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2에서 했던<결혼 못하는 남자>가 종영됐다. 

시청율 8%에서 마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을 여기 저기에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정말 그렇게 형편없었나? 싶다. 

솔직히 같은 시간대 M에서 하는<선덕여왕> 때문에 맥을 못췄던 탓도 있다. 요즘 <선덕여왕> 빼놓으면 볼만한 TV 프로가 있나? 그 유명한 쌍화점의 주진모가 일부러 야심차게 <선덕여왕>의 러브콜을 무시하고 한판 붙겠다고 <드림>으로 갔으나 현재로선 그 아성에 무릎꿇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것 같다.(그러게 선덕여왕으로 가지...) 

사실 <선덕여왕> 아직까지는 꽤 잘 나간다. 나 역시도 그 드라마 흥미롭게 잘 보고 있다. 하지만 잘 나간다고 해서 미리부터 빵빠레를 울리고 싶지는 않다.  

기존의 사례에서 보듯이 한편의 드라마가 괜찮다고 떠들면 나중엔 뻔한 클리셰에 용두사미로 끝나는 드라마를 숱하게 봐온지라 그저 조심스럽게 볼 밖에. 그래서 난 본방은 안 보고 재방송 때 한꺼번에 몰아서 본다.  

그것이 잘 나가는 드라마에 속고 싶지 않은 나의 저항심리인 것인지, 아니면 '결못남'에 지진희가 나오니까 그런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뭐 일드의 원작을 안 봤으니 안 본 상태에서 남자 주인공이었던 지진희의 연기변신 나름 신선했다. 그전까지 지진희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알면 말이다. 그런데 일드를 본 사람은 하나같이 지진희가 자기만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원작 드라마의 주인공과 똑같이 했다고 해서 빈충을 샀다.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만일 지 씨를 좋아하지 않았고 원작을 봤다면 똑같이 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나름 이 드라마가 좋다고 생각했던 건 같은 사랑과 연애를 다루고 있더라도 현실에 최대한 맞게 다룰려고 했다는 점일 것이다. 드라마라는 게 주로 젊은 사람들의 사랑에 촛점을 맞춘 것에 비하면 이 드라마는 40대로 막 진입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다루었다. 이것 또한 원작 드라마의 힘 입은 바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일본 드라마에서 배울 것은 뭐가 있을까?  

알다시피 <하얀거탑>은 일본 작가의 작품이고 일본 내에서 드라마로 만든 것을 우리가 가져온 것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게 일본 원작을 가져와 우리나라에서 재탄생한 케이스가 이 작품이 처음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신선했고 좋았다.  

내가 좋게 느낀 건 기존에 우리나라 드라마가 무수히 많이도 다루는 그것에서 확실히 비껴 새로운 드라마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인데 특히 그놈의 '사랑'이란 주제를 과감하게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인간의 비열한 욕망과 주인공의 죽음을 전면 배치했다는 것에서 신선했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 생각해도 주인공이 어느 순간 자신의 야망을 꺽고 죽음을 맞아한다는 게 좀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기존의 드라마의 흐름을 깼다는 점에서 나는 이 드라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겠는가? 국내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수입산인 것을. 그것도 일본산.

그러나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이제 좀 드라마 작가들이 무조건 사랑, 사랑, 사랑만을 들이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다른 것도 많은데 언제까지 사랑 타령만 할 것인가? 

<결못남>의 주제가 첫소절을 들어보면 "사랑이 뭐가 필요해, 자꾸 귀찮기만 해"라고 읊조리고 있는 걸 들을 수가 있다. 물론 그 노래의 결말은 "그대라면 나도 사랑해 보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그렇다.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이나 결혼은 옵션이 되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방송은 여전히 사랑타령이다. 그것도 정상적인 거라면 또 말도 안한다. 그렇게 해서 보여줄 게 없다고 생각하고 막장까지 간다.  

암튼 이 <결못남>이 방송되기 시작할 무렵 타 방송사에선 "초식남"를 화두로 삼아 레포팅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그 드라마에서 보면 남자 주인공이 초식남이라고 한다.초식남에 대해서는 굳이 뜻풀이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초식남 알고 보면 별로 새롭지도 않으며 어찌보면 그들의 출현은 당연해 보이기도 했다.  방송을 보면서 왜 사람들은 사랑과 결혼은 안 해도 섹스는 남아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해 보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것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안 쓰는 근육은 퇴화 되듯이 사람의 뇌나 의식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결못남'에서 조재희는 거의 지존이었다. 그 자신 적어도 장문정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정신 세계는 완전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장 선생을 만나고부터 외로움이 뭔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이것은 거의 신의 경지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것은 외로움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은 완벽하신 분이신데 그분도 외로움을 아신다는 것이고 보면 조재희 역시 그렇지 않느냐는 말이다.(그러거나 말거나.) 

그렇다면 앞으로 드라마의 역할은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잊어버린 감성을 일깨워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욕망으로 꽉찬 인간의 마음 한 자락 비워둘 수 있는 그런 드라마. 치사하다 못해 눈 뜨고 봐 줄 수 없는 막장 드라마 같은 거 말고 말이다. 어떻게 하면 조화로운 인간이 될 수 있을까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보여줄게 많지 않을까? 

여기 드라마 하나를 더 소개할까 한다. 역시 K2에서 하는 <파트너>란 드라마다. 

알겠지만 변호사의 일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다.  

솔직히 이 드라마 시작은 너무 괜찮아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보라고 광고하고 싶어었다. 그런데 보다보니 이 드라마도 뭔 냄새가 난다. 많은 드라마가 그렇게 사라졌듯이 이 드라마도 용두사미가 될 확률이 99.9%다. 

그놈의 사랑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벌써 남녀 주인공의 러브 라인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면 한숨이 나온다. 그걸 전면에 보이게끔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걸까? 이 시대에 사랑은 목숨 보다 중요하지 않게된지 오랜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나라 드라마는 목숨처럼 사랑을 전면에 배치하려 든다.  

그러려면 차라리 처음부터 드라마에 사랑은 목숨 보다 중요해요.라고 시작해라. 처음부터 그러다가 또 사랑 타령이냐고 돌맞을까봐 그렇게도 못하면서 뭔가를 보여줄만 하면 러브 라인을 보여주면서 삼천포로 빠지는 건 뭐란 말인가? 

난 이 드라마에 나름 기대가 컸다. 물론 말도 안되는 등장인물이 짜증도 났다. 등장인물 중 그래도 변호사에 가장 가깝다고 본건 김현주와 이하늬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나머지는 캐릭터가 그다지 사실적이지가 못하다. 그래도 좋다고 느꼈던 건 강은호와 이태조가 법정 의뢰를 맡아서 승소하는 과정이 나름 쾌감이 느껴졌다. 캬~! 말싸움에서 결코 지지 않는군! 감탄하면서 그들의 번뜩이는 추리력도 빛나 보였다.  

나는 이 드라마가 미드의 아나토미 그레이나, CSI처럼 시리즈로 만들어 졌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그러려면 그 드라마의 변호사들은 조연이 되면서 매 화 사건 의뢰를 맡은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구도가 돼서 변호사의 일과 애환을 보여주고 각 변호사의 캐릭터를 잘 살려줬더라면 좋지 않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각종 법과 관련되 사건 의뢰와 판례가 얼마나 많이 쏟아지고 있는가? 그것을 드라마로 만들어도 CSI가 저토록 오래 해 먹을 줄 몰랐는데 그 정도는 능히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지? 뭔가 굉장한 사건과 음모가 있을 것처럼 보이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그것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별것 아닐 것 같은 느낌은?  웬지 모르게 별로 알고 싶지가 않다.  

그런데 사각의 화면 안의 등장인물들은 자기네들끼리 심각하고, 자기네들끼리 서로 치고 받고 싸운다. 그러면 채널 확 돌리고 싶어진다.(실제로 돌리기도 했다.) 

비유가 좀 거시기 할지 모르겠는데, 실제로 시청자들은 오르가즘에 도달해 있지도 않은데 제작진이나 배우들은 자기네들끼리 가짜로 오르가즘에 도달한 것처럼 헐떡대는 것 같아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솔직히 오르가즘의 최종 목표는 시청자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제작 여건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제 <파트너>는 다음 주 정도면 끝날 것이다. 어떻게 끝날지 대충의 감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조기종영한다는 느낌이 든다. 하긴 제작에 드는 비용은 한정되있고 이야기는 마무리를 져야겠으니 또 비슷한 결말로 끝내야 하지 않은가? 그게 그나마 제일 안전하니까. 이건 또 뭐야?라는 말 보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가 평균은 간다는 말처럼 들리니 그렇게 해서 꿀떡 넘겨버리겠다는 거 아닌가? 

난 한 주간 동안 방영되는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드라마를 보느라 들어갔던 나의 시간도 적지는 않아 보인다. 몰라서 못 보긴 하지만 그래도 아, 이 드라마는 정말 시간이 아깝지 않아! 하는 드라마 뽑아내기란 손에 꼽는다. 물량이나 공력이 들어간 드라마는 많은데 내용이 없는 드라마는 아직도 많아 보인다.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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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8-0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들었어요. 한국 의학 드라마의 특징-병원에서 연애한다/학원물의 특징-학교에서 연애한다/법정 드라마의 특징-재판정에서 연애한다.

stella.K 2009-08-09 18:29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우리나라 드라마 사랑타령 좀 그만해야 할텐데...ㅠ

진달래 2009-08-1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결못남> 몇 번 봤는데...
그 남자 좀 짜증났어요. ㅋㅋ
결못남이 아니라 결안남 같던데요..

좋은 드라마는 아니겠지만
전 요즘 김혜수의 스타일 보는 맛에 <스타일> 봐요. ㅋㅋ

stella.K 2009-08-10 13:10   좋아요 0 | URL
저도 스타일 보고 있어요.
김혜수 연기 잘하더만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여자 만나면
같은 여자여도 무섭고 부담스러울 것 같더라구요.
남자들은 어떤가 모르겠어요.ㅎ
 
헤어스프레이 - Hairspra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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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여름엔 왜 공포물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뮤지컬 영화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뭐 하나 인기가 있다 하면 그것만을 집중해서 띄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컨텐츠가 개발이 안되고 발전이 없는 것 같다. 

여름엔 공포물이 대세란 생각 이제 좀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 나 같이 공포물 그다지 안 좋아 하는 사람은 어쩌라고?  

장마가 물러가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그에 따라 밤 역시 보내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며칠 전부터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있는 형편. 이런 더운 여름 밤 한 편의 뮤지컬 영화에 빠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마디로 이 작품 지대로다!!   

뭐 영화나 드라마나 심지어 소설도 꼭 날씬하고 예쁜 사람만 주인공 하라는 법있나? 그런 사람이 머리도 좋고 마음씨도 착해서 좋은 사람 만나서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산다. 그뿐인가? 이쁘고 잘 생긴 사람이 오해받고, 왕따 당하해도 꿋꿋이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를 쟁취한다는 이 불변의 스토리는 또 뭐냐구?  꼭 예쁜 사람만! 예쁜 사람만! 이 뻔한 클리셰에 시청자, 관객들은 매번 놀아난다.  가끔 못 생기고, 뚱뚱한 사람, 소외된 사람도 주인공 한 번 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거기에 재대로 한 방 날린 작품이 바로 이 헤어 스프레이다. 이 작품엔 뚱뚱한 사람이 주인공이고, 흑인과 백인이 화합하며 잘 살자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60년 대 미국이다.  그 시대 인종차별주의 철폐운동은 당연해 보인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말이다.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운동엔 사람들의 저항심이 기저에 흘렀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대로의 삶. 그대로의 사회. 그대로의 정치가 과연 맞는 것일까? 하는 반감이 이 운동을 가졌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이 영화에선 그런 기저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무슨 대단한 정치 의식을 가지고 만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6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 60년대에 만든 건 아니다. 이 작품이 몇 년도에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만들어졌던 코미디 영화를 2007년도에 뮤지컬로 각색에서 만든 것이다. 뭐 뮤지컬이 그렇듯 단순한 줄거리에 화려한 노래와 볼거리로 무장한 것이 아니던가? 60년대를 배경으로 했던만큼 복고를 잘 살렸다. 보면서 궁금해지긴 했다. 2007년 그 때 왜 이런 스토리를 가진 뮤지컬 영화가 필요했던 걸까? 물론 미국의 인종차별주의가 여전히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60년대만큼 심했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람의 의식을 변화하는데는 정치와 사회제도의 변화가 사람을 바꾸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문화적 행동이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뮤지컬 영화 한 편 보면서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원래 변화란 여러 방면에서 오는 거니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즐겨도 뭐라 탓할 필요는 없다. 복고 영화지 않는가? 그 시절의 향수를 느끼는 정도로만도 충분할 것 같다. 

배우들의 변신이 이채롭고 가히 파격적이라 하겠다. 주인공의 엄마역에 존 트라볼타가 여장을 해서 우람녀로 나온다. 좀 어색하긴 하지만 나름 귀엽게 봐 줄만하다. 내가 좋아하는 미셸 파이퍼의 악녀역도 괜찮고, 무엇보다 뚱뚱녀 니키 블론스키의 노래와 춤은 가히 신기에 가깝다고나 할까? 흑인 배우들의 노래와 춤도 볼만하다. 확실히 마이너리티의 신명나는 한판 난장을 보는 것 같다. 더운 여름 밤, 시원하게 샤워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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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0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극장에서 상영했나요? tv 영화소개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개봉여부는 알수 없네요.

stella.K 2009-08-02 20:0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극장에서 상영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저는 IPTV를 통해 봤습니다. 카스피님도 기회되시면 한번 보세요. 후회 안하실 겁니다.^^

어느멋진날 2009-08-0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좋은 걸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왜 여름엔 다들 공포영화만 찾는지,, 전 공포영화 진짜 싫어하거든요,, ㅠㅠ

stella.K 2009-08-03 10:21   좋아요 0 | URL
보면 즐거운 시간될거예요.^^

진달래 2009-08-0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추천해줘서 저도 늘 보고 싶어했던 작품이에요. ^^
물론 아직 못 봤지만요. ^^

공포영화보다 이렇게 유쾌한 영화 보면서
무더운 여름 나고 싶네요.

잘 지내시죠? ^^*
 
스탠 바이 미 - Stand By M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를 이제서야 보다니!  

20년도 더 됐을 옛날 영화다. 그러나 영화가 참 사랑스럽다.  

너무 재미있서 한 번에 봤다.(집에서 보는 영화 중간에 끊지 않고 한 번에 보는 거 쉽지 않다.) 

어른은 어른 흉내를 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영웅 심리는 어린이나 어른이나 다 있지 않을까? 역시 사람은 모험을 하고 어려운 파도를 헤쳐봐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사람이 이틀만에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라고나 할까?ㅎ   

영화 엔딩 때 고디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돌아오니 마을이 작아진 느낌이었다." 

짜식, 언제 또 커서 저런 말을...! 

영화를 보면서 나는 무엇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을까를 되돌아 보게 했다.     

영화 사이 사이에 흐르는 음악이 좋다. 

역시 로브 라이너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보너스로 미국 현역 배우들의 초기 옛된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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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0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버 피닉스의 어린 모습이 아직도 아련한 영화입니다. 예전에 미루다 미루다 보았을때 얼마나 흐믓해했는지 생각나네요..

stella.K 2009-08-01 13:1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머큐리님. 저도 그랬어요.
저 영화에선 리버 피닉스의 역할이 그다지 컸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리버 피닉스는 역시 <아이다호>가 아닌가 싶어요.^^

목동 2009-08-01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봅니다, 제 어린 시절 생각하며,,,

stella.K 2009-08-01 19:14   좋아요 0 | URL
즐거운 시간 되실 겁니다. 펠렉스님.^^

진달래 2009-08-0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영화, 기억해둘게요. ^^*
 
쌀 (반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쑤퉁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은 이번이 두번짼데 내가 읽은 '나, 제왕의 생애'에서는 환상적 우화를 선보였다면 이 작품은 뭐랄까 인간의 원초적이면서도 원시적인 욕망을 여지없이 까발렸다고나 할까? 유독 쌀에 집착하는 우릉과 그 가족의 내면 풍경을 흡입력있게 묘사한 수작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나, 제왕의 생애'처럼 그의 글은 이미지적이어서 영화적 상상력을 가능케 한다. 그것은 작가가 지닌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릉과 그 가족의 내면 풍경을 읽는 건 썩 유쾌하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콩가루에 난장판이 어디 있겠는가? 작품은 교활함에, 변태에, 피 범벅은 말할 것도 없고, 무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런 가족이요 가정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아 보인다. 더구나 작품에서는 이런 가족관계가 우릉 1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대에 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읽다보면 처참하다는 느낌이 들고 읽다보면 그들이 차라리 측은하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아무리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가족만큼은 서로를 보듬고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고아로 태어나서 한 번도 타인의 사랑 아니야 친절을 받아보지 못한 우릉은 그저 세상에 대한 원한과 복수로 산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유일한 위로요 소망이었던 건 '쌀'이었다. 아니 그것은 '욕망의 대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작가는 왜 다른 하고 많은 것 중에 주인공의 욕망의 대상을 '쌀'로 정한 것일까?  

작품의 배경은 20세기 초 중국 사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그 무렵이면 먹고 살기 힘들었을 때이다. 그 시절엔 누구나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시대이고, 살기 위해 먹기보단 먹기 위해 살아야 했던 시대이다. 그러므로 쌀에 유독 많은 집착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면에선 저 유명한 펄벅의 <대지>에서의 왕룽을 떠올리게도 한다. 물론 그 작품에서 주인공 왕룽은 땅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는 게 다르다는 것이고, 이 작품에서는 언급한 '대지'보다 더 극악스럽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 다른 것일 것이다.('대지'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해 보자면, 그 작품은 여성 작가가 썼기 때문에 아무래도 뭔가 여성적 정서가 있어 보인다. 또한 서양인으로서 동양을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중국적 작품은 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작품이 갖는 문학적 가치는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다는 건 자명하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얘기했을 때 '원초적'이란 표현을 썼다. 그것은 주인공의 욕망을 가감없이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원시적'이라는 표현도 썼다. 그것은 우릉의 가정이 전혀 교육받지 못하고 전혀 문화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교육 받지 못하고 문화적이지 않은 면들은 또한 2대에 걸쳐 있다. 만일 조금이라도 교육을 받았고 문화적 향유를 누렸더라면 그처럼 극악스러스럽고 비참한 최후를 맞지도 않아 보인다. 게다가 그 비참한 최후란 게 우릉의 최후일뿐 그것은 여전히 계속될 것만 같다.  

인간은 원래 악하다. 그 악한 면을 깨우치지 못하면 무엇이 선이며 악한지도 모르게 된다. 그러나 교육과 문화적 환경은 그것을 어느 만치는 깨우치고 완화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생각한다.(그렇게 말하는 건 교육과 문화적 환경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다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이것을 알리 없는 그들은 나의 불행 전부가 남 탓인 양 전가하며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악만이 남아있을 것 같지 읺은 관계의 흐름 속에서도 아주 희미하게 남아 인간의 연민과 정을 느껴볼 수 있는 부분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것은 치윈이 언니 쯔윈이 자신의 팔찌를 훔쳐 갔을 때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을 것처럼 만나러 가지만 언니의 처량한 신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돌려 받기를 포기했을 때나, 사고로  언니가 죽었을 때 울었다는 점 들은 인간이 마냥 악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가 남자여서 일까?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은 지극히 마초적이기도 하다.  

사실 이 작품은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반면교사라고, 앞서 언급한 교육적이고 도덕적이며 문화적인 측면은 전혀 보여주지 않으면서 끝까지 시종일관 인간의 악한 면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어떤 작품은 그래서 괜히 내 영혼까지 악하게 물들 것만 같은 기분 나쁜 작품도 있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어쩌면 그것을 표현하되 위트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읽다보면 그래서 사랑이 중요하며, 도덕이 중요하고, 교육이 중요함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을 작가가 교훈적으로 보여줄려고 했다면 이 작품은 자칫 지루하고 빤한 것을 보여준다고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쑤퉁은 이야기꾼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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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7-31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전 한권도 못 읽어보았는데

진달래 2009-08-0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쑤퉁... 이름만 들어봤어요.
이 작품도 꼭 기억해둬야겠네요. ^^

stella.K 2009-08-05 10:34   좋아요 0 | URL
이 사람 좋아요. 이 사람의 작품은 읽는대로 모아둘 생각입니다.^^
 
추억 - The Way We Wer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가 유난히 감미롭고 낭만적이다.  

어디 그뿐인가? 로버트 레드포드.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는 그다지 평점이 높지가 않다. 평단에서는 두 개 반이다. 아쉽다. 난 3개는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는 건 순전히 저 로버트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출생연도는 1973년.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The Way We Were 를 80년대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73년도라니...?  

언젠가 본듯한데 어제 다시 봤다. 사실 옛날 영화를 본다는 것은 두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인내심을 요하게 만들거나 충분히 옛 추억의 감상에 빠지게 만들거나. 이 영화는 다분히 후자쪽에 속하며 여성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결혼의 조건에 있어서 아니 배우자의 선택 요건에 있어서 서로 같은 성향의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가?를 생각했다. 

영화 스토리는 간단하다. 케이티와 허벨은 대학 때 만나 서로  다른 점 때문에 끌려 사랑하지만 성향이 맞지 않아 결국 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부언하자면 케이티는 다혈질에 정치적 성향이 강하고 허벨은 보수적이며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졌다. 바로 이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끌리고 사랑을하며 어떻게 헤어지게 되는가를 나름 섬세하게 그렸다. 게다가 미국의 당시의 정치 사회상을 적절히 배합시켰다. 

사람들은 말한다.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서 살아야 탈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거기엔 상대의 스펙이 나의 그것과 얼마나 잘 어울리냐는 거지 성향은 잘 포함시키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미국이니까 가능한 건 아닐까?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는 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안정주의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이혼하면 손해보는 것이 많으니까 선택부터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혼이든 이혼이든 과정을 사는 것인데 왜 이혼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서 결혼하기도 쉽지 않고 이혼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생각을 또 좀 달리해 보자.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들의 헤어짐이 아쉬웠다. 더구나 케이티가 아이를 낳은 직후에 헤어진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아이까지 낳았으면 당연히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배우자가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단지 맞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이 헤어짐의 절대적 사유가 될 수 있느냐이다. 

그런데 미국이라서 그런가? 영화라서 그럴까? 이들의 헤어짐도 꽤 낭만적여 보인다. 서로에 대해 실망하기 전에 이대로 더 살 부비며 살다가는 서로 안 맞는 것만 더 확인할 테니까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이 아직 남아있을 때 헤어지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정 때문에 사는 것이라고 하고 헤어질 땐 서로의 밑바닥 치부까지 다 보고 갈 때까지 갔다가 마지막 선택하는 게 이혼이 아니던가?  

전자의 경우 낭만적인 동시에 꽤 합리적여 보인다. 서로 미워지기 전에 헤어진다. 얼마나 쿨하고 멋있는 생각인가? 하지만 거기에 허는 없을까? 이를테면 서로의 안 좋은 모습까지 받아주고 용납해 줄 자신이 없으니까 적당한 선에서 이별을 선택하는 '용기 없음'또는 '회피'는 아닐까? 후자의 경우 인간이 갈 때까지 가고 볼꼴 안 볼꼴까지 다 봤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불행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결국 바닥을 쳐야 다시 떠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서로의 좋은 면만을 보려한다면 그게 무슨 사랑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합리적이고 낭만적인 대신 외로울 것이다. 후자는 견디고 일어 났으니 더 깊어지지 않을까? 

모르겠다. 뭐든 선택의 문제일 텐데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는 인간관계를 원한다면 적당한 선에서 헤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영화처럼.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못내 아쉽다. 그것이 바브라 스트라이센드와 로버트 레드포드기 때문에 그런 걸까? 아니면 영화 전편에 흐르는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 한국적 사고방식에선 좀체로 이해할 수 없서서일까?  아니면 이도저조 아니라면 영화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걸까? 

아무튼 그들의 헤어짐이 안타까운 건 사람은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그대로인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은 서로일 때 깎이고 다듬어진다. 저들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정말 못 생겼다. 그러나 매력적이다. 
그녀의 당당함이 매력이고, 못 생긴 것이 매력이다.  

80년대 초 그녀가 부른 'woman in love'를 귀에 달고 살았었다. 지금은 뭐하며 지낼까? 많이 늙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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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1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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