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이한
주연 : 감우성, 최강희 외

사실 이 영화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인물이 있다면 그것은 정일우가 아닐까 싶다. 이건 결코 칭찬은 아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정일우는 참 스크린 안에서 끊임없이 왕자 포즈만을 고집한다. 도무지 연기할 생각을 안하고 난 멋진 왕자야! 스스로 도취된 듯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표정만을 지으려 하는 것이다. 이런 캐릭터 정말 왕짜증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나리오가 그렇다는 것이다. 배역들 하나 같이 싯적인 언어만을 구사하려고 한다. 좀 더 일상적이고 그래서 정말 아, 그래! 하는 그런 언어를 웬만해서 구사하지 않는다. 그냥 대사를 들으면 나쁘진 않은데 과연 저런 언어 스크린 밖에서도 쓰나? 싶다. 물론 안 쓸 것이다. 뭐 그래서 영화 아니겠어?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래. 예쁘게 잘 만들어진 영화!   

예를들면, 이 영화는 지하철 기관사로 나오는 감우성이 직접 지하철을 운전했다고 해서 관심을 모았는데 죽은 옛 애인을 잊지 못해 지하철 2호선만을 줄곧 운전하다가 인사 이동 때 3호선으로 옮기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는다. 그때 그는 4차원의 표정으로 읊조리는 대사, "거기 가면 성수역이 있을까요?" 하면서 이후에 나오는 대사 보면 정말 신파란 생각이 든다. 홀로 최루성을 남발하는 정일우의 대사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구성이나 영상은 나름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인다. 나는 이런 영화가 좋다. 주인공 두 명 정도가 설정되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것 보다 8명쯤 구성 되어서 어느 장면에선 이 커플의 이야기를, 저 장면에선 저 커플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교차시키고 퍼즐 맞추듯이 맞추듯 한다. 그것은 작년에 재밌게 보았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던가?)을 연상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완성도로 치자면 그 영화가 훨 낫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단연 압권은 우리의 4차원 소녀 최강희의 연기다. 어쩌면 그녀는 4차원에 살면서 감우성과 그런 예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애인의 생일을 위해 객차를 투명 색연필로 꾸며놓고 행려병자의 실수로 객차에 불이나고 그안 갇혀 죽어 가는 최강희의 연기는 찡하다. 그리고 그것을 3년 전을 회상하며 감우성의 현재와 과거를 잘 직조해 냈다.   

영화는 다분히 최루적이다. 너무 예뻐서일까? 등장하는 남자들 넷. 감우성을 비롯해 정일우, 엄태웅, 류승룡까지(아, 우리의 최강 카리스마 류승룡이 이렇게 착하게 나온 건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닐까 한다) 하나 같이 남성적 근육질은 없고 뭔가 말랑말랑 하면서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인물로 나온다.  

외국에서 개기일식 날 옛 애인을 만나기 위해 귀국한 엄태웅은 '프리 허그'를 무언으로 외치며 자꾸 안아 주겠다고 징징대질 않나, 감우성은 죽은 애인을 잊지 못해 찔찔대고, 난 좀 눈치 없는 착한 왕자야라고 말하는 정일우는 말할 것도 없고, 최강 카리스마 류승룡도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이성에게 마음을 못여는 그리고 누가 자기의 철옹성을 비집고 들어올라치면 화부터 내는 버럭남이었다. 이런 남자들 여자들이 볼 때 어떤가? 그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옛 애인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자꾸 이런 남자 괜찮지 않아요? 라고 들이대는 것 같다. 그러나 여자의 입장에 이 여자 저 여자 찝적대는 남자도 싫지만 못지 않게 이런 남자도 싫다. 더구나 요즘 초콜릿 복근 때문에 남자의 야성미가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고 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런 야성남이 옛 애인을 잊지 않는 순진 정의파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추노'의 대길이처럼. 또는 여자를 끝까지 지켜주는 송태하처럼 말이다. 이런 남자라면 여자는 깜빡 넘어간다! 신 초콜릿 복근남 만세!   

그래도 이 영화 결말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이렇게 옛 사랑을 있지 못해하는 사람들이 새 사랑도 진실되고 멋지게 하는 법이라구. 하면서 말이다. 거기엔 반드시 멋진 여자가 있기에 가능한 거야. 뭐 이렇게 셈셈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다. 꼭 권하는 것은 아닌데 봐도 손해 봤다는 느낌 안드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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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폴란드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외 지음, 정병권.최성은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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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학책은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 나와도 아직도 듣도 보도 못한 작가에 쉽게 접해 보지 못한 제3 세계 문학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싶다. 그중에서도 폴란드는 또 얼마나 낮선 나라의 문학일까? 폴란드란 나라는 알아도 그 나라의 문학을 접하기는 그다지 쉽지는 않았다. 이것이 내가 이번에 '창비'에서 새로나온 '세계문학' 중 제일 첫번째로 폴란드편을 고르게 만든 주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표지의 그림도 멋지지 않은가!  

늙어간다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나게 만드는 <등대지기> 

그나마  <쿼바디스>는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헨릭 시엔키에비츠가 폴란드 작가란 건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아, 이 무지함을 어이하리! 

그의 작품 '등대지기'는 작품 설명에서, 헤밍웨이가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노인과 바다'를 썼다는 말처럼 정말 그 작품을 연상케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건, 새삼 등대지기란 직업이 정말 외로운 직업이겠구나라는 것과 노인의 정서를 정말 섬세하게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시집이 과연 무엇이기에 등대지기를 박탈당해도 한점 아쉬움이 없었을까? 우리는 흔히 그 시집이 이루지 못한 옛 애인과의 사랑이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노인의 나라 폴란드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늙는다는 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타국에 있다면 고국을 그리워 하고, 타지에 있다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또한 늙는다는 건 모든 것을 느긋함으로 대하는 것. 전전긍긍해 하지 않은 것. 아쉬움이 없는 것.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고국을 떠나 본적이 없고, 나라를 잃은 슬픔을 겪어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아직 늙지도 않았다. 정말 내가 늙으면 이런 마음이 생길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덤덤함으로 사는 나에겐 아직 생겨지지 않은 마음이지만 작가가 워낙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포착해 내고 있어 정말 애정이 가는 작품이었다. 

인간의 탐욕과 잘못된 사랑의 결과를 인과응보의 카테고리에서 표현한 <파문은 되돌아 온다>  

물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욕과 자식에 사랑은 본능이며 원죄는 아닐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 죄가 될까? 그러나 그것이 지혜롭지 못할 경우엔 모든 것이 어긋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은 물질에 대한 집착과 자식에 대한 잘못된 사랑 때문에 파멸되어 간다. 또한 그로 인해 가난한 노동자의 원성도 산다. 게다가 지극히 도덕적이며 신앙심 깊은 친구이자 목사인 뵈메와도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그것은 작가 볼레스와프 프루스의 소설적 장치였을 것이다. 

읽고 있으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내가 지난 날 보아왔던 몇 편의 영화들도 생각나게 만든다. 이를테면, <제르미날>같은 민중봉기를 다룬 작품이나 <시민케인> 또는 <배리 린든>같은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오 헨리의 <선물>과 구성방식이 비슷한 <모직조끼>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다. 정말 읽으면서 내내 오 헨리의 <선물>을 연상케 했다. 죽어간다는 것. 그 죽음을 지켜보다는 것이 그다지 불행한 것만은 아닌 것 처럼 느껴졌다. 사랑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관조하는 또 다른 시각이 가능함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죽음이 그렇게 불행하기만 한 것인가? 좀 죽음에 대한 태도를 긍정적으로는 할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어린 아이에게 가난은 불행한 것인가? <우리들의 조랑말>  

가난은 어른에게나 불행한 것이지 어린이에게는 아직 불행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의 어린 아이나 부자 나라의 어린 아이나 얼굴이 순수하고 맑기는 거의 다를바 없어 보이기도 하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건 뭐 때문일까? 누군가를 책임져야 할 책임감이 아직 주어지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고,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 나름대로 그 정서가 보호받는 것 같기도 하다. 부모와 형제가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우리가 가난을 두려워 하는 건 어린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고,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 때문인 것도 같다. 이 작품은 그런 점들을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가감없이 보여주는 수작이란 생각이 든다.  

첫 경험에 대한 환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구름 속의 첫걸음>  

내가 저 <등대지기>,<모직조끼>와 함께 가장 즐겁게 읽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관음증을 통한 성에 대한 첫 경험을 '구름 속의 첫걸음'이란 은유적인 표현으로 묘사했다. 상큼하면서도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관음증은 정말 어떤 병이라기 보단 본능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소년과 소녀의 이미지를 채 벗지 못한 남녀의 애정 행각을 보게된 주인공. 그것이 야릇하고 짜릿하기 보다 오히려 관조적이다. 너희가 지금은 그렇게 불끈 달아 오를지 몰라도 결혼하고 나이들면 그것도 시들하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 소년과 같은 시절로 돌이킬 수 없는 아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작품을 하나 하나 읽어 가면서 약간은 러시아적이란 느낌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폴란드 특유의 음울하면서도 뭔가 모를 잔잔하면서도 밋밋한 묘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어쩌면 익숙치 않은 작품을 처음 대한다는 느낌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비교적 옛날 작품이 많았다. 그것은 온전히 폴란드 작품을 느껴보란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의 폴란드 작품은 서구의 영향으로 다소 혼재되었을지도 모른다. 문학의 새로운 개척지로서 폴란드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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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
정성일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책에 대한 궁금증 보다는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본인들은 극구부인을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얼굴이 명함인 사람들 아니던가? 그런 잘난 사람의 이야기가 예전엔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잘난 사람들의 글일테니 나에겐 거부감이 들밖에.(나는 어느 새, 메이저를 꿈꾸는 삶에서 마이너의 삶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삶으로 전락(?)했다.ㅜ) 그래도 이 책을 쉽게 내칠 수 없었던 건 이 책이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 출판사를 좋아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인지도가 있어 기회가 주는 호사를 거부한다는 건 여러모로 예의가 아닐 것이다.(책에게나, 출판사에게나, 이 책을 건내 준 모처에게나,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나 두루두루) 

읽고나니 과연 지면의 제약이 아쉽긴 했지만, 여기에 초대(?)된 사람들은 과연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누군들 돈 많이 벌고, 입신양명하여 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을까? 우리는 태어 나면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기를 교육 받고 살지 않는가? 우린 그런 삶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어느 새 그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런 것 같아도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더라. 입신양명과 상관없이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들이다.  

공선옥. 소설을 좋아 하지만 늘 나의 선택에서 제외되는 작가다(하긴 그런 작가가 한 둘인가? 그래도 작년 초, 나는 겨우 그녀의 책을 한 권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행복한 만찬>이다). 그녀의 삶을 읽고나니 그녀의 글이 얼마나 소박하고 진솔하길 바라왔는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대 작가들은 참 고급이다. 평균학력은 모르긴 몰라도 대졸이요, 재미있다기 보다는 똑똑한 사람도 많다. ......나는 충무로, 종로, 명동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는 쓰지 못한다. ... 그곳은 내게 사랑도 상처도 주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내가 살았고 내가 경험했고 내게 사랑을, 상처를 주었던 곳,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만 쓸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나라 시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삶의 시골, 삶의 변방, 삶의 오지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 한데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나는 마흔 일곱해가 되도록 생의 한데에서 떨고 있다. 내가 안온해 지는 길은, 기술을 배우는 것 뿐이다. 이런 '펜대 잡는 기술'이 아닌 다른 기술 말이다.(19~20)      
   

하긴, 작가가 없는 말을 어떻게 지어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럴 작가도 없진 않지만 또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녀의 자기 글을 대하는 방식에 무척 신뢰가 느껴졌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또 어떤가? 이 사람의 글을 읽으면 약간 섬짓해 지기도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말하랬더니 글을 4분의 3(또는 3분의 2)을 영화 감독 임권택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리고 무척 냉소적이다. 자신의 세계가 확고하게 서 있어 그 삶을 흔들어 놓을만한 어떤 사람도 사건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임권택에게 깜빡 넘어 가다니!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삶은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임권택을 빗대어서 아주 살짝 '나는 이런 사람이오.' 퉁치고 있다. 굉장한 반항아 같다. 나름 매력있다. 

또한 매일 기생충에게 고마워 하며 머리를 조아리는(연구하느라) 우리의 마태우스 서민 교수. 늘 사람들에게 재미와 유익을 전달하고자 설레발(!)계의 절대강자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나 역시 오래 전부터 '왜 하필 기생충을...?'하는 의문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는 것도 예의는 아닌 성 싶어 참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서야 비로소 그 의문이 풀렸다.  

지금은 기생충을 연구하겠다는 후학들이 늘어나서 좋긴 하지만, 그 젊은이들이 너무 일찍부터 자신의 길을 정해 버리는 것 같아 흔쾌히 기뻐해 줄 수만은 없다는 그의 심정이 꼭 부모 같다. 어느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사람들 중 자신의 일이 너무 힘들어 내 자식은 나와 같은 길을 가기를 원치 않는 사람도 있다잖는가? 그처럼 서민 교수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10년 후에도 그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때 결정하라고 조언한다니 그의 솔직함에 마음 한켠이 찡해 온다. 만약 의학계에서 예산 삭감들 당한다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외로운 분야 중 하나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매일 화장실 가는 한 사람으로써 바랄 뿐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기생충 한 마리가 국가도 구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갈팡질팡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기생충 포에버!다. 

개인적으로 가장 부럽기는 김창남 교수가 아닐까 싶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일로 확대시켜서 사는 사람이다. 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보통은 일 따로 취미 따로가 대부분이 아니겠는가? 물론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김창남 교수 같은 사람이 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취미가 일이라고 생각하면 머리에서 쥐부터 나고, 취미가 취미면 잠시 좋아하다가 마는 그래서 시작해 볼 엄두도 못내는 맹추로선 그저 부러울 뿐이다. 또 그렇기로서는 대중문화 평론가 이영미씨도 비슷한 류에 포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얼리어댑터인 아버지 덕분에 텔레비전을 일찍 접했고(그녀는 60년대 초에 태어났고, 우리나라 방송 개국도 비슷하게 때를 같이 한다), 그 덕분에 그녀는 '텔레비전 키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드라마뿐 아니라 요즘 소위 '미드'라고 불리우는 <도망자>나 <전투>같은 외회시리즈에 심취할 수 있었고,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더빙을 누가 맡았는지도 정확히 기억해 낸다. 이름만 들어도 그리운 프라이 보이 곽규석의 <쇼쇼쇼>나, 라디오 드라마인 <아차부인, 재치부인>은 나도 기억하는 프로다(특히 이 두 프로가 종영을 맞을 줄은 난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그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못지 않은 얼리어댑터인데 난 왜 이영미씨 같이 못 됐을까 후회가 든다. 하긴, 그녀는 학업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어 자신의 관심을 학업으로 연결시키는데 성공했지만, 난 학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덕에 결국 요모양 요꼴이 됐다. 정말 공부해서 남 주는 거 아닌데. 일찌감치 길을 찾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지금 그녀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역사를 정리 연구하고 있는 중이란다.  

이밖에도, 미술치료사인 박승숙 편을 읽으면 난 그림에는 젬병이긴 하지만 다시 한번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란 생각이 들고, 요즘 우연찮게 <언니네 방>(갤리온)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그래서 그럴까? 페미니스트인 김신명숙 편이 마음을 사로 잡았다. 확실히 여성의 문제는 남성의 문제고, 남성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다.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 것이 결국 온전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사람이 하는 일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가져 본다.(솔직히 내가 페미니즘에 이토록 가슴 뛰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항상 대학교육을 모색하는 양희규 씨도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지금의 교육으론 정말 우리 아이들은 올바로 키워낼 수 없다.  

책이 워낙에 많은 사람(17인이면 너무 많다. 7인만 해도 많은 것을)을 다루고 있어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애초에 내가 가진 선입견과 달리 하나같이 박수쳐 주고 싶고, 응원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알고보면 외로운 문화전사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하는 일에 다 관여는 할 수 없지만 응원하는데 돈 드는 거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부러웠다. 자신의 삶을 무엇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재간이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그 삶이 그들에게로 왔는지, 아니면 그들이 그 삶에로 투신을 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저 드는 생각은 나는 내 삶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부끄럽기도 하고, 자책도 하게 된다. 꼭 이렇게 어떤 한 분야에 족적을 남기는 삶을 살지는 못할지라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 지금이라도 그 일을 말 없이 부지런히 가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적어도 누가 알아주던 못 알아주던, 읽어 주던 안 읽어주던 자기만의 자서전을 써야하지 않겠는가? 그 자서전의 이름을 꼭 '그 삶이 내게 왔다'고 하진 않더라도 그 비스무레하게라도 이름 지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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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말순씨 - Bravo, My Lif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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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박흥식
주연 : 이재응, 문소리

이 영화는 마치 나와 대화하면서 보는 영화 같다. 말하자면, 나의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는 말이다. 

우리가 지난 날을 돌아 본다는 건 그리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아쉽고, 그렇다고 꼭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옛 시절은 아릿하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광호는 중학교 1학년이다. 그리고 영화는 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를 광호가 접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이 된다. 하지만 광호는 정작 '유고'란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에게 물어 보지만 어머니 말순 씨(문소리 분) 역시 그것의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한다. 광호는 자신도 모르면서 오히려 어머니가 그것도 모른다고 면박을 준다. 돌이키면 웃기는 상황이지만 확실히 그 상황에선 물어보는 사람이 오히려 당당할 수 있다. 그땐 그럴 수 있다.  

광호가 그것을 정작 알게된 건 학교에 가서다. 그렇다. 나도 그날 까만 동복 교복을 입고 학교엘 갔더랬다. 난 그때 이미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알았고, 그 전날에도 아무런 일 없이 어제 같은 날이 오늘도 시작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그날 아침 난 다소 침통한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그랬더니 몇몇 아이들은 훌쩍 거리고 있었다.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죽었다는데 감수성 예민한 소녀들로써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때 아직 울지 않았었다. 그러자 어느 키 큰 여자아이가 "너도 울지 않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 같이 아직 울지 않는 아이들이 또 있단 말인가? 그때 난 꼭 그 아이에게 그렇게 반응할 생각은 없었는데 "울긴 왜 안 울어!"하고 톡 쏘아 붙였다. 무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다른 아이들과 훌쩍거리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땐 미처 몰랐다. 그것이 기나긴 민주화 항쟁의 첫날이란 걸. 영화는 이렇게 처음부터 나의 아릿한 기억들을 하나 하나씩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광호네 반 아이 몇 명이 대통령 서거 날 축구(?)를 했다고 담임한테 단체로 작살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난 그 시절 카톨릭에 막 귀의를 해서 친구 따라 학생회에도 다니곤 했었다. 어느 날, 나를 인도한 친구가 갑자기 성당으로 나오라고 하는 것이다. 그날이 토요일쯤 됐던 것 같다. 다음 날, 주일 미사를 위해 약간은 샤프하게 생긴 고등학교 오빠의 지휘로 졸지에 성가 연습을 하게된 것이다. 그 오빠는 나름 진지하게 우리를 이끌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초로의 성당 주임 신부가 갑자기 들이 닦쳐서는 산통을 깨놓은 것이 아닌가? "국장이야. 국장!" 소리를 치면서. 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그 신부님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국장 때 성가 연습을 하면 안되는 것일까? 박정희 대통령이 큰가? 하나님이 큰가? 국장은 국장이고, 크신 분께 경배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국장이라고 미사를 안 드리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예수님도 세금을 두고 가이사는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 신부님은 아마도 성가 연습을 핑계삼아 아이들이 성당에 모여 희희덕대는 것을 용납하고 싶지 않았을 게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그것이 진정 믿음의 행위였는지 아니면 정말 그 신부님 생각대로 성가연습을 핑계삼은 연애작당이었는지.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그날 국장이라고 남녀간의 운우지정도 금했을까?         

광호와 친구들이 극장에서 성에 관한 행위로 쑥덕거리고 있을 때, 나 역시도 그 시절 어느 날 같은 또래 친구들과 성에 관한 이야기를 읊조렸던 기억이 난다. 뭔가 맞지 않는 그 알량한 성지식으로 말이다. 그때 내 몸은 얼마나 후끈거리고 오금이 저렸던지.  

광호와 친구들이 봤던 영화는 왕년의 청춘스타 정윤희, 신성일이 나오는 낮 뜨거운 영화다. 그 시절 금지된 영화를 보는 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그들은 나름 뜨거운 가슴으로 봤겠지만, 난 정윤희란 배우가 인기 절정에 있었을 때 그런 벗는 영화에 나온다는 게 마땅치 않았다. 신성일도 잘 생겼다기 보단 느끼한 늑대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그들이 봤던 첫 영화였을까? 그것은 알 길이 없다. 내가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챔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같았으면 결코 극장에서는 보지 않았을 영화다. 스포츠(권투) 영화고, 영화는 다분히 최루성이다. 자기 아빠가 권투 하다가 죽었다고 저 꼬마 어찌나 우는 연기가 사실적이던지 나도 울컥했다. 보고나서 이래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구나 했다.  

지금은 게을러진 건지, 영화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영화를 볼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해져서 그런지 웬만해선 극장에 잘 가지 않는다.  

영화는 또, 광호네 아랫방에 세 들어 살던 은숙이(윤진서) 마당에서 머리 감을 때 광호가 수건을 가져다 주면서 은숙이 가슴을 넘겨다 보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남자아이들만 여체를 탐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 아이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남자의 육체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땐가? 나는 학원에 다닐 생각이 없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친구와 친구 엄마랑 학원을 쫓아 간 적이 있었다. 학원에 뭔가 문의할게 있다고 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무슨 짖궃은 발동이 났는지 그때 원장인지? 상담실장인지 하는 남자의 양복 입은 사타구니를 빤히 쳐다 볼 생각을 했다. 딴뜻은 없었고, 내가 그렇게 빤히 쳐다봐도 그는 모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가 나와 눈을 마주친다면 그가 아는 것이니 마치 난 유령놀이라도 할 요량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 것으로 보아 내가 그의 사타구니를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마음껏 봐주고 나왔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영화는 나의 잃어버린 옛 시간을 찾도록 해 주었고 놀라우리만치 70년대를 정교하게 복원해 내고 있었다. 빨강과 녹색으로 대비되는 거리에 우뚝 서있는 우체통. 당시의 만만한 간식거리로 누룽지를 기름에 튀겨 설탕을 솔솔 뿌린 누룽지 과자를 쟁반에 바쳐들고 은숙의 방에서 함께 만화책을 보던 광호. 당시 금성사에서 처음 나온 탈수기가 따로 달린 세탁기. '아모레'와 '쥬단학'으로 대별되는 방문판매 하던 묵직한 직사각형 가방. 난 그 가방을 볼 때마다 하도 무겁게 생겨서 저걸 어떻게 여자들이 들고 다닐까 어린 마음에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방문판매는 그렇게 화장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난, 그 시절 우리집을 방문했던 보따리 장수들로부터 사과도 사고, 미역이나 다시마 심지어 내가 입을 노랑 나팔바지를 샀던 엄마를 기억한다.  

광호는 은숙이나 친구 엄마에게선 좋은 냄새가 나는데 왜 엄마에게선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느냐고 짜증을 부린다. 나도 한때 그걸 아쉬워 했던 적이 있었다. 왜 우리 엄마한테선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걸까? 세월이 흘러 내가 그때의 엄마 나이쯤이 돼서야 알았다. 냄새가 안 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마도 남들은 엄마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을 것이다. 그러나 늘 살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에게선 그것을 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엄마의 자식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광호는 애꿎게도 엄마에게서나는 화장품 냄새를 싫어 했다. 그걸 보면서 나도 어린 시절 집앞 시장을 예쁘게 꽃단장을 하고 나가는 엄마를 보면서 야릇한 의문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엄마는 언제부턴가 몇 십년 전부터 시장에 나가실 때 화장을 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런 은밀한 의문 같은 건 갖지 않는 건데 그랬다. 이렇게 우리 엄마는 무식하고 평범해 미칠 것 같고, 남의 엄마는 왜 그토록 근사해 보이는 걸까? 영화는 그 허를 잘도 찔러 준다.  

이 영화에서 발견한 건 문소리의 재발견이다. 영화에선 어쩌면 그리도 부지런하면서도 평범한 아줌마 역활을 잘 해 내던지! 동네 아줌마를 집에 불러다 놓고 집에서 한판 춤판이 벌어졌을 때 건강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맞아, 저게 바로 아줌마 기운이라는 거야! 내남 가리지 않고 스스럼 없이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아줌마. 남들은 그걸 오지랖이라고 하지만 그건 바로 건강한 아줌마 기운이라는 것을 감독은 잘 살려냈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시간이 흐르면 곧 영원속에 박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건강해 보이는 어머니 말순 씨가 폐결핵으로 저 세상으로 간다. 그뿐인가? 당시 유행했던 '행운의 편지'는 정말 신통력을 발휘하기라도 하듯 광호 곁에 있었던 사람들을 하나씩 떠나가게 만든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 나와 관계 되었던 모든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난다는 것을 또 다르게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틸컷의 저 조그만 여자아이 아직 엄마의 체취가 남아 있는 옷을 붙들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것은 엄마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엄마에게서 좋은 냄새가 안 난다고 짜증을 부렸던 광호의 대칭일 터. 정말 가슴 찡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언제가 때가 되면 엄마를 보내 드려야 할 텐데 그 시간이 아득하다. 

물론 가끔 영화가 오버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말순 씨가 폐결핵으로 죽는다. 영화의 설정은 70년대 말이다. 그때쯤이면 폐결핵으로 죽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법도 하다. 또한 요즘엔 다운증후군이라고 해서 보건소에서 사람을 잡아 가지는 않는데, 과연 그 시절 과연 그런 사람을 잡아가고 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이 영화, 나의 잊고 있었던 옛 시절을 생각나게 만드는 가슴 따뜻한 영화다. 스토리가 정말 그 시절에 사춘기를 보냈을 누군가의 추억담을 듣는 것 같다. 누구의 이야길까? 작가? 감독? 아니면 제3의 누구? 아무튼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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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2-03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추천 3개 드리고 싶어요.
축하합니당~
이 영화 저도 오래 전 봤는데 광호 역할의 저 배우 참 독특한 느낌이란
생각을 했더랬어요. '국가대표'에서도 약간 어리버리 딱 그 스타일로 ㅎㅎ
문소리는 참 연기 잘 한다 싶은 진짜 배우^^ 저 아모레화장품 유니폼..
근데 님의 추억담이 더 재미나요.^^

stella.K 2010-02-03 20:18   좋아요 0 | URL
오, 프레이야님! 고마워요.
이 리뷰 정말 열심히 썼는데 댓글 하나 못 받고 얼마나 외롭던지...
솔직히 당선도 당선이지만, 전 이렇게 지인의 댓글이 더 받고 싶은데
그걸 이루어 주는 지인이 없더라구요.ㅜ
프레이야님은 그런 점에서 저의 은인이십니당.
전 님의 댓글 받는게 더 좋아요!ㅎ~

stella.K 2010-02-03 20:30   좋아요 0 | URL
아, 그리고 말씀하신 광호는 정말 연기를 잘하는 것 같아요.
유승호에 가려 빛을 못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전 잘 생긴 배우 보단 연기 잘하는 배우가 더 좋습디다. 문소리도 그렇고.^^

hnine 2010-02-0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페이퍼 읽었었는데 두 영화 모두 제가 못본 영화라서 뭐라고 댓글을 못달겠더라고요 흑흑...

stella.K 2010-02-03 20:57   좋아요 0 | URL
ㅎㅎㅎ 괜찮아요, 에치나인님.
보세요. 보시고 우리 얘기해요.^^
 

감독 : 제임스 카메론
주연 : 샘 워싱턴, 조 살다나
 

남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닌데 그랬다.  

요즘은 조금 시들해 진 것 같지만 그래도 요즘 이 영화만큼 입소문이 심한 영화가 있을까? 난 SF영화 별론데...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난 점점 허리우드 영화가 싫어진다. 허리우드표 영화가 다는 아닐진대 왜 우린 허리우드에 목을 매달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난 이 영화 보면서 미제국주의 영화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지네들만이 끝까지 잘났다고 우긴다. 지구 3차원을 넘어 4차원의 세계 어딜가도 그곳을 구할 사람은 우리들 밖에 없다고 한다. 이봐. 적군이 너희 땅을 섬멸하려고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도와줄께.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적군이라는 것도 같은 한 패거리다. 지네들끼리 싸우고 결국 조금 더 인간적이고 착한 쪽이 이겨서 우리들 때문에 너희들 평화를 찾았다고 똥폼잡는다. 이런 허접한 영화에 열광할 필요가 있을까?  


CG가 한 차원 높아졌다고 난리들이더만. 기술만 좋아졌다고 명품 영환가? 아무리 영화는 과학이라고 우기고 싶겠지만, 도무지 그안에 든 메시지가 안 좋거나 형편없으면 그 영화 꽝 아닌가? 스토리는 어디서 많이 본듯 하더만. 맨 마지막에 주인공 생일이 어쨌다고 똥폼, 개폼 다 잡는지 나중엔 실소만 나오더라. 

예전에 나 알던 아이는 기분 나쁜 영화 보면 그 눈을 씼어야 한다고 집에 돌아와 영화를 내리 연짱 몇 편을 본다고 했다. 나도 그래 볼까 하다가 그중 한 작품이라도 기분 나쁜 영화 보면 도로아미타블이 될 것 같아 관두기로 했다. 
그래도 뭐, 전날 잠을 잘 못잔 덕에 어제는 잠을 잘 잔 편이다. 이 영화에 가위 눌려 잠까지 못 잤다면 내내 원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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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1-27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까 스토리는 이해 안 가죠. 아니 너무 뻔하죠.
주인공은 히어로도 아니고 안티히어로도 아니죠.

3D가 놀랍고, 신기했을 뿐이고요.

stella.K 2010-01-27 17:01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내 말이요.
솔직히 전 3D도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원숭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졸면서 봉준호의 '괴물'이 훨낫다 그랬어요.ㅋ

카스피 2010-01-27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세상은 내용보다는 겉 포장을 더 중시하는 시대잖아요.아무래도 볼거리가 많은 아바타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것 아닐까요?

stella.K 2010-01-28 10:45   좋아요 0 | URL
왜 사람들은 그런 것만 보는지 모르겠어요.
저런 영화에 숨겨져 있는 미국의 패권주의는 못 보구.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원...쩝