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고 볼 일이다. 지난 금요일, 내가 만화 영화를 보러 그 먼 안국동까지 다녀오다니.
아트 선재 센터에서 <신카이 마코토 특별전>을 한다기에 다녀왔다.
이것을 소개해 준 분이 이 사람의 작품을 두고 '시적이다'란 표현만 쓰지 않았어도 안 갔을런지도 모른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만화를 두고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일까?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만화와 담 쌓고 지낸지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만화 영화란 게 거의 대부분 어린이 취향이라 이미 어린 시절과 동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나 같은 사람에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IMF 원년에 지상파 한 방송사에서 제작비 절감차원에서 멀쩡히 하던 아침 방송을 중단하고 만화 영화<괴도 루팡>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어느 나라가 제작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 음울한 매력이 좋아 그야말로 초등학교 이후 이토록 그 만화에 열광해 본적이 없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봤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간간히 만화를 보긴 했네. 디즈니에서 만든 극장용 만화 영화들.
아무튼 그날 11년전 <괴도 루팡>이후 내가 열광할 애니메이션이 생겼다는 게 반가웠다.
이미 매니아들 사이에선 꽤 알려진 사람이겠지만 나에게 이 사람은 처음이다.
내가 본 영화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란 작품이었다.

상영 시간을 좀 더 정확히 알았다면 앞 시간에 했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나 <별의 목소리>까지 봤을 것이다. 소개해준 분이 상영시간을 8시로만 알고 있어 시키는대로 했더니 고작 본게 이게 다다.
이 영화는 글쎄 시적이라기 보단 좋게 말하면 좀 난해하고, 평범하게 말하면 모호한 느낌이다. 사랑과 공상 과학을 교차시키기도 했다. 얼핏보면 매트릭스를 연상시킨다고나 할까? 그만큼 음울하기도 하지만 잔잔한 유머도 갖추고 있다. 특히 빛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게 참 놀랍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특별 대담 시간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신카이 마코토가 나온 것은 아니고 이 사람과 친분이 있는 장형윤이라는 만화 영화 감독과의 대담 시간이 이어졌다(젠장, 이럴 땐 작가 자신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확실히 누군가를 통해 그 사람을 아는 건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도대체 어떤게 신카이 마코토 자신을 말하고 어떤 게 장형윤 감독의 해석인 것인지 모호하다. 대담 분위기도 다소 산만하기도 하고. 그래도 장 감독 말을 들으니 정말 신카이 마코토는 이와이 슌지의 영화<러브 레터>를 많이 닮았있다고 하는데 거기에 이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혼자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성적이라나? 정말 그럴 것도 같다. 작품 분위기를 보면.
내친김에 집에 돌아와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보았다.

그림 작렬이다! 이런 애니메이션을 구사하는 작가가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고 내가 애니메이션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적이기는 이 작품이 훨씬 시적이다.
사실 가기 전 일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점심을 먹는데 숟깔질을 잘못하는 바람에 음식이 옷에 묻질 않나, 함께 보러 가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못 보겠다고 하질 않나, 지하철을 내려야할 순간에 무슨 생각엔가 골똘해져서 역을 지나치질 않나. 그런 실수 웬만해서 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런 일들이 이어지니 약간은 불안했다. 물론 아니나 다를까 기껏 가서 한 작품 달랑 보고 나온 것이 아쉽긴 하지만 안 좋은 일은 거기서 끝이다. 그리고 난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를 보고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독 도서관 올라가는 길은(바로 그 앞에 아트 선재 센터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길을 걸어서 가고 걸어서 나왔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참고로, 신카이 마코토는 1973년 생이고 국문학을 전공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