 잡문을 쓰지 말라는 스승의 말씀은 가슴 깊숙이 묻어두고서 장르를 넘나드는 글을 쓰고 얄팍한 봉투를 위해 경향 각지의 강연장을 돌아다닌다. 어쩌다 ‘이달의 우수 도서’에 선정되는 행운이 생기면 판매액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예술위원회에서 분기별로 우수 발표작에 주는 300만 원을 짐짓 태연한 척, 속으로는 황감해하며 받고 어느 단체, 어느 기관의 후원금을 행여 놓칠세라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혹 눈먼 상 하나가 떨어지지 않나 목을 매고 기다린다.

작가들의 상황 너무 절박하다

물론 누구를 탓할 바가 아니다. 소설보다 더 기막힌 일이 무시로 일어나는 우리 사회에 책임을 돌릴 수는 더구나 없다. 하지만 “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뭐”라고 버려두기에는 우리 작가들의 상황이 너무도 절박하다. 안 팔린다, 안 읽는다, 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오쿠다 히데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사고 읽는다. 그러니 답은 이미 나와 있는 듯이 보인다. 재미있게 쓸 것. 판타지와 공포와 연애와 스릴러를 버무릴 것, 재주가 있다면 코믹을 채택할 것, 무엇보다도 엄숙주의를 과감하고 냉정하게 버릴 것. 그리하여 기필코 ‘무릎팍 도사’에게 부름을 받을 것…. 지금 한국의 소설은, 한국의 소설가는 체질개선의 절대적인 요구에 직면해 있다.

서하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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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지만… 박경리선생 추모 열기
 

‘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박경리 ‘옛날의 그 집’ 중)
고인은 버리고 갈 것만 남았다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버린 것 중 가벼이 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 소설작품까지 들먹일 것도 없이 유고로 남긴 시집만 해도 34쇄 10만부가 넘게 팔려나갔다. 그 무게를 감당하기 쉽지 않은 작가 박경리(1927~2008년)가 떠난 지도 새달 5일이면 1년이 된다.
박경리 1주기를 맞아 추모 열기가 뜨겁다. 추모집과 연구서 등 각종 책이 잇따라 출간되는가 하면, 그를 소재로 한 전시회도 마련된다. 추모제도 열린다.


 
▲ 화가 김덕용이 목판에 단청기법으로 그린 박경리.
우선 고인의 기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이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모아 1주기 추모집 ‘봄날은 연두에 물들어’(마로니에 북스 펴냄)를 냈다. 지난해 영결식과 추모식에서 각계 인사들이 읽었던 추모글을 비롯, 고인이 떠난 후 후배 문인들이 잡지와 신문에 기고했던 관련 글들을 모았다.
책은 소설가 신경숙·공지영, 시인 도종환 등 문인들이 대거 참여해 가까이 지켜본 고인의 모습과 인품을 면면이 소개한다. 또 고인의 전기도 함께 정리했고, 사후 추모행사와 선양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안내해 뒀다. 방송 및 해외언론에 비친 고인의 모습도 정리해 담았다.


 
▲ 토지문학공원 내에 있는 작가 생전의 집필실.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고인의 문학적 업적을 정리하는 연구서도 나왔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가 토지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분석한 ‘박경리와 토지’(강 펴냄)를 냈다. 김 교수는 책에서 박경리 ‘토지’의 핵심키워드를 ‘산천’이라고 분석하면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서 ‘우리소설이란 무엇인가’로 물음을 전환하도록 촉진시킨 계기를 마련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작 토지 외에 “사소설 형식을 빌린 ‘악마적 글쓰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있는 작품”이라며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등도 다뤘다. 부록으로 토지의 배경인 평사리 마을 지도, 최참판댁 가옥 구조, 인물 가계도도 함께 실어 이해도를 높였다.


추모열기는 문학계에만 국한돼 있는 것이 아니다. 박경리를 추모하는 전시회도 열린다. 고인의 음력 기일인 24일을 전후해서는 토지문화재단이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에서 추모 사진전과 시화전을 열었었다. 거기에 이어 5일부터는 5월 한달동안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박경리 1주기 특별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와 화가 김덕용’ 전시회가 열린다. 화가 김덕용은 박경리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고인을 주인공으로 한 삽화를 그린 인연으로 이번 전시를 열게 됐다. 김덕용 특유의 오래된 나무판에 단청기법으로 그린 삽화와, 박경리를 소재로 한 신작 등 30~40여점이 갤러리 2층에 전시된다. 1층에는 고인의 유품, 생전 사진이 전시된다. (02)519-0800.
새달 4~5일에는 박경리 추모공원 등 통영시 일대에서 여러 문인과 지인들이 참석하는 1주기 추모제도 열릴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저 그림이 좋아 스크랩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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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 - Psy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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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뜻있는 몇몇과 함께 히치콕 스터디를 하고 있다. 뭐 그냥 영화를 보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그런 모임이다. 

모르는 사람은 고리짝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를 봐 뭐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공부해 두는 것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여기 저기서 많이들하고 있고 우리도 뒤늦게 이 행렬에 뛰어든 셈이라고나 할까? 

히치콕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스릴러의 아버지라 불릴만 하다. 그중에서도 대표작이라면 이 '싸이코'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이 영화를 사춘기 무렵에 보고 몇 십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제 다시 보게 됐는데 역시 다시봐도 섬짓한 게 가히 모든 스릴러의 교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 유명한 욕조에서의 살해씬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명장면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저 씬을 과연 누가 감히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난 아직 못 봤지만(볼 가능성 또한 희박하지만) 이 작품에 대한 리메이크 시도를 한 감독들이 몇 있어왔나 보다. 하지만 역시 히치쿡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던 것 같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하지 않는가. 

어렸을 때 봤을 땐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지만 지금 다시보니 약간의 어색함 내지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장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졸이게 만들고 충격으로 압도한다. 하지만 약간의 지루함은 어쩔 수 없다. 하긴 그것은 히치콕만이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옛날의 영화들 보면 장면전환이 요즘만큼 빠르지 않다. 그러니 그것을 문제 삼지는 못할 것이다. 

사이코는 히치콕의 거의 말년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여타의 다른 작품 보다 완숙미가 있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재밌는 건, 내가 첫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건 발견했는데 그것이 뭔줄 아는가? 영화를 보다 보면 중간 어디쯤 보면 안소니 파킨슨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가 여자처럼 유난히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올라가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우스웠던지 우리는 두번씩이나 그 장면을 돌려 보았고 볼 때마다 쿡쿡거렸다. 그것은 어쩌면 유심히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안소니는 왜 갑자기 그렇게 걸을 생각을 했을까? 영화를 찍다 지루해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장난기가 발동해서 이렇게 걸어서 올라가보자고 생각했고, 그 찍은 장면을 히치콕도 보니 우스워 좋다고 오케이 사인을 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혹시 기회가 되면 확인해 보시길...! 

사실 히치콕은 몇 개의 특징을 가지고 그만의 일관된 작품 세계를 이루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하나는 그가 금발의 미녀를 좋아해 그런 머리를 타고난 배우, 그레이스 켈리(이창) 같은 배우를 쓰기를 즐겼다는 말이 있고, 지금이야 흔한 일이지만 그가 만든 영화마다 까메오로 출연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매우 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그가 키우던 개를 사랑했다는데 그것이 가정적인 것과 뭔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개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못 봤으니까 일맥상통이야 있겠지. 


히치콕의 생전의 모습이다. 
능청이 덕지덕지 하지 않은가? 그러니 오히려 안소니 퍼킨슨에게 계단을 그렇게 올라가 보라고 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히치콕의 능청스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도 처음에는 무척 긴장된 마음으로 메가폰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다 차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었겠지. 사실 그는 사람을 놀래키는데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것을 거의 배제했던 감독이기도 하다. 즉 순수히 사람만으로 작품을 완성해 갔다. 그래서 그토록 후대의 영화 매니아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는 누구보다 인간의 이상심리를 잘 이용했던 사람이다. 당시 누가 다중인격 또는 관음증이나 죄책감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자기 일에 어느 만큼의 경지에 올라서면 여유가 생긴다. 그것은 나태함은 아니다. 여유를 갖다보면 모든 프레임과 연출된 상황을 넓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 같다. 그것은 또한 의연함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능청스러움도 발휘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나는 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에게 또 한번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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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4-2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창,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에요.^^

stella.K 2009-04-25 13:34   좋아요 0 | URL
저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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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Slumdog Million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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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기꺼이 찾고 그것에 다가가려고 하는 자에게 행운은 찾아 주는 것이다.
위의 사진을 보라. 친구의 장난으로 변소(재래식 화장실은 다 변소로 통칭되었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으니. 지금도 어딘가를 가면 그곳이 그대로 있을 것이기도 하겠지만ㅋ)에 갇힌 소년이 갑자기 좋아하는 배우가 마을에 나타났다 하여 사인을 받기 위해 그곳을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변소 밑을 통과하는 길 밖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감행한다. 사인을 받겠다는 일념하에 소년에겐 더러운 것이고 뭐고 가릴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 배우가 가기 전에 사인은 꼭 받아야 했다. 사람들은 이 오물을 뒤짚어 쓴 소년 때문에 오히려 그 배우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고, 소년은 그틈을 타 그 배우에게 사인을 받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평생 한 가지 소원을 위해 자신의 몸쯤 잠깐(소년에겐 그런 것이겠지) 희생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긴 저게 진짜 오물이겠는가? 진흙속을 잠깐 들어갔다 나온 것이겠지. 저것이 진짜였다면 그 옛날 우리 돌아가신 외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독이 올라 오래 못가 죽는다고 했다. 오물이란 인간에게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저 이야기는 극적 재미를 위해 마련된 에피소드일 것이다.  어쨌든 이런 용기라면 이 소년은 세상에 못해낼 것이 없다. 


결국 소년은 저렇게 자라 그 유명한 자말이 되었고 (사진의 왼쪽) 퀴즈쇼에 나가게 된다. 하지만 저렇게 자라기까지 결코 순탄한 인생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어머니가 이슬람교도에게 방망이로 두들겨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 봐야했고, 어느 앵벌이 조직에 끌려갔다 탈출해야하는 상황도 맞이해야 했다. 슬럼독. 다시 말하면 슬럼가의 개 취급을 받으며 그는 살아왔던 것이다.    

그에게는 두 가지 소망이 있었으니 부자가 되는 것과 앵벌이 조직에서 만난 예쁜 소녀 라티카와의 사랑을 이루는 것이다.  

부와 사랑을 동시에 이루는 것이라! 이것처럼 짜릿하고 행복한 것이 또 이겠는가? 보통 사람은 둘 중 하나를 이룰 것이다. 부자지만 외롭게 되던가? 사랑을 이루긴 하지만 조금 불편하게 살던가 말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하지 않았는가? 될성 부른 나무 떡닢부터 알아 본다고 변소도 통과할 용기라면 소년은 충분히 이 둘을 다 이룰만 하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기까지 또 첩첩산중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그 어린 나이에도 평생 마음의 짝이라고 생각했던 라티카를 만날 수 없는 세월이 몇년이고, 그동안 라티카는 인도의 무희겸 창녀로 자랐다. 하지만 만났다고 해서 사랑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사랑의 훼방꾼을 물리쳐야만 했고 그 과정엔 형과도 싸워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저 퀴즈쇼에 나갔던 것도 결코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퀴즈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 라티카가 퀴즈쇼를 즐겨 본다는 것을 알고 저기에 나가면 라티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갔을 뿐이다. 그러니 어쩌면 앞서 말했던 부와 사랑에서 부는 자말의 원래의 목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워낙에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기본으로 깔려 있거나.  

사실 나라도 비슷한 또는 같은 시기에 부와 사랑을 두고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이루겠느냐고 하면 난 기꺼이 사랑을 먼저 이루겠다고 할 것 같다.  사실 사람이 돈이 많으면 뭐하겠는가? 사랑을 나눌 상대가 없으면 외롭고 허전한 것을. 하지만 나는 여자라 그런다고 쳐도 남자는 안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돈이 있어야 사랑하는 사람도 데려올 수도 있고(자말과 라티카의 경우) 남자에겐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여자도 따라 붙는다는 속설인지 정설이 있기도 하니까. 

영화에서의 퀴즈쇼는 퀴즈쇼 자체만을 위한 퀴즈쇼는 아니다. 그것은 교묘하게도 자말의 지나 온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 물론 실제로 이런 퀴즈쇼는 없을 것이다. 즉 한 사람의 지나온 삶울 유추하고 거기서의 단초가 퀴즈의 정답이 되는 것 말이다. 이것은 확실히 이야기를 만든 작가의 재능이 될 것이다. 

한 소년의 무용담을 퀴즈쇼란 도구로 풀지 않고 그냥 시간의 나열로 풀었다면 이만큼 박진감 넘치고 재밌게 볼 수 있었을까? 퀴즈를 너무 잘 푸니까 의심도 받고 진행자의 질시도 받으면서 모진 고초도 당하고 그 과정에서 자말의 지난한 삶도 우리에게 풀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세계적으로 가장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많이 만드는 나라가 인도라고 한다. 예전에 보았던 <슈팅 라이크 베컴>이란 영화를 봤을 때도 그렇고 이 작품을 봤을 때도 그렇고(물론 두 영화 다 배경은 인도지만 제작 국가는 영국이다) 인도 사람 특유의 역동성이 느껴져 나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이 작품을 오래 전 책으로 읽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그다지 김동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으로 읽으면서 이건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솔직히 이건 누가 봐도 영화로 제작할 것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느낌이 확 온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대박을 치고 올해 아카데미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상이란 영화상은 거의 다 석권하다시피 했다. 하긴 내가 봐도 이런 영화에 상을 주지 않으면 어느 영화에 상을 준단 말인가? 재미 못지 않게 감동도 있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언제 흘러갔나 싶게 오랜만에 푹 빠져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비록 영화라도 이 둘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 "용감 소년 자말! 라티카와 함께 영원히 행복해야 해!" 이렇게 말이다. 

 
영화가 하도 재밌어 뽀너스로 한 컷 더 올린다. 왼쪽의 소년이 어린 시절의 자말이고 가운데가 리티카 오른쪽이 자말의 형 살림이다. 이들은 실제로 인도 현지의 슬럼가의 아이들을 직접 캐스팅 했다는 말이 있다. 아, 이 아이들에게도 행복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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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얄밉게 잘 만든 영화
    from stella09님의 서재 2009-05-04 12:35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하긴 내가 제때 요즘 잘 나가는 영화를 몇 편이나 챙겨 보겠는가? 거의 대부분 철지나 보고 뒷북치듯 야, 그 영화 어떻더라, 저떻더라 떠드는 게 내 일인인 것을...  이 영화가 처음 걸렸을 땐 그렇고 그런 삼류 양아치 영환줄 알았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반응이 좋아 보였다.  과속 스캔들이라...약간 촌스럽기도 하고 하지
 
 
프레이야 2009-04-2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미가 허무했지만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퀴즈와 결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아직 리뷰 쓰지 못하고 있는 영화 중 하나에요.
전 살림의 희생이 가슴 저릿하더군요.^^

stella.K 2009-04-23 10:2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살림이 가슴 저릿하죠.
그래도 영화는 참 역동적이란 느낌이 들어
보고 나서도 나름 잔상이 좋게 남더군요.
해피 엔딩은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혜경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