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타 - EVIT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알란 파커
주연 : 마돈나 (Madonna), 안토니오 반데라스

전기 영화가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많은 물량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저 그런 범작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무엇보다도 뮤지컬 영화가 아니던가? 뮤지컬 영화를 이토록이나 졸면서 본 건 이 작품이 처음인듯도 하다. 아, 물론 그렇다고 내가 뮤지컬 영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런 류는 아니다. 그냥 보면 흥겨워서 보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 보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이 영화를 졸면서 봤다고 해도 한숨지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왜 알란 파커는 이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이 작품도 <시카고>처럼 뮤지컬로 나왔다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진 참사 장면도 나름 신선하다. 어떻게 뮤지컬 영화에 이 장면을 도입할 생각을 했을까? 군무씬도 나름 멋지다. 무엇보다 그 시대를 재현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 박수를 쳐 줘야 할 것 같다. 1950년대 의상, 화장법 등이 말이다. 영화와 드라마가 꼭 같을 수는 없다고는 하나 가끔 드라마 보면 배경은 옛날인데 주인공은 현대적이라는 것이 못마땅하게 다가올 때가 많다. 특히 요즘 관심있게 지켜보는 <추노>를 보면 특히 여자 주인공이 떠도 너무 많이 뜬다는 생각이 든다. 이 페이퍼는 <추노>를 비판하기 위한 페이퍼는 아니니 더 이상의 언급은 안 하겠지만, 여자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 오도카니 예쁘게만 꾸며 줄려고 하는 제작진들은 이런 영화보고 반성 좀 하면 좋겠다. 에비타 역을 맡은 마돈나. 난 솔직히 그녀의 등장에 조금은 놀라웠다. 얼마나 촌스럽던지. 하지만 그 시대에선 그것이 나름 최고의 패션 브랜드였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 못할 관객들이 어딨겠는가?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배역에 최선을 다했다(그녀는 정말 한마디로 대단한 여자다). 

 

사실 역사상 일개의 창녀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 영부인이 된 경우는 에비타가 전무후무 하지 않나 싶다. 또한 그녀는 아르헨티나 민중들에겐 성녀였다. 창녀와 성녀. 확실한 아우라를 지닌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녀를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것도 어찌보면 지극히 남성 중심의 시각은 아닐까 싶다. 하긴 이 여자가 철저하게 남자를 이용해서 개과천선할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보는 것도 당연한 시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인물에 대한 좀 더 다각적인 연구 노력없이 그저 뮤지컬이란 장르 안에 박제시킨 건 아쉬움이 크다. 더구나 에비타의 인기가 절정에 오르고 그녀의 정적들이 부통령의 자리를 노린다고 생각할 즈음 갑자기 병을 얻어 죽는다는 것은 클리셰란 생각이 들어 작가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참 무책인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적의 어떠한 갈등없이 갑자기 신병을 들이 민다는 건, 정적들에겐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인데 과연 이런 설정이 가능한가? 아무리 뮤지컬이라고 하지만. 그래서도 이 작품은 뮤지컬로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우리가 아는 건 에비타는 진정으로 민중을 사랑했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과연 이 시대에 이런 인물이 또 과연 한 나라의 정치사에 등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알겠지만 정치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초특급 엘리트들이다. 사실 가방 끈이 길다고 누구나 정치 잘하는 것 아닌데도 국회는 늘 가방 끈이 긴 사람들의 전유물이요 놀이터로 인식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좀 더 나은 국가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똑똑한 사람을 모아 놨더니 피터지게 싸우느라 하향평준화한 꼴 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똑똑한 사람이 나라를 살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걸 보여준다. 민중을 사랑하는 정치인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에비타는 기억될만한 존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더구나 여자로써 말이다. 그래도 아쉽다. 누군가는 이 여자의 전기를 다시 써 줬으면 하고, 누군가는 이 작품을 다시 만들어줬으면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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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1-25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참 감명깊게 보았는데, stella님 리뷰를 찬찬히 읽어보니 저는 너무 감상적으로만 보았지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긴 그때 제가 좀 그럴만 하기도 했지만요.
이 영화에 실린 노래들도 무척 좋아해서, CD를 지금도 수시로 듣는답니다. 대부분 노래가 슬프지요.

stella.K 2010-01-25 14:19   좋아요 0 | URL
그래요. 음악은 정말 좋았어요.
알란 파커, 나름 좋은 영화 만드는 감독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은 많이 아쉽더라구요.ㅜ

릴케 현상 2010-01-2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었는데 못보고 지나간 영화네요^^ 스텔라님덕에 늦었지만 봐야겠어용~

stella.K 2010-01-26 10:50   좋아요 0 | URL
오, 산책님, 오랜만이세요. 잘 지내시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엉클 톰스 캐빈 아셰트클래식 2
해리엣 비처 스토 지음, 크리스티앙 하인리히 그림, 마도경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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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노예 제도에 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오긴 했지만, 지금도 인간을 사유 재산으로 본다는 게 충격적이긴 하다. 어떻게 인간 고유의 가치를 사유화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나 역시 노예를 다룬 이야기는 이 책이 처음이 아니다. 학교에서야 그냥 지식으로 들어 넘기고 실제로 노예를 다룬 이야기는 영화 <뿌리>를 접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서구에서는 노예제도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엔 오랫동안 '노비제도'가 있었다. 어린 시절 <뿌리>를 보면서 과연 서양의 노예제도와 우리나라의 노비제도가 무엇이 다를까? 인간을 사유화하기는 똑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나쁘기로는 서양의 그것이 나쁜 것일까? 우리나라 노비제도가 더 나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모르긴 해도 서양의 노예제도가 조금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서양은 적어도 자기 동족을 노예로 삼지는 않지 않으니까.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양반과 천민이 구분되어져 있었다. 그리고 천민중 대다수는 그렇게 노비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랄하기로는 서양과 우리나라 중 어디가 더 악랄할까? 그때 내 옆에 누워 자던 언니는 그야 당연 서양이 더 악랄하지라고 대답했다. 그건 아마도 언니의 비논리적이면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 막연한 애국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어찌 누가 감히 가늠해 볼 수 있을까? 그것은 그 시대를 몸소 겪어 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억압 받고, 착취 당한 것은상처 그 자체이므로 정도의 차이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나의 의문은 정말 우문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는가 보다. 아주 오래 전, <파워 오브 원>이란 영화를 본적이 있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영화라 기억엔 거의 없지만, 백인 소년 영웅 만들기? 뭐 그런 것쯤으로 기억이 되는 것 같다. 처음엔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인간 승리의 영화는 다 감동스럽지 않은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백인 소년 하나가 승리함으로 인해서 주위의 흑인들이 더불어 복을 누린다는 그런 식의 설정이 다시 생각해 보니 꽤 못마땅했다. 그것을 알고는 당시 이 영화를 보고 열광했던 사람들에 대해 나는 냉소하다 못해 조소를 날리곤 했다. '영화를 볼 줄 모르시는구만. 쯧쯧.' 다시 보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바로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났다. 결국 이 책이 노예해방에 도화선이 됐다곤 하지만, 그래서 결국 그것을 이루어냈지만 하지만 백인들에 의해 노예제도가 만들어졌으며, 백인에 의해 그것이 폐지가 된 것이 아닌가? 나름 클러어한 면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왜 흑인에 의한 해방은 없느냐는 것이다. 자기 자신들의 치욕의 역사가 아닌가? 그렇다면 스스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미국의 역사는 아니 흑인의 역사는 다시 씌어졌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흑인의 역사는 지금도 베일이 가리워져 있다는 게 좀 아쉽다. 

이 책이 성경을 토대로 씌어졌듯이, 성경에 의해 노예제도가 만들어지고 성경에 의해 노예제도가 폐지가 됐다는 것은 확실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을 두고 '몽학선생(?)'이란 말을 가끔 하곤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 한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이다. 성경, 그 거룩한 책을 두고 누구는 인간의 탐욕을 정당화 하지만, 누구는 거기서 진리를 발견하고, 사랑과 평등을 발견하지 않는가? 결국 성경으로 인해 알곡과 쭉정이가 가려지기도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 책은 참 착하게 씌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당시의 시대상황은 가감없이 서술하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평이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 개인의 성향이기도 하겠지만 신앙인이라면 가져야 할 도덕적 가치나 연민의 태도 등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사실 난 톰의 삶에 대한 태도나 긍정적인 마인드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노예가 됐다고 다 불행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고향 아프리카는 신의 저주를 받은 땅이라고 했을 때도 톰만은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사실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에 귀속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보면 불명예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톰은 비록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거기서도 인간의 사랑과 정의를 꽃피웠다. 그런 삶의 태도가 비난 받을 것이라고 누가 감히 생각하겠는가? 바로 톰은 실제인물이며 저자로 하여금 영감을 줬다고 하지 않는가? 기억할 일이다. 나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어떤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며 어떻게 세상을 변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노예해방은 백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어느 작은 흑인 노예로 부터 시작이 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예제도가 폐지된지는 이제 200년이 흘렀다. 하지만 진정한 인간해방은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선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노예는 폐지됐을지 몰라도 인간의 착취와 억압은 지구 어디선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인종차별에서도 자유하지 못하다. 200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만한 가치를 지닌 책이 또 나와 줄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인간의 역사는 그 내용은 달리하지만 그 형태는 반복된다. 그래서 우린 고전을 다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진정한 인간해방의 노력은 여전히 펜 끝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인간의 정신을 갈고 다듬는 노력은 계속되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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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시청자들은 근래 보기 드물게 잘 버무리고 고루 양념이 배어든 ‘비빔밥 사극’을 즐기고 있다. 최근 시청률 30%를 돌파한 한국방송 수목 사극 <추노>가 그 메뉴다. 조선시대 도망 노비와 그들을 붙잡는 추노꾼들의 숨바꼭질을 그린 <추노>는 이야기의 힘과 상상력이 넘친다. 사극 <한성별곡>의 탄탄한 줄거리에, <대장금>에서 엿봤던 기기묘묘한 인물 캐릭터, 중국 무협물과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날품 액션과 첨단 입체 촬영까지 어우러졌다. 추노와 도망 노비의 쫓고 쫓기는 기본 구도에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의 비극적 죽음에 얽힌 정치적 미스터리를 끌어들여, 픽션의 잠재적 보고는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해졌다. 억지춘향식의 여자 신윤복에만 골몰했던 2008년 사극 트렌드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역사적 사실과 야담, 블록버스터 연출의 환상적인 조합, 사극의 양질 전화다.

<한성별곡>을 만들었던 곽정환 피디와 영화 <7급 공무원>의 대본을 썼던 천성일 작가는 이 작품에서 영화풍의 압축적 감각을 바탕으로 과거 민중사를 현실의 의미 속에 한껏 교직시키는 곡예를 즐기는 것 같다. <추노>의 강력한 흥행력은 역대 어느 사극보다도 이야기 자체의 역사적 사회적 함의가 풍부하고 지금 현실을 여러모로 비춰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온다. 대길을 중심으로 한 추노꾼 3인방이 노비를 잡기 위해 벌이는 패악질은 어딘지 모르게 이 땅의 불편한 현실과 어금지금 맞닿아 있다. 대길의 나이를 가리지 않는 욕설과 반말, 잔혹한 린치는 철거민 등치는 재개발 용역이나, 돈 빌린 서민 족치는 청부 폭력배 그대로다. 대길은 기실 <똥파리>에서 양익준이 열연했던 아비도 모르고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는 청부 양아치와 통하는 캐릭터다. 그런 캐릭터는 다른 추노패 천지호 일당이 산중에서 정을 통한 양반집 규수와 같이 달아나던 종복을 붙잡아 미친 듯 패는 장면에서도 새삼 확인된다. 궁지에 몰린 노비들이 당을 결성해 “밤마다 양반 대갈통에 바람구멍 하나 뚫을 거야”라며 양반 사냥을 발의하는 모습이나, 국경을 넘으려는 노비에게 돈을 뜯으려는 사기꾼의 작태는 계층 갈등이나 탈북자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추노>의 여러 설정들은 신분·계층에 대한 격렬한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에 대한 비유로도 비친다.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지속된 추노는 노비 추쇄 사업이라고 하여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졌다. 특히 임진왜란 직후 국민 절반 이상이 노비였던 상황에서 경제력을 얻고 신분 해방의 욕구가 커진 노비들의 도망을 엄금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드라마 배경은 인조 때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18세기 숙종, 영정조 때 추노에 가담한 양반들의 극심한 행패와 이에 대항한 노비들의 양반 살해 등으로 사회적 논란이 커졌으며 결국 순조 때인 1801년 공노비문서를 불살라 사실상의 추노를 단념하게 된다.

제작진은 공개된 <추노>의 시놉시스 구상에서 ‘다른 시대를 다룬 픽션은 필연적으로 지금 이 시대 그 자체를 바라보게 만든다’고 썼다. 드라마 판을 깔아준 한국방송의 심중이 마냥 편치는 않을 성싶다. ‘강부자’ 정권의 대통령을 위해 선거 때 그의 귀와 손 구실을 했던 언론참모가 현재 사장이며, 그의 눈치를 보는 경영진들이 포진해 있다. 인터넷의 감상평 가운데는 ‘<한성별곡> 때의 케이비에스가 아닌지라 끝까지 각본대로 갈 수 있을까’ ‘중간에 드라마 구도가 크게 바뀔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해주는 글들도 드문드문 떠 있다. 그런 우려(혹은 기대)를 염두에 두고, 앞으로 펼쳐질 <추노> 밖의 추노를 지켜보자.

노형석 대중문화팀장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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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1-22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펼쳐질 수도 있을 이런 류의 비하인드스토리도 드라마 추노만큼이나 기대되고 기다려집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시나리오대로 전개된다면 정말 재미없는 드라마가 되겠군요. ㅋㅋ
과연 용두사미의 최악의 드라마가 될런지 시종일관 최고의 국민드라마로 탄생될 런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

stella.K 2010-01-22 15:3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 이런 건 생각도 못하고 어제도 정신없이 빠져서 봤는데...
<한성별곡>도 보면 정치 세태를 풍자하는 면도 있어 재밌게 봤거든요,
모쪼록 <추노>도 국민드라마가 되길 바래 봅니다.^^
 

요즘 공중파에서 하는 몇 개의 드라마를 지켜보고 있는데(공교롭게도 그 보는 것이 다 사극이다. 이러다 아무래도 나도 사극 매니아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중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다면 그건 당연 <추노>일 것이다. 매주 보는 장혁과 함께 추노질 하는 그 일파들이 보여주는 초콜릿 복근(요즘엔 아예 대놓고 보여주더만)도 나름 볼만한 것이긴 하지만, 너무 대놓고 말하면 그도 밝힌다 하여 폐일언하고. 난 스토리는 물론이요 영상과 음악이 좋아 본다. 더불어 저런 영상이 가능하도록 만든 연출자가 누구인가 했더니 곽정환 PD다. 곽정환이라. 나로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얼마 전, 전호인님 서재에서 발견한 사실은, 곽정환은 이미 2007년 <한성별곡-정>이란 8부작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2007년이라. 알고 봤더니 그땐 이미 M TV에서 <커피프린스1호점>이 TV 브라운관을 점령하고 있었을 때라 당시 윤은혜도 그렇지만 나는 공유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어 이 드라마가 눈에 들어 올리가 없었다.     

결국 난 그 사실을 알고 <한성별곡-정>을 허겁지겁 꺼내봤다. 


과연 훌륭한 작품이었다. TV 드라마라고 하지만 영화를 보는 듯 하다. 특히 최루성 강한 음악이 정말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정조의 독살설을 소재로 하여 그의 죽음의 과정과 음모 과정을 추리기법을 사용하여 밀도있게 그려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인기가 없었던 것은 물론 <커프>의 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이렇다 할 스타를 기용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예를들면, 좌포청군관 역을 맡은 진이한의 경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도 누구지? 고개를 갸웃거릴만 하고, 의녀 역을 맡은 김하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천희 정도는 알겠는데 지금이나 알아 줄만 하지 2007년이면 그도 그다지 알려진 배우는 아니었을성 싶다. 그뿐인가? 정조역을 맡은 안내상도 그 무렵쯤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을 것이므로 대비역의 정애리 정도가 그나마 굵직한 캐스팅이었나고나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어쩌면 곽정환PD만의 전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스타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끌어지는 드라마 보다 드라마를 위한 드라마. 뭐 그런. 횟수도 딱 8회에서 끝을 냈다. 아무리 못해도 16부작을 하던데 8부작이니 농축된 느낌이다. 쓸데없이 긴 것보다 훨낫다. 

 박상규 (진이한 분)  
  

 

 

 

특히 이 드라마에서 내가 지켜보게 된 인물은 좌포청군관 박상규 역의 진이한이다. 원래 드라마 첫 장면부터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첫 장면부터 진이한이 등장한다. 그래서 혹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이한은 처음부터 찌질하게 나온다. 목소리도 작고, 싸움도 못하며, 뭔가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하는 인물이다. 뭔가의 포스는 느껴지기는 한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주인공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진이한 이상의 주인공 포스를 느끼게 하는 인물은 더 이상 없는 것으로 봐 이 사람이 주인공은 맞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이 인물 끝까지 와신상담, 개과천선 같은 거 하지 않는다. 우왕좌왕 한다는 것은 우유부단함의 태도를 이르는 말이니 그 인물 그대로를 유지하되 그런 인물의 대표격은 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아니었을까? 나 개인적으론 딱 그 햄릿의 분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초인적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없고, 영웅이 되는 것도 없다. 그저 서얼이었기에 그 불명예를 안고, 기 한 번 제대로 표보지 못하는 고독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에게도 사랑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단 그 사랑이 끝이 닿지 않는 것이기에 애절하고 안타깝고, 그래서 묘하게도 보는이로 하여금 모성본능을 자극하게 만든다. 

극본은 어떠한가? 원래 시나리오 작가였다고 한다. 확실히 극작가가 쓰는 대본과 시나리오 작가가 TV 드라마를 위해 극본을 쓰는 것은 좀 달라 보이긴 한다. 과유불급이라 다소 산만하고 그래서 약간은 지루한 감도 없지 않지만 그것들을 나중에 잘 다듬고 연결시키는데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특히 좋은 대사들이 많다. 이 드라마에서는 정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정조란 인물이 크게 부각이 되지 않으면서 할 말은 다하게끔 만들어 놓기도 한다.  

아, 정조! 그가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는 미스테리다. 단지 독살설만이 그의 죽음을 대변해 주고있지만 그것에 대한 증거는 딱히 없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의 작가들이 그를 형상화 하기에 좋은 인물로 보는 것 같다. 어떻게 그려도 아우라가 확실히 살아나지 않겠는가?  

난 왜 이 작품이 아직도 책으로 나오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책으로 나왔더라면 꽤 괜찮은 추리물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요즘 책으로 내지 않는 드라마가 어딨다고? 책이었다 드라마로 나왔다면 좀 더 그 권위가 인정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드라마로 봤다 책으로 나오는 것은 전자의 경우 보다 기대감이 떨어진다. 그래도 영상은 영상이고 문자는 문자다.  

이렇게 <한성별곡-정>을 보고 <추노>를 보니 아직 초반이라 말하기는 조심스럽긴 하지만 곽정환PD의 연출이 한결 업그레이드 됐다는 생각이 든다. 전자의 드라마도 좋긴 하지만 지금의 <추노>가 보기는 더 좋다. 앞으로 이 사람을 주목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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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1-20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7년이면 이산이 나온 때내요.엊그제 본것 같은데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갑니다 ㅜ.ㅜ

stella.K 2010-01-20 11:49   좋아요 0 | URL
이걸 보셨군요. 정말 시간 빨라요.
2007년도에 제가 뭐 했는지 정말 기억이 안 나더라구요.ㅜ

전호인 2010-01-2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7년?
글쎄요 제가 무얼했을까요?
당장 2009년에 한 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네요.
망각의 동물의 본능에 충실한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 헷갈려하고 있답니다.ㅋㅋ

stella.K 2010-01-21 10:5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옛 기억은 점점 또렷해지고 있는데 바로 몇년 전의 일은
기억이 안 나고 있으니, 인간의 기억이란 참...흐흐
 
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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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지는 며칠 되었다. 그런데 문득 문득, 내가 이 책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자꾸 리뷰 쓰기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뭔가는 말해야 할 것도 같은데... 

우선, 작가가 외양에서 풍기는 이미지답게 꼼꼼하고, 촘촘하게 글을 썼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로선 작가의 <나의 달콤한 도시>를 드라마를 통해 보고,  책을 접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말미에 정말 열심히 썼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하지만 너무 여성적 감수성이 드러내서 일까? 잔잔한 감동은 있지만 굵직한 뭔가를 던져 주기엔 다소 미흡하지 않나 싶다. 물론 그렇다고 작품 자체를 즐기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사람은 기본적으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란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가족이란 나의 평안과 안락을 위해 있어주길 바라는 것이지 일정 부분 그것이 보장되면 사람은 여간해서 그 동굴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동굴 속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누구도 침범하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으니 우리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집안에 살아도 서로 모르는 수 밖에.

사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제시한 가족은 어찌보면 가장 흔한 중산층 가족 형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옥이 화교라는 점이 약간은 특이할 수도 있다할지 모르나 그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인물 설정이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우리나라도 외국인과의 결혼이 잦아 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혼도 흔한 양상이다. 어떤 가족학자는 인간은 평생 두 번 이상의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오래 전에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이혼이 흔한 현실에서 개인의 정신적 성숙도는 이혼 현실을 못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속 은성이처럼 아빠를 싫어하고, 새 엄마를 싫어하며, 그들에게서 난 자신의 이복 동생도 싫어하지 않는가?

사실 가족관계의 문제는 은성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등장인물 하나 같이 가족의 좋은 구성원이 될만한 자질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유지가 유괴되지 않았다면 이들의 문제는 잔잔한 수면 밑에 잠식되어 있다가 언제 수면 위로 솟아 오를지 모르는 불안한 고요 속에 있다. 너무도 잔잔하고, 너무도 불안하여 오히려 일탈을 꿈꾸지 않았던가? 유지의 유괴로 인해 그를 찾는 과정에서 그들의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모습에서 그렇게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작품에서는 그나마 유지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가 건드려졌지 왠만해서 유괴 같은 큰 사건은 누구에게나 잘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것을 보면 이런 가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문제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왜? 사람은 동굴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즉 유지처럼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원래 이래야 하는가 보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렇게 불안 하지만 그것이 어느 만큼 보장되고 확보가 되면 여간해서 그 동물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지는 친구도 안 사귀고 자신이 얼마만한 자질이 있고 없고 간에 그냥 바이올린 연주라는 그 동굴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가? 그리고 기껏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나오지만 유괴나 당하고.  그러므로 유지는 태어나면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진정한 관계 맺기가 쉽지 않고 사회성이 낮은인물이 된다.  오늘 날의 가족도 그렇지 않는가? 그저 나는 누군가의 아내고, 남편이며, 딸이고, 아들이란 명분만 있을 뿐 그에 따른 인간적 도리는 없다. 왜 그런가를 생각하면 기본적인 의식주에 별 불만이 없으며 살아가는 것에 별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 위에 물질만능만을 추구하니 인간적인 도리라는 게 물질을 능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나마 난 유괴되었던 유지가 집에 돌아 오고(물론 그 결말이 만족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 사건을 통해 그동안 없던 가족간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생겨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가족이란 이제 혈연으로만 연결되지 않는다. 어려울 때 같이 염려 해 주고, 걱정해 주는 것이 가족이다. 그저 단순히 내 불안한 동굴을 지켜주기 위해 가족이란 기본 단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미스터리 형식을 취했던 만큼 밝게 해피앤딩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유지는 돌아왔지만 여전히 불안과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끝을 맺는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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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1-1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가족관계가 해체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그래도 역시 의존하게 되는것은 가족인것 같아요^^

stella.K 2010-01-20 11:50   좋아요 0 | URL
이제까지와 다른 형태의 가족은 있겠지만 해체 되지는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