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우스 - Amadeu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서 요즘 흔히하기 좋아하는 '내 맘대로 좋은 영화 베스트'에 꼭 빼놓지 않고 들어가는 목록중의 하나다. 나는 이 영화를 국내 개봉 당시부터 지금까지 3.5번쯤 본 것 같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영화도 영화지만 전편에 흐르는 모짜르트 음악의 절묘한 배치가 전율할 정도로 좋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상당히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는데, 어떻게 18세기의 사람이 이토록이나 세기를 뛰어넘어 세련된 음악을 구사할 수 있을까?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히 모짜르트 음악을 절묘하게 배치시켰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 영화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흔히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단연 살리에르와 모짜르트의 관계일 것이다. 살리에르에게 있어서 모짜르트는 경이의 대상이며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었음을 영화를 보는 사람 누구든지 공감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모짜르트를 좋아했다가 나중에는 살리에르에 감정이입을 하고 누구나 그를 공감하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모짜르트는 천재고 세상에 천재는 흔치 않으며 살리에르는 범재며 질투하는 인간이고 나 역시 평범하기 그지 없으며 동시에 질투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건 살리에르가 모짜르트에 비해 평범할 뿐이지 진짜 그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그는 천재는 아니었지만 음악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으며 당시 궁정악장까지 지낸 사람이다. 어디 그것이 아무나 얻을 수 있는 명예던가? 


언젠가 아주 오래 전 라디오에서 그의 음악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영화가 주는 선입견 때문일까? 좋긴 좋은데 확실히 모짜르트 보다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 사내는 얼마나 비운의 사내인가? 평가를 받아도 음악 하나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꼭 꼬리표처럼 모짜르트와 비교해서 평가를 받으니.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항이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은 살리에르가 신과의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아름답게 쓰임 받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뒤 한가지 조건이 붙는다. 그러니 자신의 이름이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으며 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얼마나 욕망에 찬 당돌한 기도란 말인가? 그런데 그 앞에 모짜르트라고 하는 작고 볼품없겠 생겼지만 큰 바위같은 존재가 자신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모짜르트는 자유로웠으며, 유쾌했고,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았으며, 늘 자신만만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고, 누구든지 그를 좋아했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것이 살리에르를 자극했던 것이다. 특히 무엇보다도 모짜르트는 방탕했다. 그런 자가 음악을 하며 하나님을 찬송을 하다니! 살리에르는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저 방탕하고 음란으로 가득한 자의 찬송을 받으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자신을 위대한 음악가로 만들어 주시는 것쯤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어 주시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기꺼이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속에 던져넣고 만다. 신이 그를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신을 배반했다. 그리고 신을 배반한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이 볼 때 살리에르의 심정과 행동은 일부 정당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신에게 있어 그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가 맨 처음 기도하였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이름이 더불어 높아지는 것이다. 그것은 교만의 다른 이름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그냥 보아 넘기시지 않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냥 보아 넘기셨다. 인간도 말할 가치가 없는 것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 역시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뿐이었으리라. 하나님이 누구신가? 그런 인간의 얕으막한 감언이설적 거래에 쉽게 손을 내미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거래를 살리에르만 하겠는가? 오늘 날에도 살리에르적 거래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일일이 알 수가 없다.  이것 때문에 오늘 날의 기독교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대신 하나님은 모짜르트의 찬양을 받으신다. 알겠지만 모짜르트는 일부 종교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양 클래식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사실 살리에르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정숙해야하고 도덕적으로도 고결해야 한다. 그런 그의 눈에 모짜르트는 개망나니다. 그런 사람에게 천재적 재능이라니 그건 확실히 돼지목에 진주가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런 사람의 찬양을 받으실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신비가 있다. 예수님은 당신을 정의하시길 과부와 고아와 세리와 창녀의 친구라고 하셨다. 그러니 그런 모짜르트의 음악을 못 받으실 이유가 없으신 것이다. 또한 그분은 성경 어디엔가 말씀하셨다. 돌들을 가리키시면서 너희들이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으면 이 돌들이 소리칠 것이라고(맞나?). 비유적 말씀이긴 하지만 도덕적으로 얼마가 거룩하든 거룩하지 않든 하나님의 눈엔 그것이 그다지 다를 바가 없으시다는 것이다. 

사실 나 역시 애석하게도 모짜르트 보단 살리에르에 더 가깝다. 나는 도덕적으로 깨끗하길 원하며 나의 탈란트와 재능이 빛을 바라길 바라고 한때는 이것을 놓고 하나님과 딜을 하려고도 했을 것이다. 또 한때는 함께 일했던 주일학교 제자 녀석의 재능을 칭찬해 주기보다 오만방자함을 개탄하며 바로 저런 녀석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는 것이라고 나 자신의 열등감을 포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건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고 녀석은 최근까지 교회를 잘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다행인건 시간이 많이 흘러 줬다는 것이겠지.

그런데 내가 저 영화를 보면서 모짜르트의 다른 모든 것은 그렇지 않은데 꼭 한가지가 부러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죽기 전까지 그는 열정적으로 작곡을 했으며 한 번도 자신이 만든 곡을 의심없이 그대로 썼다는 것이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창작이 좀 어려운 일인가? 어떤 땐 자신이 쓰고도 그 쓴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없어서 구겨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살리에르가 모짜르트를 놀라움의 대상으로 본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그는 무엇이든 자신이 생각한 바를 종이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는 것이다. 물론 창작의 세계에 있어서 황금률 같은 것이 있다. 즉 자신이 만족할 수 없다면 남도 만족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이것을 내가 확신해도 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리고 곧 자책을 하기도 한다. 난 아직 덜 됐어 라고.   


가끔 천재에 대한 보고서를 접할 때까 있다. 그중 하나는 천재는 남이 그렇게 불러주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려면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됐던 그것을 확 들어내 보일 수 있는 자기 확신. 나는 이런 영화속 모짜르트가 부러웠고 또 그렇게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물론 그것은 그의 천재성이 아니다. 자신감이다. 때로 이것이 없어 나 자신 초라하다고 느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또한 그는 일하다가 죽었다. 마지막 살리에르가 부탁한 곡을 작곡하다가 죽은 것이다. 젊은 나이에 죽은 건 안타깝지만(그가 죽은 나이는 35세라고 한다.) 그렇게 일하다가 죽은 건 확실히 나에겐 부러움이다. 나는 병원 침대에서 주삿바늘에 호스 꽂고 죽어가는 나의 모습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잘 사는 사람은 자기 죽는 것도 선택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정말일까?  

영화 속 모짜르트를 연기한 톰 헐스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모짜르트를 너무 강렬하게 연기해서일까? 그 이후 그는 출연하는 배역에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 불운하다면 불운하다고도 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 하나로 그를 기억해 주는 팬이 있다면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닐 듯 하다. 

아무래도 이 영화를 한 번 더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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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7-18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짜르트 역의 톰 헐스(스텔라님 덕분에 이름을 알게됬네요)의 연기는 정말 신 들린것 같았죠.하지만 제가 더 이상이 깊게 남는것은 tv에서 방영될때 배한성님이 더빙한것때문에 더 연기가 훌륭해 보이더군요^^

stella.K 2009-07-19 16: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배한성씨의 목소리 연기는 정말 딱이더군요!!

hnine 2009-07-18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이 영화는 보통의 영화가 아니었지요. 처음 보고나서는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범인에 비해 천재의 삶이 결코 더 행복하리란 법이 없다는 것을 왜 이제 와서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stella.K 2009-07-19 16:23   좋아요 0 | URL
저도 천재는 그닥...하지만 자신감은 배워보고 싶더군요.^^
 
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어디 커피가 러시아에만 있겠는가? 고종. 그 시대에도 이미 세계 각국에서는 커피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즐겼을 것이다.  

우리가 노서아 가비(러시안 커피)를 기억해야 하는 건 아마도 우리나라에선 고종이 그 음료를 최초로 마셨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더 정확히는 그의 부인이었던 명성황후였던 것 같다. 하긴 부창부수랬다고 그나 그녀나가 아닐까?) 그러나 책은 이것이 어떻게 우리나라 특히 고종에게 전해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고종은 인현황후의 시해 전부터 황후와 함께 커피 마시기를 즐겨했고 러시아 공사관 시절에도 커피를 끊일 마땅한 시종이 없어 사람을 찾던 중 따냐가 차출된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이 된다.  

사실 따냐는 원래 그녀의 이름은 아닐터. 역관이었던 아버지가 나라의 것을 도적질했다는 이유로 형을 받아 사살되고 그녀는 살기 위하여 조선을 버리고 러시아로 가야했다. 말하자면 따냐는 그때지은 그녀의 러시아 이름이다.   

노서아 가비는 역관이었던 아버지 덕에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알았던 것이었고 러시아에서도 익히 즐겨 마셨던 음료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사기꾼이 되었고 역시 사기꾼인 이반을 사랑했다. 이반 역시 노서아 가비를 좋아해 진한 사랑을 나눈 뒤 함께 마시는 노서아 가비란 그들의 사랑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좋은 매개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살기 위해 사기꾼이 되었고 그 피가 그들의 내면에 흐르게 된 이상 이들에게 과연 진실한 사랑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온갖 협잡이 끊이지 않는 고종 주변에 그녀를 밀어 넣은 것도 이반이었다.그것은 고정의 커피를 끊여 주면서 무엇이든 정보가 될만한 것은 이반과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흘려주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에게 고종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한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녀에게도 고종의 커피 시중을 든다는 것은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나중엔 고종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주변을 둘러싼 소인배의 짓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거기에 이반도 함께 있었다는 건 나중에 안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녀는 고종의 커피를 끊여 주면서 한 나라의 군주이기 전에 한 남자의 절대 고독을 엿보게 된다. 그것은 자꾸만 그녀로 하여금 진실에 다가서게 만들고, 고종 역시도 그녀에게만큼은 진실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기꾼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녀의 사기꾼이란 존재적 신분이 이반의 고종에 대한 시해(커피에 다량의 아편을 섞음)의 위기에서 고종을 살렸고, 그녀는 음모에서 풀려나 미국으로 건너가 까페를 운영하며 사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읽고나면 커피만큼이나 진한 여운이 남는다. 따냐와 이반의 사랑 그리고 그 사이의 고독한 남자 고종의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특히 전편에 흐르는 따냐와 이반의 사랑에 대한 의심과 갈구는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기꾼에게 사랑은 얼마나 치명적인가? 그 사기꾼이 서로의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려 한다는 것은 확실히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서 남는 것은 역시 진실이다. 사랑하는 진실. 사랑하지 않는 진실. 

특히 이반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고독하면서도 냉혈하고 사랑하는 여자 앞에 끝까지 진실하고 싶어했던 이반 그리고 그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뇌리에 남는다. 이 이야기가 영화화된다고 하는데 과연 누가 이반을 맡을 지 자못 기대가 된다.(웬지 쉽지 않은 배역일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나 역시 1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커피를 마셔왔다. 커피를 처음 알기 시작할 무렵 나는 커피가 너무 좋아 빨리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길 바랬다. 그러면 또 한 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고독한 고종만 같을까? 너무 고독해서 커피를 안 마시면 견딜 수 없었던 고종의 커피에 대한 갈구만 할 것이며, 진한 사랑뒤에 커피를 나눠마신 따냐와 이반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다른 모든 것엔 중독이 된 일이 없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 있어도 중독될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커피에 관한 한 나는 확실한 중독자다. 그렇다면 커피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인생은 살면 살수록 특별히 놀랄 일도 재미있지도 않아 보인다. 예전엔 커피 마시는 맛에 살았고, 커피 마시는 멋에 살았지만 지금은 커피 마시는 낙에 산다. 이 낙도 없으면 그 많은 나날 어찌 살까 싶기도 하다. 그만큼 커피는 그때 그때마다 새롭게 음미하며 마시게 되는 묘한 음료인 것 같다. 

저자는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커피에 대한 정의를 내리며 시작한다. 저자의 커피에 대한 통찰이 놀랍다. 보통 마셔보지 않고는 이런 명구를 뽑아낼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그중 기억에 남는 정의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커피는 맛보지 않은 욕심이며 가지 않는 여행이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나오는 푸쉬킨의 시의 절묘한 배치란...!   

나도 인생의 낙을 얘기하리만치 나이가 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살아 온 날들에 비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앞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아직은 더 욕심부려도 되고 인생의 여정도 그만큼 더 남아 있다. 그 길에 여전히 커피도 함께 하겠지. 그때 난 또 커피에 대해 뭐라고 말할 지 나 자신도 궁금해 진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함께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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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7-16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는 맛보지 않은 욕심이며 가지 않는 여행이다...
정말요? 저자가 이런 정의를..
지금 장맛비 소리 후두둑 들으며 카페라떼 한 잔 하고 있어요.
매일 마시는 커피인데 어제 속이 안 좋아 한 잔도 안 마시다가
지금 마시니 너무 좋으네요. 이 책 담아갑니다~~~

stella.K 2009-07-16 10:45   좋아요 0 | URL
카페라떼를 좋아하시는군요.
저자도 카페라떼를 주문하고 마시고, 후회한다고 하더라구요.
왜 그런지 아시죠?ㅎㅎ

프레이야 2009-07-16 19:03   좋아요 0 | URL
크아~ 배불러서일까요??ㅎㅎ

stella.K 2009-07-17 10:14   좋아요 0 | URL
이걸 가르쳐 드리고 싶은데 안 갈켜 드릴랍니다.
나중에 책 보시면 아세요.ㅎㅎ
 
스트레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9
기예르모 델 토로 외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사실 호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나름 뱀파이어 이야기는 전에도 접해 본터라, 그 이야기가 가진 서늘한 매혹에 충분히 빠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매혹적인 뿐만아니라 철학적이기까지 해 감탄하면서 본적이 있다. 그후 책으로 사서 읽어 보려고 했는데 읽는데는 실패했다. 영화만큼의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올해들어 뱀파이어 영화들이 다시한번 부활한 느낌이다. 그렇지. 뱀파이어어야 그 존재 자체가 몇 세기를 아우르는 것인데 한번만 만들어지고 마는 이야기라면 섭할 것이다. 이것 자체가 문화적 아이콘이 되어 끊임없이 새롭게 재탄생되는건 당연해 보인다. 그래도 나는 호러를 좋아하지 않으니 여전히 선택은 주춤할 것 같다. 

사실 이 책도 나의 도서 목록에서는 열외의 책이다. 그런데 워낙 평이 좋아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이 작품에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난 왜 매료당하지 못하는 것일까? 

영화 감독이 써서 그랬을까? 각장마다 영상을 보는 듯한 것은 있다. 그런데 워낙 많은 등장인물과 그들의 움직임등을 설명하고 묘사하는데 너무 치중한 나머지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 한다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본론으로 곧바로 진입하지 못하고 빙빙 도는데 질려버렸다.

저자야 이렇게 쓰고 그대로 찍으면 되겠지만 책을 읽는 독자는 뭐란말인가?  

영화에서 첫 3분 내지 5분 동안 관객을 자로잡지 못하면 안된다는 영화적 법칙이 있다. 영화에서 단 몇초만으로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문자로 읽어야 하는데 이렇게 장황할 필요가 있는건가? 도대체 이 책이 두 권으로 나올 필요가 있을까?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나의 이런 의문이 의미가 없는 것이 이 책은 총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는 분량이라고 한다. 그러니 내 이런 의문이 얼마나 우문이랴! 

단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작가가 원래는 영화감독이면서 이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감독이 소설 쓰지 말라는 법이야 없지만 뭔가 모를 한계가 느껴진다. 이 사람은 자기식의 소설을 썼지 소설다운 소설을 쓴 것이 아니다. 그나마 2권을 썼을 것으로 보이는 척 호건이 따라붙어 주긴 했지만 1권에서 재미를 못 봤으니 2권을 칭찬해 줄 마음은 그다지 생기지 않는다.(2권을 척 호건이 썼는지 확실하지도 않고)  

게다가 요즘 소설계에서 즐겨 차용하는 영화적 기법에 회의가 느껴진다. 

영화적 기법이란 게 쉽게 말해서 영상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더불어 허리우드적 구성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물론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이야기든 재밌게 색다르게 읽이면 좋은 것 아닌가? 하지만 (아직까지)그런 소설에 문학적 향취를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은 아닌가 회의가 느껴진다. 한마디로 "너희들이 문학을 알아?'다. 아, 나는 왜 그놈의 '허리우드적'인 것에 닭살이 느껴질까?  

편집이 문제인 것인지 각장의 처리도 매끄럽거나 일정하지 않으면서 그장 말미에 똥폼잡는 표현들(번역자에게 미안하지만 저자를 생각하면 좀 웃음이 난다. 어차피 태평양 건너의 사람인데 이런 일개의 독자가 비웃었다고 꿈쩍이나 하겠냐만)이란...! 

사람들은 이 책에 열광하고 빨리 영화화 되길 기다리겠지만 난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 기존의 고전적 이미지의 뱀파이어의 고혹적인 매력을 안다면 말이다. 고전적 뱀파이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선 기계적이며 물리적인 장치가 지나치게 많이 등장한다.   

모르긴 해도 이 이야기는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것이며 영화화되도 별점 두개 반 많아야 세 개 이상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아님 말구!) 

영화에서 초반 3분 내지 5분에 관객을 사로잡을 수 없다면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한다고 보듯, 책 역시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특히 이런 허리우드적 소설일수록. 전체 분량 4분의 1 또는 3분의 1에서 독자를 사로잡지 못했다면 더 이상의 기대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평점이 좋은 책에 혼자 냉소하자니 뻘쭘하다. 그냥 나와는 인연이 없는 책이라고 덮어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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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여행하라 - 공정여행 가이드북
이매진피스.임영신.이혜영 지음 / 소나무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을 할 때 사람들 저마다 목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쉼과 재충전을 위해. 어떤 사람은 그곳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 보기 위해. 어떤 사람은 어느 특정한 것에 관해 글을 쓸려고 하기도 할 것이다.(그 중엔 적절치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풀어버리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쉼과 재충전 또는 그곳의 문화와 풍광을 즐기기 위해 떠나지 않을까?  

사실 난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여행하면 고생이요, 이리저리 끌려다닌다는 인식만 있어서 선듯 나서지지 않는 것이다.(그것은 아마도 선천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리만치 튼튼한 체력을 타고난 것도 아니고, 어렸을 적 차멀미를 심하게 해 그런 경험이 여행을 조심스러워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이 우리안에 짐승처럼 집안에만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오산이다. 그런 사람도 간혹 그래도 한번씩은 여행을 꿈꾸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도 문득 여행을 하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있을 때 잡게 된 책이다. 그냥 꿩 대신 닭이랬다고 이런 책이라도 읽으면 달래질까 하는 바람에서라고나 할까? 

그런데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여행 한번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생각해 봐야하는 거구나 새삼 놀랬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이 전혀 생소한 것들은 아니었다. 여행을 상상만 했을 때는 그곳의 낮선 풍광에 대한 설레임이 전부겠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하면 어디에 묵을 것인가로부터 시작해서 그곳이 호텔이거나 그에 준한 곳이라면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저렇게 방긋방굿 웃으며 일하지만 저들의 웃음뒤에 무엇이 숨어있을지 우리는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에 대해 말해준다. 인권에 관한 부분이다. 우리는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고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돈을 지불한 이상 서비스에 불만족하면 불평 내지는 호통을 쳐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 알고 보면 여행객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불만족스러운 서비스 때문에 마음 상하는 것 보다 몇배는 더할 것이다.  

또한 먹고 살아야할 의무 때문에 그들이 가진 직업병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생각해 봤는가? 특히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등산객을 위해 그들이 포터들에게 맡긴 짐들은 포터들의 몸무게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말이 쉬워 반이지 그것을 등이나 머리에 매고 하루종일 등반객들과 동행 한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오죽했으면 그 일을 하다 죽는 사람도 있는가? 그들은 단 몇 푼의 돈을 받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일을 마다치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히말라야 등반객들은 자기가 히말라야에 발도장을 찍어봤다는 이유만으로 축배를 드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그러면서 어느 여행 취재물에도 끝까지 그 포터의 죽음은 다루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그거야 말해 뭐하겠는가? 

문제는 언제나 항상 돈이다. 돈 안되는 일. 자기네들이 가진 무한한 관광 자원을 손상시키고 싶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나가든 말든 이미지를 구겨 득될 것은 없지 않는가? 어차피 세상은 있는자들의 천국이니까. 그 천국의 이면은 들어내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있는 것이다. 자기네 나라 백성이 일하다 병을 얻든, 다치든, 죽든 여행객들은 관여치 않고 관여할 수도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네들의 문제고 자국민에 관한 일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받는 돈의 10분의 1이라도 그 사람네들에게 정당하게 돌아 가지도 않는다. 이런 불공정한 여행이 어디 있는가? 자기네들은 피를 흘려도 돈만 벌고 보자는 식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돈은 확실히 국경도 허물지만 또한 그것은 확실히 사람의 인권을 유린하는 방식으로다. 

이 책은 그 이해를 다소나마 알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여기서 '다소나마'라고 하는 것은 이 책은 여행 비평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 곳곳을 여행하다 마주치게 되는 불공정한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만약 그렇다면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이 되어야겠지.)  어떻게 하면 그런 불공정한 것에 저항하며 새로운 여행을 할 것인가에 도전하도록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즉 이 책에 소개된 방식을 따라 여행을 하면 공정한 여행을 하게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처음엔 '공정 여행'이란게 다소 생소하게 들리지만 조금 읽다보면 해 봄직한 여행이며 아니 꼭 필요한 여행이라는 생각에 누구나 금방 공감하게 된다.(물론 나 개인으로선 당장해 볼 수 있는 여건은 안되지만)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인프라가 어느 만치는 구축되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늘 날 상업적인 여행, 레저 문화의 발달의 속도에 한 없이 뒤져 보인다. 

하지만 뭐 어떠한가? 원래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일은 토끼 뛰기지만 이타적이며 공동체를 위하는 일은 거북이 걸음이고 환영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승리하는 쪽은 늘 후자쪽이었다.  

나는 부디 공정한 여행이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며 이 책을 덮었다. 또한 그 여행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사람들은 진정한 여행자가 아닐까 싶다. 분명 지구 반대편 그곳에도 나와 같은 사람이 숨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 여행은 이렇게 인류를 생각하는 여행이다.  나도 언젠간 그 진정한 여행 대열에 끼어보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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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7-1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정여행에 대한 상세한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이 책 담아갑니다~~ 꾸욱!

stella.K 2009-07-11 15:36   좋아요 0 | URL
이런 여행이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더라구요.
정말 여행을 아는 사람은 패키지 여행같은 것 안할 것 같아요.
이 책은 그야말로 공정 여행 가이드북입니다.^^
 
마티스
타리에이 베소스 지음, 정윤희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우리가 북유럽의 소설을 접할 기회가 흔하던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겐 흔치 않은 독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작품은 지극히 목가적이고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친환경적이라고나 할까?(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쁘려나?) 그렇지 않아도 책 표지가 아름답다. 등장인물도 단출하고 기계적인 느낌이 하나도 없다. 또한 읽으면서도 작가의 충실한 묘사에 마치 사진을 찍듯 영화를 보듯한 느낌이다.  

특히 육체의 나이는 37세지만 정신 연령은 5살에 멈춘 마티스의 정서와 느낌, 경험 등을 작가는 이 작품에 오롯이 담아냈다. 이야기는 이미 오랜 세월 누나와 단 둘이 살았고 언제까지나 그대로 살게 될 것만 같은 그의 집에 벌목꾼 예르겐이 함께 살게 되면서 겪는 마티스의 체험과 감정을 솔직 담백하게 그려냈다.  

사실 백수로서의 삶은 얼마나 지루한가? 그런 지루한 삶에도 잔잔하지만 소소한 사건 하나씩은 일어나 줘야하지 않는가? 그래서 숲속에서 소녀들도 만나고 뱃사공으로도 살아 본다. 그것은 마티스에게나 소녀들에게나 다 같이 좋은 경험이되었다. 하지만 낮선 사람과의 동거는 어떨까? 

마티스는 지적 장애를 가졌다고는 하지만 그의 정서를 우리가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적인 면에서 장애는 없다고는 하나 어린 아이와 같은 자아 또는 그 정서를 어느만큼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허리우드가 배출해 낸 이야기 방식에 길이 들여져서일까? 읽는내내 그래도 마티스가 뭔가 일을 내지 않을까? 그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 있어 무슨 사건 하나를 해결하고 이런 장애아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신화를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기대하는 것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그런 독자의 바램을 일부러 피해간 듯해 보이기도 하다. 그냥 지적 장애를 가진 마티스의 느낌, 그의 생각만을 따라 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인간 삶의 보편성과 만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애석하게도 언제까지나 지루하게 펼쳐지는 이야기에 그다지 매료되지는 못하였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앞뒤가 안 맞는다거나 수준 낮은 소설이라고 얕잡이 볼 것도 아니다. 솔직히 이렇게 쓰기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한마디로 허리우드 영화가 아닌 예술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허리우드식 영화나 이야기는 가만히 눈으로만 따라가줘도 몰입도가 자연 상승하지만 예술 영화는 괜히 심각해진다. 여기서 뭔가를 찾아야만 할 것 같고 의미를 유추해내야만 할 것 같다. 뭐 그러다 철학도 하게 되겠지. ㅋ  

어쨌든 난 작가의 충실한 묘사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 내용은 좀 버거웠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감정이입이 문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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