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만나는 중세 이야기 에듀 픽션 시리즈 5
귄터 벤텔레 지음, 박미화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의 편견이 무섭긴 무섭다. 내가 책에 갖는 편견은 뭘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세계사에서 '중세'하면 뭔가 신비롭지 않은가? 고딕 양식을 떠올리게 되고 정치적으로는 암흑기라고 하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계사 공부를 한지가 워낙 오래 되어서 그런지 나는 중세에 대해서 정말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도 난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알게된다면 중세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알게 될 줄 알았다. 뭐 이를테면 중세 시대라고 특징 지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 중세가 올 수 밖에 없는 배경들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나의 기대를 좀 벗어난 느낌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중세에 여러 가지 떠돌아 다니는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내용도 평이해서 읽기에 부담이 없는 편이다. 이야기는 총 15가지고 주로 왕조에 관한 이야기인데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을 그렸다기 보다 오히려 중세하면 기사도를 연상하듯 주로 왕족들의 모험담을 다루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도 개중엔 동화같은 이야기도 있다. 특히 제2장의 '눈밭은 발자국' 같은 경우 카롤루스 대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딸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결혼을 안 시키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카롤루스 대제의 측근인 에긴하르트와 그의 막내 황녀와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있으려니 나름 이야기가 깜찍하고 동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이 책에 관심이 있다면 직접 확인해 보라. 또한 7장의 황녀 이레네를 다룬 부분을 읽으면 마냥 정치권력의 패권 싸움만 할 것 같아도 그냥 어느 복 많은 아낙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진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나 할까?

그러나 전체적인 느낌 역시 남의 나라 역사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느낌이다. 아무리 평이하게 썼다고는 하지만 역사 전반을 알고 읽는 것이 아니라 쉽게 와 닿지는 않는다.  역시 중세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는 좌절까지는 아니지만  낮설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저자가 독일을 역사 교사인만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서 썼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나 같은 한국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을테니까. 아마도 이렇게 낮춰서 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눈높이를 높이는 수 밖에. 

그래도 내가 느끼는 건 중세 암흑기라고 하지만 그래서 더 빛나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중세를 연구하는 학자도 많고. 읽다보면 영화 보기엔 성공했으나 책 읽기엔 실패한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을 다시 붙들고 싶게 만든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중세 이야기라고는 하나 저자가 독일 사람이라 그런지 주로 자기네 나라의 이야기를 많이 다룬 것 같아 그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 폭이 그다지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겸해서 독일사의 한 단면을 보고자 원한다면 한번쯤 읽어도 무방하다고 말하면 이 책을 너무 가볍게 보는 거라고 하려나? 하지만 저자의 이 말은 한 번쯤 곱씹어 봐도 좋을 것 같다.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의 삶에 관한 전설이나 신화, 일화들은 객관적인 역사 문헌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 속에 서술된 내용은 실제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할 때 이러한 것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전설이나 신화, 일화는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 속 실존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전설이나 신화, 일화는 인물들이 살던 당시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실제 역사와는 다른 색깔을 입힌 이야기들이다. 전설과 신화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선전, 선동의 목적으로 일부러 꾸며 낸 것일 수도 있고 의식적으로 과장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전설이나 신화를 바라본다면 그것이 발생한 당시의 시대상에 관한 중요한 정보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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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0-31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관점에서 보는것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중세가 동화적이라곤 할수 없지않을까요?
낭만적인 기사도를 생각하신다면 동화적이라고 할수 있지만 사실 기사도라는 것도 너무 미화된것이 사실이죠.
유럽의 중세를 다룬 인문 서적을 읽어봤더니 너무 허걱한 부분이 많더군요.그래서 중세를 암흑기라고 했나 봅니다.

stella.K 2009-10-31 20:37   좋아요 0 | URL
날카로운 지적이네요. 그런데 정말 동화책 읽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겐. 그건 아마도 이국적인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 작가가 최대한 정치적 색깔을 빼고 평이하게 다루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아무튼 중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한
저의 인상은 그랬습니다.
 
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다. <바람의 화원>을 통해 펙션과 추리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줬던 작가가 이번엔 침니아이랜드와 뉴아일랜드라고 하는 가상의 안개의 도시에서 펼치는 범죄 스릴러를 들고 독자들을 찾아 왔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첫 장을 펼쳤을 때 좀 놀랐다. 이게 과연 내가 알던 그 작가가 쓴 소설이 맞나? 다시한 번 확인하게 만들었다. 과연 이정명 작가의 작품이 맞다. 그런데 꼭 영국의 어느 추리 작가의 작품인 것 같다. 등장인물이 우리나라 고유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작가는 작품의 세계화를 노린 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보게도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그렇고 그런 만만한 작품이었다면 겉멋들었다고 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이 그렇듯 단락 단락이 자로 잰듯하며 마치 영화에서 한 프레임 안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주듯 정교하다.   

제목도 제법 근사해 보인다. 가제본으로 받았을 땐 '나에 대한 너의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것은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이 정식 판본에선 이렇게 <악의 추억>으로 거듭났다. 또한 정식 발매를 하기 전에 독자들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등 작가와 출판사측이 들인 공력이 얼마만했을런지 가히 짐작이 간다. 

그런데 알마 전, 작가는 모 신문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김부남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썼다고 밝혔다. 김부남 사건이라. 한때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언제나 그렇듯 너무도 쉽게 우리의 뇌리속에서 잊혀졌던 이야기를 작가는 용케도 잊지 않고 이 작품 속에서 살려냈구나 싶었다. 당시 그 사건은 어렸을 적 이웃집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성인이 되어 결혼생활에 지장을 겪는 등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인이 결국 사건이 발생한지 십수 년이 지난 후 결국 가해자를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라고 한다. 그래. 나도 언젠가 이 이야기의 전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대하고나서야 아니 정확히는 이 인터뷰 기사를 접했을 때야 비로소 기억이 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 것이냐. 주위에 또는 내가 직접 당한 일이 아니고 보니 쉽게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작가는 '조두순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가해자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 또는 거세를 해야한다며 떠들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잠잠하고 희생자들을 너무 쉽게 잊는 것이 안타까워 이 작품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참, 이런 작가가 있다니. 웬지 숙연해진다.  

그런데 정말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왜 그처럼 냄비에 물끊듯 하다가 이내 잠잠해져 버리는 걸까? 김부남 사건이 어디 그때 한때의 사건으로 종결이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김부남 사건까지는 아니어도 성폭력 피해자는 그 이전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작가의 말마따나 그들은 잠깐 나왔다 잊혀진다. 그렇게 반복해서 우린 현재 나영이 사건까지 왔다. 나영이 사건은 또 언제까지 사람들의 뇌리속에 기억될까? 그런데 이번에 놀라운 건 지금까지 성폭력 가해자가 생각 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다는 거였다. 어떻게 가해자에게 그것 밖에 안 되는 형을 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법이 가벼우니 조두순 사건에서처럼 거세를 해야한다는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들끊는 것이 아닌가? 실로 인권이 피해자를 옹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는 꼴이 되고 있으니 어쩌면 이 나라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중의 피해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차는 가해자에게, 2차는 국가가. 과연 국가는 이들을 보호할 의지가 있는 것인가? 

또 하나 생각할 것은, 김부남 사건에서 보듯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것이다. 누구는 그럴지 모르겠다. 이것은 피해자가 직접 행한 악에 대한 심판이라고. 그러므로 죄가 없는거라고. 그 말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렇게만 보는 것도 석연치 않다. 악에 대한 심판은 악의 피해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악은 없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어떤 면에선 또 다른 죄악을 낳은 것이란 생각도 든다. 마치 뱀파이어에게 물린 사람이 물린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따라서 다른 사람의 목덜미를 무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우린 악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냐라는 것이다. 악의 고리는 끊어져야 하는데 뭔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큰 수렁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정명 작가가 그렇게 말하니 정말 궁금해졌다. 과연 김부남이라는 사람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해자를 찔러 죽였을 때 마음이 후련 했을까? 지금은 행복할까? 모르긴해도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다소는 후련했을지도 모르지. 가장 좋은 건 그 일을 안 당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이 선행이 됐어야하지 않았을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왜 그것을 묵인했던 것일까? 

오늘도 모 소아정신과 의사가 나영이 사건을 보고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범죄 수사에서의 증언이 아니라 치료라고. 맞는 말이다. 피해자는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환자를 두고 몇 번씩 진술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은 고문이다. 이런 수사 방식은 정말 고쳐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놓고 가해자에게 익숙하고 뻔한 형을 내린다면 이것은 필시 짐승같은 검찰에 무능한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밖엔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더불어 지적하고 싶은 건 우리나라는 성범죄자들에게 너무 소극적이다. 그들의 신상을 공개할 것이냐 말것이냐, 전자발찌를 착용할 것이냐 말것이냐, 거세를 할 것이냐 말것이냐 이런 것 가지고 인권 침해 소지 논란만 물고 늘어진다. 사실 그것은 어떤 면에선 피해자측에서 보자면 가장 소극적인 안전망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폭력피해자 못지 않게 가해자 역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매스컴이나 여타의 치료기관에서는 그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어떻게 치료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난 이것이 더 화가난다. 진단과 비판만 있을 뿐 행동이 없다. 김부남 사건도 애초에 양쪽의 치료가 이루어졌더라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과연 악의 피해자가 악을 심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끝은 완벽하지 않다. 악은 반드시 선으로만 정복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이다. 악으로 악을 심판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착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탄탄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모호하게 결말을 내고 있다. 등장인물 저마다에 갖는 트라우마는 말하고 있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해결을 보여주지 못하고 또한 이들이 벌이는수사도 만족할만한 해결책을 보여주지 못한 체 안개의 도시처럼 모호하게 끝을 맺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이 문제를 어떻게 마무리져야 할런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문제만을 제기하고 끝내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긴 그맘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일이란 게 문제 제기만 해도 충분한 것이 아닌가? 결론이야 앞으로 성폭력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이냐 또는 이를 보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편 아쉬운 것은 제목대로 '악의 추억'이었다면(독자로서 이 제목에 만족한다) 악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한 인간군상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악의 실체와 악의 반대 개념인 선에 관해서어느 정도 언급해야 하지 않았을까? 오늘 날의 세대가 악은 얘기할 줄 알면서 그의 반대 개념인 선에 대해서는 얘기하기를 주춤하는 세대가 되어버린 듯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죄와 벌'을 얘기했던 도스토옙스키가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렇게 이 작품은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나는 당분간 작가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 더 좋은 작품을 쓰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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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릭 게코스키 지음, 차익종 옮김 / 르네상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스타가 처음부터 저 좋아 반짝반짝 빛났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알고 보면 무명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작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유명한 책을 낸 작가 역시 처음부터 어느 별에서 툭하고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나름 무명의 시절이 있었고, 습작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지 않으면 나 같은 벽안의 독자는 알리가 없을 것이다그렇게 잘난 책의 무명시절을 알게 되면 '그들도 우리처럼'하며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 릭 게코스키는 아마도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러한 분야에 있어서 탁월한 공로를 세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독서계의 빌 브라이슨으로 불린다. 그는 희귀본에 아주 관심이 많아 그것을 수집하고 그 과정을 취재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당연히 취재하다 보면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많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가치 있게 빛나는 것 같다.  

유명 작가의 삶과 작품의 이면을 본다는 것이 왜 그리 즐거운 것인가? 그것은 마치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이었다. 노벨문학상은 어렵거나 지루하다는 그 편견에서 이 책 역시 조금도 비껴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 전 읽기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영화 보기엔 성공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 문구에 눈이 멎었다 

 

   
  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손으로 쓴 원고인데도 수정한 흔적이 극히 드물었다. 나중에 그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그는 <파리대왕>을 집필할 때 줄거리가 머릿속에 워낙에 뚜렷이 새겨 있어서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냥 타자기를 두드리는 듯했다고 한다.(45p)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질투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신은 참 불공평하다. 어떻게 여느 평범한 작가(또는 작가지망생)에겐 그토록 무지막지하게 자신의 원고를 고쳐야하는 천형을 주시면서 이런 사람에게는 타자기로 두드리듯이 한 번에 쓸 수 있는 은총을 주셨단 말인가? 그렇다면 윌리엄 골딩은 가히 문학계의 미켈란젤로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머릿속에 이미 완벽한 조각상을 그려놓고 실제로 작업을 할 땐 그 나머지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낸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완성시켰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중요한 건 윌리엄 골딩이 그럴 수 있기까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그는 교직에 있었다고 한다)을 관찰했고 그것을 글로 옮겼다는 것이다

 

 

   
  인간이 엄청난 규모의 악을 행할 수도 있는 족속임을 깨달은 후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어떻게 변화한 것일까? 그의 학생들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인간성에 공포를 느낀 그는 서서히 이와 관련된 새로운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것은 아이에 대한 아이의 비인간성이었다.(50p)  
   

 

그가 그렇게 타이프로 글을 찍어내듯 글을 쓸 수 있는 것엔 지난한 관찰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봐도 대단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문학에 이토록이나 잘 녹여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혜안에 탄복할 정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유명한 작품도 처음엔 푸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 스물두 군데 출판사에 보내봤지만 연속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어디 그 뿐인가? 나보코프의 <롤리타> 역시 그랬고, 우리가 그토록 추앙해 마지않는 저 유명한 롤링의<해리포터와 현자의 돌>12번이나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고 13번째에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헤밍웨이 역시 처음부터 잘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누구나 데뷔는 고단하다고 말한 바 있다그밖에도 저자가 다루고 있는 작가들 역시 하나 같이 험난한 여정을 거쳐 세상에 빛을 보았음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런 걸 접하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뭐 나름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세상의 한다하는 작가의 작품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쳤어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 중요한 건 무슨 일에든지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않는 거야.’ 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론 그 반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도 그런 긴 무명시절이 있는데 나는 어느 세월에 뜻을 이룬단 말인가 하고 지레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하지만 세상은 뜻을 이루던 못 이루던 그것은 둘째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무엇인가를 해 보는 것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인 것 같다. 그래서 해 보는 것과 그래서 못하겠다는 사람. 그래도 세상은 뭔가를 안하는 사람 보다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닐까물론 잘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당대의 출판사들 참 까막눈이라고 비아냥거리기라도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그렇게 유명한 작품에 퇴짜를 놓을 수가 있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들도 한마디씩은 다 했을 것이다. 누가 그렇게 될 줄 알았냐고. 가슴을 치고 후회하며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하나의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노벨문학상도 타고 명불허전이 될 수도 있었겠지. 그렇게 쉽게 예측이 가능한 작품이라면 그만한 명예를 안을 수 있었겠는가?  

 

이 책은 이것 외에도 작가의 삶을 다루기도 하고, 희귀본을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들을 담백하게 전하기도 한다. 또한 유명 작가의 작품도 저자는 무작정 좋다고만 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지나갈 법한 면도 한마디씩 꾹 찔러주고 가는 날카로움도 지녔다그런 부분을 읽다보면 아, 정말? 하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러면서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어떤 생각과 정신을 가지고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깊은 안목을 가질 것을 주문하는 것 같다명작이니만큼 그 명성에 눌려 좋은 게 좋은 것이려니 안일한 자세로 책을 읽는 것처럼 안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비판 정신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이 있다면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연합>인 것 같다. 그것은 작가 자신도 너무 아까운 삶을 살았으며 동시에 세상에 재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책이라 더 아쉬울 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엔 절판된 상태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소홀해지고 그래서 또 안타까움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으로 이런 좋은 책을 읽어 볼 수 있는 행복을 선사해 준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물론 알 리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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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0-2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안살수 없는 리뷰 ㅠ.ㅠ

stella.K 2009-10-28 12:52   좋아요 0 | URL
ㅎㅎ 꼭 한 번 읽어 보세요. 우리나라엔 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없을까
아쉬울 정돕니다.^^

프레이야 2009-10-31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스트특종이에요.
스텔라님 축하해요.^^
이 책도 보관함으로 일단 직행~

stella.K 2009-10-31 11:35   좋아요 0 | URL
아악~! 이럴 줄 몰랐어요!!
베스트 특종이어도 항상 작은 것만 됐는데...
저도 이런 날이 있군요. ㅎㅎ
고맙습니다 프레이야님.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피아니스트의 전설 - The Legend of 1900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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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일단 영화의 분위기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을 연상케 만든다. 이야기가 우화적이라는 것도 비슷하고.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벤자민...>은 완전 허구지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일생 동한 한 번도 배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딛어보지 않은 남자 말이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이 말하는 금치산자다. 본적도 주소지도 없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전설'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딱 한 번 땅에 발을 딛어 보려고 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그러나 그는 배(여객선)와 땅을 이어주는 승강기 계단에서 주춤하다 이내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자기 안에 뭔가를 깨지 못하고 자폐적 삶을 산다. 무엇이 이 남자로 하여금 그토록이나 땅에 발을 내딛지 못하게 만드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피아노 역시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에 관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 영화는 불친절 하다. 또한 이 사람의 이름은 어떠한가? 1900년에 태어났다고 해서 나인틴 헌드레드다.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 제 자식 이름 아무렇게나 지어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고아로 태어나서 어느 인정 많은 흑인 손에서 자란다. 물론 그것도 잠깐 동안.  

그래도 이 남자 그다지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피아노를 잘 친다는 덕분에 여객선 악단 맴버가 되고, 땅에 발을 안 딛었다뿐이지 세상 어디든 다 돌아 다니지 않는가? 배 안에선 온갖 산해진미는 다 맛보고 살 것이고.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재즈를 처음 발명했다던 흑인 피아니스트와 배틀을 하게 된다. 이 흑인의 삶도 만만치 않다. 매음굴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된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때까지 자신의 피아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견주어 보지 않았던 그는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흑인 피아니스트의 뛰어난 연주 실력을 보면서 겁을 먹는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연주 실력이 앞선다는 것을 알고 으쓱해 진다. 역시 영화에서의 압권은 단연 이 둘의 연주 실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주인공의 환상적인 장면과 결합해서 더욱 빛을 바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감동스럽지는 않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산 입에 거미줄 치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태어나면서 부여 받았다던 탈란트 또는 재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주인공에게도 그렇고 배틀을 했던 흑인 피아니스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것이 결국 삶의 힘이되고 자신을 지켜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이 재주 하나만 있으면 먹고 산다는데 왜 그 재주를 발휘하며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극소수일까? 생각해 보면 안타깝다. 

 
이 남자 땅에 발을 내딛을 자신도 없으니 사랑하는 여자도 차지하지 못하고 평생 고자처럼 살았지. 그러고 보면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 해도 매력이 없는 건 그가 사랑을 해 보지 않고 은둔자를 자처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영화는 한 인물을 다뤘다고 해도 매력이 없고 밋밋할 뿐이다. 알아 줄만한 감독에(이 감독은 '시네마 천국'을 만들기도 했다) 거장이라 불릴만한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았다고 해도 말이다.   

이 영화는 화자가 자신의 낡은 트럼펫을 어느 악기점에 팔다가 그 집 주인에게 자신의 오랜 친구에 관해 고백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화자는 나인틴 헌드레드가 몸담고 있던 여객선 악단에서 트럼펫 주자이기도 하다.   

친구의 의미가 희박해진 요즘 언제나 그 만남을 함께하지 못하고 추억함이 아쉽다. 그래서 친구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또 어떤 친구가 기억해 줄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뭐든지 한때 영화롭고 한때 좋을 뿐이다. 주인공이 몸담았던 여객선도 세월이 흐르면서 큰 고철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추억을 다하고 찾아간 고철 속에서 옛 친구를 다시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렇다. 그 속에 나이틴 헌드레드가 아직도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죽어서야 배에서 내려오게 될 것이다. 죽어서야 땅에 내려온다던 새 아비정전처럼 말이다. 인생 별거 있어? 그러면서 내려오겠지. 그나마 그가 그렇게 죽었더라면 그 밋밋함이 조금은 상쇄되지 않았을까? 다시 만나도 딱히 할 일도 없으면서 엔딩은 또 어쩌면 그리도 싱겁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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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랑 2009-10-2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 앞부분만 봤었는데
가끔 생각 나더라구요.. 배의 밑바닥에서 파도만 바라보고 심심하게 살아오던 소년이
처음으로 음악을 들은게 어땠을까..
이상하게 꼬마녀석이 밖을 보고 있던 장면이 가끔 생각나더라구요

stella.K 2009-10-22 13:46   좋아요 0 | URL
그 꼬마 넘 귀엽지 않아요?
근데 이 남자 좀 아쉬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영화로는 나름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흑수선 - The Last Witn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탄탄한 구성, 비주얼이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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