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버터플라이 - M. Butterfl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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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이 영화는 독특하면서도 파격적이다.  

68년 중국. 프랑스 외교관(?) 르네가 어느 날,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을 보고 거기에 나왔던 주인공을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은 치명적이어서 가정을 버리게 만들었고 동시에 격정적인 사랑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여자는 중국 공안당국이 파견한 공작원이었고 더 충격적인 건 지금까지 여자인 줄만 알았던 여인이 남자였다는 사실이다. 이에 르네는 충격을 받고, 자신이 과연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심한 혼란을 겪게 된다. 또한 더불어 그때까지 누렸던 자신의 지위와 명예는 한 순간 날아가버리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만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체성의 혼란으로 손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여자처럼 행동하는 기행을 한다.   

인상적이고 충격적인건 르네는 일본의 가부끼 분장을 거기 수용된 죄수들 앞에서 시연해 보이면서 자신의 비극적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에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조그만 손거울로 자신의 목을 그음으로 비극적 삶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화는 나에게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유쾌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추천할만하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는 하나 이 영화는 19금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본의 아닌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요즘에야 이런 것쯤. 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의 배경이던 68년 당시나, 영화와 됐던 15년 전이나 동성애는 쉽게 다루어지지 않은 소재다. 그런데 영화에서 동성애도 동성애지만 동양문화를 보는 서양인의 태도다. 서양인의 입장에선 동양이 굉장히 신비로울 수 있을 것이다. 말에 의하면 동양의 신비함과 깊이는 서양의  그것이 따라올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나 역시 그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서양인 르네(제레미 아이언스)는 동양에 너무 매료된 나머지 자신을 망각하기 조차 했다. 어떤 면에서는 감독이 너무 동양을 과대평가했다고나 할까? 르네가 죽는 장면에서 마치 서양의 그것이 동양에 전복 당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는 연인이 여성이 아닌 남성이란 것이 충격적이긴 하다. 그렇게 치명적인 사랑은 일생에 한 번 할까 말까한 것이고, 르네로서도 더 이상의 사랑은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그는 치명적임과 동시에 자살을 감행할 정도로 허망한 사랑을 했다는 것일 게다. 

그런데 또 주목해야할 것은 인간의  '고백'이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고백. 그런 의미에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운다는 가시나무 새와도 흡사하다. 내가 보고 체험한 것을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이야기를 가슴에만 묻어두는 존재가 못 된다. 그 이야기기 희극이든 비극이든 말해야 한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의 입장과 듣는 사람의 입장이 다르다. 듣는 사람은 웃기고,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원하지만, 말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내가 남을 즐겁게 만들고 싶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가끔은 포장되지 않은 나 자신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밀하고, 음습하며, 슬프고, 우울한 것이다. 그런 말을 누가 듣고 싶어하겠는가? 물론 그것을 말할 때 내 자신이 정화도 되지만 듣는 사람은 그것을 전이시킬수가 있어 조심스럽다. 즉 듣는 사람은 희극을 듣고 싶어하며, 말하는 사람은 비극을 말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아이러니인 것이다.  

이것을 뒤짚어 보면, 나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과 또 누구한테는 한 없이 못나고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끔은 나도 고백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잘난 면만이 아니라 못난 면도 보여주며 누구에겐가 위로받고 포용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에 있어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건 인간은 그렇게 내밀하고 음습한 이야기를 결국은 좋아한다는 것이다. 희극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 반면 비극은 오래 기억이 되는 법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희극 보다는 비극에서 인간의 내면을 더 잘 보여주는 법이니까. 그래서 감독은 이것을 영화화 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영화에서 르네는 맨얼굴로는 자기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수치심을 들어내야 하는 것인데 맨 얼굴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분장이 필요했겠지. 말하고 싶은 욕망과 너무 수치스러워 말할 수 없는 양극단에서 선택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죽기를 각오한 고백이기도 하다. 마치 가시나무 새처럼 말이다.  

결국 본 영화의 교훈은 '치명적 사랑은 엄청난 비극을 가져오는 법. 사랑을 너무 사랑하지 말지니.' 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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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금까지 세 번째...
    from stella09님의 서재 2009-10-21 18:02 
    알라딘에 영화 리뷰가 생긴 후로 지금까지 세 번째 이주의 리뷰에 당선이 됐다.  첫 번째는, <더 리더>였고,  두 번째는, <헤어스프레이>였으며,  세 번째는, <M 버터플라이>였다.  그런데 그동안 정작 책에서는 이주의 리뷰가 한 번도 안 되고 있다.  책까지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아무튼 어제 조금 우울한 일이 있었는데 덕분에
 
 
 
퍼펙트 머더 - A Perfect Murd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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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가 살아있다. 영화적 이미지가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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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에디터 - 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 노하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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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고난 느낌은 일단 참 능청스럽게 잘 만든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경우 책을 살 때 습관적으로 보는 것이 차례다. 이 책의 내용이 뭘 차려 보여주지 알아야 사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책 차례를 보면 그 소제목들이 재밌고 엉뚱한 게 많다. 예를들어 '엄마를 부탁해, 짜라시를 부탁해' '별꼴이 반쪽이어도 좋아' '뻥이 뻔 보다 낫다' 또는 '이 '것'들아, 하고 있지 마!' '그 마사지, 선을 넘었잖아'이런 것들인데 재미도 있으면서 능청스럽다.  그전까지 편집에 관해 딱딱 해설서만 읽었다면 이런 책 한 둰쯤 사서 책상 책꽂이에 꽂아두r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글쓰기나 편집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이 '능청스럽다'는 게 뭘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타고난 천성 또는 성격을 반영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일에서 노련함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것도 같다. 또한 그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1, 2년 해 가지고는 나오는 것이겠는가? 저자는 편집 일만 햇수로 13년이다. 그쯤되면 이런 책도 능청스럽게 잘 쓸 수 있는 것이겠구나 싶다. 

그런데 솔직히 읽으면서 편집 일은 좀 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편집 일 자체가 결코 만만치 않거니와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생각해 보라. 저자는 한겨례 편집 기자 일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기자의 꽃은 취재 기자가 아닐까? 누가 편집 기자를 생각하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집필자의 기고문을 다듬는 건 편집자의 몫이다. 하지만 독자가 읽는 것은 집필자의 글이라고 생각하지 편집자의 편집된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 글이 독자의 공감을 사고 박수를 받는다면 그것은 집필자를 위해 박수를 치는 거지 편집자를 생각하고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편집자는 빛도 없고 이름도 없다. 그러니 누가 편집일을 하고 싶을까? 

게다가 집필자의 십중팔구는 편집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짐을 받기도 한다지. "내 글을 터치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글을 써 주겠소."하는 단서. 편집자로선 속 터지고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자기 글 예쁘게 다듬어 주겠다는데 그것을 마다 하다니.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럴 바엔 내가 직접 쓰겠다는 생각 편집자라면 한번쯤 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그거면 또 차라리 낫다. 같은 편집 기자들끼리도 싸운다. 인간이 하는 일인데 어떻게 싸움을 안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진짜 살인까지 갈 뻔하기도 했단다. 물론 이건 저자의 말이 아니고 저자가 인용한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편집자는 유혹한단다. 이렇게 빛도 없는 일이 유혹한다니? 물귀신 같다. 

하지만 그게 또 사실 맞는 얘기다. 글에 관심있는 사람치고 편집에 관심없는 사람이 있을까? 글이란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쓰지는 않게 되는 것 같다. 하다못해 일기도 그렇다. 나를 위해서 쓰는 것 같아도 먼 훗날 누군가 읽어주게 되길 바라고 쓰기도 한다. 글이란 씌여지는 순간 누군가 읽혀지기 위해 쓰는 것이다. 음식도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서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그 음식의 품격이 다른 것처럼 글도 그런 것 같다. 어떤 기획에 의해서 어떻게 보기좋게 다듬느냐에 따라 그 글의 품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집자란 결코 홀로 빛날 수 없으며 필자를 빛나게 해 줄 때라야 빛이 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나름 보람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말이 쉬워 편집자지 그 일도 쉽지는 결코 않아 보인다. 말의 홍수. 온갖 비어와 속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독자들에게 각인될만한 내용의 글을 선별해서 보여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저자는 그리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도 내용은 깐깐하다. 어찌보면 풀어놓는 말의 솜씨가 깐깐하고 꼬장꼬장한 시아버지 수준이다. 읽으면서 내가 지금 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뜨끔할 정도다.  특히 문장부호들의 난무. 우리가 너무나 쉽게 아무렇게나 쓰는 것들도 저자 앞에서는 그냥 넘어 가지 못한다. 그러면서 나 역시도 아무 생각없이 썼던 문장부호들이 거머리 같이 느껴졌다. 내가 저렇게 많이 사용했단 말야? 

여기까지 쓰고나니 저자가 내 글을 본다면 이 속에서 잘못된 문장을 얼마나 찾아낼까 오금이 저릴 정도다. 특히 물음표. 왜 이렇게 많이 쓴 거지? 어, 또 쓰고 있네(긁적긁적). 그만큼 깐깐하게 쓰고 있어 나 같이 엉성한 사람은 편집자는 못되겠구나 싶다. 그래도 정신 차리게 해 주는대는 또 이만한 책이 없는 것 같다.   

특히신경숙의 베스트셀러<엄마를 부탁해>의 내용으로 '찌라시를 부탁해'란 소제목을 달고 글을 줄여 나가는 실제적 예를 보여주는 내용은 참 신선했다. 그것은 저자가 말하는 편집자의 세 가지 구호에 부합한 내용이기도 하다. 1. 짧게, 좀 더 짧게 2. 구체적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3. 새롭게, 좀 더 새롭게. 말이 쉽지 그러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 고경태 기자 알고보면 일을 참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하고 인간적으로 쓰는 사람 같다. 그는 자신의 어린 자녀들한테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오죽하면 주위에서 아이들 좀 그만 울거먹으로고 핀잔을 들을 정도란다. 물론 직업 의식이겠지만 그게 또 읽는 독자의 입장에선 참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장처럼 느껴진다. 

또한 자신의 카피를 뽑을 때 잘 된 카피와 잘못된 카피를 솔직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들면 <한겨례21> 226호, 1998년 9월24일자를 보면 제목이 "클린턴 포르노 미국의 두 얼굴!"도 되있다. 그리고 그의 알몸 사진에 모니카 르윈스키의 사진이 조그맣게 그의 음부 위치에 밖았다. 내가 봐도 좀 거시기하긴 하다. 그는 그 밑에 진한 글씨로 "정말로 대중들의 구미를 당기는 건 홀딱 벗은 게 아니라 살짝 보여주는 거다. 다 벗으면 허탈할지니..."라고 썼다.(178p) 또한 보수의 오르가슴!(631호) 에선 자극적인 단어로 대충 얼버무리려 하지 마라.(183p)고도 썼다. 이것은 표지 광고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인데 어찌보면 자신의 실례를 들으면서 자기 반성문을 쓰는 것 같다. 

그에 비해 같은 쳅터 다른 방향으로는 잘 쓴 카피와 광고도 밝히고 있다. 그 부분에서는 잘난 척하기 보단 현명한 조언을 듣고 있는 것 같아 유익하다. 하지만 모든 유익된 말중에 '자기 글을 끊임없이 의심하라'라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일 것이다. 

블로그가 생기고부터 소통은 전보다 자유로워졌다. 이 정도면 1인 잡지가 가능해졌다. 하지지 그에 비해 아무 생각없이 의심없이 올리는 글도 많아졌다. 그런 거 생각하면 난 블로거들한테 미안하고 우리나라 글에 미안해진다. 남이 볼 것을 생각하면 나도 몇번씩 고쳐써야 하는데 귀찮은 생각에 무책임하게 올리는 경우도 많아졌다.  

난 또 의심없이 이 한 편의 글을 올려야하니 아, 이를 어쩔고...

사실 이 책은 편집자(또는 편집자가 될 사람)만 읽어야 할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글에 책임지고, 조금이라도 의심하며 좀 더 나은 소통을 위해서라면 한 번쯤 읽어두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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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뉴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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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찰은 언제쯤이면 영화에서 멋지게 그려질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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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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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있는 복수를 하는 범인과 냉혈한 형사와의 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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